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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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나름 독서 슬럼프에 빠져 도서관에 들른 김에 이런 저런 책들을 빌렸다. 그 중에 하나가 줌파 라히리의 <책이 입은 옷>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얇다는 것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금방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데 9일이나 걸렸다. 아마 첫 번째 장만 읽다가 말아서겠지.

 

그런데 계속해서 기시감이 든다. 블로그를 뒤져 보니 역시나 4년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 모양이다.

 

솔직히 말해서 줌파 라히리와 나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책 읽고 나서 리뷰 쓰지 않은 경우가 드문데 그녀의 <저지대>를 다 읽고 나서 리뷰를 남기지 못했다. 로힌턴 미스트리의 <적절한 균형>을 읽고 나니 너무 현저한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영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저자는 자신의 혼란스러운 정체성 타령으로 <책이 입은 옷>을 시작한다. 내가 알기로 첫 책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는 자신의 실질적인 모국어라고 할 수 있는 영어 대신 이탈리아어로 글을 쓴다고 들었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야 영어든 이탈리아어든 다 번역이라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도서관에서 소장을 위해 책의 표지를 벗겨 책에 대한 정보를 박탈해 버린다는 분석을 듣고는 공감하기도 했다. 그렇지. 서점의 매대나 인터넷에서는 내가 읽고자 하는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도서관에 비치된 책들은 그 책들을 만나봐야 알 수가 있지.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책의 표지는 작가의 의중보다는 출판사의 결정을 따르는가 보다.

 

표지 때문에 어떤 작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책에 대한 이미지가 추락하는 경우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제임스 설터의 책들이 그렇다. 마음산책에서 나온 그의 책들 대부분은 어떤 화가의 그림을 책표지로 삼았는데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비닐로 포장을 해서 책을 읽던 시절이라면, <사냥꾼들> 표지는 아마 펭귄에서 나온 멋진 공중전 사진을 복사해서 대체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젠 다 귀찮아져서 그냥 읽는다.

 

저자는 책을 홍보하는 띠지나 각종 수상 정보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인데, 역설적이게도 아마 저자가 가장 큰 수혜를 받지 않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책에라도 첫 책으로 무려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점을 선전하지 않는 책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저자는 정말 그걸 모르고 순진하게 그런 글을 쓴 걸까. 입맛이 자꾸만 쓰다.

 

저자는 자기 책의 표지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적어도 자신의 책을 읽어는 보았기를 바란다고도 한다. 그런데 출판은 이제 산업이 되지 않았던가. 여전히 백년 전,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가 동생이 쓴 책의 표지를 그려 주던 시대의 고루한 작업 방식을 고집하시는 건 아니겠지. 책의 얼굴이라는 점에서 표지가 얼마나 작가에게 중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자신이 직접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어 책의 표지를 만들지 않는 이상 완벽한 표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돌고 돌아 결국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말할 따름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점에는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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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13 18: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헉 별 1개라니 잘 안맞았나보네요. 저는 이 책은 안읽어봤는데 ㅎㅎ 그래도 별 1개주셨는데 리뷰를 남기시는 레삭매냐님 대단합니다~!!

레삭매냐 2021-09-13 18:42   좋아요 4 | URL
이 책은 사실 그냥 자신의 일기
장 정도에 적을 만한 그런 내용
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국어 놔두고 왜 이탈리아어
를 고집하는 지 모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9-13 18: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작가는 자신의 책으로 말할 뿐이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런 책은 작가에 대한 실망으로 남을때가 많았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줄 때 왜 겉표지를 빼서 대여해주는지 ㅡ물론 이유가 있겠지만ㅡ저도 그것이 불만입니다. 책표지의 느낌도 중요한데 그것이 아쉽더라고요^^

레삭매냐 2021-09-13 18:43   좋아요 4 | URL
너무 실망해서리...

무언가 할 말들이 이것
저것 많았는데, 다 이자
뿌렀습니다.

그냥 독서 슬럼프 탈출
에 도움을 준 책으로...

