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캣의 내가 운전요정이다
스노우캣(권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점심을 먹고 인근 중고서점을 찾았다. 복귀하기 전까지 짧은 책을 하나 만나고 싶었다. 그러기에는 웹툰만한 게 없지. 부담 없이 가볍게 볼 수 있으니까. 여러 후보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 때 진짜 즐겨 보던 <마음의 소리>, 파괴왕의 <신과 함께> 등등. 근데 왠지 어둡거나 정치적 색깔의 웹툰들은 보고 싶지가 않다. 그전에 보던 게 있었는데, 마저 봐야지 싶으면서 선 듯 손이 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나의 간택을 받은 책이 바로 스노우캣의 운전툰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제 너튜브에서 요즘 한층 주가를 올리고 있는 오마이걸의 리더 효정이 장롱면허로 새롭게 운전 도전에 나서는 영상을 봤는데... 예의 장롱면허 드라이버는 모의 운전에서 주차를 하다가 1억 상당의 물적 손해를... 뭐 그랬다고 한다. 나도 초보 시절을 생각하니 그 땐 그랬지~가 절로 흥얼거려진다. 그렇다고 지금 간지나는 드라이버도 아니지만.

 

나도 오랫동안 장롱면허를 가지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리고 드디어 차를 끌고 도로주행에 나섰다. 동네 운전도 못하면서 첫 드라이빙 코스가 아마 파주였지. 사실 파주에 들어가서는 운전이 쉬웠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그 시절에는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길을 몰라 고생했었다. 생각해 보니 네비게이션이 있었다고 해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마 네비를 볼 여유가 없었으리라. 룸미러와 사이드미러로 전후 측방 보기가 너무 힘들었다. 스노우캣 양반의 첫 사고가 좌측의 사각지대를 못 본 탓이었지 아마. 숄더 체크가 기본이라는 건 알지만, 모두가 알 것이다. 운전 시작하면서 아는 것을 모두 액션으로 옮길 수 없다는 걸 말이다.

 

스노우캣은 자신의 귀염둥이를 데리고 야무지게 주차부터 마스터했다. 과연 요정이라 부를 만하다. 나도 주행연습하면서 스승님이 지시를 듣긴 했지만, 원체 그렇게 생겨 먹어서 그런지 내 스타일 대로 하게 됐다. 스노우캣처럼 지금도 후방카메라를 보지 않고 숄더체크로 후진 주차를 하곤 한다. 습관은 자고로 무서운 법이다. 그리고 어느 것도 날로 먹는 건 없다는 것도 몇 차례를 사고를 통해 배웠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동안 인사 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숱한 스크래치와 지금도 좁다란 지하주차장으로 갈 때면 등짝에 땀이 나곤 한다. 스노우캣이 종로 모처에 갔다가 지하 4층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길에 양편에 난 숱한 스크래치들을 보고 기겁했다지. 난 일산 주엽의 그랜드마트 지하 7층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무섭더라.

 

지난 주말에는 나의 귀염둥이를 끌고 간만에 서천/장항에 다녀왔다. 180KM 남짓한 길이 가는 데만 세 시간 넘게 걸렸다. 그놈의 고질적인 서해안고속도로 평택-행담도 구간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까먹어 버렸다. 다른 길이 없으니... 원래 서해 금빛열차를 타고 가고 싶었으나 시간도 맞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기차타기를 포기했다.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시절이라 기찻간에 뭘 먹는 것도 안된다고 하지. 그런 맛도 없이 뭔 놈의 기차를 타니 그래.

 

물 빠진 갯벌에 나가서는 황해비단고둥, 밤게, 긴게 그리고 이름 모를 녀석들을 사냥했다. 장항 맛나로 골목(정말 시골스러웠다)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오는 길에는 정말 코지한 분위기의 카페 램프에 들러 커피를 사가지고 돌아왔다. 실컷 수다를 떨면서 오니 180KM 운전이 금방이더라. 간만에 하는 장거리 야간운전이었는데 나를 노리는 숱한 카메라들을 제치고 무사히 도착했다. 이것도 다 짬밥이겠지, 세상에 무엇 하나 거저 얻어지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뭐 그랬다고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24 15: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해안 자주 다니는데 너무 심하게 막힙니다 ㅜㅜ 운전은 짜증나셨겠지만 그래도 즐거운 서천 여행이었겠네요. 부럽네요 ^^

레삭매냐 2021-05-24 21:33   좋아요 1 | URL
내려 가면서 각오는 했었지만
아주 돌아삐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막상 가서 바다와 멋진
꽃들을 보니 맴이 사르르...
닝겡은 이렇게 간사한가 봅니다.

mini74 2021-05-24 17:4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면허가 앖어요. 편도 1시간30분까진 걸어다니지요 그외엔 대중교통. ㅎㅎ 그래서 저는 로봇을 닮은 네모나고 우람한 팔다리를 얻었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05-24 21:34   좋아요 1 | URL
우와 1시간 반!
넵 사실 저도 뚜벅이 시절이 그립
더라구요. 인제는 노쇠하야 그렇게
못 걷습네다.

미미님의 고급진 유머에 빵빵 터져
부렀습니다.
 
별별역사의 몽골 제국 정복사 :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편 - 18만 유튜버 별별역사의 대유잼 콘텐츠, 이젠 만화로!
김도형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의 시작은 징기스 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한 1206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부터 몽골은 서하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제국 건설에 나섰다. 그리고 보니 내가 저자 별별역사의 컨텐츠를 보기 시작한 게 지난 가을이 아니었던가. 언제부터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 그저 전설로만 알려진 몽골의 유럽 원정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궁금증을 자아냈고, 호기심으로 가득했기에 연재되는 동안 내내 본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뜸하다가 요즘 다시 너튜브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했다. 출발은 오래전 즐겨 듣던 팝송이었는데, 이제는 거의 모든 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천 가물치 연못에 빠져 있다. 그리고 냥냥이가 등장하는 다른 컨텐츠의 몽골 제국 호라즘 정벌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즐겨본다.

