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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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작 <나를 보내지 마>를 읽고 단박에 팬이 되어 버렸다. 그 다음 수순은 그의 책들을 사냥하는 것이었다. 국내에 소개된 모든 책들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읽었다. 사실 그 책은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마 읽다가 포기한 것 같다. 전작 읽기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그 책을 읽어야겠다. 그리고 이제 대가의 반열에 오른 그의 신작을 애타게 기다렸다. 2021년 봄, 신작 <클라라와 태양>이 출간됐고 국내 번역도 아주 빠르게 진행되어 3월의 끝자락에 만나볼 수가 있었다. 그 작가는 바로 가즈오 이시구로다.

 

본격적으로 소설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삼천포로 빠져 보자. 왜 작가는 전통적 서사나 역사물 대신 다시 SF 장르로 신호탄을 쏘아 올렸을까. 출간에 앞서 인별그램을 통해 저자의 짧은 책 소개를 만나볼 수가 있었다.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사실 그걸 보고 나서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독자 친화적 마케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동영상에서 그는 자신의 전작 <나를 보내지 마><남아 있는 나날>의 어느 중간점이 바로 <클라라와 태양>이라고 했던가. 부랴부랴 너튜브에서 <나를 보내지 마> 영화 소개를 다시 찾아보았다. 오래 전에 본 소설과 영화인지라 기억의 소환이 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게 우리 인간이 아니던가. 경험하고 잊고 또 다시 찾아보는 무한반복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이시구로 선생은 그렇게 나에게 화두를 던져 주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책을 받은 순간, 만사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고 싶었다. 생각보다 진도가 쑥쑥 나갔다. 오랜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고나 할까. 6부로 구성된 <클라라와 태양>에서 화자는 1인칭 시점의 에이에프, 가상의 친구(Artificial Friend) 클라라다. 훗날 클라라의 주인이 되는 조시의 표현에 따르자면, 프랑스풍의 얼굴이라고 했던가. 인공지능을 탑재한 에이에프의 목적은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한 그런 존재다. 기존의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닌, 스스로 사유하고 배워 주인님, 마스터의 기분에 들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창조되었다. 다년간의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알레고리를 클라라는 상점 쇼윈도를 통해 외부 세계를 관찰하면서 배운다. 상점의 매니저가 그런 클라라의 교육에 도움을 준다.

 

참 우리의 에이에프들은 태양으로부터 자양분을 얻는다. 그러니 태양이 많이 드는 곳을 선점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거대한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인 중의 하나인 지대의 다른 표현이라고나 할까. 다른 에이에프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클라라지만, 역시 3세대 신제품에 시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휴대폰처럼 아무리 최신 기능으로 무장하고 시장에 나오지만, 더 좋은 기계가 등장하면 곧바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그런 숙명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인간과 인간에 가까운 감정을 지닌 안드로이드의 종속 관계라고 하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나의 감정은 슬프다.

 

심지어 새로 나온 B3 에이에프들은 기존의 2세대 에이에프들과 거리를 두려고까지 한다. 뻔히 보이는 차별적 계급화의 과정이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의 그것을 냉소적으로 다루는 듯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같은 재료로 지어진 아파트 사이에 임대냐 자가냐로 보이지 않는 선, 때로는 보이는 선으로 구분 짓고 교류를 차단하는 세태가 떠올랐다.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차별의 일상화 가운데 자란 이들이 공동체의 선을 위한 작은 희생이나 불편함을 감수하리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클라라는 14세 소녀 병약한 소녀 조시에게 구매되어 상점에서 조시네 집으로 위치 이동한다. 그러고 보니 클라라는 같은 상점에 있다가 먼저 팔린 로사에 비해서도 월등한 교감과 학습 능력을 보여 주었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는 신상인 B3 제품을 원했지만, 조시의 주장으로 클라라를 구매했다. 어쩌면 매니저의 특별 할인가정책이 구매를 촉진했는지도 모르겠다. 소비주의에 매몰된 우리는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태생적으로 외로운 존재인 우리 인간이 울고 싸우고 또 상처받는 전통적 방식의 사회적 관계 대신 불필요한 감정의 소모를 대신하기 위해 에이에프를 개발해서 대체한다는 저자의 설정은 한편으로는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서글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끊임없는 감정의 소모 그리고 자기발전적 회생을 통해 우리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게 아니었던가.

