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
세노 갓파 지음, 김이경 옮김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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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인도란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이 책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을 손에 들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힌두교, 어마어마한 인구대국, 타지마할, 카주라호, 아잔타석굴, 카레, 카스트제도, 중국에 버금가는 만만디……. 수많은 신들을 믿는 다양성의 나라 인도를 이런 몇 마디로 정의할 수가 있을까? 인도를 한 번 찾은 사람들은 그 마력에 빠져 두 번 세 번 연달아 찾게 된다고 한다. 아니면 극단적으로 인도를 혐오하게 되거나.

그런데 작가 세노 갓파는 1978년 그리고 5년 뒤인 1983년에 다시 인도를 찾은 것으로 보아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으로 무대미술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세노 갓파는 자연의 풍광도 풍광이지만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대상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그의 스케치를 통해 여실히 들어 나고 있었다.

그는 길가에서 노점을 펼치고 있는 이들에게 주목을 하고 그들의 모습을 스케치한다.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매달려 타고 가는 버스도 그의 스케치 대상이다. 또 이 책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숙소에 대한 묘사 또한 일품이다. 일반 배낭여행자와는 달리 게스트하우스나 유스호스텔 같이 저렴한 숙소가 아닌 일반 호텔 혹은 이름난 호텔에 투숙하는 세노 갓파는 자신이 묵었던 호텔들을 하나하나 스케치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면 자신이 묵을 숙소로 돌아와 마치 엄숙한 일과를 반성하듯, 실내의 온도를 재고 방값이 얼마며 호텔 객실 넘버를 달고 내부 묘사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꼭 가보고 싶은 타지마할 관광을 끝내고, 델리로 가는 길에 탔던 타지 익스프레스 기차 안의 스케치에선 그의 편집증적 면모가 적나라하게 들어난다. 아마 줄자를 들고 재었는지 열차 내부의 객실의 폭과 넓이 등이 아주 자세하게 기입되어 있었다. 작가는 어느 나라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여행을 하다가 스파이로 몰려서 경찰서에 끌려간 적도 있다고 했는데, 정말 누가 보면 스파이라고 의심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카타(캘커타), 갠지스 강의 바라나시, 미투나 상으로 유명한 카주라호, 타지마할의 아그라로 이어지는 세노 갓파의 첫 번째 인도여행은 델리에서 끝이 난다. 인도하면 떠오르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로 한 달 반 정도의 여정을 매조지 짓는다. ‘카스트’는 혈연 혹은 종족을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거의 3,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거쳐 형성된 철저한 계급의식은 건국 30년이었던 1978년에도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특히 이성적으로는 타파해야 할 악습이라는걸 모두가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세노 갓파는 적시한다.

아울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인도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데 주저 하지 않는다. 자신을 특별한 미식가가 아닌 일개 먹보라고 자칭하면서, 노상에서 파는 밀크티를 비롯해서 차파티 같은 인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들을 섭렵한다. 비록 나그네이긴 하지만, 그네들의 삶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선의가 좋은 결과만을 불러 오는 것만은 아니어서 장장 3일 동안 배탈이 나서 고생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이던가, 세노 갓파 식 현지화를 위한 적응통(適應痛)이라고 해야 할까.

세노 갓파의 두 번째 인도 행은 남과 북을 관통하는 대장정이다. 델리를 기점으로 해서 파시들이(인도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부르는 표현) 경제권을 장악한 뭄바이(봄베이)를 거쳐,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하는 남부여행에 나선다. 하이드라바드-첸나이(마드라스)-마두라이를 거쳐 세 개의 바다(벵갈만, 아라비아해 그리고 인도양)가 만난다는 카냐쿠마리 다시 말해 인도의 최남단을 찾는 세노 갓파. 세 개의 바다의 접점이라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여전히 천일염으로 소금을 채취하고, 금속 농기구라고는 낫 외에는 거의 전부를 인간의 노동력으로 쌀을 생산하는 과정들을 면밀하게 그려낸다.

오늘날 선진기계화가 최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모두의 노동력으로 비록 소출이 적을 진 몰라도 모두가 생산에 기여를 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라고 세노 갓파는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느리다는 것이 마치 큰 범죄라도 되듯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우리네 삶과는 전혀 다른 신의 영속적인 신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세노 갓파는 코친-마이소르-방갈로르-아잔타-엘로라-우다이푸르-자이푸르를 거쳐 인도의 최북단 히말라야 언저리의 스리나가르에서 4월의 흰 눈을 보며 긴 여정을 맺는다. 바보와 연기는 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표현으로 자신의 행동을 희화화하긴 했지만, 그 높은 힌두사원들의 고푸람에 오르기도 하고, 발로 하는 여행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는 믿음으로 발바닥이 다 익는 역경 속에서도 방갈로르의 스라바나 벨라골라 마을의 고마테시와라 상을 보러 나서기도 한다.

