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베 난징의 굿맨
존 라베 지음, 에르빈 비커르트 엮음, 장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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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오스카 쉰들러라는 휴머니즘에 입각한 양심적인 인물이 있었다면, 노구교사건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난징 점령 후 수많은 중국인들의 인명을 구해낸 존 라베가 있었다. 두 인물의 일대기가 모두 영화화되었고, 후자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야기라는 차이점 정도가 있다고 할까.

함부르크 출신의 존 라베는 조국 독일을 떠나 30여 년간 중국에서 일하면서, 중국의 많은 면들을 다른 서양인들에게 비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은 그가 난징 학살 당시에 기록한 개인 일기에 근거해서 외교관 출신의 에르빈 비커르트가 전후 수집한 서류들과 편지들을 이용해서 집대성한 저작이다.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발발한 1937년 당시 존 라베는 지멘스 차이나의 난징(南京) 지사 대표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으로 진격해 오던 일본군 앞에 난징의 상황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다. 결국 압도적인 일본군의 공격 앞에 장제스 대원수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내륙으로 패퇴하고 근 100만 달하는 수도가 적의 손에 떨어지게 됐다.

수도 방어전에서 수도 난징을 일본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중국군의 격렬한 저항은 난징 함락 이후 일본군의 만행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이에 앞서 일본군의 온갖 잔학행위로부터 전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던 가난한 중국 사람들을 위해 우리의 주인공 존 라베가 주축이 된 ‘난징 안전구 국제위원회’(1937년 11월 24일)가 설립이 되어 중국군이 철수한 난징 시내의 안전과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만한 공간에 무려 25만 명이나 되는 중국인들을 수용하게 된 안전구(safety zone) 내의 25개 캠프 역시 살인, 방화, 약탈과 강간을 조직적으로 행하는 무법천지의 일본군들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외교적 항의는 물론이고, 전혀 통제되지 않는 일본 군부에 대한 존 라베의 고뇌를 그의 일기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존 라베가 만난 대다수의 일본 장교들은 30년 전의 러일전쟁 당시 규율 잡혀 있던 일본군의 예를 들면서, 그가 직접 목격한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 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미 예의 사실을 알고 있던 일본군은 그들이 벌인 난징 학살의 전모가 외국인들을 통해 서방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것도 존 라베의 예리한 시선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훗날 그의 도움으로 인해 목숨을 구한 중국인들로부터 ‘살아 있는 부처’라는 말을 들었던 존 라베는 자신의 지도자 히틀러에게 이 사실을 알려 자신의 조국 독일의 동맹국인 일본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주길 바랬지만, 당시 유럽은 물론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던 중국에서의 이런 사건은 단지 지엽적인 사건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순수한 박애정신으로 중국인들을 살리려는 존 라베의 행위에 찬탄을 마지않을 수가 없었다. 민간인의 신분으로, 나치 완장과 하켄크로이츠 만으로 안전구 내의 중국인들을 폭행하고 약탈하려는 일본군의 야만적인 행위를 막아낸 것만으로도 존 라베의 행동은 칭찬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충실한 나치 당원으로, 자신의 지도자 히틀러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훗날 독일에 돌아가 난징 학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기록과 필름을 가지고 강연을 하던 중,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다시는 과거사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방면되기도 한다. <존 라베 난징의 굿맨>에는 난징 학살사건 뿐만 아니라 1945년 4월 러시아군의 베를린 입성 후, 난징에서 일본군이 벌였던 것과 같이 러시아군에 의한 잔학행위와 약탈의 기록인 “베를린 일기”도 함께 담겨져 있다. 개인적으로 전후 독일사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당시 베를린에서 종전을 맞이한 존 라베의 일기를 통해 처참했던 패전 독일의 시대상을 그려볼 수가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시혜를 베풀던 입장에서 점령군의 시혜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존 라베와 그의 아내 도라의 모습에서 측은한 연민이 정이 솟아올랐다. 하지만 난징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 어떤 상황도 난징보다는 괜찮고 모든 위기를 다 이겨낼 수 있다는 존 라베의 의연함 앞에 저절로 숙연해졌다.

올해 제작되어 발표된 <존 라베>의 예고편을 지금 막 보았는데, 자신을 위협하는 일본군이 총구 앞에서 목숨을 걸고서 당당하게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중국인들을 구해내는 존 라베의 모습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물론 나치 깃발 아래, 중국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모습에서는 여전히 불편한 그 무엇이 있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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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넬라 Passionella
줄스 파이퍼 글.그림, 구자명 옮김 / 이숲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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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스 파이퍼, 사실 이 책 <패셔넬라>를 접하기 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장 자끄 상뻬의 책들은 많이 접해 봤었는데 줄스 파이퍼는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책날개에 실려 있는 작가의 경력을 보니 대단한 인물이었다.

