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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 모든 것을 파멸시킨 2차 세계대전 최대의 전투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오키 다케시 지음, 박삼헌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1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03/pimg_7234051032827952.jpg)
밀덕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세계의 다양한 전쟁사에 관심이 많다. 그건 아마도 오래전, 한국일보사에 나온 타임라이프 시리즈 WWII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되돌아보면, 권당 5,000원씩 하던 타임라이프 2차세계대전사를 꾸준하게 수집하던 시절도 있었다. 어려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단가의 책이라 더 로망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지금도 가끔 헌책방에서 그 시리즈를 만나면 염통이 쫄깃해진다.
그중에서도 내가 보유하지 못한 독소전과 두 번째 세계대전의 분수령이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대한 시리즈는 아예 구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시절부터 전쟁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지 않았나 추론해 본다.
얼마 전 만난 오에 겐자부로 선생의 <읽는 인간>을 통해 일본의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에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 AK커뮤니케이션 출판사에서 <독소전쟁>이 나왔다는 소식에 환호작약했다. 냉전 시대에 권위 있는 전사 전문가 행세를 하며 역사를 왜곡해온 파울 카렐의 실체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알게 된 것도 오키 다케시 선생의 <독소전쟁>을 읽으면서 알게 된 큰 수확이었다.
사실 그동안 거의 홀로 유럽 대륙에서 히틀러의 무적의 나치군과 싸운 공산주의 소련의 역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대세였다. 한때 유럽 대륙을 제패할 것 같았던 독일 전쟁기계에 제동을 걸었던 주인공은 미영연합군 주도의 제2전선이 아니라,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소련군이었다. 오키 다케시 저자는 구소련의 붕괴 후, 서방 세계에 알려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독소전쟁의 실체규명에 나선다.
히틀러의 독일군과 스탈린의 소련군이 맞붙었던 독소전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통상전쟁과 전혀 달랐다. 서로 공존할 수 없었던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상극의 이데올로기가 맞붙은 세계관 전쟁이었다. 동시에 총통 히틀러는 동방의 소련을 제압하고, 독일 민족의 영원한 번영을 위한 생존의 공간확보(레벤스라움)라는 차원의 수탈 전쟁이기도 했다. 독일군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1941년과 1942년을 지나면서 통상전쟁과 세계과 전쟁 그리고 수탈 전쟁이라는 삼각축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상대에 대한 철저한 전멸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한편, 폴란드와 프랑스에서 기대이상의 블리츠크리크로 엄청난 전과를 올린 독일국방군은 동방의 소련전선에서도 전쟁의 초반에는 비슷한 기대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독재자 스탈린은 1937년 군부를 상대로 엄청난 숙청을 진행하면서 훗날 독소전쟁에서 병사들을 지휘할 장교들을 대거 상실했다. 독소전에 앞서 스탈린은 독일이 침공할 거라는 많은 양질의 정보들을 얻었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들을 애써 무시했다. 그 결과, 독일 전쟁기계를 상대로 엄청난 패배를 강제당했다.
총통 히틀러는 뚜렷한 전쟁 목표 없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패망으로 몰고 갈 독소전에 나섰다. 프랑스 공략에 이어 서방의 마지막 저항세력이었던 영국 제압에 나섰지만, 수세기 동안 대양의 패자였던 영국 해군에 독일 해군은 상대가 되지 않았으며, 항공기를 동원한 영국 본토 공방전에서도 결국 실패했다. 영국의 고집쟁이 총리 처칠은 히틀러를 상대로 항복도, 강화도 하지 않은 채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결사항전에 나선다. 바로 그 시점에서 히틀러는 동방에 웅거한 불구대천의 대적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정벌에 나선다.
