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0
뮤리얼 스파크 지음, 서정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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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게 됐다. 뮤리얼 스파크, 처음 들어보는 작가다. 그레이트 워라고 불린 1차세계대전이 끝나던 해에 영국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새로운 천년에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생전에 모두 22편의 소설을 발표했고 세 번이나 부커상 숏리스트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의 영예는 갖지 못했다.

 

이번에 만난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1961년에 발표된 작가의 6번째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에 나오다시피 진 브로디 선생이 주인공이고, 브로디의 전성기에 그녀가 개스라이팅한 6명의 소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브로디 무리(Brodie set)라고 불렸다. 마샤 블레인 여학교에서 1930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인연은 질기게 연장되었다. 진보적 사고를 가지고 과학보다 인문적 소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진 브로디 선생은 매카이 교장에게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녀를 해직시키기 위해 매카이 교장은 브로디 무리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하지만, 진 브로디가 어디 그렇게 만만한 인물이었던가.

 

훗날 성적 매력으로 유명한 로즈 스탠리, 수학적 능력이 뛰어났던 모니카 더글라스, 배우가 꿈이었던 제니 그레이, 요정 같은 체조 실력과 수영을 잘했던 유니스 가드너, 진 브로디 선생의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샌디 스트레인저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이 없고 우둔했던 메리 맥그레거가 그들이었다. 진 브로디 선생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을 밀가루 반죽이라고 부르며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로 끌어 들였다.

 

서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여섯 소녀들의 공상을 휘저으며 그렇게 전개된다.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자면, 진 브로디 선생은 결국 브로디 무리 중의 누군가의 배신으로 결국 해직되게 된다. 과학으로 대변되는 이성보다 감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던 진 브로디 선생은 브로디 무리에게 은연 중에 아니 노골적으로 엘리트 의식을 불어 넣는다. 십대 소녀들에게 학교와 친구들이 전부이던 시절, 자신들을 그렇게 인정해 주고 돌봐 주는 선생님에게 의지하게 되는 건 너무나 당연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자신의 전성기를 늘 강조하던 브로디 선생이 알고 보니, 유럽 대륙에서 한창 기승을 부리던 파시즘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는 이미 집권하고 있던 베니토 무솔리니에게 경도되었고, 나중에 독일의 실력자가 된 히틀러의 나치 돌격대를 찬양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7번째 브로디 무리가 되고 싶어하던 조이스 에밀리라는 학생을 부추겨서 스페인 내전에서 죽게 만들지 않았던가.

 

브로디 무리에서 독재자로 군림하던 진 브로디의 모습은 파시스트 지도자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진 브로디 선생이 매카이 교장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내부의 철통같은 단합을 도모하고, 브로디 무리의 소녀들에게 일체의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라. 도덕적으로도 진 브로디 선생은 이율배반적이었다. 고든 로더 선생과는 연인 사이였으며, 유부남이었던 테디 로이드와 키스하는 장면도 목격되었다.

 

진 브로디 선생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철부지 소녀들을 개스라이팅해서 그야말로 밀가루 반죽을 치대듯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빚어냈다. 그런 브로디 선생에게 브로디 무리가 반기를 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가 그렇게 주장하던 자신의 전성기가 이제 지나간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배신자가 등장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텔방에서 화재로 죽은 메리를 불쌍하게 생각하면서, 이제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헬레나 수녀가 된 진 브로디 선생의 엘리트 제자 샌디 스트레인저를 찾은 친구들은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노라고 고백한다. 샌디도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바로 전성기의 진 브로디 선생이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진리와 아름다움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과도한 자기 확신에 빠져 자신이 구사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라고 주문하는 독선적인 모습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교육 공장이라고 부르는 마샤 블레인 여학교를 떠날 것을 요구하는 매카이 교장의 요구를 전면 거부하고 투쟁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동원하는 장면 앞에서는 과연 그녀가 진정한 교육자였는 지에 대해 묻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처음에 조이스 에밀리가 스페인에 갔다고 했을 때, 불의에 맞서 싸우는 공화파를 위해 국제여단의 일원이 되어 싸우러 간 줄 알았다. 하지만, 파시스트 동조자였던 진 브로디 선생의 선동에 넘어가 내셔널리스트 반군인 프랑코 편에서 싸우러 갔다는 사실에 놀랐다. 진 브로디 선생이 과연 자신의 제자의 애꿎은 죽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아니지 않았을까.