1929년 생으로 올해 81세의 만화 작가인 줄스 파이퍼는 뉴욕 브롱스 출신으로 1940년에 대작가 윌 아이즈너의 휘하에서 스토리텔링과 만화 작법을 배웠다고 한다. 파이퍼는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뉴요커, 네이션 그리고 플레이보이 같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특히 그의 출세의 발판이 되었던 “빌리지 보이스”에는 자그마치 42년 동안이나 만화를 연재하기로 했다. 그가 그린 만화들은 19권의 전집에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된 줄스 파이퍼의 책인 <패셔넬라>에는 모두 해서 6편의 만화가 실려 있다. 가장 먼저 타이틀인 <패셔넬라>에서는 미모 지상주의에 물든 현 세태를 굴뚝 청소부 넬라의 화려한 변신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연기보다도 외적인 면, 특히 글래머 미녀스타라는 정형만을 원하는 할리우드 영화판을 파이퍼는 적나라하게 풍자한다.

물론 잘 먹고 잘 살았다는 디즈니 전형의 해피엔딩으로 결말이 나긴 하지만, 전래 동화인 <신데렐라>와 <개구리 왕자>의 절묘한 조합에 작가 나름의 비판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인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는 <패셔넬라>에 실린 만화 중에 단연 압권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된 <먼로>에서는, 네 살짜리 어린 아이가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인 코스타 가브라스가 언젠가 말했듯이 학교와 군대가 사람을 개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장소라고 했던가.

군대라는 획일화된 조직을 통해, 개성을 잃어버리고 철저하게 조직에 충성하는 인간들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네 살배기 먼로의 눈을 통해 제시된다. 사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미국의 청소년들이 나이를 속여 가면서 입대했던 시절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그 후에 벌어진 베트남 전쟁의 병역기피와는 좋은 대조를 이루게 되지만 말이다.

냉전시대 전체주의의 모습을 우화화한 <해롤드 스워그> 또한 <먼로>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냉전시대 불구대천의 원수인 구 소련과 대결을 위해 경쟁에는 전혀 관심을 없는 보통 사람 해롤드 스워그를 올림픽 경기에 출전시키기 위해 사회의 모든 단체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주인공을 압박하는 장면에서는 50년대 전 미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매카시즘의 광기가 연상되기도 했다.

후반의 세 작품들인 <조지의 달>, <외로운 기계> 그리고 <관계>는 이전 작품의 무거운 주제들과는 달리 삶에 있어서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패셔넬라>를 보면서 작가 줄스 파이퍼의 정밀하기 보다는 사물의 특징들과 형태를 잡아내며 작법이 왠지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아마 그가 오랫동안 <뉴요커>지를 비롯한 유력지들에 카툰들을 기고해서 그래서였나 보다.

줄스 파이퍼와의 나의 첫 만남은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꼬마 병사 먼로 이야기>가 만화로도 제작이 되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퍼는 미국의 명문대학인 예일과 노스웨스턴 그리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했다. 지난 1986년에 다년간 “빌리지 보이스”지에 만평을 게재한 공로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셔넬라>의 출간을 계기로 해서, 앞으로 다양한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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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단편소설집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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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앨런 스튜어트 코니스버그. 우리가 우디 앨런으로 알고 있는 미국 유대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극작가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국 감독을 꼽으라고 한다면 마틴 스코시즈와 함께 꼽는 감독이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35살이나 차이가 나는 순이 프레빈과의 결혼으로 인해, 파렴치한 노인네로 평가절하 받고 있지만.

나도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한 편도 보지 않고서 말이다. 하지만 <마이티 아프로디테>, <한나와 그 자매들>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쏴라> 같은 그의 걸작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우디 앨런 특유의 걸출한 수다의 입담, 냉소적이 블랙 유머와 그의 현학적인 잘난체에 반해 버렸다. 어찌나 유식한 척 하기를 좋아하는지 <한나와 그 자매들>을 통해 배운 “hypochondriac”(자기 건강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사람)란 단어는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다.

이번에 웅진지식하우스를 통해 출간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통해 처음으로 우디 앨런의 글과 만나는 즐거움을 갖게 됐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활동적으로 영화판을 누비고 있는 이 노친네는 저명한 잡지인 <뉴요커>에 기고한 18편의 단편들을 모아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니체의 유명한 저서를 팔아 타이틀로 삼았다.