 

그 뒤에 이어지는 조시네 집에서의 생활은 마치 시한폭탄처럼 다가온다. 클라라가 점점 더 조시와 크리시 가족의 일원처럼 진화되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보통 사람들도 잡아낼 수 없는 그런 미묘한 감정선들을 귀신 같이 잡아내는 클라라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게 바로 거장의 실력이라는 걸까. 어느덧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클라라는 병에 시달리는 클라라에게 특별한 도움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자신의 주인이자 친구 조시를 돕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클라라와 태양>은 성장소설의 단면도 함께 지니고 있다. 조시의 이웃이자 남사친 릭은 병마에 시달리는 엄마 헬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할 태세다. 하지만 헬렌의 생각은 달랐다. 재능이 있는 자신의 아들 릭이 애틀러스 브루킹스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는 비밀 병기도 있고, 가능하면 클라라가 릭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싶다고 말한다. 하긴, 비용이 드는 에이에프는 가지고 싶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경제적 토대가 없는 헬렌으로서는 사랑하는 아들 릭에게 그만을 위한 에이에프를 사줄 여력이 없었다. 클라라는 릭의 성공을 위해 자발적 외로움을 자처하는 헬렌의 모정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아직 그런 감정을 배우지 못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어떤 감정들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게 아니라, 사회적 추체험들을 통해 배우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인간이 되어간다.

 

나도 너무 인간처럼 사유하고 계속해서 학습하는 클라라 같은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면 불편해 할까? 아마 내 특성상 그럴 것 같다. 나라는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깨달음의 과정을 <클라라와 태양>에서 나는 마주할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이라는 전통적 서사가 전면에 등장하는 게 아닌가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유전자편집을 통한 향상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겠다는 부모들의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보다 더 나은 기회를 주겠다는 그네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그 결과로 조시나 샐 같은 파국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사랑하는 존재를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한다는 내러티브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지만, 너무 늘어질 것 같다. 내가 하는 일들이 언제라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을 모를 정도로 청맹과니는 아니지만.

 

<클라라와 태양>을 읽으면서 만난 다양한 감정들을 글로 표현해 내기란 나 같이 우매한 독자에게는 지난한 임무일 것이다. 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설의 곳곳에서 대면한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지난 이틀 동안 에이에프 클라라에 대입한 나의 감정은 슬픔이었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야적장 시퀀스에서는 왜 자꾸만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생명이 소진되어 가던 레플리컨트 로이 배티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르던지...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 선생이 SF 장르를 빌어 우리 현대인에게 보내는 이 비가(悲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우리 모두 외롭지 말자, 책과 서사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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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3-30 15: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양탄자가 매냐님 댁 배송은 총알로 보내줬네요. 예약 주문했는데 아직도 못받은 1人 ㅎㅎ

레삭매냐 2021-03-30 15:16   좋아요 2 | URL
이건 뭐 거의... 생쌀 씹어 먹듯이
그렇게 우적우적 읽었네요.

영화로도 만들어진 예정이라고 하던데,
과연 어떤 연출이 될 지 궁금한 장면들
이 몇몇 있더군요. 이 참에 이시구로
선생이 아예 연출을 하는 건 어떠실지.

scott 2021-03-30 15:27   좋아요 3 | URL
매냐님 엔딩 요정은 블레이드 러너 ㅋㅋㅋ

레삭매냐 2021-03-30 15:46   좋아요 2 | URL
엔딩 요정, 레알 굿~입니다.

미미 2021-03-30 17:06   좋아요 2 | URL
생쌀ㅋㅋㅋㅋㅋ인정인정입니다! 정말 그정도로 빨리 받고 바로 읽으셨네요!!마지막 문장도 너무 좋아요!

새파랑 2021-03-30 15: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도착한다고 해서(이미 도착~!) 일단 ‘좋아요‘만 하고 사진만 보고, 리뷰는 다음에 읽겠습니다^^
(🌟다섯개라니~!!)

레삭매냐 2021-03-30 15:47   좋아요 3 | URL
일빠로 리뷰를 날리고 싶은 욕심에
읽기도 쓰기도 휘리릭이었습니다.

차분하게 재독을...

2021-03-30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03-30 15: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최대한 스포는 제외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원더북 2021-03-30 16: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만 중도에 읽다가 말고 나머지는 다 읽었어요 ㅎㅎ ‘클라라와 태양’ 먼저 읽으셔서 부럽습니다^^ 저도 얼릉 읽어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3-30 17:49   좋아요 3 | URL
와우 저랑 딱 동지시네요.
제가 이시구로 선생 전작을 그 책
때문에 못하고 있네요 ㅠㅠ

<클라라와 태양>은 정말 찐~입니다.

mini74 2021-03-30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헉. 저도 읽고나서 로이가 생각났어요. 너무나 인간적인 로이. 죽음마저 누구보다 멋지죠 ㅠ

레삭매냐 2021-03-30 20:37   좋아요 1 | URL
전작 <네버 렛 미 고> 영화판과 블레이드 러너
스필버그의 <에이아이> 등등 기존의 SF 영화
들을 끊임 없이 소환하더군요.

stella.K 2021-03-30 18: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시다니. 대단하심다!
저는 노벨문학상 알레르기가 있어
읽어도 이담에 혹시 중고 나오면 혹시 생각하고 있습니다.ㅠ

레삭매냐 2021-03-30 20:38   좋아요 1 | URL
이건 도저히 안 읽고 배길 재간
이 없었습니다.

