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과 로지 뚝딱뚝딱 누리책 10
거스 고든 글.그림, 김서정 옮김 / 그림책공작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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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넘기고 딱 나오는 지도를 보니 밀레니엄 캐피탈 뉴욕이다. 여전히 나에게 뉴욕은 구겐하임 뮤지엄과 브루클린 브릿지로 그렇게 기억되는 도시인가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뉴욕은 실질적인 미국의 문화 수도가 아닌가 싶다. 미국 건국 당시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서부의 도시들이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 바로 뉴욕이 아니던가.

 

암튼 그곳에 사는 두 외로운 영혼에 대한 동화책이 바로 <허먼과 로지>. 전화로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 허먼 슈베르트는 혼자 살면서 바다에 관한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냥 조용하게 사는 게 낙인 그런 악어 남자다. 그리고 간간히 오보에 연주를 즐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마 한국에서 오밤중에 옥상에 올라가 오보에를 불었다가 바로 문자로 신고 당하지 않을까 모르겠다.

 

대도시의 삶이란 나의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이 존재하는 그런 곳이 아닌가. 다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의 욕망을 무한으로 확장시키고 싶어하는 그런 기질이 있기 때문에 타인의 교집합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가까워지기는 원하지 않는 그런 이중적인 면이 있다고 해야 하나.

 

다른 한 주인공은 목요일 밤마다 두 시간씩 어느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로지 블룸, 그녀는 사슴이다. 직업은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웨이트리스였던가. 참으로 삶의 모습은 우리네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지의 유일한 삶의 낙은 바로 클럽에서 노래 부르기였다. 사실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말이겠지만 일자리를 어디까지나 생존을 위한 돈벌이일 뿐, 좋아서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돈벌이도 된다면? 아마 그런 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잠깐 여담이지만 아무리 너튜브 동영상이 좋다고 해서 크리에이터가 되었지만, 끝없이 기존의 독자나 아니면 앞으로 자신의 컨텐츠를 소비할 독자들을 위해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아닐까? 어쩌면 삶의 상당 부분을 돈벌이를 위한 크리에이션에 쏟아 부어야 한다면 그 또한 스트레스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편집이라는 게 또 쉬운 일이 아니다. 편집의 리듬이라는 것도 있고, 최근 무한경쟁의 장인 너튜브에서 완성도 있는 편집은 컨텐츠 기획만큼이나 하루가 다르게 중요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져 버렸다. 하긴 글 쓰다 보면 이런 맛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변명을 해본다. 거대도시 뉴욕에서 허먼과 로지는 맛난 핫도그를 먹던가 어쩐던가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교차해 보지만 접점을 찾을 수는 없었다. 둘 다 같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점 정도?

 

그러다가 허먼이 판매 실적 저조로 텔리마케터로 활동하던 직장에서 짤리고,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로지가 노래 부르던 클럽이 문을 닫으면서 비로소 두 외로운 영혼이 이제 드디어 만날 시간이 되었다. 그 둘을 이어 주는 요소는 역시나 음악이었다. 허먼의 오보에 연주 멜로디는 로지의 가슴에 각인되었고, 로지가 부른 노래 역시 허먼에게 내리 꽂혔다지 아마.

 

우리의 소망대로 그 둘은 만날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었다. 그리고 같은 무대에 서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아무래도 그림동화다 보니 현실의 극한까지 갈 수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미 현실이 갑갑하고 불의가 판을 치는 마당에 그림동화까지 그런 리얼리티를 재현한다면 삶이 너무 팍팍해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불쑥 솟아올랐다. 이미 기존의 현실에서 그런 리얼리티는 충분하니 가끔은 불가능해 보이는 판타지도 조금은 소비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오늘도 당근을 훑어 보니, 외로운 영혼들이 친구를 찾는 피드들을 꾸준히 생산해 내고 있었다. 카공족으로 같이 카페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집 근처 왕송호수를 거닐고 싶은데 같이 걷고 싶다는, 비도 오고 해서 마음이 적적하여 같이 술 한 잔 나눌 용자들을 찾는다는 피드들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우리 주변에 참으로 외로운 영혼들이 많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리얼리티에 기초한 꽈배기는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지. , 그냥 갑자기 기름에 튀긴 다음, 달달하게 설탕가루를 듬뿍 묻힌 꽈배기가 먹고 싶어졌다. 그거 하나 사 먹으러 시장으로 출동하기엔 내가 참 게으르다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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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온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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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외르케니 이슈트반의 소설 <장미 박람회>를 빌리러 도서관에 갔다. 그리고 덤으로 바로 옆에 있는 서가에서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이란 책도 빌렸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도서관의 재미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목표한 책이 아닌, 우연히 얻어 걸린 책과 만나는 그런 재미 말이다. 그리고 책의 내용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단 미리보기로 읽기 시작한 <장미 박람회>는 뒷전이고(생각보다 작고 얇아서 놀람), 102쪽 남짓한 <있으려나 서점>부터 허겁지겁 읽기 시작했다.

