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에이지 3:공룡시대 - Ice Age 3: Dawn of the Dinosaur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개인적으로 3D 애니메이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한 번 만들어 본 경험 탓일까? 물론 거의 습작이긴 했지만 모델링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델에 애니메이션을 주고 렌더링 그리고 포스트프로덕션 등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스토리도 만만치 않았지 아마?

20세기 폭스 사에서 꾸준하게 나오고 있는 <아이스 에이지>(빙하시대) 3편이 나왔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는데, 부제에 달린 것처럼 공룡이 나온단다. 아이들에게 공룡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이 왜 그렇게 매력적인 걸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여튼 대단한 시리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다람쥐 스크랫의 에피소드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도토리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하게 예쁜 날다람쥐 스크레티와 도토리를 두고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귀여운 녀석들이 아웅다웅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란 정말!

이번에도 역시 매니와 엘리 맘모스 부부와 우리의 말썽꾸러기이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수다꾼 나무늘보 시드, 사납지만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 호랑이 디에고,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주머니쥐 크래쉬와 에디 그리고 송곳니가 아주 인상적인 다람쥐 스크랫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아이스 에이지>를 빛내 주었던 애니메이션 스타들이 총출동한다.

1편과 2편은 하도 오래 전에 봐서 기억이 잘 나는데, 3편에서의 키워드를 골라 보라고 한다면 아마 가족애와 역시나 진한 우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출산을 앞둔 엘리와 매니 부부는 태어날 주니어를 위해 놀이동산도 준비하고 부모가 될 준비에 분주하다. 너무나 안락하고 평화롭지만 따분한 삶에 지친 디에고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떠난다는 선언을 한다. 한편 나무늘보 시드는 우연한 기회에 알 세 개를 구하게 되고 애지중지하며 친구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기도 부모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그런데 그 알의 주인이 누군지 아나? 바로 티라노사우르스(이하 티렉스로 호칭)다! 자기 자식들을(?) 잃은 엄마 티렉스는 분노에 차서 시드네 마을에 들어선다. 새끼 티렉스들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결국 시드마저 엄마 티렉스에게 잡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자, 이제 시드의 친구들이 행동에 나설 타이밍이 아니던가. 위험천만한 정글을 지나, 죽음의 계곡과 용암폭포를 거쳐 말썽쟁이 시드를 찾아 나선다. 점점 더 진정한 우정이 휘발해 버리는 세상에 역시 관계와 우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20세기 폭스 사는 친절하게도 알려 주고 있다. 그런 우정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영화로라도 대리만족하라는 계언일까? 





항상 시리즈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에서 이번에도 역시 빠지지 않고 멋들어진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건 바로 캡틴 잭 스패로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의 외눈박이 족제비 벅이다. 영국 출신 배우 사이먼 페그가 보이스를 맡아 영국식 악센트로 다른 녀석들에 비해 훨씬 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하 공룡세계를 휘잡고 있는 알비노 수코미무스 “루디”에게 오른쪽 눈을 잃는 대신 녀석의 이빨을 하나 얻어 칼로 삼아 가지고 다니는 외로운 캐릭터다. 매니와 디에고 일행을 식충식물로부터 구해내고, 길라잡이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그야말로 감초 같은 녀석이다. 물론 말미에 시드 구출에 있어서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애니메이션 영화들은 하나 같이 교훈적인 내용들을 필히 담고 있다. 정상적인 가족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시드와 디에고 같은) 외톨이들도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두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3D 애니메이션 기법의 발전은 하루가 다르게 놀라워져서, 이젠 정말 실사 영화는 저리가라할 정도의 디테일까지도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보통 동물들의 털 묘사가 참 어려웠었는데, 컴퓨터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을 장면에서마다 느낄 수가 있다. 리플렉션과 그림자 같은건 두말할 것도 없다.

확실히 좋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멋들어진 구조를 제대로 갖춘 스토리라인의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아이스 에이지> 3탄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전후로 해서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이야기 구조가 절로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가득 차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재밌으면서도 멋진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첫 번째로 스크랫과 섹시 날다람쥐 스크레티가 도토리를 사이에 두고 격렬한 탱고를 추는 장면 하나, 두 번째로는 족제비 벅이 크래쉬와 에디를 데리고 익룡을 잡아채서 시드 구조에 나서는 공중전 장면이다. 지난 2탄에서 수중전의 묘미를 보여 주었다면 이번 3탄에서는 업그레이드된 공중전의 재미가 쏠쏠치 않다.

