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멘타 하인학교 (양장)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빈프리트 게오르크 제발트의 새로 나온 책을 읽다가 접고, 결국 나는 로베르트 발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아니 원전을 만나 보지 않고 어떻게 그 원전을 다룬 책을 만난단 말인가. 어디선가 알게 된 고트프리트 켈러의 <초록의 하인리히>도 만나보고는 싶으나 방대한 분량 때문에 패스. 발저의 책이 난해하다고 하더니만 다 읽는데 무려 10일이나 걸렸다. 물론 이 책만 붙잡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스위스 빌 출신의 로베르트 발저는 이례적인 독일어 사용 문단에 있어 무학의 천재 작가였다. 가정 형편상 어려서 학업을 포기하고, 은행의 수습사원으로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글쓰기라는 악덕에 매몰된 발저의 또 다른 취미는 걷기였다. 어쩌면 그도 발로 사유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1956년 그는 자발적으로 들어간 멘탈 인스티튜트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훗날 그가 남긴 기록들을 여섯 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했던가. 1907년부터 해마다 펴낸 베를린 삼부작은 <타너가의 남매들>, <조수> 그리고 <벤야멘타 하인학교>.

 

1905년 로베르트 발저는 27세의 나이로 실제로 하인학교에 입교해서 하인/집사 교육을 받고, 오버 슐레지엔의 성에서 얼마간 하인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벤야멘타 하인학교>에는 그런 그의 체험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부터 귀족 출신이 드러나는 우리의 주인공 야콥 폰 군텐은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고전주의 독일 교양소설(bildungsroman)의 기본 플롯을 완전 무시하는 캐릭터가 바로 이단아 야콥이었다. 기존의 규칙대로라면 야콥은 하인학교의 생도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고 무언가 대단한 존재로 거듭나야 했다.

 

하지만 평생 내적 불안에 시달린 작가 발저는 다른 방식으로 구도에 나선다. 그것은 바로 복종이었다. 이런저런 기술들과 언어 혹은 훌륭한 예절들을 배워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소년들의 선두주자는 크라우스다. 이렇다 할 매력이 없어 보이지만, 독일 국가가 원하는 규칙을 준수하며 체제에 순종하는 인간형이 바로 크라우스가 아니었을까. 정식 학교는 아니지만 어쨌든 벤야멘타 하인학교에서 아무 것도 배울 게 없고, 그저 무쓸모인 존재라는 인식 아래 야콥은 일기 형식의 글들을 계속해서 써 갈긴다.

 

때로는 나폴레옹을 따라 전장을 나서기도 하고, 벤야멘타 교장 선생의 여동생인 리자 벤야멘타를 동경하기도 하면서, 학교에 무언가 비밀을 있으리라는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언젠가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겠다는 상상을 하다가도 그게 다 무어냐는 식의 널뛰는 감정을 슬쩍 비치기도 한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서사의 전개다. 벤야멘타 선생님을 따라 나서는 장면에서는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걸 신종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의 어느 시점에서 야콥은 깨달음을 얻거나, 성공에 대한 무지막지한 포텐을 터뜨리면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는 게 정석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독자의 예상을 전복시키고, 야콥은 반항 대신 기존 질서에 대해 복종을 선택한다. 어쩌면 소년에게 복종은 불확실한 세상에서 도피처이자, 유일한 선택지였는지도 모르겠다. 크고 작은 일탈과 쾌락을 추구하는 남자 야콥이 가진 이중성이라고나 할까. 그는 분명 문제적 인간이지만, 도를 넘는 소위 똘기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에게 무언가 화끈한 일탈을 기대했건만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야콥은 작은 것들에 집중한다. 마치 발저 작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흥청거리던 세기말의 대도시 베를린 혹은 빈에 살던 야콥은 복종과 일탈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욕망들이 무시로 충돌하는 가운데, 내적 갈등이나 자아의 분열을 경험했던 게 아닐까. 난해하기로 유명하다는 그의 문장의 행간에서 무언가 핵심적인 것을 찾아내기 위해 나는 고군분투했다. 작가 발저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야콥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경을 극복한 영웅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런 기대와는 달리 소년은 점점 무쓸모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러한 설정은 하인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세심하게 준비한 이력서(마지막 미션이다)를 들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자본주의 신화를 매섭게 타격한다. 그렇다면 모든 교육의 목적은 사회가 필요한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란 말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제아 야콥에게 매료되었다는 벤야멘타 교장 선생님은 소년에게 자신과 함께 사막으로 떠날 것을 권유한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야콥만이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마지막 학생이 되었다. 이것은 서구의 산업혁명 이래 시대정신이 된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게 변형을 강요받은 학교 교육의 붕괴를 상징하는 추단이 아닐까. 소설의 처음부터 하인학교에서 딱히 배울 게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순전히 적은 분량을 만만하게 보고 덥석 덤벼들었다가 낭패를 당했다. 저자의 저술 의도를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랄까. 발저 작가의 글이 난해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경험했다. 어쨌든 그렇게나마 로베르트 발저의 책을 한 권 읽었으니, 다시 제발트의 책으로 복귀해도 괜찮지 않을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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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호빵 2021-04-30 0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로베르트 발저 저도 만났다가
그의 심오함에 한참 헤매다가 기진맥진ㅋㅋ
다음 책을 쉽게 넘기지 못하겠더라고요ㅎㅎ

정말 산책하듯이 천천히 읽히는 ㅎㅎ
발저의 의도, 저는 그리 짐작했습니다

레삭매냐 2021-04-30 09:36   좋아요 2 | URL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겠지 하고
덤벼 들었다가 아주 곤욕을 치렀습니다.