 

분량은 적지만, 요시타케 씨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한 그야말로 보물 같은 책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책이 다 있었다니. 나중에 중고서점에서 만나게 된다면, 하나 쟁여서 소장각으로 박제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아니 꼭 그러고 싶다. 게다가 또 표지도 내가 좋아라하는 하드커버가 아닌가 말이다.

 

저자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있으려나 서점>의 대머리 주인 아저씨는 인상이 푸근하고, 찾는 책을 말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내주는 책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동네서점이라 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닌, 뭐랄까 동네 문화의 거점이랄까나. 내가 사는 곳 주변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그야말로 풀빵구리 드나들 듯 그렇게 매일 같이 들락거리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도서관에 대한 혜안과 분석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세상에서 처음 도서관이라는 개념을 발명한 사람에게는 아낌 없이 찬사를 보내도 될 것 같다. 21세기 개관한 동안, 아무리 많은 시간 동안 주재해도 부담이 없고 또 비용이 들지 않는 곳은 도서관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그 안에는 우리 책쟁이들이 환장할 만한 책들이 가득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야말로 패러다이스가 아닐 수 없다. , 어제 빌린 책을 다 보았으니 오늘도 뛰어가야 하나.

 


어느 장면에서는 계속해서 책을 파묻는 장면이 나오는데, 밑에 깔린 책들을 파내겠다고 만용을 부리다가 해마다 수명씩 구조를 당하게 된다는 설정도 등장한다. 어떤 이들에게는 바로 폐지로 만들어도 상관 없을 그런 책들이겠지만 또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이런 상대적 개념이야말로 책세계의 오묘한 진리가 아닐까 싶다.

 


수중도서관의 아이디어도 참 재밌더라. 옛날에 어느 부자가 굉장한 규모의 도서관을 만들었다지. 그리고 주변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서, 수위가 올라 물 밑에 잠긴 책들은 만날 수가 없게 되었고, 배를 타고 닿는 곳에 놓인 책들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더 높은 곳에 있는 책들은 좀 더 물이 차야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은 정말 대단했다. 이건 어쩌면 책쟁이들의 내공이 좀 쌓여야 만날 수 있는 그런 책들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책의 명성만 듣고, 나와는 맞지 않는 고전들에게 들이댔다가 실패한 경험들은 책쟁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럴 때 꾸역꾸역 책에 도전장을 드밀 게 아니라,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른 책들과 만나면서 착착 내공을 쌓으면 어느 순간 넘사벽으로 보이던 책이 아주 친근하게 다가오는 순간들 말이다. 나에게 <모비딕>이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고백해 본다. 어느 정도 읽었으나 다시 펴려니 좀 두렵구만 그래.

 

우리의 북소믈리에 아저씨가 서점에서 한가한 틈을 타서 간식을 흡입하시려는 순간에도 손님은 들이닥친다.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는 북소믈리에 아저씨, 괜찮다고 응대하는 손님과의 대화가 왜 이리도 훈훈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디테일까지도 요시타로 씨는 놓치지 않는다. 정말 책을 사랑하고, 서점에서 장기간 체류하면서 주도면밀하게 관찰하지 않은 이라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가 아닌가 말이다.