아무래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아서일 거라고 추측해
봅니다. 애써 만든 표지를
제거해 버리는 시츄라니요.

scott 2021-09-13 18: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격하게 동감 .🖐 ^^

레삭매냐 2021-09-13 18:44   좋아요 3 | URL
4년 전에도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읽다 보니 참... 그렇네요.

mini74 2021-09-13 18:4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책표지에 정보가 많지요. 그리고 예쁘기도 하고요. 맨숭맨숭한 책을 빌리면 뭔가 아쉬워요 ㅎㅎㅎ

레삭매냐 2021-09-13 18:45   좋아요 4 | URL
제가 예전에는 산 책들 모두
에 하나하나 비닐로 싸곤 했답니다.

무슨 열정이었는지요. 그 책들은
아직도 쌩쌩하네요.

글다가 에라 이게 무슨 짓이냐 하고
다 때려치워 버렸지요.

멋진 책 표지의 책들은 다른 버전으
로 갖고 있어도 사고 싶습니다.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 리커버
가 그랬지요.

coolcat329 2021-09-13 19: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 저도 동감이에요. 저 그 표지들 다 싫더라구요. 근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은거 같아요. ㅎㅎ

레삭매냐 2021-09-13 20:30   좋아요 1 | URL
저는 그 출판사에서 표지갈이
할 때까지 깔거임 ㅋㅋㅋ

기회가 생기는 대로 말이죠!

표지 때문에 책 읽고 싶은 생각
이 1도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두 설터샘이니 읽습니다
주야장천.

scott 2021-09-13 20:46   좋아요 1 | URL
쿨켓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수년전에 이 출판사가 블로그 만들며 대대적으로 SNS홍보 하기 시작할때 새책 출간 작가 만남과 편집자들 만남 이벵에 당첨 되어서 간 적이 있습니다
거기 오신 다른 분들도 표지 전부 싫어 하더 군요
줌파 라히리-제임스 설터! 모두 ㅎㅎ

이 출판 관계자들은 예술성에 무척 충만 되어 있어서 신중하게 고르고(전문가들에게 추천 받았다고 하는데)
정작 돈을 주고 사서 보는 독자들이 싫어 한다는 걸 이해 못했던 당시 상황 ㅎㅎㅎ


syo 2021-09-13 20:58   좋아요 2 | URL
억 ㅋㅋㅋㅋ 저는 설터 그 표지들 되게 좋았는데..... ☺

붕붕툐툐 2021-09-13 20: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줌파 라히리 의문의 1패군요! 저지대 읽으려고 빌려놨는데, 리뷰를 못쓰셨군요! 사람들은 다 달라서 이 세상에 이리 다양한 책들이 있나봐요!! 다채로운 세상이 새삼 재미나게 느껴졌어요😊

레삭매냐 2021-09-13 21:32   좋아요 2 | URL
다양성이야말로 인간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학교 교육에서는 예
의 다양성을 살리지 못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는 생각입니다.

책으로 고런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라로 2021-09-13 2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줌파 라히리 책 2권 읽었는데 좋았어요. 그런데 <저지대>는 안 읽었고요. <축복받은 집>도 아주 좋았고, <그저 좋은 사람>도 그렇고요. 그런데,,, 줌파 라히리 넘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 되었어요. ^^;; 이탈리아 어로 글을 쓴다는 것은 저도 들었는데 이 책이 이탈리아어로 나와서 영어로 번역되어 한글로 번역이 된 걸까요?? 말씀처럼 어느 언어에서 번역 되었든 차이를 못 느끼겠지만요.^^;;

레삭매냐 2021-09-16 13:12   좋아요 0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줌파 라히리
작가의 데뷔작이 최고라고 생
각합니다.

그 후에는 천 모 작가의 길을
따르는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네 제목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는 걸 보니 이탈리아어로
쓴 책인가 봅니다.

서니데이 2021-09-17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1-09-18 07: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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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다시 줄리언 반스의 <소음의 시대>를 읽었다. 그 때와 비슷한 경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새로운 깨달음도 있었다고나 할까.

 

사실 난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이하 디디로 부르겠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그냥 한 번 인터넷으로 그의 음악들을 검색해 본 적은 있다. 아마 나와 현대 음악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음악은 아예 들어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르는 노래는 안 좋아하게 된다는 그런 편견 탓일까.