평생 뉴욕을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아온 우디 앨런은 뉴욕 그 중에서도 여피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맨해튼에 서식하는 오만가지 인간군상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치열한 교육 경쟁의 단면을 그린 <탈락>에서는 유명 사립유치원 면접에 떨어진 아이를 둔 부모의 고뇌를 스케치해낸다. 이 장면은 최근 우디 앨런의 작품에 연달아 출연하고 있는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한 <내니 다이어리>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가장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타이틀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였다. 니체의 그 유명한 철학 산문시를 교묘하게 비틀면서 뉴요커들의 섭생의 미학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잘난 현학적 태도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로 인한 무지한 독자들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데 있어 일말의 양심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

사이비 종교와 보통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건설업자 그리고 자신의 주 무대인 영화판 역시 우디 앨런의 냉소로 가득 찬 독설을 피해갈 수 없긴 마찬가지다. 특히 유사 이래 새로울 것이 없다는 영화판의 (우디 앨런이 한 때 가지고 있었던) ‘천재적 창조성’의 부재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여과 없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쉴 새 없이 글을 쓰고,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열량을 섭취할 재화를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겠지?

<오, 친애하는 유모여>에서는 자신들이 고용한 유모가 소설의 주인공 부부를 모델로 해서 쓴 글에 대한 경악과 분노를 다루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디 앨런의 전처가 그들의 사생활을 책으로 출간을 해서 세간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었는데, 이 사건에 대한 우디 앨런식 패러디가 아닐까 싶다. 아니면 딸 같은 순이 프레빈을 12년째 데리고 사는 것에 대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두 명의 번역가가 번역을 맡았는데, 글이 너무 재밌어서 그런지 분명 다른 스타일의 번역을 구분할 수가 없었다. 흠, 그 정도로 무지했던걸까. 책의 판형도 보통 책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 일러스트를 맡은 이우일 씨의 그림들이 마치 엽서처럼 책의 곳곳에 끼워져 있는 것도 특이했다. 특히 니체와 같은 식탁에 앉은 우디 앨런의 그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밀레니엄 캐피털 뉴욕을 배경으로 한 우디 앨런의 글들이 너무 재밌다. 역시 영화에서처럼 그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들은 유쾌하기만 하다.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뻔뻔하게 자신의 생각들을 이렇게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작가적 능력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디 앨런 특유의, 비꼼의 미학이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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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요람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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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2년 전 85세의 나이로 영면의 세계로 떠난 미국 출신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의 출세작인 <고양이 요람>을 읽었다. 지금까지 모두 세 권의 보네거트가 쓴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읽었던 <마더 나이트>가 가장 정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더 나이트> 역시 만만치 않은 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1963년에 출간된 <고양이 요람>은 보네거트의 네 번째 소설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상의 인물인 펠릭스 호니커 가족사를 파헤치는 저널리스트 존의 심층취재와 후반부의 산로렌조 공화국에서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는 내내 보코논교라는 산로렌조의 존슨이라는 사람이 만든 사이비 종교의 외경(外經)에 나와 있는 글들을 계속해서 인용하고 있다. 카라스, 듀프라스, 그란팔룬, 웜피터 그리고 포마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그 정체들을 알 수 없는 어휘들의 홍수가 쏟아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 존도 보노콘교의 신자였던가? <제5도살장> 첫 머리에 뻔뻔스럽게 정신분열적인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아마 <고양이 요람>도 비슷한 차원에서 접근을 해야만 했던 걸까. 글 중에서 “역동적 긴장”이라는 표현이 어찌나 이리도 공감이 가던지.

존이 소설 속에서 쫓는 원자폭탄의 아버지이자 노벨상 수상자로 등장하는 펠릭스 호니커 박사의 모델은 실존인물인 1932년에 노벨화학상을 받은 미국 출신의 화학자 어빙 랭뮤어라고 한다. 보네거트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사의 해결책처럼 제시되는 과학과 기술, 동시에 과학기술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 호니커 박사의 자식들을 통해 고인 생존의 모습을 스케치해 나가던 존은 아이스-나인이라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을 단번에 파괴시킬 수 있는 가공할 절대무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것은 50-60년대를 휩쓸던 핵무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공포와 불안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후반부는 카리브 해에 위치한 가상의 섬나라 산로렌조 공화국으로 떠난 존의 취재여행에 집중된다. 존은 그곳에서 그가 찾아 헤매던 호니커 박사들의 자식들을 모두 만나게 되고, 허무주의적이면서도 자연친화적인 사이비 종교인 보코논교와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우리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건지 소설은 뒤죽박죽인 상태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냉전 시대의 무한군비경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는, 반전 평화주의라는 작가의 뚜렷한 메시지는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지만, 마치 쥘 베른의 철지난 공상과학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사이비 보코논교의 이야기들은 작가가 정말 정신분열적인 상태에서 글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만들고 있었다. 커트 보네거트는 언젠가 자신의 글에 대해 평가를 매긴 적이 있었는데 <제5도살장>과 더불어 <고양이 요람>에 당당하게 A+를 주었다. 소설 중에 나온 절대 자신의 글에 스스로 색인을 달지 말라고 했던 색인전문가의 경고가 떠올랐다.

