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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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를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기술을 칭송한다. 평양냉면 같이 슴슴한 맛의 카렐 차페크 작가의 다른 책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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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4-11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평양냉면 ㅋ 왠지 딱 맞는 비유인거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04-13 17:47   좋아요 1 | URL
어제는 날이 더워서 냉면 생각이
났는데, 오늘은 다시 추워져서
뜨듯한 국밥 생각이 절로 나네요 ㅋㅋ
 
인간에 대하여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3
율리 체 지음, 권상희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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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체 작가의 팬이다. 작가의 책이 나오면 무조건 읽는다.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을 다룬 소설이라고 하니 거부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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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고려사 1 - 천하 통일과 고려의 개막 박시백의 고려사 1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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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 만날 하는 짓이 희망도서로 책을 빌리고 못 읽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반납하는 패턴의 반복이다. 이번엔 빌릴 책도 없지 이러다가 신간 코너를 보니 박시백의 고려사와 제프 다이어의 신간이 눈에 띈다. 이러면 또 내가 못참지. 결국 빌리고 말았다. <고려사> 첫 번째 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읽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야기는 정말 고대사 이야기다. 그러면 후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가 중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토지와 노비를 지방 호족 세력들이 발호하던 통일신라 말기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신라에서 6두품 선수들은 특정 벼슬 이상의 진급은 어려웠다. 그러니까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없었단 말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가능했을지 몰라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신라 집권층들만 그것을 몰랐을 뿐. 그러니 당연히 왕조 교체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완산주를 기반으로 한 견훤이 먼저 선빵을 날렸다. 병졸부터 시작해서 탁월한 능력을 뽐내면서 구 백제 지역을 기반으로 삼아 신라의 중앙 통치로부터 벗어난 견훤 세력은 순식간의 호남 지역을 석권한다. 다음 주자는 바로 관심법의 대가 궁예다. 그는 신라 왕족 후손이라는 설이 있는데 어디까지나 썰이다. 천년도 더 지난 일을 지금에 와서 유전자 감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한국 드라마 사에 길이 빛날 명대사와 강렬한 포스의 궁예 역을 연기한 김영철 배우 -


궁예는 고구려의 후예를 자처하며 신라의 북방 지역에서 세력을 끌어 모아 할거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송악 출신의 왕건을 휘하 장수로 거두며 아주 요긴하게 써먹는다. 지리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으나, <고려사> 1권 전반의 주인공인 왕건의 화려한 무대가 펼쳐진다. 궁예는 신라에게서 돌아선 민심을 사로잡아 강력한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지만, 지나치게 자만심에 빠져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하며 갖은 악행을 일삼기 시작한다.

 

물론 역사는 승자를 위한 기록이기 때문에, 궁예에게 신종하다 역성 혁명을 성공시킨 왕건과 그의 후계자들이 다스리는 고려 국가에서 궁예를 폄하하는 건 당연한 역사의 수순일 것이다. 만약 궁예가 정말 뛰어난 위정자였다면, 무슨 이유로 왕건이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시대의 빌런이 되어야 고려 건국의 당위성이 확보될 것이기 때문에, 고려의 사관들이 기를 쓰고 궁예를 천하의 빌런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궁예는 그렇게 왕건을 필두로 한 신진 세력에 의해 축출되고, 왕건 일당은 918년 고려국을 세우게 된다. 이 무렵, 서라벌을 중심으로 한 신라는 거의 망조가 들린 상태였다. 당장 나라가 망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오로지 북방의 큰형님 고려에게 의존하는 게 국가 유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러니 서쪽의 호랑이 견훤이 고려를 제압하기에 앞서 고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신라를 정벌하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역전의 맹장 견훤군이 이끄는 후백제 정예병들은 순식간의 신라의 천년 수도 서라벌에 돌입해서 신라를 망국 일보직전까지 몰아넣었다. 그 당시 신라의 왕이었던 경애왕은 포석정에서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건 아무래도 후대의 조작이 아닐까 싶다. 어디서는 경애왕이 국가 존망의 위기 앞에서 천지신명에게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는 주장도 들어본 것 같다. 어쨌든 아무리 암군이라고 하더라도, 견훤군의 침략이 목전에 와 있는 상태에서 그런 술판을 벌였다는 건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어쨌든 경애왕은 견훤에 의해 자결했고, 서라벌은 쑥대밭이 되었다.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은 동맹 신라를 구하기 위해 출전했지만, 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의 기습에 당해 군주인 왕건이 전사할 뻔한 위기도 맞는다. 쿠데타 동지이기도 했던 신숭겸이 왕건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어쨌든 견훤에게 호되게 당한 왕건을 위기에서 구한 인물은 고려의 짱가라고 할 수 있는 유금필이라는 장군이었다. 홍유나 신숭겸 혹은 복지겸 같은 인물들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유금필의 존재는 또 처음이었다. 과연 고려를 사수한 장군이라는 저자의 평답게 공산 전투와 고창 전투 같이 견훤 세력과의 중요한 전투의 고비마다 맹활약을 펼친 장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고려의 왕건을 제압하고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녔던 견훤은 결국 내부 분열로 무너지고 만다. 후계자를 두고 권력투쟁이 벌어진 가운데 아들 신검의 쿠데타로 견훤은 금산사에 유폐되고 만다. 아들의 횡포에 절치부심하던 견훤은 3개월 만에 금산사를 탈출해서 왕건에게 투항한다. 결국 후삼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신검의 후백제군을 상대한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이 승리하면서 고려에 의한 삼국통일이 실현되었다.

