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바이러스 - 서희태의 클래식 토크
서희태 지음 / MBC C&I(MBC프로덕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드라마와 전파방송의 위력은 정말 무섭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다룬 <베토벤 바이러스>의 여파로 클래식 애호가들이 급증하고, 클래식 음반 판매가 호황을 띠고 심지어 악기 판매까지 급증했다고 한다. 물론 이런 드라마의 대성공은 주연을 맡은 김명민 씨를 비롯한 출연자와 연출가 이재규 감독의 노고도 있었겠지만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음악을 주제로 한 드라마의 꽃은 바로 음악을 맡은 예술 감독의 몫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직접 드라마 제작에 참여한 서희태 씨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드라마의 감동을 만나 보게 되는 재미와 즐거움이 쏠쏠치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쉽게도 드라마 첫 번째 에피소드 말고서는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스토리텔링의 전개나 극에 등장하는 음악에 대해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겠다. 하지만 책을 저술한 지휘자 서희태 씨가 워낙 드라마의 세밀한 부분까지 잘 설명을 해주어서 캐릭터들에 살을 붙여 가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역시 책의 초반부에는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주로 다뤘다. 등장 배우들의 캐스팅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실제 연주와 연출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등장을 한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씨나 비올라 연주자 리처드 용재 오닐 같은 연주자들의 카메오 출연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참 재밌었다. 게다가 배우들이 실제 연주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활싱크’처럼 실제 연주와 오디오 싱크를 맞추어야 하는 경우에는 지난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바로 음원의 저작권에 관한 부분이었었는데, 원작곡자가 모두 사망한 고전 음악의 경우에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리베르탱고>나 <가브리엘의 오보에> 같은 곡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애를 먹었었다고 한다.
 
