본격 한중일 세계사 7 - 흥선대원군과 병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7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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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리뷰란 책을 읽고 나서 바로바로 써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번 경우처럼 미루다가 열흘이나 지나서 리뷰를 쓰게 되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책을 연초부터 마구 달리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 모양이다. 일단 책은 읽고, 리뷰는 한참 뒤에나 쓰게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안 쓰는 것보다는 낫다는 자기확신으로 힘차게 출발해 보자. 일단 스캔으로 리뷰에 앞서 훑어 보았다.

 

일단 흥선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즉위와 더불어 정권을 차치하는데 성공했다. 기백년 동안 조선 국가를 좌지우지해온 안동 김씨 세도가들은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대원군은 곧바로 개혁정치에 돌입한다. 가장 문제였던 전정, 군정 그리고 환정을 개혁하고 조선 후기 적폐의 온상이었던 서원들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철폐령을 내려 일신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미 국운이 기운 조선에 그런 처방들은 그저 미봉책일 뿐이었다. 이웃 일본의 예를 따라 보다 근본적인 국가 개조에 나섰어야 했는데, 조선 군왕의 아버지가 실시하는 개혁 정책은 필연적으로 그 한계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혁은 조금이고, 땅에 떨어진 국가의 위신을 세운답시고 불필요한 대토목공사였던 경복궁 중건에 나서면서 국가 재정이 그야말로 거덜이 날 지경이었다. 경복궁 중건이 대원군이 시작한 삽질의 시작이었다면, 대대적인 천주교도 박해로 서구 프랑스 함대가 1866년 강화도를 침략한 병인양요는 대표적인 외부에서 온 위기였다. 그전에 굽시니스트 선생은 비엣남에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군대가 사이공 부근을 집어 삼킨 썰을 잠시 다루나, 솔직히 관심 밖의 일이라 패스하도록 하자. 대원군만큼이나 삽질 전문가였던 나폴레옹 3세는 국내 정치에나 신경을 쓸 것이지 이집트, 멕시코, 베트남 등에 개입하면서 밑지는 식민지 개발 장사로 국가재정을 신속하게 말아 드셨다. 멕시코 원정에서는 자그마치 3억 프랑에 가까운 전비를 들였으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철군해야 했다.

 

병인양요도 마찬가지였다. 7척의 함대로 강화도에 침입한 프랑스군은 머스킷 스타일의 화승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에게 미니에탄이라는 신병기의 매운 맛을 선사한다. 병기와 기술에서 200년이나 뒤지는 조선군이 무슨 수로 프랑스군을 대적할 수 있단 말인가. 대 프랑스 양이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베이징에 파견한 오경석으로부터 프랑스 함대가 장기전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보고서를 받은 대원군은 그저 존버 정신으로 버틸 것을 주문한다. 결국 대원군이 예상한 대로, 별 소득도 없이 보급과 지원을 기약할 수 없었던 프랑스군은 강화성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을 챙겨서 철군했다.

 

이전에 대동강에 출현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서도 그랬지만, 꼴랑 무장상선 하나 상대하는 데도 평양성이 모두 동원되어서야 간신히 제압할 수가 있었다. 평양 감사 박규수가 임지에 도착한 지 석달만에 벌어진 이 사건에서도 조선군은 순전히 운빨로 해적에 가까운 무장상선의 난동을 수습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 그리고 신미양요로 이어지는 양이전쟁에서 조선은 배운 게 전혀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였다. 이웃 일본의 번들은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에 의해 강제 개항된 이래 서구 열강의 압도적인 힘을 깨닫고, 그들의 선진 문물을 도입하는데 힘을 썼다. 결국 대원군을 필두로 한 지도층의 무능과 무대책이 이후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의 단초가 된 것이다.

 

조선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압에 국가가 총력을 들인 태평천국전쟁을 마무리한 뒤에도 사방에서 반란이 발생했다. 다시 한 번 증국번, 이홍장 그리고 좌종당 한인관료 트리오가 출동해서 소방수로 각지에 투입해서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한다. 특히 증국번에 이어 두각을 드러낸 이홍장이 이끄는 회군은 1868628일 가오탕 부근에서 염군의 잔당을 소탕하고 토벌을 완수했다. 한편, 청나라 조정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는다.

 

한편, 공친왕을 중심으로 한 서양 업무를 배우겠다는 양무운동도 관 주도로 활발하게 전개된다. 문제는 양무운동의 방향성이 오로지 선진 서양의 기술의 전수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전통에 입각한 동도서기론으로는 서양 문물 도입에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쇄국정책을 전개하며, 개항과 교역을 거부하는 조선만큼이나 답답한 상황이었다. 물론 중국의 경우에는 두 번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서양 열강의 매운맛을 단단하게 본 결과, 앞선 서구의 문물을 받아 들여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의 존속을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동북아시아 3국은 서구 열강에 의해 반강제로 근대화 과정에 돌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역사만으로 예의 과정이 추동되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굽시니스트 작가는 당시 세계의 곳곳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맛보기식으로 설명을 시도한다. 프랑스의 코친차이나 정복도 그런 과정의 일환이었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사이에 벌어진 7주전쟁도 마찬가지다. 산업혁명의 후발주자였던 프로이센이 혁신적인 방법과 전략으로 소독일주의를 주장하는 대국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을 단기간에 승리로 이끌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새로 개발된 후장식 드라이제 소총으로 전장식 소총을 사용하는 오스트리아군을 쾨니히그레츠 전투에서 대파한 것은 국민개병제로 무장한 프로이센 전술의 승리였다. 전쟁으로 북독일연방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배제시키면서 비스마르크와 프로이센는 지도부는 통일독일의 주춧돌을 세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지금의 기준에서 볼 때, 동양삼국에서 형태를 달리하면서 전개된 양이전쟁은 어쩌면 근대화가 왜 필요한 지에 대해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그들의 유일한 선택지였을 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어느 자주국가가 외세의 간섭을 환영한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이 서구 열강들과 맺은 일단의 조약들은 모두 자국에 불리한 내용을 담은 불평등조약이었다. 무력에 의한 강제 개항과 교역 상의 불이익으로 해당국의 민중들은 부당한 행위를 통해 이윤을 약탈해 가는 외세를 배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민주공화국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군주국가에서 외세에 대항할 이데올로기로 존왕양이론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적인 수순이 아니었을까 싶다. 뭐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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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1-01-14 10: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난거는 다 ~ 읽으시네예..부럽심다^^

