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팩션 장르는 언제나 그렇듯이 매력적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작가 라파엘 카르데티의 <마키아벨리의 눈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미국 출신의 정치 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가 표현한대로 “악의 교사”라는 명성과 <군주론>의 저자로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흡입력은 가히 놀랄만하다.

피렌체 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1498년 4월의 피렌체 공화국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근 반 세기에 걸친 메디치가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피렌체는 공화정 체제를 수립하게 된다. 그 중심에는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라는 도미니크 수도회 출신의 수도사가 있었다. 그는 기존의 가톨릭교회의 부패상을 지적하면서 종교개혁의 선구자로써, 신정과 민주공화정이 결합된 이상적인 정치 시스템의 중요성을 민중들에게 설파하고 있었다.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로드리고 보르히아)에게 그는 그야말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런 정치, 시대적 배경을 뒤로 하고, 소설은 끔찍하게 고문을 당하는 어느 무명의 화가의 죽음으로 글의 포문을 연다. 고금을 통틀어서 역시 살인이 관계된 미스터리만큼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학적 소재도 없는 것 같다. 카피에 나온 “한니발보다 잔인하고”라는 문구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굳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상세하게 비주얼화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을 이끌어갈 주인공들을 작가는 차례로 등장시킨다. 피렌체 공화국의 수장 소데리니, 그의 용병대장 말라테스타 그리고 끔찍하게 손상된 시신에서 범죄에 대한 단서들을 현대 법의학자 못지않은 실력으로 꼼꼼하게 잡아내는 코르비넬리가 그들이다. 이런 조연들에 이어 공화국의 서기관으로 일하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등장을 한다. 그의 사이드킥인 치치오와 베토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 캐릭터들이다.

한편 메디치 도서관의 귀중한 진적들을 보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노철학자 피치노는 단테가 남긴 <제정론> 수사본을 망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키아벨리들은 화가가 남긴 단서를 찾는 도중에, 의문의 연쇄살인은 계속된다. 공화국 최고행정회의 시뇨리아의 일원인 고리대금업자 지아니 코르솔리 그리고 피렌체 시내에서 향신료 가게를 운영하는 산드로 트레비 등이 차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프로페셔널한 살인자들에게 죽음을 맞는다.

프랑스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 그리고 로마 교황이라는 주변 강자들의 파워게임에서 들볶이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피렌체 공화국은, 일련의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인해 내분까지 겹치게 된다. 프랑스 국왕의 사절로 피렌체를 방문한 생말로 추기경의 자신들의 편에 서라는 압박이 가해진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범인을 뒤쫓는 과정에서 모든 사건들의 단서를 쥐고 있는 피렌체 유곽에서 유명한 보카도로(황금입술)라는 미모의 여성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들에게 우호적인 지인들의 도움으로 살인자들보다 그녀를 먼저 찾기 위한 숨 막히는 경쟁이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표지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영화 <식스 센스>를 능가하는 놀라운 대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400쪽에 가까운 책을 이 결말 부분을 위해서 준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신인 작가 라파엘 카르데티는 신인답지 않은 노련한 구성미를 보여 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의사 코르비넬리의 부하 데오그라시아스가 죽은 화가가 남긴 마돈나 성모마리아 그림의 구성을 통해 은근하게 비춰주기도 한다. 어디 그림만 그러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소설과 같은 글이 더 그렇지 않을까. 계속해서 벌어지는 끔찍한 연쇄살인을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뒤를 쫓은 마키아벨리들의 추적 그리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는 단서의 편린들의 배치가 무척이나 돋보였다. 피렌체 문학을 전공한 작가의 장기가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주인공 마키아벨리와 사보나롤라에 대해서는 카르데티는 새로운 해석의 시각을 제시한다. 권모술수와 악의 교사로 알려진 기존의 마키아벨리의 이미지 대신 공화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려는 냉철하면서도 이지적인 모습의 청년 마키아벨리의 모습이 새롭다. 극단적인 신정정치의 제청자로 알려진 사보나롤라에 대해서도, 작가는 좀 더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자신이 대하는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종교지도자의 모습이 부패한 중세교회의 그것과 너무나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소설의 전개상 사보나롤라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과정이 너무 급격하게 진행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팩션 장르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는 진짜 역사와의 관계의 문제가 하나 보였다. 사보나롤라는 1497년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데르 6세에게 파문을 당하고, 다음 해인 1498년에는 교황이 체포와 처형을 명령했다. 소설에서처럼 그가 거주하고 있던 산마르코 수도원을 습격한 폭도들에게 항복한 그는 그 후 수주일 동안 동료 2명과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동년 5월 23일 이단죄와 종파분리죄를 시인하고, 화형에 처해지게 된다. <마키아벨리의 눈물>에 나오는 사보나롤라의 죽음과는 차이가 있다.