드라마 부분도 인상적이었지만, 실제 오케스트라와 그 오케스트라에 편성되는 악기들에 대한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은 실무자의 입장에서 하는 설명은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클래식 음악이 그동안 너무 대중들과 유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왔는데, 이렇게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 음악에 관한 관심이 늘어난다는 소식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하더라도, 내가 들어서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할 수가 없다면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떨어내 버릴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음악, 특히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은 철저하게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사실 그동안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도, 오케스트라에 편성된 악기들의 이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체계적으로 하나하나 편성된 악기들의 유래와 오케스트라에서의 역할 그리고 해당 악기에 있어서 당대의 일류 연주자들을 배열한 구성이 지휘자로서의 서희태 씨의 꼼꼼하면서도 완벽주의적인 일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수록된 총 48곡의 클래식 음악들에 대한 선정이유와 더불어 그에 관한 에피소드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대개의 경우에 있어 대중적이면서도 유명한 곡들이 많아서 제목은 모르더라도,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알 수 있을만한 곡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다. 그 곡들 중에 개인적으로 다시금 클래식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던 리스트의 <사랑의 꿈:리베스트라움 No.3>이 들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군대 시절에 듣게 된 곡이었는데, 그 곡을 연주한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CD를 구하기 위해 지금도 있는 진 모르겠지만 십 수 년 전에 명동의 <디아파송>이나 <부루의 뜨락> 같은 CD 가게들을 찾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드라마에 의한 추진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는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좋은 양질의 음악들을 계속해서 들음으로써, 개인적 소양을 닦고 더 나아가서는 악기를 연주해 보고자 하는 의욕도 불러일으킬 수가 있을 것이다. 한편, <베토벤 바이러스>는 오케스트라에서 그 수많은 개성을 지닌 연주자들이, 지휘자의 지휘봉과 눈빛 그리고 손짓 다시 말해서 상호간의 감정적 교류를 통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조화와 화합의 필요성을 역설(力說)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 두 가지가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저자가 초반에 나오는 전도사의 역할을 오로지 전도에만 있다는 한정지었는데 실제 전도사는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저자를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진 독일 출신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에 관한 부분에 있어 그가 히틀러 집권 시절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기 전인 1933년에 나치당원이었다는 과거의 오류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던 점이 그랬다. 국가사회주의와 파시즘을 혐오했던 브루노 발터, 에리히 클라이버 그리고 아트투로 토스카니니 등은 당시에 아예 파시즘이 판을 치던 유럽을 떠났었다. 아이작 스턴, 아르투르 루빈슈타인 그리고 이츠하크 펄만 같은 유대인 출신 연주자들은 그런 이유로 해서 카라얀과의 연주를 거절했었다고 한다. 카라얀이 뛰어난 지휘자이긴 했지만, 동시에 이런 어두운 과거를 가졌던 사실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피아노용으로 편곡한 음악을 들었다. 베토벤이 이 곡을 발표한지 딱 200년 만이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알고 음악을 들으니 더 감흥이 새로웠던 것 같다. 앞으로도 꾸준히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가 진전이 돼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공장 노동자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했듯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감상의 여건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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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해결사 나비
남희영 지음 / 바움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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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밌는 소설이다. 2006년 <컬트동화>라는 첫 책을 발표했던 남희영 작가는 이번에는 <만능해결사 나비>라는 흥미진진한 제목의 장편 소설을 발표했다. 주인공 나비의 청소년기의 성장통과 그리고 현재의 탐정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겹쳐지는 재밌는 구조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역시 새로운 천년의 탐정사무소는 인터넷과 이메일이라는 첨단 매체를 이용해서 고객들과 소통을 한다. 추남계의 대표적인 스타이자 먹을 거라면 그야말로 사족을 쓰지 못하는 탐정사무소 사장 나비와 그를 보좌하는 묘령의 아가씨 위니가 등장한다. 나비야 처음부터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시작을 하지만, 이 위니란 아가씨의 존재는 그야말로 미스터리 그 자체이다. 도대체 이 아가씬 누굴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소설은 단 4일 동안 나비와 위니가 처리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요상하게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고등학교를 탱자탱자하다가 2년이나 꿇고, 낙천적인 삶을 모토로 삼은 나비의 고등학교 시절이 자리한다. 자신의 첫 사랑 “소녀” 선생님을 사랑하게 된 나비는 그 소녀를 따라 생소하기 그지없는 역도부에 가입한다. 그 외의 범생이들과 그의 숙적 김서열과 함께 말이다.

나비에게 서열은 뛰어 넘을 수가 없는 존재다. 인물도 훤칠한 미남형에, 과묵하고 신중하며 공부도 잘하는 서열은 그야말로 엄친아의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나비는 그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스펙만을 자랑한다. 도대체 제대로 할 수 있을게 무어냐 말이다. 게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소녀 샘에게 만날 얻어터지고, 쿠사리나 먹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래도 나비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줄 알고, 남 못지않게 그들의 감정 사이를 누빌 줄도 안다. 그게 아마 나비가 오늘날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비 사무실에 의뢰하는 이들의 고민 또한 기상천외하기 그지없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자신을 찾아 달라고 하는 이가 있질 않나, 삼다리를 걸치던 헤어진 남친과 다시 만나고 싶은데 친구들의 눈이 두렵다는 의뢰인,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심증을 굳힌 아버지의 죽음을 대면하게 된 다 큰 아들의 호소 그리고 요즘 똘기 충만한 마이클 잭슨이 왜 그러는지 좀 알려 달라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기상천외한 사연들을 가진 이들이 나비 사무실을 찾는다.

그런데 그게 말이다, 모든 게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또 한 꺼풀만 벗겨 놓고 보면 모두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거다. 어쩌면 나비 사무실에 그런 의뢰를 하는 것 자체가 용감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말미에 보면, 나비는 자신의 평생의 라이벌 서열이 먹고 싶은 건 자기도 죄다 먹고 싶다는 고백을 한다. 뭐, 먹을 거라면 환장을 하는 나비니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자신도 아름다운 여자와의 로맨스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 멋진 사회인으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인자하고 가정적인 가장되고 싶다는 그야말로 모든 욕망의 총체적인 표현이 아닐까? 먹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겠고.