레삭매냐 2021-01-14 13:12   좋아요 2 | URL
북프리쿠키님도 도서관 이용해 보셔요.

전 이 시리즈는 죄다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보았답니다 :>

붕붕툐툐 2021-01-14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흘이나 지나 리뷰를 쓰시려고 다시 책을 뒤적이시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습니다~ㅋㅋ

레삭매냐 2021-01-14 16:47   좋아요 2 | URL
왠지 책 읽고 나서 허접하나마 조금이라도
리뷰를 쓰지 않으면... 숙제를 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

스캔으로 한 권을 다시 본 느낌입니다.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 블러디 선샤인 신미양요 본격 한중일 세계사 9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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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9편에서는 그동안 아쉽다 싶을 정도로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쉬운 분량으로 진행된 조선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일단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문화학자는 개뿔,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남의 나라 임금의 할아버지 묘를 파헤친 도굴꾼이다.

남연군묘에는 나도 가보았는데 정말 두 명의 천자를 배출할 만하다는 그런 명당 자리다.)


사실 중국과 일본의 강제 개항과 그에 따른 부작용에 비하면 조선의 경우는 상당히 양호했다.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공식적인 직함도 없이 실질적인 조선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한 대원군 석파 이하응은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실시해서, 서양문물과 교류를 사전에 차단한다. 그가 격렬하게 쇄국정책을 시행한 이유를 제공한 에른스트 오페르트 일당의 남연군묘 도굴사건에서 그야말로 절정을 이룬다. 종주국 청나라마저 양이에게 무릎을 꿇은 마당에 소중화를 자처하는 조선 땅에서 파묘하는 사건이 어디 가당키나 한 설정이란 말인가.

 

한편, 일본에서는 그동안 소원했던 조선과 수교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종래 조선과의 무역은 쓰시마 번주를 통한 것이었는데, 국가 대 국가로 자신들이 강제 개항 와중에 배운 그대로 조선에 써먹기 위한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 물론 조선에서는 이미 기존의 부산에 왜관을 통해 교류하고 이는 마당에,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한 일본과 굳이 수교할 생각은 없었다. 문서상의 미비를 이유로 삼아, 일본의 수호 요청을 무시한다.

 

이제 본격적인 미국과의 한판 대결인 신미양요를 앞두고, 굽시니스트 작가는 그동안 풀어온 썰을 복습하는 시간을 갖는다. 숨 가쁘게 진행된 1800년대를 스케치하는 작업이 인상적이었다. 그야말로 천지개벽 같은 일들이 지구가 생긴 이래, 아마 처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시절이 아닌가 싶다. 서구를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은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고, 자신들이 주도하는 세계적 표준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도량형부터 시작해서 언어와 기술에서 세계를 선도한 것이다. 그렇게 개발된 신무기를 바탕으로 식민지 경영에 나섰고, 숱한 전쟁을 통해 저항하는 세력들을 일소했다. 비로소 제국주의 시절이 도래한 것이다.

 

신미양요에 앞서, 유럽의 새로운 강자의 출현을 알린 보불전쟁에 대한 굽시니스트 작가의 소개도 반가웠다.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출발한 프랑스와 동방의 신흥 강국 프로이센의 대결은 어쩌면 피할 수 없었던 시대적 과제였다. 보오전쟁으로 오스트리아의 대독일주의를 분쇄하고, 오스트리아의 간섭을 배제한 가운데 추진한 북독일연방은 남부의 독일어권 4개국마저 아우를 계획이었다. 당연히 유럽의 대국 프랑스에서는 이웃에 강력한 대국이 들어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괴제로 알려진 나폴레옹 3세가 불 보듯 뻔한 전쟁 개시를 주저했다는 말도 있지만, 개전의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1870713일 엠스 전보 사건(비스마르크의 주작질)이 발생한다. 프랑스 대사가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로 엠스에서 휴양 중이던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를 모욕했다는 소식을 들은 프로이센에서는 대 프랑스 개전 강경론이 대두하고, 남부 독일의 4개국마저 독일 편에 서면서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리는 프로파간다가 성공한 것이다. 프랑스의 선전포고로 전쟁은 1870719일 시작되었다.