 

사실 누가 진 브로디 선생을 배신했는가는 어느 순간 밝혀지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다. 브로디 무리의 소녀들이 선생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순간, 배신은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만한 이유는 충분했고, 누구라도 배신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는 되어 있었으니까.

 

소녀들의 성장과 진 브로디 선생의 몰락의 대비로 구성된 뮤리엘 스파크의 <진 브로디 선생의 전성기>는 은밀한 보이저리즘의 흥미를 제공해 주지 않았나 싶다. 브로디 선생의 몰락은 그녀의 업보이기 때문에 딱히 아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자의 다른 작품도 한 번 만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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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11 12:0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브로디 선생님의 반전 저도 놀랐었다능....

레삭매냐 2021-08-11 14:00   좋아요 3 | URL
소설의 진짜 악당은 진 브로디 샘
그리고 한 명의 배신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미미 2021-08-11 12: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에바그린 주연의 영화 <크랙>이 떠올랐어요. 에바 그린이 다이빙 교사라는 큰 특이점을 빼면 다른 것들은 유사한 듯 합니다. 레삭매냐님 별 4개라 하신것도 저에겐 5갠데 3개도 재밌을 것 같아요ㅎㅎ

레삭매냐 2021-08-11 14:01   좋아요 3 | URL
미미님의 <크랙>을 보고는 부랴부랴
너튜브로 해당 영화 리뷰를 찾아 봤
답니다.

영화 <크랙>의 원작은 실라 콜러
의 동명 소설이라고 하는데, 진차
뮤리엘 스파크의 소설과 상당히
유사하더라구요...

별은 무언가 아쉬워서 한 개를
뺐습니다. 소설은 재밌었습니다.

그레이스 2021-08-11 12: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진보적사고와 파시즘, 아이러니네요!
그런데도 그 안에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그렇구요.
한 쪽으로 경도된 사상은 다른 극단과도 통하나봐요.
교조주의와 독재가 통하듯이...!

레삭매냐 2021-08-11 14:03   좋아요 4 | URL
2차 세계대전 발발 전에, 영국에서
상당한 수의 지식인들이 히틀러
의 국가사회주의에 동조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진 브로디 선생은
왜곡되고 굴절된 방식으로 파시즘
을 받아 들이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뒷북소녀 2021-08-11 16: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목만 봤을 때도 궁금했었는데...
이 리뷰를 보고 나니 내용도 궁금해지는데...
평점은 또 낮으시네요.

레삭매냐 2021-08-11 17:13   좋아요 1 | URL
지난 주말에 도서관에 들른 김에
빌려서 읽었답니다.

재미는 있는데, 뭐랄까 좀 아쉽다
는 느낌이 들어서요. 우왁 좋다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졸라의 <돈> 읽으러 푸슝!

mini74 2021-08-11 16: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크림 중의 크림 ~~이 떠오르네요. ㅎㅎ 이 책 전 재미있게 읽었어요 ~~

레삭매냐 2021-08-11 17:14   좋아요 3 | URL
공감합니다.
저도 재밌게는 읽었어요.

크림 중의 크림이라는 표현
은 무언가 더 뜻이 숨어 있
지 않나 어쩌나...

뒷북소녀 2021-08-11 17: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마 돈은 앉은 자리에서 읽으실거예요^^

레삭매냐 2021-08-12 10:49   좋아요 0 | URL
어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세 권이나 빌려 오는 통에...

게다가 오늘은 엔도 슈사쿠
의 <사무라이>도 도착할
예정인지라 - 뭐 그렇습니다.

<돈>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더군요.

