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렘 셔플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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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주문장을 날려서 구입했다. 읽기 시작하는데 한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다 읽는 데는 한 보름 정도가 걸렸다. 전작 <니클의 소년들>은 아마 이틀 정도가 걸렸던 것 같은데... 물론 지난 달에 좋은 책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통에 그런 탓도 있겠지만, 확실히 전작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 <할렘 셔플>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이 카니다. 아버지는 할렘에서 이름난 범죄자였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셔서 밀리 이모 밑에서 자라야했다. 그 시절, 사촌 프레디는 레이와 형제나 다름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리고 프레디는 할렘의 범죄 속으로 그리고 레이는 어렵게 대학에 진학해서 졸업하고, 아버지가 자동차 타이어에 남긴 범죄 은닉 자금 3만 달러로 가구점을 시작했다.

 

같은 도시에 살지만 뉴욕의 다운타운 맨해튼과 북부 할렘은 천양지차인 모양이다. 뉴욕 주로 맨해튼에는 몇 번 가봤지만, 할렘에는 아예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우범지대라는 편견 때문이었을까. 직접 눈으로 할렘의 실상을 보았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러지 못하고 있다.

 

회계사 아버지를 둔 엘리자베스와 결혼해서 아주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레이의 모습은 건실해 보인다. 문제는 빠듯한 살림살이와 흑인들을 상대로 한 가구 판매만으로는 보다 좋은 지역의 아파트로 이주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의 꿈은 리버사이드 드라이브(어딘지 잘 모르겠다, 아마 부촌이지 싶다)로 이사가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을 양탄자 판매상이라고 부르는 장인 릴런드에게 일종의 복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레이 카니는 자신도 모르게, 아니 범죄라는 걸 알면서 소소한 부업에 나선다. 장물아비로. 어쩌면 카니의 가구점이라는 상호는 그에게 완벽한 보호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예전부터 카니 삶에 항상 장애물이었던 프레디였다. 프레디는 마이애미 조, 페퍼 그리고 아서와 팀을 짜서 테리사 호텔을 털었다. 아서가 죽고, 마이애미 조는 사라져 버렸다. 카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버마 전선에 참전했던 페퍼와 함께 위험한 도박에 나선다.

 

1부는 이런 이야기를 다룬 1959년의 일이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카니의 사업은 잘 흘러 가고 있었고, 그는 변호사 피어스의 추천으로 성공한 흑인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뒤마 클럽에 신규 후보자가 되었다. 장인인 릴런드는 이미 그곳의 고정 멤버였다. 이런 이너써클을 경멸하던 카니였지만, 보다 나은 기회를 위해 뒤마 클럽의 가입을 희망한다. 한 가지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뒤마 클럽을 좌지우지하는 윌프레드 듀크가 그에게 일종의 가입비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거금 500달러를 듀크에게 일종의 뇌물을 건넸지만, 카니의 가입 신청을 거부되었다. 이에 분노한 듀크의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되돌려 달라고 하지만 카니는 문전박대당하고 심지어 경찰을 부르겠다는 협박에 후일을 기약하며 듀크의 사무실을 나선다. 듀크의 카니에 대한 판단은 착오였다. 듀크는 카니가 어떤 캐릭터인지 모르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파멸을 부를 그런 치명적 결정을 내린 것이다. 갈취학 박사 못지않은 경찰 먼슨과 칭크 몬터큐에게 갈취를 당하고 있던 카니는 복수의 칼날을 썩썩 간다. 군자의 복수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그건 비용도 드는 그런 문제였다. 어쨌든 카니는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듀크에 대한 처절한 복수에 성공한다. 경찰을 이용하려다, 오랜 동료 페퍼에게 한 방 얻어 맞기도 하지만.

 

다음 이야기는 유명한 1964년 할렘 인종 폭동의 와중에 벌어진다. 역시나 이번에도 문제는 프레디였다. 비무장한 15세 소년을 백인 경찰이 총을 쏴서 죽인 사건으로, 할렘은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어 버렸다. 콜슨 화이트헤드 작가의 전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느와르 스타일의 서사가 이어진다. 카니의 가구점은 이제 자리를 잡아 확장일로에 서 있다. 하지만 백인 부동산 재벌의 아들과 어울리던 프레디가 일으킨 문제 때문에, 카니는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업상 중요한 미팅을 하던 가운데, 프레디 사건의 실마리를 찾는 경찰들이 나타나 에이전트가 카니에게 실망한 채, 가게를 떠나고 만다.

 

프레디의 친구 라이너스는 호텔에서 약물 과잉으로 죽은 채로 발견됐다. 프레디를 찾던 카니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프레디는 백만장자 라이너스 아버지의 집을 털기도 했다. 카니는 다시 한 번 페퍼의 도움으로 위기의 할렘에서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들을 자기 소설의 핵심에 배치하고,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를 다루고 있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신작은 예전 작품들과 그 결을 달리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최악의 우범지대라는 할렘 출신 캐릭터들의 고단한 삶에 방점을 찍는다. 언제나 프레디는 카니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말이다. 프레디라고 해서 범죄의 그늘에서 살고 싶었겠는가.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너무 유혹이 많았다. 어지간한 개인의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는 그런 구조적 문제였다.

 

레이 카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과 범죄 조직의 갈취는 일상이었다. 그러니 자신도 어디서 온 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다루는 장물아비가 되는 상황 속에서 기묘한 자기합리화에 나선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 위험이 높을수록 수익도 커지는 법이다. 가구업은 대외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일일 뿐, 카니의 진짜 수입은 다른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아내 엘리자베스와 메이 그리고 존에게 보다 나은 환경과 소비재를 공급하기 위해 가장으로서 작은 위법 정도는 괜찮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그렇가면 카니의 아버지는 스케일이 달라서 그렇지, 카니의 경우와 크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합리화와 변명에 능숙하니 말이다.

 

전작 <니클의 소년들>로 기대치가 너무 올라가서 그런 진 몰라도 콜슨 화이트헤드의 이번 작품은 좀 싱거웠다. 화이트헤드 작가의 매운맛이 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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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11-06 08: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전 <니클의 소년들> 읽으면서 전작보다는 못하다.. 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근데 지금도 그 책이 솔솔 기억나면서 다시 읽고 싶고 그러더라구요. 다 읽고 나서 다시 읽고 싶은 책입니다^^ 저도 이 책 읽어볼래요. 제가 원래 순한맛을 좋아하거든요.