 


(프로이센군의 파리 포위전에 사용된 크루프 24파운드 후장식 대포의 발사 장면, 1870.9.19-1871.1.28)


프로이센군은 이미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철도를 동원한 신속한 병력 이동으로 개전 후, 지지부진한 프랑스의 군대 동원령을 압도했다. 실제 전투에서도 수만 많았던 프랑스군은 전략과 전술에서 노련한 프로이센 참모부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메츠와 스당 전투에서 막마옹 원수와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이 연전연패하였고, 특히 스당에서 프로이센군에게 포위되어 항복 선언을 했다. 정치공작에는 능했지만, 괴제 나폴레옹 3세는 전쟁에서 큰아버지 같이 눈부신 능력은 보여 주지 못했다. 결국 제정이 붕괴되고, 파리에서는 제3공화국이 들어섰다. 주력군이 부재한 가운데, 프로이센군은 파리를 포위하고 개와 쥐 그리고 동물원의 코끼리까지 잡아 먹어가며 버티던 프랑스는 결국 프로이센군에게 항복한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는 말처럼, 69년 뒤 승리한 적군의 수도 퍼레이드라는 치욕이 반복될 예정이다.

 

전투에서는 프랑스군의 샤스포 소총이 프로이센군의 드라이제 소총의 성능을 능가했지만,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서방의 전쟁에서는 이런 첨단 무기의 혁신이 이어지는데, 당시 조선에서는 여전히 화승총과 홍이포 같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 같은 무기들을 들고 양이와의 전쟁에 나서야했다. 1866년 제너럴 셔먼 호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파견된 미국의 함대가 1871년 신미양요를 일으킨다.



( 1871년 신미양요 당시, 미국 전함에 올라 맥주를 받은 조선 아저씨의 사진이라고 한다. )


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대포들은 미국 전함에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미국 해병대가 강화도에 상륙해서 결사항전에 나선 조선군들을 초전부터 박살냈다. 중과부적이었지만 조선군은 양이 대표선수 미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나름 선전을 펼쳤다. 다수의 지휘관들이 난전 중에 전사했고, 부상당한 병사들도 양이의 포로가 되느니 자결을 택했다. 그러나 미국은 좀 더 대국적인 전략으로 조선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승리를 거두었지만 후속부대와 병참 등의 문제를 고려해서 철군하기에 이른다. 두 번의 양요를 승리라고 착각한 조선은 압도적인 서양의 기술에 대한 근본적이 사고를 수정하지 않은 채 근대화의 결정적 시간들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메이지 유신의 깃발을 올렸지만 여전히 일본의 정국은 어수선했다. 왕정이 복고되었다지만, 에도 막부 250년 동안 누적된 적폐 청산의 길은 요원했다. 우선 단일국가 완성을 위해, 메이지 각료들이 주도한 폐번치현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성공시켜야 했다. 막부 말기, 조슈나 사쓰마 같이 도막에 나섰던 강력한 번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아울러 원활한 계급의 사다리를 만들기 위한 신분 제도의 정비도 필수였다. 기존의 사무라이들을 정점으로 한 계급 제도가 일본 국가 발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메이지 지도자들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그런 하급 사무라이 출신임에도 말이다. 일본 국왕에서 충성하는 신민들을 제조하기 위한 국민 교육의 도입도 시급한 과제였다. 그렇게 양성된 신민들은 훗날 산업의 역군으로, 또 한편으로는 군의 중심이 되어 미래 침략전쟁의 선봉에서 아시아 각국을 누빌 참이었다.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조선의 그것과 너무 비교되는 점이 아니던가.

 

신년 들어 쉴 새 없이 굽시니스트 작가의 시리즈를 달리고 있는 중이다. 달려! 일단 이번 권까지 해서 시중에 나온 책들은 모두 섭렵했다. 다음 권인 <강화도 조약>의 빠른 출간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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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3 10: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달려요 달려 크루프사가 개발한 프로이센의 후장식 대포가 성능좋은 소총을 이김 ! 메이지 유신 그리고 다음편은 강화도 조약 기대 합니다 ^.^

레삭매냐 2021-01-13 10:33   좋아요 3 | URL
아숩게도 굽시니스트 선생의 시리즈
는 9권으로 일단 멈춤이네요...

연초부터 만화만 땡기다 보니 제대로
된 소설을 못 읽겠네요 기래.

그리하야 오늘 새벽부터 <만엔원년의
풋볼> 집어 들었답니다. 빠이팅...

참, 후장식 소총의 작동 원리가 무언가
싶어서 인터넷으로도 검색을 해보았네
요. 조선의 화승총은 선장식, 그야말로
무뎃뽀 정신이었네요.

겨울호랑이 2021-01-13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레삭매냐님의 명당 자리를 살피는 능력에 진심으로 탄복하고 갑니다! 배수임산 수준의 지식 밖에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레삭매냐님의 풍부한 현장 능력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3 13:17   좋아요 3 | URL
오래 전, 역사학도로 현장답사를
가본 썰일 뿐입니다.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닝겡이랍니다.

그냥 그 시절이 그리워지네요...

붕붕툐툐 2021-01-13 16: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주 들고 뿌듯해 하시는 저분.. 왠지 익숙한데, 아무래도 저의 조상님 같습니다!! 저는 저런 흑백 사진이 너무 좋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1-13 17:01   좋아요 2 | URL
저 분이 들고 계신 맥주는 빈 병이었다고
하던데, 그것으로 무얼을 하셨을 지
궁금합니다.

이런 사진이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흑백 갬성!

붕붕툐툐 2021-01-13 17:04   좋아요 1 | URL
뭐라구요? 빈 병이라구욧? 시무룩....

scott 2021-01-13 20:29   좋아요 2 | URL
툐툐님 ㅎㅎ
빈병이라는 말에 ㅋㅋ

소총으로 시작한 댓글이 풍수지리로 가서 맥주까지 ~ㅋ

굽시니스트 다음편은 언제 나오나요?