저도 비슷한 알레르기 증상을
안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정도
의 장벽이 없어서 수월하게 만
날 수가 있었습니다.

psyche 2021-03-31 1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읽는다는 저의 결심을 깨고 싶게 만드는 리뷰네요. 아 갈등된다.

레삭매냐 2021-03-31 11:50   좋아요 0 | URL
저 같은 책중독 리뷰쟁이에게 더할 수
없는 상찬이십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1-04-12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술술 잘 읽히는 소설, 그만큼 좋은 리뷰입니다. 클라라를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이 소설 덕분에 이시구로의 소설을 더 읽고 싶어졌어요.

레삭매냐 2021-04-12 11:37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습니다. 왜 이렇게 재밌게
잘 읽히던지요.

이시구로 선생의 책들은 한 권 빼고
모두 다 읽었네요. 고 책은 쉽지 않
더라구요...
 
경멸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 시리즈 1
알베르토 모라비아 지음, 정란기 옮김 / 본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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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가을에 중고서점에서 알베르토 모라비아라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작가의 <경멸>이라는 책을 살 뻔 했었다. 그런데 왜 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한 6개월 정도 지나, 이 작가가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선수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 이래서 일단 책은 사두어야 한다. 당장 읽지는 않아도 말이다. 그래서 부근의 중고서점을 수배해서 사냥에 나서려고 했다가 귀찮아서 결국 지난 주일날 폐관 5분을 남겨 두고 도서관에 난입해서 책을 빌렸다. 폐관 5분 전이니 빨리 나오셔야 합니다라는 도서관 직원분의 말이 아직도 나의 뒤꼭지를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다.

 

이탈리아 문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본북스에서 나온 모라비아 시리즈의 서두를 장식하는 <경멸>로 모라비아 선생 읽기를 시작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과연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모라비아의 대표작이라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을 바탕으로 누벨바그의 기수였다는 장 뤽 고다르 연출로 <사랑과 경멸>이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어렵사리 영화를 구해서 잠깐 보았는데, 여주를 맡은 당대 최고의 섹스 심볼 브리짓 바르도(맞다, 울나라 사람들이 개고기 먹는 야만이라고 비난한 그 사람이다)는 그야말로 여신이었다. 퇴폐미 넘치는 소설의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에밀리아가 환생하지 않았나 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주인공 리카르도 몰티니를 궁지로 몰아넣는 빌런 역의 바티스타를 맡은 잭 팰런스도 인상적이었다.

 

소설 이야기하기 전에 또 삼천포로 간 모양이다. 다시 원대복귀하자.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로마. 27세 몰티니는 2류 저널리스트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의 꿈은 극작가다. 하지만,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 에밀리아가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소망 때문에 돈에 영혼을 팔았다.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일로 집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아야 한다. , 2021년의 한국의 그것과 너무 닮지 않았나 말이다. 이래서 삶이라는 연극은 시공을 초월한다고 작가는 쓴 걸까? 그렇다면 그의 통찰력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설의 메인 스토리는 아름다운 아내에 대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의처증 때문에 결국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문제적 남자 몰티니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선 이 지성인이자 개화된 인간을 자처하는 먹물 타입의 인간은 아내의 무학을 깔보고 무시한다. 집안 사정 때문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에밀리아이지만, 그녀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이 할 말은 하는 그런 직선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입만 열면 아내를 죽도록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온갖 망상에 쩔은 착각과 엉뚱한 발상으로 아내를 의심한다.

 

그런데 그 내면에는 쁘띠부르주아로서 자신의 무능력한 남성성, 무엇보다 아내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는 경제적 무능력함에서 오는 자신감의 결핍이 파국의 주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대척점에 서 있는 소설의 긴장 유발자이자 영화제작자로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바티스타가 서 있다. 바티스타는 돈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원하지 않는 몰티니를 꼬셔서 서양 문학의 영원한 고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제작에 참여할 것을 종용한다. 물론 원칙주의자 젊은 꼰대 몰티니는 원전 그대로의 해석을 원하지만, 바티스타가 원하는 것은 당시 영화시장을 휩쓸던 할리우드 스타일의 장대한 지중해 스펙터클 영화다. 문제를 바라보는 출발점이 현격하게 다르니, 이 둘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리라는 것은 시간문제다.