말씀해 주신 대로,
다른 책의 제목이 왜 ‘산책자‘인지 이번
에 발저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답니다.

coolcat329 2021-04-30 10: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 읽을 책 목록 상위권에 있는데 제가 잘한거겠죠?

잠자냥 2021-04-30 10:43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 굉장히 지루한 고품격 작품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4-30 10:45   좋아요 3 | URL
우리의 제발트 샘이 독일 문학의
대표선수라고 하는데 도저히
쌩깔 수가 없어서 도전했다가 그만...

나이스 설렉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레삭매냐 2021-04-30 10:46   좋아요 5 | URL
[투잠자냥님]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읽으면서도 내가 당최 무얼 읽고
있는가 싶었습니다. 이런 저런 자료
들을 찾아 보고서야 그나마 이해가
되더군요.

그런 점에서 지금 읽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스러운 샘의 독자
를 컨텐츠로부터 격리시키는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Falstaff 2021-04-30 12:15   좋아요 5 | URL
읽지 마셔요.
저도 그거 읽다가 뇌 엉켰어요!! 그래서 이 모양인가 봐요. ㅜㅜ

coolcat329 2021-04-30 13:01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뇌가 엉키다뇨!

미미 2021-04-30 12:3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리뷰도 그렇고 댓글도 온통 호기심을 끌어내내요!😳
그리고 ‘발로 사유한다‘니 너무너무 멋진 말입니다!!👍

레삭매냐 2021-04-30 15:34   좋아요 2 | URL
로베르트 발저의 산문집인 <산책자>
읽겠다고 하다가 나가 떨어졌던 흑역
사가 있답니다.

이번 참에 다시 한 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

붕붕툐툐 2021-04-30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전의식 생기게 하는 책이네요. 집어 던질 때 던지더라도 일단 읽어보겠습니다!ㅎㅎ

레삭매냐 2021-05-01 09:35   좋아요 0 | URL
하도 데여서 산문집이라는
<산책자> 도전을 못하겠습니다.

하긴 그전에도 읽어 보려다가
망한 적이 있었죠...

우리는 집에 있는 책을 읽습니다.
 
메즈 예게른 -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1915-1916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파올로 코시 지음, 이현경 옮김 / 미메시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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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24일은 홀로코스트 이전 최대의 제노사이드였던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106주년이었다. 이탈리아 출신 작가의 파올로 코시가 쓰고 그린 <메즈 예게른>은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에 읽었던 그래픽 노블이다. 지난주에 인천에 갔다가 찾아서 다시 읽게 됐다.

 

좀 더 디테일한 부분들이 알고 싶어서 너튜브를 검색해 보니 터키 사람으로 보이는 너튜버가 오스만 터키 입장에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런 집단학살은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나치 독일에 의한 홀로코스트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르메니아어로 대재앙을 의미하는 <메즈 예게른>은 철저하게 피해자였던 아르메니아 사람들의 입장에서 서술된 그래픽 노블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뒤 지난 십년 동안,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부정하는 터키인들의 입장은 아예 무시해왔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해 보니 오스만 터키의 군인들과 관료들이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가혹하게 다룬 배경에 대해 알게 되었다. 1877년 노토전쟁(러시아-터키 전쟁) 당시,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을 부추겨서 종주국 오스만 터키에 저항하도록 사주했다. 그 결과, 터키의 술탄은 1895~1897년 사이에 1차 대학살을 명령해서 30만에 달하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죽였다.

 

그 후에도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반란활동은 계속됐다. 일단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자들은 터키 요인 암살과 테러 활동을 개시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립을 약속한 러시아 편에 붙어 터키에 불리한 전황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은 쏙 빼놓고, 오로지 오스만 터키의 잔학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점에 대해서는 <메즈 예게른>이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물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스만 터키가 이주정착법이라는 명목 하에,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상상을 초월하는 오스만 터키인들의 만행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해 파올로 코시 작가의 기술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는 점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오스만 터키인들이 무슬림인데 반해 아르메니아인들이 기독교도라는 점도 비극의 한 가지 원인이었다. 민족갈등에 종교분쟁까지 겹치니 강제이주 과정이 잔혹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리라.

 

오스만 터키의 위정자들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조국에 충성스러운 신민이기를 바랬으나, 서구 열강의 사주로 민족자결주의가 고조되어 가고 오스만 제국의 예전의 영화를 잃어 가고 있던 마당에 적국에 협력한 아르메니아인들은 조국의 배신자가 아니었을까. 이런 부분을 알고 나면, 오스만 터키가 저지른 잔학행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가 있게 됐다.