 

몽골의 제국 건설이 왜 그렇게 독자들의 호기심과 재미 유발을 유도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건 아마도 적은 수의 인원으로 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신화에 바탕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왜 몽골 기병들이 강할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전문적 분석이 같이 책에 실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역사전달자로 자처하는 저자에게 그런 전문적인 정보까지 요구하는 건 무리였을까. 보다 높은 수준의 디테일이 알고 싶다면, 너튜브나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해야지 싶다.

 

그리고 보니 서구인이 쓴 수부타이에 대한 전기(리처드 A. 가브리엘)도 그전에 읽었었다. 수부타이는 대칸의 사준사구 중의 한 명으로 존재 자체로 전설적인 명장이다. 어쨌든 별별역사의 <몽골 제국 정복사>는 탕구트족의 나라 서하원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서하의 건국자는 무열황제 이원호로 기억하고 있는데, 서하는 송나라를 압박해서 해마다 막대한 세폐를 삥뜯은 그런 유목민족의 나라였다. 그리고 실크로드를 장악해서, 동서교역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12071차 서하정벌에 나선 초원에서 경기병으로 회전을 주력으로 하던 몽골족은 서하를 상대로 처음으로 공성전을 경험했다.

 

내가 보기에 징기즈 칸의 서하원정은 어쩌면 몽골의 다음 목표였던 금나라 정벌에 앞선 예행연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금나라는 몽골족에게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금나라를 세운 여진족은 역시 유목민족으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몽골이 통일되는 순간, 감당할 수 없을 그런 강적으로 탈바꿈하리라는 걸 예측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금나라는 이간책으로 몽골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방해했다. 오랑캐가 오랑캐를 이용하는 전형적인 이이제이 전술이다.

 

송나라를 남쪽으로 쫓아내고 중원을 차지한 금나라의 인구는 대략 5천만 명이었다. 그런 금나라를 상대로 몽골(인구 300)이 정벌에 나선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대칸이 이끄는 몽골은 그야말로 떠오르는 태양 같은 존재였고, 여진족의 금나라는 한화(漢和)디면서 유목민족으로서의 기상을 잃고 있었다. 게다가 위소왕 같은 암군이 등장하면서 국운이 쇠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봉건시대 금나라와의 전쟁은 국가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국가의 흥망성쇠를 통해 여실하게 증명한다. 금나라 지도부가 몽골의 침략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몽골 전사들은 그야말로 사지로 뛰어드는 목숨을 건 야호령 전투(10118)에도 너도나도 자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칸은 무칼리는 지명해서 금나라 군대에 대한 공격을 명령한다.

 

결국 몽골의 계속된 공격에 금나라 조정은 대도(지금의 베이징)에서 보다 방어가 용이한 남쪽의 카이펑으로 천도한다. 첫 번째 금나라 정벌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국 금나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23년이 걸렸다. 그동안 초원에서는 반란의 불길이 치솟기도 했고, 서방의 무슬림 국가였던 호라즘과도 분쟁이 일어 무함마드 샤를 정벌하기 위해 대칸은 대군을 동원해서 중가리아 분지를 넘는 고난이도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몽골의 사신을 죽이는 패기를 보여주었던 무함마드 샤는 결국 수부타이와 제베의 추격전에 휘말려 수도 사마르칸트와 부하라를 잃고 타지에서 객사하고 말았다. 대칸의 몽골군은 호라즘의 숱한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 때 찬란했던 이슬람 문화는 몽골군의 침략으로 한줌 재로 변해 버렸다. 한편, 사준사구의 일원이었던 수부타이와 제베는 샤를 추격하던 중에 광대한 킵차크 초원의 존재를 발견하고 대칸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샤를 추격해서 죽이라는 명령 대신 훗날 유럽정벌을 위한 초석을 닦았다고나 할까.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무함마드 샤의 아들 잘랄 웃 딘이 오늘날 아프간 가즈니를 거점으로 삼고 6만의 군사를 모아 몽골군에 대한 저항에 나선다. 그리고 파르완 전투에서 쿠투쿠가 이끄는 몽골군에게 두 번의 패배를 안겨주었다. 뒤이은 바미얀성 공략전에서 대칸의 손자 무투겐이 전사하자, 대칸은 그야말로 바미얀성을 도륙하라는 가혹한 명령을 내린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대칸은 대제국의 건설을 보지 못하고 서하 원정 중에 병사했다. 자신을 여러 번 배신한 서하라는 국가 자체를 말살하라는 말과 금나라 정벌을 위한 계책(정금가도를 송나라에게 요청하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삼남 오고타이에게 알려주고 후사를 맡겼다. 대칸의 유언대로 오고타이를 비롯한 몽골 지도부는 서하를 문자 그래도 지도상에서 지워 버렸다. 몽골이 대제국으로 가는 마지막 걸림돌은 바로 금나라였다. 서하 이래, 금나라와의 연이은 전쟁 그리고 호라즘 정벌을 하면서 새로운 공성무기들을 도입하는데 성공한 몽골은 결국 금나라의 수도 카이펑을 공략하는데 성공했다.

 

책을 다 보고 나서 너튜브로 별별역사의 서하와 금나라와의 전쟁을 다룬 동영상을 보니 책보다 훨씬 풍부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역시 책으로 호기심을 촉발시키고 또 다른 매체인 너튜브를 찾게 만드는 전략은 적어도 나한테는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후속편에서는 러시아, 폴란드 그리고 헝가리 원정에 대해서도 어떻게 역사전달을 해줄지 기대가 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5-21 12: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튜브 잘만 활용하면 음악감상도 무료로 하고 역사 공부도 맘껏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몽골까지 들여다보시다니 레삭매냐님 역시 보폭이 넓으심요^^*

레삭매냐 2021-05-21 14:35   좋아요 1 | URL
너튜브의 세계는 증맬루...

암튼 평균 시청 시간이 30시간
이 넘는다고 하니, 일주일에
하루는 너튜브 보는 셈이더라구요.

고만 봐야지 하는데 잘 안되네요.
 
