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의 유령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이틀에 속지 말자. 로베르토 볼라뇨의 새로운 책 <SF의 유령>은 에스에프와는 한참 거리가 먼 그런 소설이다. 나는 그의 팬이기 때문에 그가 설사, 제목으로 장난을 친다고 하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그의 책이 새로 나온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서 읽을 거니까 말이다.

 

어젯밤에 <SF의 유령>을 읽다 말고, 문득 12년 전에 처음 읽은 <칠레의 밤> 생각이 나서 서가의 볼라뇨 코너에서 그의 책을 찾아 펼쳐 들었다. 그리고 단박에 읽어 내렸다. 참 이상하기도 한 나의 독서 편력이 아닐 수 없다. 새로 나온 책을 읽다 말고, 이미 두 번이나 읽은 책을 다시 꺼내 읽다니.

 

<SF의 유령>에 보면 1984년이라고 쓴 날짜가 게재되어 있는데 아마 그의 초기작에 해당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읽다만 그의 대표작인 <야만스러운 탐정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볼라뇨의 첫 번째 망명지였던 멕시코 시티에서 벌어지는 청춘들의 좌충우돌 스토리가 심심하게 다가온다. 나도 소설을 이끌어 가는 한 슈레야(로베르토 볼라뇨), 레모 그리고 호세 아르코 삼총사 같이 살았던 시절이 있었던가. 너무 오래 전이라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볼라뇨 작가에게 SF를 기대하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의 부캐로 삼은 한은 그링고 출신 SF작가들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날린다. 그들이 자신이 보낸 편지를 읽건 말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저 편지라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시대를 살아온 라틴 아메리카의 문청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과 레모는 그들이 새로 둥지를 튼 멕시코시티에 왜 그렇게 많은 문예지와 잡지 그리고 시를 담은 문집들이 난무하는지 조사에 나선다.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그링고 청년들은 비디오에 열광했다. 영국에서는 팝스타가 되기 위해 청년들이 열광했다고 하던가. 21세기 K-팝스타가 떠오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라틴 아메리카 청년들과 달랐던 건, 자신의 취미활동과 오락거리에 돈을 쓴 반면 가난한 우리의 아미고들의 선택지는 값싸고 초라한 시, 시 잡지였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문학 작품에 매진했던 게 아닐까. 최소한 상상력에는 돈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학 붐이 일어나는 상상을 해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너튜브라는 강력한 미디어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가 상존한다. 초단위로 새로운 오감을 자극하는 동영상 콘텐츠들이 수시로 업로드되는 마당에, 가다듬고 편집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문학 작품 혹은 시 쓰기에 누가 그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단 말인가. 설상가상으로 전자는 대박이 나면 금전이라는 보상이 뒤따르지만, 점점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후자는 물질적 보상도 기대할 수가 없다.

 

고백하건데 나는 SF 문학에는 거의 문외한인지라, 볼라뇨 작가가 숱하게 인용하는 SF 작가들의 이름이 그렇게 낯설게 들릴 수가 없었다. 설사 들어는 봤어도 그들의 작품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재기발랄한 문청이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짚었나 싶다.

 

소설의 한 축에 SF 소설의 불모지 라틴 아메리카에서 문학도로 성공하겠다는 한과 레모가 있다면, 다른 한 축에는 이제 막 사랑에 눈뜨기 시작한 청년들의 감정들이 너울거린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정하다는 가정 아래, 썬업은 기본이고 장물 오토바이를 외상으로 사들여서 멕시코시티의 밤거리를 질주한다. 느닷없이 찾아오는 사랑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왠지 물설고 낯선 도시에서 청춘을 보낸 볼라뇨 작가의 단상을 엿보는 듯하다는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쨌든 이 소설에서 SF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시간여행이나 외계인, 스페이스 오페라 같이 장대한 요소들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밤이 내린 도시의 곳곳을 누비며 사랑을 갈구하는 외로운 늑대 같은 사랑꾼의 모습들이 기대를 대신한다. 라우라와 레모가 사랑의 장소를 선택한 장소가 대중목욕탕인 힘나시오 목테수마라고 했던가. 목욕탕의 벽면을 장식한 아즈텍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시선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1984년작인 <SF의 유령>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볼라뇨를 읽을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시작은 <칠레의 밤>이었고, 지금은 <살인 창녀들>을 읽고 있다. 오늘은 야만적인 두께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샀다. 나에게 20225월은 볼라뇨의 달로 기억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5-10 1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레의 밤. 기억하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5-10 15:21   좋아요 1 | URL
볼라뇨의 시작은 <칠레의 밤>
으로 하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페넬로페 2022-05-10 1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베르토 볼라뇨?
역시나 처음 들어봅니다.
덕분에 새로운 작가를 많이 영접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0 17:21   좋아요 2 | URL
제 마음 대로 저를 볼라뇨
전도사를 임명...