읽으면서 계속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읽는 속도에 추진력이 붙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분량이 너무 적은에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곳곳에 번뜩이는 재미가 포진해 있다, 아! 재밌다는데 무슨 더 할 말이 필요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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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영화 이야기
송정림 지음, 전지영 그림 / 예담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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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바로 의식주 세 가지일 것이다. 영화나 책을 안보고는 살 수 있어도 밥 안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개체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음식과 가장 대중적인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의 진중한 만남이 바로 이 책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에서 펼쳐진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영화소개 코너를 맡았었다는 방송작가 출신의 송정림 씨와 일러스트 작가로 이름난 전지영 씨가 만나 모두 해서 29편의 영화와 그 영화를 특징짓는 음식들을 소개해 주고 있다. 물론, 음식보다는 영화가 주다. 모두 4개의 각각 장에 선정된 영화들을 아주 적절하게 배분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품새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들을 다룬 책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스포일러성 내용 때문에, 작가는 아주 친절하게도 책의 시작에 나오는 “작가의 말”을 통해 아직 보지 않은 영화가 있다면 그 영화를 먼저 보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몇 편을 제외하고는 아주 최근작이 아닌 좀 오래된 영화들이었다. 만약 지금까지도 그 영화들을 보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못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담 없이 책장들을 넘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바로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아직 못 본 영화들의 경우에는 시간을 내서 꼭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고, 이미 그전에 본 영화들이더라도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영화들의 경우에는 역시 시간을 내서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게 만들어 주었다. 그 정도로 송정림 작가는 각 영화들에서 정말 엑기스 같은 핵심들만을 꼭꼭 짚어내고 있었다.

그 많은 영화들에 대해 모두 설명을 할 수가 없으니 두 개로 분류해서 인상적이었던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우선 기존에 내가 봤던 영화들과 그렇지 않은 영화들로 나눌 수가 있겠다. 전자에 해당하는 영화중에 트란 안 훙 감독의 <그린 파파야 향기>와 <제8요일> 그리고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1993년에 발표된 <그린 파파야 향기>의 감독 트란 안 훙은 베트남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자랐다. 100% 프랑스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극단적인 탐미주의 경향을 띠면서, 전통적인 시네마 내러티브를 배격한다. 어느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간 무이는 수평 카메라의 트래킹을 따라 성장한다. 숨 막힐 듯한 갑갑하기 그지없는 공간의 표현들은 억압적인 프랑스 식민치하의 1950년대 베트남의 현실을 대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소 신파조의 스토리텔링은 감독의 경향 탓에 그다지 중요성을 띠지 못한다. 이미지, 오로지 12년이 지난 지금에도 삼단 같은 머리를 빗고 있던 무이의 이미지만이 잔상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물론 마무리는 간단하면서도 손이 많이 가는 월남 쌈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런 반면, <제8요일>에서는 약간의 판타지적인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 전형적인 시네마 내러티브(이야기체 영화) 중심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만사태평한 다운증후군 환자인 죠지(파스칼 뒤켄)와 하루하루를 정말 빡세게 살아가는 세일즈 강사 아리(다니엘 오떼이유) 듀오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둘은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의지하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불행한 가정사를 지닌 아리가 항상 순수청년 죠지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 아리는 죠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의 내적 상처들을 치유한다. 이번 사용되는 음식은 감자튀김, 프렌치프라이다. 보통의 경우, 감자튀김이 메인 디시로 꼽히지는 않는다. 하지만 없으면 허전한 존재, 안 먹으면 무언가 빼놓은 듯한 느낌이 드는 바로 그 점이 감자튀김의 포인트다. 아마 죠지와 아리의 관계도 서로에게 그런 존재감으로 다가 오지 않았을까?

