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간적이어야한 그 순간에, 나를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도록 지시하는 그 목소리에 더 이상 복종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난 자유로워졌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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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우리 앞에 여명이 나타났다. 우리가 정확한 시각을알지도 못하고 있을 때, 공기 중에 모슬린처럼 너울거리는 불그스레한 수증기가 파하 브라바 초원 위를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별들은 잠들어 있었고, 저 멀리 지평선에 오팔 빛깔의 활활 타오르는 구름이 나타났는데, 붓으로 한 번 격렬하게 그린것 같은 구름이 응고된 루비 덩어리처럼 보였다. 찬란한 여명이 비치는 가운데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오리들, 공중에 떠다니는 눈송이처럼 굼뜬 백로들, 파닥거리며 나는 에메랄드 색앵무새들, 다채로운 색깔의 구아카마야**들이 허공을 갈랐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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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차돌박이를 먹으러 갔다.

광고 현수막 사진을 찍어 가지고 가면 50% 할인해 준다고 해서 부랴부랴 갔다.

 

컵라면/라면도 공짜 음료수도 공짜다. ,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고.

커피 원액도 주고, 또 조리퐁도 디저트로 준다. 이미 두 번 방문한 건 안 비밀.

단가는 3-4인분 원래 5만원이지만, 25,000원에 포식.



어언 십년 단골이 된 커피인더스트리.

이번에 리모델링을 해서 싸악 개장을 했더라.

그리고 단가도 물론 올렸다.



예전에는 테이크아웃 주문을 하면 천원이나!!! 깎아 주었는데 이제는 사라져 버렸다.

자리에도 앉지 않는데 천원을 더 낸다고 생각하니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이 살짜쿵 들었다.

커피 맛은 기가 막히다. 꼬소한 맛 추천.



내가 무지 좋아하는 근처 동네빵집의 이탈리언 고로케.

덩치가 상당하다. 그리고 가격도 제법 올랐다. 그놈의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밀가리 값이 너무 올라서 어쩔 수가 없었겠지.

만날 인디오븐의 2,700원 짜리 먹다가 두 배나 되는 녀석을 사려니... 패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옆에 누버 있는 소세지빵으로 낙착.

담달 아침에 맛있게도 냠냠.



다음은 회사 인근 상무초밥에서 먹은 런치 스페셜, 단가는 9,900.

놀라웠던 게, 이제는 주문도 모두 테이블에 놓인 패드로 하더라. 하긴 오리집에서는 로봇이 반찬이 담긴 그릇들을 날라 주던데. 점점 세상이 좋아지는건가 과연.



세트로 딸려 나온 냉모밀.

지금도 여전히 내가 먹어본 최고의 메밀국수는 고향 인천의 청실홍실이 아니던가.

아주 오래전, 군대에서 휴가 나오면 먹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그 청실홍실 메밀국수였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츄릅~한대.



비가 펑펑 오던 날, 전철을 수원으로 마실을 나갔다.

간만에 방문한 수원 롯데몰에서 만난 레고 고슴도치형. 제법 멋있어서 찰칵!



그다음날 부랴부랴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폴과 비르지니> 사기 위해 찾은 알라딘 수원시청역점.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촌사람 고생했네. 1층에는 아티제 빵집이 있던데 그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10% 할인해 준다고 해서 커피라도 한 잔 사야 싶었다. 할인 받아 먹을라꼬.



비가 오던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었다. 밖은 엄청나게 후덕지근했는데, 실내는 엄청 시원했다.

전철을 타고 오는 길에는 만취해서 역사 쓰레기통을 부여잡고 피자를 붙이던 청춘들을 볼 수가 있었다. 참 좋은 시절이구나. 쏘주 한병반 드셨다던데... 친구들이 참 수고하더라.



밥 묵고 나서는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읍천리 카페를 방문했다.

스타일이 왠지 새마을식당 풍이라고나 할까.



여긴 샌드위치 전문인가 보더라. 커피는 생각보다는 별로였다. 맛에는 진심인 동료의 냉정한 판단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나는 맛에 그렇게 까다롭지는 않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가 피는 계절이 되었나 보다.

지난 겨울 우리집에 핀 녀석은 씨앗을 맺지 못했다. 벌이나 나비가 수분을 해주지 않아서였을까? 가을에 수원 이목동에 갔다가 길에 핀 해바라기 씨를 받아다가 심었는데 겨울에 싹이 났던데. 지금도 해바라기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과꽃 뿌리 생각보다 커서 깜짝 놀랐다. 나팔꽃도 피었더라.



어제 화해담이라는 곳에 가서 먹은 점심, 골동반 단가는 9,000.