 

피아니스트 출신 디디 쇼스티(이건 미국에서 그를 부르던 별칭이라고 한다)25세 정도에 일약 소비에트 로씨야의 촉망 받는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1936년 그가 이제 막 아버지가 되었던 시절에 위기가 찾아온다. 위대한 지도자 대원수 스탈린 동지가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친견하시고, 순식간의 그의 사회적 명망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바로 권력층의 통제를 받는 언론은 그의 음악을 음악이 아닌 혼돈으로 그리고 디디 쇼스티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면서 이제 막이 오른 대숙청의 시기에 언제 상트레닌부르크의 악명 높은 빅 하우스로 끌려갈지 모를 그런 신세가 된 것이다. 그의 후원자였던 붉은 나폴레옹 투하쳅스키 대원수도 독재자의 눈밖에 나 뒤통수에 총알이 박히지 않았던가. 스탈린 대원수가 지배하던 시절의 로씨야는 그런 시절이었노라고 마치 줄리언 반스 선생은 자신이 직접 목격하기라도 한 듯이 그런 서사를 이어나간다.

 

그저 음악 밖에 모르고 시대의 소음에 애써 눈감고 있던 디디 쇼스티에게 첫 번째 위기가 그렇게 닥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다 말고, 문을 두드리는 NKVD 소속 요원들에게 잠옷차림으로 끌려갔다. 몇몇은 영원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디디 쇼스티는 정갈하게 가방을 싸고, 옷도 잘 차려 입고 심문 중에 피울 담배도 세 갑 정도 준비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밤마다 층계참에 나가 자신을 잡으러 올 요원들을 불안과 초조 가운데 기다렸다. 하지만 권력층은 그를 잊어 버렸는지 그의 불안을 누그러뜨릴 연락은 오지 않았다. , 빅 하우스에 출두하기로 한 월요일 시간에 맞춰 자신의 심문관을 찾으러 갔지만 일정이 없다는 말과 자신의 심문관마저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디디 쇼스티는 자신의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다시 12년의 시간이 흘러 1948년이 되었다.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운 위대한 조국 해방 전쟁에서 로씨야는 대원수의 영도 아래 승리했다. 물론 지도자의 전쟁 초기 잇단 전략적 오판으로 수많은 로씨야의 병사들과 인민들이 죽은 사실은 애써 외면되었다. 사회주의 로씨야를 대변하는 위대한 작곡가에게 조국 해방 전쟁은 구원과도 같았던 모양이다. 그는 당에서 제공하는 차량과 운전사, 별장, 오선지 그리고 부족하지 않은 식량으로 보통의 인민들과 다른 차원의 전쟁을 치렀던 모양이다.

 

디디 쇼스티의 다음 무대는 미국이었다. 로씨야 인민 예술을 대표하는 사절단의 일원으로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경제 수도 뉴욕을 방문했다. 그가 어디서 약을 하나 사기만 해도, 곧바로 자본가들은 디디 쇼스티가 약을 산 곳이라는 문구를 약국에 내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제일 존경하는 망명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의 대면을 꿈꾸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모욕과 수치 뿐이었다. 사실 서방의 예술가들은 위대한 작곡가가 독재자에게 저항하다가 당할 순교를 기대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디에게는 지켜야할 가족들이 있었고, 죽는 것보다 체제와 적당한 타협을 하고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는 걸 그들이 몰라주는 것이 원통하지 않았을까 싶다는 게 줄리언 반스의 생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을 쇼스타코비치를 위한 변명이라고 지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디디 쇼스티의 시선을 빌어 서구에서 사회주의에 동조하지만, 그 당시까지 존재했던 어떤 예술가보다 풍족한 경제적 자유와 명성을 누린 피카소에게 겁쟁이와 쓰레기라는 표현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는 과연 디디 쇼스티가 피카소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뉴욕 음악계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하는 독재자로 군림하던 토스카니니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내가 토스카니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정격연주와 암보의 대가라는 점 정도 밖에 없는데, 그야말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노예 취급했다는 지적에서는 그에 대한 오만정이 떨어져 버렸다. 그런데 그것도 단편적인 해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디디 쇼스티는 서방행에서도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매 순간이 권력층과의 대결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것 같았던 쇼스티에게 고난의 시간들이었다. 쇼스티에게 준비되어 있던 마지막 최악의 시기는 1960년에 찾아온다. 그 시절에는 이미 독재자도 죽은 지 7년이나 되어, 숙청의 시기에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던 이들이 복권되던 시절이 아니었나. 스탈린의 뒤를 이어 제1서기장이 된 흐루시초프(소설에서는 흐루쇼프라고 하지만 난 이렇게 표기하련다)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나치 독일의 전쟁기계에게 결정적 승리를 거둔 전쟁영웅이기도 했다.