서니데이 2021-08-11 2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스라이팅을 한다니, 내용 궁금하네요.
제목도 작가도 낯설지만, 리뷰 읽으니 평범한 내용은 아닐 것 같아요.
레삭매냐님, 잘읽었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레삭매냐 2021-08-12 10: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분량은 적은데 강렬한 한
방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뚜껑이 없어 - 요시타케 신스케, 웃음과 감동의 단편 스케치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컴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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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이 이게 세 번째인가. 어제 에밀 졸라의 <쟁탈전>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무려 5권의 책을 빌려 왔다. 얍삽하게도 나름 읽기 쉬워 보이는 얇다란 책들을 주로 빌렸다. 그리고 보니 희망도서 책도 안 빌려 왔네 그래. 그리고 냅다 세 권을 줄줄이 읽었다. 이제 올해 목표로 한 120권에 25권 정도 남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예전 같이 왕성한 독서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독서의 길을 걸으련다.

 

역시나 삼천포로구나.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책 중에 이번 책이 가장 파이였던 것 같다. 처음으로 만난 <있으려나 서점>은 좋았었는데...

 

뭐랄까 이번에 <게다가 뚜껑이 없어>는 관통하는 특별한 주제가 없다는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제목처럼 그냥 뚜겅이 날아가 버린 것 같은 그런 사유의 행진들이 줄지어 이어진다. 아무래도 편린적이다 보니... 좀 그랬던 것 같다. 좁은 공간 성애자라는 저자가 좁은 공간에서 넓은 곳을 바라보는 장면을 보자니, 어려서 프라모델 조립식을 죽어라 만들던 나의 모습이 생각났다. 물론 특별한 연관성은 없다 그냥 그랬다고. 그 시절에는 왜 그렇게 그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사출 성형 그런 것이 조잡해서 조립식을 만들려면 참 쉽지가 않았다. 지금처럼 끌이나 그런 장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칼과 본드만으로 병사들의 팔다리를 붙이고 바지에 만날 본드를 흘려서 어머니에게 혼난 기억도 많다.

 

요시타케 저자가 엄청 소심한 사람이란 걸 알겠는데, 비오는 날 우산껍질을 벗길 적마다 사무라이가 칼집에서 칼을 뽑는 것 같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도 재밌다. 그런 그에게서 어떤 폭력성을 끄집어낸다면 좀 너무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중국집이 마감할 즈음에, 하루종일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간장통과 식초 그리고 라유통(?)들이 모여 뒤풀이를 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또 어떠한가. 요즘은 그놈의 배달앱 전성시대가 되면서 단지 플랫폼만 제공해 주면서 막대한 이윤을 챙기는 악당들에 대한 성토대회를 열지나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비해 수수료가 과다하다는 느낌이다. 결국 그렇게 되면 소비자들에게 좋을 게 없는데 말이다.

 

구원하고 싶은 동시에, 구원 받고 싶어하는 양가적 감정을 가진 우리 인간에 대한 생각은 또 어떤가. 그 누구에게도 구속받고 싶어하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시타케 저자처럼 모든 결정은 아내에게 미루고 싶은 그런 사람도 존재하는 게 이 세상의 단편이 아니던가. 나처럼 일단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미련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나는 내가 고른 책이 재미가 없다고 해도 꾸역꾸역 마지막까지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시절, 여학생에게 카세트테이프를 빌렸다가 별 것 아닌 일에 막대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하긴 누군가에게는 어떤 행동이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 싶다. 게다가 그 시절이 얼마나 또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이던가. 조금은 일본 스타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드라마로 만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도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뭐 그런 내용들이 등장하지 않았던가. 모든 게 즉석에서 처리되는 지금과는 다른 시절의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도 고부갈등이 있는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꼬맹이가 엄마에게 나중에 자기 색시를 괴롭히지 말라는 한 컷도 의미심장하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고 했던가.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지 어떻게 그 둘이 같다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닌 건 아닌 것이지. 서로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이들이 결혼이라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같이 산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이라는 걸 아이의 시선으로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이가 드니 점점 더 양보하고 포기하는 게 많아진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친해지기 위해 몇 십 년이라는 정성이 필요하다니, 가족이 사치스럽다는 주장은 또 어떤가. 대학 시절 우리보다 먼저 사회에 진출한 대학 친구가 술자리에서 가족이 웬쑤라는 말에 얼마나 충격을 먹었던가. 그런데 더 살아 보니, 꼭 우리 가족은 아니더라도 친척들 가운데 다양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마주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이해가 저절로 되더라. 다들 그렇게들 사는구나 싶었다.