그에 스케치에 대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다. 세노 갓파의 세밀한 스케치를 보면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데 그 많은 그림들을 여행 도중에 모두 스케치를 했단 말인가? 아니면 초벌 스케치를 하고, 나중에 찍은 사진을 참조하면서 다시 그렸을까 하는 점이 참 궁금했다.

느릿한 시간을 사는 인도인들의 눈에 평범한 관광객이 아닌 세노 갓파의 비상한 호기심은 색달라 보였을 것이다. 세노 갓파가 말한대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달리, 공동체 의식이 강한 신실한 힌두교도들은 간섭정신과 시니컬한 유머는 책의 다양성의 확장에 큰 몫을 해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인도에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모두 떨쳐 버리게 되었다. 아니 그런 생각들은 모두 인도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어졌다. 그나저나 이런 에세이를 읽고 나면 생기는 역마살이 다시 도질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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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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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는 사대고전미녀(四代古典美女)로,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네 명의 미녀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아마 거의 모든 이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당나라 현종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양귀비, 동탁과 여포의 사이를 틀어 놓은 연환계의 주인공 초선, 한나라와 북방의 흉노 간의 대전란을 막아낸 왕소군 그리고 춘추오패 중의 일국으로까지 번영하던 오나라를 망국으로 이끌어간 서시.

그런데 이번에 출판된 미인계(美人計)는 중국 고대의 전략서 육도(六韜)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손무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손자병법> 36계 중에 31번째로 상대방의 마음으로 딴 곳으로 돌리는 병법론이다. 물론 이 방법의 시행을 위해서, 절세 미녀가 필요하다. 철저하게 여성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인식한 목적론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사실 이 책 <미인계>에서도 양귀비만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인물들 모두 그런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비운의 운명이 예시되고 있다.

시대적으로 가장 늦은 양귀비 이야기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만큼 중국의 미인들 중에서 양귀비가 차지하는 명성 때문일 것이다. 측천무후의 전횡으로 이씨들의 왕조였던 당나라를 바로 세우고, 치세 초기 “개원의 치”라고 불릴 정도로 명군으로 칭송받던 당의 현종은 자신의 아들은 수왕 비 양귀비 옥환을 자신의 비로 들이면서, 도덕성에 흠집을 내게 된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서 자신의 며느리를 취한 이가 어디 당현종 뿐이던가.

문제는 양귀비가 당황실의 여주인이 되면서 야기한 국정문란에 있었다. 남방의 촉주 출신인 양귀비가 좋아하는 진귀한 과일들과 각지의 특산물들을 진상하는 과정에서 백성들의 고초는 하늘을 찔렀고, 언제나 그렇지만 불필요한 궁궐 축조 등은 백성들의 원망에 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양귀비 일족들인 양국충과 괵국 부인들의 전횡은 결국 현종 말기 안록산이 반란이라는 당나라를 뒤흔들 전대미문의 위기를 초래했다.

