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먹으러 가자! - 간사이(오사카, 고베, 교토)편
까날 지음 / 니들북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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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동안 많은 나라들은 아니지만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유명하다는 곳들을 거의 다 가봤고, 많은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다시 말해서, 볼 것 할 것들은 다 해봤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많은 이들이 여행의 즐거움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라 혹은 그 지방 특유의 음식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싸돌아다니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뭔 놈의 음식, 그냥 대충 때우고 말지’식의 여행이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그런데 <일본의 먹으러 가자>의 저자 “까날”(필명이 특이하기도 하다)은 그런 나의 경험에 의거한 고루한 여행관을 이 책을 통해 산산이 부수어 주고 있다. 작가는 순전히 먹으러 여행지를 찾은 것 같이 철저하게 특히 일본의 간사이 지방의 대표적인 도시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오사카-고베-교토를 누비면서 별난 맛집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적어도 음식문화에 있어서는 일본 최고라는 자긍심을 자랑하는 간사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식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무래도 첫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 책의 지은이 까날은 바로 일본 음식을 대표하는 스시로 시작한다. 오사카의 “스시 긴”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사실 스시는 도쿄에서 시작된 요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회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일 수 도 있지만, 예전에 같이 살던 룸메이트 형이 스시맨이어서 그랬는지 일본어로 생선 이름을 많이 들어서 익숙한 말들이 많았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니기리가 쥠 스시를 뜻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배웠다. 역시 선도를 위해 최고의 재료들을 사용하고, 맛에 있어서는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소위 말하는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그 외에도 서양요리들이지만 일본에 들어와서 일본의 전통과 만나 일본화된 음식들은 물론이고, 일본 차 문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화과자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게다가 음식들을 소개할 적에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한 페이지짜리 사진들은 식전에 보게 되면 바로 배시계에 경종을 울릴 것만 같다.

오사카에서 소개된 음식 중에서는 역시 오코노미야키와 타코야키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가을 찾았던 인사동에서 무턱대고 입에 넣었다가 제대로 입천장이 모두 데게 고생했던 타코야키의 문어맛이 문뜩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서부 일본 최초의 개항장이었다는 고베가 등장한다. 고베는 역시 외래 문화의 유입이 많았던 탓인지 서양음식과 결합된 퓨전 스타일의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진칸과 모토마치에 주로 포진해 있다는 레스토랑들의 소개를 보면서 도대체 난 고베에 가서 뭘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하도 오래 전의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도 않지만 말이다. 자매 식당이라는 루세트와 레시피 편에서 일품 농어 요리에서 소개된 그 바삭바삭한 농어 껍질과 긴 유리잔에 담겨 나온 티라미슈를 보면서 다음번에 고베에 가게 되면 반드시 한 번 찾으리라는 결심을 다졌다.

확실히 서양식 디저트와는 달리 부드러우면서 달착지근한 맛의 일본식 디저트가 더 끌리는 것 같았다. 저자의 모토마치 디저트 투어와 천년왕도 교토에 등장하는 마르브란슈 몽블랑, 마치 주술처럼 그 이름을 외운 비타메르의 케이크들의 위용이 내뿜는 포스들은 정말 대단했다. 게다가 저자의 맛깔나는 글쓰기도 독자들의 미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얻게 된 최고의 수확을 꼽자면,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되면 시간을 쪼개서라도 한두 번쯤은 반드시 그 곳의 최고 맛집에 도전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식에 있어서도 전통과의 단절이 아닌 전통과 현대의 조화와 창의적인 재해석으로 멋진 음식들을 만들어내며, 무엇을 하든지 간에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다는 일본 셰프들의 멋진 장인의식에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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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General Manager) 1차전 GM(General Manager) 1
최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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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으로 현재도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최훈 작가의 만화이다. 우리나라 프로야구 판을 메이저리그의 구단들의 이름과 심지어는 풋볼 그리고 NBA까지 동원을 해서 다양한 팀 이름을 만들어냈다. 가끔 메이저리그 웹툰도 그리는 최훈 작가는 촌철살인의 깊이를 그가 그리는 만화를 통해 보여 주곤 한다. 정말 진짜 팬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그런 디테일까지도 말이다.