예전에는 8,000원이었는데 물가 인상으로 가격이 오른 모양이다.

새우튀김에 된장국 그리고 비빔밥. 정갈했다.



점심 먹고 나서는 인근에 있는 두목커피연구소에서 라떼 테이크아웃.

여긴 통 크게 테이크아웃 2,000원 할인해 주어서 감사!

찍은 사진들 보니 참 많이도 먹고 돌아 다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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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06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도 먹거리도 잘만 찾으면 저렴하면서도 풍성하게
먹을 수도 있겠네요. 기분 좋으셨겠습니다.ㅎ
아, 중고샵을 언제 나가봤는지 모르겠습니다.
근질근질하네요.ㅠ

레삭매냐 2022-07-06 15:05   좋아요 2 | URL
물가 인상을 피부로 바로
느끼고 있습니다.

커피값은 물론이고 밥값
도 너무 올랐더라구요 -
돈만원은 줘야 먹을 만
하더라구요 ㅠㅠ

유일하게 책값만 제자리
이지 않나 싶네요.
중고서점은 고저 사랑입네다.

거리의화가 2022-07-06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가가 너무 올라서 안 그래도 자주 안하던 외식 더 줄여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배달비도 늘어서 배달주문도 자제하구요^^ 돌아다니다보면 만만한 게 커피 마시는 것인데 이조차도 올라서 멈칫하게 됩니다ㅋㅋㅋ
해바라기철이 되었군요. 저도 좋아하는 꽃이라~ 해바라기는 도심에서 보기 어려워서 좀 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22-07-06 15:06   좋아요 1 | URL
저는 코로나 시국도 배달
없이 보낸 닝겡이랍니다 -
배달비가 너무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픽업 서비스를 이용
하지요.

커피값이 천차만별이라 -
맛도 좋으면서 저렴이를 찾
으러 삼만리~~~

말씀 들어 보니 진차 해바라
기, 도심에서는 거의 못본
것 같습니다.

새파랑 2022-07-06 14: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해담 맛있어 보입니다 ㅋ 알라딘 수원점 안가봤는데 가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님은 맛집도 전문가 이시군요 ^^

레삭매냐 2022-07-06 15:07   좋아요 2 | URL
수원에는 램프의 요정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수원역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원시청역에 있답니
다.

맛집은 찾고 싶으나 잘 보이지
않더라구요 ㅋㅋㅋ

페넬로페 2022-07-06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리 차돌박이, 고로케, 초밥, 냉모밀,
아이스라떼~~
다 맛있어 보여요.
물가가 하도 치솟아 아무 생각없이 사 먹던 커피부터 줄여야하는가?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래서 오늘 도서관 갈때는 집에서 커피 내려갔어요~~
저도 배달비가 아까워 시켜먹지 않거나 직접 공수해 옵니다.
왜그런지 그 돈이 아깝더라고요 ㅎㅎ

레삭매냐 2022-07-07 08:1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서 어제 평소에
가던 커피집 대신 다른 집
에서 주문했습니다. 500원
싼데 맛은 - 달리 가격이 비
싼 게 아닌가 봅니다.

배달비 저도 아까워서 사다
가 먹는답니다. 공감 공감 ~

moonnight 2022-07-06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고파요^^; 다들 참 맛있어보이는군요♡ 요즘 <폴과 비르지니>를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되네요. 아무래도 읽어야한다는 운명ㅎㅎ;의 속삭임인가 싶네요. ^^

레삭매냐 2022-07-07 08:12   좋아요 1 | URL
저도요 -

휴머니스트 서평단 범람으로
알게 되었는데, 결국 다른 출판
사 책으로 만났답니다 ㅋㅋ

양화로 인정하겠습니다.

mini74 2022-07-06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은 책들만 보다가 먹은 것들 보니 왜 더 신선하고 반갑지요 ㅎㅎ 고로케!! 내일 아침엔 모자 야무지게 쓰고 고로케 사러 가야겠습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7-07 08:13   좋아요 1 | URL
늘상 책 이바구만 털다
보니 이렇게 격조에 어울리지
않는 먹부림도 신선하게... 쿨럭

그랬다고 합니다.

모닝부터 고로케 땡깁니다 저도.

페크pek0501 2022-07-07 18: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어제 폰으로 보고 먹고 싶었다는...
특히 소시지빵에 아이스커피는 환상이죠...

레삭매냐 2022-07-08 09:39   좋아요 1 | URL
크하~ 그러셨군요.

