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로시티 - 딘 쿤츠 장편소설 모중석 스릴러 클럽 18
딘 R. 쿤츠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스릴러 작품을 전문적으로 쓰는 것으로 알려딘 딘 쿤츠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 보았는데,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벨로시티>로 그와 첫 만남을 가질 수가 있었다. 벨로시티(velocity) 라, 속도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단순하게 속도라는 뜻만 있는게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되서, 위키피디아에게 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대 이상의 대답을 내주었다. 물리학에서 사용되는 말로 위치의 변화율을 지칭하며, 속도를 뜻하면서 동시에 그 방향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 <벨로시티>의 주인공 빌리 와일스의 육체적, 도덕적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 “벨로시티”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부근의 내퍼 카운티였던가. 어느 이름 없는 ‘선술집’에서 이 기이하면서도 읽는 순간은 손에서 책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주인공은 이 바에서 일하는 바텐더 빌리. 어느 점에서도 보더라도, 지극힌 평범한 보통 남자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로부터 쪽지를 한 장 받으면서 느슨하게 조여 있던 삶의 긴장이 폭발해 버린다.

자신이 받은 쪽지의 내용을 경찰에 알리지 않으면 금발의 여선생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자선사업을 할머니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날아든다. 제한시간이 주어지고, 모든 건 빌리의 선택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보이지 않은 적으로부터의 공포가 가장 큰 법이다. 이런 짓을 하는 이가 누군지 그 실마리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부모가 죽고 나서, 포스터 차일드로 자라난 빌리는 조용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병상에는 4년 전, 약혼을 하고 깡통에 든 수프를 먹고 의식을 잃은 약혼녀 바바라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그녀에게 헌신적인 빌리.

협박을 계기로 해서 작가 딘 쿤츠는 빌리 와일스의 삶에 독자들을 조금씩 안내하기 시작한다. 첫 번째 협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빌리에게 두 번째 쪽지가 날아들고, 더 이상 이 협박이 단순한 공갈이 아니라는 것이 빌리의 친구이자 보안관 대리인 래니 올슨을 통해 드러나게 된다. 이 협박을 진행하는 보이지 않는 “미친놈”은 빌리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나가면서, 결국 물리적 폭력 행사에까지 다다른다. 협박에 이은 두 건의 살인을 확인하고, 심지어 끔찍한 폭행을 당한 빌리는 자신이 접하게 된 사건이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미친놈”으로부터 받은 궁극적인 협박은 빌리 자신이 자살하게 된다는 선언이었다. 그리고 빌리가 처해 있는 모든 정황들은 피해자인 빌리가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자신의 가장 취약한 약점인 바바라를 보호하면서, 왜 자신이 이런 사태를 감당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빌리는 목숨을 건 사투에 나서게 된다.

<벨로시티>를 다 읽고 나서, 딘 쿤츠의 전작들을 살펴보았다. 다작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수많은 책들이 검색창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후기로 실린 모중석의 인터뷰에서 말해지듯이, 보통남자 3부작 중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벨로시티>는 하루하루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익명의 쪽지를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보통남자가 갑자기 미처 자신이 모르고 있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내서 악당과 대결한다는 슈퍼히어로식 설정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하게 살려는 보통남자가 불가피한 극한 상황에 내몰려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다. 게다가 그를 위협하는 “미친놈”의 정체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단서가 너무나 빈약하다.

“미친놈”은 라벨의 볼레로처럼 주인공에게 공포와 위협의 단계를 서서히 높여 나가면서 독자들이 점차 느끼게 되는 스릴과 서스펜스에 휘발유를 끼얹는다. 동시에 작가는 우리가 모르는 빌리의 어두운 과거들을 한 꺼풀씩 벗겨 내준다. 그동안 주변의 타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던 빌리는 협박이 확대되자, 주변인들을 모두 의심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진술한 완벽한 알리바이는 <벨로시티>의 맛깔나는 함정이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이제 그만!