촌철살인의 유머로 가득 무장한 <아이스 에이지>의 빙하시대를 보면서 이 무더운 여름날을 보내는건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 고미숙의 유쾌한 임꺽정 읽기
고미숙 지음 / 사계절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란 소설 있다는 것을 내가 처음 들었던 건 대학 교양국어시간이었다. 군사독재의 서슬 시퍼런 학창시절을 보냈던 국문과 교수님이, 당시 금서였던 <임꺽정> 일일이 손으로 필사해 가면서 읽으셨다던 그 전설 속의 소설 <임꺽정>! 정말 대단한 포스를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새로운 천년에 고전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고미숙 작가가 쓴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을 통해 비로소 소설 <임꺽정>과 만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임꺽정>이 미완의 대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어 대수랴, 책의 어느 부분에선가 읽은 것처럼 때로는 조금은 무식하게 나의 존재와 세계의 간극을 좁혀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의 인물 임꺽정에 대한 정보는 조선 중기 무렵 황해도 출신의 의적으로(책을 읽으면서 임꺽정이 단 한 번도 의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정에 반역한 숭악한 도당이라는 정도라고 할까. 하지만 고미숙 작가는 아주 기발하면서도 맛깔나는 글맛으로 내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들을 여지없이 타파해 주었다.

우리의 고전 인물에 대한 무척이나 포스트모던스러운 접근법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난 여전히 소설 <임꺽정>을 읽어 보지 않은 터라 역시나 작가의 주해가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의 임꺽정론에 대해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한다. 사실은 사실일 테니까.

쇠백정 출신의 임꺽정이 어떻게 해서 화적패거리의 두목이 되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얼개를 비롯해서, 그 주변에 몰려드는 7두령들과 엄청난 수의 까메오들, 게다가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소설의 곳곳에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에 대한 암시와 복선을 묻어둔 벽초 선생의 작법에 대해 얼추나마 되짚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백미는 소설 <임꺽정>에 대한 작가의 유쾌한 해석이었다. 어떤 텍스트를 이렇게 재밌게 풀어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어느 순간 한 없이 부러워졌다. 게다가 타인의 텍스트 분석만으로도 밥벌이(책 쓰기?)를 할 수 있다니 놀랍다!

모두 7장으로 이루어진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에서 작가는 사실상 무위도식하고 노는 이들의 그것을 21세기 한국의 현실에 대입하고 있다. 넘쳐나는 백수일반,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마이너들의 애환에 대한 대안으로 아주 획기적이면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놓는다. <임꺽정>을 관통하고 있는 우정과 의리로 우리 백수친구들을 구제하잔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다,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작가의 주장이다.

물론 전적으로 이해가 되는 주장은 아니었지만 상당 부분, 공명할 수가 있었다. 사실 산업과 근대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진 핵가족 시스템은 더 이상 현대사회의 고독과 소외의 주범이 아닐까? 왜 우리는 우리가 진정 하고 싶은 말들을 우리 친구들에게 하지 못하고, 정신과 의사에게나 가서 하게 된 걸까?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개인화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는건 아닌지 하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주제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이 책의 주요 키워드 중의 하나는 바로 “유쾌”가 아니었던가. 특히나 4장의 <사랑과 성>, 5장의 <여성>의 서사는 압권이었다. 꺽정이네들의 우악스러워 보이는 애정행각을 읽으면서 킬킬거리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정말 유머의 유자로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제목이 바로 떠오르는 임꺽정 속의 인물들의 복수론 역시 주목할 만하다. 아울러 꺽정이 패거리들의 행동의 원천으로 꼽히는 자존심/자부심에 대해 해부 역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큰 보람 중의 하나는 내 삶의 지평의 확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고미숙 작가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은 그런 면에 있어서 참 많은 도움이 된 책이다. 그나저나 말이 필요 없다, 벽초 선생의 <임꺽정>을 당장에라도 읽어야겠다. 아직도 안 읽고 뭘 했는지, 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테오란 작가의 이름은 처음으로 들어본 게 어언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어느 볼리비아 여행기에서였다. 물론 아직도 읽지 않았고, 다만 서점에서 본 그 책의 제본을 아주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주 인상적인 제목의 책이 나와서 살펴보니 작가의 이름이 테오란다. 바로 그 작가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시선을 끌만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난 아쉽게도 이미 김영희 PD의 책을 통해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근처의 볼더스 비치에 펭귄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새로울 게 없었지만 그 제목은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6년 나온 테오의 첫 에세이집을 재출간한 것이다. 아마 싸이월드를 통해서 포스팅을 했는지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사실 비주얼 자료들은 책보다도 온라인 포스팅이 훨씬 더 넉넉해 보였다.