레삭매냐 2021-11-06 10:23   좋아요 4 | URL
저는 갠적으로 언더보다 니클이...

할렘과 그 동네 역사에 대해 알면
좀 더 재밌지 않을까 싶더라구요 :>

전 문외한인지라 -

페넬로페 2021-11-06 08: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할렘 셔플‘도 ‘니클의 소년들‘처럼 많이 무거워 보입니다. 뉴욕의 할렘가하면 안가봐도 유명한 슬럼지역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잖아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레삭매냐 2021-11-06 10:23   좋아요 5 | URL
하도 매운맛 책들을 봐서 그런지
<할렘 셔플>은 좀 순하게 다가온
모양입니다.

콜슨 화이트헤드가 구사하는
서사는 매우 탁월했습니다.

그레이스 2021-11-06 09:0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려는 중입니다.^-^

레삭매냐 2021-11-06 10:23   좋아요 4 | URL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가속이 붙고
재미졌습니다.

바람돌이 2021-11-06 10: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목만으로는 니클의 소년들보다 더 매운맛으로 예측했는데 아니었나보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06 10:24   좋아요 4 | URL
말씀을 듣고 보니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매운맛으로다가 -

라로 2021-11-06 13: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운맛이든 싱거운 맛이든 저는 콜슨 화이트헤드의 책은 읽은 것이 없어서 뭐라 질문을 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리뷰의 첫 문장 때문에 너무 궁금해요, 콜슨 화이트헤드! 저 매운맛 넘 좋아하거든요!!^^

레삭매냐 2021-11-06 20:47   좋아요 1 | URL
최근 미쿡을 대표하는 작가가
콜슨 화이트헤드가 아닐까 싶
습니다.

상도 두 개나 받고, 무엇보다
인종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탁
월한 실력을 잇달아 보여주고
있느니깐요.

어서 빨리 다른 책들도 번역되
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입니다.

막시무스 2021-11-06 1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많이 걸리신걸 보니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는 않았나 보네요! 니클의 소년들 보다 순한 맛이라도 올려주신 후기만으로도 관심은 충분히 가는 것 같아요!ㅎ 즐거운 주말되십시요!ㅎ

레삭매냐 2021-11-06 20:48   좋아요 2 | URL
재미지지 않다기 보다, 제가
이 책 저 책 찝적거리다 보니
완독에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니클>은 정말 숨 넘어가게
그렇게 읽었거든요.

주말이 평일보다 더 빡세네요
세상에나.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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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을 좋아한다. 벌써 17번째라니 미처 몰랐다. 그 중에 박민규 씨의 작품, 윤고은 그리고 주원규 씨의 책들을 읽었고 그 참신한 아이디어의 발상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한겨레문학상이 내 머리에 각인한 보증수표라고나 할까. 재밌게 읽을 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예상과 기대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9년 전의 쓴 리뷰의 재탕이다. 출판사도 재탕을 하는데 독자의 리뷰라고 안될 게 무엇이겠는가. 박민규에 대한 감상은 철회한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타인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 작가를 손절해 버렸다.)

 

신예작가 강태식 씨의 <굿바이 동물원>은 자본주의 4.0 시대에 가장 무서운 공포로 시작된다. 바로 실업! 아무리 고단한 직장인의 삶이라고 하지만,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인공 김영수는 몸으로 보여준다. 밥벌이를 위해 벌어오는 금전의 부재는 바로 가장의 권위부터 박탈한다. 주변에서 가난에 장사 없다는 말을 그야말로 밥 먹듯이 듣는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김영수는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는 부업전선으로 내몰린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눈물을 빨간 대야에 가득 담긴 마늘을 까며 훔치기도 하고, 인형에 눈붙이기를 하다가 본드에 중독이 돼서 우주를 유영하기도 한다. 웃음보다 어째 이 시대 남성의 비애가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이려나. 책 띠지에 실린 대로 능숙하게글을 써제끼는 이 작가는 사람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도 아주 능숙하구나.

 

이 정도로 워밍업을 한 다음 작가는 김영수가 얼마나 코너에 몰렸는지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 이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그는 무슨 짓이라도 할 준비가 되었다! 그 다음에 그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정규직을 닮은 그 무언가로, 김영수는 동물원에 취업했다. 체력 테스트를 위해 한 달간 꾸준하게 몸을 만들어 라이벌 아줌마를 제끼고 어렵사리 얻은 김영수가 얻은 일자리는 무얼까? 설마설마하던 상상이 그대로 재현이 된다. 돈을 지불하고 동물원에 입장한 관람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인간이 그리는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김영수가 최근에 획득한 일거리다.

 

(, 그리고 보니 이거 언젠가 영화인지 드라마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었나? 귀찮아서 찾아보지 않는다. 나는 그런 닝겡이다. 예전 같은 투철한 리뷰의 열정이 식어 버렸다고 해두자, 다 귀찮으니깐!)

 

그렇다, 그는 인간 마운틴고릴라로 위장해서 자아와 세상을 속이는 데 앞장선다. 그와 그의 동료 만딩고, 조풍년 아저씨 그리고 앤 모두 사람답게 살고 싶지만 세상은 그들의 희망과 염원을 가차 없이 짓밟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강태식 작가는 어쩌면 동물의 왕국이 악다구니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의 그것보다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썰을 슬쩍슬쩍 흘리기 시작한다. 성과급을 올리기 위해, 고소공포증과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 부저를 누르는 인간 고릴라들의 모습은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우리네 모습으로 그대로 치환된다.

 

강태식 작가는 조풍년 아저씨, 앤 그리고 만딩고의 순으로 김영수의 동료들이 품고 있는 알토란 같이 흥미진진한 그네들의 과거사와 미래의 꿈을 들려준다. 그렇지! 아무리 이 세상이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더라도 그런 희망이 없다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산단 말인가. 신예 작가라고 하는데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이미 책에 몰입된 독자의 심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게 수완이 대단하다. 다만, 세렝게티 동물원 고릴라 사의 우두머리 만딩고의 이야기는 너무 많이 나간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재밌는 있었지만.