댄서
콜럼 매칸 지음, 성귀수 옮김 / 작가정신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인터넷으로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을 본 적이 있다. 이게 사람의 발인가 싶었다. 루돌프 누레예프의 삶을 그린 칼럼 매캔의 <댄서>에서도 오페라단 소녀들의 발에서 흘린 피로 하수구가 피로 물들 거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사실 그동안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라고는 미디어나 영화에서 본 바츨라프 니진스키나 영화 <백야>에 등장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그리고 강수진 정도가 전부였다. <댄서>를 통해 전설적 발레리노 누레예프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댄서>는 기이하게도 대독일전쟁, 구소련에서는 애국전쟁이라 부른다, 이 한창이던 혹한의 전쟁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같은 밀덕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겠지만, 예술 중의 예술이라는 발레 무용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쟁으로 시작하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타타르계 무슬림 집안 출신 누레예프의 삶이 그런 전쟁 같았다는 하나의 비유일까.

 

천부적 재능을 가졌지만 아직 다음어지지 않은 원목 같은 소년 누레예프를 가르친 것은 소비에트의 소도시 우파에서 추방생활을 하던 전직 발레리나 안나와 사샤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부는 미래의 전설이 될 타타르 소년에게 발레의 기초를 가르친다. 혁명과 뒤따른 숙청의 엄혹한 시대를 경험한 이들에게 재능 있는 소년을 발견하고 그에게 정식 발레를 가르치는 건 삶에 하나의 활력소가 된 게 아니었을까. 아, 서두에 파리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 발레계의 스타가 된 누레예프에 대한 간략한 초상으로 시작하는 점도 기억해 둘만하다.

 

물론 누레예프의 발레 인생이 순탄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 하멧은 아들 루딕이 의사나 기술자 혹은 공산당 정치위원이 되길 원했다. 그것도 어쩌면 소비에트 혁명을 경험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년은 춤이 좋았고, 그 대가는 아버지의 혹독한 매질이었다. 항상 삶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등장하는 법이다. 하멧의 매질은 오히려 춤에 대한 루딕의 열정을 밀어 붙이는 계기가 된 게 아닐까. 자고로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한 것처럼 하멧은 결국 루딕에게 레닌그라드로 가는 차비를 마련해준다.

 

<댄서>를 흥미롭게 해주는 요소 중의 하나는 메인 캐릭터인 루디 누레예프의 목소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그의 주변인들이 들려주는 그에 대한 서사다. 칼럼 매캔은 이 소설의 스타일을 빌린 위대한 발레리노의 평전의 객관성을 더 높이기 위해 그런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뇌피셜이 종종 공식적인 서사로 인정받는 이 시대에, 그런 점에서 칼럼 매캔은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선구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의 존중과 숭배를 통해 깨닫게 된 천재의 오만함이 소설을 그대로 관통한다. 물론 그런 점들은 <댄서>를 통해 그려지는 누레예프의 초상을 가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의 전설에 광휘를 빛나게 만들어준다.

 

거의 야만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야성미를 자랑하는 이 타타르 남자에 대한 내러티브는 황홀하다. 도대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런 성격이야말로 루디 누레예프를 상징하는 그 무엇일까? 그는 또한 주변인들에게 요즘 대세인 힐링의 원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파의 안나에게는 제자에게 발레를 가르침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매너리즘에 빠진 안나의 딸 번역가 율리아에게는 영감을 제공한다. 발레 아카데미의 동료들에게는 천부적인 재능으로 그들의 발끝을 저릿저릿할 정도의 노력과 희생을 자극한다.

 

1부에서 누레예프에 대한 주변인들의 탐색전이 주를 이루었다면, 드디어 2부에서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지 않지만 1961년 6월 16일, 빈번하게 파리 공연 중에 게이 바를 드나든다는 첩보를 입수한 KGB는 그들의 인민예술가 누레브(Noureev:누레예프의 프랑스식 표기)를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핑계로 모스크바로 소환할 계획을 꾸민다. 이에 눈치를 챈 누레브는 문화상 앙드레 말로의 아들 지인이었던 클라라 세인트와 파리 경찰을 협력을 받아 결국 망명을 시도한다. 1부 말미에서는 그렇게 서방세계로 망명한 인민예술가를 회유해서 조국으로 끌어 들이려는 공안요원들의 가족을 동원한 공작이 펼쳐진다. 한창 서방세계와 체제 경쟁을 하던 소련에게 천재적 안무가의 정치적 망명은 그야말로 국가적 망신이 아니었던가. 누레브는 결석재판에서 결국 7년 금고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조국의 배신자라는 오명이 뒤따른다.

 

다른 예술 장르가 아이디어를 실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특정한 도구(회화와 음악)를 필요로 한다면, 발레는 태초의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가능했다. 물론 토슈즈나 발레부츠, 무용벨트 그리고 발레 복장이 필요하겠지만. 아, 연습을 위한 사방에 거울이 달린 댄스 스튜디오도 필요하겠구나. 결국 예술이란 장르는 어떤 식으로든 비용이 든다는 걸까.

 

인기의 정점을 달리던 순간, 서방세계로 망명한 누레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일약 안무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한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으로 주변인들을 서슴지 않고 놀라게 만든다. 예전에 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 머큐리가 그랬던 것처럼 느닷없이 닥친 명성과 불나방으로 달려드는 여성들의 물질 공세는 천재를 나락으로 인도하는 모양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파리와 런던 그리고 뉴욕을 비롯한 전 세계 대도시를 누비며 누레예프가 유명인사들의 찬사에 휩싸여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아들의 공연을 보지 못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소비에트 체제에 갇혀 있는 어머니와 누이 타마라의 빈곤한 경제적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 누레예프가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당연지사였을까.