저는 보통 라떼를 마시는데
아이스커피에 소시지빵 한
번 도전해봐야겠습니다 :>

독서괭 2022-07-08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윽 점심 잔뜩 먹었는데도 간식이 확 땡기는 이 사진들 ㅜㅜ 전 생크림스콘이 맛있어 보이네요 ㅜㅜ

레삭매냐 2022-07-08 17:18   좋아요 1 | URL
저도 항상 저 디쟈트를 먹고
싶으나 만날 밥 먹고 가는
바람에 못 먹고 있답니다 ^^
 
오렌지주를 증류하는 사람들 대산세계문학총서 169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임도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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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다른 두 개의 책, 전자는 실패하고 후자로 완독에 성공했다.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불편한 마음, 그래도 매혹적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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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비르지니
베르나르댕 드 생 피에르 지음, 안은주 옮김 / 썰물과밀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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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서 우연히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글을 보게 됐다. 모두가 외면하는 남도의 어느 섬에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반평생을 보내고, 연세가 들어 더는 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없게 된 이국의 할매들이 소리 소문 없이 이역만리 고국 땅으로 돌아갔다는 글을 읽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주책없이 그렇게 펑펑 눈물을 흘렸다. 지금도 왠지 눈시울이... 오스트리아 할매들은 그렇게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보여 주셨다. 지상에 천사가 있다면 아마 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제 막 읽은 비르지니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폴과 비르지니>라는 책이 있다는 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리즈로 알게 됐다. 그런데 정작 책은 그 출판사 책으로 만나 보지 않고, 중고서점으로 달려가 다른 버전으로 사들였다는 건 안 비밀이다. <폴과 비르지니>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1년 전(1788)에 발표된 작품이다.

 

때는 18세기, 프랑스에 아직 부르봉 왕가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본국이 아닌 식민지 일 드 프랑스(지금의 모리셔스)라고 불리는 인도양의 외딴 섬이다.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해서 집안을 버리고 사랑을 좇아온 라 투르 부인. 젊디젊은 신랑은 객사하고, 유복자 미래의 비르지니를 낳는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이웃 마르그리트의 아들 폴과 함께 식민지에서의 험난한 일상을 헤쳐 나간다.

 

식물학자이기도 한 저자 드 생피에르가 묘사하는 일 드 프랑스의 자연은 그야말로 천국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흑인 노예 도맹그와 마리의 도움으로 가난과 무지 속에서 성장해가는 폴과 비르지니의 모습에서 왠지 그들이 성장하면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연인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피어오른다. , <폴과 비르지니>의 서사는 일 드 프랑스에 간 화자가 현지에서 우연히 만난 현자에게 전해 듣는 구성을 따른다. 그러니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이에게 들었다는 전통적 서술 방식의 재현이라고나 할까.

 

도망친 흑인 노예를 도우려고 했다가, 울창한 밀림에서 길을 잃고 위기에 빠지지만 폴은 기진맥진한 비르지니를 업겠다고 나선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들을 찾아 나선 도맹그가 나타나면서 그들은 집으로 갈 수가 있었다. 타인을 돕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선뜻 나서는 청춘들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리고 소설의 어디선가 발견한 맨발의 아름다움은 비록 가난하지만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얻은 미덕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폴과 비르지니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문구가 아닐까 싶었다.

 

영원한 것만 같았던 일 드 프랑스에서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라 투르 부인은 본국에 있다는 백모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가문을 버린 질녀에게 부유한 백모는 경제적 도움 제공을 거부한다. 그러다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비르지니를 프랑스로 보내 교육도 받고, 윤택한 생활을 하게 해주겠다는 제안을 알린다. 라 투르 부인은 가난한 자신들의 처지에서 비르지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으로 비르지니의 프랑스행을 지지한다. 섬처녀가 된 비르지니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무엇보다 폴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훗날 폴과 결혼하게 된다면 자신의 부유함이 그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희생의 마음으로 프랑스행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비르지니가 천국을 떠나는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우선 가장 상심한 사람은 바로 폴이었다. 오누이 같았던 그 둘의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가난이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로 간 비르지니가 행복했냐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가혹한 백모의 처분으로 그녀는 1수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하고, 수도원에 갇혀 따라가지도 못하는 수업들을 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모두가 불행하게 된 것이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 어떤 비극을 잉태하게 되는지 저자 드 생피에르는 <폴과 비르지니>를 통해 절절하게 독자에게 전달한다.

 

사랑하는 애인 비르지니의 부재를 계기로 각성하게 된 남자 폴은 현자를 찾아가 글도 배우고,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핵심은 바로 이 현자와 폴의 대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저자 드 생피에르는 속세 본국 프랑스와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천국 같은 일 드 프랑스를 비교하면서 사랑에 굶주린 폴을 달랜다. 모름지기 세상의 범사에는 모두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깨달음과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의 현자는 상실감에 시달리는 폴에게 문학을 권한다. 문학이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 같은 것이라는 말로. 그런데 문학에는 순기능만 있었을까? 폴은 문학에서 구원을 얻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의 배반, 돈 많은 늙다리 영감과 결혼하는 젊은 아가씨의 이야기들이 이미 당시에도 대유행이었으니 말이다.