책읽기의 즐거움이라는 점에서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전혀 부족함이 없다. 팩션과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옥의 티] 챕터마다 원형 안에 들어 있는 라틴어 문구가 나오는데, 번역이 빠져 있어서 너무 아쉬웠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피렌체 델라 시뇨리아 광장에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장소에 있는 명판에 새겨진 글인데, 분명 작가가 특별한 뜻이 있어서 넣은 것일텐데 그 뜻이 무언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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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 마인호프 - The Baader Meinhof Complex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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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영화를 발표했던 울리 에델이 이번에는 6-70년대 서독을 뒤흔들었던 서독 적군파, 일명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실제 역사를 다룬 <바데르 마인호프 콤플렉스>라는 영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지난 20년 동안 에델 감독은 영화보다는 텔레비전에 더 집중을 했었나 보다. <트윈 픽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니벨룽겐의 반지>를 통해 그와 만날 수가 있었다.

이 영화는 바데르 마인호프 갱의(일명 RAF로도 알려져 있다) 실질적인 리더인 세 명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저널리스트 출신의 지식인 울리케 마인호프(마티나 게덱 분), 그룹의 리더인 안드레아스 바데르(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 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데르의 여자 친구이자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구드룬 엔슬린(조한나 워카렉 분)이 그들이다. 이 셋 중에 개인적으로는 구드룬이 가장 실제의 인물과 유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는 두 명의 딸아이들을 둔 울리케 마인호프가 방문한 누드비치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저널리스트로서의 그녀의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와 더불어 1967년 6월 2일 서독을 방문한 이란의 전제군주 팔레비 샤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는 거리의 모습을 비춘다. 그리고 팔레비 샤를 지지하는 일단의 이란인들이 그의 독재에 반대하는 거리의 군중들을 공격하자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마치 198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떠올리는 시위와 진압 과정 중에, 자유 베를린 대학의 베노 오네조르크가 칼 하인쯔 쿠라스의 총격에 의해 죽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쿠라스는 구동독의 비밀경찰 슈타지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영화는 구드룬 엔슬린이 독일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나치의 망령이 여전히 남아 있는 독일에, 전후 세대인 젊은이들은 미국의 신제국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난 울리케. 구드룬과 안드레아스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경찰국가화 되어 가고 있는 국가에 타격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호소하기로 결정한다. 대형백화점에 폭탄 테러를 가하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1968년 봄, 베트남전의 수렁에 점점 깊숙이 빠져 들고 있는 미국에 반대하는 일단의 독일 청년들의 리더로 부상한 무정부주의자 루디 두취케가 당시 뉴스릴을 그대로 본뜬 필름으로 화면을 뒤덮는다. 하지만 루디 두취케는 어느 나치주의자 청년에게 저격을 당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청년들은 루디 두취케의 암살을 조장한 것으로 지목된 보수적인 빌트(Bild)지를 발행하는 슈프링거 출판사를 공격한다.

이와 함께 승려들이 분신으로 정부에 항의를 하고, 즉결처형이 난무하는 베트남의 거리들이 그리고 볼리비아에서 미국 CIA의 지원을 받는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살해된 혁명가 체 게바라의 모습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흑인 공민권 운동의 지도자 마틴 루터 킹과 대통령 후보로 나선 로버트 케네디가 차례로 저격되는 뉴스가 숨 가쁘게 들려온다.

이런 일단의 움직임 가운데, 백화점 폭탄 테러를 계획한 바데르와 엔슬린에 대한 공판이 진행되고 이 과정 중에 마인호프는 그들을 인터뷰하면서 친분을 맺게 된다. 이제 그들의 움직임에 주목하는 정부 측 인사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독 내무부 장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공판 과정에서 이탈리아로 도주한 바데르와 엔슬린은 자신의 변호사와 지속적인 접촉을 갖는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마인호프와 활동을 개시하지만 바데르가 불심검문으로 체포되고, 그를 구하기 위해 마인호프 마저 본격적으로 RAF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아주 우연하게 말이다.

