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 다빈치 art 4
앙리 페뤼쇼 지음, 강경 옮김 / 다빈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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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드가와 반 고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번에 다빈치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로트렉, 몽마르트르의 빨간 풍차>를 읽다 보니 그 누구보다 파리의 몽마르트르의 본질적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로트렉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들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누군가가 오래 전에 절판된 구판본을 구한다는 포스팅을 보고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다. 아마 재출간 요청이 꾸준하게 들어와서인지 다빈치 출판사에서는 올해 다시 이 책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서점에 달려가서 이 책을 구입했다. 하지만 바로 읽지는 못하고, 두 달 만에야 비로소 다 읽었다.

프랑스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툴루즈 백작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앙리 마리 레몽 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이하 툴루즈 로르렉으로 부르겠다)는 남프랑스의 알비에서 1864년에 태어났다. 십자군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툴루즈 가문의 후예인 로트렉은, 근친결혼의 후유증 탓인지 8살과 9살 때 각각 양쪽 다리를 다치면서 152cm에서 성장이 멈추고 만다. 이런 장애가 로트렉의 남은 생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모두에 대해서.

어려서부터 예술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툴루즈 가문의 영향으로 인해, 어린 로트렉 역시 그림에 소질을 보이기 시작한다. 허약한 신체를 가지고 어린 앙리를 위해 아버지 알퐁스 백작은 아들을 승마 연습장에 데리고 다녔다. 앙리는 특히 말에 열광을 했는데, 성인이 돼서도 서커스와 말에 대한 그림들을 계속적으로 그렸다. 아울러 알퐁스 백작은 아들을 동물화가로 유명한 르네 프랭스토의 아틀리에에 데리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로트렉은 자신의 예술적 감각을 개발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고 후에, 파리로 거처를 옮긴 로트렉은 당시 환락가의 대명사로 불리던 몽마르트르에서 비로소 자신의 영혼을 뉘일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게 된다. 내가 찾았던 파리의 몽마르트르는 나를 포함한 세계 각처에서 모인 관광객들에게 점령된 관광지였다. 하지만 19세기말의 몽마르트르는 화가 툴루즈 로트렉에게 환락과 쾌락의 공간인 동시에, 자신의 작품 활동에 있어 마르지 않는 소재공급처였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죽음으로 인도한 폭음하는 습관과 찬사와 비난을 한꺼번에 안겨준 무희, 가수 그리고 창녀들의 이미지를 바로 몽마르트르에서 찾게 된다. 정상적인 사랑을 구가할 수 없었던 그는, 밑바닥 인생들로부터 불완전하나마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신체적 장애로 인해 세상의 편견에 시달려야 했던 로트렉은,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유머로 항상 주변에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평생지기였던 루이 파스칼과 모리스 주아양을 비롯해서, 몽마르트르 주점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아리스티드 브뤼앙 그리고 로트렉의 스승이었던 페르낭 코르몽의 아틀리에에서 만난 반 고흐가 그들이다. 그러니까 반 고흐와는 같은 스승 아래서 동문수학하던 동료였던 것이다.

한편 로트렉은 19세기말 프랑스 화단에 지배적이었던 자연주의적 사조보다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몽마르트르의 인물들의 묘사에 더 치중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일본 우키요에와 자신이 평생 존경하던 드가의 영향에 자신의 특이성이 더해지면서 화가로서의 일가를 이루게 된다. 평생 단 한 점의 그림 밖에는 팔지 못했던 반 고흐와는 달리 로트렉은 일반 대중의 상업적 코드와도 맞아 떨어지는 화가였다.

로트렉은 몽마르트르의 즐비한 카페들이 포스터는 물론이고, 유명한 가수들의 채색 석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무궁무진한 작품세계를 선보여 주었다. 그의 작품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름다움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그는 아름다움조차도, 왜곡과 변형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시도했다. 이런 점에서 포스터나 판화집을 주문했던 고객들은 점점 그를 외면하기 시작했지만, 잔 아브릴이나 이베트 길베르 같은 이들은 로트렉의 진가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와 진정한 소통의 단계에까지 도달하기도 한다.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자신의 예술의 정점에 서 있던 로트렉에게 뭍 여성들과 무분별한 관계와 폭음으로 인한 알코올 중독이 그의 정신세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바로 이 장면에서 남프랑스 아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동료 반 고흐의 말년이 떠올랐다. 결국 1899년 환각과 착란이 반복되자 어머니 아델 백작부인과 사촌인 타피에 박사는 로트렉을 마드리드가의 정신병자를 위한 요양원에 입소시키게 된다. 이후 화가로서 로트렉의 경력은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반 고흐와 같은 37살의 나이로 로트렉은 자신에게 쾌락과 예술혼을 불어 넣어 주었던 이 지구별을 떠나고 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트렉의 삶은 참 애절함으로 점철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작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은 어려서 당한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한 장애로 상쇄되면서 비록 자유를 얻기는 했지만, 평생 동안 자신을 괴롭힌 장애와 더불어 살아야만 했다. 어쩌면 그런 장애가 그의 불타는 예술혼의 원동력이 되지는 않았을까? 장애로 인한 추레한 외모 덕분에, 여성들의 끝없는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진정한 사랑과는 항상 동떨어진 삶이 오히려 로트렉이 예술에 정진하도록 인도하지는 않았을까?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예술을 만날 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로트렉의 작품뿐만 아니라,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작가들의 그림들 그리고 다양한 실제 사진들을 통해 로트렉을 재발견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기회였다. 언젠가 될진 모르겠지만, 로트렉의 활동무대였던 몽마르트르에 가서 ‘빨간풍차’를 보게 된다면 세기말의 로트렉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꽃이 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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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릴린 - 이지민 장편소설
이지민 지음 / 그책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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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세기의 스타 마릴린 먼로와 처음으로 만난건 아주 오래 전, 주말의 명화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1959)를 통해서였다. 어설픈 남장을 한 토니 커티스와 멍청한 금발(dumb blonde) 역할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해내는 금발의 마릴린 먼로가 나오는 그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무도 완벽하지 않아.”(Nobody's perfect.) 그리고 그녀가 한국전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2월 한국을 찾았다는 사실은 아주 오래 뒤에 알게 됐다.