레삭매냐 2021-01-14 09:28   좋아요 1 | URL
고건 잘 모르겠네요.

저도 지난 달에 처음으로 도서관
에 들렀다가 만난 책이어서 말이죠 :>

mini74 2021-01-14 16: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병제와 병오는 신이 나서. 이렇게 외우던 근대사가 생각나요 ㅎㅎ조선아저씨 저기에 참기름을 담아 팔기 시작 , 이것이 참기름을 맥주나 소주병에 담아파는 기원이 되는데~ 라고 상상해 봅니다ㅎㅎㅎ

레삭매냐 2021-01-14 16:49   좋아요 1 | URL
역사를 배우던 시절에 이렇게 유용한(?)
만화가 있었더라면 그 내용이 더 쏙쏙
들어오지 않았을까요?

주변 배경을 알고 배웠다면 좀 더 깊숙
하게 역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마냥 외우라고만 하니 흥미도 떨
어지고... 뭐 그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참기름 들기름 담기
에 제격이 아니었을까요? ㅋㅋㅋ
 
시간
홋타 요시에 지음, 박현덕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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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로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중고로 사려고 하던 홋타 요시에의 <시간>을 결국 적립금의 유혹에 빠져 지난 주말에 주문했다. 그리고 퇴근해 보니 어제 꽁꽁 언 채로 집 앞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내 손의 온기로 책을 녹여 가며 첫 장을 펼쳤다. 원래는 오에 겐산로 선생의 <만엔원년의 풋볼>을 읽기 시작하는 게 나의 계획이었는데. 어디 계획이 제대로 돌아가던가. 피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1937년 가을의 난징이라는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19371130일부터 해군 문관 천잉디가 쓴 전쟁 일기가 시작된다. 같은 77일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촉발된 중일전쟁의 불길은 상하이와 쑤저우를 거쳐 장난[江南]의 중심이자 중국 제2의 도시라는 난징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반 장제스가 버티고 있는 난징의 상징성 때문에라도 난징을 꼭 점령해야만 했다.

 

이미 돈과 빽이 있는 이들은 일본군이 몰려들기 전에 한커우로 도망갔다. 일본 유학까지 마친 사법부 판사 천씨 집안의 장남인 잉창은 후일을 동생 잉디에게 맡기고 한커우로 튀어 버렸다. 적의 가공할 대공세를 앞두고 지도자들이 튀는 모습은 망국의 징조 같은 게 아니었을까? 형은 동생을 사지에 두고 도망가면서도, 집안의 재산을 지키고 기회를 봐서 투기하라는 조언도 아까지 않는다. 이런 이들이 배신자, 한간이 될 거라고 잉디는 생각했던가.

 

이웃집의 젊은 소좌가 연못을 파내고, 가물치를 잡는 장면을 보면서 잉디는 난징이라는 성 안에 갇힌 자신들의 신세가 그 가물치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잉디는 Naval Company 소속의 문관이라기 보다, 차라리 서정 시인에 가까운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

 

다가오는 조국과 가족의 멸망을 앞둔 이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모양이다. 다섯 살배기 아들 잉우는 빨간 단풍잎이 예쁘다고 아빠에게 말한다. 1870-71년 보불전쟁 당시 프로이센 군에게 포위당한 파리 시민들도 조국의 패전을 앞두고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하지 않던가. 잉디의 아내 모처우는 산달에 접어들었다. 어쩌면 그 사실이 잉디가 제 때 피란에 나서지 못한 결정적 원인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이웃 쑤저우의 이름난 도예가 집안의 영애이자 사촌여동생인 양양도 잉디 가족에 합류한다. 그녀는 쑤저우를 점령한 일본군들의 난폭함을 전한다. 위생부에서 일하는 잉디의 백부도 부지런히 불길한 소식들을 퍼 나른다. 조변석개하는 백부도 한간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잉디는 판단한다.

 

1937년 겨울 난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기에 책을 읽는 내내 불안하기만 했다. 결국 전쟁이 몰고 온 폭풍은 천잉디의 가족의 평안을 산산조각내 버렸다. 난징이 함락되고, 6개월이 지나 일본 정보장교 기리오 중위의 하인이 된 천잉디는 다시 전쟁 일기를 재개한다. 그의 기록은 비극의 재현이다. 자신도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을 뻔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의 주변에는 아내 모처우도, 아들 잉우도 그리고 여동생 양양도 없다.

 

1955년 소설 <시간>이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소설을 쓴 홋타 요시에가 일본 사람이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도 일본에서는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이들이 많은데, 전쟁이 끝난 지 10년 만에 이렇게 그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소설을 발표한 홋타 요시에 작가의 의기에 감탄했다.

 

저자가 공간적 배경으로 삼은 난징은 남방의 중심인 동시에 대전란의 피해를 극심하게 입은 곳이기도 했다. 난징사건이 벌어지기 정확하게 73년 전, 태평천국의 수도였던 천경(난징)을 함락한 청조의 증국번이 이끄는 상군은 태평천국군을 상대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일본군이 난징에 들어왔을 때, 천씨 집안의 충실한 하인이었던 훙위는 노인들에게 들은 태평천국 시절의 비극을 떠올릴 정도였다. 상하이와 쑤저우 전투에서 중국 국민당군의 맹렬한 저항에 직면한 일본군은 국민당 정부의 수도이자 특별시였던 난징을 함락시키면서 그야말로 독기가 오른 상태였다. 주석 장제스는 난징을 포기하고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한커우로 후퇴했다. 기존의 인구에 전란을 피해 난징으로 들어온 피란민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난징은 이렇다 할 시가전도 치르지 않은 채 일본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 뒤, 3주간의 지옥이 벌어졌다.