 

정말 흥미로운 점은 위대한 서사 <오디세이>의 등장인물들이 소설의 세 축을 이루는 몰티니, 에밀리아 그리고 바티스타의 경우에 대입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바티스타가 감독으로 캐스팅한 독일 출신 레인골드가 개입해서 좀 더 명쾌한 해석으로 어리둥절한 독자들을 현란하게 리드한다. 그러니까 고대의 서사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교활한 율리시즈는 자신처럼 개화되지 못한여자이자 현모양처의 화신 페넬로페에게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기 전부터 싫증을 내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고향 이타카로의 귀환을 주저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여전히 아름다운 페넬로페 주변에서 들끓는 구혼자들의 존재도 심각한 문제였다. 물론, 나중에 짜잔하고 등장해서 그들을 모두 학살하는 마초주의의 원형을 보여 주기도 했다. 남녀관계에 대한 프로이트식 접근방식은 언제나 흥미롭기만 하다. 고대판 사랑과 전쟁이라고 해야 할까.

 

고대에 구혼자 무리라는 빌런 그룹이 존재했다면 현재에는 잘 나가는 바티스타라는 가물치가 있었다. 아내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원하는 희곡 대신 당시 영화 제작에서 그다지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시나리오 작가의 삶에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사랑하는 아내 에밀리아를 위해 희생한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아주었으면 하지만, 이제 결혼한 지 2년 된 아내는 자신에게 무심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결국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무능력함과 배우자의 무관심이 사달의 원인이었던 것일까?

 

계속해서 자신의 아내 에밀리아게 접근하는 바티스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의 제안을 받아 들여 몰티니와 에밀리아 일행은 카프리 섬으로 향한다. 카프리에서 몰티니 부부의 예고된 파국이 되돌아 올 수 없는 선을 넘어 버리고 만다.

 

대서사 <오디세이>의 결말이 해피엔딩이었던가? 읽어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고대 그리스 서사를 도입한 <경멸>에서 몰티니가 무엇을 할수록 그의 아내 에밀리아는 그의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경멸하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하도록 만든다. 쉴 새 없이 아내를 의심하고, 숨이 막히게 만든다. 그 모든 것이 몰티니의 가진 것 없음에서 오는 병이다. 몰티니에게 재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자신의 고용주 바티스타 앞에서 몰티니는 그가 에밀리아에게 키스를 해도 남자답게 나서서 일전을 벌이는 그런 깡다구를 보여주지 않는다. 아니 대출금 상환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적 주종관계에서 오는 위계가 청년 몰티니의 액션을 막아 버린 걸까. 내가 에밀리아라도 숨도 쉬지 못하게 자신을 압박하면서(때로는 목도 조르면서!) 끝없이 사랑타령을 하는 인간이라면 질려 버릴 것 같았다.

 

몰티니는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삶의 미세한 균열을 망상에 젖어 증폭시켰다.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그런 몰티니의 망상 그리고 심지어 환상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요즘말로 하면 찌질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그런 망상과 결단력 부족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포용력의 부족이 진짜 문제였다는 것을 그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요즘 살았다면 사랑과 전쟁에 출연이라도 권해 봤을 텐데.

 

권태에 젖어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마는 주인공의 심리묘사는 환상적이었다. 그것은 영화문법으로 말하자면 근거리에서 컷 바이 컷으로 관찰하듯이 주도면밀하게 읽혔다. 이런 멋진 이야깃감을 픽업한 장 뤽 고다르의 혜안에도 감탄했다. 실존의 나를 그리스 서사 <오디세이>에 대입해서 흥미를 유발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이런 방식을 차용할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나는 <경멸> 이 소설 한 편으로 단박에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지난 주말 동안 수배해둔, <권태>를 바로 읽기 시작했다. 보통 한 작가의 책 세 권 정도는 읽어야 감이 잡히는 편인데 연달아 <권태>까지 읽으면서 모라비아 선생이 장끼로 삼는다는 실존에 대한 권태와 무관심이라는 키워드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다. 주말에는 영화 <사랑과 경멸>을 볼까 생각 중이다.

 

[뱀다리] 오래 전 고생 끝에 카프리 섬에 갔지만, 시간이 늦어서 그 멋지다는 그린 그로토와 레드 그로토에는 가보지 못했다. 그저 지중해 시퍼런 물에 발 한 번 담았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해야했다. 소설에 내가 가본 장소가 등장하니 참 반갑더라.


[뱀다리2] 본북스에서 모라비아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니 기대 중이다. 지금 절판된 <권태>도 구해서 읽고 있는 중이데 아주 흥미롭다. 책사냥꾼에게 절판된 책들은 하나의 도전이다. 신간도 좋고, 구간도 좋다. 그 다음에는 <로마의 여자>를 읽을 계획이다. 신간이 어서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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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3-19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리즈 준비중이라니 기쁜 소식입니다!!

레삭매냐 2021-03-19 10:02   좋아요 3 | URL
인스타에서 역자 분의 피드를 보니
<아고스티노>하고 <순응주의자>
라는 책이 나올 듯 합니다.