 

역시 이 소설에서 최고의 재미는 세렝게티 동물원의 전직 동물직원인 소생이 등장해서 평온하던 인간 동물들에게 던진 작은 파문이다. 이제는 여행사 직원으로 변신한 은근과 끈기의 대마왕 소생은 동물직원들의 박대에도 굴하지 않고, 지긋지긋한 세금과 각종 공과금 그리고 속세의 모든 번민과 괴로움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획기적인 상품을 세렝게티 동물원에 소개한다. 가장 먼저 만딩고가 그의 꼬드김에 넘어가 멀리 아프리카 콩고의 정글로 날아가 문명의 이기인 휴대전화로 다른 동료들을 꼬시기 시작한다. 한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을 썼다는 작가의 냉소주의가 신념, 확신 그리고 슬픔의 삼위일체로 고스란히 전이된다. 이거 딱 내 스타일인데, 정말 멋지다!

 

작가는 인간적이라는 낱말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블랙 유머와 약육강식을 상징하는 극적 무대인 세렝게티 동물원을 통해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상생이 아닌 무한경쟁의 과정을 거치고, 바늘구멍 같은 취업 뽀개기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냉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물론 너무 진중한 주제이기 때문에 곁들여지는 깨알 같이 재미지는 에피소드의 무차별 살포도 잊지 않는다.

 

<굿바이 동물원>은 카카오가 많이 들어간 초콜릿처럼 그렇게 달콤씁쓰름하다. 처음엔 달콤하지만, 뒤에 가서는 진한 슬픔으로 변하는.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또 그 작가의 무한한 문학적 오딧세이를 기대하게 돼서 즐거운 한여름 밤의 추억이었다.

 

*** 무려 9년 전에 읽고 쓴 리뷰를 개정판 발간에 즈음해서 울궈 먹는다.

뭐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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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11-05 15: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다시 써주시니 저처럼 이 책을 놓친 사람이 우와 하면서 책을 주워담지요. ㅎㅎ

레삭매냐 2021-11-06 08:09   좋아요 0 | URL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한 드라마인지
영화가 생각이 나는데...
가물가물하네요.

붕붕툐툐 2021-11-05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은 모르겠습니다만, 카카오 많이 들어간 초콜릿은 먹겠습니다~ㅎㅎ
(하하, 울궈 먹은 페이퍼니 너그러이 봐 주시겠죵~ㅎㅎ)

레삭매냐 2021-11-06 08:10   좋아요 1 | URL
책은 아주 재미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유의 블랙 유머가 폭발케미-

그러믄요, 울궈 먹었으니깐요.

붕붕툐툐 2021-11-07 00:08   좋아요 1 | URL
아~ 블랙유머 좋아하는데~~ 읽어봐야겠네요!!ㅋㅋㅋㅋ
감사해용!😊
 
라스트 듀얼 - 최후의 결투
에릭 재거 지음, 김상훈 옮김 / 오렌지디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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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만나기 전에 원작 논픽션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개봉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리고 너튜브 콘텐츠로 사전에 공부도 많이 했다. 중세 기사도를 필두로 해서, 아직 현대적 사법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시절에 진위를 가리기 힘든 재판을 소위 신명재판이라는 이름 아래 한판 맞짱을 떠서 해결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야만스러운 방식의 재판이 흥미를 자극한다. UCLA에서 역사를 가르친다는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은 여러 면에서 독자 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쟁이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나 싶다. 결국 영화화까지 되었으니 말이다.

 

13681229일 토요일, 파리 부근의 생마르탱 수도원에는 수천명의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프랑스 왕국의 국왕 샤를 6세를 필두로 한 수많은 귀족들과 인류 역사상 법원이 마지막으로 인정한 사법 결투를 직접 목격하려는 사람들이 다시없을 빅 이벤트 구경에 나선 것이다. 국왕과 파리 고등법원이 정식으로 허가한 사법 결투의 주인공들은 다음과 같다. 원고 장 드 카루주와 피고 자크 르그리. 이 둘은 노르망디 출신의 귀족들로 오랜 친구 사이였으나, 노르망디의 대영주 피에르 알랑송 백작의 영지에서 봉토를 둔 갈등과 어느 사건 때문에 원수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판돈으로 건 마지막 도박, 아니 결투에 나섰다.

 

<라스트 듀얼>의 저자 에릭 재거 교수는 자그마치 10년에 걸쳐 중세 마지막 사법 결투로 기록된 카루주와 르그리의 사투를 추적했다. 저자는 두 사나이 간의 갈등의 원인부터 시작해서, 결투에 나서게 된 결정적 사건의 전개 과정과 법정 다툼 그리고 결국 결투장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이 역사적 사건은 중세라는 시대에 대한 모든 흥미로운 요소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도에 대한 엄격한 규칙과 의전들,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고 모욕당했다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기사들의 격투, 도무지 진실을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법정드라마까지 그야말로 좋은 서사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우선 <라스트 듀얼>의 시대적 배경은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계속되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왕의 봉신이자 지역 영주였던 장 드 크루주는 종기사(스콰이어) 신분의 백전노장이었다. 하지만, 발루아 왕조의 귀족 피에르 알랑송 백작이 카루주의 새로운 주군이 되면서 유서 깊은 귀족 카루주의 신세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정치적 식견이라고는 갖추지 못한 완고한 성격의 카루주는 하급 성직자 교육까지 받은 자크 르그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알랑송 백작의 총애를 받은 르그리가 잘나갈수록 카루주의 처지는 비참해졌다. 원하던 영지는 라이벌 르그리에게 돌아가고, 자신의 상관 격인 알랑송 백작과의 봉토 다툼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카루주는 자신의 주군인 알랑송 백작의 눈에 날 만한 행동들을 골라했다. 나라도 이런 부하하면 탐탁해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고, 후사마저 끊길 위험에 처했던 카루주는 새로운 규수 마르그리트를 맞아 새출발에 나선다. 나이 차가 많이 다는 새색시 마르그리트는 아름답고 총명한 처자였다고 한다. 문제는 그녀의 집안이 프랑스 왕을 두 번이나 배신한 대역죄인 집안이라는 것이었다. 두둑한 지참금에 미래의 풍족한 소작료를 보장할 영지 상속까지 받을 그런 집안의 마르그리트를 몰락해 가는 카루주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그런 핸디캡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궁핍한 재정 때문에 카루주는 부하 기사들을 데리고 스코틀랜드 원정에 나선다. 스코틀랜드 연합군과 함께 잉글랜드를 상대로 한몫 잡아보려는 그런 꿍꿍이였다. 약탈에 눈이 먼 무자비한 프랑스군은 방화과 살인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니 중세 전쟁의 본질이 명예나 무공 따위가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적 이익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카루주는 처음의 기대와 달리 별 소득 없이 고국으로 귀국해야만 했다. 그리고 왕에게 지급받지 못한 봉급을 수령하기 위해 파리로 간 사이,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육욕에 눈이 먼 전우이자 오랜 친구였던 르그리가 카루주와 그의 어머니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마르그리트가 머무는 곳을 찾아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마르그리트는 이 사건을 자신의 남편인 카루주에게 알리고, 카루주는 일단 자신의 직속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피에르 알랑송 백작에게 르그리의 파렴치한 범죄행각을 고지했다. 하지만, 알랑송 백작은 철저하게 르그리의 편을 들어 이 사건을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영주였던 알랑송 백작의 행동은 어떻게 보더라도 공평한 그런 판단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카루주는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와 파리 고등법원에 상고하기로 결심했다. 중세 말기로 접어들면서 거의 명맥을 잃어 가고 있던 사법 재판이 바로 그것이었다. 성폭행당한 아내의 명예와 복수를 위해, 완고한 귀족 카루주는 자신과 아내의 목숨까지 판돈으로 건 것이다.