스릴러 소설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즐거움은 도대체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진행시킨 범인이 누구인가를 맞추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여기저기 흩뿌려 놓은 단서들을 통해 유추해내면서 지목하는 경우가 있겠고, 작가의 의도대로 결말에 도달해서 알게 되는 경우가 있겠다. 그동안 대개의 경우, 후자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벨로시티>를 읽으면서, 그런 정밀한 유추 없이 개인적 심증을 두었던 캐릭터가 범인이었다. 물론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지만. 아마 딘 쿤츠는 그것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두었지 싶었다. 아, 역시 작가가 한수 위였구나.

소설의 제목처럼 <벨로시티>는 속도감이 넘친다. 벡터 물리학의 정의대로, 속도가 넘치면서도 그 방향성도 뚜렷하다. 작가가 준비한 이정표대로 독자들은 한걸음씩 발을 내딛기만 하면 된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대중성을 겸비했으면서도, 찰스 디킨스나 T.S. 엘리엇 같은 문호들의 코드들도 자신의 작품에 용해시킬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딘 쿤츠의 차기 작품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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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세상이다 - 청소년과 가정을 위한 지식사전
피에르 제르마 지음, 최현주 옮김 / 하늘연못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일단 책의 화려한 올 컬러에 반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한 번 읽어 봤다는 기시감이 자꾸만 들었다. 도대체 왜일까? 해서 저널리스트로서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것이 세상이다>의 저자 피에르 제르마의 국내에서 출간된 책들을 검색해 봤다. 아니 그랬더니만 바로 2006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세상을 바꾼 최초들>이란 책이 있지 않은가. 내용을 살펴보니, 판박이였다. 물론 기존의 책에서 7개의 장에서 다룬 것들이 새로 나온 <이것이 세상이다>에서는 8개의 장으로 바뀌고, 번역자가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어들면서 아주 작은 차이가 있긴 했지만 대동소이했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때에 읽은 책이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좋은 책들은 자꾸만 접할수록 좋은 것 아닌가. 예전에는 흑백의 단색인쇄였는데 이번에는 무엇보다 올 컬러 인쇄로 보다 생생하고 화려한 도화들이 무엇보다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새로운 책을 읽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인류 문명의 발달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해왔던 세계 최초에 대한 기록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인상적인 발명은 바로 바퀴였다. 이제는 너무 흔해 빠져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인류사적 측면에서 바퀴의 발명은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아시아와 유럽 같은 구대륙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져온 바퀴가 신대륙의 잉카문명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유용한 운송수단 없이도 그 무거운 석재들을 운반해서 거대한 신전과 건축물들을 어떻게 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사에 있어서 하나의 미스터리였다.

개인적으로 맥주를 좋아해서인지 이번에도 역시나 맥주와 홉(hop)에 대한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많은 종류의 채소들이 처음에는 식용이 아니라 관상용으로 재배되었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이르면서, 후추와 같은 향신료들이 진귀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금과 은 같은 정도로 취급을 받으면서 화폐의 기능까지도 담당했었다는 놀라운 이야기도 알게 됐다. 아주 오래 전, 어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난 육두구와 정향의 가치가 당시에는 금값이었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이 세상이다>를 통해 확인할 수가 있었다.