1970년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은 요르단의 파타 준군사조직 캠프로 가서 게릴라 훈련을 받는다. 물론 혁명을 꿈꾸는 이들과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파타 게릴라들의 이상은 너무나 달랐다. 훈련을 마치고, 서베를린으로 잠입한 RAF들은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게 된다. 무장강도로 은행을 털며 자금을 조달하며 자신들의 목표와 이상을 사회에 알리기 시작한다. 울리케는 자신의 전문인 글쓰기를 통해, 프로파간다를 충실하게 수행해 나간다.

한편 정부에서 이들을 색출해 내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기에 이른다. 결국 새로운 신분증 제도를 도입해서, 소위 말하는 호수에서 물을 빼내 물고기를 띄우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그 결과 RAF 조직원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이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강경론자들이 서독내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를 폭파하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언론사들은 물론 고위 정부 인사들을 납치, 살해도 마다하지 않게 된다.

서독 사회에 온통 혼란과 불안이 가중되고 있던 1972년 6월 1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바데르의 비밀기지를 급습한 경찰과 총격전 끝에 바데르와 동료 홀거 마인스가 검거되기에 이른다. 바데르 마인호프 갱들에게 수많은 동료들을 잃은 경찰들의 잔혹한 보복이 수감자들에게 뒤따른다. 엔슬린은 함부르크에서 동년 6월 8일 부티크에서 옷을 고르다가 체포되었고, 같은 달 14일 울리케 역시 신분을 감춘 채 은거하고 있던 비트에서 체포되기에 이른다.

영화는 이제 한 숨 고르면서, RAF 지도자들의 감옥에서의 투쟁을 그린다. 1972년 9월 뮌헨 올림픽 도중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극좌파 집단인 “검은9월단”이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을 인질로 잡고, 수감된 PLO 조직원들과 RAF 지도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다시 한 번 세계는 RAF에 주목을 하게 된다.

바데르와 함께 체포된 홀거 마인스가 1974년 11월 9일 단식투쟁 끝에 사망하게 된다. 이 때 정부에서는 그에게 외부 의료진의 진료를 허가하지 않으면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비난을 받게 된다. 거의 백차례에 달하는 RAF 그룹의 공판 과정과 그들을 감옥에서 빼내려는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조직원들의 노력이 계속된다. 하이라이트는 1977년 10월 13일에 발생한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이었다. 하지만 납치사건이 실패하게 되자 스탐하임 감옥에 갇혀 있던 대부분의 RAF 지도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영화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우선 이런 대작 영화를 연출한 울리 에델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극악한 테러 조직으로만 알려져 있는 서독 적군파(벌써 이름부터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의 태생과 리더들의 죽음으로 맞이하게 된 몰락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전달하는데 에델 감독을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의 뉴스릴과 사진들을 통해 울리 에델 감독은 RAF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온전하게 관객들에게 맡기고 있었다.

스스로 공산주의 도시 게릴라 그룹이라고 지칭한 RAF는 가능한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억압받는 민중들을 위해 투쟁한다는 이상적인 이념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해서, 68혁명 이후 청년 세대에게 많은 지지를 이끌어낼 수가 있었다. 보수언론과 우파들은 그들의 대척점에 서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가장 잘 이해했던 이는 바로 극중에서 연방범죄경찰국의 국장이었던 호르스트 헤롤드(브루노 간스 분)이었다.

호르스트 헤롤드는 RAF가 어떤 방식으로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지 그 원인과 이유를 분석하라고 휘하 부하들에게 지시를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적인 RAF를 가장 잘 분석하고 파악하고 있던 이는 바로 호르스트 헤롤드였다. RAF와 연방경찰의 수장 호르스트 헤롤드는 마치 한 판의 체스경기를 하듯이 그렇게 공격과 방어 전술을 펼치고 있었다.

극중 캐릭터 간의 갈등 역시 볼만하다. 바데르 마인호프 그룹이 경찰에게 쫓기면서, 안드레아스는 점점 동료들에게 화를 내고 거친 성격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특히 저널리스트 출신으로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인 울리케 마인호프에게 여성차별적인 발언과 폭언도 마다하지 않는다. 같은 여성이지만 안드레아스의 여자친구인 구드룬은 애써 이런 사실들을 외면한다. 혁명과 투쟁을 위해 같은 이념으로 뭉친 이들이지만, 이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이런 미묘한 갈등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에델 감독은 세밀하게 잡아내고 있다.