만화 지엠은 초대형 타자인 장건호가 자유계약 선언을 하면서 시작된다. 팀의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모두 그를 영입하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다. 게다가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는 오히려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라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몸값으로 이적을 할 거라는 선언을 덧붙인다.

자 바로 이 시점에서 우리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하민우 대리가(하대리의 계승자!) 등장한다. 모기업의 재정악화로 인해 최악의 경영 상태로 치닫고 있는 하위 팀 수원 램즈 전략팀의 프런트 직원이다. 고교시절 한 때는 잘 나가는 초대형 선수였지만 프로에 들어와서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게 되고, 결국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해서 프런트에서 일하고 있다. 이에 갑자기 등장한 사장인 이윤지는 온통 미스터리로 가득한 묘령의 여인이다. 물론 나중을 대비한 복선이라는 것이 아주 눈에 띄지만 말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비수 한 자루를 숨겨 가지고 다닌다는 인상이다.

이들의 상대는 바로 만년 하위 팀에서 일약 우승을 넘보게 된 인천 돌핀스의 소위 천재단장이라고 불리는 은종오가 있다. 누가 봐도 은종오의 모델은 바로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이다. 스몰 마켓 팀으로 해마다 주전급 선수들을 팔아 대면서도 한 때,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를 호령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빌리 빈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같은 지구에 있는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써대는 에인절스에게 해마다 눌리긴 하지만 언제 또 빅3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시절처럼 되돌아갈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들이 펼쳐내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현실 세계의 축소판이다. 본격적인 시즌에 들어가기에 앞서, 트레이드를 통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잉여자원들을 활용해서 부족한 것은 메우는 모습은 야구계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하지만 거래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점에서는 최대한 홍보를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트레이드 과정은 예전에 누군가, 로켓 사이언스만큼이나 어렵다고 한 말이 언뜻 떠오른다.

그리고 하대리가 앞장서서 자신과 친구 사이인 유틸리티 선수인 조민준을 냉정하게 짜르는 장면에서는 프로 세계의 냉혹하기 그지없는 면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오로지 실력을 갖춘 자만이 인정을 받고, 아무리 팀에 헌신적인 공헌을 했더라도 팀에 더 이상 불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내치는 장면은 실제 야구 판의 판박이였다.

물론 곧 이어 전개될, 어느 이야기에서건 빠질 수 없는 하대리와 이윤지 사장 그리고 램즈의 직원 애리 사이에 벌어지게 될 러브라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를 제공해 줄 것이다. 왜 책의 말미에서 캐릭터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왜 두 여주인공들을 비키니를 입혀서 출현시켰는지, 작가의 엉큼한 마음이 살짝 엿보였다.

앞으로도 2차전 그리고 3차전이 계속해서 출간될 것 같은데, 당분간 월간 만화가 되어 버린 웹툰은 끊고 앞으로 나올 단행본을 기다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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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라라
마광수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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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형이 돌아왔다. 아주 오래 전에 <즐거운 사라>라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만재된 ‘야한’ 소설로 필화를 겪은 후에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일류로 쳐주는 Y대의 존경받는 국문학과 교수에서 파렴치한 변태성욕자로 급전직하했을 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섹슈얼 판타지 또한 진화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소설인지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퇴근길 전철 안에서 책을 펴들었다. 처음에 비닐로 포장이 되어 있었고, 19세 이하 판금 뭐 그런 딱지가 하나 붙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몇 장을 넘기자마자 바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게 됐다. 전철 간에서 남의 신문을 흘끔흘끔 넘겨다보는 이가 행여나 내가 읽고 있는 책에 시선을 줄까봐서 말이다.