저희 오래된 독서모임에서
오래 전부터 볼라뇨의 책으로
독서 모임을 함 하자 노래를
부르던 시절 생각이 나네요.

결국 <칠레의 밤>으로 하긴
했었는데, 기대했던 것처럼
열변을 토하지는 못한 것으로
기억하네요.

다시 한 번 더 잘할 자신이 ㅋ

라로 2022-05-10 1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라뇨,,, 또 다른 작가를 읽어야 하는 리스트에,, 적자 적어.ㅠㅠ
매냐님 찬찬히 소개해 주세요,, 따라가기 벅참요.^^;;;

레삭매냐 2022-05-10 17:57   좋아요 0 | URL
볼라뇨는 12년 전에 처음
만난 순간부터 찌리릿~~~
하는 무언가를 만난 작가
라 그런지 더 애정하고
있답니다.

더군다나 칠레가 우리나라
처럼 혹독한 군사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을 거친 나라
라 그런지 더 애착이 가더
라는 -

moonnight 2022-05-10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볼라뇨씨는 사놓기만 한 수많은 작가들 중 한 분ㅠㅠ 언젠가는 읽겠지요. (또 체념조ㅠㅠ;)

레삭매냐 2022-05-11 08:56   좋아요 0 | URL
앞으로도 나올 책들이 있으니
마치 살아서 계속해서 집필하
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랍니다.

언젠가는 반다시 읽습니다 젭알.
 
SF의 유령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최용준 감수 / 열린책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십수년 전부터 로베르토 볼라뇨의 찐팬이다. 계속해서 그의 책들을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고 해서 모두 좋을 수는 없다. 이미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에서 그것을 알게 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볼라뇨다. 지난주에 새로 <SF의 유령>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오늘 아침 출근길에 모두 읽었다. 어젯밤에 문득 12년 전에 처음 만난 <칠레의 밤> 생각이 났다. 생각이 났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가 없지. 바로 읽기 시작했다. 느즈막하게 읽기 시작했는데 얇은 책이라 그런지 날을 넘기지 않고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세 번째 읽는 <칠레의 밤>에서는 그동안 미처 모르고 있던 포인트들을 짚어낼 수가 있었다. 너튜브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도 해야 할 것 같다.

 

볼라뇨 작가가 죽기 3년 전인 2000년에 발표된 <칠레의 밤>은 죽어가는 어느 사제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놈의 늙다리 청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난 두 번의 독서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미지의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늙다리 청년은 훗날 사제이자 문학비평가가 되는 주인공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마다 등장하는 가공의 캐릭터라고나 할까.

 

1950년대 사제의 길을 걷고자 한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 신부는 사제 서품 후, 페어웰이라는 필명의 문학 비평가를 후원자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농장에서 당시 칠레문단에서 신 이상의 대우를 받던 파블로 네루다와 만나기도 한다. 평소에 볼라뇨는 라틴 아메리카 문단을 주름 잡던 문호들을 까기로 유명했는데, 네루다와 옥타비오 파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만 이 소설에서는 너무 적나라하게 까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칠레의 밤>을 통해 저자가 가장 순수한 독일 문인이라 칭하는 에른스트 윙거를 알게 됐고 그의 책도 구해서 읽게 됐다. 파리가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있던 시절 윙거 대위와 만난 칠레 외교관 살바도르 페리스의 에피소드가 명멸한다.