 

전성기를 지나 은퇴할 무렵의 마고 폰테인(1919년생)과의 만남은 누레브 전설의 시작이었다. 자그마치 19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이십대의 야성미 넘치는 타타르 청년과 원숙미를 자랑하는 로열 발레단 출신 발레리나의 만남은 그야말로 한 시대를 가름하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1964년 마고 폰테인의 남편 파나마의 국회의원이자 국제변호사, 저널리스트 출신 로베르토 아리아스(전직 대통령의 아들)가 파나마시티에서 정적에게 저격을 당해 평생을 하반신 마비로 살게 됐다. 그 결과 그녀는 나이 예순이 될 때까지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야 했다고 한다. 소설 <댄서>에서는 그런 에피소드들이 자세한 설명 없이 무심하게 넘어가기를 반복한다. 케네디 대통령의 저격사건으로 추모 열기에 쌓인 미국에서 공연이 취소되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


여기까지가 예전에 미리 써둔 리뷰였다. 아마 이렇게 써두지 않았다면 난 아마 다시 <댄서>를 펼 생각도 하지 못했으리라. 성공의 정점에서 이 바닥의 관종이라 불릴 수 있는 미스터 누레예프는 온갖 기행을 일삼는다. 특히 당시만 하더라도 금시기되던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레예프가 서방 세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최고의 발레리노였던 덴마크 출신 발레리노 에릭 브룬과의 스캔들은 시작일 뿐이었다. 오로지 무대 위에 공연 밖에 몰랐던 누레예프는 밤이 되면 쾌락의 노예가 되어 에버라드를 드나들고, 노즈캔디(nose candy:코카인)를 즐기는 엽색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부분은 베네수엘라 출신 빅터 파레치의 증언 형식으로 이어진다. 구두점이 없고, 너무 자극적인 부분들이 많아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 외에도 파리의 저택에서 그의 시중을 든 가정부 오딜, 그리고 솜씨 좋은 영국 출신 제화공 톰 같은 주변인들의 증언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1975년 6월 뉴욕에서 마사 그레이엄이 연출한 <루시퍼> 공연을 앞두고 방탕하기 짝이 없던 누레예프의 그것은 피크를 친다.


모든 서사에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난 책을 다 읽고 나서 전설적인 미스터 누레예프의 무대 위의 퍼포먼스들을 찾아봤다. 나같이 발레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의 퍼포먼스는 완벽 그 자체였다. 그보다 더 선배격인 니진스키는 무대에서 공중을 나는 동안, 잠시 쉬라고 했던가. 발끝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누레예프의 육신은 그렇게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 40대를 넘긴 누레예프의 몸은 도저히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1980년대를 휩쓸 AIDS로부터 누레예프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망명한 지 사반세기가 지나 드디어 소련 당국은 조국의 배신자 누레예프에게 48시간짜리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아들이 우파를 찾아왔건만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칼럼 매캔은 1991년 영국 브라이턴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앞에 배치하고,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으로 그야말로 풍운아 누레예프의 불꽃같았던 삶을 그린 전기소설을 끝맺는다.


내가 어떻게 해서 처음에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년 전에 이미 책은 절판된 상태였다. 아주 추운 겨울날, 중고서점에 버스를 타고 가서 책을 산 기억이 난다. 퇴근 길 버스에서 마지막 몇 장을 결국 다 읽는데 성공했다. 3년 걸려서 책을 다 읽어서 그런지 너무나 뿌듯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5-11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에 걸쳐서 읽은 책이어서 더 뿌듯하실거 같아요. 표지에서 절판의 냄새가 납니다^^

레삭매냐 2021-05-11 14:53   좋아요 1 | URL
넵, 2년 전에 이미 절판된
책이었답니다.

다 읽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답니다.
리뷰로 쓱싹쓱싹.
 
인도로 가는 길 열린책들 세계문학 253
E. M. 포스터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고 읽을 책은 읽게 된다는 게 나의 지론 중의 하나다.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인 에드거 모건 포스터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었던 <인도로 가는 길>을 읽었다. 이 책이 나온 게 1924년이니 딱 97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구나.

 

공간적 배경은 1920년대, 아직 영국이 제국으로 전 세계를 호령하던 시절 식민지 인도의 가상의 공간인 찬드라푸르다. 그리고 별 특별할 게 없는 곳의 마라바르산의 어느 특별한 동굴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저자는 독자를 인도한다.

 

당시 식민지 인도는 복잡한 상황이었다. 우선 무굴 제국에 이어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치안 유지를 위해 어떻게 보아도 속물일 수밖에 없는 치안 판사 로니 히슬롭 같은 이들을 현지에 파견했다. 그 목적은 철저하게 식민지 인민의 치안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식민 통치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없었다면 인도 국가는 혼란으로 빠져들 거라는 주술을 인도 인민들에게 걸었다. 그 결과, 훗날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벌어진 혼란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인도 사람들이 영국인들에게 자신들을 언제 통치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했단 말인가? 절대 아니다. 순전히 자국의 원료 생산지이자, 산업혁명으로 과다 생산된 면직물을 팔아먹기 위한 시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뿐이다. 풋내기 관료인 치안 판사 히슬롭은 현지인들에게 친절하면 안된다는 이상한 신념과 편견으로 똘똘 뭉친 인종주의자일 뿐이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주어진 권력 때문에 독단은 디폴트로 장착하고 있었다.

 

소위 영국물을 좀 먹은 하미둘라나 주인공 닥터 아지즈 그리고 마무드 알리 같은 인사들은 영국 식민지배의 본질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투쟁 대신 그들에게 비굴하게 협력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니까,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들이며 그들의 그늘 아래서 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그런 신세였다고나 할까. 물론 때때로 벌어지는 차별은 감수해야 했다. 특히, 아지즈 같은 의사 선생은 자신의 상관인 캘린더 소령보다도 뛰어난 의술을 자랑하지만 순전히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백인들만의 리그인 클럽에도 출입할 수가 없었다. 이 장면에서는 읽다만 조지 오웰의 <버마 시절>이 연상되기도 했다.