 

왕건이 궁예의 뒤를 이어 고려의 최고 실력자가 되었을 때부터, 숱한 반란이 발발했다. 왜냐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고려는 강력한 중앙집권제 국가가 아닌 여러 호족 연합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려 태조 왕건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임무는 바로 고려 정권을 실제로 지지하는 호족들의 불만을 달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원래 부인이 두 명이었던 왕건은 지방 호족들의 딸들을 무려 27명이나 아내로 맞이하는 혼인 동맹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의 유력 인사들에게 자신의 성인 왕씨성을 하사하면서 계속되는 반란을 제압하고, 안정을 추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건국 시조는 세상을 뜨기 전, 훈요십조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유지를 남겼다. 그런데 이 문서는 공식적인 국가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최승로의 집안에서 나중에 나왔다는 말이 있다. 천년이란 세월은 정말 가늠이 불가능할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라 그냥 그렇다는 기록만으로도 역사적 사실이 되는 놀라운 마법을 부리지 않는 싶다. 저자는 <고려사>를 그리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절대적 사료의 부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실 후대에 나온 2차 사료들의 진위여부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주관적 해석이 너무 추가된다는 문제점도 있다.

 


- 드라마 <보보경심>에서 왕소가 4대 광종에 즉위하는 장면이다. 때깔이 아주 좋다. -


고려의 2, 3, 4대 왕들은 모두 태조 왕건의 아들들이었다. 태조의 후계자들이 국가 운영에 있어 1순위로 삼은 정책 목표는 바로 왕권 강화였다. 왕규의 난 같이 왕권을 위협하는 반란의 이유는 바로 강력한 왕권의 부재였다. 3대 정종 왕요는 아버지를 도운 개국공신들을 숙청했다. 호족들을 중심으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번에는 훈요십조에도 나오는 서경으로 천도를 계획하며 무리한 공사를 시도했다. 949년 정종이 병사하자, 동복동생인 왕소가 25세의 나이로 고려의 네 번째 왕이 되었다.

 

광종은 형 정종이 추진하던 서경 천도를 취소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의 일환이었던 노비안검법으로 호족들의 밥그릇을 걷어차 버렸다. 평시에는 호족들의 재산 증식에 동원되었던 노비들이 전시에는 사병으로 맹활약했기에 그들은 면천시켜 사회질서를 개편한다는 명목 아래, 호족들의 실질적 기반을 허무는 조치였다. 이어 956년에는 후주 사신 출신 쌍기를 등용해서, 과거제를 도입했다. 신진 관료를 선발해서 군주의 든든한 우군으로 만들겠다는 향후 천 년간 이어질 관료국가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외에도 관복의 색상을 정하고 칭제건원을 시도하는 등 각종 개혁정치가 광종 연간에 실시됐다.

 

하지만 일련의 개혁정치에 대한 호족들의 불만이 가중되자, 960년 권신의 참소를 계기로 개혁정치에서 공포정치로 일관하다가 재위 26년만인 97551세의 나이로 광종은 병사했다. 광종의 후계자 경종은 민심을 수습하고 사회통합을 이루겠다는 취지에서 보복법(복수법)을 일시적으로 허용하기도 했으나, 다수의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결국 폐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976년에는 관료들에게 토지와 땔감을 제공하는 수조권을 부여하는 전시과를 실시했다.