 

어쨌든 <있으려나 서점>에 비해서는 매운맛이 좀 덜하긴 하지만, 어쨌든 우리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에서 이런 상상력을 퍼 올릴 수 있다는 게 요시타케 상을 작가로 만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첨에 만난 매운맛이 너무 쎄서 그런지 이 책은 아무래도 좀 싱거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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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8-09 13:1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요시타케 신스케, 저는 <있으려나 서점>, <벗지 말 걸 그랬어>, <엄마, 코 좀 뚫어주세요>(요건 그림만) 세권 봤는데 다 좋았어요. 이 책은 매냐님 기대에 미치지 못했나 봅니다. 요시타케 책 몇권 더 보려고 했는데 이 책은 걸러야겠네요.

레삭매냐 2021-08-09 17:57   좋아요 1 | URL
뭐랄까 자아분열하는 고런 느낌
이라고나 할까요?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나름 갠춘했는지도요.

라로 2021-08-09 13: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매냐님! 이제 겨우 8월인데 120권 중에 25권 남은 것이 왕성한 독서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저는 한 달에 한 권 겨우 읽;;;33=3=333=33333

레삭매냐 2021-08-09 17:57   좋아요 1 | URL
저야 뭐 만화도 보고 얍삽하게 얇은 책들
로 권수를 채우고 있는 걸요 ㅋㅋㅋ

라로님은 바쁘시니깐요.
바쁘신 와중에도 그렇게 책 읽으시는게
대단하십니다.

새파랑 2021-08-09 15: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해 전반기 목표가 120권 아니신가요? ^^ 요시타케 신스케 책은 서점 가면 조금씩 읽는데 이 책도 그렇게 읽어봐야 겠네요.

레삭매냐 2021-08-09 17:58   좋아요 3 | URL
요시타케 씨 책들은 왠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전 그래서 서점보다는 도서관을
애용한답니다.
 
풍장의 교실
야마다 에이미 지음, 박유하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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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 오래 간만에 야마다 에이미 작가의 책을 읽었다. 야마다 씨의 책들에 대한 판권이 소멸되었는지 이제 그녀의 책들은 거의 절판이 되어서 구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아니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던가 해야 한다. <풍장의 교실>에 대해서는 그전에 달궁 독서모임에선가 들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어쨌든 얼마 전에 중고서점에 헌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샀다. 그리고 세 개의 단편 중에서 두 개를 읽고 나서 마지막 <제시의 등뼈>를 읽다 말고 다른 두 책을 읽고 나서 마저 다 읽었다.

 

타이틀인 <풍장의 교실>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살풍경한 이지메, 왕따를 읽을 수가 있었다. 주인공은 도회지에서 사투리 쓰는 시골 마을로 이사 온 모토미야 안. 이 친구는 멋쟁이 선생님에게 관심을 받지만, 그 반대급부로 반 친구들에게는 미움을 받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는 반장이자 그 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에미코가 있었다.

 

모토미야가 소속된 반은 에미코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리고 모토미야에게는 불량소녀로 낙인 찍힌 언니가 한 명 있다. 엄마에게 담배를 핀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지도 않는 언니. 그런 언니를 보고 자란 모토미야 역시 자신도 곧 불량소녀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모토미야 반의 친구들 아니 이제는 적으로 돌변한 애들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그녀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아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심정이다. 결국 적들의 학대에 견디지 못한 그녀는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기에 이르는데, 어느 순간 그런 결정이 자신의 적들에게 복수의 방편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몰래 엿듣게 된 불량소녀 언니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적들을 풍장, 그러니까 경멸하는 방식으로 극복하기로 결심한다. 누군가는 정신승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또 나름 아름다고 도도한 방식이지 않은가.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우리 시절에는 그렇게 합심해서 한 명을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그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증오라는 감정으로 똘똘 뭉친 아이들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두 번째 작품인 <나비의 전족>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불과 읽은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말이지. 두 번째 인스톨은 어려서부터 자신과 동거동락했던 친구 에리코의 마수(?)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십대 소녀 히토미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 읽은 아니 에르노의 문병일기에 따르면 치매 환자들 사이에서도 종속 관계가 성립된다고 하던데, 멀쩡한 사람들 사이에서야 오죽하겠는가 말이다.