냉소적인 블랙유머로 무장한 커트 보네거트는 핵폭탄으로 지구를 몇 번이나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핵무기 경쟁이 치열하던 시대상을 “실뜨기 놀이”(cat's cradle)에 비유하고 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기도 했던 그는 이미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을 교화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학교에서 지배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의 주장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생소한 커트 보네거트 특유의 용어들이 낯설어서 책읽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긴 했지만 다시 한 번 한 시대를 풍미한 작가의 위트 넘치는 블랙유머들을 맛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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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파티아 성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7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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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이라는 이름에는 언제나 근대 최초의 SF 작가라는 명칭이 따라 다닌다. 그가 활동하던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비행선 혹은 잠수함을 이용해서 육해공 심지어는 우주까지 망라하는 공상과학 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경이의 여행” 시리즈는 모두 54편으로, 1892년에 발표된 <카르파티아 성>은 37번째에 해당한다. 세상의 모든 신기한 것들에 관심을 가졌던 쥘 베른은 이 책에서 유럽의 오지인 오늘날의 루마니아(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일부였던)의 트란실바니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왜 그 많은 장소들 중에서 트란실바니아를 골랐을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지만 고대 로마시대 다키아 지역으로 불린 이래 유럽의 변방으로 이 글이 씌여지던 19세기말에도 여전히 미신과 초자연적인 요소들이 일상화되었던 지역이라는 점에 주목하자. 이 책보다 5년 뒤에 출간된 브람 스토커가 “드라큘라”의 본고장으로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를 고른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카르파티아 성>은 현대 루마니아의 중앙부를 이루는 트란실바니아 중에서도 카르파티아 산맥에 자리한 웨르슈트 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의 양치기인 프리크가 떠돌이 방물장수에게 망원경을 구입하고, 예의 저주 받은 성으로 알려진 로돌프 데 고르치 남작의 “카르파티아 성”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를 하자, 대뜸 삼림감독원이자 마을 판사인 콜츠 씨의 미래의 사윗감인 닉 데크가 자발적으로 원인규명에 나선다.

닉 데크와 함께 울며 겨자 먹기로 함께 탐험에 나선 파타크 의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에 진입하려다가 낭패를 당한 채 마을로 철수를 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전반부라고 할 수가 있겠다. 그렇게 실의에 빠져 있던 마을에 프란츠 데 텔레크(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다)와 그의 하인 로츠코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미스터리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텔레크 백작과 희대의 오페라 가수 스틸라의 슬픈 사랑 이야기에, 그들의 사랑의 장애물이었던 고르치 남작과 그의 과학자 동료 오르파니크의 이야기가 곁들여지면서 카르파티아 성의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르페우스” 신화를 모티브로 삼았다는 책 소개가 문득 떠올랐다.

5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은 스틸라와 다시 만나기 위해, 죽음마저도 불사하는 델레크 백작의 모습은 독사에게 물려 죽은 에우리디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하데스의 명부로 뛰어드는 오르페우스의 현현이었다. 과연 델레크 백작은 스틸라를 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도대체 카르파티아 성의 비밀은 무엇인가.

역시 백여 년 전의 글이라 그런 진 몰라도, <카르파티아 성>의 놀라운 비밀은 오늘날에 보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문명의 이기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답게 쥘 베른은 당시 놀라운 문명의 발명품이었던 장치들을 이용해서, 여전히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믿고 있던 이들을 계몽하고 있었다.

스틸라라는 아름답고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을 사이에 둔 연적 텔레크 백작과 고르치 남작의 로맨스 대결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요소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개연성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고르치 남작과 오르파니크의 카르파티아 성 칩거의 이유에 있어 아주 납득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닌 듯 싶었다.

카르파티아 성이 쇼르(Chort:악마)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웨르슈트 마을 주민들과 탐험에 나선 닉 데크와 파타크 의원의 갈등 구조는 전근대적 미신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근대이성에 의한 합리주의의 충돌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거기에 이천년전 그리스 신화의 전설을 근대 버전으로 가미해서 쥘 베른은 트란실바니아라는 미지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를 멋지게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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