 

말미에 등장하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피날레를 장식할 만한 그런 본질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책을 쓰는 작가나 그런 책들을 출판하는 출판사 모두 그래도 혹시하는 마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꾼다는 것이다. 마케팅 비용이 어느덧 출판비용의 30%를 넘겼다는 현실에서, 컨텐츠에서는 분명 경쟁력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노출되지 않으면 소비될 수 없는 숙명 앞에서 이제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버렸다.

 


굳이 제임스 설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왜 쓰는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영광과 찬사를 받기 위해 쓴다. 혹시라도 베스트셀러가 되어 금전적 이득도 따라 온다면 금상첨화겠지? 모든 글쓰기의 본질에 대해 이미 작고한 대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치킨 한 마리(온전하게 한 마리인지 먹을 때마다 항상 의문이 든다)를 받아 먹어 보겠다고 블로그에 열심으로 올리는 오늘일기나, 이제는 거의 쓰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읽고 쓰기의 습관들 모두 영광과 찬사를 얻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다.

 

3년 전에 출간된 요시타케 씨의 <있으려나 서점>은 얼마나 사람들이 책을 빌려 보았는지 구석의 모서리들이 죄다 닿아 있을 정도다. 이 정도면 책의 퀄러티가 이미 보장된 게 아닌가 추정해 본다. 이 책은 단언컨대 우리 책쟁이들을 위한 책이다. 나의 경애하는 책쟁이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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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5-29 11: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수중도서관의 은유는 소름이네요!
찜해두었던 책인데 이 페이지도 함께 찜합니다.ㅋㅋㅋ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2 | URL
아, 알고 계시던 책이셨군요.
강추합니다.

페넬로페 2021-05-29 12: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무조건 읽어야할 것 같아요~~
도서관에 가기 전에 미리 검색해서 빌릴 책만 빌리고 오는데 이제부터 도서관가면 좀 순례를 해서 보물같은 책을 찾아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29 12:42   좋아요 4 | URL
102쪽 그림동화 스타일이라
읽기에도 부담이 1도 없었습니다.

이런 책을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니 기분이가 좋았습니다.

han22598 2021-05-29 13: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모든 찬사와 영광을 레삭매냐님께!!! ㅎㅎㅎ 게으른 저는 치킨 꿈도 못 꾼다는 ㅠ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치킨이 멀지 않았습니다.

다만 치킨은 고전에 먹었으니 이번에
는 책을 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05-29 13: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어요~!! 서점이나 도서관 다루는 이런 책들 읽으면 공감가는 부분이 많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2 | URL
아주 핵심을 콕콕 잡아내는
요시타케 씨의 능력에 고저
감탄했답니다.

mini74 2021-05-29 16: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소믈리에. 너무 읽고싶어집니다. *^^*

레삭매냐 2021-05-29 18:10   좋아요 3 | URL
잠깐만 시간을 투자하시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그런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붕붕툐툐 2021-05-30 03: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북플에서 소개받고 읽었는데 느므느므 귀엽더라구요~ 진짜 이런 서점 있으면 좋겠다 싶어요!

레삭매냐 2021-05-30 08:12   좋아요 2 | URL
근처에 이런 서점이 있다면
정말 매일 같이 출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체 연습
레몽 크노 지음, 조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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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부터 무려 6개월에 걸쳐 이 책을 읽었다. 레몽 크노라는 프랑스 작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해제가 본문보다 더 많다니... 어쩐지 나는 왜 이 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드는걸까. 그만큼 우리 우매한 독자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문체와 문장을 해석하는 자신의 능력보다 해제가 더 필요하다는 말일까. 입맛이 씁쓸해지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에 어느 프랑스 작가는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99가지 방식으로 쓰는 도전에 나섰다. , 그 점부터 말하고 싶다. 나는 프랑스어에 대해 1도 모른다. 9년 간의 정규 교과 과정 덕분에 영어 독해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말이다. 어제도 브리스 디제이의 단편 <Time and Again>에 나오는 drop에 대해 꽤 고민하기도 했다. drop에는 낙하하다라는 표현도 들어 있다는 걸 알고는 나름 흐뭇해했었지.