 

14세기에도 변호사들이 법정을 무대로 활동했던 모양이다. 르그리의 변호사로 선임된 르코크는 하급 성직자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어쩌면 목숨을 담보로 걸어야 할 지도 모를 결투 재판을 피하고자 했지만 자신을 고용한 르그리는 유능한 변호사의 제안을 거부하고 카루주와 맞짱을 받아들였다. 파리 고등법원은 카라주의 상고를 받아 들여 세기의 이벤트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듀얼이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결투장으로 선정된 생마르탱 수도원에서는 모든 준비가 이루어졌다. 귀족 간의 결투 의식은 그전에 이루어진 법정에서의 심리만큼이나 복잡했다. 마상 결투를 위한 군마의 준비부터 시작해서, 전투용 도끼와 장검과 단검 모든 과정에 대한 점검이 이루어지고 구름 같이 모여든 군중들에게 이것은 절대 오락 같은 이벤트가 아니라는 경고와 함께 결투를 방해하는 이들은 재산과 생명을 빼앗길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선포도 이루어졌다. , 이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두 명의 기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저자의 논픽션은 픽셔너리한 드라마를 능가하는 그런 재미를 가지고 있다. 마르그리트 성폭행사건의 진위는 변호사 르코크의 기록처럼 알 수 없는 영역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중세 여성들은 배우자의 재산처럼 간주되었다. 만약 카루주가 사법 결투에서 패한다면, 마르그리트 역시 위증죄로 산 채로 화형당할 그런 운명이었다. 프랑스와 해외 각처에서 소문을 듣고 몰려든 대중들에게 사법 결투만큼이나 쇼킹한 후속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카루주 부처는 사방이 적대적인 상황에서 모험에 나선 것이다.

 

에릭 재거는 중세의 꽃이라고 불리는 기사들의 삶을 집요하게 추적한 결과, <라스트 듀얼>이라는 역작을 발표하는데 성공했다. 공간적 무대가 된 노르망디에 대한 현지답사는 물론이고, 갖가지 사료들을 검토하고 심지어 태피스트리에 기록되었다는 전언까지 분석하면서 마지막 사법 결투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카루주의 잉글랜드 종군 묘사 장면도 그렇지만, 카포메스닐 사건 현장을 그야말로 카메라로 중계하는 것 같은 기술 그리고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드론까지 날려 원거리와 근거리를 커버하는 듯한 느낌마저 줄 정도였다. 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영화에서도 생마르탱 수도원 결투 씨퀀스 고증을 상당히 잘했다고 들었다.

 

이번 가을에는 왜 이렇게 멋진 책들이 많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안드레 애시먼의 <아웃 오브 이집트>를 필두로 해서, 에릭 재거의 <라스트 듀얼>, 그전부터 읽고 있던 콜슨 화이트헤드의 <할렘 셔플> 그리고 오늘 막 도착한 N. 스콧 모머데이의 <여명으로 빚은 집>까지. 잇달아 좋은 책들을 만나는 즐거움에 어디 가서 꺅꺅대며 비명이라고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꿀꿀한 코로나 시국의 그나마 작은 위안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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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10-28 1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일 개봉했는데 벌써 평점이 9.10이네요?!!맷데이먼도 나오고 제가 좋아하는 조디 코머가 아마도 마르그리트 역인가봅니다. 사법결투라니 일단 영화를 먼저 한번 봐야겠어요! 😎

레삭매냐 2021-10-28 19:25   좋아요 2 | URL
영화 개봉하기 전에 배급사에서
한다하는 너튜버들에게 콘텐츠
를 좀 맹글어 달라, 뭐 그랬던 것
같습니다.

논픽션 역사물은 그야말로 끝내
줍니다. 영화도 기대만빵이구요.
어제 오늘 해서 이틀만에 다 읽
었답니다. 드랍게 재밌어서요.

아, 조디 코머가 마르그리트 드
카루주 맞습니다. <프리 가이>
에서 깜딱 놀랐습니다. 오 멋져
부러~

붕붕툐툐 2021-10-28 1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라스트 듀얼> 재밌다는 얘기 들었어요~ 원작 책이 있는 건 처음 알았네요!ㅎㅎ 레삭매냐님의 꺅꺅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합니다.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정말 큰 위안이죠!!😄

레삭매냐 2021-10-28 19:27   좋아요 2 | URL
이달에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작
가들의 책이 홍수를 이루고 있
어서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콜슨 화이트헤드, 안드레 애시먼...

에릭 재거 선생이 무려 10년이나
되는 시간을 투자해서 쓴 책이라
하니 더더욱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완성도가 탄탄합니다.

coolcat329 2021-10-28 19:4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비문학인줄 알았는데 글 읽어보니 문학이군요 . 이 책 읽고 영화보면 정말 다 이해되겠어요. 이 영화 별 관심 없었는데 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9 07:22   좋아요 2 | URL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에릭 재거
교수가 상상력을 양념으로 재구
성하 작품이랍니다.

영화는 원작을 어떻게 요리했
는지 궁금하네요.

scott 2021-10-28 2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매냐님도 플레그 착 붙 파 셨네요 영화가 넘 잘 만들었는데 원작도!