얼마 전에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을 읽었는데, <이것이 세상이다>에 바로 그 사라마구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바르톨로미에 데 구스망 신부가 고안해냈다는 기구 “파사볼라”에 대한 역사적 기술을 다루고 있어서 너무나 반가웠다(321페이지). 신화적 상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교차 확인이 너무나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 최근에 출간된 사라마구의 <죽음의 중지>에서도 소개되는 운명의 여신 중에서 죽음을 다루는 아트로포스에 대한 언급(464페이지)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분야 중의 하나였던 중세와 근대의 직업군에 대해서도 다양한 판화나 에칭화로 소개해 주고 있었다. 유럽의 많은 작가들은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들을 남겨 주었는데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해력울 향상시켜 주는 동시에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났다고 생각이 됐다.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비롯된 어원이나 이야기들이 오늘날에도 사용되는 많은 부분들에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 역시 인상적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무래도 저자가 프랑스 출신의 작가여서 그런지 세계 최초에 관한 것들에 대해 프랑스 중심적인 사고가 많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게다가 아시아나 아메리카 대륙의 정보에 대해서는 의도적이었는지 아니면 리서치의 부족이었는지 상당 부분이 빠져 있었다. 예를 들어 인쇄술의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목판 및 금속활자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이전에 이미 상당 수준에 달해 있었지만 달랑 몇 줄만 다루고 넘어갔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데 있어서도 내셔널리즘은 여전히 그 유효성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감수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익숙하지 못한 불어 표현을 그대로 차용한 것도 문제지만 어떤 것들은 사실 관계 여부를 따져보지 않은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철의 장막을 다룬 내용 가운데, 159페이지에 나오는 “발트해의 수데텐란트”라고 나오는데 수데텐란트는 발트해와는 상관이 없다. 수데텐란트는 체코의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부근의 수데텐 산맥 부근을 지칭하는 지명이다.

지금은 우리네 일상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 물건들이나 혹은 탈 것들이지만, 오래 세월을 두고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열과 정성을 다해서 발전시켜온 삶의 지혜들의 결정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는 좋은 독서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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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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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그동안 수많은 책을 발표해온 김탁환 작가의 책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의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에 대한 에세이집을 접했으면 좋았으련만, 아쉽다. 책을 받아 보기 전에 400페이지가 훨씬 넘는다고 해서 약간 걱정을 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자그마치 열권도 아니고 100권에 달하는 책에 대한 개인적이거나 혹은 사유에 근거한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사실 작년 가을에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한 소개를 하는 글들을 좀 멀리 하고 싶었었다. 왜냐, 그런 책들을 읽게 되면 어김없이 그렇게 알게 된 책들을 사게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뒤적뒤적 끼적끼적>의 책자락들을 넘기면서 역시나 다시 한 번 세상은 넓고, 읽을 책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2장에 나오는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룬 집착에 담긴 이야기를 보면서, 나의 집착의 대상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한 때는 영화에 집착했었고 또 한 때에는 사진과 낚시 그리고 야구에 집착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는 책에 집착하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본다. 조선시대 최고의 로맨티스트라는 멋진 별호를 가진 심노숭이 어떤 글을 남겼는지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장에 나오는 아니 에르노에 대한 글들을 통해서는 정직과 가혹한 글쓰기가 눈에 밟혔다. 모름지기 글을 쓰는 이들은 정직해야 한다는 걸까? 그리고 또 가혹한 글쓰기는 무엇인가. 동시에 책읽기에서 독자가 감당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에서 나만의 고전을 만들어 내라고 주문을 했었다. 어떤 책이 아무리 다른 이들로부터 칭송과 환호를 받더라도, 나와 공명하지 못하면 나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른 이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도 가지 않을 만한 곳에 가서, 아무도 하지 않을 일들을 하면서 기상천외한 글들을 써내는 다카노 히데유키의 글들이 좋다.

거의 온갖 장르의 책들을 섭렵하다 보니 사랑에 대한 이야기 또한 빠질 수가 없다. 피츠제럴드의 단편선에서 인용한 세상에 온갖 사랑들이 있지만, 똑같은 사랑은 없다는 그의 선언이 가슴이 때린다(93페이지). 아마 인류의 불멸의 주제인 사랑에 대한 글들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종이책 더 나아가서는 디지털북이 그 수명을 다하지 않는 한 끊이지 않고 재생산될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사랑들이 차고 넘칠 진 몰라도, 자신만의 유니크한 사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피츠제럴드의 기분 좋은 속삭임.