첫 번째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마지막 영화로 <바그다드 카페>를 꼽고 싶다. 너무 오래 전에 본 영화라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예전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가 있었다. 라스베이거스, 사막 그리고 흑인 브랜다 아줌마가 경영하는 다 낡아 빠진 “바그다드 카페”. 여기에 역시 뜬금없이 독일 아줌마 야스민이 등장한다. 소통이 없는 공간에서 야스민은 소통의 부재로 인해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들을 하나둘씩 풀어나가는데 도움을 주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진심을 가지고 다가간다면 누구라도 마음의 문을 열 것이다. 영화에서 야스민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 준다. 야스민은 마술처럼 “바그다드 카페”를 사막의 오아시스로 만들어낸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렇게 소원하던 브랜다와의 관계에서도 동지애 적으로 뭉친 끈끈한 유대감이 절로 흘러넘친다. 이렇게 행복한 모두에게, 야스민이 드리핑 하는 진한 커피 한 잔은 치유의 묘약처럼 다가온다.

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로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전적으로 작가의 해설에 의지해야 하는 경우였다. 에디뜨 피아프의 일대기를 그린 <라 비 앙 로즈>와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이에 해당한다. 에디뜨 피아프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얘기를 들으면서, 동명의 타이틀곡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은 이제 미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도 요구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한 “장밋빛 인생”을 살았던 것으로 보였지만, 샹송가수가 아닌 개인으로서 그녀는 언제나 고독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하고자 했었나 보다. 그녀가 이 세상의 고(苦)를 극복해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래였고, 무대는 그녀만을 위한 탈출구였다. 사랑했지만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주인공이었던 권투선수 마르셀을 위해 그녀는 아침에 토스트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환상이었나 보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삶의 아이러니를 대변하는 것 같다.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 정원(한석규)과 그 사실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게 되는 다림(심은하).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르겠다. 우린 모두 유한한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이 영원하길 바란다. 이 영화의 요리로는 정원의 아버지가 끓이는 구수한 된장찌개가 등장한다. 진심으로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무 것도 해줄 수가 없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된장찌개를 끓인다. 그 된장찌개에는 한없는 부모의 사랑과 회한, 아쉬움과 같은 감정들이 녹아 있다.

아마 음식이나 식사 장면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없을 거다. 하지만 대개 영화의 등장하는 음식이나 식사 장면들에는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기 때문에 무심코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송정림 작가는 다른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을 해서, 각 영화들에 등장하는 음식 혹은 요리 같은 요소들을 족집게처럼 착착 뽑아낸다. 그런 탁월한 선택과 분석을 통해 형성된 새로운 의미들은 그야말로 독자들에게는 진수성찬이다.

일러스트 작가 전지영 씨가 그린 영화들의 중요한 장면, 포스터 그리고 말미에 등장하는 요리들은 해체와 분석의 과정을 거쳐 재창조된 구분된 이미지들의 전형이다. 어떤 경우에는 수많은 글보다도 단 한 하나의 일러스트가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도 한다.

그동안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책들이 나왔지만,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처럼 본격적으로 미각의 형상화에 도전한 책도 없는 것 같다. 책을 읽는 내내 내러티브에 취했었고, 다 읽고 나서는 형상화된 미각에 대한 갈망이 입 안에서 요동치고 있었다. 레시피에 나오는 대로 무어라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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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키워드 경제사전 - 경제에 관한 모든 지식
곽해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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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밀레니엄인 21세기 벽두의 키워드는 바로 경제라는 단어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경제란 단어를 빼놓고 어떤 테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에 관련되어져서 사용되는 낱말들은 고도의 진화를 거듭해서, 일상의 삶에서 유리되어 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네 일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걸까? 