독소전 개전 초기부터 독일군의 전략 목표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닌그라드 정복을 위한 북부집단군, 적도 모스크바를 제압하기 위한 중부집단군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얻기 위한 남부집단군으로 나뉘어 독일국방군은 폭풍 같이 러시아의 대평원을 질주했다. 문제는 독일 총사령부에서 소련군의 저항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이유들이 제시되지만, 침략자 독일군은 우선 스탈린 체제 아래 불만을 품고 있던 소련 시스템에 반대하는 이들의 포섭하는데 실패했다. 서부 우크라이나에서는 기존의 공산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이들이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군 포로에 대한 가혹한 처우나 공산당 정치위원들을 포로로 잡지 말고 즉시 처형하라는 총통의 명령에, 독일군에게 항복하면 결국 죽게 된다면 사실을 알게 된 소련군의 격렬한 저항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파시스트 독일군의 가공한 침략을 맞이한 소련은 기존 체제가 가지고 있던 내부의 모순들을 내셔널리즘과 결합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극복해냈다. 129년 전 나폴레옹이 이끄는 40만 그랑 아미를 상대로 벌였던 조국전쟁을 모델로 삼아, 이번에는 대조국전쟁이라는 신화 창조와 프로파간다에 나섰다. 한정적 자원과 병력으로 동방원정에 나선 독일군과 달리, 소련군은 개전 초기 스몰렌스크와 키예프 전투에서 몇 개의 집단군이 포위 섬멸되어도 곧바로 새로운 사단들을 창조해냈다. 전통적 전략인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번다는 방식이 이번에도 유효했다. 결국 독일군의 진격은 정치 사회 경제의 중심지인 모스크바 공방전으로 돈좌되었다. 사상 유례 없는 혹한이 변변한 방한 장비를 갖추지 못한 독일군을 덮쳤고, 주코프 장군이 주도하는 소련군의 반격이 성공하면서 독일국방군이 구가하던 궁극의 승리는 좌절되었다.
그동안 주류를 이루던 독일국방군이 아인자츠그루펜 학살부대의 활동과는 무관하다는 통설 역시 오키 다케시 선생은 철저하게 격파한다. 모든 과오를 죽은 히틀러에게 독박 씌우려던 독일 장성들의 회고록이나 파울 카렐로 대변되는 역사 왜곡과 달리 전장에서 독일국방군이 총통이 계획한 전멸전에 적극 가담했다는 비밀문서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만들어진 신화가 붕괴됐다. 아울러 화력 운용과 훈련을 통해 질적으로 우수한 독일국방군이 야만적 인해전술로 무장한 소련군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 역시 나치가 고안한 프로파간다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현지 절대사수로 소련군의 반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 총통은 나머지 전쟁의 국면에서 불필요한 사수 명령을 남발하면서 결국 자신의 파국을 초래하는 하나의 원인을 스스로 제공하기도 했다. 독소전쟁의 두 번째 해에 분수령이었던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과정에서도 적도 모스크바 대신 보다 손쉬운 먹잇감으로 생각한 남부의 그로즈니와 마이코프의 석유에 눈을 돌린 히틀러는 간단하게 제압하는 것으로도 끝낼 수 있었던 스탈린그라드 공략에 집착하면서 결국 결정적 패착을 초래했다. 소련군은 남부집단군의 허약한 고리였던 이탈리아-헝가리-루마니아 추축군이 맡고 있던 전선을 붕괴시키고 독일 최정예 6군을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기회가 있었지만, 히틀러가 집착한 현지 사수 명령과 포위된 6군에게 항공 병참 공급이 가능하다는 판단 착오로 결국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대장의 6군은 괴멸되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소련군의 역공에 독일군은 궤멸에 가까운 붕괴를 목전에 둔 상태였다. 이 때 등장한 총통의 소방수 에리히 폰 만슈타인이 잔존부대들을 규합해서 승기를 타고 파도처럼 밀어붙이는 소련군에게 하르코프에서 제대로 매운맛을 보여주었다. 이때 돌출된 쿠르스크 지역을 두고 독일군은 동부전선에서 최후의 대공세에 나선다. 쿠르스크 전역에서 독일군의 공세가 꺾이면서, 독일의 패배는 베를린까지 이어지게 된다.
오키 다케시 작가의 <독소전쟁>은 짧기 때문에 전술적 차원에서의 재미와 국지전에 대한 디테일은 확실히 떨어지지만, 대국적 차원과 새로운 시점에서 독소전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아주 유용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 학살과 각종 전쟁범죄로부터 독일국방군은 무관했다는 종래의 가짜 선전을 뒤엎는 전복적인 시도부터 시작해서, 뚜렷하지 못한 독일의 전쟁 목적의 부재 혹은 혼선이 빚은 문제점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독일인들이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결국 총통과 함께 운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인상적이었다.
적당한 분량에, 핵심을 찌르는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에 그만 반해 버렸다. 다음번에는 <메이지 유신>을 읽을 예정이다. 다만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관계로, 누군가 신청한 희망도서의 순서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우리 동네에 나와 독서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작년 말에, 일본에서 <태평천국>을 다룬 이와나미 신서가 나왔다고 하던데, 그 책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