문득 궁금한 게 그는 왜 다른 나라도 아니고 아프리카로 갔을까?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프리카적이지 않을 것 같은 도시 케이프타운에 잠시 동안 둥지를 틀었을까. 하지만 에세이 내내 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아서 그 배경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냥 한국에서 삶이 지루하고 따분해서 정말 낯선 곳에 가서 새로운 출발을 꿈꾸었을까? 아니면 지독한 실연을 당해서 아프리카로? 별별 상상을 다해본다.

우선 펭귄 한 마리 그리고 제목 외에는 모두 하얀 책으로 처리한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어디서고 쉽게 펴볼 수 있는 스타일의 아담 사이즈도. 이거 너무 좋은 점만 들이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역시 펭귄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을 하는군. 무엇보다 초반에 등장하는 랑가방 비치 레스토랑 이야기가 나의 미각과 미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무언가가 들어간 홍합 냄비를 마구 휘젓는 장면이, 스튜를 맛보는 그들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허브를 발라 노릇하게 구워진 랍스터 브라이를 보자니 절로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이거 여행에세이야 아니면, 쿠킹북이야!

케이프타운 근처에 있는 일종의 모래사막 아틀란티스 샌듄에서 사막 보딩을 즐기고, 호주의 에어즈락을 떠올리게 하는 팔락 마운틴을 오르는 테오의 모습이 마냥 부러워지는 순간들이었다. 여행이 내게로 오면 난 그냥 내게 매어 있는 것들을 단칼에 잘라 버리고 언제라도 떠날 수가 있을까? 아마 그러지 못하겠지. 그래서 이렇게 타인의 여행 에세이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하는 거겠지. 안타깝다 안타까워.

핫베이에서 바로 잡은 참치 맛은 과연 어떨까? 정말 먹어 보지 않았으면 말을 할 수가 없겠지. 사자왕 쟈카의 나라 크루거를 찾아 빅 파이브를 찾는 사파리에 나서기도 했다고. 높이 450m나 되는 블루크랑스에서의 번지 점프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테오의 말대로 내 돈까지 내가면서? 절로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사람 사는 맛이 푹푹 배어난다는 점이다. 테오는 케이프타운 변두리의 그 위험하다는 빈민가 하라레에서 700원 짜리 귤사기사건을 경험하기도 하고, 또 다시 그 동네를 찾아 아이들과 어울려 축구공을 차고, 오렌지를 까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고서는 힘든 일이겠지. 대서양과 인도양을 가르는 희망봉처럼 그렇게 사람에 대한 희망이야말로 그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테오의 책에는 참 푸른 하늘이 많이 나온다. 그 푸른 하늘을 보고만 있어도 케이프타운에 절반 정도 다가선 기분이 든다. 참 그나저나 <소금사막>은 언제 읽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먼저 고백할게 하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놓치고 있었다. 그 낱말은 바로 ‘철학’이었다. 책 표지에서부터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이라는 말이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그것도 다 읽고 나서, 책날개 맨 끝에 있는 출판사의 철학의 재발견 시리즈 제1탄이라는 말이 눈에 꽂혔다.

저자인 피터 케이브의 경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그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인터넷이 우리가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들을 쏟아내는 이 마당에, 의외로 그에 대한 정보들의 거의 전무했다. 나이도, 국적도(영국인인가 호주인인가?) 알 수가 없었다. 지난 20년간 저널리스트로 주요 사건의 현장들을 커버했다는 점 정도가 내가 알 수 있는 그의 경력의 전부였다.