 

다만 방식이 예상 밖이었다. 내심 관심을 두고 있던 남사친 무기오와의 첫경험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의 심리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걸까? 그 시절을 통과한 지가 너무 오래되어 나의 기억이 실종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이야기인 <제시의 등뼈>를 오늘 막 읽어서 그런지 제일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화자는 코코, 우연히 만난 구두쇠 검둥이릭과의 육체적 쾌락으로 시작된 관계는 그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릭에게는 12살 먹은 아들 제시가 있다. 릭을 사랑하게 된 코코는 릭의 아들 제시를 자원봉사하는 심정으로 보살피려고 자기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원래 코코가 그런 여자였던가? 그녀의 친구들과의 대화를 유추해 보면 절대 아니다.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과 쾌락을 추구하는 철저한 에피쿠로스적인 삶의 신봉자였다. 하지만 릭을 사랑한다면 그의 부속물처럼 따라 붙은 존재 제시도 거두어야 한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의 비극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비록 엄마가 200달러 때문에 자신을 거두는 걸 거부하긴 했지만, 아버지 릭과 어머니 사이의 증오에 얽힌 관계를 보며 자란 덕분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거나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 배운 적이 없는 그런 철부지 소년이었다. 그래도 제시가 코코에게 하는 행동들은 너무 했다고 생각한다. 코코가 없는 실력, 있는 실력 동원해서 스테이크를 구워 줬더니만 나가서 치즈버거를 먹겠다고 하니 성질을 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순간, 코코가 보살이 아닐까 싶을 생각이 다 들 정도였다.

 

급기야 제시의 만행으로 코코가 얼굴에 화상을 입는 사건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자 이즘에서 제시의 엄마가 등장할 차례가 아닌가. 역시나 그들의 날선 대화를 통해 비로소 코코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은 절대 제시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사실을 말이다. 아니 그러려고 노력했던 자신의 과거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모두가 부질없는 노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접점을 받아 들여야 비로소 이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는 코코.

 

야마다 에이미 작가가 <풍장의 교실>의 테마로 잡은 이야기는 성숙과 상대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증오심을 폭발시키는 게 일상화된 시대에 야마다 씨가 오래 전 소설에서 파악했던 것처럼, 원인을 파악해서 무언가 고치려고 할 게 아니라 그들과의 공존의 방식에 방점을 찍은 것처럼 말이다. 대화로 해결이 안되는 이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 찌는 듯한 무더위처럼 갑갑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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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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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진부하긴 하지만 역시나 메멘토 모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모두 죽는다. 어느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비천한 사람도, 구시대의 귀족도, 어마어마한 재산과 권력을 자랑하던 갑부와 권력자들도 어떤 방식으로든 모두 죽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불변의 사실 앞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라는 개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도. 자신이 체험한 것만 글로 쓴다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 아니 에르노는 치매에 걸려 조금씩 노쇠해지는 어머니를 수년간 문병한 기록을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여기서 내게 드는 합리적 의심의 하나는 이 작가는 어쩌면 어머니 문병을 가면서 남긴 메모를 바탕으로 처음부터 책으로 낼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라는 점이다. 작가에게는 그 모든 게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냉혹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비록 어머니가 치매로 미치셨어도, 다만 살아계시기만 한다면 좋다고 고백한다. 아직 그런 경험이 없어서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가슴은 화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보니 돌아가신 할머니도 말년에 치매로 자신의 첫 손자와 며느리도 알아보시지 못했다. 어려서 나를 그렇게 돌봐 주시고 귀여워 해주셨다고 하던데, 기억 하나 못하시고, 수십 년 보아온 당신의 며느리를 타인으로 인지하시는 모습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기억이 사라지니, 오로지 본능은 아니 에르노의 어머니처럼 먹는 거에만 갔다. 할머니는 큰아버지 댁에서 사셨는데, 큰집에서는 하는 수 없이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웠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화장실의 비누를 갉아 잡수셨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건 과연 무엇일까? 우리 인간이 정상적인 정신으로 일상을 영위할 때만 인간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아니 에르노는 당신의 어머니 증세가 심각하기 전에는 자신의 집에서 모셨다. 하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게 되자 요양원으로 그리고 병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 지점이 작가의 죄책감이 시작되는 포인트다. 그녀에게는 일찍 여읜 언니가 있었고, 언니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자신을 어머니가 버릴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했던가. 어려서는 종교에 심취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이제는 자신이 어머니를 보살필 시간이 되었다.