하지만 왕공상과 진중안, 이 두 명의 작가들은 어디까지나 가무에 능한 양귀비와 그런 양귀비를 사랑하는 현종에 로맨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반란군에게 쫓겨 피난 중에 병사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은 양국충은 주살되고, 양귀비마저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자결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과 팩션 구성의 차이가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전체적인 줄거리는 엇비슷하지만 그 결말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루가 다르게 기울어져 가는 한나라 말기에 우연한 기회에 황실의 궁녀로 들어가게 된 초선은 이름 그대로 황실에서 사용되는 모자를 관리하게 된다. 한실을 좌지우지하던 십상시들과 군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하진과의 권력대결 끝에 결국 하진을 모살하는데 성공하지만, 명문의 자제 원소의 역습을 받아 십상시 세력이 궤멸되는 난리 통에 초선을 궁궐을 탈출하고, 사도 왕윤의 거처에 있던 잃어버린 어머니와 재회하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처럼 초선 역시 그 미모에 달이 스스로 가릴 정도의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한 가지 악기 정도는 누구 못지않게 다룰 줄 알며 춤사위 또한 남에게 뒤지지 않는 그야말로 재색을 겸비한 여성으로 묘사가 된다. 물론, 자신의 처세에도 능해서 궁궐이 불타고 병사들의 난전이 벌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보신에 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왕윤의 수양딸이 돼서, 국가의 전권을 농단하던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하는 모습은 바로 <삼국지연의>에서의 그것과 일치한다. 문제는 그렇게 동탁과 자신의 아버지 왕윤마저 동탁의 잔당들에게 죽음을 당한 후, 초선의 행적이었다. <미인계>에서는 어려서 같이 자라 이제는 조조의 휘하에 들어가 있는 소대의 밀명을 받아 여포의 몰락을 유도하는 반간을 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 후에는 관우의 시비로 들어갔다가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맡게 된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정말 팩션을 뛰어 넘어, 새로운 소설 창작의 수준에까지 이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타자는 아마 이 책에 등장하는 미인들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왕소군이다. 왕소군 역시 한나라 궁정에 들어갔지만, 황제에게 궁녀들의 초상을 그려 올리는 화공 모연수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는 괘씸죄에 걸려 왕소군이 연주하는 비파 소리에 나는 기러기마저 떨어진다는[落雁] 그녀의 미모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된다. 한나라 초기, 한 제국을 위협했던 흉노족의 선우 호한사는 한나라의 부마가 되고자 청혼을 하고, 궁정에서는 별 볼 일 없는 궁녀를 황제의 누이동생으로 삼아 흉노족을 달래고자 한다. 이 때, 간택된 궁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다. 하지만 직접 왕소군을 본 황제는 마음이 달라져, 다른 여인을 왕소군인체 호한사에게 시집보내고자 한다.

이런 한나라 황실의 변덕스러움에 분노한 흉노의 호한사는 전쟁까지 불사하고자 하는데, 결국 황제의 어머니인 태후는 왕소군을 설득해서 국가의 안위를 위해 북방의 오랑캐의 땅으로 시집보내게 된다. 왕소군 역시,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철저하게 타인에 의해 비련의 주인공이 된다. 또 모르겠다, 한나라 궁정의 일개 궁녀가 아닌 흉노의 왕비가 되어서 나름 행복하게 지냈을지도 말이다. 호북성 삼협 자귀현 출신이라는 왕공상의 동향인에 대한 흠모가 절로 배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서시는 월나라 출신으로, 오나라에 잠입을 해서 오왕 부차를 현혹시켜 끝내 망국에 이르게 하는 현대로 치자면 팜므 파탈(Femme Fatale)의 전형을 보여준다. 역사서에서 참조를 했는지 아니면 작가의 전적인 상상인지 모르겠지만, 서시와 더불어 동향의 정단 그리고 동시까지 등장을 시켜 한층 복잡한 로맨스를 이끌어 낸다.

더 흥미를 끄는 건 서시를 이용해서 오나라의 국력을 소모시키자는 아이디어의 주인공인 대부 범려와 서시와의 로맨스였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적국에 파견해서, 반간의 주인공으로 삼아야 되는 임무를 맡은 범려의 고뇌하는 모습이,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조국을 위해 자신을 초개같이 버려야 하는 서시의 인간적인 면모가 교차되면서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 스토리가 펼쳐진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종착역은 비극으로 귀결된다.

읽기 전에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역사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그런 모습에 실망했다. 차라리 소설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운명에 도전하는 듯한 모습을 그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 같이 남성들에 의해 이용당하는 평면적 여성상으로만 그려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자신의 운명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받아들인, 체념의 화신들이었다.

번역에 있어서도 매끄럽지 못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면들이 눈에 띄었다. 200페이지에서 조조는 “유비, 원술, 원소, 관도 등과 대전역”을 치렀다고 나오는데, 관도(官渡)는 사람이름이 아니라 원소 등과 천하의 패권을 놓고 전투를 벌인 지명이다. 298페이지에서도 원제의 황후의 조카인 왕망이 동한을 일으켰다고 기술했는데, 왕망은 전한을 멸망시키고 단명한 새로운 왕조인 신(新)나라를 나를 세웠다. 동한을 일으킨 건 왕망이 아니라, 동한(혹은 후한)의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였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서시 편에서 심각할 정도로 오류가 보인다. 351~2페이지에서 오왕 부차가 오자서의 도움으로 왕료(오왕 료의 오기로 보인다)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사실은 전왕인 합려가 공자 시절에 왕이었던 료를 용사 전제에게 어장도로 암살한 고사를 착각한 기술이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야깃거리들이 그 방향성을 잃으면서, 그 동력을 상실해 버렸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마저 곡해해서, 소설화시켜 버리면서 팩션으로서의 장르성 마저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아쉬운 글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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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호두과자
크리스티나 진 지음, 명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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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화로워 보이는 푸른 숲 속에 빨간 지붕을 한 <달콤한 호두과자> 가게를 상상해 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가 말하듯이 삶은 초콜렛 상자라고 했던가.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그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 <달콤한 호두과자>였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도무지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모르는.