 

왕건이 세우고, 왕건의 아들 광종이 나라의 기틀을 잡은 고려는 6대 성종 대에 이르러 국가의 뼈대를 갖추게 된다. 경종의 후사로 훗날 목종이 되는 적장자 왕송이 나이가 어려 사촌동생인 개령군 치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고려 성종은 당대 대학자였던 최승로의 시무28조를 받아 들여, 국가의 대개조에 나섰다. 현재의 국립대학격인 국자감을 설치해서, 인재 육성을 시작으로 해서 각종 관제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광종 대의 노비안검법을 폐지하고 다시 노비환천법을 실시하면서 양민이 된 노비들이 다시 노비가 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햇다. 한편, 음서제를 실시하면서 신분 질서가 고착화되었고 문벌사대부들의 세상이 되었다. 훗날 무신정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저자의 역작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새로운 학설에 대한 언급이나 눈과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사실의 발굴 등은 미흡하지 않았나 싶다. 고려 건국 초기, 왕건 일파와 호족 세력과의 팽팽했던 권력 투쟁을 좀 더 극적으로 다루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개국공신들과 군주가 힘을 합쳐 새로운 국가 건설에 나서고, 소용이 다한 개국공신들을 개국 군주의 후계자가 숙청하는 역사의 패턴이 이제는 하나도 새롭지도 않았다. 전작에 비해 디테일이 부족한 문제도 아쉬웠다. 물론 사료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고려사에 대한 개설서 정도로는 괜찮지 싶다. 물론 너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비비드한 동영상 컨텐츠가 더 재밌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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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집의 봄가을
우메자키 하루오 지음, 홍부일 옮김 / 연암서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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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 후, 일본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한 책이었다.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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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왕국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0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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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알레호 카르펜티에르의 <잃어버린 발자취>를 읽다 아무래도 그전에 사둔 <이 세상의 왕국>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에 산 책이고, 또 분량도 적어서 바로 읽을 수 있거라는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그리고 보니 한 두어번 시도했다가 결국 못 읽고 있었다. 다 읽는데 20여일도 넘게 걸렸다. 뭐랄까 잘 집중이 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언제나 그렇듯, 다 읽고 나니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더라.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특징이 된 주술적 리얼리즘 그리고 경이로운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린 쿠바 출신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나 카를로스 푸엔테스 같은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느낌이다. 그래서 <이 세상의 왕국>이 출간되었을 때 바로 사지 않았나 싶다. 사는 것과 읽는 것은 물론 다른 이야기다.

 

내가 이 책을 세 번 만에 다 읽는 건 전적으로 <이 세상의 왕국> 서사의 중심이 되는 아이티라는 나라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노라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그저 뒤발리에의 독재나 지진으로 항상 피해를 보는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라는 것 정도가 내가 아이티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 미국의 대도시에서 유난히 아이티 출신 택시기사들이 많은 것 정도도.

 

하지만 내 상식 밖의 아이티는 훨씬 더 풍부한 역사를 품고 있는 그런 나라였다. 우선 이백년 전인 1804년 식민 종주국 프랑스와의 독립전쟁을 통해 세계에서 흑인들이 처음으로 세운 나라가 되었고, 그놈의 지긋지긋한 노예제도를 영원히 폐지한 나라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의 종주국 중의 하나라는 미국에서 악명 높고 끔찍한 노예제도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왜 아이티처럼 대규모 흑인 노예반란이 미국에서 발생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

 

이탈리아 사람 컬럼버스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여왕을 꼬드겨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며 후원을 얻어 서인도제도의 쿠바와 이스파니올라 섬에 상륙한 이래 라틴아메리카는 그야말로 고난의 땅이 되었다. 이스파니올라 섬의 서부를 장악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당시 비싼 값을 받고 팔 수 있었던 설탕의 원재료가 되는 사탕수수 재배가 아이티에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은 노동집약적 산업인 사탕수수 재배를 위해 우선 아시엔다라 불리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구축하고, 그곳에서 일할 노동력을 아프리카 대륙에서 구했다. 흑인 노예라는 이름으로. 백인 식민주의자들과 흑인 노예들의 갈등과 분쟁의 양상은 이러한 사업이 구상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이런 역사적 배경에 알레호 카르펜티에르 작가는 역사적 인물과 가상의 인물들을 교차로 투입하면서 주술적 리얼리즘의 서사를 구사하기 시작한다. 위키피디아에서 마캉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직업(occupation)이 무려 탈주 노예(maroon)라고 되어 있다. 아니 이거야말로 전형적인 옥시덴트한 사고의 발로가 아닌가 말이다. 아이티 혁명사에서 그야말로 전설적인 존재가 된 프랑수아 마캉달은 르노르망 드 메지 소유의 노예였다가 왼팔을 사탕수수 기계에 잃고 산으로 도주해서, 부두교 사제로 변신했다던가. 소설의 이야기와 전승들을 서로 다른 교착점을 가르킨다. 난 여기서 개인적으로 그가 부두교 사제라는 통설을 따르고 싶다.