마광수 교수는 예나 지금이나 거침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섹슈얼 판타지에 대해 <발랄한 라라>를 통해 분출해내고 있다. 고상한 표현? 그런거 없다,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것이다. 남들과는 상이하게 다른 마광수 교수의 판타지는 필연적으로 ‘외설’이라는 타이틀을 떼어 내려야 떼어 낼 수가 없을 것 같다.

그가 이상형으로 꼽는 여인들의 형상은 도저히 현실세계에서는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대놓고 30센티미터 빨간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을 예찬하고, 18센티미터 슈퍼울트라 스틸레토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의 성적 취향은 마광수 교수가 즐겨 쓰는 표현 그대로, 음란무쌍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하긴 판타지 그 자체가 현실과는 동떨어진 개념이긴 하지만. 예전부터 마광수 교수가 길게 기른 손톱과 풋 페티쉬에의 집착은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바디 피어싱도 추가가 됐나 보다.

모두 30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발랄한 라라>는 지난 천년에 발간된 <즐거운 사라>의 연장선에 서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 있게 읽었던 <심각해씨의 비극>은 필화사건으로 자신을 나락으로 몰아 세웠던 주류 미디어와 사법부에 대한 서릿발 같은 조롱이다. 자신의 주장했던 정반대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으로 자신에 대한 심판에 대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전면적인 성의 해방이 아닌 중세적 발상에 기인한 성을 규제해야 한다는 이야기 전개에서, 자신을 물 먹인 이들에 대해 혀를 날름대고 있는 마광수 교수의 건재함이 느껴졌다.

그가 고등학교 때 썼다는 <개미>는 마치 어느 유머집에서 한 번 읽어봤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독창적인 이야기였나? 아무래도 그의 전생(全生)을 커버하는 탓인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에 대한 이야기들은 서로 비슷해서 개성적인 변별점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공인 중에서 이렇게, 개인적인 성적 취향에 대해 자신 있게 까발릴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을 다룬 진보적 예술 작품들은 예나 지금이나 혹독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사회의 건전한 풍습과 도덕에 위배된다는 이유가 들먹여지곤 했었는데, 사실은 지배계급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무차별적인 검열과 탄압이 뒤따랐다. 물론 그에 앞서 마광수 교수의 성적 담론들이 예술이냐 외설이냐에 대한 규정이 있어야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그의 책을 소비하는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야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가 가진 스펙트럼이 지난 천년보다 훨씬 더 다양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한 개인의 독특한 성적 취향 정도야 이제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읽으면서도 많이 당혹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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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8-10-13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미는 광마님의 첫 수필집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에도 담겨 있었죠. 아마 거기서 읽으신 게 아닐까요?

레삭매냐 2008-10-17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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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영미권의 작가들이 아닌 제3세계의 다양한 문학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일루저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의 한 권인 <위험한 책>과의 만남을 가졌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서점에서 만났던 이 책과의 첫 대면에서 얄팍하니 금세 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서 말해고 있다시피, 책이 위험하다고 작가 도밍게스는 서두를 시작한다. 인류의 무지와 암흑의 세계로부터 해방시켜준 책이 위험하다고 하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사상이나 정신적인 차원에서 책이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치명적인 물리적 위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스페인어학부 강의를 맡고 있던 블루마 레논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든 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대타로 투입되게 된 화자인 “나”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루과이에서 죽은 블루마에게 의문의 소포 꾸러미 한 개가 도착하면서 <위험한 책>의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포 꾸러미 속에서는 시멘트 가루가 폴폴 피어오르는 조셉 콘래드의 <섀도 라인>이라는 책이 튀어 나왔고, 그 책을 보낸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기 위해 “나”는 머나먼 여정에 나서게 된다. 나의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까지 브라우어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나. 나에게는 그럴 어떤 의무도 없었지만, 이 기묘한 여행을 통해 열혈 애서가 브라우어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그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간다.