 

그 다음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시절, 합스부르크 황실에 품질 좋은 신발을 공급하고자 황제의 눈에 들려고 영웅들의 언덕에 묘지와 영웅들의 동상을 건립하려고 했던 어느 제화업자의 이야기도 기억 속에서 소환된다. 모두가 알다시피 1차 세계대전의 전화 속에서 제국은 멸망했고 결국 막대한 부를 창출해 보겠다는 제화업자의 꿈 역시 일장춘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바카체라는 필명으로 활발하게 칠레 문단에서 활동하던 우루티아 신부는 어느 날 권태와 나락에 빠져 버린다. 그 좋아하는 독서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오데임과 오이도라는 미지의 인물들을 만나 장학금을 줄테니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모종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는 이바카체. 그 임무라는 것이 자신을 위해 설계된 것이라는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미션 역시 조금은 황당하게 들린다. 오데임과 오이도는 유럽의 많은 성당들이 비둘기의 배설물로 쇠락해 가고 있는데, 그것을 방지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던가. 유럽으로 가는 배 안에서 자신의 권태와 나락을 극복하는데 성공한 이바카체 신부는 이탈리아 피스토이아를 시작으로 해서 토리노와 스트라스부르, 아비뇽, 부르고스, 나뮈르 그리고 생캉탱 등지에서 매를 이용해서 비둘기들을 만들어내는 무질서와 혼란을 제거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 바로 이 지점부터 내가 좋아하는 정치적 서사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쇠락해 가는 유럽 문화의 정수인 성당을 파괴하는 비둘기들은 좌파 지식인들로 유추할 수가 있다. 중세 이래 유럽 대륙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해오던 종교는 프랑스대혁명 이래 추락을 거듭했다. 볼테르를 필두로 한 무신론자 지식인들은 민중의 자유를 억압하고, 질서유지라는 미명 아래 보수주의적 태도를 견지해온 종교를 공격했다. 그 결과, 반동 파시즘이 창궐하기 시작해서 흐트러진 사회 질서를 바로 잡고 혼란을 종식하기 위해 신부들은 매사냥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과거 에스파냐에서 종교재판이라는 폭력적 방식으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유럽 각처의 신부들이 고안한 매사냥 프로젝트는 대단히 효율적이었다. 곳곳에서 피투성이가 된 비둘기 사체들이 쌓이긴 했지만 그들은 부수적 피해라는 말로 내세웠다. 그리고 마치 예언이라도 하듯,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런 매사냥 프로젝트가 이전될 것이라는 묵시록적 예언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셔널리스트 프랑코 총통이 이끈 스페인 내전에서 성공한 매사냥 프로젝트의 다음 무대는 바로 저자 볼라뇨의 조국 칠레였다.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는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한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는데 성공한다. 세계의 보수적 질서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것은 일대 충격이었다. 선거라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합법적 방식으로 사회주의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걸 직접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런 칠레 혁명은 내부의 반동과 외부의 공작에 의해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게 됐다. 결국 1973911일 미국 CIA의 지원을 받는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칠레 혁명은 끝나 버렸다. 이바카체 신부의 후원자였던 페어웰은 이것을 보고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던가.

 

오데임과 오이도가 이즈음에 다시 등장해서, 우루티아 신부에게 상당히 미묘한 제안을 한다. 그것은 바로 일단의 수강생들에게 마르크스주의의 기초를 강의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후한 보수 제안이 뒤따랐다. 그렇다면 그 수강생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군사 쿠데타의 주범들인 피노체트 일당이었다. 쿠데타 당일 모네다 궁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은 아옌데 대통령은 이미 민주주의의 순교자가 되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매사냥을 하기 위해 자신들의 적이 교조로 받드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이 악랄한 독재자는 자신이 어디까지 갈지 알고 있다며, 과연 그렇다면 자신의 적들은 어디까지 갈 것인지 알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의 기초에 알 필요가 있다는 적확한 진단을 내린 것이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동지들이었던 라이, 멘도사 장군 그리고 메리노 제독이 이바카체 신부의 강의에 시큰둥했지만 피노체트는 역시 달랐다. 피노체트는 정보 조직을 통해 순교자 아옌데는 물론이고 전임 대통령들인 프레이와 알레산드리가 전혀 사회나 적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규정한다. 어쨌든 이바카체 신부는 열 번의 강의로 독재자에게 대한 자신의 임무를 다한다.