책을 처음 집어 드는 순간, 그냥 책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에 딱 잡히는 손맛하며, 일러스트레이터 명수정 씨가 그린 나뭇잎과 티팟 그리고 갖가지 호두과자들의 형상들…….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호두과자 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로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고(그 이유에 대해서 작가 크리스티나 진은 살짝 빗겨간다), 호두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소년 마로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13살 난, 마로는 어머니를 도와 호두과자 반죽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심은 호두나무를 관리를 한다. 아버지는 호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들이 행복할거라는 잠언 같은 예언을 남긴다. 확실히 호두나무는 두 식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다.

<달콤한 호두과자>는 모두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와 그 공간을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마로의 담담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간다. 어느 날 불현 듯, 자신들을 찾아온 빅풋 삼촌. 어머니는 혹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마로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빅풋 삼촌은 다시 그들의 곁을 떠나지만 마로에게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으로 호두과자 반죽에 마술을 걸어 준다. 모든 일로부터 영감을 얻는 마로에게, 이 새로운 마술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자신만이 가지고 있어 하는 물건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된 마로. 그는 이웃 친구들이 타고 다니는 산악자전거에 그만 넋이 빠진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마로는, 어머니 심부름을 하느라 너무나 바쁘다. 하지만 소망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동네 빵집 주인장 이한스 아저씨의 말에 용기백배하는 마로. 심부름 하다가 얼결에 더 받은 거스름돈으로 산악자전거를 사는 꿈에 젖기도 하지만, 자신을 속일 때마다 별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린다. 결국 마로는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꿈에도 그리던 선물을 받게 된다. 아, 이 동화적 상상의 진수란.

자, 이제 나이가 차서 철이 든 마로는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장미향이 나는 핸드크림을 직접 만들기로 작정한다. 모든 재료들은 준비가 되어 있으나, 단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장미꽃잎이다. 결국 이웃 고퍼우드 씨네 집에 장미꽃잎을 서리하러 간 마로는, 보름달이 뜬 날 가슴 떨리는 만남을 하게 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풋내기 사랑의 미로에서 그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인 네 번째 에피소드 <호두과자 오리온의 탄생>의 순간이 되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마슈 아주머니네 네 명의 딸내미들을 위한 특별한 주문이 도착한다. 다른 딸들의 주문은 그럭저럭 해내지만, 맨 마지막 주문인 미각을 잃은 “문어대가리 먹물빛 머리의 딸”은 주문은 유별나다. ‘호두 크러쉬가 별처럼 총총하게 씹히는 맛’이란 도대체 어떤 맛이란 말인가. 가뜩이나 상상력 부족으로 고생하는 나의 머리는 이 기발하면서도 빼어난 판타스틱한 맛은 어떤 걸까 하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아무래도 마로를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용감하고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마로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꿔봤음직한 캠핑을 하면서, 별 총총한 맛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마로. 이제는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밤하늘에 오리온 별자리를 통해 오롯이 마로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다. 그리고 붉은 꼬리 원숭이를 찾는다는 정체불명의 노인이 등장해서 별 총총한 맛을 해결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준다. 그저 이야기의 전개가, 잃어버린 날의 동화 같은 판타지들이 정겨울 따름이다. 게다가 캐러멀 자갈이니 슈거 레이크 같은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낸걸까?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사랑하는 엄마와의 이별이다.

한 10년 전 쯤에 보았던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그 안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 맛도 낼 수 없다고 했었던가. <달콤한 호두과자>의 주인공 마로는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두과자 반죽을 하고, 날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호두과자를 물려준 아버지와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위해 마로는 오늘도 호두과자를 굽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두과자가 달콤하기만 하겠는가.