본북스와 문지에서 출격 대기 중...

<권태>는 이현경 교수님이 번역해
주셨는데, 아주우!~ 좋습네다.

scott 2021-03-19 10: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책사냥은 이딸리아로 넘어 가셨네요. 시리즈 제발 중단 하지 말고 출간해주길!!

레삭매냐 2021-03-19 10:04   좋아요 5 | URL
게으름뱅이 출판사가 작년에 낸다고
했었는데, 해가 넘어가 부렀네요 에잉 -

이딸리아 띠아모 ~

그러고 보니 월초에 만났던
루이지 피란델로의 책도 좋았습니다.

앗 그리고 보니 디노 부차티도!

얄라알라 2021-03-21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띠아모까지는 따라갔는데,
이탈리아 작가 이름들 모두 생소하네요. 발음도^^

레삭매냐님^^ 책을 직접 안 읽은 저로서는, 본격 소설 이야기도 재밌지만
˝삼천포˝라 하신 전반부, 너무 재밌어요. 자주 ˝삼천포˝행 해주시와요

레삭매냐 2021-03-21 08:44   좋아요 1 | URL
이건 여담인데 예전에 대학 시절
경남쪽으로 답사를 갔답니다.

진주로 이동하는 길에 진짜 삼천포로
빠져서 다들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진짜 삼천포로 갈 뻔...
호랭이가 담배 먹던 시절 야그네요.

개인적으로 너무 한국의 번역물이
너무 영미 그리고 일본에 치중된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고양이와 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4
귄터 그라스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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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기적인 독자다. 게다가 오독의 달인이기도 하다. 아울러 불가지의 영역에 대해 도전도 마다하는 그런 게으른 독자이기도 하다. 아마 그런 이유로 해서 나의 이번 귄터 그라스 읽기는 처참한 실패였노라고 고백한다. 독일 출신의 저명한 작가 귄터 그라스의 단치히 3부작 가운데 <양철북> 다음이라는 <고양이와 쥐>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14세 소년 요하임 말케, 때는 1940. 국가사회주의자들이 독일 정권을 잡고 결국에는 전쟁이라는 파국으로 독일 민족을 인도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초반에 나치 전쟁기계들은 동부의 폴란드와 서부의 강국 프랑스를 신속하게 점령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제바스티안 하프너가 기술한 <어느 독일인 이야기>에서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소년들이 매일처럼 배달되는 전쟁속보에 열광했듯이, 이제 엄연하게 독일 사람이 된 단치히에 사는 독일 소년들 역시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희한한 목울대(후골?)를 자랑하는 소년 말케는 수영을 배우고 그 다음에는 잠수에 도전하면서 화자(소년 필렌츠)를 포함한 우리들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단치히 군항 부근에 침몰한 폴란드 소해정과 여러 배들을 영국제 셰필드 드라이버와 성모마리아 펜던트를 지니고 누비는 말케의 모습은 어쩌면 독일 민족이 기다리던 영웅의 그런 게 아니었을까. 소설의 후반 이야기를 먼저 등장시키면 스포일러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다니던 김나지움에서 불명예스러운 이유로 전학한 말케는 동부전선을 누비는 전차부대 에이스로 거듭나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도대체 뭐가 쥐고 고양이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제목과 연관성 대신 다른 소소한 것들에 집착하게 되었다. 우선 우리의 주인공 말케는 그들의 위대한 지도자처럼 위험한 과시욕과 유별나게 극성스러운 신앙으로 무장한 캐릭터였다. 신부님은 말케의 마리아 신앙을 이교적 우상숭배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말케는 진정한 신앙인이라기 보다 마리아상을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는 그런 무신론자였다는 점이다.

 

1941년 겨울 모스크바에서 삐끗하기는 했지만, 다음해에도 독일은 전쟁에서 여전히 이기고 있었다. 전쟁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단치히에 사는 소년들은 공군지원병으로 동원되기도 하고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모두 전선으로 투입되게 된다. 나중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한 화자로 밝혀지는 복사 소년 필렌츠의 형님 클라우스 하사도 쿠반강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쥐 같은 소년들의 전쟁놀이와는 다른 세계에 살던 말케는 모교를 방문한 해군 대위의 철십자장을 슬쩍한 게 발각되어 결국 퇴교에 가까운 조처를 당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도 모호하게 처리되어 정확한가 계속해서 의구심을 품게 됐다. 아니 삶은 그런 모호함 투성이라는 말을 대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언제나 관객의 관심을 원했던 순수한 욕망의 덩어리 말케는 원래 학교를 졸업하면서 서커스단의 광대가 되고 싶어했다. 바다를 누비며 갖가지 모험을 하던 말케는 그렇게 흠모하던 철십자장 사건으로 삶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해서 결국 전사로 거듭나게 된다. 다른 친구들이 기갑척탄병 신세로 전장에 나선 반면, 베어마흐트의 꽃이라 불리는 전차부대원으로 전장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금의환향한 말케는 자신을 억압하고 방해했던 클로제 교장 선생에게 시원한(?) 복수를 감행하지 않았던가.