 

볼라뇨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선진적인 문명국가였던 칠레가 군부 독재 아래 야만의 시대로 퇴행하던 시절에 침묵했던 소위 지식인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야만의 시대가 드디어 종식되고 민주화가 도래했을 때, 예의 지식인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본업에 복귀했다. 이바카체 신부 역시 가벼운 열병, 광기 혹은 일시적 정신 착란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았던가. 우리와 비슷한 역사의 궤적을 그린 칠레 역사의 실재를 알게 되면서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소설 <칠레의 밤>에서 을 의미하며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리아 카날레스의 파티하우스 이야기는 패스한다. 이미 두 번의 리뷰에서 빼놓지 않고 다루기도 했거니와 새로운 해석이 떠오르지 않아서다. 소위 진보 지식인들이 자신들만의 해방구에서 희희낙락하는 가운데, 파티하우스의 지하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대파에 대한 고문이 실행되었다는 점이 그야말로 초현실적이지 않은가.

 

결말에 등장하는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한다는 볼라뇨의 선언이 뼈를 때린다. 그 어느 때보다 가짜 뉴스, 정치적 혐오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절에 한국에서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뱀다리] 오늘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벼르던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샀다.

쿠폰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해서 단돈 4,910원

에 득템 !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보니, 두께가 참으로 야만스럽다.


집에 가서 바로 읽기 시작했다.


가르시아 마데로, 울리세스 리마 그리고 아르투로

벨라노까지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니 반갑다.

읽다말마의 반복을 이번에야 끊어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22-05-09 16: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갖고 있는데 아직 안 읽었네요. 조만간 읽어야 겠습니다.

레삭매냐 2022-05-09 17:37   좋아요 2 | URL
분량이 적어서 금방 읽으실
수 있으리라 예상해 봅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 그런 책이랍니다.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하인리히 뵐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믿고 읽는 하인리히 뵐 작가의 작품이라 샀다. 그런데 책은 가제본 스타일이다. 좀 더 멋지게 만들 수 없었나. 250쪽 치고는 가격이 싼 편도 아닌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키호테
롭 데이비스 지음, 김마림 옮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원작 / 미메시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주말에 영원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다시 만났다. 어려서 만나고, 원전을 읽는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미뤄지고 있다. 모든 걸 나의 게으름 탓으로 돌린다.

 

다 읽고 나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했다. 알론소 케하나, 우리에게는 돈키호텔로 알려진 라만차 동네의 이달고였던 그는 정말 기사 문학을 너무 읽어서 광인 기사가 된 또라이일까? 그래픽 노블에서는 케하나가 머리가 쪼개지는 고통을 겪고 나서 비루먹은 말 로시난테를 이끌고 허술한 무장을 하고 기사도를 실현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데 한 가지 그동안 미처 몰랐던 점을 이번 그래픽 노블은 통해 알게 됐다. 돈키호테는 세상의 고통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기사가 되어 나섰다는 점이다. 그리고 둘시네아 델 토보소 공주로부터 사랑을 얻기 위해. 고통으로부터의 진정한 구원과 사랑을 얻기 위해, 바로 우리네 인간들이 사는 이유가 아닌가.

 

돈키호테의 앞길을 막는 두 명의 서브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신부요 다른 하나는 이발사다. 전자는 말할 것도 없이 중세 이래 막강한 정치권력을 행사하면서 신의 이름 아래 민중들의 모든 욕구를 통제한 종교 권력의 화신이다. 어찌 보면 쾌락주의는 인간의 본성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데우스의 이름을 빌려 그들은 민중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물질적 욕망과 안위만을 추구했다. 현세에서 민중들이 느끼는 고통과 구원에는 사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돈키호테라는 또라이 기사가 등장해서 세상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겠다니, 자신들의 밥줄을 끊을 판이다. 그러니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광인을 제 위치에 돌려놓아야 하는 절대적 책임감을 통감하고 사사건건 돈키호테의 모험을 방해한다.