 

만딩고족 출신의 마캉달은 아프리카 전승을 바탕으로 파리나 새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전설적인 존재로 진화한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다. 백인 농장주들에게 끝없이 착취당하는 다수 흑인 노예들의 입장에서 그는 어떤 의미에서 구세주였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들을 이 세상의 왕국에서 해방시켜 줄 그런. 그는 어느 주술사에게 임상독성술을 배워, 아이티에 사는 백인 종족들을 말살시켜 버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물론 기득권층에게 이런 도전은 1도 용납이 되지 않았다. 일설에 따르면 장장 18년의 항쟁을 하던 마캉달이는 동료 흑인의 밀고로 잡혀 1758120일경 카프의 광장에서 화형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아니 화형 도중에 파리로 변신해서 형장을 탈출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이런 주술적 서사야말로 카르펜티에르 같은 작가에게 좋은 소재가 되지 않나 싶다. 이런 허술하고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서사의 원형이야말로 문학의 축복이라는 생각이다.

 

작가가 투입한 티 노엘(마캉달의 동료 노예)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아이티 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의 증언자로 등장한다. 아이티 레볼루션의 다음 주자는 부크만이었다. 그들의 무장봉기는 예상보다 쉽사리 진압되고, 부크만은 참수되었다. 앙시앵 레짐을 끝장낸 프랑스대혁명 기간에도 그랬지만, 아이티 흑인들의 자유를 향한 도정에서 벌어지는 유혈극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폴린 보나파르트와 아이티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르클레르 장군의 황열병 급사 사건에 대한 언급도 양념처럼 명멸한다. 훌륭한 가톨릭 교육을 받은 서구인들이 아이티에 건너와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아무리 봐도 엉터리 같은 부두의 주술 의식에 빠진다는 설정은 계몽사상의 세례를 받은 서구인들의 본질인 결국은 아이티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 카르펜티에르식 블랙유머가 아니었나 싶다.

 

지난한 투쟁 끝에 아이티는 결국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그렇게 얻은 성공의 열매를 엉뚱한 인물이 독점했다는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앙리 크리스토프. 우리의 티 노엘이 아는 바로 그 요리사 출신 노예의 아들이 바로 신생국가 아이티의 군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예전 식민지 시절 아이티 민중들을 지배하던 권력 계급이 백인들이었다면, 이번에는 권력층의 피부색이 바뀌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백인들은 자신의 자산인 노예들을 소중하게 다룰 줄 알았지만(순전히 경제적 이유 때문에), 몰락한 백인 부르주아 계급을 대신한 잔혹한 독재자 앙리 크리스토프를 필두로 한 흑인 권력층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들에게 아이티 민중들은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시민이 아닌 어디까지나 통치와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의 재침공에 대비해서 만든 시타델 라 페리에르 건설 과정에 동료 흑인들을 가차 없이 동원하는 장면은 비극의 재현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자유인이 되어 자신이 살던 옛 아시엔다로 돌아온 늙은 티 노엘 역시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병사들에게 항의하는 티 노엘에게 돌아온 것 곤봉 세례였다. 지배 계급의 피부색이 바뀌었을 뿐, 목숨을 바쳐 독립투쟁에 나섰지만 아이티 민중들의 삶은 식민지 시절과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야말로 경이로운 현실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광대에 가까워 보이는 왕 노릇을 하던 앙리 크리스토프의 말로가 좋았을 리가 없다. 그리고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주술적 리얼리즘의 요소들로 모호한 엔딩으로 <이 세상의 왕국>을 끝낸다.