 

스탈린이 상대적으로 세련된 방식으로 디디 쇼스티를 대했다면, 음악에 대해는 아는 게 1도 없었던 옥수숫대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의 하수인이었던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포스펠로프는 거칠게 위대한 작곡가를 밀어 붙였다. 서기장의 명령으로 디디 쇼스티에게 로씨야 연방 작곡가 조합 의장직을 맡겨 버렸다. 우리의 불쌍한 디디 쇼스티에는 자신을 벌레라고 부르면서까지 의장직을 맡지 못하겠다고 저항했지만, 권력층의 강요에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 시절에도 가입하지 않았던 당에 가입하고,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이다. 너무 오래 살아서 이런 비극을 당하게 되었다는 자조적인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디디 쇼스티는 자신의 바람과 달리 1975년까지 살면서 네 번째 윤년인 1972년에도 살아 있었다. 과연 그 해에는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갔는지 그 점이 궁금했다.

 

줄리언 반스 작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라는 실존 인물이 겪어야 했던 수난기와 자신의 생각들을 엮어 <시대의 소음>이라는 작품을 완성시켰다. 디디 쇼스티의 내면 세계까지 아우르는 작가의 접근 방식이 과연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후대의 소설가가 사실과는 다른 문학적변용을 했는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4년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소설의 초반 스탈린과 그의 하수인들과 벌이는 치밀한 생존 게임과 비해 후반으로 갈수록 서사의 힘이 떨어진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대의 소음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숙명에 대한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청년 시절의 디디 쇼스티보다 중년 그리고 노년 시절의 쇼스티에게는 지켜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일 수도. 그리고 과연 예술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어디선가 예술은 창조자와 향유자의 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적어도 클래식 음악은 점점 더 향유자들로부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작금의 대중음악 씬도 마찬가지로 점점 더 향유자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창조자 역시 아티스트인지 립싱크 퍼포먼서인지 좀 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자꾸만 자신의 신세를 칵테일 속의 새우에 비유하던 문장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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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2 12: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디디? 어디서 들어본 이름? 했더니 고도를 기다리면에서 봤던 ㅎㅎ디디. 실존인물이군요. 옥수숫대 흐루시초프 ㅎㅎ 디즈니랜드를 그렇게 가고싶어했다지요. 너무 재미있겠어요. 전 이분책은 미술관련 책 하나만 읽어봤어요. 시대의 소음 ! 찜 *^^* 합니다.

유부만두 2021-09-12 12:48   좋아요 6 | URL
황정은 소설에도 디디 나와요.

mini74 2021-09-12 12:54   좋아요 4 | URL
오! 맞네요 *^^*

레삭매냐 2021-09-12 18:45   좋아요 1 | URL
여기서 ‘디디‘는 제 마음
대로 부른 별칭이랍니다.

로씨야 사람들은 하도 이 이름
저 이름으로 불러서요 ㅋㅋ

황정은의 디디, 책만 자알 소장
하고 있답니다.

새파랑 2021-09-12 12: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이게 소설인지 평전인지 모호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거 같아요. 재독하셨다니 저도 한번 재독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

레삭매냐 2021-09-12 18:46   좋아요 2 | URL
처음에는 좀 버겁게 만났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만나니 기시감
과 동시에 그전에 미처 몰랐
던 점들이 보이는 느낌이랄
까요.

분량도 부담이 없으니 재독
추천해 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9-12 13: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생각보다 이 소설이 어려울 것 같아요.
실제 인물을 소설에 그려 넣는다는 것이 쉬울것 같지 않은데 이 작가는 쇼스타코비치를 어떻게 묘사했을지 궁금해요~~
읽어 보겠습니다.
매번 거북이처럼, 천천히 따라가고 있습니다^^

레삭매냐 2021-09-12 18:47   좋아요 2 | URL
거북스 ~ 좋습니다.
어쩌면 책은 그렇게 거북스처럼
읽는 게 맞는 지도 모르겠네요.

첫 번째 읽을 적에는 조금 버거
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부에서 2부를 거쳐 3부로 갈수록
느낌이 쎄~해지는 그런 추세였습
니다.