 

하지만 프랑스어는 절대 독해 불가다. 그러니 본문 뒤에 실린 프랑스어 원문은 나에게는 아무런 쓸데없는 그런 부분이었다. 난 이 책을 도서관에서 세 번인가 빌려서 다 읽었는데, 돈을 주고 샀다면 본문은 몰라도 역자의 해제가 실린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빡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왜 역자의 해제를 돈주고 사서 읽어야 하는가 말이다. 공짜라도 사양할 판인데 말이다.

 

파리에 사는 어느 나름 멋쟁이 청년에 대한 관찰기를 레몽 크노 작가는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동원해서 비틀고 꼬고 데치고 볶고 그렇게 해서 99가지 스타일의 글들을 생산해냈다. 원래의 내러티브 역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냥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의 하나다. 아마 저자는 그런 이야기를 목표로 한 게 아닐까 싶다. 이해가 간다.

 

나름 신선하기도 했다. 맛과 냄새 그리고 독특한 수학 산식까지 동원해서 이야기를 늘어뜨리는 재주에 대해서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시점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열 댓가지 문체에서 포기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레몽 크노 작가는 작가답게 포기하는 대신, 뚝심 있게 밀어 붙인다. 그 점 하나에 대해서는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 15세기 고어에 네다스타일의 이북 사투리는 좀 너무 나간 게 아닐까. 번역에 핍진성을 대입하는 게 옳은 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그런 핍진성이 부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편해지고, 가독성이 떨어지면서 자그마치 한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던 책을 다 읽는데 자그마치 6개월이나 걸렸다. 이 책을 다 읽기 위해 도서관에 세 번이나 행차를 해야했다.

 

아마 전후 프랑스 사회에 범람하기 시작한 미국식 영어에 대한 반감 혹은 경계도 영어 스타일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왓 더 뻥튀기하는 장면은 좀, 솔직하게 말하면 아주 많이 웃겼다. 일본어를 섞어찌개 스타일로 구사한 장면도. 역시 우리 닝겡들은 자신이 아는 부분에서 그런 유머들을 소화해낼 수 있는가 보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청년에 대한 40대 초반의 레몽 크노 작가의 서술에서는 왠지 모르게 꼰대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모자 끝에 배배 꼬은 줄을 두른 젊은이의 스타일을 못마땅해 하거나, 84S 버스에서 승객들과 끝없이 마찰을 일으키는 그의 까칠함을 부각시키는 장면들이 그렇게 느끼게 했던 것일까. 그렇게 다른 승객들과 툭탁거리던 녀석이 자리가 비자 냉큼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왜 그렇게 밉상이던지. 이 모든 게 작가가 의도한 바라면, 정말 점층적으로 주인공을 적대시하고 이유 없이 미워하게 되는 과정이 놀라울 뿐이다.

 

레몽 크노의 <문체 연습>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그리고 어떤 번역이 과연 좋은 번역인가, 단순하게 의미의 전달만이 번역의 핵심인 것인가? 아니면 뉘앙스나 느낌이 좀 달라지더라도 독자 친화적인 번역이 좋은 것인가에 대해 자꾸만 되묻게 되는 그런 나의 독서의 시간들이었다. , 이건 좀 엉뚱한데 영어 번역서에서는 또 어떤 식으로 번역이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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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5-27 17: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히야~ 6개월에 걸쳐 완독 하심을 축하드립니다~ 번역은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어떤 번역이 좋은 번역일지 함께 고민하게 되는 글이네용~

레삭매냐 2021-05-27 17:53   좋아요 2 | URL
이 책을 읽고자 세 번이나
도서관에 갔다니...

고전 끝에 다 읽어서 다행
이었습니다.

새파랑 2021-05-27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번역은 반역이라니~! 🌟 2개가 눈에 들어오네요. 정말 번역이 중요한거 같은데, 어떤 번역이 좋은건지 저도 고민이 드네요.

레삭매냐 2021-05-27 17:54   좋아요 2 | URL
가장 좋은 방법은 원서를 대하는
것인데 세상 모든 언어에 대해 그
럴 수가 없어 아쉬울 뿐입니다.

프랑스어는 더더욱.