 

카스트 제도라는 엄격한 신분 제도와 더불어 영국의 식민지배 계급으로 나뉜 찬드라푸르에 두 명의 영국 여성들이 등장하면서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치안 판사 히슬롭의 어머니인 무어 부인과 로니의 약혼녀인 아델라 퀘스티드가 그들이다. 개화된 인도주의자들을 자처하는 이 두 명의 여성들은 징세관 터턴이 주관한 브리지 파티에서 보여지는 가식적인 연기에 진력을 낸다. 그들은 가짜가 아닌 진짜 인도를 만나고 싶어한다. 사실 영국인들이 만들어낸 허상이 불과한 진짜 인도 역시, 조금의 시간만 있다면 알 수 있겠지만 무어 부인과 퀘스티드에겐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저 빨리, 어쩌면 로니와 결혼해서 자신이 평생을 보낼 지도 모를 곳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 셋에 상처한 남자 닥터 아지즈가 아주 적절한 상대로 부상한다. 브리지 파티가 있던 날, 무슬림 사원에서 닥터 아지즈와 처음으로 만난 무어 부인은 아지즈의 인격을 높게 평가한다. 그런데 또 어떻게 보면 아지즈 역시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는 그런 속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영국 신민인 저자 에드거 모건 포스터 저자가 그런 평가를 한다는 건 하나의 역설일 수밖에 없는 그런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결국 그 역시 지배계급의 일원인 영국 출신 백인이 아니었던가.

 

한편, 아지즈는 궁극적으로 나중에 경솔한 선의로 판명이 났지만, 무어 부인과 미스 퀘스티드를 마라바르 동굴로 초대했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퀘스티드 양이 동굴에서 아지즈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기소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찬드라푸르는 발칵 뒤집혀 버렸다. 어디 감히 검둥이 원주민이 고귀한 영국 부녀자를 희롱했단 말인가? 식민지에 거주하던 영국 제국의 신민들은 사건의 자세한 전후경과도 알아보지 않고, 자신들이 모욕받은 것처럼 광분하기 시작한다. 반면 지역의 명망 있는 의사인 아지즈 역시 만만치 않은 동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영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시릴 필딩이 조국의 배신자라는 비판을 들어가며 아지즈 편에 섰다.

 

마라바르 동굴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김빠진 콜라처럼 진행되던 서사는 아지즈 재판을 정점으로 폭주하기 시작한다. 이 부분이 너무 재밌기 때문에 스포일링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지만,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그럴 수 없음을 널리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어쨌든 에드거 모건 포스터 선생의 절묘한 소설적 배치에 대해서는 정말 극찬을 할 수밖에 없다. 아지즈 재판에서 악의 근원, 죄수, 문제의 인물 그리고 피고로 불리는 아지즈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수 있었던 무어 부인은 소동을 피해 배를 타고 본국행을 선택했다. 해당 재판은 히슬롭의 부하이자 인도인 판사인 다스 씨에게 맡겨졌다. 그에게는 솔로몬 이상 가는 지혜가 필요한 판국이었다. 유죄나 무죄를 선고해도, 어느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그런 역설적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지즈와 필딩의 강력했던 결속와 우애 그리고 상호간의 신뢰는 투옥과 재판과정을 거치면서 격렬한 반영주의자로 변신한 아지즈의 오해로 무산되어 버렸다. 자신의 선의가 철저하게 배신당한 아지즈는 도저히 이전의 그런 선하고 쾌활한 남자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런 아지즈를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그런 일련의 자기피해 의식이 망상으로 이어지면서 아지즈의 필딩에 대한 오해는 극단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결론은 대영제국와 식민지 인도의 공존을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아델라 퀘스티드나 무어 부인이 알고자 했던 레알 인도의 모습들은 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굳이 동서양의 차이를 말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에서 오는 차이들을 선의로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포스터 선생을 예리하게 꼬집는다. 퀘스티드가 로니 히슬롭을 정말로 사랑하는지 계속해서 물었던 것처럼,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던 퀘스티드 양은 어쩌면 자신이 평생을 살아야 할지도 모를 그런 인도 국가와 그곳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게 아닐까. 그런 애정은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시간이 너무 없었던 게 문제였다.

 

요즘 일일 코로나 발생자수가 경이적인 40만 명을 넘고 매일 같이 3천여 명이 코로나로 사망하는 가운데 인도의 공공 의료 시스템은 붕괴되었다는 외신을 보고 듣는다. 코로나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실력도 없는 21세기 인도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한 때, 그들을 지배했던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소설에서 아지즈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그리고 시크교도가 공존하는 하나의 인도 타령을 해댔지만, 영국제국의 기획한 분할통치라는 특유의 식민지 지배정책으로 훗날 인도는 유혈 속에서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1984년에 데이빗 린 감독의 연출로 동명의 영화가 발표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는 데이빗 린 감독의 마지막 영화였다. 소설에서는 아델라 퀘스티드 양이 못생겼다고 나오는데, 영화에서 아델라 역을 맡은 주디 데이비스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음악은 모리스 자르가 맡았다. 이제 소설을 다 읽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보면 되겠지.

 

소설의 전반은 상당히 고전했지만, 마라바르 동굴 사건을 기점으로 <인도로 가는 길>은 막장드라마를 능가하는 그런 읽는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포스터 선생의 유작인 <모리스>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포스터 전집을 내면서 중고시장에서 포스터 선생의 책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냥하는 맛에 하나씩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5-07 01:1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다 읽어도 내가 본 인도로 가는길 영화 내용이 생각이 안난다는.... ㅠ.ㅠ 책 표지의 저 장면만 기억이 나요. 영화보면서도 아 참 영화보기가 참 힘들구나 했던 생각만.... ㅎㅎ
왠지 책이 더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찜 해놔요. ^^

레삭매냐 2021-05-07 09:11   좋아요 3 | URL
저도 그럴 때가 많답니다.
예전에 하도 영화를 봐서 그런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디테일
이 하나도, 심지어는 무슨 내용인
지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구요.

아직까지 책보다 더 나은 영화를
못보았습니다.