봄밤 2021-09-12 15:4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좋아하는데, 시대의 소음은 너무 기대하고 읽어서인지 정말 실망했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하신대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힘이 뒤로 갈수록 부족하다는 느낌이었고, 실존인물을 그대로 따와서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그 어떤 감상이나 생각도 전개할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었어요. 좋은 책이지만 더 잘 쓰일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나 아쉬웠던 소설.. 그래도 레삭매냐님 글 읽고 나니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드네요.

레삭매냐 2021-09-12 18:50   좋아요 2 | URL
저는 이언 매큐언 작가 전작을 하고
있는데, 어째 읽을 수록 자꾸만 실망
하게 되더라구요.

전 줄리언 반스 작가 팬도 아니면서
그의 책은 나오는 대로 꾸역꾸역 그
렇게 읽게 되네요. 하도 읽어서 이제
는 팬이 아니라고 하기에도 그것 참.

저만 그런 게 아니었나 봅니다.
끄트머리가 쩜, 흐지부지되지 않았나
뭐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감히.

독서괭 2021-09-12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악과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깊이 읽기 쉽지 않은 작품인 것 같네요. 전 줄리언반스 책 세권-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읽었는데 뒤에 두권이 특히 좋았어요. 이 책은 좀 어려울 것 같아서 뒤로 미뤄둬야 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09-13 11:06   좋아요 1 | URL
개인적으로 보았을 때, 음악적 지식
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에 대해 문
외한이랍니다.

역사도 배경지식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936-1937년 소련의 대숙청 기간에
대한 사실 정도만 알면 될 것 같습니다.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
파올로 조르다노 지음, 김희정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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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가면 참 다양한 책들을 만난다. 내가 항상 만나는 책들과는 다른 세계가 열린다고나 할까. 그냥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그런데 역설적으로 지난 8월에는 연간 가장 많은 책들을 만났다. 암튼 도서관에 가서 몇 편의 그래픽 노블과 짧은 책들과 만나면서 나름 독서 슬럼프 탈출을 시도했다. 장자크 상페 샘의 책이 도움이 됐다.

 

그리고 파올로 조르다노라는 글쟁이의 책을 하나 빌려 왔다. 제목부터 벌써 전염의 시대, 코로나 시절을 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다. 로마에 산다는 이 양반은 무려 물리학 박사님이다. 그런데 본업을 제치고 아예 전업 글쟁이로 나선 모양이다. 우리나라에 소설도 한 편 소개된 모양이다. 9년 전에 나온 <소수의 고독>은 현재 절판됐다.

 

조로다노 박사님은 작년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당시 가장 끔찍한 시절을 경험한 이탈리아에 살았고, 여전히 그곳에 삶을 영위하고 있다. 초창기에 이탈리아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무시했다가 그야말로 의료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붕괴하기도 했다. 중환자들 가운데 생존할 가능성이 그나마 큰 젊은이들을 위주로 집중치료를 했다. 이게 비극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비극이란 말인가.

 

코로나 시절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 건 가짜뉴스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난무하고, 시민들의 불안에 편승해서 증폭되어 유포되었다. 무시무시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이라는 미증유의 확산을 목도하면서 의료진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시행되지 않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확인증이 있어야 봉쇄령이 내려진 가운데, 식료품 구매를 위한 외출이 허용되었던 모양이다.

 

시민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믿지 않았고, 기관은 매번 방역 과정에서 실패를 거듭했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개발되지 않았던 백신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드디어 전국을 바꿀 게임 체인저인 백신이 등장했다. 하지만 온갖 유언비어에도 백신을 맞겠다는 이들이 줄을 섰지만, 백신의 절대 물량 부족으로 일상으로의 복귀는 요원하기만 하다. 저자는 코로나 전쟁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서구인들의 우려라는 생각과 동시에 비상 상황을 강조하면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의 발로가 아닐까. 오늘까지 2020215일 이래 이탈리아에서 코로나로 죽은 사람은 129,638명이라고 한다.