 

일본군의 난징 공략 초기, 천잉디는 난징이 일본군에게 빼앗기더라도 결국 다시 해방될 거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일본군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부 출신 군인들이 상관들에게 모욕을 받는 일상에 대해서도 저자는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그들이 주창하는 대동아공영권이 얼마나 삿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결국 그들이 원하는 세계정복 욕망은 파멸과 고립이라는 알레고리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홋타 요시에는 적확하게 짚어낸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잃고 상실에 빠진 주인공 천잉디가 살아남아 기리노 중위의 하인 행세를 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예전에 배운 인식론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도 어찌나 명징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결국 인간은 불행과 시련의 끝에서 삶과 존재의 이유를 찾게 된다는 것일까. , 그리고 보니 천잉디는 이십대 시절에 피 끓는 가슴으로 혁명에 투신했던 청년이었다. 그는 장제스가 1927412일 그동안 협력했던 노동자들과 청년들을 숙청한 반동 쿠데타로 혁명에 회의를 느끼고 인도와 구라파를 떠돌았다지. 10년 전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번에는 외세에 의한 그것으로 바뀌었을 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양양이 회복되면 항일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설정도 이해가 된다. 아마 누구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화가 지망생이자 이중 스파이로 활약하는 K의 에피소드도 주목할 만하다. 한간으로 변신한 잉디의 백부처럼, 그 역시 살아남기 위해 적에게 부역하는 건 물론이다. 상황이 이러니 잉디의 부인 모처우가 이런 아수라장 같은 지상 세계를 버리고 자진하겠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였다.

 

홋타 요시에의 <시간>을 읽으면서, 심신이 피로해졌다. 과거사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사과가 담기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소설을 구상할 수 없었으리라.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타의에 의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갈 수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넘어, 구원의 문제에까지 도달한 문학적 성취에 책 읽는 동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홋타 요시에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도 만나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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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2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ott 2021-01-13 1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징에 대한 문장을 읽을떄마다 가슴이 아파요 홋타요시에에 최고작은 고야 4권짜리 강추 합니다. 몽테뉴도 좋았고!

레삭매냐 2021-01-13 10:36   좋아요 1 | URL
와우, 그렇지 않아도 제가 그 책을
노리고 있었는데 바로 추천 날려
주시네요.

다만 고 책이 절판인지라... 어찌해야
하나 싶네요. 그냥 중고서점에서 질
러 버릴까 어쩔까나.

제가 과연 이 책 <고야>를 사면
읽기는 할까요? 질르느냐 마느냐
고것이 문제로다.

난징은... 네 그렇습니다. 홋타 요시에
작가의 글에는 깊이가 있더군요.

scott 2021-01-13 20:50   좋아요 1 | URL
고야가 절판이라뇨!

한길사가 첨 출간때부터 가격을 높이 하더니 ㅜ.ㅜ

고야를 읽으면 에스파냐에 잔혹했던 내전 살육에 현장을 목격하게 될꺼에요.
그고통에 시간 속에 귀가멀어버린 고야를 만나게 되고

몽테뉴는 연대기적인 서술이 아닌 제3자적 시점으로 몽테뉴 삶을 파고 들다가 주변 인물들에 소소한 에피소드까지 이책 읽고 나면 프랑스 역사 정복하고 싶어져요 ㅋㅋ

레삭매냐 2021-01-14 09:29   좋아요 1 | URL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중고로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덤으로 몽테뉴까지 자극해 주시는 시츄-

그나저나 갠춘한 책들은 왜 몽조리
절판되는 겐지. 하긴 가격이 쎄긴 하더
라구요. 네 권 해서 정가 십만원 빵!

scott 2021-01-14 14:21   좋아요 1 | URL
4권에 정가 10만원이면 알라딘에서 어제 중고로 나온다고 해도 60퍼센트 이상 값을 매길것 같네요.
도서관에서 빌려보시는게 좋을듯 ㅎㅎ

레삭매냐 2021-01-14 14:49   좋아요 1 | URL
램프의 요정 점점 비싸져요, 나빠요 -

그리하야 오늘 바로 도서관에 빌리러
달려갑니다. 근데 구간이라고 하네요 에잉~
 
읽는 인간 -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50년 독서와 인생
오에 겐자부로 지음, 정수윤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원래 새해 1월에는 로힌턴 미스트리의 책 두 권을 읽으려고 했었다. 그래서 실제로 책도 조금 읽었다 아주 호기롭게. 그러나 바로 장애를 만나고 말았으니, 그 작가의 이름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였다. 아주 오래 전, 노대가의 <애너벨 리>인가하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엔원년의 풋볼>을 사두었다. 오에 겐자부로(앞으로 나도 누구처럼 그를 겐산로라고 부르겠다, 내 마음대로다)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지 27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노대가를 만나게 되었다.

 

지난 주말에 영하의 맹추위를 뚫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간 나는 겐산로 선생의 책 두 권을 빌렸다. 하나는 바로 오늘 다 읽은 <읽는 인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익사>였다. 이렇게 새해 첫 달에 내가 읽게 될 작가는 오에 겐산로 선생으로 당첨 확정!