 


발칸전쟁으로 500년 이상 지배해온 세르비아-루마니아-불가리아 그리고 몬테네그로를 상실한 오스만 터키 제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 치명적 판단착오를 하게 된다. 철저하게 중립을 유지했어야 했는데, 동맹국인 독일 편에 선 것이다. 국방 장관이었던 이스마일 엔베르가 가장 열렬하게 독일 편에 설 것으로 주장했다고 한다. 카프카즈 전선에서 러시아를 상대하게 된 오스만 터키 3명의 실력자들은 1915424일 아르메니아인들에 대한 집단이주를 명령했다. 그것이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의 출발점이었다.

 

청년 투르크당 소속의 국방 장관 엔베르 파샤, 내무장관 메흐메트 탈라프 파탸 그리고 해군성 장관 아흐메드 제말 파샤들은 철저한 투르크족 우월주의자들로 대학살을 주도한 슈퍼빌런으로 등장한다. 그래픽 노블에서는 오스만 터키 부대에 소속된 아르메니아 병사들의 무기를 빼앗고, 무장이 해제된 그들에게 총알세례를 퍼붓는다. 물론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개의 오스만 터키 제국의 신민들은 그들을 약탈하고 살해하는데 가담했다. 그리고 상상이 가능한 모든 죽음의 방식들이 뒤따랐다. 흑백의 그래픽으로도 비극은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이전까지만 해도 오스만 터키 제국이 아무런 죄가 없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을 학살한 것으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를 인식해 왔는데, 이번에 다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면서 좀 더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이탈리아 작가인 파올로 코시가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이전의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점이 좀 아쉽게 다가왔다.

 

다시 한 번, 지나간 역사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터키인들의 치졸하고 비겁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주장도 새겨들을 만한 포인트들이 있었다. 물론 여전히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가 허구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고의적으로 억압, 은폐, 상대화 그리고 역사적 의미의 변화를 통해 실재했던 사건을 희석화하는데 정진하고 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진정한 사과와 그에 따른 화해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것도 하나 쉽지는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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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1 - 인류의 탄생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1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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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유발 노아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알면서고 굳이 그의 책을 읽어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베스트셀러를 외면하는 나의 독서 습성이라고 해두자. 그런데 이번에 그의 책이 그래픽 노블로 나왔다고 하니 보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더라.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을 읽는 것이지만 나의 게으름이 그걸 허용하지 않더라. 대신, 그래픽 노블로 만족하기로 했다.

 

지난주에 도서관에 가서 빌려왔다. 인류의 출현을 추적하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탐구 방식은 기존의 학자들과는 그 결을 달리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부분은 아무래도 원전보다는 자신의 조카 조이도 이해할 만한 내용으로 책을 다시 쓴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아무리 원래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더라도, 독자나 청자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난해한 생각들이라면 그 존재에 대해 묻게 되니 말이다. 일단 이 점에서 나같이 무지한 독자에게 아주 딱 들어맞는 그런 책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현재 지구상에 가장 강력한 종은 바로 인간, 호모 사피엔스다. 그런데 이 호모 사피엔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등장한 것은 아니고 무신론자 유대인 학자에 의하면 기존에 있던 6종 정도의 호모 종들이 경쟁을 하며 현세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호모 에렉투스와 현세 인류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네안데르탈인 등은 들어 보았지만, 나머지는 좀 생소했다. 어쨌든 이름도 낯선 나머지 네 개의 종들은 5만 년 정도 전에 모두 멸종되었고, 호모 사피엔스와 혼종 교배(?)된 네안데르탈인의 DNA2% 가량 우리들의 몸속에 흐르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보다 월등한 신체적 능력을 가졌고, 심지어 두뇌의 용량도 더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그런 우월한 종이 전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찍혀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이단적인 주장을 일삼는 역사학자는 단순하게 역사적 증거들만으로 고대의 역사를 재구성할 게 아니라, 물리학 화학 그리고 생물학까지 총동원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설파하다. 아울러 과학적인 입증방식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취사선택할 것을 주문한다. 현재처럼 너튜브를 위시로 한 동영상이나 CNN의 사실에 가까운 보도 같은 게 아니라면, 몇 만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료들은 너무나 희귀하고 또 전체적으로 적용시키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자로 역사적 사실에 접근하는 그의 방식이 아닐까 싶다.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그런 어느 실낱같은 단서들을 매개로 이단적인 주장을 개진하는 게 요즘 같이 페이크 뉴스가 난무하고 확증편향주의가 넘실거리는 세상에는 오히려 더 팔리는 그런 생각들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동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에 걸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대륙의 동물들을 제압하고, 생존에 적합하지 않는 곳까지 널리 퍼지게 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협력이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내가 받아들인 바에 의하면, 상호 신뢰에 바탕을 둔 협력은 다른 동물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능력이었다. 사피엔스들은 협력과 사유를 기반으로 해서 지구별을 정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직립보행을 하면서 사방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동물들의 공격에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던가. 다만, 여자들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쨌든 사피엔스들은 이런 상호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해서 살기 어려운 조건들도 극복하게 되었고, 매머드나 검치호랑이 같은 대형동물들도 사냥하는데 성공하게 되었다. 사피엔스들은 호주 대륙에도 진출하게 되었고, 얼어붙어 있던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도 건너갔다. 문제는 이런 사피엔스들의 세계 진출이 다른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던 다른 종들에게는 그야말로 대재앙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다. 사피엔스들이 활발하게 살고 있는 현재에도 지구별에서는 숱하게 많은 동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멸종되어가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예전처럼 사피엔스들이 비행기를 타지 않고, 이동의 제한이 되면서 자연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리를 위해 개발과 발전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적당한 불편이 지구별에 사는 동물들과의 공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절실하게 들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과거에 사피엔스들이 오늘날의 사피엔스들보다 더 적게 노동하고, 건강하게 살았다는 점이다. 물론 영유아 시절의 위험한 고비들을 잘만 넘기면 평균 수명이나 삶의 질에서 어쩌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다니 정말 놀랄 노자가 아닌가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사피엔스들은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긴 노동을 하면서도, 유희를 즐길 시간들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집에 와서도 청소나 빨래 등등 가사는 더 늘었다고 저자는 슬쩍 우리가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피엔스만이 해낼 수 있었던 허구, 그러니까 신화의 창조가 존재하고 있더라는 점이 그래픽 노블 볼륨 원의 핵심이 아닐까 싶다. 나는 열혈책쟁이로 누구보다 픽션, 허구의 세계에 열광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판 주술사인 법인(회사)과 변호사가 빚어내는 허구의 세계에 빠져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격렬하게 공감하는 바이다. 실체가 없는 회사에 인격을 부인해서 법인(corporation)을 만들고 그 픽션의 주인공인 법인이 생산해 내는 물질의 노예가 된 오늘날의 사피엔스의 모습에 되돌아보게 된다.