 

모든 사적인 모임들은 취소되었다. 관계에 우선하는 것이 자신의 소중한 생명이 아니었던가. 동시에 조르다노 박사님은 모든 괴로운 것들을 서둘러서 잊고자 하는 인간의 망각에 대해서도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전후에 사람들은 모두가 과거를 잊는데 최선을 다했다. 살아남은 이들도 죽은 자들만큼이나 괴롭긴 마찬가지였다.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를 읽으면서 혹독한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저자의 어머니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에 대해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나이가 들고 또 홀로코스트에 대한 저술들을 만나게 되면서 슈피겔만의 어머니가 한 선택에 대해 수긍이 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작금에 우리가 경험하는 코로나 사태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하는 육류부터 시작해서 플라스틱의 무분별한사용 등등이 결국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별을 아프게 만들고 온갖 환경 문제를 유발했다는 점에서 공동정범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깨달았다면 나부터라도 한 가지의 실천을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깨달음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저자가 구사하는 알제로(R0)라는 전염이 되는 과정에 대한 논리도 신선했다. 또한 자연의 본질이 예측 가능한 선형이 아니라 비선형이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 유능한 코로나 바이러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미 감염된 자, 감염대상자 그리고 회복자라는 세 가지 단순한 분류에 지나지 않는다는 저자의 수학적 분류도 냉정하지만 적확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소중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소비해 왔다. 가족들과의 나들이, 친구들과의 만남, 친지들과의 모임, 내가 좋아하던 독서모임 같이 소소한 일상들이 이제는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가 되었다. 몇 개월이면 끝날 거라는 초기의 예상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이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코로나도 종식될 것이다. 부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이 시간들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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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8 17:1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시대에 나온 코로나 책이네요. 정말 코로나 제발 종식되었으면 좋겠어요 ㅜㅜ 위드 코로나가 아닌 위드아웃 코로나가 되길 바래봅니다~!!

레삭매냐 2021-09-08 17:43   좋아요 4 | URL
어디선가 읽은 것인데...

코로나가 종식되면 더 쎈
놈이 올 거라고 하더라구요.

어쨌든 당장은 말씀해 주신
대로 코로나가 어서 사라지길
바랄 뿐입니다.

잠자냥 2021-09-08 17:2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평소 접하지 않던 분야까지, 관심없던 책에까지 손이 닿는 계기가 되는 곳이 도서관, 맞습니다! 도서관 옳소~!

레삭매냐 2021-09-08 17:44   좋아요 4 | URL
누군가 그러더군요.

현대 사회에서 비용을 들이지 않고
마음 껏 있을 수 있는 공간은 도서
관이 유일하다구요.

게다가 싸랑해 마지 않는 책들까지
부지기수로 있으니 얼매나 좋은 곳
인가요 그래.

mini74 2021-09-08 17:4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은 잘 나가는 뷔페집에 온 느낌? ㅎㅎ 저는 특히 신간코너 좋아해요. 그 곳엔 온갖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있지요. 코로나 이후 더 센 놈이 온다니 ㅠㅠ 저도 코로나가 좀 사라져서 고생하시는 분들 좀 편해지셨음 해요 ~~

레삭매냐 2021-09-08 21:28   좋아요 3 | URL
잘 나가는 뷔페집, 탁월하신
표현이십니다 !!!

신간 코너, 저도 애정합니다.

젭알 코로나가 속히 종식되고
일상으로 복귀할 날이 속히
오기만을 간절하게 기원합니다.

미미 2021-09-08 18:3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늘어난 여행도 자연을 훼손하게 하는데 일조 했다는데 코로나라는 결과는 인류에게 큰 숙제를 안겨주는 듯 합니다. 독서 슬럼프 탈출 도우미로 무게감 있는 소재를 택하셨네요. 레삭매냐님 슬럼프 대처도 급이 다르시군요😉

레삭매냐 2021-09-08 21:29   좋아요 3 | URL
아니 뭐 슬럼프는 얇은 책
을 읽는 것으로 탈출각이지요.

닝겡들이 많이 돌아 댕기지
않아 훼손된 자연이 원복하고
있다니 그것 참.

그래도 여행도 가보고 싶고요 -

페넬로페 2021-09-08 19:2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 가서 여유를 가지고 책을 봐야 하는데도 미리 검색해 필요한 책만 가지고 오는 낭만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제 코로나에 대해 그냥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진 듯 합니다.
웬만해서 뭔가 끝이 나줘야 복기도 하고 반성도 할텐데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보이네요^ ㅠㅠ

레삭매냐 2021-09-08 21:30   좋아요 4 | URL
저도 사실은 마찬가지랍니다.

사전에 골라간 목록만 촤악
챙긴 다음에 바로 튀는 시츄
지요.