페넬로페 2021-05-2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외국어 한가지라도 제대로 해놓았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후회가 밀려듭니다~~어떤 책은 번역땜에 중간에 멈추는 게 있는데 돈주고 샀다는 게 더 괴로워요^^근데 또 원작이 그럴수도 있으니 무식한 제가 답답할 수 밖에요 ㅠㅠ

레삭매냐 2021-05-27 20:33   좋아요 3 | URL
제가 바로 그렇습니다.

잘 나가다가 막히면 정말
답이 없더라구요. 계속해서
꾸역꾸역 읽어야 하나 싶기
도 하구요.

유시민 선생님은 그런 책은
굳이 읽을 필요가 없다 하셨
지만... 그래도 읽기 시작한
책은 마저 읽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소설집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지음, 이승학 옮김 / 섬과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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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달 출판사에서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별그램을 통해 알게 됐다. 나의 고마운 인별그램... 그리고 잊고 있었다. 그러다 열흘 전 쯤에,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주문장을 날렸다.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작가와의 만남은 언제나 염통에 텐션을 불어 넣으니까. 책은 그렇게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이번에는 미국 동부 지역의, 이른바 힐빌리들이 사는 곳이 배경이다. 작가 브리스 디제이가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이라고 했던가. 작가는 기이한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것 참. 어쩌면 그의 요절은 자신을 전설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론가들이 어떻게 해서 달랑 생전에 6편의 단편소설을 그리고 사후에 6편 해서 모두 12편의 소설들을 남기고 지구별을 떠난 작가를 사상 최고의 작가로 꼽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 이유를 알려면 그의 작품을 만나 보는 수밖에.

 

나의 미쿡인 친구 브랜던이는 내가 인별그램에 이 책을 읽고 있다는 피드를 올렸더니, 한국어 번역에서 고 동네 다이얼렉트를 어떻게 다뤘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데 나는 영어 원서를 만나 보지 못했으니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 특유의 다이얼렉트를 알 수 없으니 오롯하게 역자의 지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과연 그런 디테일들을 잡아낼 수 있을까?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아쉽다고나 할까.

 

어제 열흘 걸려서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기억들을 되살려 보려니, 아련하기만 하다. 아내가 죽고 아들마저 고향을 떠난 뒤, 눈 치우는 일을 하며 사는 어느 힐빌리는 아르덴 대공세 때 프랑스에 떨궈진 공수부대원이었다고 한다. , 후방에 있던 82공수나 101공수 모두 트럭에 실려 생비트와 바스토뉴로 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밀덕답게, 책에서 작가가 다루는 서사보다 그런 디테일이 더 눈길이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월남 스키 부대 같은 이야기인가.

 

베트남 전쟁에 투입되었다가 바디백에 담겨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 기억을 소환한다. 매사추세츠의 어느 거리에서 만난 노숙자 아저씨는 무려 MIT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가 같이 갔던 고등학교 친구가 바로 눈앞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는 걸 보고는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고.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의 친구는 해군으로 안전하게 후방에서 근무할 줄 알았는데, 그게 또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1970년대 많은 미국 청년들이 캐나다로 도망갔었다고 했었나. 다른 소설에서 징병기피를 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갑자기 너무 궁금해졌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힐빌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카고나 뉴욕 같은 대도시로 가야 했나 보다. 우리에게 서울이 그런 공간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위탁 가정 양부모의 학대로부터 도망갔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와야 했던 갑갑한 삶의 서사를 읽을 때면 왜 이리 답답하던지. 무모한 치킨 게임인가를 하다가 불구가 된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롭기만 하다. 그런 저런 이유로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유하는 부평초 같은 삶의 짧은 서사가 처량하게 다가온다.

 

수렵한 다람쥐 고기가 상에 빠지면 명절 기분이 나지 않는다는 아버지의 말에, 주인공이 아무 소리 안하고 엄동설한에 소총을 들고 나가 다람쥐들과 여우에게 총질하는 장면은 왠지 짠하다. 거의 눈이 먼 아버지와 어머니를 부양할 수 없어, 형님에게 부탁해 보지만 자신의 가족 부양하기에도 벅찬 형은 냉정하게 거절한다. 농사로 연로하신 부모님을 부양하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자신은 다람쥐의 부실한 부위로 배를 채우고, 아버지에게 기름진 부위를 양보하는 장면도 역시나 짠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의 고통 그리고 가난에서 오는 피폐함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아닐 수 없다.