 

책에 대한 나의 감상은 뒤죽박죽이지만, 어쨌든 <사피엔스>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이단적 고찰과 주장이 가진 참신성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 정도의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마냥 칭찬일색의 호평에 필적한 비판도 필수적인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앞으로 더 나올 예정이라는 나머지 볼륨 세 권에 대해서도 기대해 본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의 방점을 쉽고 재밌다에 찍고 싶다, 아 참,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그래픽 노블 작업에서 사피엔스 특유의 협력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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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io99 2021-04-25 17: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이지만 원작 자체가 벽돌책이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완독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4-26 09:14   좋아요 0 | URL
원작은 아예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투덥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04-25 1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나머지 책들도 그래픽 노블화 하는 건가요? 지금 서가에 꽂혀 있는데, 오늘 레샥매냐님 따라 <사피엔스> 그래픽 노블이나 끝까지 읽을까 싶네요.

유발 하라리의 온갖 소소한 토크까지 다 뒤져보는 편인데, 최근 적어도 2021년 이분 표정이 굉장히 밝아지시고 뭔가 대화할 때 태도에서 경쾌함까지 느껴져서 독자로서 궁금해하는 중이랍니다^^ 이 책 읽어보면서 원작이랑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나는지 좀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4-26 09:16   좋아요 1 | URL
나머지 책이라기 보다는... 원작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사피엔스> 나머지 부분
을 그래픽 노블로 제작 중이라고 하네요.

아마 다른 책들도 곧 그래픽 노블로 만들
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작과의 비교, 역시 대단하십니다.

2021-04-26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1-04-25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저는 사피엔스를 읽어버려서 그래픽노블을 굳이 읽진 않을 거 같지만, 사피엔스 특유의 ‘협력‘의 진수는 느껴보고 싶네요!ㅎㅎ

레삭매냐 2021-04-26 09:18   좋아요 0 | URL
아 선빵으로 먼저 읽으셨군요 :>

전 책은 안 보고 그래픽 노블로 만나는
지라 헷, 약간의 치트키 느낌이랄까요.

유발 노아 하라리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글을 쓰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고 불어와 영어 번역을 맡고 또
책을 만드는데 필요한 종이와 출판 인쇄
등등이 모두 사피엔스 특유의 협업이
아니겠냐는 주장이더라구요. 아주 제대
로 콕 집어서 이해박게 해주더군요.

바람돌이 2021-04-26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는데 체격도 더 컸고, 두뇌용량도 비슷했던 이 두 인종의 운명의 갈림에 대해 이 책에서는 말씀하신대로 공동체의 형성과 협업 여부로 이야기하더군요. 근데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란 책에서는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를 유물을 가지고 얘기해요. 빙하기의 추위에 네안데르탈인은 결국 쓰러졌지만, 사피엔스는 바늘을 만들어 쓸줄 알아 옷을 제대로 지어입고 빙하기의 추위를 견뎌냈다는 쪽으로 설명하더라구요. 사실 어느쪽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고, 둘 다 진실이 아닐 수도 두가지가 다 섞여 있을 수도 있는게 고고학의 영역이긴 하지만 솔직히 저는 <사피엔스>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꽤 좋았지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한 이 견해는 지나치게 현대인의 관점에서 생각한게 아닌가 싶었어요.
저도 그래픽 노블의 협력의 진수는 느껴보고 싶네요.
그리고 혹시 안 읽으셧다면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을까> 강력 추천하고 갑니다. 완전 재밌어요. ^^

레삭매냐 2021-04-26 09:25   좋아요 0 | URL
추천해 주신 <왜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
남았을까> 접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고학의 분야는 남은 자료들만으로
추정하기에는 빈 공간이 너무 많아 보입
니다. 그만큼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많
기도 하구요.