지난 주말에는 시간이 낙낙
하야 호사를 좀 노려 보았답
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에
무기력과 공허 그리고 침묵
이 일상이 되어 버렸네요.

붕붕툐툐 2021-09-08 2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오히려 예전같이 시끌벅적한 삶을 못 살 거 같은 느낌? ㅎㅎㅎ그래도 여행은 진짜 가고 싶어요~ 저도 독서 슬럼프가 와가지고 고전 중입니다! 슬럼프 탈출 한 수 배우고 갑니다. 주말엔 도서관에 좀 가야 하는데, 놀러 다니느라..ㅎㅎㅎㅎ

레삭매냐 2021-09-09 09:3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죠 :>

저도 지난 주말에 수원 만석공원
에 가서 새뱅이 잡았답니다.
신났어요 !!!

독서 슬럼프 또 금세 탈출하실 겁니다.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것 참 신기하다. 오늘 회사에 거래처 갑질의 일환으로 어느 은행에서 상조회 프로그램을 팔러 왔다. 우리는 그들을 약장수라고 부른다. 정말 여러 가지인데, 우리 동료들은 단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영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까먹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도 이제 어느덧 나이를 먹어 부모님의 장례를 걱정할 나이가 되긴 된 모양이다. 평소라면 귀퉁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누구든 부모님의 상을 당하게 되면 경황이 없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상조회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면 자그마치 100여가지에 달하는 장례용품 사기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가령 예를 들면 27만원 짜리는 안동에서 만들어진 수의는 350만원으로 뻥튀기된다고 한다. 그러니 바가지 쓰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일 것이다.

 

늘상 그렇지만 이번 삼천포는 196767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신 저자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 이야기다. 하도 길에 읽다 보니 처음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니 교사 자격시험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남자의 자리>는 시작된다.

 

노동자 집안 출신의 아니 에르노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그들의 살아온 삶 대신 잘 나가길 바라신 모양이다. 하긴 세상의 어느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들보다는 잘 살길 바라지 않을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이 없는 빈민 노동자 계급에서는 오로지 양질의 교육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게 문제다. 돈이 좀 있다면 사업으로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어려서부터 잘 나가던 딸은 사범대에 진학해서 국가의 지원과 장학금을 받으면서 잘 나가지 않았던가. 나중에 소설가로 대박을 내면서 그야말로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한 마디로 말해 아니 에르노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다. 전후 리옹의 어느 작은 마을에 상점을 낸 에르노 패밀리의 삶은 당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처럼 신산하기 짝이 없었다. 점빵겸 카페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이웃 빵집에서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그마치 1킬로미터를 걸으셔서 다른 빵집에 가서 빵을 사다 먹었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런 기개를 가진 양반이 에르노의 아버지였다.

 

대처에 나가 성공한 딸이 그로서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지만 환갑 즈음해서 병이 발발하면서 그렇게 기백 좋던 남자도 결국 죽음이라는 대단원으로 막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하긴 우리네 삶이 대충 그러하지 않던가.

 

<남자의 자리>의 어디에선가 만난 기억은 저항한다라는 표현이 왜 그렇게 와 닿던지. 오랜 시간들이 지나다 보니 나의 기억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작가가 아마 나와는 다른 생각으로 저항하는 기억에 대한 서술을 했겠지만. 두 분의 어르신들이 아이를 맡았을 때, 구원의 순간이 도래했다던가 하는 부분이 아주 절절하게 공감이 갔다. 시간은 때로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또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남자의 자리>는 종언을 고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차례가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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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6 19: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책 저는 딱 두권, 이 책하고 단순한 열정 읽어봤는데 두 책사이의 간극에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

레삭매냐 2021-09-07 16:4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도 <단순한 열정>은
정말 충격적으로 읽었던 것 같습
니다.

<단순한 열정>에 비하면 <남자의
자리>는 순한 맛이지요.
 