 

어머니를 문병하면서 아니 에르노는 다양한 감정을 글로 표현한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어 가고, 이도 모두 잃으셔서 말랑말랑한 젤리 밖에 먹을 수 없으셨던 어머니. 이십대 초반에 문학교수가 된 무남독녀 외동딸을 사람들에게 자랑하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자신을 몰라 보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죄책감과 비통함 그 자체였다. 게다가 어머니가 거주하는 방에서 스물스물 피어오르는 똥오줌에서 기원한 구역질나는 악취에 대한 묘사는 정말. , 한숨이 절로 나올 뿐이다.

 

나는 다시 묻게 된다.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나라는 인간은 온전한 정신과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을 때만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일까? 더불어 사는 대동세상을 꿈꾸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타인의 이기적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타인에게 기대하는 선의가 얼마나 무모한 기대인지 잘 알고 있기에.

 

아니 에르노의 리얼한 문병일기를 읽으면서, 그녀에게 나 자신을 대입해 본다. 나라면 그녀처럼 애증의 관계로 얽힌 어머니를 매주 시간 내서 찾아갈 수 있을까? 어머니를 찾아가도 생기는 죄책감은 덜 수 없을 것이며, 그렇지 않았을 때 죄책감은 가중되지 않을까? 그리고 별의별 핑계를 다 대면서 자기합리화를 하지는 않을까 두렵다. 그리고 보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행동에 나설 그런 시간인가.

 

짧은 글이었는데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해준 그런 작품이었다. 다 읽고 나서도 계속해서 나의 뒤꼭지를 잡아당기는 그런 문제작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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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06 16: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문제 - 어떻게 죽느냐는 정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니 더 어려운거 같아요. 아픈 부모 더구나 치매로 모든 것을 잊은 부모님을 보는건 어떤 마음일까? 비누를 갉아먹는 부모님을 보면서 살아만 계시면 돼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어요. 분명한건 난 그러고 싶지 않다는.... 하고 많은 병 중에 치매만은 안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야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여전히 인생은 쉽지 않네요.

레삭매냐 2021-08-07 06:07   좋아요 1 | URL
나의 시작이 내 선택이 아니듯,
소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격렬하게 동의하는 바입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mini74 2021-08-06 17: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게라심이 한 말이 생각나요. 우리는 언젠가 다 죽습니다. 그러니 수고 좀 못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전 그럴 용기가 없어서 게러심이 대단하다 느꼈어요 ㅠㅠ

레삭매냐 2021-08-07 06:07   좋아요 2 | URL
소멸이라는 숙명 앞에서
고저 숙연해질 뿐입니다.

페넬로페 2021-08-06 18: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소설이 현실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도, 소설과 현실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겪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다르듯이요^^
그래서 죽음이라는 말이 나오면 왜이리 생각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어요**

레삭매냐 2021-08-07 06:08   좋아요 2 | URL
그것은 정말 미지의 영역이라
그런지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오토픽션의 대가 아니 에르노
다운 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stella.K 2021-08-06 20: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암 보다 더 무서운 게 치매라던데.
저도 연로한 울엄미 보면 은근 걱정이되곤 합니다.
물론 아직은 건강한 편입니다만.
이젠 슬슬 제 걱정도 하게 되죠. 몇 살을 살다 죽던 사는 동안은
맑은 정신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런지. 아놔...

아직 읽어 본 적가는 아닙니다만 이 작가에겐 오토픽션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쓰진 않는 것 같습니다.
경험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하신대로 글을 쓰기 위해 엄마를 만나는...
아무래도 작가는 그렇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 배우 한혜진이 속상한 일이 있어 훌쩍대며 울면서 언제고 자신이
배우가 되면 이렇게 울어줄 거라고 했던 것처럼.ㅋ
뭐 작가로 인정 받았으니 그러면 된 거지만 웬지 스펙트럼이 그다지 넓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경험만 쓰니...