페넬로페 2021-05-07 01: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똑같아요~~
분명 ‘인도로 가는 길‘ 영화를 봤는데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아요.
그러니 책을 읽어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을것 같아요^^
인도에 관한 얘기들이 흥미로워요
천천히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07 09:12   좋아요 4 | URL
배낭여행족에게 인도는 최상위
난코스의 그런 여행지라고 하더
군요.

요즘은 여행을 갈래야 갈 수가
없으니 넷플릭스 영화 <화이트
타이거>로 대신해 보려구요.

새파랑 2021-05-07 07: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에드거 모건 포스터의 작품이 최근에 많이 보이네요. 리뷰만 봐도 너무 재미있을거 같다는 ㅎㅎ
‘모리스‘ 읽고 이 책 읽어봐야 겠어요^^

레삭매냐 2021-05-07 09:14   좋아요 3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쟁여둔
<모리스> 바로 집어 들었습니다.

다른 책들도 구해야 하는데...
<전망 좋은 방>이 가장 땡깁니다.

coolcat329 2021-05-07 0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소설이었군요. 😅 저는 포스터의 인도 기행문인줄 알았어요. 포스터의 책이 한 권도 없는데, 하나 들여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09:16   좋아요 3 | URL
워낙 유명한 작가라 작품이
많을 줄 알았는데 달랑 6개
밖에 없네요.

제인 오스틴 보다 하나 적다는.

미미 2021-05-07 08: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표지도 너무 예쁘죠ㅋ
어제 말씀하신 <화이트 타이거>도 소설부터 읽으려고 넷플에서 예고만 봤는데
예고만으로 이렇게 감탄하기도 오랜만인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1-05-07 09:22   좋아요 3 | URL
영화에 나온 아지즈 일행이
코끼리를 타고 마라바르 동굴로
가는 컷을 표지로 사용한 것 같
습니다.

책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나온
영화 스틸컷을 표지로 쓰는 순환
구조인 것 같네요.

Falstaff 2021-05-07 08: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너무너무 싫습니다. 완벽하게 영국의 신민주의 적 입장에서 글을 쓴 전형적인 식민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국에 의한 식민지배 덕택에 인도에 철도가 깔리는 등 근대화 됐다는 빌어먹을 이야기는 이젠 귀에 딱지가 앉었습지요. 궁극적으로 식민이라고 함은, 식민지 대중은 간신히 굶어죽지 않는 상태에 머물게 하고, 굶어죽지 않은 그들을 식민모국을 위해 노예로 만드는 악마적 일입니다.

레삭매냐 2021-05-07 09:25   좋아요 5 | URL
어제 마저 본 <화이트 타이거>
의 주인공 발람 할와이가 영화에서
언급한 인도 최고의 발명품 수탉장
이 연상됐습니다.

공감합니다.

잠자냥 2021-05-07 09:41   좋아요 5 | URL
그래서 제가 포스터 작품을 좋아함에도 이 작품을 여태 안 읽고 있다능.... 그래도 읽어 보긴 할 겁니다. (언제?) ㅋㅋㅋ

coolcat329 2021-05-07 10:03   좋아요 3 | URL
영국인들이(특히 백인남성) 식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네요.

예전 비정상회담 광복절 특집인지..그 때 식민지배 가해국과 피해국이 마주보고 앉아 각자 입장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영국남자가 식민지배 나쁘지만 그래도 인도 발전에 큰 영향 줬다고 헛소리해서 인도대표 ‘럭키‘씨가 정색을 하고 반박하던게 생각납니다.

Falstaff 2021-05-24 13:59   좋아요 4 | URL
˝결론은 대영제국와 식민지 인도의 공존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라고 하셨잖아요. 근데 저는 뭐가 씌었는지 한 발 더 나가서, 역설적으로 영국과 인도의 화합, 이해와 관용, 동서양 가치관의 조화 등을 주장하는 게 결론이라고 읽었거든요.
사실 별로 놀랄 필요가 없는 게 이런 결론이 1920년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식민모국의 지식인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의식이었기 때문입지요. 물론 그렇지 않은 작가도 있지만 말입니다. (행동은 개판이었지만 하여튼 글 속에서는)앙드레 말로, (전쟁 긍정론자라서 저한테 억수로 미움을 받지만)조지 오웰....

포스터가 마음에 드는 건, 왕실에서 작위를 주겠다니 삼빡하게 거절했다는 거. ㅋㅋ
이거 말은 쉬운데 아무나 못하는 거잖습니까.

초딩 2021-06-04 2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1-06-04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6-04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이 책도 너무 읽고 싶은 책이에요^^
 
아르덴 대공세 1944 -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과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막
앤터니 비버 지음, 이광준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려서부터 전사를 즐겨 읽었다. 중학교 시절, 친구네 집에 가서 본 타임라이프에서 출간된 <World War II>를 보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종종 가서 보곤 했었다. 나중에 커서는 절판된 시리즈들을 권당 오천 원씩 해서 모으기도 했다. 며칠 전에는 너튜브에서 요즘 한창 구독 중인 과달카날과 뉴기니 전투를 다룬 책을 인천집에서 공수해다 보기도 했다.

 

국내에 소개된 <스페인 내전><스탈린그라드>로 유명한 전사전문가 앤터니 비버의 <아르덴 전투 1944>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바로 구입을 결정했다. 예전에 <디데이> 케이스도 있어서, 혹시라도 절판이라도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전사를 다룬 책들은 단가도 제법 나가고, 또 밀덕들이 다 구매하고 나면 자연스레 절판되는 그런 운명이라고나 할까.

 

앤터니 비버 작가는 친절하게도 미영 연합군이 스탈린의 요청대로 유럽에서 제2전선을 열어제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래, 약사를 소개한다. 팔레즈 포켓 포위전에서 서부유럽 주둔 독일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입힌 연합군은 곧 파리를 해방시키고 그야말로 질풍노도 같은 추격전을 개시해서 독일군을 패퇴시키는데 성공했다. 19449월에 몽고메리의 어설픈 마켓가든 작전으로 낭패를 보긴 했지만 대세는 압도적 물량을 앞세운 연합군 쪽으로 기울었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휘트르겐 숲 전투에서 선봉을 맡았던 미군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동안 몰랐지만, 휘트르겐 숲 방어전에 나선 독일군이 그렇게 악착같이 싸웠던 건 바로 다음에 예정된 독일의 마지막 공세였던 아르덴 전투를 위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기술한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신병 위주로 구성된 미군이 베테랑 독일군들을 상대하면서 고전한 게 이해가 됐다.