 

자 다음 주자는 이발사다. 이발사는 중세 시대에 의사의 업무도 대신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이발소 앞에서 빙빙 돌아가는 간판 중에 붉은색이 의사 업무를 상징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뭐 그렇다. 암튼 종교권력자인 신부와 결탁해서 의사 혹은 17세기 초반 부상하기 시작한 부르주아지의 전형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공고한 사회적 질서를 흩뜨리는 또라이 광인기사를 그 역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신부와 이발사는 크로스결탁해서 돈키호테를 저지하는데 힘을 모은다.

 

지금 기준으로 보다 돈키호테 케하나는 무모한 이상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이미 세르반테스가 이 책을 쓰던 시절에도 이미 기사의 시대는 저물었다. 장궁 등으로 무장한 보병대의 위력 앞에 비싼 비용이 드는 귀족 놀음 같은 기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요즘으로 치면 탱크 격인 기사들이 적진으로 돌격해서 전쟁의 승패를 가리는 시대는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멋지게 무장하고 위용을 자랑한다고 하더라도, 본업인 전장에서 소용이 다하면 누가 기사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과거에 연연하는 케하나는 이상주의자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모험에서 그야말로 박살이 난 채로 라만차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자신을 따를 종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낀다. 기사 체면에 스스로를 누군가에게 밝히고, 먹을 것과 잠자리를 구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대신한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임무에 적합한 사람을 이웃에서 하나 구했으니 그가 바로 산초 판사다. 주변에서는 그를 머리가 좀 모자라는 얼간이라고 평했다. 케하나는 자신이 공을 세우게 되면, 산초에게 섬의 총독 자리를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케하나가 이상주의자라면, 산초 판사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그를 터무니 없는 모험으로 인도한 것은 다름 아닌 탐욕이었다. 그렇게 17세기 버전의 판타지 어드벤처 듀엣이 탄생했다.

 

산초 판사와 함께 한 첫 모험에서 빙빙 돌아가는 풍차를 상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돌격을 감행하면서 돈키호테는 풍차남이라는 세간의 명성을 얻게 된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사악한 거인이라고 생각하고 돌격했다. 능구렁이 같은 작가 세르반테스는 이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가 훗날 얼마나 대단한 유명세를 치르게 될지 미리 알고 이런 서사를 직조해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거대한 풍차를 상대로 돌격한 돈키호테가 어떻게 만신창이가 되는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돈키호테의 무모한 도전에는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이 꿈꾸는 낭만과 모험에 대한 동경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세상풍파에 너무 길들여진 우리들은 하지 못하지만, 딱히 잃을 게 없었던 17세기 이달고 돈키호테는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했다. 이런 서사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을까.

 

, 그리고 돈키호테가 톨레도 상인단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집으로 돌아와 있는 동안 신부와 이발사는 돈키호테의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선다. 그것은 바로 검열과 분서였다. 기사 문학을 너무 많이 읽었기 때문에 케하나의 정신세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그들은 케하나가 애지중지 모아온 책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타리크 알리의 <석류나무 그늘 아래서>의 서두에 등장하는 가르나타의 불의 장벽에 바로 연상됐다. 그리고 책을 태우는 이들이, 사람이라고 태우지 못할까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에스파냐에서 여전히 종교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종교권력이 횡행하던 시기에 세르반테스는 굉장히 위험한 사회적 비판을 이 위대한 기사 소설에 이런 방식으로 녹여냈다.

 

1부가 나온지 10년 만에 발표된 2부는 확실히 1부보다는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에서는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를 농락하는 공작 부부 그리고 케하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일념에 사로잡힌 학사 삼손 카라스코들의 활약이 주목할 만하다.