어려서 헤딘의 전기를 읽으면서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꿈을 꿨었다. 수잔 휫필드의 <실크로드 이야기>에 나오는 10명의 등장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그 타클라마칸 사막, 황량한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 그리워졌다.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하는 땅이라고 했던가. 태어나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막이건만 왜 그렇게 간절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거창하게 구도를 말하기 전에 앞서 데자뷰처럼 사막에 대한 그리움이 우선한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에 나오는 책들을 보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는데 의외로 절판이 돼서 이제는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책들이 많아서 참 아쉬웠다. 특히 레이 황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와 <허드슨 강변에서 중국사를 이야기하다>과 같이 미시와 거시적 측면에서 역사 바라보기의 전범이 되는 연구와 해석을 담은 책들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뒤적뒤적 끼적끼적>의 후유증은 벌써부터 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어쩌면 어떤 책들을 먼저 구입해야 하는 패닉에 빠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내가 모르고 있던 좋은 책들이 많다는 것과 책은 읽어도 읽어도 그 끝이 없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 알찬 독서의 경험이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사의 -> 사람의 (62페이지)
2. 하연 -> 하얀 (157페이지) : 진은영 시인의 시집 37페이지 확인
3. 「해가 : 우측 낫표가 빠졌습니다 (239페이지)
4. 하는 -> 하지 (25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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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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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새로운 책 <죽음의 중지>를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영문학을 전공한 정영목 씨라고 한다. 사라마구가 포르투갈 작가가 아니었던가? 2005년에 나온 이 책은 작년 10월에 미국에서 마가렛 줄 코스타가 영어로 번역해서 출간이 됐다. 그렇다면, 포르투갈어로 쓰인 책의 영문판을 다시 한국말로 번역했단 말인데……. 원래 그리스어로 쓰인 신약성경이 라틴어, 영어 그리고 다시 중국어를 거쳐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숱한 오역들에 대한 예를 굳이 들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사라마구의 책인 <수도원의 비망록>이 작년 말에 재출간되면서 포르투갈어를 전공한 송필환 교수가 감수를 맡았었는데, 왜 이번에는 그냥 영어책을 번역했는지 그 점이 좀 아쉬웠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노년에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인정받기 시작한 포르투갈 출신의 노대가 주제 사라마구의 상상력은 18세기 신비로운 날틀제작에 얽힌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로맨스를 거쳐, “눈먼 자들”이 사는 도시에서 벗어나 드디어 ‘하데스의 세계’에 다다른다. 소설 <죽음의 중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국가에서(작가의 조국인 포르투갈일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이 새해 전날에 파업을 일으키면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죽음이 그 작동을 멈춘 것이다.

죽음이 멈추면서 그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들이 충분히 예상되지 않는가. 그전에 작가의 상상력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1934년에 <명절에 나타난 저승사자(Death Takes A Holiday)>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졌었다.

주제 사라마구가 올드 할리우드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야기는 계속된다. 당장 종교계에서 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 더 이상 수익을 낼 수 없게 된 장의업계, 더 이상 죽지 않는 이들로 넘쳐 나게 된 병원 업무는 마비가 되는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새로운 수익모델을 창출해낸다. 젊어서 공산당 활동을 했던 사라마구의 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비꼼의 미학이 느껴졌다.

종교계와 철학자들이 모여 죽음의 실종에 대해 무의미한 논쟁을 하고 있는 동안, 마피아(Maphia)들은 여전히 죽음이 유효한 국경 밖으로 죽기를 원하는 이들을 실어 나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국가에서는 이를 알고서도, 그들의 행위를 묵인한다. 이 시점에서, ‘물리적 죽음’에 대한 질문이 고개를 들지만 작가가 언급하지 않았으니 살짝 패스하도록 하자. 문제는 죽지는 않지만, 인간의 실존적인 노화를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죽고 싶지만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과 연금제도의 붕괴로 인한 국가적 위기가 목전에 다가와 있다. 그야말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회색지대에 놓인 상황이다(47페이지).

여기까지가 <죽음의 중지>에 첫 번째 부분에 해당되는 이야기고, 이제부터 진짜 “죽음”이 개입을 하게 되는 두 번째 이야기 시작이 된다. 인간의 죽음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소문자 ‘죽음’은 방송국에 직접 편지를 보내 7개월간에 걸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전위적 실험의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죽음을 전달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그동안 유보되어 왔던 죽음의 시행을 그날 자정부터 단행하겠다고 말한다.