대형서점의 호르헤 디날리 그리고 역시 애서가로 뛰어난 서가를 자랑하고 있는 오귀스트 델가도를 만나면서 어쩌면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인 브라우어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된다. 델가도가 말하는 책에 대한 브라우어의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열광적으로 책을 읽고 모으는데 열중했던 브라우어는 지나친 책에 대한 사랑에 때문에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그에 책사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화재 때문에 열정을 다해 만든 도서목록을 소실하게 되면서 라 팔로마로 떠나 집을 짓게 된다. 바로 그 집에서 이 이야기의 근원을 찾게 된 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 객체가 바로 책으로 나오지만, 그 관계는 우리 일상의 다른 것들로 치환가능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듯이, 실제 주인공 브라우어는 책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구현하기에 이른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책에 나오는 애서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공감할 수가 있었다.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단순한 수집과 읽기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이라는 물질이 우선하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가 없듯이, 책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행복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번민의 근원이 된다. 책을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도밍게스가 풀어 나가는 책 이야기에 어느 순간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책에 대한 사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나에게, 또 하나의 사연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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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 - 20세기를 뒤흔든 3대 혁명적 사상가
강영계 지음 / 멘토프레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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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철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대학 시절 내내 철학이랑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어! 라고 당차게 외치면서 철학에 대한 몰이해를 마치 무슨 자랑인 것처럼 떠들고 다녔었는데, 졸업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뒤에 이렇게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멘토프레스에서 출간된 강영계 선생의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철학의 끌림>이라는 책과 만나게 되었다. 아마 본격적인 철학과의 만남을 위한 워밍업이라고 해야 할까? 우선 이 책을 통해 현대철학계의 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세 명의 철학자(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철학자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가에 대해 호기심이 증폭했다)들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이 책을 고르게 하는데 크게 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첫 번째로 등장하는 칼 마르크스. 예수 그리스도 이래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하는 인물이라는 카피라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깔고 있어서 그런 진 몰라도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그에 대한 사상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에 대해서는 복기할 수 있었고, 전혀 모르고 있던 사항들에 대해서는 배움의 기회였다고나 할까.

과학적 유물론에 입각한 사회주의 더 나아가서는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모토를 삼았기 때문에, 나폴레옹 전쟁 이후 보수적인 유럽 제국들로부터 철저하게 배척을 당했다. 본국인 프로이센에서는 일찌감치 추방을 당했고, 프랑스 파리 그리고 벨기에를 거쳐 결국 영국 런던에 정착하게 된다. 정치 경제 철학 쪽으로는 탁월한 분석과 현실 세계에 입각한 사회변혁을 꿈꾸던 마르크스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에서는 철저하게 무능한 가장으로 부인은 물론 아이들마저 가난 가운데 잃어버리게 된 비운의 가장이었다.

헤겔좌파에서 비롯된 그의 사상은 절대 정신에 근거한 관념론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과학적 유물사관에 입각해서 사회적 단계 성숙에 따라 궁극적으로 사회혁명과 휴머니즘에 입각한 만민평등 사상을 그의 저작들을 통해 주장했다. 물론 당시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던 자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그의 사회주의 사상이 어떤 면에서는 틀린 면들도 있지만 자주적인 프롤레타리아들의 노동의 소외현상과 유산자(부르주아지)와 무산자(프롤레타리아) 계급간의 피할 수 없는 투쟁이라는 자본주의 본질을 꿰뚫은 그의 혜안은 이후 사회주의 발전에 지대한 미쳤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마르크스가 마련한 이론적 토대를 근거로 해서 레닌이 주도했던 소련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 같은 실천적인 면을 다루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사실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다른 말로 불리듯이 두 인물의 사상이 바늘과 실 마냥 붙어 있다는 점을 연상시킨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다음으로는 초인(Übermensch:위버멘쉬)을 노래한 니체가 등장하게 된다. 아마 이 책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대로 된 철학자라고 불릴 만한 이는 니체일 것이다. 하지만 철학에 대한 절대적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 니체 편을 읽으면서도 솔직하게 말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마치 생쌀을 씹는 듯한 기분으로 넘어간 적도 많았다.