 

대문호 세르반테스는 자신이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모든 서사들을 썼으면서도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라는 가상의 인물이 편력 기사 돈키호테의 연감을 기록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그건 아마 전문 편집자가 없었던 시대에 자신의 작품에 들어나게 될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피하고, 혹시라도 모를 엄혹한 검열을 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다.

 

2부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바로 산초 판사다. 숱한 모험을 통해 신나게 두들겨 맞고, 계속해서 실패를 거듭하던 돈키호테는 이상과 꿈의 세계에서 결국 현실세계로 귀환하게 된다. 슬픈 이야기지만 안되는 일은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케하나가 퍼뜨린 이 위험한 형태의 이상주의 전염병은 바로 자신의 충실한 종자 산초 판사에게 옮았던 모양이다. 항상 눈앞의 빵에만 관심을 갖고, 이제나 저제나 돈키호테가 자신에게 약속한 섬을 주나 싶었던 산초 판사가 완전히 머리가 돌았는지 아니면 진짜 현실주의자에서 이상주의자로 사상적 전환을 한 것인지 말에서 낙마한 뒤, 돈키호테의 임종 순간에 다시 편력 기사로서의 모험을 나서자는 말을 내뱉는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모욕과 편력 기사로서의 명예 실추를 자각한 뒤, 현실로 돌아온 주인과 판시노-키호티스 듀엣이 되어 목동의 삶이라도 살자는 종자의 상호 트랜스포메이션 엔딩 설정은 정말 대단했다.

 

이 정도면 됐나? 더 쓸 게 있었던가. 나중에라도 더 생각이 나면 추가해야겠다.

 


읽다만 나의 <돈키호테>는 어디에 있나. 어린이날인데 오래 전 어머니가 사다 주신 동화 돈키호테의 추억을 되살리며 다시 읽기에 도전해야겠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2-05-05 10:5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읽어야 할 책입니다~~
어릴 때 동화로 읽었는데 그때는 모험에 촛점을 둔 듯했거든요. 그 깊은 의미를 잘 몰랐었어요^^

레삭매냐 2022-05-05 11:26   좋아요 4 | URL
적어 주신 글을 보니,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네요. 동화의 모험은 정말
재미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더 심
오한 메시지들이 한 가득이지
싶습니다.

새파랑 2022-05-05 12: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구해만 놓고 아직 시작도 못했는데 ㅜㅜ 나이들어 보면 더 심오하시다고 하니 좀 묵혀둬도 될거 같군요 ^^

레삭매냐 2022-05-05 18:42   좋아요 3 | URL
제가 오늘부터 원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초장부터 국가의 허
락을 받아 출판하는 거라는 명문
이 떠억~하니!

한 때 세계 대제국이었던 에스파
냐가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단초를 제공해 주지 않나 싶을
정도네요.

moonnight 2022-05-05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꽂아놓고 흐뭇해하기만 한 두 권 돈키호테-_ㅠ 언젠간 읽게 되겠지요..(체념-_-)

레삭매냐 2022-05-05 19:00   좋아요 2 | URL
그러믄요, 소장각으로만도 아주
므훗한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읽으시리라 믿습니다.

바람돌이 2022-05-05 14: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역본을 오래전에 사두고 아짇도 읽지 않은 책. 이 글을 읽으니 또 욕구가 들썩 들썩이면서 책장에서 꺼내 먼지 털고 있네요. ㅎㅎ

레삭매냐 2022-05-05 21:28   좋아요 1 | URL
아무래도 그렇지요...
램프의 요정 기록을 뒤져 보니
저는 두 번 <돈키호테>를 샀네요.

한 번은 시공사 버전으로 그리고
2년 전에 열린책들 버전으로.

후자를 찾아서 오늘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완독해
보려구요.

mini74 2022-05-07 0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린 책들이군요. 저도 사려고 이것저것 찌르고 있는 책입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5-07 09:11   좋아요 1 | URL
우선 그래픽 노블로 만나고
다시 원전 읽기에 돌입하니
또 새로운 느낌이 들고,
기시감이 있어서 진도가
수월하게 나가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