이 아름다운 동화의 작가 크리스티나 진은 호두 그리고 호두과자라는 어떻게 보면 볼품없는 매개체를 가지고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스케치해낸다. 거창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이 젖는지 모르게 그렇게 은은하게 사랑의 층위를 쌓아간다. 마로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마로에게 알려주는 그들 가족만의 암호는 감동 또 감동이다. 그 누가 이렇게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의 초대장을 마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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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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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가슴이 먹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책을 읽기 전에 간략한 소개를 보고 나서, 여느 책처럼 아버지의 부정(父情)을 다룬 신파겠거려니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작가가 10년 전, 단군 이래 미증유의 경제위기였다는 IMF 때에도 <아버지>란 책으로 그렇게 재미를 본거 같던데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아니 게다가 책 제목은 또 왜 이렇게 촌스러워, <고향사진관>이라니.

책을 읽으면서,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모두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오십대에 뇌졸중으로 의식을 잃고, 자리에 누운 아버지 병수발과 나머지 식솔들을 보듬기 위해 자신의 날갯죽지를 접고,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주인공 서용준의 삶이 친구인 지은이의 글을 통해 전해진다. 하지만 용준은 병상에 누워, 가장 기본적인 거동조차 못하시는 아버지를 보살피면서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나간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세상을 향해 펄펄 끓는 자신의 열정과 자신의 꿈을 펼칠 시기에 졸지에 가장이 되어 버린 용준은 묵묵하게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해야 하는 앞으로 펼쳐질 형극의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려서부터 속이 깊고, 다른 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용준이 어찌 자신에게 생명을 준 아버지를 보살피는 일에 소홀하겠는가. 손위 누이들을 시집보내고, 자신도 인근에 사는 착한 처자인 희순과 살림을 차린다.

용준은 희순을 사랑해서 결혼하는 게 아니라, 결혼하고 나서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게 된다. 본말이 전도된 듯한 상황 때문에 용준은 괴로워한다. 하지만 희순은 용준의 진실한 ‘사랑’의 약속을 믿는다. 어머니에게 떠밀리듯 그렇게 떠난 신혼여행지에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은 용준과 희순은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용준 부부의 아버지에 대한 병수발은 계속된다.

그렇게 병상에서 15년을 보내시며 고희를 맞으신 용준의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살아 계시는 동안 그렇게 꿋꿋한 모습을 보이셨던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서러움, 꽃다운 청춘을 저버린 자식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목매게 통곡을 한다. 이 책의 신파적인 전개를 따라 가던 독자들은 이 순간, 예정된 카타르시스의 폭발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작가의 실존했던 친구를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설상가상으로 치닫는다.

이 책을 통해 김정현 작가는 독자들에게 아버지를, 어머니를 그리고 남편, 아내, 형제들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물어 보는 것 같다. 아니 그 어느 누구고 사랑할 줄은 아느냐고 되묻는다. 우리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서 ‘내리사랑’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사랑은 내려가는 것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아가페적인 사랑 말이다. 그런 사랑에 무슨 대가가 필요하리오.

주인공 용준은 아무 말 없이 자리에 누운 채, 무의미해 보이는 하루의 삶을 타인의 도움에 의해 영위해 가는 아버지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어머니, 형제, 아내 그리고 자식들을 사랑하는 법을 차근차근 배워 나간다.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이 배운 사랑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남김없이 표현한다.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지극히 주관적이고, 신파조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타오르는 잉걸불 같은 사랑들은 쉬이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용준의 고향인 영주에 그의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들의 은근한 사랑의 이야기에는 여느 특별한 사랑들을 아우르는 힘이 있다. 난 이 사랑의 이야기에 완전히 압도당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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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 우리시대의 지성 5-016 (구) 문지 스펙트럼 16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출신의 교육자이자 작가인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을 그야말로 단숨에 읽어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했던 다양한 형태의 고민들이 증식되면서, 왜 우리는 책을 읽는가라는 책읽기의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우리가 책을 읽는데는 수많은 이유들이 읽을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취미이기 때문에, 혹은 심심해서라는 단순한 이유에서부터 읽어서 내 것이 되기 전엔 한낱 종이뭉치일 수밖에 없는 책이, 책읽기의 과정이라는 지난한 의식을 통해 그 책을 쓴 작가와 개인적 친밀함이 더해지면서 교제와 소통을 이루어지고 간접지식을 쌓아 개인의 영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는 원대한 포부에 이르기까지 몇 만 가지 이유들을 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보태서, 순수(?)하게 자신의 지적 허영과 과시욕의 발로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죽어라 읽는 사람이든 일 년에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동의하는 바가 있으니 그건 바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니엘 페나크는 ‘읽다’라는 동사만큼 전적인 자율성을 담보하고 있는 동사가 없다고 이 책을 통해 역설한다. 물론,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로부터 책을 ‘읽어라’라는 강압적 변형의 명령을 듣기도 하지만, 타의에 의한 책읽기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이루 다 형언할 수가 없을 정도다. 가장 극단적인 폐해는 그로 인해, 책읽기에 신물을 내면서 책을 아주 안 읽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책읽기, 다시 말해서 독서가 교육의 한 방편이나 혹은 우리나라의 현실에서처럼 입시의 한 과정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해 저자는 명백하게 경고장을 발부하고 있다. 오로지 책읽기는 책을 읽는다라는 자주적인 노력에 근거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상성을 바탕으로 한 즐거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니엘 페나크는 책의 시작을 아직 글을 몰라 책을 읽을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게 책을 읽어 달라거나 혹은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모습으로, 책을 읽음으로써 발생하는 즐거움의 무상성에 대해 중요한 방점을 찍는다.