중세사 전문가인 유발 하라리가 그런
이유로 사피엔스라는 치열한 논쟁을 촉
발시킬 수 있는 그런 주제를 고르지 않
았나 싶기도 하네요.

역사를 현대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게 기본 중의 기본인데, 유발 하라리
는 그 점을 간과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물론 호모 사피엔스를 세계 동물 학살범으로
현대 법정에 세운 아이디어는 기발하긴 했지
만요.

얄라알라 2021-04-26 09: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레샥매냐님 리뷰 덕분에, 꽂아만 두었던 그래픽 노블 <사피엔스> 새벽에 다 읽고 잤네요^^ 2,3,4부도 넘 기대되요

레삭매냐 2021-04-26 09:26   좋아요 1 | URL
바로 그겁니다.
모름지기 책은 빌리거나 사서 보는
게 아니라, 집에 쟁여둔 책을 보는
거죠 ㅋㅋㅋ

전 어제부터 정말 오래 전에 사둔
마누엘 푸익의 <천사의 음부>와
최근에 나온 앤터니 비버의 <아르덴
대공세 1944>를 읽기 시작했답니다.
 
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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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은 정말 은혜로운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 3.0 시대에 어떤 비용도 없이 수 시간을 마음껏 머물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심지어 책도 공짜로 볼 수가 있다. 목표했던 책들을 고르러 갔다가 순전히 운빨로 걸린 책이었는데, 그렇다 책 권수도 늘릴 겸 나는 종종 그림 소설을 애호한다, 아주 마음에 드는 그런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 파슨스 스쿨의 부교수라는 독일 퀼스하임 출신의 노라 크루크. 아니 출신지는 칼스루에였던가? 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전후 독일 2세대로, 그나마 과거 청산 세대에 해당하는 저자가 자신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 저지른 끔찍한 전쟁범죄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가족사를 통한 과거와의 화해가 담긴 그런 책이었다.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독일이 만든 세계적인 자랑거리들을 그림 소설 곳곳에 포진시킨다. 서류 보관으로 골머리를 앓는 나에게도 익숙한 바인더의 본고장이 독일이란다. 라이츠라는 사람이 만든 바인더는 정리정돈에 이골이 난 독일 사람들에게 아주 제격이었던 발명품이었다. 그리고 독일산 빵, 독일어로는 브로트라고 하던데 역시 한국 사람들에게 밥이 있다면 아마 독일 사람들에게는 브로트가 있던 모양이다.

 


그림 소설의 전반부에는 저자의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형 프란츠-카를 크루크(FKK)의 과거 행적을 쫓는 이야기다. 작은 프란츠-카를이 태어나기 전에 큰 프란츠-카를은 이탈리아 전선에서 1944년에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수백만의 독일 젊은이들이 죽어나간 당시 일반 독일 가정의 비극이라고나 할까. 1926년에 태어난 프란츠-카를은 나치 시대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다. 어린 프란츠-카를에게 나치들은 수세기 동안 같은 독일의 하이마트(heimart:고향)를 공유해온 유대인들을 독버섯이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보니 퀼스하임 동네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고장이기도 했다. 중세 이래, 기사들이 앞장서서 죄 없는 유대인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다.

 


세뇌 교육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저자가 찾아낸 큰 프란츠-카를이 남긴 그림일기나 편지 등등에 잘 나타나 있다. 농부였던 큰 프란츠-카를은 17세에 징집되어 18세에 전선에서 연합군과 싸우다 전사했다.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건, 그가 다른 부대도 아닌 바펜-SS, 그러니까 최고의 전투력을 자랑하던 무장친위대 소속이었다는 점이다. 노라의 아버지 작은 프란츠-카를은 가족과 함께 했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큰형님의 묘를 찾는다.

 

저자 노라 크루크는 브루클린에서 유대인 남성과 만나 결혼했다. 아니 어쩌면 유대인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자신의 민족이 지난 전쟁에서 저지른 범죄와 화해하고, 어떤 면에서는 속죄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미국에서 굳이 자신의 독일 억양에 신경 쓰면서 살아야 하는 그런 에피소드들도 자주 등장한다.