내가 니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초인 정도였다. 사실 초인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문자 그대로의 지식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니체가 25세에 바젤대학의 교수로 초빙이 되었으며, 삶에의 의지를 표명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진정한 깨달음은 자신의 추구하는 바를 딛고 이겨 내는 것이라고 하듯이 니체 역시 결국에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영향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니체 개인에 대해서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고모 그리고 누이들에 둘러 쌓여서 자라난 탓에 소심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고 말년에 가서는 결국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을 통해 19세기말 합리주의와 기독교 종교와 같은 관념론들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하고, 허무주의를 부정한다. 절대정신에 기인한 부정을 긍정으로 전도하면서, 초인(위버멘쉬)으로서 인간의 자발성과 결단성을 강조한다. 직관론과 운명애를 바탕으로 해서, 마르크스와 같이 철학의 과제가 세계를 해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키는데 있다는 주장을 니체는 피력했다. 다만, 마르크스는 변혁에 있어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가 근본이었지만, 니체는 초인으로 대변되는 엘리트주의를 표방했다는 차이점을 보여 준다.

니체 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초인(위버멘쉬)의 개념은 슈퍼맨과 같은 초인간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긍정적으로 삶과 세계를 인식하면서 허무주의와 염세주의를 극복한 ‘실존적 존재’를 상징한다. 초인의 길에 이르지 못한 우리들은 초인이 되기 위한 하나의 질료에 불과하다는 것이 니체의 생각이었다. 부족하지만, 이 정도로나마 니체 철학을 맛본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데 투자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현대 정신분석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유태인이라는 신분상의 이유로 어려서부터 주류 게르만계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 내던져졌다. 한니발과 크롬웰을 자신의 롤 모델로 삼았던 프로이트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독일 혹은 오스트리아에의 어느 곳에서도 대학교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많은 식구들을 부양하게 되는 가운데, 노이로제(신경증)와 히스테리 연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프로이트는 신경병리학자로써 드디어 무의식의 세계에 도전하게 된다.

1900년 수년간의 꿈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연구한 끝에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라는 명저를 내놓게 된다.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확대된 무의식이라는 것을 주장하면서, 프로이트는 성충동과 욕구충족의 상호 보완되는 개념들로 인간의 정신세계를 설명하기에 이른다. 무의식의 세계에 등장하는 욕구충족에의 희구는 의식적으로 검열과 은폐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이 프로이트 사상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은밀한 욕구일수록 의식은 그것을 감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기제를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성충동의 근원으로부터 찾으려는 그의 리비도 이론에 그의 후계자로 생각되었던 칼 융 등이 반발하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거리를 둔 새로운 분석심리학의 장을 열게 된다. 프로이트의 이론과 가설들이 전적으로 옳았던 것은 아니지만, 미지의 세계로 알려져 온 인간의 의식세계를 과학적인 방법과 연구를 통해 파악하려고 했던 그의 선구자적 노력은 높게 평가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저자 강영계 선생의 주장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명의 주인공들에 대한 공통점을 도출해낼 수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존의 이성에 근거한 합리주의라는 미명 하에 통용되어져온 전통적 관념론에 도전하고 새로운 인간 중심의 사상을 전개했다는 점이다. 물론 분야는 달랐지만 각자의 영역 안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에 입각한 평등적 인간해방을, 가치 전도를 통한 초인(위버멘쉬)으로서의 긍정적 인간상을 제시하고, 유물론적 사고에 입각해서 무의식의 세계를 규명함으로써 종래의 질서와 가치들을 재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들이야말로 현대 철학의 기초를 닦아준 3인방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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