행복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이라면 모름지기 그 즐거움을 혼자서 누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누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인지상정이 아닌가.

간단하게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최근 나의 무지막지한 독서열에 신기해하시던 어머니가 책읽기의 즐거움에 동참하시기 시작하셨다. 대학시절 조교 형으로부터 생일선물로 받았던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를 근 10년 이상 걸려가며, 포기와 도전의 반복을 통해 결국 다 읽어낸 그 뿌듯했던 나의 자부심은 어머니 역시 고전하셨지만, 몇 달 만에 다 읽어내셨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한낱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고리끼의 <어머니>를 통해 자신감을 얻으신 어머니는 본격적인 책읽기의 즐거움에 오늘도 책을 읽고 계신다.

다니엘 페나크가 묘사한 대로, 과제로 책을 읽어야 하는 학생들이 앞으로 읽어야 할 책의 페이지 수 전쟁을 벌이는 장면은 내가 책읽기를 하면서 느낀 것과 너무나 일치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읽지 않으면 다 읽은 책으로 간주하지 않는 개인적인 결벽증 때문인지는 몰라도, 일단 손에 잡은 책을 다 읽기 위해 끙끙대며 마치 생쌀을 씹어 가는 듯한 느낌으로 억지로 그렇게 책을 읽곤 하던 시간들이 페나크의 글들과 자연스럽게 공명하고 있었다.

역시 20년간 현장에서 교육자로 일한 베테랑 교사답게, 다니엘 페나크는 도무지 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학생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하는 방법들을 실제 경험에 의거해서 그야말로 ‘소설처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소개된 그의 방법론이 모든 상황에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지만, 책읽기의 본질 다시 말해서 그 즐거움을 알게 된다면(반드시 이 과정이 필요하다) 그 독자들을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으리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현대 대량소비 사회에서 책만큼 소유한 사람이 절대권을 행사하는 물질도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책을 독서를 통해 독자와 소통을 하게 되면서 그 생명력을 얻게 되지만, 그 전에 종이뭉치였을 때는 정형화된 직각의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라면 끓여 먹을 때 안성맞춤으로 펄펄 끓는 라면 냄비를 받치거나, 혹은 나른한 오후 수마(睡魔)의 강렬한 유혹에 시달릴 때 몇 권의 책을 집어다가 가차 없이 베개로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종이뭉치 책을 읽어서 일단 “내 것”이 된다면 그렇게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나만의 무형의 재산이 된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얻게 된, 그 무수한 상상과 감정들의 파노라마에 대해서는 굳이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페나크는 책의 주인이자 소비자인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제 권리들에 대한 글로 <소설처럼>을 맺음한다. 모든 것에 대한 부인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는 출발한다고 했던가. 책을 읽지 않을 권리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나의 개인적인 의사와는 반하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권리 또 군데군데 골라 띄엄띄엄 읽을 권리 등이 차례로 소개가 된다. 그 중에서 가장 긍정적인 권리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을 다시 읽을 권리’였다. 그것은 바로 페나크가 이 책을 통해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상의 행위에 기초한 즐거움인 것이다.

책을 읽는데 있어서 시간활용에 대한 이야기로 부족한 글을 맺고자 한다. 너무나 바쁜 우리 현대인들은 시간에 대해 너무나 인색하다. 그리고 책을 읽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대곤 한다. 사랑을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사랑을 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사랑을 하면 없는 시간도 나기 마련이다. 책을 사랑하면, 책 읽을 시간은 자연히 따라 오는 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항상 읽을 책을 손에 들고 다녀 보라. 그러면 언제 어디에서고 펴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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