 

이제 진짜 독일 본토인 아헨 전투에서 나치 천년제국을 그동안 주창해온 나치당의 지도자들은 총통 히틀러의 현지 사수 명령을 무시하고 안전한 후방으로 후퇴를 거듭한다. 이 때 이미 독일의 패망은 예정되었던 게 아닐까.

 

상당 부분을 아르덴 전투 이전의 상황 설명에 투자한 앤터니 비버는 이제 본격적인 아르덴 전투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노르망디 상륙 이래, 벨기에의 앤트워프 항을 점령하기 전까지 이렇다 할 보급항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연합군의 보급로는 길어질 대로 길어졌다. 레드볼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연합군 보급대는 전투에 꼭 필요한 연료와 탄약 그리고 식량을 전선으로 실어 날랐지만, 엄청난 피로가 쌓이는 작전이었다. 독일군은 그동안 공간을 내주고 기갑부대의 재정비와 병사들의 휴식을 위한 시간을 벌었다. 마켓가든 작전에서도 아른험 부근에서 정비 중이었던 독일 기갑사단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했던 것처럼, 연합군 진영에서는 이제 곧 전쟁이 끝날 거라는 낙관론이 우세했다.

 

4년 전, 만슈타인의 낫질작전처럼 이번에도 히틀러는 벨기에의 아르덴 숲을 지나 연합군의 보급창이 있는 리에주 더 나아가 뫼즈강 건너로 연합군을 몰아내려는 대공세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를 원했다. 참고로 프랑스 침공 당시, 에르빈 롬멜이 이끄는 제7기갑사단은 단 이틀 만에 뫼즈강에 도달했다고 한다. 제공권을 장악한 연합군의 공중공격을 피하기 위해 악천후와 울창한 아르덴 숲을 선택한 것이었다. 아르덴 공세를 위해 히틀러는 극도의 비밀유지 아래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서방으로 이동시켰다. 독일군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기갑부대의 운용을 위한 연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거의 무한대로 연료의 보급이 가능했던 연합군과 달리 선봉에 서서 연합군 전차부대를 상대해야할 독일 기갑부대는 진격에 반드시 필요한 연료 수급이 결국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된다.

 

영화 <벌지대전투>에서는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하지 못했던 미군의 카산드라 같은 역할을 맡았던 카일리 소령이 강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빈 드럼통을 보고 독일군의 연료부족을 눈치 채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당히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아돌프 히틀러와 다스 라이히 같은 정예 친위기갑사단이 포함된 18개 사단이 동원된 독일의 아르덴 공세는 19441216일 시작되었다. 선봉을 맡은 요아힘 파이퍼가 지휘하는 파이퍼 전투단은 항복한 비무장 미군 포로들을 곳곳에서 총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실 보병부대가 뒤따르지 않는 상태에서 쾌속의 진격을 해야 했던 기갑부대가 포로들을 후방으로 보내거나 그럴 여력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특히 독일군 가운데서도 스스로 엘리트 부대를 자랑하는 친위대의 독불장군식 부대 운용은 아군이었던 독일 국방군 입장에서도 불편했다.

 

말메디에서 포로가 된 미군들을 학살한 친위대의 만행 소식을 전해들은 미군들은 독일군 포로, 특히 친위대 포로들은 잡지 않겠다고 맹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후과로, 양측 모두 항복하면 죽음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전장에서 더욱 치열하게 마지막 순간까지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독일군의 포로 학살은 공세 초기 수세에 몰린 미군의 결사항전을 이끌어내게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전략적 오판이었다.

 

독일군의 이런 대공세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12집단군 사령관 브래들리를 비롯한 미군 지휘부에게는 충격이었다. 저자가 정치군인이라고 평가하는 연합군 총사령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는 아군이지만 독일 진격전에서 경쟁 레이스를 펼치던 영국군 원수 몽고메리를 달래면서, 또 한편으로는 거의 모든 전선이 돌파된 아르덴 전역을 수습해야 하는 골치 아픈 임무가 주였다.

 

신병 캠프에서 나와 최전선에 배치된 초짜 미군들은 중화기와 티거 전차로 무장한 베테랑 독일군에게 그야말로 처참하게 당했다. 미군에게는 당장 아르덴 지역에 증파할 여유 병력이 없었다. 그래서 마켓가든 작전 이래, 후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82공수사단과 101공수사단을 각각 장크트비트(생비트)와 전략거점인 바스토뉴에 비행기 대신 트럭에 실어 파견했다.

 

HBO 전쟁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도 나오는 것처럼, 전방으로 향하는 공수 506연대 2대대 이지 컴퍼니 중대원들이 후방으로 패주하는 미군과 트럭에서 조우하는 장면이 이제는 바로 이해가 됐다. 비록 압도적인 독일군의 공격 앞에 패주하기는 했지만, 일선의 보병사단들이 뫼즈강으로 쾌속의 진격을 원하던 독일 기갑부대를 막아 주면서 공수부대들이 생비트와 바스토뉴에 방어거점을 확보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훗날 유명한 작가가 되는 커트 보네거트도 이 전역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훗날 드레스덴 대폭격의 증인이 되기도 했다. J.D. 샐린저도 당시 아르덴 전투는 물론이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유타 해변에 그리고 휘트르겐 숲 전투에도 참가했다고 한다. 이미 당시에도 유명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전장에 있었는데, 활약보다는 기행이나 말썽으로 더 유명했던 것 같다.