<나와 마릴린>의 작가 이지민 씨는 두 장의 사진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유엔군과 북한 포로 사이에서 통역을 하던 여자 통역사의 사진과 한국을 방문한 마릴린 먼로의 사진이 그것이었다. 분명 한국말을 하지 못할 마릴린에게 통역사가 필요했을 것이고, 가능하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제격이었을 것이다. 아마 이런 식으로 작가는 캐릭터 개발을 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게다가 해방 전후의 공간에, 전쟁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지원해 주고 있으니 정말 입체적이면서도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주인공을 만들어내기에 용이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그렇게 탄생한 ‘나’의 이름은 앨리스 J. Kim, 그녀의 한국이름은 김애순이다. 확실한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있었을 법한 인물을 하나 내세운 다음, 나머지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고전적인 작법이 동원된다. 소설의 시작은 한국전에 참전한 마릴린 먼로의 포스터를 애절하게 간구하는 어느 미군 G.I.의 편지로 시작된다.

당시 이미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이 되어 버린 야구스타 조 디마지오와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차 일본에 와 있던 마릴린 먼로. 그녀가 미군 위문 협회(USO)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한다. 주인공 앨리스는 미군 부대의 타이피스트로 일하고 있지만, 전쟁 중의 트라우마로 인한 발작을 하곤 해서 이웃으로부터 양공주나 미친 여자로 간주되고 있다.

이지민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플래시백 기법으로 도대체 과거의 앨리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하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미 식민지시대 신여성답게 일본유학을 하며 미술을 배운 주인공은 해방 후 귀국해서 일제통치하의 한국에서 관료를 지낸 삼촌의 빽으로 취업하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앨리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적인 첫 사랑과 그에 따른 배신 그리고 음모의 소용돌이가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마릴린 먼로의 깜짝방문에 열광하는 미군들의 발작적인 함성이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는지, 근래 아이돌 스타들의 팬덤은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하긴 장진호전투와 흥남철수 같이 처절한 사투를 경험한 이들에게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할리우드 스타의 위문공연은 만지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전쟁과 학살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것이야말로 존재적 가치가 있다는 신념으로 앨리스는 자신에게 닥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오지만,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바로 그 불행의 클라이맥스에서, 앨리스는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와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접점을 이룬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움으로 구원을 얻는다.

예전에 영화포스터를 보면, 그 영화에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의 대부분을 읽어낼 수 있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그 논리를 책에도 적용을 하자면, 책의 표지 역시 비슷한 기능을 하지 않을까. <나와 마릴린>의 표지를 장식한 주인공 앨리스는 하룻밤 새의 고통과 번뇌로 하얗게 새어 버린 머리를 맥주로 염색을 하고 자신의 불행의 비밀을 담은 노란편지를 들고 있다. 아울러 그녀 뒤로 펼쳐지는 만다라 같은 문양들은 고뇌의 본질로 독자들을 이끌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팩션이라는 장르는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장르일진 몰라도, 작가들에게는 곤욕스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차라리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술하는 것이라면 또 몰라도, 팩트를 기반으로 해서 픽션을 가미해서 독자들을 홀릴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건 마치 거리의 마술사가 저글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너무 넘치지도, 그렇다고 해서 부족하지도 않은 중용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이야기의 동력을 유지하기란 참으로 난망한 과제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나와 마릴린>은 절묘하게 팩트와 픽션의 균형을 맞추면서, 책읽는 재미까지 있는 수작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를 찾은 당대의 슈퍼스타 마릴린 먼로가 좀 더 살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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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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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은 온통 걸들 천지처럼 보인다. 텔레비전에서는 무한걸스가, 그리고 음악계에서는 수많은 걸그룹들이 명멸을 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소설계에도 걸들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게 되니 이름하야, <닌자걸스>라고 하는 책이 나왔다. 작년 가을쯤에 청소년서적 전문 브랜드인 비룡소에서 출간된 <하이킹걸즈>라는 책으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김혜정 작가의 ‘걸스’ 시리즈 그 두 번째다.