레삭매냐 2021-10-29 07:23   좋아요 2 | URL
예전에는 책에 밑줄이나
메모 같은 거 하나 없이
봤었는데, 언제부턴가 연필
로 죽죽 그어 가면서 본답
니다. 플래그도 달구요 ㅋ

mini74 2021-10-28 22: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신명재판. 그 당시 귀족들은 결투 신청이 두려웠을거 같아요. 안하자니 겁쟁이 하자니 죽을 수도 있고. 기사도에 신명재판 아!!! 넘 재미있겠어요. 영화도 왼성도가 높은가봐요 ㅎㅎ

레삭매냐 2021-10-29 07:24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그놈의 명예가
무언지...

기사가 명예를 잃으면 살
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그런 생각이 대세를 이루
던 시절이었다네요.

딱 할리우드가 좋아할
법한 스토리입니다. 아니
어쩌면 작가가 영화화까
지 고려하지 않았나 싶기
도 하구요. 일타쌍피!

새파랑 2021-10-28 23: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나면 너무나 즐거워서 미칠거 같아요 ㅋ 레삭매냐님의 비명을 듣고 싶습니다 ^^ 멋진 책이라고 하셔서 바로 찜입니다~!!

잠자냥 2021-10-28 22:58   좋아요 3 | URL
새파랑 변태설 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10-28 23:02   좋아요 3 | URL
앗 😅 저 그런 사람 아닌데 ㅎㅎ 레삭매냐님 느낌에 공감이 가서 제가 오바했나봐요ㅋ

레삭매냐 2021-10-29 07:25   좋아요 3 | URL
읽기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는데
1도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네요.

장장 10년을 준비해서 쓴 책이
라고 하니, 정성이 대단하네요.
 
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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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해마지 않은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집트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의 첫 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 책은 올해 만난 최고의 책으로 꼽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과연 나에게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일까? 문학을 필두로 한 모든 서사들은 모름지기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내 삶은 단조로워 보이지만, 또 타인의 그것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 단조로운 나의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법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범상치 않은 다른 이들의 삶에 나를 투사해 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세파르디 유대인의 후예로 태어나, 로마를 거쳐 결국 미국인이 된 안드레 애시먼의 기구한 삶이야말로 그런 좋은 이야기를 위한 소재에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다.

 

이야기는 스페인/포르투갈에서 가톨릭 통일왕국의 압제를 피해 이탈리아로 이주한 세파르디 유대인 조상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인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했다. 지난 세기 초, 야만적인 오스만 터키의 아르메니아 학살이 시작되던 시절 즈음인 1905년 애시먼의 가족들은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그들은 번성했다. 새로운 위험들이 닥쳐오기 전까지 말이다.

 


저자 안드레 애시먼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잃어버린 시간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르빈 롬멜 장군이 이끄는 독일 아프리카 군단이 카이로를 향해 진격해 오는 동안에도, 애시먼 가족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 잔류한 유대인들이 어떤 가혹한 운명을 겪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물론 그들도 어디론가 피난을 가야 한다는 어렴풋한 생각들은 하고 있었다. 독일군 기갑부대가 추격할 수 없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마다가스카르 아니면 인도까지 생각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안식할 땅은 그때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애시먼 가족은 태생적으로 한 곳에 정주할 수 없는 그런 숙명이었다. 압도적으로 아랍인들이 많은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유월절 같은 절기를 비롯해서 자신들의 관습과 의식 그리고 언어를 고수했다. 디아스포라 이래 그들을 덮친 숱한 위기 속에서도 애시먼들은 생존에 성공해온 것이다.

 

<아웃 오브 이집트>를 읽으면서 왜 그렇게 유대인들이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는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집트 땅에 살면서도 그들은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같은 이방의 언어를 사용했다. 그들에게 아랍은 천박함 그 자체였다. 상이한 종교에서 유래한 태생적 이민족과의 불화는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전에 아버지 앙리와 청각 장애가 있던 엄마 지지의 로맨스도 상당히 생각해 볼만한 그런 점들을 제공해 준다. 각각의 자녀들의 엄마들이었던 공주와 성녀는 이웃에 살았다. 콘스탄티노플에서 쫓겨나다시피 이집트로 이주해온 공주네는 당구장을 시리아계 유대인인 성녀네는 자전거포를 운영했다. 라디노 유대계인 공주네는 성녀네 집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아마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유대인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 그 전의 이야기들은 모두 가족의 전언으로 어린 소년 안드레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커서 하바드 출신 박사이자 문학 교수님이 된 안드레 애시먼은 그 시절의 기억들을 끌어 모아 이런 멋진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반세기나 너무 더운 이집트 땅에서 살아온 그들에게 두 번째 위기가 닥쳤다.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와 일단의 장교단이 부패하고 영국 제국주의에 협력해온 파루크 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나세르가 촉발한 아랍 민족주의 물결은 결국 서방 열강과의 충동을 야기했다.

 

4년 뒤, 나세르가 수에즈 운하에 대한 이집트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국유화 선언을 하자,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스라엘이 전쟁을 일으켰다. 전쟁에서는 연합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재침략이었던 수에즈 전쟁은 각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세계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던 시절에,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비밀공모는 패착이었다. 나세르는 비록 전쟁에 지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대의명분에서는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이 시기를 안드레 애시먼은 냉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루고 있다.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아랍인들은 엄격한 등화관제를 실시한다. 등화관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참 매력적이었다. 전쟁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해야 하니 말이다. 그리고 보니 코로나 시국에도 우리는 술도 마시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지 않던가. 그전처럼 자유롭지는 않아도 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유대인들은 적에게 협력한 비열한 배신자로 내몰린다. 플로라 숙모와 거리에 나갔던 안드레는 돌팔매질을 당할 뻔하기도 한다.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이라고 해야 할까. 어디에서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숙명의 한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아랍 학생들이 절대다수인 학교에서도 안드레는 체벌을 당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아랍어에 코란까지 필사해야 할 판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애시먼 가족들은 반세기나 살아온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지도 모르겠다. 무슬림 세계에서 유대인보다 차라리 기독교인의 존재가 나았는지 무슈 시뇨레는 그리스 정교도로 개종하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개종까지도 불사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보니,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에서 개종한 세파르디 유대인들을 신뢰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위기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마지막 위기는 명백하게 애시먼 가족을 위시한 모든 유대인들에 대한 재산 몰수와 추방령이었다. 그런데 마치 애시먼 가족들은 이 모든 사태를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들이고 특히 공주 할머니는 손주를 데리고 그전부터 해온 자산의 해외도피를 서슴지 않는다. 안드레의 아버지 앙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가 섬유공장을 경영하면서 이룬 재산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세르의 민족주의 세력들이 통치하는 이집트 국가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재산을 빼앗고 아랍 국가에서 떠나라는 일방적인 명령을 내렸다.