어쨌든 피터 케이브는 무척이나 형이상학적이고 고차원적인 철학적 주제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들에 접목을 시도한다. 이 책에는 모두 33개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는데, 역시 책의 타이틀인 <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가장 먼저 읽고, 다 읽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었다. 피터 케이브가 다루는 주제들이 심오해서인지, 아니면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 자신이 철학적 담론들을 받아들일 역량이 되지 않아서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이 쉽지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일 수박에.

작가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먹을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을 했을 때와 같은 극한 상황에서 이미 죽은 사람들을 먹고 생존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은 용납이 되지만(이것도 의문이긴 하지만), 식도락을 목표로 해서 식인풍습을 즐기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다른 호모 사피엔스들을 존중을 하고, 그들의 신체에 대해서도 인간이기 때문에 존경을 하기 마련이다. 자발적인 시신 공여가 있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측면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 이슈였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중의 하나는 말미에 서로 연관되는 주제들의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차례차례 읽을 필요는 없다. 화살표대로 점프를 해서 읽게 되더라도 책 읽는데 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시 한 번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했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것도 역설(패러독스)이라고? 피터 케이브가 이 책에서 내내 펼쳐 보이는 언어의 유희에 대한 패러디라고 해두자.

11장에 나오는 “케세라세라”(될대로 되라) 주의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렇지 않은 작가의 주장을 들어 보자.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는 지극히 숙명론적 주장이 등장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듣기만 해도 무척이나 숙명론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하지만 피터 케이브는 이것이 우리가 어떤 일을 했을 때를 상정하지 않은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단순한 인과관계를 설정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논증을 펼칠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잘 모른다. 아니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게 사실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참으로 비트게슈타인을 사랑하는지 그에 대한 언급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론 말미에 등장하는 친절한 레퍼런스 부분에서도 어김없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15장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만, 피터 케이브식 접근은 또 색다르다. 물론 베짱이가 겨울을 대비하지 않고, 여름 내내 놀아서 결국에 가서는 개미에게 구걸을 하게 된다는 지극히 교훈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개미는 단순하게 겨울에 잘먹고 잘 지내기 위해 그 뜨거운 여름 내내 그렇게 일만 하면서 지냈단 말인가. 반면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노래 부르고 놀고먹은 베짱이의 삶의 질이 개미의 그것보다 우월한건 아닐까? 언제나 비가 올 때만을 대비해서 사는 삶이 과연 멋진 삶일까라는 질문과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쉬운 이야기가 피터 케이브의 머릿속에서는 무지 복잡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22장의 <생활방식의 충돌>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이 일찍이 주장했던 위해원칙(harm principle)이 무척이나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그런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타인에게 종교적이거나 개인적 차이에 의해 위해를 가할 수가 있다는 주장이다. 어렵다, 어려워.

그런데 이 책의 진짜 비밀은 말미에 실린 레퍼런스 부록에 있다. 작가가 글을 쓰면서 여기저기서 참고하고, 발췌한 내용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는 부록을 꼭 잊지 말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소개가 되지 않은 책들이 많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서 작가가 이 글을 짓게 되었는지 그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지금이라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들을 간과할게 아니라, 철학적 시선을 가지고 대해보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물론 작가의 고백대로, 나 자신의 즐거움이 타인의 고통도 있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항설백물어 -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7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금정 옮김 / 비채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자못 낯설다. 항설백물어(巷說百物語)라, 책의 표지에는 항간에 떠도는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들이라고 적혀 있다. 작가는 일본 출신 교고쿠 나쓰히코, 괴담과 기이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유명한 작가라고 한다. 역시 무더운 여름날에는 오싹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는 기담집도 좋겠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 참 그전에 이 소설의 애니메이션 버전이 있다는 말을 듣고서 애니메이션을 구해서 보기 시작했다. 다른 책읽기와는 다른 색다른 맛이 있었다. 우선 애니메이션을 한 편 보고 나서, 그에 해당하는 에피소들을 차례로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니메이션은 이야기의 비주얼화가 뛰어나서 나중에 책을 읽는데 있어서 아주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역시 25분 남짓한 애니메이션으로는 책이 주는 풍부한 상상력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책의 완벽한 승리였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는 모두 해서 7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에도 교바시 출신의 괴담수집가 곰곰궁리 야마오카 모모스케, 부적팔이 어행사 마타이치, 미모의 인형술사 오긴 등의 캐릭터의 시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들 캐릭터들의 정체가 좀 더 모호하게 묘사가 되면서 일본 전국을 떠돌면서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 세계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신군(神君)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의 패권을 차지한 에도 시대가 시대적 배경이다. 서구세계에서는 르네상스기를 거쳐 과학적 사고와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지만, 전국시대 이후의 일본은 여전히 귀신과 요괴 같은 신화적 요소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교고쿠 나쓰히코는 탐욕과 질투 같은 인간 본연의 내면세계를 적나라하게 파고든다. 첫 번째 에피소드 <아즈키아라이>(팥 씻김이)에서는 어느 상인의 후계자 살인에 관계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조금은 모자라지만 됫박의 팥 알갱이를 정확하게 맞춰내는 후계자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된 살해 사건이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다.