 


<이 세상의 왕국>은 결국 나로 하여금 아이티 혁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얇은 소설만으로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기란 요원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침 다행히 로런트 듀보이스가 아이티 레볼루션 200주년을 기념해서 발표한 <아이티혁명사>를 수배해 두었던 기억이 났다. 마구잡이로 쌓아둔 책더미에서 <아이티혁명사>를 찾았다. 그리고 우선 마캉달 처형 사건을 급하게 찾아봤다. 마캉달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라기 보다 전설에 가까워서 그런지 한 페이지 정도로 마무리되어 있더라.

 

이제 다시 <잃어버린 발자취>를 읽는다. 알레호 카르펜티에르의 책들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



튤립이 만개했다. 꽃이 너무 무거워서 옆의 왕수선화 녀석에게 기대고 있더라.



[보너스컷] 인스타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선생의 호랑이

그림을 보고 그려 보았는데, 결론은 살찐 고양이로 판정.

누구는 또 고랑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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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3-27 1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누구냐 나를 깨운게!! 하는 호랑이같습니다. 넘 귀여운데요. 음 아이티 혁명 마캉달. 그렇구나. 한 번 찾아봐야지 하다가 귀여운 그림에 웃고갑니다 꽃도 그림도 아이들이 좋아하겠어요

레삭매냐 2022-03-27 22:18   좋아요 2 | URL
무근본의 그림인지라 이거이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것도
아니면 고랑이인지 분간이...

새파랑 2022-03-27 2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랑이 같아 보이는데요? ㅋ 레삭매냐님이 꽃과 그림에도 소질이 있으시군요~!! 남미 환상문학 몇편 읽어봤는데 이 작가는 처음 들어봅니다 ㅋ 좀 어려워 보이기는 하네요 😅

레삭매냐 2022-03-27 22:19   좋아요 3 | URL
적은 분량에 무턱대고 들이댔다가
낭패를 본 책이었습니다.

숙제가 늘어난 느낌이랄까요.

근데 정작 카르펜티에르는 이
작품 말고는 또 주술적 리얼리즘
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하네요.

호랑이, 캄솨합니다.

그레이스 2022-03-28 15: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티 혁명사도 관심이 가요

레삭매냐 2022-03-28 15:56   좋아요 2 | URL
바로 읽고 싶었으나, 시작
하고 마무리 짓지 못한 책
들이 많아서 다음으로 -

과연 읽게 될까요...

라로 2022-03-29 18: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는 심술난 토토로인 줄;;;;
다음엔 왕수선화 사진 올려주세요~~.^^;;
저는 수선화는 봤지만 왕수선화는 본 적이 없어요.
봄엔 튤립, 수선화 같은 구근초라고 하나요? 그런 것들이 넘 이쁜 것 같아요.
저는 팬지도 좋아해요. 오묘한 보라색의 팬지는 진짜 벨벳 같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팬지에 정신이 홀딱 뺐겼던 것이 기억나요.
근데 아이티는 섬나라인데 그럴 수 있었겠어요...
관심없었는데 이 글을 읽으니 급관심 생기네요...
하아~~ 매냐님이 올려주시면 이렇게 급관심 생겨서 문제야요.ㅠㅠ

얄라알라 2022-03-30 14:33   좋아요 1 | URL
저는 아이티를 지도에서 꽤 어른이 된 후, 처음 찾아보았고 그 때 아이티가 섬나라라는 걸 알고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내륙 깊숙하게 자리한 나라인줄 알다가, 기초 상식도 모르고 아는 체 했음이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레삭매냐님처럼 알려면 깊이 깊이 제대로 알아봐야겠습니다. <아이티혁명사>보다 <이 세상의 왕국>부터 시작하고 싶네요^^

레삭매냐 2022-03-30 17:17   좋아요 0 | URL
아~ 토토로!!! 제가 좋아라
하는 애니 중의 하나랍니다.

오래 전에 오사카 지하상가
토토로 공화국에서 산 저금
통 생각이 나네요 ^^

팬지하면 바로 보라돌이죠!

세상에 닐글 책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고저.

레삭매냐 2022-03-30 17:18   좋아요 0 | URL
[얄라알라님] 워낙에 아이티라는
나라가 멀리 있어서 그런 게 아
닐까요 ^^

저도 남미의 정글 어딘가에 있
는 나라가 아닐까 싶었는 걸요.

<아이티혁명사>는 보아하니
역사서라 소설인 <이 세상의
왕국>부터 시작하심이 지당하
신 선택으로 보입니다.

서니데이 2022-04-09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2-04-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이의 힘도 컸던거 같습니다~!!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