 

안드레의 할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100세가 넘으신 증조할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 온갖 위기를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돌파해온 가족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살아온 알렉산드리아의 거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계속해서 말한다. 찬란한 지중해 바다와 아지자와 같은 삶의 동반자들 그리고 자신들이 나고 살아온 정든 땅을 왜 떠나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또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그들의 존재는 언젠가는 그곳을 떠나야 하는 이방인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랍 현지인들보다 더 알렉산드리아라는 공간을 더 사랑한 이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 앙리를 찾는 전화부터 시작해서, 결국에는 체포영장까지 발부되지 않았던가. 누가 학교에서 아랍인들의 개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고, 교사들로부터 아랍어를 하지 못하는 유대인이라고 해서 체벌까지 받아야 한단 말인가. 안드레의 엄마 지지가 학교를 찾아가 자신의 아들을 체벌한 교사에게 뺨을 내갈기는 장면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평소에는 수줍고 얌전한 아줌마였지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하고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순간, 어느 용맹무쌍한 전사보다도 열렬하게 싸우는 게 바로 안드레의 엄마였다.

 

책을 읽는 내내, 익숙한 곳에서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동조로 가슴이 먹먹했다. 동시에 저자가 회고록(메무와)의 곳곳에서 보여주는 진중한 유머는 안드레의 할머니들이 즐기는 달콤한 간식거리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런 달콤 쌉싸름한 서사의 구사와 균형감각은 역시나 대가다운 실력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하바드 스퀘어>의 출간을 기다려 보련다. <아웃 오브 이집트>도 나왔으니 말이다.

 





안드레 애시먼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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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0-26 19:1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이런 말을 들으면 자꾸 착각해서 고대가 연상돼요.
안드레 애시먼 작가의 이야기는 1900년대 같군요~~
레삭매냐님께서 만난 올해의 최고의 책이라니 급관심이 갑니다^^
내용도 흥미로워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그러고 보니 서양의 도시 이름
들이 모두 이집트에서 연유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랍니다.

알렉산드리아, 테베, 멤피스
그리고 이브라히미에(아브라함)...

메무와의 시기는 1940년대부터
애시먼 가족이 이집트를 뜨는
1965년까지인 듯 합니다.

새파랑 2021-10-26 19: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올해의 책이라니 이건 필독서군요~!! 전 이 작가의 작품은 읽어보진 않았는데 읽어봐야 겠어요~!!

레삭매냐 2021-10-26 20:35   좋아요 4 | URL
읽으면 읽을 수록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 싶어
지는 그런 작가랍니다.

강추하는 바입니다.

mini74 2021-10-26 2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난 매냐님의 행복이 글에서 느껴집니다 ㅎㅎ 매냐님 올해의 책이라면 저도 당연히 *^^*

레삭매냐 2021-10-26 22:18   좋아요 1 | URL
두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책입니다.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

붕붕툐툐 2021-10-26 2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드레 애치먼 작가군요! 레삭매냐님 글에는 안드레 애시먼라고 되어있는데 읽는 방법의 차이겠죵? 이러나 저러나 저에겐 초면인데 매냐님은 좋아하는 작가시군요!! 저도 담아두고 읽어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1-10-26 22:20   좋아요 3 | URL
한국에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으로 알려졌는데 저는 <알리바이>
읽고 나서 뻑이 갔습니다.

애시먼 작가 이름의 발음 논란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너튜브 동영상
을 하나 달았습니다.

저는 백 번 들어도 자신의 이름을
발음하는 저자의 이름이 애시먼
으로 들립니다.

붕붕툐툐 2021-10-26 22:43   좋아요 2 | URL
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작가군요!(작가 이름을 잘 안 읽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저도 <알리바이> 읽어보고 싶네용~ 너튜브 들어보니 애시먼이 정확한데요? 근데 왜 굳이 애치먼이라고 쓰는 걸까요?🤔
 
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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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헌책방에서 새로 나온 프랭크 허버트의 <> 신장판을 샀다. 가을에 영화판 듄이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먼저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너튜브로 스페이스 오페라 듄의 방대한 세계관에 대한 정보도 열심히 메모해 가면서 시청했다. 모든 건 영화 <>을 만나기 위한 나의 세심한 준비였다. 그리고 드디어 고대해온 영화 <>을 만났다. , 참 책은 미처 읽지 못했다. 한 절반 정도 읽었나. 내가 그렇게 만난 <>은 타투인 행성에서 시작된 또다른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워즈>의 그것을 능가하는 역작이었다.

 

어제 어느 팟캐스트에서 들은 것과 달리 155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은 1도 지루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면서 도대체 영화를 어디에서 찍었는지 궁금해서 찾아 보니 아라키스 행성 씬은 요르단의 와디 룸과 UAE의 아부다비에서 찍었다고 한다. 아트레이드 집안의 칼라단 씨퀀스는 노르웨이에서. 자그마치 56년 전에 나온 원작소설을 가지고 이런 영상들을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주력 1만년 정도에 시작되는 <> 사가가 품은 기본 얼개는 생존과 복수다. 우주를 통치하는 제국의 황제는 아트레이트 가문을 아라키스 행성의 새로운 지배자로 파견한다. 아트레이드 가문의 전임자는 라이벌 하코넨 가문이었다. 그들은 80년 동안 사막으로 이루어진 아라키스 행성에서 우주 항해(stella travel)에 꼭 필요한 물질인 스파이스를 채굴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초암 공사라고 불리는 길드(guild)가 우주 항해를 독점하고 있었는데 오랜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항해사들에게 스파이스는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었고, 스파이스의 생산과 유통을 지배하는 자가 광활한 우주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왜 잘하고 있던 하코넨 가문 대신 레토 아트레이드 공작을 아라키스에 파견해서 분란을 일으킨 걸까?