죽음과 부활이라는 대명제가 반드시 필요했던 종교계에서는(특히 가톨릭) 이런 죽음의 선포를 자신들의 오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받아들이고, 장례업계 역시 환호성으로 죽음의 매니페스토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앞으로 죽을 사람들에게 7주일간의 말미를 주면서, 자줏빛 편지들이 배달되기 시작한다. 국가에서는 경찰력을 동원해서, 예의 편지를 발송하는 ‘죽음’을 찾아 나서지만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늘 불필요한 행정 절차들을 고안해내는 국가에 대한 사라마구식의 조소가 뒤따른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시점에서 죽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죽음이 발송한 편지가 되돌아온 것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했던 죽음이 거부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시에 거주하는 매우 평범한 첼로연주자였다. 우리의 죽음은 몇 번 더 죽음의 발송장을 보내보지만 항상 그 결과는 반송이었다. 자, 이제 자신의 직업의식에 불타는 죽음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게 된다.

우선 죽음이라는 누구나 원하지 않는 주제를 가지고, 이렇게 독창적이면서도 참신한 아이디어로 세태를 풍자하는 멋진 글을 써낸 노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소문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국왕의 모후에게도, 그리고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이름 없는 농부에게도 죽음은 차별이나 편애 없이 평등하게 다가선다. 우리의 일상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지만, 인지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이 -죽음- 발생하게 되었을 때를 가정한 사라마구의 우화는 우리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 양심의 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삶 가운데 우리가 원하는 것만을 취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이 불행하게 되었을 때 혹은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되었을 때 그들을 돌봐야 한다는 명제 아래서, 인도주의와 이웃사랑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을 작가는 말없이 지목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에서 죽음이 실종되었을 때 일단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이유로 죽음을 원하는 이들에게 죽음을 배달하는 붐이 일지만 곧바로 이 사태를 지각한 사람들의 되살아난 양심이 회복되는 과정을 노작가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라마구가 우중충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을 이 책을 통해 하는 것만은 아니다. 죽음이 다시 본업에 복귀하게 되었을 때, 그녀(죽음은 여성으로 묘사가 된다)에 대한 미디어의 적대적인 보도의 예를 들면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다(168페이지). 사라마구의 책에서 이런 유머를 읽을 줄은 미처 몰랐다. 미래에는 자줏빛 편지대신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웃룩 익스프레스로 죽음의 발송장을 보내야겠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등장시키기도 하고(181페이지), 첼리스트가 일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를 샤먼(223페이지)이라고 부르는 등의 유머와 진지한 주제의 균형에도 정성을 들인다.

표지에 등장하는 해골나방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로 <양들의 침묵>의 표지에 당당하게 등장하는 바로 그 녀석이다. 학명은 아케론티아 아트로포스(Acherontia atropos). 아케론은 사후 세계의 주인인 하데스가 다스리는 지하에 흐르는 스틱스 강의 지류이고, 아트로포스는 운명의 여신(모이라이:Moirae/라틴어 파르카이:Parcae 에 해당한다) 세 자매의 맏이로 죽음을 주관한다.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이 또 있을까. 해골나방은 예로부터, 불운을 상징하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 들여져 왔다. 소문자 죽음은 첼리스트가 보고 있던 자연도감으로부터 이 해골나방을 자줏빛 편지를 대신할 죽음의 메신저로 사용하고 싶다는 영감을 얻는다. 팔방미인의 노작가 사라마구에게 한 수 배웠다.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주제 사라마구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기존의 문법체계를 거부하는 그의 소설 작법에 도대체 적응이 되지 않아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고생했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그의 작품을 대하게 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는지 그전 같은 부담감이 덜해졌다. <수도원의 비망록>을 읽으면서도, 작가에 대해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대해 공부를 하게 만들었었는데, <죽음의 중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통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노대가의 묵시록 같은 계언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조용히 점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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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 - 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2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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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두 건이 미제 살인사건과 그 사건들을 풀기 위해 매진하던 안조 세이지 주재 경관의 의문사 그리고 덴노지 화재 사건 현장을 떠나 순직처리조차 되지 못한 아버지의 원한을 풀기 위한 아들 다이조의 노력이 가중되는 가운데 아쉽게도 후속편으로 그 바통을 넘겨주게 되었다.