극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훗날 극좌파 RAF 출신 조직원에서 극우파로 변신한 특이한 인물이 있는데, 초반 변호사로 등장하는 호르스트 말러다. 그 역시 체포되어 14년형을 선고받고 10년을 복역한 후 출소해서, 극우파로 전향을 하게 된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고, 반유대주의자로 인종차별적 선동으로 6년형을 선고 받기도 했다.

<바데르 마인호프 콤플렉스>는 나에게 마치 한 편의 텍스트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내가 전혀 모르고 있던 분단 독일 시절의 독일 국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어느 조직의 연대기였다. 그 연대기를 수놓아 간 주연들의 삶은 영화로 다루어질 만큼 극적이면서도, 많은 사회적 담론들을 담고 있었다. 영화에서 필수적인 요소들 역시 무엇 하나 부족하지 않았다. 과연 이 영화가 우리나라 극장에 걸릴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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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서 상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끝나지? 이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볼 정도면 남들보다 이런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인다. 그런데 보고 나서 쓴 감상문들을 보면 하나 같이 "상영이 될까"라고 묻고 있다. 상영하도록 만들어야지 될까라고 자문하고 있다니..

2008년 촛불부터 지금까지 주되게 보이는 경향 가운데 하나는 제3자 관찰자 시점이다. 웹뉴스로 보며 흥분하고, 댓글달고, 폭력시위는 안되는데...

블로그 주인장님, 이 영화 상영하게 만듭시다.


2009-06-18 14:0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습관대로 그냥 댓글 달아서 하나 더 남김.
 
어느 완벽한 하루
멜라니아 마추코 지음, 이현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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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의 책읽기는 그 책에 대한 단서 찾기로 시작을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태리 출신 여류작가 멜라니아 마추코(Melania Mazzucco)의 <어느 완벽한 하루>를 읽기 위해 우선 책의 처음에 나오는 노래 가사의 주인공인 루 리드가 부른 <Perfect Day>를 찾아서 들어봤다. 글램록 밴드답게 몽롱한 사운드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다는 동명의 영화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소설을 읽을수록 과연 24시간 동안 로마에 거주하는 이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했다.

<어느 완벽한 하루>는 1996년 작가로 데뷔한 멜라니아 마추코의 5번째 작품으로 (2001년. 마릴린 맨슨의 체포사건으로 추정한) 5월 4일 금요일 만 하루 동안 이탈리아 로마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캐릭터들과 사건들을 시간단위로 파헤친다. 작가는 캐릭터보다는 사건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5월의 어느 날 밤, 로마의 밤거리에 총성이 들린다. 그리고 총소리를 듣고 주민은 경찰에게 신고를 한다. 그 사건이 발생한 24시간 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는 시작된다. 24시간 단위로 세밀하게 나뉘어진 시간 속에, 작가는 부오노코레 가족과 피오라반티 가족들을 밀어 넣는다. 매력 넘치는 아내 엠마에 대한 지독한 편집증세로 결국 이혼한 안토니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녀를 스토킹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의 무엇보다 소중한 자식들인 발렌티나와 케빈마저 빼앗겨 버린다. 그에 대한 증오를 자신의 장모인 올림피아에게 맹렬하게 내뿜는 안토니오. ‘저러다 일내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한편 그런 안토니오를 수호천사로 생각하는 성공한 변호사이자 잘 나가는 정치인 엘리오 피오라반티와 그의 아내 마야 그리고 그들의 사랑스러운 딸 카밀라가 있다. 아, 그들의 삶에 잉여물처럼 따라 붙은 전처에게서 낳은 아들 제로/아리스가 있다. 세속적 성공과 물질적 풍요 모두를 갖추고 있는 피오라반티 패밀리는 부오노코레네들에 비하면 훨씬 행복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왜 마추코는 이렇게 대조적인 가족들을 소설에 배치했을까. 그건 아마도 너무나 상반되는 이들을 배치함으로써 생기는 리얼리즘의 극대화를 위한 노림수가 아니었을까.