레삭매냐 2021-08-07 06:14   좋아요 2 | URL
맑은 정신, 행잉 터프 !!!

저는 이 작가의 책을 서점에서 처음
만났는데(<단순한 열정>) 그 자리에
서 다 읽었답니다. 오토픽션 충격 그
자체!

문병일기를 보면 어머니를 병간호하
는 동안, 단순한 열정의 모티프가 된
사건(!)이 발생한 것 같더라구요 그것
참.

붕붕툐툐 2021-08-06 22: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호옷~ 저는 엄마가 ‘치매 걸려서 너희들 고생시키면 어쩌니~‘류의 말씀을 하실 때마다 ‘엄마는 숨만 쉬어도 잘하는 거니까 걱정마!‘라고 해요. 저도 엄마가 살아만 계시면 좋을 거 같아요. 할머니 때도 그랬고 저마음 완전 공감돼요~
저는 인간은 피해를 끼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생각해서 엄마도 저 자신도 치매 걸리는 게 그렇게 두렵지 않아요~^^
저 책 읽고 보고 싶네용^^

레삭매냐 2021-08-07 06:19   좋아요 3 | URL
인간에게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는
그런 운명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님이 그렇게
되신다면 참담할 것 같습니다.

‘건강하실 때 잘하자‘라고 말이라도
해봅니다.

그렇게혜윰 2021-08-07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에르노는 진짜 신기한 작가에요^^

레삭매냐 2021-08-08 08:17   좋아요 2 | URL
오토 픽션이라는 장르를 만들
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자기 이름을 딴 상도 생겼더라구요.

독서괭 2021-09-10 16: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09-10 16:07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괭님 ~

새파랑 2021-09-10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천재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역서 👍

레삭매냐 2021-09-10 16:15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도 축하 축하 !!!javascript:cmtForm_12841191.ExecWrite(˝3356786˝,˝s˝);

mini74 2021-09-10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매냐님~~~ 즐거운 불금 보내세요 ~~

붕붕툐툐 2021-09-10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드립니다!!^^

coolcat329 2021-09-10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분위기가 아주 훈훈하네요.
저도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1-09-10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9-1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서쪽으로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2년 전에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산 책을 구간으로 만들어서 읽었다. 모신 하미드의 <서쪽으로>. 파키스탄 출신으로 서구에서 공부하고 다시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으로 돌아간 남자. 이것은 판타지인가 아니면 우리네 일상을 적나라하게 후빈 그런 르포르타주인가.

 

10년 전 독재자 알아사드를 축축하겠다고 시작된 시리아 내전의 끝은 아직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정부군과 반군의 무력충돌로 수백만 난민이 발생했다. 그렇게 발생한 난민들의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바다 건너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이는 유럽 땅을 밟아 보겠다고 일엽편주 신세로 지중해 바다에 나섰다가 죽은 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뿐이다. 나와는 다른 피부색과 종교 그리고 관습을 가진 이들에 대한 생래적인 거부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난민 수용에 찬성하지만, 그런 내 생각에 대해 너희 집에 난민을 받아 들여 준다면 너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지란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나의 난민들에 대한 관용은 아마 거기까지였나 보다.

 

소설 <서쪽으로>의 주인공들은 내전이 벌어진 어느 곳의 남녀 사이드와 나디아다. 둘은 대학 강의실에 만나 조금씩 사랑의 싹을 틔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평온한 일상을 위협하는 가공할 만한 내전이 발발한다. 그냥 아주 평범한 청년들이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연애 좀 하겠다는데 극한의 폭력투쟁이 발생하다니... 조금 소심한 남자 사이드의 어머니가 총에 맞아 돌아가시면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새출발을 꿈꾼다.

 

여기서부터는 판타지의 영역이다. 도서의 어딘가에 이 있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드의 아버지는 같이 떠나자는 아들과 어쩌면 미래의 며느리의 제안을 거부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죽은 아내의 곁이라는 이유를 대면서. 어찌 슬프지 않을소냐. 그리고 그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낯선 땅에 가서 난민이자 이방인으로 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점을 말이다. 어쩌면 죽음이 난무하고, 죽은 이의 머리로 공을 차는 극악한 상황이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그런 아버지를 두고 비교적 안전한 서방행을 택한다. 아 참, 그전에 세계 곳곳의 잔잔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네들의 삶과 당장 떠나지 않으면 죽을 지도 모를 사이드와 나디아의 이야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이지? 다른 곳의 안온한 일상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서사를 극적으로 만드는 그런 장치로 작동한다.