 

브리스 디제이는 힐빌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알 수 없을 그런 애팔래치아 산맥 부근에 사는 삶의 단상들을 있는 그대로 스케치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족쇄는 대처에 나가 성공하고 싶은 피 끓는 젊음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향에 남는다고 해서 무언가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광산 노동자로, 혹은 트럭 운전사로 살면서 수렵 고기로 허기를 달래는 그런 삶 가운데 어떤 희망이 있을지 나는 궁금했다.

 

그런 무기력하고 잔잔해 보이는 삶 가운데 힐빌리들은 다소 폭력적인 유희를 추구한다. 피 비린내 풍기는 닭싸움이나 내기 판돈을 걸고 벌어지는 싸움판이 그랬다. 자신을 물 먹인 배신자를 찾아가 응징하겠다는 말이 실현될 줄 누가 알았을까. 동행한 여자 친구는 텍사스에서 일자리를 찾았다고 집에 전화한다. 뉴욕에 나가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친구가 고향에 뿌린 공연 티켓에 홀린 이들도 있다고 했던가.

 


단 하나의 소설집만을 남기고 별이 된 어느 힐빌리 작가의 글을 읽는 내낸 마음이 쓸쓸했다. 한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알았던 책은, 다 읽는데 열흘이 걸렸다. 내가 무언가 놓치는 게 있을게 아닌가 하는 노파심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몇 번이나 거듭해서 읽었지만 책장을 덮고 나니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밑줄 긋기와 그 부분을 읽을 때의 단상들을 메모해 두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이런 책은 곁에 두고 재독해야 하나 보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려나.

 

더 이상 브리스 디제이의 글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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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브리스 팬케이크 약력


브리스 디제이 팬케이크는 미국 작가다. 그는 1952629일 미국 웨스트 버지니아의 찰스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26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생전에 그는 6편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대부분 <어틀랜틱>에 게재되었다. 사후인 1983년에 단편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문학계의 대선배인 윌리엄 포크너, 제임스 조이스,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새무얼 베킷에 견줄 정도였다. 현재 팬케이크의 소설집은 미국 단편 소설계에서 걸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브리스 디제이의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 유니언 카바이드의 직원이었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나중에 사서가 되었다. 책에 대한 브리스 디제이의 사랑은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 헬렌은 브리스라는 이름을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찰스턴 가제트> 스포츠란에서 골랐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성인 Pancake은 독일어 Pfannkuchen(판쿠흔)을 미국식 줄임말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그는 카벨 카운티의 밀튼에서 성장했는데, 밀튼 고등학교를 나왔다. 웨슬리언 칼리지를 거쳐 1974년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턴의 마셜 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는 아버지가 알콜중독 합병증으로 돌아 가셨고, 3주 후에는 친한 친구 매튜 허드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으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23살의 브리스 디제이는 다음 2년간, 포크 유니언과 스톤튼 군사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다. 브리스 디제이는 나고 자란 밀튼에서 스톤튼까지 반나절 걸리는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곳의 학교 분위기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느 글에서는 브리스 디제이가 12편의 단편 중 9편을 이곳에서 완성하거나 시작했다고 한다.

 

교단을 떠난 뒤에는 1976년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시작했다. 그의 은사 중에는 퓰리처상에 빛나는 제임스 엘런 맥퍼슨을 비롯해서 존 케이시와 피터 테일러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브리스 디제이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1977<어틀랜틱><삼엽충>을 발표했다. 이 때, 어틀랜틱의 편집자가 덱스터와 존을 헷갈려서 DJ로 잘못 기재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는 이 이니셜이 마음에 들어서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1979년 그가 죽던 해에 찍은 사진이다)