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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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큰 상흔을 남긴 전쟁으로 지난 세기의 스페인 내전과 베트남 전쟁이 꼽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44, 스페인 출신의 23살난 작가 카르멘 포렛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니힐리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의 소설로 혜성처럼 스페인 문단을 폭격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의 스페인 바르셀로나다. 어떤 시절로 잡아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 유럽은 그야말로 전화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스페인에는 전화가 미치지 않았다. 독재자 프랑코의 줄타기 외교의 승리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이제 막 고아 소녀가 된 18세 안드레아는 대학 진학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상경한다. 이러한 도식은 상당히 고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바우 거리에 사는 안드레아의 외할머니와 앙구스티아스 이모 그리고 후안(+외숙모 글로리아)과 로만 삼촌 그리고 가정부 안토니아가 사는 대략 80년 전 스페인 막장드라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일단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이 보통이 아니다. 우선 안드레아를 옥죄는 역할을 담당한 앙구스티아스 이모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현대 스페인 여자들에게 선택지는 결혼 아니면 수녀원이라는 대단히 프랑코일파가 좋아할 만한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지닌 여성이다. 프랑코가 인민전선 정부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가톨릭 신앙에 근거한 스페인 전통 질서의 복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모는 작고하신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헤로니모 산스와 결혼에 실패하고, 신대륙으로 건너가 성공하고 돌아온 돈 헤로니모와 다른 곳도 아닌 교회에서 밀회를 즐기지 않았다고 했던가. 이 스페인식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근거가 희박하다 보니 어디까지나 진실이고 또 거짓인지 판단할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앙구스티아스는 안드레아를 붙들어 놓고는, 안드레아가 더 어렸다면 폭력까지 써가면서 훈육했을 거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앙구스티아스는 스페인 사회를 중세로 돌려 버린 프랑코 총통의 대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류의 억압과 속박에도 저항하는 캐릭터인 안드레아는 프랑코 총통에게 패배한 스페인 민중이라고나 할까. 시골에서 자신을 억압한 사촌 언니로부터 바르셀로나로 도주했건만, 자유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바르셀로나에는 한술 더 뜨는 강적이 안드레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안드레아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 에나였다.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의 에나 가정을 안드레아는 마냥 부러워한다. 아리바우 거리의 집에서는 뜨거운 물조차 나오지 않아 한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이제 막 대학시절을 시작한 청춘에게 처절한 가난은 친한 친구에게 숨기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에나의 가정과 자신이 더부살이하고 있는 아리바우 거리의 그것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전자가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었다면, 후자는 악몽 그 자체였다. 화가를 자처하는 후안과 팜므 파탈 스타일의 외숙모 글로리아의 육박전은 일상이었다. 무능력한 가장이었던 후안은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폭력을 구사했다. 이것도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동족상잔의 후유증이라고 해야 할까.

 

동생 로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가 내전에서 승리한 뒤, 로만은 그들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로만이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다고 해서 자신의 누나 앙구스티아스의 연애편지와 일기를 훔쳐보는 일이 용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카의 가방도 마구 뒤지지 않았던가. 도대체 이 집구석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싶을 정도다.

 

안드레아를 괴롭히던 앙구스티아스 이모가 결국 봉쇄 수도원행을 택하면서 안드레아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게 된다. 외할머니 댁에 더부살이하던 안드레아는 연금을 자신이 직접 수령하게 되면서 자신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고 나선다. 아리바우 패밀리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안드레아를 만류하고, 규모 있는 소비를 하지 못한 안드레아는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야채 삶은 물을 들이키는 궁상에 처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실소가 나오던지.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으로 읽었는데,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공화주의자들이 결국 내전에서 프랑코 일파에게 패배하고 독재자의 가혹한 통치를 받게 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콩가루 같은 아리바우 가족의 모습은 내전 당시, 단결해서 프랑코 파시스트들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분열로 자멸해 버린 인민전선의 모습이 연상됐다.

 

결국 자유를 꿈꾸던 영혼은 마드리드로 떠나게 되는 에나의 가정에 의탁해서 지긋지긋한 아리바우 거리에 이별을 고한다. 쓸쓸한 엔딩을 보면서 과연 안드레아가 마드리드로 가서 행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리바우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자아 찾기와 행복 추구가 전적으로 에나 가족에 의존해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코 통치 시절을 교묘하게 비판한 소설 <아무것도 없다>가 당시의 검열관들을 따돌리고 출간된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의 부역자들은 이 정도의 소설이라면 출간해도 체제 유지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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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21-10-08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해요^^

서니데이 2021-10-08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1-10-0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었군요 ^^

그레이스 2021-10-08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독서괭 2021-10-08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10-13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thkang1001 2021-10-1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