 

하루하루의 고된 노동을 마친 뒤에 비르지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즐거웠던 시절은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폴은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비르지니가 돈 때문에 그녀의 백모에게 팔려 갔다고 생각하고는 인도로 가서 돈을 벌거나 혹은 본국에 가서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기도 한다. 하지만, 폴의 출생의 비밀을 아는 현자는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하다는 말로 그를 설득한다. 절대왕권이 판을 치던 시절에, 사생아 출신 폴이 프랑스 왕국에서 출세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라는 냉혹한 사실을 알려준다.

 

234년 전에도 이미 고착화된 신분제와 금권 때문에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사실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결국 우리 인간의 역사는 형태와 방식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그리고 소설은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비록 흑인노예지만 가족 같았던 도맹그와 마리를 왜 자유인으로 풀어 주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가난 때문이라는 경제적 이유도 있겠지만,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무지의 탓이라고 해야 할까. 현자를 통해 각성한 뒤에도 폴은 오로지 출세할 궁리만 하지, 주변 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 물론 라 투르 부인과 어머니 마르그리트 때문에 선뜻 섬을 떠나지 못한 탓도 없지 않다.

 

은연중에 드러나는 문명과 야만이라는 어쩔 수 없는 식민주의자 이방인의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폴과 비르지니>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모리셔스에 살았던 경험을 그대로 소설에 녹여낸 것 같다. 드 생피에르는 직접 난파선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한다. 기후 위기의 시대에 천국 같은 자연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 이제는 어디서고 찾을 수 없게 된 선행과 미덕의 화신 같은 캐릭터들의 조화, 마치 내가 대화의 상대로 착각할 정도로 만들어준 현자와의 대화 그리고 마음을 온통 뒤흔드는 처절한 비극으로 어우러진 한여름에 읽기에 최적화된 그런 소설읽기였다. 부족함이 없는 그런 작품이다. 나만 아는 작품을 만난 것 같은 즐거움도 빠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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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7-05 1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분들 이야기 소록도 큰할매 작은 할매 그림책으로 봤던 기억납니다. 매냐님 선하고 좋다고 믿었던 선택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진 않는거 같아요. 매냐님 제목이 너무 멋집니다 ! *^^*

레삭매냐 2022-07-05 13:19   좋아요 1 | URL
할매들 이야기는... 정말
찡했습니다.

책으로도 한 번 만나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

stella.K 2022-07-05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잘 모르는 작간데 매냐님을 통해 첨 아네요.
한 여름에 읽기에 최작화라니 읽어보고 싶네요.
글치 않아도 여름에 읽으면 좋을 책이 뭐 없나 했는데.^^

얄라알라 2022-07-05 12:49   좋아요 4 | URL
표지 초록 조차도 한여름스러워요^^

레삭매냐 2022-07-05 13:21   좋아요 2 | URL
분량도 단 240쪽!

아주 적당하니 감동의 도가니
탕을 맛보실 수 있으리라 믿슙
니다.

표지도 초록초록하니 좋습니다.

바람돌이 2022-07-05 14: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런 커플은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겠죠? 아닌게 개연성이 더 있겠지만 그래도 해피엔딩을 보고싶은 마음이라니..... 모리셔서 섬에서 자연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뭐 그런 그림을 막 떠올리고 있습니다. ^^

레삭매냐 2022-07-05 17:42   좋아요 0 | URL
세상의 선행과 미덕이 흘러
넘치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흘러 간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그런 작
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엔딩은 참으로 처연했습니다.

moonnight 2022-07-07 1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연한 엔딩이라니ㅠㅠ 두려워집니다. 비극은 무섭ㅠㅠ;;;

레삭매냐 2022-07-07 11:44   좋아요 2 | URL
어쩌면 비르지니가 프랑스로
떠나는 순간부터 비극은 일 드
프랑스(모리셔스)에 자리잡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아름다운 소설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08-10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좋은 작가들과 아름다운 소설이 이렇게 많네요!
당선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2-08-10 16: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제가 이 리뷰 읽고 이 책 찜해둔 거 아시죠?ㅎㅎ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2-08-10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리뷰 읽고 아담~~ 읽었는데 참 좋았어요. 그래서 저도 이 책 찜 했는데 ㅎㅎㅎ 당선까지!!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8-10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경축 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8-1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8-1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2-08-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애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8-12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님, 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