안토니오의 딸 발렌티나는 한창 발랄한 십대소녀로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물질적 결핍으로 고통 받고 있다. 물론 그건 엠마와 케빈 역시 마찬가지다. 불타는 사랑만으로 결혼했던 엠마는 안토니오와의 재결합을 원하지 않는다. 거의 의처증 수준에까지 다다른 안토니오는 증오로 똘똘 뭉친 채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그런 그가 국회의원인 엘리오를 경호하고 있는 경찰이자 서민들의 영웅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훌륭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엘리오의 젊은 부인인 마야는 어느 모로 보나, 뛰어난 재원이지만 남편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진가를 펼쳐 보이지 못한다. 어느새 30세가 된 그녀는 초조해하며, 결혼생활의 끝을 향해 달려 나간다. 그 틈사이에 비집고 들어오는 이십대 초반의 제로/아리스는 도시 게릴라 같은 삶을 살면서도, 자립하지 못하고 언제나 경제적으로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에 진절머리를 낸다.

여기에 발렌티나의 국어 선생님인 동성애자 사샤까지 등장하면 이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물군은 완벽하다. 자 이제 캐릭터들이 준비되었으니, 사건에 불을 당길 성냥 한 개비만 있으면 되는 건가? 유럽 선진국 중에서도 참 얄궂은 이탈리아 그 중에서도 로마의 거리들을 배경으로 진정한 가족애에 대한 변주곡이 느릿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어느 완벽한 하루>를 읽기는 쉽지가 않다. 우선 뉴욕이나 도쿄 같이 우리에게는 생소하기 그지없는 로마라는 배경이 그렇다. 로마 제국의 유적들이 흐르는 천년 도시 로마는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 대도시치고는 형편없이 좁아터진 미로 같은 골목길들이 상상이 가지 않는다. 판테온 옆의 가게에서 자신의 앞으로의 미래를 모른 채 하염없이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부오노코레들의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7살 난 엘리오와 마야의 딸 카밀라의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호화판 결혼식은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오히려 유혈과 폭력이 난무하는 안토니오와 엠마의 치열함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참 카밀라가 어떻게 해서 케빈에게 반하게 되었지? 어떤 부분들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어느 주인공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세밀한 묘사가 이어진다.

결말로 달려갈수록 독자들은 설마 했던 일들과 접하게 된다. 어쩌면 책을 읽으면서 그 일만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일이 벌어지길 바라지만 작가는 독자들이 가진 일말의 희망마저 산산이 부숴 버린다. 그리고 모두가 끝이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너무 작아서 후하고 숨을 내쉬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려 놓는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다루고 있는 콘텐트들을 비주얼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터키 출신의 감독 페르잔 오즈페텍이 이 소설을 영화화한 <운수 좋은 날>을 보고 싶다는 거였다. 현진건의 동명의 소설 제목처럼 참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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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 핫 캘리포니아 - 미드보다 짜릿하고, 리얼 버라이어티보다 스펙터클한 미국놀이
김태희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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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한도전 작가 출신의 김태희 씨가(아, 어쩔 수 없이 탤런트 김태희를 떠올리게 되는구나!) 근 10개월간의 미국 캘리포니아 생활을 담은 <쏘 핫 캘리포니아>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공공성과 대중성 그리고 왜, 누가 책을 쓰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냉정하게 이 책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이십대의 마지막을 그냥 보낼 수 없다고 주먹 불끈 쥐고 도미해서 좌충우돌하며 보낸 어느 처자의 질풍과 노도 같은 유람기라고 할 수가 있겠다. 이건 마치 타인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글쓴이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책에서 본 것과 똑같은 사진들을 볼 수가 있었다.

역시 어느 곳을 소개하는 책에서 비주얼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작가 출신이니 얼마나 재밌게 이야기를 풀어가겠는가. 책의 재미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김태희 씨는 솔직하다. 그녀는 왜 미국에 갔을까? 그것도 50개나 되는 제 각각 다른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주들 중에서 캘리포니아일까? 그건 바로 캘리포니아만큼 놀기 좋고, 오픈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넘쳐 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UCLA 부속 어학원에서 짧은 영어 배우기를 마친 후에, 열심히 놀러 다닌다. 우선 기동성을 위해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구입한다. 그것도 자기가 캘리 체류기간 동안 쓰려고 준비해간 돈의 2/3나 되는 돈을 사용해서. 그 다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제이가 하는 파티에 가기 위해 6~7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샌프란시스코로 달려간다. 사실 난 그들이 하는 파티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그렇게까지 하면서 놀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우스 파티며 할로윈 페스티벌 등 미국 하위문화를 관통하는 ‘해프닝’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 주기도 한다. 태양이 작렬하는 캘리 바닷가에서 태닝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알게 된 친구들과 즐겁게 보낸 시간들이 주르르 나열된다. 크리스마스 즈음해서는 친구들을 엮어서 라스베거스로 로드트립을 떠나기도 한다. 겁나 싸게 하는 쇼핑 또한 빠질 수가 없는 아이템이다. 그렇게 저렇게 책을 읽으면서, 왜 내가 이 책을 이렇게 읽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그냥 재밌으니까.