 

이후의 행적은 역시나 모호하다. 결국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탈영병 신세가 된 말케. 그를 기다리는 운명은 결국 비극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를 살아낸 거의 모든 이들이 비극의 무대에서 허우적거린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 책을 너무 대충 읽은 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다.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그런 나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고 너무 많은 암시와 모호함 때문에 정작 저자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고갱이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뭐 그랬다고 한다. 내가 뭐 전문적인 독서가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뱀다리] 책에 대한 내용만 쓰다 보니, 독일 문학의 양심이라는 귄터 그라스 나치 친위대 경력에 대해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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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3-15 1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 사 놨는데 별점이 찬란하게 두 개씩이라.... 이 말씀입죠! ㅋㅋㅋ 인생이니까요 뭐.

레삭매냐 2021-03-15 13:03   좋아요 2 | URL
불가지의 덫에 걸린 오독자의
별점이니, 크게 개의치 않으셔도
무방하리라고 생각됩니다.

coolcat329 2021-03-15 12: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좀 막연히 두려움을 느끼는 작가가 이분하고 토마스 만입니다. 알지도 못하면서 여기저기 얻어들은 이야기에 어떤 경외감을 갖고 있네요. <양철북>이 십년 넘게 책장에 꽂혀 있는데 이따 집에 가서 종이가 썪지 않았나 봐야겠습니다. 그래도 완독을 하셨다니 멋지십니다. 제목은 참 쉬운데요...😅

Falstaff 2021-03-15 12:47   좋아요 3 | URL
흠. 그라스는 그렇다 치고, 토마스 만한테는 쫄 거 없습니닷!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부터 시작해서, 마의 산 같은 긴 작품들 요리조리 피해가시면 충분히 정 붙일 수 있어요!
부덴브로크 다음에 로테 바이마르에 가다도 쉽고 뭐 하여튼 그러니까, 쫄지 마세요!

레삭매냐 2021-03-15 13:04   좋아요 2 | URL
분량이 적어서 섣불리 들이댔다가
아주 큰 코 다쳤습니다.

어느 분은 논문도 쓰셨다는데 엉터리
로 읽고 투정만 한 게 아닌가 어쩐가
싶습니다.

집에 양파인지 쪽파인지도 있는데...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네요.

작년에 호기롭게 <마의 산>에 올라보겠
다고 나섰다가 여적 하산 못하고 있습니다.

coolcat329 2021-03-15 13:15   좋아요 2 | URL
아! 제가 며칠 전 부덴브로그를 샀습니다! 그리고 로테바이마르도 폴스타프님 리뷰읽고 예전에 사두었지요. 감사합니다 ~~

coolcat329 2021-03-15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순간 양파 쪽파가 뭔지 이해 못하고 ㅋㅋ 찾아보니 양파네요 ㅋㅋ 이 분은 제목이 참 재밌네요. 넙치 양파 고양이 쥐 게걸음 등이요~~

레삭매냐 2021-03-15 15:49   좋아요 2 | URL
제가 이번에 뜨겁게 디어서 그런지
제목은 아주 땡기나... 섣불리 물었
다가는 바로 - 암튼 그렇다고 합니다.
 
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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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를 떠나지 못한다는 거지? 카다레의 신간을 보고 든 생각이 들었다. 읽다 보니 떠나지 못하는 여자가 아니라, 떠날 수 없는 여자가 맞지 않나 싶었다.

 

대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다 걸작은 아니라는 사실을 설터를 읽으면서 깨달았다. 이번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그전에 만난 <잘못된 만찬>은 내가 좋아하는 주제라 그런지 아주 마음에 들었었는데.

 

소설의 공간적 배경은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다. 그리고 주인공이자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로 극작가 루디안 스테파가 등장한다. , 참 부제가 <린다 B를 위한 진혼곡>이었지. 극자가 양반은 당 위원회에 소집된 상황이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알바니아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지 않았고, 여전히 공산주의 감시체제가 작동되던 시절의 이야기다. 모든 대화는 도청이 되고, 전 국민의 1/4의 서로를 감시하느라 눈에 불을 켜던 그런 시절이었나 보다.