 

<> 사가의 상당 부분은 중세 봉건시대의 주종관계를 연상시킨다. 나는 이 소설과 영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 서양 중세의 봉건제는 동양의 절대군주권을 바탕으로 한 봉건제와 전혀 달랐다. 어디까지나 서양 봉건제의 기본은 대영주와 소영주의 계약 관계였다. 중세 경제의 기본은 토지를 대영주가 소영주에게 제공하고, 토지의 지배를 일임받은 소영주는 대영주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듄에서 핵전쟁의 위험을 깨달은 이들은 중세로 돌아간 것처럼 우주선을 띄우는 하이테크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중세 기사들의 칼싸움 전통을 다시 부활시킨다. 스페이스 오페라에 샤이-훌루드의 이빨로 만든 크리스 나이프를 들고 싸우는 장면은 듄의 쌍둥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스타워즈>의 라이트세이버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근거지인 물이 풍부한 칼다란을 떠나 레이디 제시카와 아들 폴을 데리고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척박한 아라키스에 도착한 레토 아트레이드. 언젠가 레토의 지위를 이어받을 아들 폴은 격렬한 무술 작업을 받으면서 차세대 공작으로서의 준비에 여념이 없다. 프랭크 허버트 작가는 여기에 한 가지 더 베네 제세리트라는 미스터리한 집단의 활동을 추가한다. 폴의 어머니 제시카는 그 집단의 일원으로 언젠가 출현할 메시아의 도래를 위해 음지에서 모종의 계획을 준비한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미래의 메시아가 될 운명의 남자 폴(티모시 샬라메 분)은 베네 제세리트 집단의 후예답게 밤마다 앞으로 그에게 닥칠 기구한 운명의 실마리들을 꿈을 통해 예지한다. 폴은 꿈에 등장하는 미지의 프레멘 소녀의 정체가 궁금하다. 과연 아라키스 행성에서의 삶은 그를 어떤 운명으로 인도할 것인가.

 

<스타워즈>에서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가 타투인 행성의 평범한 청년에서 갤럭시를 구할 영웅으로 거듭나듯이, <>에서도 폴 아트레이드는 가문의 숙적 블라디미르 하코넨 남작과 황제가 계획한 음모를 분쇄하고, One이 되기 위한 장도에 나서게 되는 과정이 듄 파트원에 담겨 있다. 1984년인가 아니면 그전에 영화 듄을 기획한 감독이 듄의 방대한 세계관을 담기 위해서는 적어도 16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영화와 소설을 번갈아 보니 그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반군의 희망이자 라스트 제다이였던 것처럼, 철부지 소년 폴 아트레이드 역시 제국 정예부대 사다우카들의 공격과 닥터 유에(장 첸 분)의 배신으로 아버지 레토를 잃고 단신으로 레이디 제시카와 불구덩이가 된 아라키스의 수도에서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 그전에 스파이스 채굴 광경을 시찰나섰다가 처음으로 무시무시한 샤이-훌루드의 공격에 직면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열세인 상황에서 자신들을 옥죄는 제국과 하코넨 가문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와 사막에 거주하는 프레멘들의 조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만여명의 프레멘들이 사는 아라키스 행성는 한 때 낙원도 될 수 있었으나, 스파이스가 발견되면서 프레멘들의 운명은 그전과 1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 아무리 레토 공작이 프레멘들의 지도자 스틸가에서 약속을 해도 프레멘들은 아트레이드 가문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현대 문명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인 석유가 중동에서 발견되면서, 그 동네가 세계의 화약고가 된 것 같은 운명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프레멘들에게는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그전에 이미 아라키스 행성에서 공작을 시작한 베네 제세리트들의 활동이 주효했던 것은 아닐까. 이 역시 서양 문명에서 하나의 중심축을 형성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물이라는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자원의 풍족한 공급을 약속한다면, 프레멘들은 폴에게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시 아라키스를 장악한 하코넨 남작은 자신의 행동대장 라반(그렇다, 그가 바로 가오갤의 멋진 캐릭터 드랙스다!)에게 프레멘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참고로 데이브 바티스타 아저씨는 왕년에 WWE 레슬링 챔피언이라고 한다. 놀랍군. 미국 레슬링이 기본적으로 쑈라는 걸 감안한다면, 연기의 확장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듄을 또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아버지 레토 공작과 모든 것을 잃은 미래의 메시아 소년 폴이 최악의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해 가면서 One으로 성장해야만 한다. 모든 것이 적대적인 주변환경 속에서 폴은 자신이 지닌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면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때로는 목숨을 건 결투까지 마다하지 않고 극복해내야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폴에게 주어진 것은 거니 할렉에게 전수받은 전투기술과 프레멘 소녀 차니가 건네준 크리스 나이프 한 자루 뿐이다. 이런 기구한 운명을 이겨낸 사람만이 미래의 One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일종의 영웅서사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런 방대하면서도 잡다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듄의 서사가 얼마나 영화화하기에 어려웠을 것이라는 것은 희대의 망작으로 알려진 데이빗 린치의 <>의 경우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번에 메가폰을 잡은 드니 빌뵈브는 그런 모든 지표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새롭게 재탄생한 <> 사가의 시작을 만방에 알렸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영화 <>은 나에게 1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헤딘 아저씨가 탐험했다는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동경이 있어서 그런지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심지어 스파이스 가루가 섞여 있는 사막 풍경은 오히려 신비롭기까지 했다. 도대체 이런 촬영들을 어떻게 해낸 걸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말이다. 37년 전에는 특수효과의 미비로 구현이 불가능하던 시퀀스들이 오랜 시간이 흘러 기술적으로 극복된 점도 새로운 듄의 성공의 한 축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1984년작에서 폴 역을 맡았던 카일 맥라클란에 비한다면, 티모시 샬라메의 캐스팅은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여리여리하지만 강단 있는 캐릭터로 성장해 가는 주인공 역할에 이보다 더 좋은 캐스팅은 없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영화에서 다른 프레멘들은 모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감싸지만(, 난 왜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 생각이 나는 걸까)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는 관객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모래를 막는 마스크 따위는 과감하게 착용하지 않는다. 이건 팬서비스인가?

 

영화가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서사 구조가 탄탄해야 한다는 건 기본이다. 호메로스가 구전으로 <오딧세이> 타령을 시작한 이래, 사람들에게 좋은 구라가 외면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나저나 Part Two는 언제 나오는 건가 그래. 리부트된 스페이스 오페라는 시작부터 창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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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23 08: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디럼은 마션의 촬영지였기도 하지요.
가 봤다는 거 자랑하고요 ㅎㅎ
듄에서도 티모시의 미모가 사는군요
레샥님 페이퍼 읽으니 영화 봐야지 싶어요.
이런 판타지 스토리 좋아요.

레삭매냐 2021-10-23 09:39   좋아요 3 | URL
오오 와디럼이라는 곳이
데저트 로케이션으로 유명한
곳인가 보네요 :> 대단히 부럽~
페트라 유적지도 가보셨네요 !!!