그건 바로 경제가 발전이 되고, 그에 따라 파생되는 낱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로켓 사이언스보다도 어렵다는 월가의 금융파생상품들을 다루는 이들은 오늘도 자기네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기상천외한 낱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19세기 후반, 경제적 인간(Economic Man 혹은 Homo economicus)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영국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정치경제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이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인간이 아닌 이들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노동을 제공하고, 재화를 획득해서 상품을 구매하는 경제 활동의 주체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주체인 경제 활동에 있어 모르는 어휘들이 너무나도 많다. 바로 이런 점에서 <2009 키워드 경제사전>은 오늘날의 경제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아주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경제사전의 저자인 곽해선 씨는 오늘날의 경제활동에서 꼭 필요한 낱말들을 선택해서, 간략한 뜻풀이와 확실한 설명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들을 겨냥한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적절한 비유와 설명 그리고 예시들은 기초적인 낱말에서부터 시작해서, 아주 복잡하고 생소하기 그지없는 낱말들과 약어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키워드 경제사전을 읽으면서, 이 사전을 통해 배운 경제 용어들을 실생활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올랐다. 



 

이 사전을 보고 가장 먼저 찾은 낱말이 바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었다. 사전에도 나오는 “금융위기”편에서 나오듯이, 주식과 채권 그리고 부동산 등에 유입되었던 외국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서 주가와 통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민경제가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되는 현실은 작금의 그것과 일치했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 필연적인 호황과 불황의 순환주기에서 경기침체(recession)의 상황에서 물가가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현상을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한단다. 이런 사전에서 보고 배운 상황들을 현실에 적용시켜 보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딱들어 맞았다.

 



 

한편, 우리가 신문지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말이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원래 보험업계에서 상용되던 표현으로, 보험계약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보험사고로 위장하는 경우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포괄적인 범위에서 투자자들의 자금을 가지고 운용하는 금융기관의 대리인들이 고객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에 대한 비판적인 어휘로도 사용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법적으로 제재를 가할 수는 없지만 도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부도덕하고 나아가서는 범죄행위로까지도 발전할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다음으로 올해 들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우리말로 번역을 한다면, 비우량 부동산(주택) 담보 대출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미국 경기가 한창 호황이던 시절, 미국의 금융기관들은 금융대출에 의한 타깃을 신용이 우수한 이들이 아닌, 평소 같으면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이들로 잡으면서 파격적으로 낮게 책정된 낮은 이율로 부동산 대출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기 돈은 하나도 들이지 않고, 주택마련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이렇게 모기지 회사들이 (신용) 비우량 고객들로부터 받은 대출채권을 투자은행과 은행들에게 되팔면서 문제가 비롯되었다. 물론 대출을 받은 이들이 제 때 원리금을 갚아 나간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실물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실업상태에 빠지게 되고, 원리금을 상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각 금융기관들이 매입했던 대출채권들은 바로 부실채권화 되면서 금융기관들의 위기가 몰아닥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주가 폭락, 대량 해고에 의한 실업난 그리고 소비 부진으로 인한 실물경제가 위기에 빠지면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확산되어갔다. 이렇게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여러 경제 상황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설명들을 바로 이 책 <2009 키워드 경제사전>을 통해 배울 수가 있었다.

 

한편 지구온난화에 대한 세계적인 방지책으로 제시된 교토의정서에 의한 (탄소) 배출권 거래제(ET:Emission allowance Trading)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지구온난화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기업들에게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배출권을 할당해 주고, 이에 대한 초과분에 대해서는 거래를 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에 대한 설명이었다.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환경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확실히 <2009 키워드 경제사전>을 읽는데 있어,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라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소용되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에 못지않게 다양한 무형의 편익들을(intangible benefits) 얻었기에 충실한 독서의 시간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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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 1 - 천연두파티
M. T. 앤더슨 지음, 이한중 옮김 / 양철북 / 2008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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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이란 장르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만남은 사실이 주는 리얼리즘과 허구에서 비롯된 흥미가 교묘하게 어디에선가 그 접점을 이룬다. 18세기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보스턴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옥타비안 낫싱, 검은 반역자>는 그래서 더더욱 흥미롭다.