 

저명한 극작가 루디안이 당 위원회에 소환된 건, 그의 애인인 미제나(에니그마의 은유라나)가 그의 서명을 받아 건네준 린다 B라는 인물 때문이다. 그녀는 유배상태에서 죽음을 맞았다고 했던가. 카페 플로라에서 만난 판사는 린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 스테파에게 말하길 거부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피델 카스트로의 장장 여섯 시간에 달하는 연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이런 부분들은 아무래도 엔베르 호자(대지도자?) 아래 자행된 알바니아 공산 독재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우매한 독자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해야할 것 같다. 결국 해외문학 읽기의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이라는 스칸데르베그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데 역시나 문외한으로서는 이름조차 낯선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만큼 알바니아라는 나라가 우리와 거리가 멀다는 방증이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나머지를 다 읽어야 하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맥락 없는 전개와 오르페우스-에우디리케까지 넘나드는 서술에 마음이 불편해 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어쩌랴 일단 펴든 책이니 다 읽어야지. 대지도자도 한 때 참가했던 지하저항군 시절을 다룬 루디안의 극본은 공연을 위해 검열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다. 모든 것이 감시당하고 주시되는 통제사회의 단면이라고나 할까. 연애는 물론이고, 예술 창작까지도. 그런 시절에도 예술가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창작열을 불태웠다.

 

화자 루디안 스테파의 관점에서 이동해서, 이야기는 거주 제한을 당하고 유배 중인 린다에 집중되기 시작한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는 린다에게 가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이상향 같은 곳이라는 걸까. 미제나가 유방촬영을 한다는 말을 들은 린다는 자신도 검사에 나서며 병 치료를 핑계로 티라나행을 꿈꾼다. 그 가운데 애증의 삼각관계가 피어났던가.

 

지루하게 전개되던 이야기는 말미인 12장과 13장에 가서야 비로소 베일을 벗는다. 그리고 왜 루디안이 집요하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타령을 해댔는지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린다에 대한 풀리지 않는 거주지 유배형과 극작가 루디안의 작품에 대한 검열이 주요한 소설의 갈등을 빚는 요인으로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린다의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가혹해 보인다. 문화애호를 자처하는 대지도자는 정신분열적 증상을 보이는 루디안을 저승의 신부에게 보내 주라는 말에, 루디안을 옹호하고 나선다.

 

어쨌든 읽는 동안, 그전에 만난 이스마일 카다레의 다른 작품에 비해 너무 집중할 수가 없었다. 철저한 스탈린주의자였던 대지도자의 몰락에 환호해야 하나? 악랄한 알바니아 독재 시스템의 실상을 알았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루디안을 그가 보호하지 않았던가. 린다가 독재의 희생양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겠지만, 그녀의 억울함에 감정이 전이되지 않는다.

 

여러 모로 보나 이번 독서는 씁쓸하기만 하다. 돌아오지 않을 나의 시간을 투자해서 읽었건만 뒷맛이 영 개운하지가 않다. 뭐 이런저런 책들을 읽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하고 넘어가 보련다. 나중에 다시 읽게 되면 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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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7 1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책이 기대를 저버릴때도 있지요. 제일 아쉬울 때는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 하고 중간에 안 집어던지고 끝까지 읽었을때예요. 아 내 시간 하면서 말이죠.

레삭매냐 2021-03-09 19:08   좋아요 0 | URL
그래두 마지막에 가서 나름 분전하는데
좀 그랬네요...

잠자냥 2021-03-08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 저랑 비슷한 시기에 읽으셨군요. 저는 이 책 좋았어요. 책 읽는 중간중간 알바니아 역사도 찾아보게 되고, 평소라면 관심 없었을 나라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것도 문학의 힘이 아닌가 싶더군요.

레삭매냐 2021-03-09 19:11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바입니다 :>

그나저나 이스마일 카다레는 알바니아 어로
글을 쓰는 지 아니면 프랑스 어로 글을 쓰
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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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에 앞서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있었다. 오래전 어느 출판사의 시리즈 가운데, 저자의 이름을 만나고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타타르인의 사막>은 이탈리아의 독재자 일 두체가 친구를 따라 전쟁에 나선지 두 번째 해인 1940년에 발표된 책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인 부차티는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파시즘 치하 아래 조국의 암담한 현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의 주인공은 이십대 청년 장교 조반니 드로고다. 그는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한 다음, 중위 계급장을 달고 바스티아니 요새에 부임한다. 처음부터 그는 이것이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는 걸 직감이라도 했던 것일까. 친구 프란체스코 베스코비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도시를 떠난다. 말 타고 도시에서 하루거리라는 요새는 이미 십년 전에 폐쇄된 곳이고, 다른 요새는 그야말로 가득히 먼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새로 가는 길에 그는 아마도 자신의 상관으로 추정되는 오르티츠 대위를 만난다. 그는 2년의 복무기간을 생각했는데, 오르티츠 대위는 요새에서 자그마치 18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걸 드로고 중위는 깨달아양 했던 게 아닐까? 아니 어떻게 18년이나 국경지대에서 수비대로 복무한 사람의 계급이 꼴랑 대위란 말인가. 왠지 바스티아니 요새가 국경의 위치한 쓸모없는 이급 요새라는 사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다. 북쪽 사막 너머의 타타르인을 방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라고 했던가.