브리스 디제이는 샬러츠빌에서 197949일 밤에 죽었다. 그는 죽기 전에 세 편의 소설을 어틀랜틱에게 팔았다. 가톨릭에 귀의한 그는 <삼엽충>을 어틀랜틱에 팔고 받은 돈 750달러를 가난한 이들을 먹이라고 기부했다고 한다. 브리스 디제이의 죽음은 그의 머리 뒤편에 난 총격 자국으로 공식적으로 자살로 판단되었다.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믿고 있다. 커트 보네거트는 브리스 디제이를 자신이 읽은 최고의 작가이자 성실한 작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 오탈자 : 135쪽 6째줄 - 프랑 ->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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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5-26 11: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나는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 아, 제발 쫌 두려워하삼! ㅋㅋㅋ 매냐 님 신간 너무 빨리 읽으심. ㅋㅋ 저도 이 책 사두고만 있어요. 아직 안 읽음....

레삭매냐 2021-05-26 13:31   좋아요 2 | URL
과연 힐빌리 헤밍웨이라는 별명
으로 불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애잔하고 뭐 그런 정서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 진도 빼기가 쉽지 않았
습니다.

바람돌이 2021-05-26 12:0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말에 동의함요.
이 작가는 이름도 정말 특이하네요. 어떻게 하면 성이 팬케이크가 될 수 있을까? ^^ 찾아보니 제가 좋아하는 커트 보니것이 극찬했다는데 관심책으로 보관함에 넣어둡니다. ^^

레삭매냐 2021-05-26 13:33   좋아요 3 | URL
커트 보네거트 작가가 최고의 작가라고
칭할 정도였다고 하니 더더욱 아쉽더라구요.

오래 살면서 더 좋은 작품들을 내줄
것이지...

새파랑 2021-05-26 1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리뷰만 봐도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드네요. 게다가 단 하나의 소설집이라니~ 이런 책을 발굴하시는게 정말 대단하세요~~!!

레삭매냐 2021-05-26 13:36   좋아요 3 | URL
미국 독자들은 기이하게도 그렇게
요절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호하
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유일무이한 작품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coolcat329 2021-05-26 1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모가 언뜻 D.H.로렌스를 생각나게 하네요. 아까운 작가가 여기 또 있네요. 12편의 이야기만을 남겨놓고 가다니...

레삭매냐 2021-05-26 14:33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그래도 책이 나온 지
38년 만에 이렇게나마 만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지요.
 
만화 체 게바라 평전
시드 제이콥슨 외 지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으로 만난 에르네스토 게바라, 우리에게는 혁명적인 이름인 체 게바라로 더 알려진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를 만난 건 장 코르미에의 평전을 통해서였다. 한 때 신세를 지던 동생은 책의 표지에 나온 예수보다도 더 유명하다는 말에 불끈했던 기억이 난다.

 

젊은 시절의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그 어렵다는 의사시험을 패스하고 의사가 된 체 게바라는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위험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위험한 혁명가의 삶에 투신했다. 결정적 계기는 이십대에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도는 모터사이클 여행이 그 계기였다. 청년 게바라의 눈에 천혜의 조건을 두루 갖춘 라틴 아메리카의 나라들에 사는 민중들이 가난하고 억압된 삶을 살게 된 주 이유 중의 하나는 미제국주의와 매판 자본가들 때문이었다.

 

책으로 만난 게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제국(諸國)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은 청년 게바라는 혁명에 투신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과테말라에 들어선 아르벤스 민주정권을 군부 쿠데타를 획책해서 전복시켜 버렸다. 모든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과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해치는 일체의 행위와 도전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여러나라를 돌아 멕시코에 도착한 게바라는 망명 중이던 피델 카스트로 형제를 만나 쿠바에서 벌어지고 있던 무장혁명에 동참하게 된다.