색다른 체험이 대해 재밌게 보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주제 의식의 결여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방인으로 미국 사회의 특정한 단면을 보는 시선 그것도 부촌이라는 웨스트우드에 살면서 미니 쿠퍼를 타고 다니는 여피 스타일이 미국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고유가로 인해 즐겨 마시던 스타벅스 커피마저 던킨으로 바꾼다고 하던데, 이방인에게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뭐 글쓴이가 놀러 갔으니, 최선을 다해서 노는데 집중했다라고 말하면 또 할 말 없지만 말이다.

지난해 초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의 중산층이 붕괴하고, 그 어느 때보다 홈리스들이 급증을 하고 멀쩡한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들이 넘쳐흐르는 미국의 현실보다 그녀가 그려내는 디즈니의 판타지 같은 미국의 모습이 전부라고 이 책을 보는 이들이 생각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 분명 미국에 있었을 텐데 이런 커다란 정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하우스파티 하시느라 시간이 없으셨나 보다.

아, 그리고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다. 작년 3월 달에 캘리에 가면서 6개월짜리 관광 비자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떻게 12월달까지 체류할 수가 있었을까. 김태희 씨의 신변잡기성 글을 보면서, 나도 한 일년 정도 놀러 다른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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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달을 쫓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4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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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토끼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행 가방을 가진 여인이 서 있는 책 표지를 보면서 과연 이번에는 온다 리쿠 아줌마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낼지 궁금했다. 사람의 키보다 훨씬 커 보이는 토끼의 심상치 않은 시선이 느껴졌다. 토끼의 귀 옆으로 보이는 달은 제목에서 말하는 그 “한낮”의 달일까? 온통 머릿속에는 궁금증을 한가득 안고 책을 열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도쿄에 사는 나(시즈카)는 이복오빠인 겐고의 애인인 유카리의 제안으로 나라에서 연락이 두절된 겐고를 찾아 나서게 된다. 거의 대면이 없던 유카리의 거침없는 행보에 소극적인 인생을 살던 시즈카는 불안하면서도 한편 기대감으로 설레는 나라와 아스카의 유적들을 둘러보는 리프레시 휴가에 나선다. 이 여행길 도중에 밝혀지는 그네들의 삶의 비밀들을 작가는 자전적으로 보이는 이야기틀을 통해 술술 풀어낸다.

문득 책을 읽다가 왜 온다 리쿠는 나라를 책의 배경으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는 교토 이전에 일본 국가의 시초를 닦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수년 전에 가본 나라에 대한 나의 인상은 도다이 사의 엄청나게 큰 불상, 나라공원과 그 주변의 민가들에까지 어슬렁거리며 사슴 과자를 덥석 덥석 받아먹는 덩치 큰 사슴 그리고 호류 사 정도?

책의 진도가 나가면서, 나의 이런 의문들은 슬슬 풀리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인 나(시즈카), 겐고, 유카리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다에코의 과거로 작가가 배열한 기억들, 사진, 수첩, 운전면허증 등의 단서를 통해 서로 엇갈리는 관계들 그리고 애틋한 가족애 보다는 소외된 유년시절의 추억의 편린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각 장의 말미에 겐고가 수집한 것으로 보이는 짧은 동화나 민담들은 그런 이들의 관계를 해석하는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달 토끼> 이야기는 겐고, 유카리 그리고 다에코의 20년 애증에 얽힌 이야기들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

온다 리쿠는 낯선 이와 함께 하는 기묘한 여행길에 나선 시즈카의 불안정한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작가의 심리묘사에 상당 부분 공감할 수가 있었다. 여행에 대한 기대와 또 한편으로는 잘 알지 못하는 이와 여행길에 나서는 불안감, 하긴 글의 하이라이트는 이들의 여행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극적인 반전이지만 말이다.

다양한 부분의 글을 발표하는 온다 리쿠 아줌마의 다른 책들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겠지만, <한낮의 달을 쫓다>는 지극히 일본적인 배경인 나라와 아스카를 바탕으로 해서 이혼을 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여인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작가의 소설 작법이 뛰어나서인지 어쩐지 자꾸만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소설의 주인공 시즈카와 함께 나라를 여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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