스타워즈에 가히 필적할 만한
그런 스페이스 사가였습니다.

프레이야 2021-10-23 09:47   좋아요 3 | URL
넵. 페트라도요. 정상까지 올라갔지요. 꼭 가보고 싶었던 두 곳이라 ㅎㅎ 코로나 이전에 가길 얼마나 잘했다 싶은지요.

포스트잇 2021-10-23 1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맥스로 관람했는데, 아직도 돌구르는 소리와 모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이건 극장에서 봐줘야 하는 영화같습니다.
듄 세계관은 여전히 완전 납득은 잘 되지 않지만, 음악과 음향만은 👍🏾

책으로 읽어야 할 것 같아요.
2편은 나올 수 있을까요?.......

레삭매냐 2021-10-23 12:55   좋아요 2 | URL
너튜브에 보니 듄 세계관을 정말
잘 정리한 콘텐츠들이 많더군요.

우주 항해, 길드 그리고 스파이스
와의 연관 관계가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엔딩을 보니, 아마 시퀄에 대한 촬
영은 된 것 같고 포스트프로덕션이
한참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스트잇 2021-10-23 13:42   좋아요 3 | URL
오호~제작하긴 하는 모양이네요.

듄 세계에 대한 영상을 통해 인류가 중세로 퇴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보긴 했는데 막상 영화로 보니 중세적 세계, 질서, 부름받은자.. 이런 점들을 어떻게 봐야 하나. .. 싶더라구요. 제가 이제 늙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ㅎㅎ

잠자냥 2021-10-23 1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보러 오랜만에 극장 갈 예정입니다! 코로나 시국이라 극장 나들이도 설렌다능 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10-23 16:51   좋아요 3 | URL
영화는 정말 끝장~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중요한 배역들이 추풍
낙엽처럼 우수수 나가 떨어지는
걸 보니 참, 아쉽더라구요.

mini74 2021-10-23 15: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듄 너무 보고싶어요 ㅠㅠ 하나 있던 아이맥스가 문을 닫아 ㅠㅠㅠ 어디로 가야하나요 ㅠ 음악도 넘 좋다고 들었어요. 아이는 중간고사 기간임에도 후다닥 첫 개봉일 저녁거 봤는데 넘 좋다고 !!!! 일반관에서라도 봐야 하나 싶습니다 ㅠㅠ

레삭매냐 2021-10-23 16:52   좋아요 2 | URL
이 소설의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
아저씨는 진정 천재가 아닐까 싶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페이스 오페라답게 모든 요소들
이 다 담겨 있거든요.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거임...

라로 2021-10-23 16: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먼저 보셨군요!!! 저는 모레 시험보고 다음주에 볼 예정인데 책은 건드리지도 못했어요.ㅎㅎㅎㅎ
해든이는 이제 마지막 부분 읽고 있는데 다음주에 영화보러 가기 전에 다 읽을 것 같아요.
듄은 제 남편의 최애 소설이랍니다, 읽고 또 읽고 하더라구요.ㅎㅎㅎ
레삭매냐님 글을 읽다가 멈췄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읽고 영화볼까?싶은 마음도 있고요,,(아~~ 갈등;;ㅎㅎㅎ)
저희는 아이맥스 하루에 4번 해주는 것 같아요. 셤 끝나고 아이맥스로 보고 매냐님 글 읽는 것으로. 암튼 부럽습니다!!!^^
이 영화 책 1권의 반의 반도 내용을 다 싣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죽기 전에 쓴 책이 6권이니까 스타워즈처럼 계속 나오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듭니다만,,

레삭매냐 2021-10-23 16:55   좋아요 3 | URL
제가 스타워즈 팬이긴 하나,
최근 디즈니로 넘어간 뒤에
넘어간 뒤에 나온 것들은 정말
노답이지요.

리부트된 <스타 트렉>이 나은
것 같을 정도니깐요. 하긴 20세기
팍스가 디즈니로 넘어간 뒤에는
다 비슷해져 버린 걸까요? 무튼...

저도 목표가 영화 보기 전에 책
읽기였더랬는데, 결국 책은 못 다
읽고 너뷰트 콘텐츠로 듄 사가
워밍업을 하고 나서 영화를 먼저
보았습니다. 물론 후회는 1도 없
구요. 뭐 책은 마저 읽으면 되니깐
요 ㅋㅋㅋ

거의 프랜차이즈급으로 가지 않을
까 싶습니다.

붕붕툐툐 2021-10-23 22: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학구적인 레삭매냐님~ 영화보러 가기 전에 공부 열심히 하셨네요~~ 팟케스트에서는 지루하다고 하던가요? 좋은 구라가 외면당한 일 없다는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레삭매냐 2021-10-24 20:30   좋아요 3 | URL
아마 워낙 러닝 타임이 길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나름 진입 장벽
이 높은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타워즈>의 경우나 생각나네요.

방대한 스타워즈 사가의 전모를
몰라서 후발 주자들은 심심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blanca 2021-10-30 13: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듄 1권만 읽어볼까 고민 중인데 레삭매냐님 글 읽으니 영화도 봐야 할 것 같은.... 저는 SF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테드 창이랑 브래드버리 작품들은 정말 너무 좋더라고요. 이건 더 좋을까요?

레삭매냐 2021-10-30 21:16   좋아요 2 | URL
제가 찐 오랜 <스타워즈>
팬이긴 한데, <듄>도 그에
못지 않은 그런 걸작이라는
걸 이번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과 영화의 콤비네이션 절묘
했습니다.

독서괭 2021-11-05 16: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SF 별로 관심 없는데 읽고 싶어지게 만든 리뷰.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2   좋아요 1 | URL
저도 SF 물은 잘 만나지
않는데, 이 책은 정말 재밌더라구요.

그레이스 2021-11-05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11-06 08: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1-11-05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4   좋아요 2 | URL
책 리뷰라기 보다 영화 리뷰
에 가까운데 헷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1-05 18: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주식도 성공, 리뷰도 당선~!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1-11-06 08:15   좋아요 2 | URL
카페이 탄력 받아서
어제 엄한 데 들어갔다가
그마 깍~!하고 물려 버렸습니다.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1-06 02:4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1-11-06 08:15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받은 적립금은 도끼샘 책
사는 데 보태려구요...

thkang1001 2021-11-06 09: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레삭메냐님은 생각도 훌륭하십니다!

초딩 2021-11-07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