 

다음 인물은 좀 더 복잡하다. 그는 바로 노라 크루크의 외할아버지 빌리 로크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수양어머니에게 내쫓겨 어려서 동생 에드빈과 험한 세상의 풍파를 헤쳐 온 사나이다. 운전 기술을 배워 유대인 동업자에게 운전 교습소 사업을 물려받은 빌리. 히틀러가 집권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회민주당(SPD)에 투표하던 그가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노라 크루크는 종전 후, 미군이 남긴 기록을 통해 알게 된다. 빌리 로크는 나치 당원이었던 것이다. 131가지에 달하는 질문 중에 1위는 나치당 소속이었나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다음 순서는 일반 친위대 혹은 무장 친위대였다. 그러니까 노라의 가족 중에는 1번과 3번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을 동조자(미트로이퍼)라고 분류하지만, 그는 동조자보다 좀 더 심각한 단계인 부역자로 분류되었다. 과연 유쾌하지 않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저자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운전 교습소를 운영해야 했던 빌리 로크에게 부역자라는 딱지는 치명적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녀를 부양해야 했던 그는 필사적으로 적극적인 나치 당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미군 점령군들에게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주변의 지인들이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특히 공인된 반파시스트 운동가였던 알베르트 W.의 증언은 결정적이었다. 비로소 노라 크루크는 안도하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의 할아버지 빌리 로크가 나치 당원이긴 했지만, 심각한 부역자는 아니었노라고.

 

다시 미국에 돌아온 노라 크루크는 작고한 알베르트 W.의 자손들과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구원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러니까 노라 크루크 작가가 그리고 쓰고 기록한 <나는 독일인입니다>는 결국 자기 구원에 대한 서사인 셈이다. 한사코 자신들이 전쟁 중에 저지른 가공할 만한 범죄에 대해 반성과 사과는커녕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하는 이들의 그것과 너무 다른 자세가 아닌가.

 


마지막에는 독일의 또다른 자랑거리로 강력접착제로 기네스 신기록을 보유한 우후(UHU)가 소개된다. 무엇이든 강력하게 붙일 수 있는 제품이지만, 과연 자신들의 끊어진 기억들도 그렇게 이어 붙일 수 있는지 저자는 담담하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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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4-19 16: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도서관 만쉐!!!!

레삭매냐 2021-04-20 09:16   좋아요 1 | URL
도서관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붕붕툐툐 2021-04-19 2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진짜 은혜로운 곳!! 저도 도서관 러버라, 도서관에 투자 안하는 시와 시장에게 화가 나 있는 상태입니다.ㅎㅎㅎ
가끔 이런 뜻하지 않게 좋은 책을 만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잖아요~ 도서관 그만 가야 하는데-빌린 책은 이미 쌓여 있음- 또 갈 것만 같아 불안해요~ㅎㅎ

레삭매냐 2021-04-20 09:18   좋아요 1 | URL
제가 사는 동네 전임 시장님은 정말
도서관 뿐 아니라 소장 도서에 대해서
도 신경쓰시는 분이셨는데 지난 번에
다른 사람으로 바뀐 다음에는 그 분
이 하시던 도서관 정책들이 죄다 사라
져 버려서 그저 아쉬울 따름입니다.

온통 개발과 부동산 값만 올리라는
그리고 도서관을 독서실로 만들어
내라는 이들 때문에 기가 찰 지경이
네요.

전 오늘도 읽고 싶은 책을 하나 만나
서 일단 사기 전에 살만한 책인지 관
찰하러 가야 하나 어쩌나 싶습니다 :>

라로 2021-04-20 09:52   좋아요 2 | URL
레샥매냐님,, 이런 님의 글을 읽으면 님의 직업이 너무 궁금해져요. ^^;;;
암튼 덕분에 모르는 책을 알게 되는 좋은 점도 있지만, 어떻게 책을 고르시고 대하시는 지 종종 느껴져서 더 신뢰가 갑니다. 레샥매냐님도 만쉐!!!^^

2021-04-20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작은 것들의 신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5
아룬다티 로이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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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tite for Destruction,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록밴드 건즈 앤 로지즈의 위대한 데뷔 앨범 타이틀 제목이 떠올랐다. 24년 전에 발표되고, 무려 5년 전에 사둔 책을 이제야 읽었다. 그러게 사둔 책은 언제고 반드시 읽는다. 이번이 세 번째 시도였던 것 같다. 우리 달궁의 헤르메스 브로가 언젠가 이 책의 저자 아룬다티 로이에 대해 절찬을 해서 읽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그 때 이미 절판된 책이어서(나중에 문동 버전이 나왔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다가 반납했던가. 그리고 문이당 책도 구했지만 못 읽었다. 다시 문동 버전으로 나왔다. 수차례 초반부만 열심히 읽다 보니 이제는 익숙하더라.