주인공 옥타비안(로마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영어식 이름이다)은 아프리카 공주 출신의 어머니 카시오페이아가 13살 때 낳은 아들이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어머니는 영국의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석학협회 소속의 조사이스 기트니의 보호를 받고 있다. 옥타비안과 그의 어머니는 흑인이다, 당시 대륙의 흑인들은 모두 노예로 생각되지만 이 기트니의 저택에서 그들은 후한 대접을 받는다.

옥타비안은 마치 부유층 자제들이 받는 교육과 같은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모차르트와 같은 유럽의 고전 음악 교육도 받는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배설물을 금접시에 달아 기록하는 것과 같은 평범하지 않는 실험도 수행하고 있다. 누가 봐도, 평범하지 않는 실험에 의문을 느낀 옥타비안은 자신에게 금지된 비밀을 깨닫게 된다. 신화에 등장하는 금기들은 예외 없이 깨지는 것처럼, 옥타비안 역시 기트니 씨의 금기[taboo]를 깨면서 신화적 결합을 이룬다.

그 비밀은 바로 식민지 치하의 지배층들이 효과적인 식민지 경영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 노예들을 상대로 아프리카계의 열등성을 입증하기 위해 옥타비안을 그 실험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 와중에, 물주인 첼소프 백작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면서 새로운 후원자로 샤프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 비인간적인 실험은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책의 부제로 달린 것처럼, 소위 천연두 파티를 통해 창궐하는 천연두에 대한 예방책으로 살을 째고 천연두 균을 몸에 투입시킨다. 이 과정에서 옥타비안은 사랑하는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를 잃고, 결국 준노예상태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자신의 삶의 존재에 대한 극도의 절망감에 빠진 옥타비안은 도망노예로 전전긍긍하던 중에 영국의 폭정에 항거해서 봉기한 애국파 민병 대열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사유재산으로 생각한 이들의 집요한 추격 끝에 결국 다시 사로잡히게 되면서, 이 기구한 젊은이의 운명은 다시 한 번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소설은 상당히 정치적인 색깔을 지니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은 전제정치의 폭거에 대항해서 인류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 뒷면에는 식민지인들의 경제적 이권과 식민지 경영을 위한 노예 노동력 착취 그리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자유와 사유재산의 보장을 외쳤지만, 그 자유는 어디까지나 백인 지배계층에게만 해당된 이야기고, 같은 인간이었던 흑인노예들에게는 별개의 문제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인들의 사유재산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작가 매튜 토빈 앤더슨은 말미 부분에서 다시 잡혀온 옥타비안에게 일장연설을 하는 샤프의 궤변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샤프의 말들은 전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고, 심지어 옥타비안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궁지에 몰리자 철가면을 씌워 재갈을 물리는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다. 설득과 대화로 상대방을 이해시키지 못하는 자들의 전가의 보도인 물리적 폭력이라는 방식이 이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게 된다.

자본주의에 천착한 아메리카 식민지의 부르주아지들은,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된 기독교까지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노예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인종차별주의는 오늘날까지도 다른 인종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고착시키고,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었다.

소설에 나오는 미국석학협회가 이성적 탐구라는 명목으로 실시한 생물학적 실험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그들이 열등하다고 주장했던 유대인들을 상대로 실시했던 만행을 연상시켰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행위들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이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는 이율배반적인 모습과 충돌하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옥타비안이 자신이 배운 교육을 통해, 자아를 깨닫게 되고 또 형처럼 자신을 도와주던 프로 보노를 통해 자신이 처해 있는 비참한 상태를 자각하게 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M.T. 앤더슨은 이런 계몽시대의 유산들을, 옥타비안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유감없이 분출시키고 있었다. 계속해서 출간될 2권을 통해, 자신의 내면의 한과 끓어오르는 분노를 다스리게 된 옥타비안의 종횡무진 활약이 펼쳐질 것을 예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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