 

겐산로 선생은 막부 시절, 도사 번이 있던 시고쿠 시골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그리고 십대 시절에 만난 책의 역자인 도쿄대 불문과 교수님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정말로 도쿄대 불문과에 진학했다. 재수도 하셨다고 했던가. 마음 먹으면 그대로 되는 건가? 이웃 최고의 학부 출신의 엘리트 지식인인 겐산로 선생은 마냥 겸손하다. 반세기도 넘게 글을 써온 양반이지만, 이렇게 겸손할 수가 있나 그래. 고희를 넘기셔서도 문학에 대한 배움을 자세를 지니고 계신 품새나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를 처음 만나 그의 저작에 사인을 요청하는 모습이란. 그의 인간됨이 나는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읽기 선배로서 그에 대한 호감은 읽는 만큼 성장한다는 선언 앞에서 바로 무장해제되어 버렸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읽고 쓰기의 수도를 해온 겐산로 선생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얼치기 독서인으로 강호의 고수이자 대가의 풍모를 지닌 이가 조용한 목소리로 조근조근하게 풀어 나가는 이야기에 그만 매료되었다.

 

일본이 막부 말기부터 동도서기론에 입각해서 서구의 문물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식의 습득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일본 막부의 위정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존왕양이운동을 하면서도 서구 문물의 도입을 위해 번역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할 정도였다.

 

그 덕분일까? 겐산로 선생 역시 선배 역자들이 번역한 다양한 서적들을 섭렵한 모양이다. 그리고 번역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자세를 취한다. 세상에 완벽한 번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오죽하면 번역이 아닌 반역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던가. 어쩌면 선생의 말대로 가장 좋은 책읽기는 더듬거리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긴 해도 원서를 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선생은 실제로 평생의 친구였던 이타미 주조라는 친구에게 불어 번역을 배우기도 했다지 않은가. 지식욕이 왕성할 시절에 그런 친구를 만난 것도 복이 아닐까 싶다. 나중에 선생은 그의 여동생과 결혼했다고 한다.

 

문체에 대해서도 지면의 할애를 아끼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서사 구조에 집착하는 독서인이라 그런지, 문체의 중요성에 대해 대가만큼 잘 알지도 못한다. 선생이 자신의 작품에도 많이 인용했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른다. 아직도 시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아마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 마음의 준비가 되면 시를 받아들일 지도 모르겠다.

 

겐산로 선생의 작품 활동에 많은 영향을 미친 요소 중의 하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장남 히카리의 존재였다. 이십대의 나이에 두뇌에 장애를 가진 자식을 키우게 된 상황이 어떤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삶이 고난을 통한 연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이라면, 아마 선생만한 고난을 체험한 사람이 또 있나 싶다. 이런 인생에서의 시련이야말로 선생을 위대한 작가로 거듭나게 해준 그런 계기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선생이 제시해준 독서법도 새겨들을 만하다. 결국 모든 독서는 재독이라는 퀘스트로 귀결된다는 것일까. 첫 독서가 막무가내라면, 재독(rereading)은 뚜렷한 목적이 있는 독서라는 설명이 폐부를 찔러온다. 그렇지, 내가 처음에 읽을 적에는 그렇게 거의 사투에 가까운 독서경험이었던 도끼 선생의 <죄와 벌>이 작년에 다시 만났을 적에는 그야말로 경쾌한 리듬으로 읽지 않았던가. 그것도 수년 동안 미루어 오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완주하고 난 뒤라 더 상쾌하게 만났던 것 같다. 아직도 읽지 못하고 있는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디바인 코미디>에 대한 긴 설명을 읽던 얼치기 독서인에게 언젠가는 <신곡>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이 엄습해 온다.

 

마지막 유대계 지식인이라는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와의 우정 그리고 연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후반도 인상적이었다. 지식인들의 교류는 그러한 것이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쇼팽 녹턴을 연주한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만남을 주선한 사이드 교수의 재치도 인상적이었다. 역시 이 정도되는 인사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되어야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남은 20일 동안 몇 권의 겐산로 선생의 책을 읽게 될 진 모르겠지만, 한 번 부지런히 읽어볼란다. 선생의 삶과 사유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이제 읽기 모드로 돌입한다. 출발은 물론 <만엔원년의 풋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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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11 1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새해 읽는인간으로 ! 오에 센세 만쉐!

레삭매냐 2021-01-12 11:50   좋아요 1 | URL
만엔원년의 풋볼부터 읽어야 하는데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서리...

붕붕툐툐 2021-01-12 0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저도 읽고 싶은 책으로 담아놓은 책이군요~ 매냐님 따라 저도 곧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1-12 11:51   좋아요 2 | URL
일단 오에 센세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대표작부터 만나보겠습니다.

han22598 2021-01-12 0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드뎌.시작하셨군요. 기대가 됩니다. 레삭매냐님은 어떻게 읽어나가실지.

레삭매냐 2021-01-12 14:02   좋아요 2 | URL
일단 산뜻하게 출발은 했습니다...

읽은 책들이 많아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숙제하듯이 하게 될 지는
아직은 모르겠네요.

단발머리 2021-01-12 14: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오래 기억나는 책이라 레삭매냐님 리뷰 읽는 것도 즐겁네요.
레삭매냐님의 존경과 겸손이 리뷰 곳곳에 묻어납니다. ㅎㅎㅎㅎㅎ 오에 겐자부로가 70세에 이탈리아어를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 좋더라구요. 신곡을 읽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이탈리아어를 배울 생각이 없지만 말입니다.

레삭매냐 2021-01-12 16:02   좋아요 2 | URL
오 그러셨군요... 그 연세에 대단하신
도전입니다.

예전에 로마에 갔을 적에 사촌형님이
신부님이시라, 기숙하는 숙소에 점심
얻어 먹으러 갔었는데, 수도원장님이
이태리말 못하는 사람이 ‘닝겡‘이냐
라고 하셨대요.