 

체 게바라를 포함한 일단의 게릴라 전사들은 어렵게 장만한 자금으로 그란마 호를 타고 조국 쿠바에 상륙해서 고난 가운데 투쟁을 이어나갔다. 지병인 천식을 앓으면서도 코만단떼 게바라는 혁명의 최전선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투지로 결국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서방세계의 피델 카스트로와 쿠바 혁명에 대한 인식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체 게바라에 대해서는 강경한 공산주의자라는 인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의 안마당으로 불리던 쿠바가 일단의 국유화 조치와 반자본주의 성향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쿠바의 혁명지도부는 경제지원을 바탕으로 유혹하던 소련 측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반세기 가량 진행된 미국의 금수조치는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기 시작했고, 결국 쿠바 미사일 사태로 전 세계는 핵전쟁 일보직전까지 가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냉전의 격돌이 바로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가 활약한 쿠바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 혁명을 수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체 게바라의 존재가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점점 더 부담으로 작동했던 모양이다. 결국 체 게바라는 쿠바에서 맡고 있던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비밀리에 아프리카 콩고로 혁명의 무대를 옮겼다. 1965424일 체는 열댓명의 동지들과 함께 콩고에 도착했다. 문제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으로부터 해방이라는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혁명전쟁을 치렀던 쿠바와 달리, 체 게바라가 마주한 콩고에서의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군벌에 가까운 콩고 반군들이 이방인인 체 게바라의 지휘를 따르려고도 하지 않았고, 반군의 기강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이 성공하길 바라는 게 오히려 기적일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콩고에서의 체 게바라 행적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 그래픽 노블을 통해 적게나마 그의 활동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체는 당시 독립의 열기가 뜨거웠던 아프리카가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라고 생각하고 혁명전선의 최일선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1959년 이래 체와 각별한 관계였던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는 체의 콩고에서의 모험이 현명하지 못한 것이며, 그가 콩고에 간다면 타잔이 될 거라고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맞아 들었다.

 

그렇게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체 게바라는 대머리 중년 사업가로 변장해서 이번에는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의 해방을 도모했다. 그는 여러 후보지 중에서 포코 이론에 따른 혁명거점으로 교통의 요지였던 볼리비아를 선택했다. 1964년 군부 쿠데타로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르네 바리엔토스는 정부군을 동원해서 1967624, 산후안 축제 전날 카티바 광산의 광부들을 학살했다. 이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1971년에는 <산후안의 밤>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체 게바라는 1966113,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거쳐 볼리비아의 라파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남부의 발레그란데 지역으로 떠나 게릴라 투쟁을 시작했다. 체는 볼리비아에서 쿠바에서와 같은 빛나는 승리를 기대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쿠바와 달랐다. 동료전사이자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사람으로 이방인인 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 주었지만, 볼리비아에서는 외부인이 자신들의 혁명운동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게릴라 전투요원의 모집도 여의치 않아 고작 50여명 남짓한 병사들이 전부였다.

 

요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가 자국에 침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볼리비아 특수부대와 미국 CIA의 합동으로 체의 추격에 나섰다. 쿠바망명자 출신의 펠렉스 로드리게스가 CIA 소속으로 활동했고, 나치 전범 클라우스 바르비가 체의 추격에 조언했다고 한다. 결국 체의 게릴라 부대는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쿠바에서처럼 볼리비아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면서 체의 게릴라 투쟁은 사실상 실패했다.

 


1967108, 헬리콥터까지 동원한 볼리비아 특수부대에 포위된 체는 교전 끝에 부상당한 채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볼리비아 대통령 르네 바리엔테스는 재판도 없이 체의 처형을 명령했다. 39세의 한창인 나이에 비운의 혁명가는 그렇게 세상의 떠났다.

 

훗날 전직 CIA 요원은 체 게바라를 라틴 아메리카의 기존 질서를 뒤흔들 만한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혁명의 기운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순치화된 21세기에 체 게바라는 반항의 상징으로서의 실존은 사라지고, 티셔츠에 담긴 이미지만이 남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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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1-05-25 13: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체의 삶을 통해서 ‘혁명‘과 ‘정치‘는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쩌면 체의 삶이 짧게 마무리되었기에, 그가 우리 곁에서 ‘영원한 혁명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레삭매냐 2021-05-25 17:34   좋아요 2 | URL
너무 적절하신 지적이었습니다.

혁명과 이후의 정치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체는 나머지
를 피델 카스트로에게 맡기고 자신
은 혁명에 투신했던 게 아닌가 싶
습니다.

때이른 죽음이 전설의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