소설에서는 타고난 모사꾼이자 소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마타이치와 그의 일당이 의뢰를 받아 예의 범인을 응징한다. 그들의 응징은 복수의 의미를 뛰어 넘어 인간의 도리를 저버린 자, 혹은 천륜을 거스르는 악당들을 상대로 한다. 글쟁이 모모스케는 항상 그들을 돕거나 하면서, 마지막 장에 가서 마타이치들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사건의 전개와 연유를 알려준다. 친절하시기도 하셔라.

매 에피소드마다 에도 시대 화가인 다케하라 슈운센의 <회본백물어(繪本百物語)>에 등장하는 그림들을 하나씩 게재하고 있다. 위의 책은 교고쿠 나쓰히코의 <항설백물어>의 모티브가 된 괴담집이라고 하는데, 각각의 그림들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들에 대한 실마리라고나 할까. 책을 읽으면서도 몇 번씩이고, 다시 맨 앞 장으로 돌아가서 그 그림들을 살펴보곤 했었다.

개인적으로 사무라이 이야기들을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세 번째 에피소드인 <마이쿠비>(춤추는 목)를 아주 재밌게 읽었다. 동네에서 만행을 일삼는 야수 같은 악당,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죽이는 살인귀 그리고 썩어 빠진 관리를 한 방에 처리하는 마타이치들의 활약이 통쾌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편으론 여전히 신분제 사회에 얽매여 있던 일본의 시대상이 엿보이기도 했다.

작가의 서술 방법 중에서, 대화를 하는데 한 쪽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곧잘 등장을 한다. 아마 모모스케의 질문일텐데, 질문들은 모두 빠지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대답만을 기술하고 있다. 물론 독자들은 이야기꾼의 대답을 통해 묻는 이의 질문을 유추해 볼 수가 있는데 요런 아이디어는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맨 마지막 에피소드인 <가타비라가쓰지>에서는 삶과 아름다움의 무상함을 조금은 엽기적인 이야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어느 사무라이의 비정상적인 애정행각이 옛 고사와 오버랩이 되는 가운데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조금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항설백물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고른다면 어떤게 될까? 난 “신심”과 “인과응보”라는 낱말을 꼽고 싶다. 오만가지 잡신과 요괴들이 횡행하는 일본에 기이한 이야기들이 판을 치는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곳곳에서 신심을 강조하는 그네들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다만 그 구체적 대상들은 살짝 빼놓은 채 말이다. 다음으로 인간답게 살라는 교훈이 배어있는 인과응보를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마타이치들은 실천에 옮긴다. 물론 폭력적인 방법 대신 아주 교묘한 방법을 사용해서 말이다.

사실 5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놀랐지만 책을 읽다 보니 전혀 그런 볼륨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속도감과 캐릭터 묘사 그리고 집중력이 존재하고 있었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정교하지 짝이 없다. 모모스케를 내세워, 독자들로 하여금 이야기에 빠져 들게 하는 기술부터 시작해서 끝에 가서 마타이치의 설명으로 매조지하는 기법이 여느 추리소설 버금가는 재미를 부여해 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이 책의 조속한 출간을 애타게 기다려 왔는지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도 어느새 교고쿠 나쓰히코의 팬이 되어 버린 모양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속항설백물어> 그리고 <후항설백물어>가 출간예정이라는데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