물론 인종차별 그런 건 아니었구요,
그만큼 자기네 나라 언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더라나 뭐라나....

추가로 수도원에서 요리하시던 어느
아주머니에게도 사촌 동생이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제
턱을 손으로 콱 잡으시면서 둘이 턱
이 닮았네라고 하셨었어요...

scott 2021-02-10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원래도 읽는 인간이셨지만
짠돌이 알라딘이 이달의 당선작으로 ㅋㅋㅋ 추카~추카~
오에 센세 만쉐!ㅋㅋ

설날 연휴 평안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미국사 산책 3 - 남북전쟁과 제국의 탄생 미국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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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강준만 선생의 책을 다 읽게 될 줄이야. 그것도 자그마치 미국사에 대해서! 물론 이 책을 읽게 된 연유는 다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덕분이다. 항상 그렇지 않은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든 독서란. 굽시니스트 작가가 소개한 미국 남북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서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너튜브를 참조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찾아 보았는데, 개설서로 강준만 선생의 책이 제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에 <본격 한중일 세계사>에서 상당한 비준으로 다룬 태평천국에 대해서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신의 아들 홍수전과 태평천국>이란 책이 있던데 가격과 분량에 있어 후덜덜이라 일단 보류 중이다.

 

미국은 건국된 지 채 1세기도 지나지 않아 남북의 첨예한 갈등으로 나라가 두 쪽이 났다. 결정적 차이는 역시나 남부 대농장에서 실시 중인 노예제도였다. 노동집약적 면화산업을 위해 남부에서는 다수의 일손이 필요했고, 그 결과 남북전쟁이 발발할 당시 남부 900만 인구 중에 350만 명이 흑인 노예일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남부와 달리 산업화가 진행된 북부는 인구도 배나 더 많고(2,200) 생산력도 월등했다. 북부의 극렬한 노예 폐지론자들의 활약에 대해서는 강준만의 책을 통해 많이 배웠다. 특히 존 브라운의 활동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새로 연방에 가입하는 주들에 노예제를 허용하냐 마느냐에 대한 격론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남부에서는 북부의 노예폐지론을 자신들의 주권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 들였던 모양이다. 자신들의 경제적 토대를 허무는 노예제 폐지에 절대 공감할 수 없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필두로 한 7개주는 186011월 공화당 출신 에이브러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연방 탈퇴를 결의한다. 켄터키 주 호젠빌 출신의 링컨은 사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만 해도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자수성가한 천재이자 박식했던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하나의 미국, 연방을 지키기 위해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링컨은 남부 제주들이 연방에 존속하기만 한다면 노예제에 대해서는 눈감아 줄 의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연방 유지라는 대의 앞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버린 노예제 폐지는 상대를 압박하기 위한 정략적 카드였다. 북부의 유화적인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1861412일 제퍼슨 데이비스를 수반으로 세운 남부연합군이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연방 요새인 섬터 요새를 공격하는 것으로 5년 내전의 막이 올랐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링컨의 북군은 압도적인 병력과 북부의 생산력의 빠른 시일 내에 전쟁을 종결시킨다는 낙관론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첫 번째 불런 전투에서 남군에게 대한 패배를 필두로 해서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에서 동부전선의 포토맥군이 연패를 당하면서 전쟁을 장기전으로 접에 들게 됐다. 물량만 앞세운 북군에 대항해서, 자신들의 재산(노예!)과 영토 그리고 명예를 지킨다는 결의로 무장한 남군 부대의 사기는 북군의 그것을 능가했다. 게다가 기존 연방군의 주축을 이루던 남부 출신 고위 지휘관들이 연방군에서 물러나 남군에 가담하면서 전황의 추는 남북의 균형를 이루게 된다.

 