 

어쨌든 장군이 15일마다 검열한다는 조리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오르티츠 대위. , 그곳에는 그렇다면 장군도 있는 모양이지? 거대한 고독의 마법이라는 표현이 바스티아니 요새만큼 들어맞는 곳도 없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드로고 중위는 황량한 미지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도시에서 외떨어진 바스티아니 요새는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마력의 상징이다. 마티 소령의 설득에 네 달 정도만 머물고 떠나려던 드로고 중위는 결국 요새에 주저앉는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장교와 병사들이 그와 비슷한 처지다. 그리고 요새에서 북쪽의 왕국에서 언젠가 온다는 타타르족들의 무자비한 침입을 기다린다.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위협은 드로고와 동료들의 존재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철저하게 전설의 타타르인들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낮과 밤이 서로 집어삼키는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어느 순간, 주인공 드로고 중위의 모습에서 젊은 날에 무한정일 거라고 생각하고 허송세월한 나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십대의 드로고 중위는 근 삼십년간을 오지의 요새에서 보냈다. 그의 선임자들처럼, 이제는 떠나야겠다고 하는 순간 이미 늦었던 것이다. 드로고 중위가 나라고 생각하고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설정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에서의 영광스러운 죽음이었을까?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는 시간은 도도하게 흐르며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시간은 드로고 중위의 젊음과 야망과 모든 것을 서서히 침잠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언제고 소멸된다. 다만 그것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 뿐.

 

요새에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한다. 말을 생포하려고 부대에서 이탈했다가 동료의 총에 라차리와 타타르인들과의 국경 문제를 매듭지으려고 산악 지대 정찰에 나섰던 앙구스티나 중위가 차례로 죽는다. 그런데 진짜 위기는 언제부터인가 타타르인들이 요새 공략을 위한 도로 건설에 나서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총사령부는 드로고 중위의 망원경 관찰을 꼭 집어서 금지시킨다. 공연히 분쟁이나 병사들의 동요를 부를 수 있는 그런 쓸 데 없는 행동을 삼가라는 걸까?

 


그러는 와중에 드로고 중위는 대위를 거쳐 소령까지 진급하지만, 도시에 사는 그의 친구들은 그가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사회적 성공을 거둔다. 가정도 이루고, 심지어 이르게 손자를 본 친구들도 있다. 어쩌면 자신과 결혼할 뻔 했던 마리아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제 자신의 청춘을 바스티아니 요새에서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드로고 소령은 늙고 병들어 거동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바로 그 순간, 요새의 모든 이들이 기다린 타타르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요새 사령관이 된 시메오니 중령은 평생을 기다린 적과의 투쟁에 나서겠다는 드로고 소령의 마지막 소망을 거부하고 연대 마차에 태워 후송을 명령한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노병은 사라져 간다.

 

젊은 시절, 첫 배낭여행에서 호주 사막의 거대한 고독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찾은 호주 사막은 기대했던 광활한 모래사막이 아니라 붉은 흙으로 이루어진 사막이었다. 가는 데마다 만나는 비슷한 처지의 배낭 여행객들 때문에 원하던 거대한 고독도 찾을 수가 없었다. 디노 부차티의 걸작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으면서 그 시절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해결해 주거나 이해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통을 지고 사는 것이다. 드로고 중위의 삶에 내 경우를 대입해서 그의 처지에서 작은 위로를 찾을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오지의 요새에서 거대한 고독을 향유하며 결코 오지 않는 적으로 치환된 메타포로서의 죽음을 기다리는 유한한 존재인 우리 인간에 대한 위대한 서사를 창조한 부차티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런 걸작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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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06 1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말이 콕 박히네요. 최고의 찬사잖아요. ㅎㅎ 저는 작년에 읽었던 밀크맨에 레삭매냐님 같은 찬사를 붙였었는데 올해 타타르인의 사막을 읽으면 그 감동을 다시 받을 수 있을어같은 느낌이 드네요. 리뷰 잘 읽고 다음에 읽을 책으로 바구니에 쏙 담아갑니다.

레삭매냐 2021-03-06 13:44   좋아요 3 | URL
우연히 알게 되어 고대하고 있던
작가의 책이었는데...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로 예약 주문을
날렸네요.

읽을수록 고 맛이 배어나는 칡같
다고나 할까요.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 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1-03-06 16: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야겠어요. 레삭매냐님 서평에 이미 다 읽은 느낌이지만^^;

레삭매냐 2021-03-07 08:56   좋아요 0 | URL
올해의 책으로 꼽아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일독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라로 2021-03-06 2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레삭매냐 2021-03-07 08:57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을 계기로 해서 디노
부차티의 다른 소설들도 발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