 

여하튼 치열했던 아르덴 전투에 대해서는 통사적 시점에서 이 책에 자세하게 원인과 경과들이 연대순으로 잘 소개되고 있다. 그동안 몰랐지만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의 하나는 9월 아르덴에서 후퇴했던 독일군이 다시 진주하면서 벨기에 시민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에 대해 잔혹한 복수를 했다는 점이다. 보급이 부족했던 독일군이 벨기에 사람들의 귀중한 식량을 약탈한 것은 물론이고, 징병 연령대의 남자들을 잡아서 총살하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아르덴 곳곳의 작은 마을들을 두고 미군과 독일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면서 부수적 피해가 무수히 발생하고 많은 벨기에 피란민들이 격전지가 된 고향을 떠나야 했다.

 

주공을 맡아 큰소리 뻥뻥치던 친위대 상급대장 제프 디트리히의 제6기갑군과 오토 레머의 총통 경호여단 등은 아르덴 전역에서 기대한 만큼의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미 독일군 선봉을 맡았던 파이퍼 전투단이 곳곳에서 연합군에게 저지당하고 연료부족으로 전차부대의 운용이 어려워졌을 때, 어쩌면 아르덴 공세는 실패했던 게 아닐까. 남쪽에서는 맹장 조지 패튼이 이끄는 제3군의 3개 사단이 독일군의 3개 사단에 포위된 바스토뉴를 구원하기 위해 맹진격을 하고 있었다.

 

바스토뉴 포위전에서도 독일군은 초기에 설정한 다수의 전략 목표 대신 가용한 모든 사단을 투입해서 102공수사단이 방어하는 7개 도로가 지나간다는 교통 요충지 바스토뉴를 공략했어야 했다. 미군은 102공수사단이 성공적인 방어전을 치르면서 시간을 벌게 되었고, 남쪽에서 쉴 새 없이 진격해온 패튼의 3군이 마침내 바스토뉴 방어군과 합류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는 모면하게 됐다.

 

<아르덴 대공세 1944>에서 앤터니 비버는 브래들리가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치러지는 와중에서도 최전선의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비판한다. 거만한 몽고메리는 오직 서부유럽 지상군의 총사령관이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차서 언론을 동원한 언론플레이에 매진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아이젠하워는 절묘하면서도 때로는 냉철한 판단력을 동원해서 타개해야 했다. 적은 전방 뿐 아니라 후방에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몽고메리가 82공수사단이 방어하던 광대한 지역을 후퇴해서 좁힌 결정은 탁월했던 것 같다. 몽고메리가 가끔은 그렇게 기특한 짓도 하는구나 싶었다. 저자는 책의 어디선가 자신의 병력이 상대를 압도할 때까지 신중하게 기다리는 게 몽고메리의 종특 중의 하나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엘 알라메인에서 롬멜을 격파한 것도 그런 자기 신념의 발현이 아니었나 싶다.

 

아르덴 숲을 뒤덮었던 악천후가 물러가고, 화창한 날씨가 시작되자 연합군 전투폭격기들이 출동해서 독일 전차부대와 후방을 맹폭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이 때, 독일군은 뫼즈강 진격을 포기하고 후퇴했어야 하는데 히틀러의 거부로 후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심지어 퇴각하기 위한 연료가 부족해서 차량과 장비들을 다 파괴해야 할 정도였다니 말다했다.

 

방한복과 동계 식사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경험한 독일군이 미군에 상대적으로 나은 상태였지만, 전체적인 보급에서 독일군은 미군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혹심한 추위도 문제였지만, 전투에 가장 필요한 연료와 탄약 부족 때문에 결국 독일군은 미군에게 패했다. 초기 독일군의 맹진격을 막아낸 것도 미군의 압도적 포병 전력 덕분이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도 독일의 생산력은 연합국 특히 미국의 그것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아마 아르덴 전역에서 독일군은 미군에게 연료와 탄약 부족 때문에 패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외에도 전장의 병사들을 괴롭힌 질병은 참호족과 동상 그리고 이질이었다. 이제 막 전장에 배치된 신병들이 경험하게 된 전투피로증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전쟁광 패튼은 이 시국에 적의 본진에 대한 반격을 시도해서 일거에 제3제국을 무너뜨리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 부분은 히틀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독일군에게 회심의 일격을 당한 연합군에게 그럴 만한 여력은 없었다. 아르덴 대공세가 히틀러의 마지막 도박이었다면, 패튼의 제안 역시 거대한 판돈을 굴리는 도박이 아니었을까 싶다. 너튜브를 통해 알게 된 메츠 부근에서 벌어진 포르드리앙 요새 전투의 경험을 패튼은 망각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동안은 독일이 점령한 타국에서의 전투였지만, 라인강을 돌파한 뒤에는 독일 본토 사수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투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동쪽에서 소련이 파시스트의 소굴로 향하는 마지막 대공세를 시작하면서 제3제국의 힘을 온통 빼놓으면서 서부 전선도 저절로 무너지는 효과를 가져 왔다는 건, 부수적 결과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난 열흘 동안 앤터니 비버의 <아르덴 대공세 1944>를 읽으면서 그동안 여러 가지 통로를 접해온 벌지전투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이미 그전에도 플래닛미디어에서 나온 두 권짜리 <벌지전투>를 만나 보았는데, 이번에 앤터니 비버 저자의 저작은 그야말로 아르덴 전투를 집대성한 그런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곳곳에서 보이는 인명에 대한 통일되지 않는 표기와 전투에 참가했던 실존 인물의 상이한 계급 정도는 애교로 봐주자. 앤터니 비버의 또 다른 기대작 <아른험>을 기대하며, 부족한 리뷰를 맺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5-05 1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바로 검색했는데 <스탈린 그라드>는 품절이네요! 관련 책 읽다보면 다큐도 미드도 영화도 달리 보이더라구요. 아직 모르는 게 엄청 많지만요.ㅋㅋ

레삭매냐 2021-05-05 12:07   좋아요 2 | URL
밀리터리 관련 서적들은 단가가
있어서 그런지 초도 물량이 빠지면
더 찍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탈린그라드>,
기록을 찾아 보니 저는 9년 전에
같은 책을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제목으로 만났
네요. 이게 아마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문구라고 하던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