 

이번에도 일 년 전부터 읽다 만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바로 어제 저녁부터. 그전에 정확하게 135쪽을 읽었는데 하루 만에 나머지를 다 읽어 버렸다. 이 소설의 초고를 본 에이전트가 돈다발을 싸들고 인도의 로이 여사를 찾아갔다고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로이 여사는 첫 소설로 단박에 부커상 대박을 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사는 세상은 큰 것들과 작은 것들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큰 것들은 내가 선택하거나 바꿀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아니다. 소설에서는 인도의 고질적 카스트제도가 규정하는 사랑의 법칙(Love Laws)라던가, 관습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폭력적 해결 방식 등이 아마 큰 것들이리라. 대신 작은 것들은 충분히 취사선택이 가능하고, 당장에라도 이룰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오늘 점심 메뉴로 두꺼비 부대찌개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천인감자탕을 먹을 것인가. 그리고 오늘은 읽다만 파스칼 로즈의 <제로 전투기>를 마저 읽을 것인가 아니면 책바다 서비스로 도착할 예정인 쿠쉬완트 싱의 <파키스탄 행 열차>를 먼저 읽을 것인가, 이런 것들이 아마 작은 것들이리라. 하지만 이런 작은 것들이 하나둘씩 모여 나의 어설픈 구성하는 게 아닐까.

 

소설 <작은 것들의 신>1969년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아예메넴에서부터 이야기를 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23년 뒤인 1993, 암무가 낳은 쌍둥이 에스타()과 라헬의 재회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의 경계들을 무시로 허물어 버린다. 쌍둥이들은 태어날 때도 남달랐던 모양이다. 하마터면 버스 안에서 태어날 뻔 했다지. 소설 속 캐릭터들의 궤적은 저자인 아룬다티 로이의 삶의 그것과 비슷한 항해를 선보인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스토리텔링을 풀어낼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오로지 자신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상상만으로 그런 방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이란성 쌍둥이인 에스타와 라헬은 서로 떨어져 살 수 없는 그런 존재였지만, 영국 사촌 소피 몰의 죽음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아이들이 소피 몰을 마중하는 연극에 나서기 전에 보러 간 <사운드 오브 뮤직> 관람은 확실히 작은 것들 중의 하나였다. 반면, 시리아 정교도 성당에 안치된 어린이용 관에 누운 소피 몰의 장례식은 큰 것들이었다. 사랑의 규칙에 대범하게 도전한 암무와 달리트 파라간 출신 벨루타의 사랑은 엄격한 카스트제도가 규정한 소위 <사랑의 법칙>에 도전장을 낸 큰 것들의 일부였다.

 

벨루타는 암무의 엄마 맘마치가 실제적으로 운영하는 <파라다이스 피클>의 실질적인 운영자였지만, 부르주아 지주 계급인 맘마치는 벨루타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 때문에 말이다. 이런 유동적인공화국에서 벨루타가 급진적인 공산주의자 그룹에 합류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까. 암무와 벨루타의 사랑을 파국으로 몰고 간 주범 대고모 베이비 코참마의 악행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자신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었으면서도, 타인의 작은 사랑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자신이 사랑한 신부가 힌두교도로 개종한 게 더 큰 충격이 아니었을까. 만신의 나라 인도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게 없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큰 것들과 작은 것들이 쉴 새 없이 충돌하고 무언가 결론을 도출해내는 그런 혼돈의 세상을 살아간다. 큰 것들은 폭력적인 방식을 동원해서 예방접종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작은 것들을 제압한다.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작은 것들의 연합에 두려움을 느껴서였을까? 가촉민 경찰들은 그들만의 엉터리 구호로 무장하고 베이비 코참마의 무고에 의해 성폭행 미수범이자 아이들 유괴범으로 지목된 벨루타를 습격해서 그야말로 무자비한 폭력의 끝판왕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암무와 에스타펜 그리고 라헬이 사랑했던 목수 벨루타는 감옥에 갇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베이비 코참마는 왜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결국 그녀의 무고는 벨루타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암무 역시 31살의 나이에 죽게 만들지 않았던가. 베이비 코참마로 대표되는 기득권 계급은 공산주의자로 변신한 달리트들이 자신들이 유지하고 있던 기존 질서를 허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프랑스혁명 이래,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기존 질서를 타파한 적이 있었던가. 분노의 주술사였던 베이비 코참마는 우선 국가 폭력의 위임자인 경찰을 이용해서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고 했고 자신의 기획이 암무의 진술로 실패하자, 그 다음에는 소피 몰을 잃은 자신의 조카 차코를 조종해서 암무 일가를 풍비박산으로 만들어 버린다. 인도 사회가 수천 년된 카스트제도를 개선할 수 없어 보이는 것처럼, 큰 것들과 작은 것들의 조화와 평화로운 공존은 그런 점에서 요원해 보인다.

 

폭력은 인도 사회에 기본 구성 요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전통을 고수하는 극우 힌두이즘을 신봉하는 이들이 자행하는 폭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47815, 인도 국가 자체가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하는 순간부터 유혈 속에서 탄생하지 않았던가. 맘마치는 영국 제국의 나방을 연구하는 고상한 곤충학자 파파치에게 지속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딸인 암무도 예외는 아니었다. 승마 채찍으로 파파치는 딸을 때렸다. 암무 역시 벵골 출신 알코올 중독 남편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다. 이런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들이 끝없이 구사하는 이런 폭력의 근원에는 무언가를 상실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한다.