어느 미스터리를 다룬 소설도 마찬가지겠지만, <경관의 피> 역시 예의 공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 몫은 세이지의 아들 다이조의 몫이 아닌 듯 싶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경관이 된 다이조는 자신이 희망하는 보직인 주재경관 대신에 공안경찰로 발탁이 되어, 뛰어난 공훈을 세우지만 경찰이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본의 아니게 적군파 조직에 몸을 담게 되면서 극심한 자아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결국 공안 임무를 마치긴 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가정불화를 겪게 된다. 한편 아버지의 친구들로 다이조의 후원을 도맡았던 삼총사들은 이제 경찰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다이조의 희망대로 주재경관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준다. 주재경관이 된 다이조는 다시 자신의 아버지의 오명을 벗기기 위해, 발생한지 근 30년 된 사건들을 탐문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주재경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 다이조지만, 아들 가즈야와는 어머니인 준코를 폭행했던 기억으로 인해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별다른 일 없이 평화롭기만 하던 어느 날, 다이조의 끈질긴 노력으로 마침내 아버지의 의문사에 대한 단서를 밝혀내게 되지만 관내에서 발생한 인질 총기사고로 인해 다이조는 유명을 달리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다이조의 뒤를 이어, 가즈야 역시 도내의 국립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다음 경찰에 지원한다.

3대째 경관을 배출한 집안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경찰직에 첫발을 내딛은 가즈야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경시청 본청으로부터 오직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경관에 대한 내사임무였다. 수사과의 능력 있는 경관이지만, 어쩐지 경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고급 세단과 옷차림의 가가야 경부. 그의 수하로 들어간 가즈야는 충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나간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결말은 다가오는데, 도대체 이 모든 미스터리의 끝을 어떻게 내려고 작가 사사키 조는 이렇게 질질 끄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즈야의 에피소드는 마무리가 지어지고 할아버지의 의문사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들이 차례로 밝혀진다.

<경관의 피> 상하권을 다 읽고 나서 바로 든 생각은, 그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전후시대 일본에서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일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경찰이라는 특정 집단을 주제로 해서 일관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 사사키 조의 구성력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시대상의 변화에 담보된 소설 내의 사건들에 대한 전개 역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3대에 걸친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서, 소설에서 크든 작든 등장한 인물들을 나중에라도 다시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아 그 때, 그 사람이라고 연상시키는 방법은 정말로 기발했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이 내던지는 말들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큰 줄거리인 미결 살인사건과 세이지의 의문사에 대한 미스터리에 연결시키는 집중력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물론 재일 조선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과 사회주의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편향적인 사고에 바탕한 흑백논리가 조금은 부담스럽긴 했지만, 너무 정치적이지 않으면서도 중용적인 태도로 이에 대한 논쟁을 살짝 빗겨 나가는 기술 역시 인정해줄만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으로 결말 부분에 가서 너무 쫓기는 듯한 인상으로, 엔딩을 처리한 점이 좀 불만스럽긴 했지만 대체적으로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옥의 티를 하나 꼽자면, 하권 394페이지에서 작가는 안조 세이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북인도에 갔었다고 언급을 하고 있는데 지리적으로 북인도라 하면 델리와 캐슈미르 지방을 지칭하는데 아마 이것은 일제의 1944년 임팔-코히마작전을 착각한 기술로 보인다. 굳이 정정하자면, 북인도라기 보다는 동인도라고 하는게 맞는 표현이다.

사사키 조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의 조속한 소개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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