 

을 통해 사이드와 나디아가 도착한 곳은 난민들의 중간기착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섬에 도착한다. 그런데 모신 하미드는 너무 쉽게 문을 통한 공간이동이라는 방식으로 난민들의 이주를 그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일단 좋다. 그런데 그곳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는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하긴 난민들이 어디에서 환영받는 존재였던가. 미코노스인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용변을 해결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위들이지만,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정말 쉽지 않은 그런 일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주인공들이 이동하는 다음 무대는 런던이다. 런던의 빈 집들에 세계 곳곳에서 온 난민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 없게 된 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이기 시작한다. 나디아에게 가장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첫 번째 스텝은 샤워였다. 그리고 보니 예전에 물이 귀한 에티오피아에 간 서구의 선교사들이 무너지는 게 바로 샤워였다지. 하루에 물 한 양동이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부족과 결핍을 모르고 자란 이들이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런던에서 사이드와 나디아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이들도 있었지만 또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반이주자들이 구사하는 폭력은 무시무시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말일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본고장에서 벌어지는 토끼사냥 같은 진압작전에 입안에 쓴맛이 도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사이드와 나디아 같은 난민들에게는 숙명 같은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연인을 넘어 굳은 동지애로 뭉친 사이드와 나디아의 관계에도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그 균열을 무엇으로도 봉합할 수가 없는 그런 수준의 것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머린이라는 곳이었다. 대서양 바다가 아닌 또다른 바다가 보이는 곳에 둥지를 튼 사이드와 나디아. 원래부터 독립적이었던 나디아의 주장 대로 런던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사이드는 군말 하지 않고 따라나섰다. 하지만, 고향을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을 그리워하던 사이드는 점점 종교와 영적 세계 그리고 자기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이드와 나디아의 파국은 어쩌면 예고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오래전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휴대전화라는 물건으로 이제는 모든 게 가능해진 모양이다. 이국땅에서 휴대전화로 나디아와 사이드는 각지에 흩어진 지인들과 소통을 시도한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뉴스를 접하고, 동시에 뉴스의 주인공이 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동시에 당혹스러워하기도 한다. 뉴스원인 동시에 뉴스의 소비자라. 아니 어쩌면 21세기 모바일 시대에 휴대전화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수단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전기와 수도가 아니고 휴대전화가 그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책의 어디에선가 만난 우리는 모두 시간을 통과하는 이주자들이라는 표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모든 것을 조용하게 파괴한다. 시간을 이기고자 노력했던 인간들의 노력을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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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12: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신간 사서 구간으로 읽는 신비한 독서나라네용~ㅎㅎㅎㅎ
마지막 따뜻한 시선 넘 좋습니당~

레삭매냐 2021-08-03 13: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뭐 그래도 2년을 넘기지 않고
읽었다는 데 의의를 두려구요 ㅋㅋ

새파랑 2021-08-03 14: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정도시면 2년 쯤이야 ㅋ 더 오래 묵힌 책들도 있으실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1-08-03 15:28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10년이 넘어가는 책들도... 쿨럭.

바람돌이 2021-08-03 15: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에게 2년 넘게 묵힌 책 아주 많습니다. ㅎㅎ
내전을 피해 이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판타지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는 책인가요? 난민 문제가 전 지구적인 문제가 되어가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서 관련없다고 내버려둘수는 없는거 같아요. 자기 땅에서 강제로 내쳐져야 하는 삶들이 더 없었으면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03 15:29   좋아요 2 | URL
난민 문제와 판타지를 적절하게 섞은
수작입니다.

적어 주신 말에 자극을 받아 검색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1. 2021년 세계 난민수 : 7,950만 명

2. 전 세계 인구의 1%가 난민이다.

3. 세계 난민의 50%가 어린이들이다.

4. 개발 도상국들이 85%의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있다.

5. 시리아 난민 가족의 80% 정도가 빈곤선 이하다.

6. 매 2초마다 한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