 

한편 아룬다티 로이가 구사하는 후각 이미지가 소설 내내 흥미로웠다. 기득권 세력자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는 베이비 코참마는 파라간 벨루타로부터 나는 냄새를 역겨워한다. 아니 그게 실제로 존재하는 지도 모르겠다. 식민 종주국에서 날아온 소피 몰은 인도가 풍기는 후진국 냄새에 질색한다.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에 식민 종주국이 후각이라는 민감한 접점으로 형상화한 혐오와 차별은 기존의 카스트제도와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면서 강력한 내러티브의 힘을 독자에게 시전한다. 하루가 다르게 강 부근에 섭생하는 식물들의 크기가 줄어들고, 오염되는 모습들을 냄새의 변화에 담아 저자는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소설 속에는 숱한 모순들이 피고 지는데, 내가 가장 주목한 모순은 바로 공산당 지도자 필라이 동지의 그것이었다. 계급타파의 선봉에 서야할 노동자 계급의 공산주의자 필라이 동지 역시 위기에 빠진 당원 벨루타를 돕는 대신 조직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암묵적 사랑의 법칙을 위반한 벨루타를 보호하는데 앞장서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굴 돕고 무엇을 개혁하겠단 말인가. 이 위선자는 심지어 공산주의자 행세를 하면서도 카스트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긴 영국 옥스퍼드 로즈 장학생 출신의 차코도 필라이 동지와 다를 게 없다.

 

인도 지배계급으로 최상위 교육의 시혜자인 차코는 유사 막시스트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인도주의적 지배를 하고 싶었지만, 결국 저항하는 식민지 인도의 지식인들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뤘던 식민종주국 영국의 제국주의자들과 다를 게 없었다. 어머니인 맘마치와 달리 가업인 <파라다이스 피클>을 그야말로 나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물론 경영의 모든 책임이 차코만이 질 것은 아니지만.

 

두 개의 시간대를 오가는 소설만큼이나 나의 리뷰도 정제되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 가는 대로 써 내린 게 아닌가 싶다. 작은 것들로 대박난 저자는 그동안 인도 사회의 변혁과 여러 가지 큰 것들에 정진해 왔다. 그리고 두 번째 소설 <지복의 성자>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성과는 데뷔작만 못하다는 게 중론인 것 같다. 그 책도 사두기는 했지만 아직 읽을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당장에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세 번이나 도전해서 다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사랑, 광기, 희망 그리고 무한한 기쁨 중에 마지막에 해당하려나.


[뱀다리] 아주 그냥 오래 전 Poison 이 부른

팝송의 가사 생각이 났다.


Every rose has its thorn

Just like every night has its dawn

Just like every cowboy sings his sad, sad song

Every rose has its th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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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4-15 1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처럼 리뷰 쓰고 싶어요! 몇 년 더 책을 많이 읽으면 가능하긴 할까요?^^;; 공식적으로는 1947년 폐지됐다는데 카스트제도의 흔적은 인도에서 언제쯤 사라질지. 의식적인 문화가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오늘 또 이 책 저 책 담아갑니다.

레삭매냐 2021-04-15 17:19   좋아요 3 | URL
원래 제대로 한 번 리뷰를 써 보려고
메모도 열심히 하고 그랬는데 막상
본 리뷰에 들어가서는 제대로 써 먹지
도 못하고 감으로 적어 버렸네요 ㅠㅠ

인도와 카스트제도는 뗄래야 뗄 수 없
는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작가들
에게는 정말 좋은 소재가 아닐까요.

새파랑 2021-04-15 16: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건즈 앤 로지스가 떠오르는 책이라니~! 완전 정글같은 책인가 보군요 ㅎㅎ ‘작은 것들의 신‘ 이란 문장은 많이 들어봤는데 읽어보고 싶어요^^

Falstaff 2021-04-15 16:44   좋아요 5 | URL
메냐 님의 별점이 좀 짰습니다. ㅋㅋㅋㅋ
이 책의 독자 평가가 왔다 갔다 하는데요, 로이하고 맞기만 하면 정말 왔다입니다.
전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톱텐에 이 작품을 넣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거 딱 한 권으로 그만 아룬다티 로이를 숭배하게 됐잖아요 글쎄.

레삭매냐 2021-04-15 17:21   좋아요 3 | URL
모든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예의 정글 같은 ˝파괴욕망˝
이 연상됐습니다.

scott 2021-04-15 16: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읽고 보니 매냐님 별 하나 뺴쉼 ㅎㅎ 별넷 냉정한 평가,동감 합니다!

레삭매냐 2021-04-17 15:03   좋아요 1 | URL
왠지 시류에 편승해서 아니면
어떤 시류를 만들고자 오리엔탈리즘
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았나 하는
그런 (비)합리적인 의심의 발로가
아닐까 합니다.

coolcat329 2021-04-16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정말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그냥 좋아요 🥲

레삭매냐 2021-04-17 15:04   좋아요 1 | URL
이 책의 팬들이신 분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

작가의 소설과 다른 책들은 결이
많이 달라서 선뜻 평가 내리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좋아하시는데 뭔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