한편 내전 초기, 노예주였던 메릴랜드, 델라웨어, 켄터키, 미주리를 연방이 정치 군사적 압력으로 제압했던 것도 남부에게는 타격이었다. 동부전선에서 계속해서 밀리던 북군은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된다. 그리고 윌리엄 테컴세 셔먼이 지휘하는 테네시군이 아나콘다 작전으로 미시시피 강의 수운을 제압하고 동쪽으로 진격을 개시하면서 전황은 블루군(북군의 제복 색깔)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역시 전쟁의 게임의 체인저는 뭐니뭐니해도 186311일 링컨의 전격적인 노예해방령이었다. 이 선언으로 중립 상태에서 미국내전에 개입을 노리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의 개입을 원천 차단하고, 북군은 노예제 존속을 위해 싸우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남부연합을 제압하면서 도덕적 차원에서도 우위를 차지하게 됐다. 병력과 군수물자 생산 그리고 도덕적 명분까지 모두 북군에게 빼앗긴 남군에게 셔먼이 이끄는 북군이 남부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애틀란타를 함락시키면서 결정적인 타격을 가한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도 등장하는 불타는 애틀란타 시가지의 모습이 예의 재현이라고 했던가. 전 시가지의 95%를 전소시킨 초토화작전으로 셔먼 부대는 남부의 전쟁 의지를 꺾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대서양의 서배너까지 진격하면서 남부를 휩쓸었다. 그런 이유로 지금까지도 남부 사람들이 셔먼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하니 셔먼의 청야전술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1866년 조선 대동강에 상륙해서 사단을 일으킨 제너럴 셔먼 호가 바로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결국 그렇게 5년을 끈 내전은 남부군의 항복으로 종식되었고, 애틀란타 공략으로 재선에 성공한 링컨은 독재자의 이미지를 벗고 연방의 영웅이자 역대 최고의 대통령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암살된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미국에서는 링컨에 대한 책과 학술 서적 그리고 숱한 연구들이 행해지고 있다고 하니, 위인 반열에 오를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건국 89년 만에 진정한 의미에서 통일을 이루게 된 연방국가 미국은 비로소 제국으로 팽창할 준비를 끝냈다. 동부의 7개 식민주에서 출발한 미국은 팽창주의를 숙명으로 가지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건국부터 독립전쟁으로 시작한 이 나라는 계속되는 전쟁으로 서방으로 진출했다. 셔먼은 남북전쟁 뒤에는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인디언 전쟁을 수행했는데, 서부 개척은 철도 부설을 앞세운 투기 세력의 제국화의 과정이 다름이 아니었다. 철도 재벌 코넬리어스 밴더빌트와 자본가 대니얼 드루로 대변되는 산업자본가들이 전쟁 특수를 타고 자본주의 제국 건설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남북전쟁 전까지만 해도, 3류 산업국가였던 미국은 특유의 근면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천박한 물질주의에 힘입어 영국과 프랑스 등 종래의 산업국가들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산업국가로 거듭나게 된다. 전신 전화 그리고 백열등 같은 첨단 신기술의 발명과 도입은 세계 패권국가 미국의 조연이었다. 대륙횡단 철도를 부설하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간 것도 미국이 조성한 세계제국의 어두운 그늘이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전쟁영웅이었던 그랜트 행정부 아래서, 각종 특혜과 이권을 챙긴 기업가들은 건국의 선조들이 꿈꾸던 모두가 행복한 나라 미국이 아닌 소수의 그들만 행복한 나라로 변모시켰다. 숱한 탈법과 위법을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은 자본가들의 천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저자는 냉정하게 분석한다.

 

그렇게 미국사 산책을 하면서도, 강준만 선생은 조선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는다. 결국 미국사를 통해 연계된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본다는 의미일까.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한 조선은, 미국과도 역시 조약을 맺게 된다. 그나마 세계열강 중에 낫다고 판단한 조선 조정은 미국과의 선린관계 유지에 힘을 쓰지만 미국의 주된 관심은 일본 개국이었고, 조선은 관심 밖이었다. 고종은 이이제이 전략으로 미국이 다른 열강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지만, 조선이 망할 때까지 미국은 딱히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미국사 산책>을 읽으면서 느낀 게, 많은 너튜브 컨텐츠들이 어쩌면 강준만 선생의 책을 참고로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유사한 정보들이 많더라. 유사상품을 보고 나면, 역시 오리지널이구나 싶다는 게 바로 이런 감정이려나



미국 의회 의사당 담벼락을 기어 오르는 트럼피들의 모습. 추락하는 미국식 의회 민주주의 민낯이 그대로 라이브로 전세계에 중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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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21-01-07 10: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언젠가는 강준만 교수와 산책을 하게 되더라구요^^
저도 한국 근대사산책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대단하세요~전 요즘 연작읽기가 안되네요ㅠ

레삭매냐 2021-01-07 10:54   좋아요 1 | URL
제가 어찌 17권짜리 연작에 도전
하겠습니까 그래.

굽시니스트 선생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읽다가 참고로 만났답니다.

연작은 넘사벽이라 잠시 미루겠습니다 :>

유부만두 2021-01-07 11: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의적절한 독서에요!

레삭매냐 2021-01-07 11:14   좋아요 2 | URL
열혈 트럼피들의 미의사당
난입 사건은 정말 쵝오!~였습니다.

외신에서는 rioter 라고 표현하네요.

미국식 민주주의의 후진성을 만방
에 생중계로 알린 쾌거가 아닐 수
없네요. 세상에나...

2021-01-07 13: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1-07 14:22   좋아요 2 | URL
아주 다양한 연구 자료까지 섭렵하셔서
미국사에 대한 이야기들을 우리의 그것
에 접목하시려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
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1-07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만, <미국사 산책>이 분량 많은 시리즈물로 알고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빠른 시일 내에 완독하신 레삭매냐님이라면 금방 읽으실 것 같네요. 즐거운 독서 되세요!^^:)

레삭매냐 2021-01-07 14:23   좋아요 2 | URL
으아 총 17권로 완결되었더라구요 ~

제가 완독에 도전하는 것으 아니고요,
달랑 3권만 읽는 것으로 일단은.

주변의 압박으로 도전해야 하나요 ㅋㅋ

페크pek0501 2021-01-08 17: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선생의 책을 저도 몇 권 가지고 있지요. 글이 술술 읽히는 장점이 있죠. 재미도 있고요.
이 책은 17권까지 있더군요. 맞나요?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저술이라니 감탄스럽네요. 지금 이 시간에도 강 선생은 자판을 두드리고 있을 것만 같아요.
미국사 산책, 제목이 좋네요. 왠지 이 책을 읽으면 세계가 다 얽혀 있어서 세계사를 공부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좋은 정보 얻어갑니다.

레삭매냐 2021-01-09 08:10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언제고 17권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당장
읽어야 하는 책들이 너무 많으니...

붕붕툐툐 2021-01-13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미국사 산책 13권까지 읽었다고 자랑질하고 가야지~하며 신났는데... 내용이 몇 개밖에 생각이 안 나서 자랑 못하겠당..ㅠㅠ

레삭매냐 2021-01-13 17:00   좋아요 0 | URL
대단하십니다. 저는 꼴랑 한 권
읽었는 걸요 ㅋㅋㅋ

네 권 더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