전작에서 두 명의 소녀들과 실크로드로 독자들을 초대했던 김혜정 작가는 이번에는 언제나처럼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이 난무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고등학교로 시선을 돌린다. 아니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가운데, 다른 소재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야 하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뼈를 깎아 만든 캐릭들을 세상에 풀어 놓는다. 주인공들은 모두 17살 난 정상적 삶의 궤도에서 조금은 이탈해 있는 인물들이다. 하긴 그 정상이라는 잣대 자체가 기성세대의 것이겠지만.

어느새 불어난 체중을 감당하지 못한 채, 여전히 탤런트를 꿈꾸는 화자인 고은비/고뚱땡 혹은 릴라 불리는 ‘나’는 오늘도 오디션에 도전을 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처참하며, 그녀의 배는 여전히 ‘헝그리’하고 엄마의 극성은 하늘을 찌른다. 그녀의 친구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꽃미남 킬러 나지형,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이소울 그리고 샤랄라 공주 역할의 백혜지가 <닌자걸스>의 주인공들이다.

작가는 나(고은비)의 입을 빌려 차례로 주인공들을 등장시키면서, 그들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와 몰입을 차분하게 유도해낸다. 그리고 하이틴을 주인공으로 삼은 성장소설답게 다이내믹한 전개 속도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군더더기들은 제외하고, 내달리는 모습이 멋졌다. 다이어트, 시험에 대한 압박, 과외 등 보통 십대 청소년들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나열된다. 소설의 핵심갈등의 중심에는 모란여고 심화반인 모란반이 우뚝하게 버티고 서 있다.

대학진학율과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란반은 차별과 서열화의 상징인 동시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박탈감과 들어간 학생들에게는 상대적 우월감을 심어주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 물론 주인공 고은비에게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연기에 대한 장애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들을 옥죄는 과외를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연대의식을 고취하게 된 나머지 세 명의 소녀들은 고은비 일병 구하기에 분연히 나선다. 그만큼 동지를 아끼는 순수한 마음으로? 아니면 제각각의 꿍꿍이가 있어서? 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외치는 그 순간만큼은 절박하면서도 순수한 소망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야말로 <닌자걸스> 최고의 명장면이다. 이젠 진부해져 버린 표현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덮으면서, 왜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한 채 획일화된 교육이라는 틀에 갇혀 신음하고 있는지 그 이유가 참 궁금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부모님들까지도 일류대학병과 ‘남들이 하니까’라는 마술 같은 주문에 헤어 나올 수가 없는 걸까? 그래도 그 여린 소녀들의 세상을 향한 외침에서 작은 희망을 엿볼 수가 있었다. 그들의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작은 노력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Go, Ninja Girl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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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프로젝트
박세라 지음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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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지에서 꽤 오래 살아 봤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의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은 주기적으로 도지곤 한다. 책이나 혹은 잡지, 아니면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 매력적인 곳들을 보면 ‘아, 나도 저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석 달쯤 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만, 경제적이거나 혹은 시간적 이유로 해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런던 프로젝트>의 작가 박세라 씨는 분연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솔직히 그녀가 왜 런던에 갔는가에 대해서 분명 책의 초반에서 읽었을 텐데, 그건 다 까먹고 말미에 가서 목적이 “낭비”였다라는 낱말에 왜 이렇게 꽂혔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부럽다, 그렇게 낭비할 수 있다는 여유가.

살면서 유럽에 두 번 갔었는데, 사실 영국과 런던은 한 번도 나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왠지 대륙과 동떨어진 채 나 홀로 유로(Euro)도 거부하고 파운드화를 쓰는 고집쟁이들의 나라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런던 프로젝트>를 통해 본 바에 의하면 그런 나의 생각들이 모두 고정관념이고, 편견이었다고 자수해야할 것 같다.

작가가 그리는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은 공화제 국가인 대륙의 프랑스와 독일과는 또 다른 맛이 배어 있었다. 기품이라고나 할까? 책의 곳곳에서 여왕에 대한 이야기들과 프린세스 다이애나 그리고 왕실납품이라는 낱말들이 확실히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왕국이라는 이미지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왕을 모시고 사는 이들의 심리는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확실히 남성과는 여성 특유의 세심하면서도 주변의 사물들에 대한 빼어난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과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매주 마다 <이 주의 낭비 결산>이란 코너를 만들어서, 나라면 한 번 받아 보고 내버렸을 영수증이나 클럽이나 혹은 각종 이벤트들을 선전하는 플라이어들을 곱게 모아 찍은 사진들을 통해 자신의 ‘낭비들’(물론 긍정의 뜻이다!)로 꾸며지는 알찬 삶들을 소개한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장점으로 꼽고 싶은 점은 바로 다양성이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소통하는 가운데(물론 쇼핑도 빠지지 않는다, 아마 남자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이런저런 재밌는 에피소드들과 정말 화려하면서도 멋진 런던의 이모저모를 다룬 이미지들을 요소요소에 잘 배치해주고 있다. 특히 작가도 런던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았던 픽토그램도 빠질 수가 없다.

런던에 거주를 하면서 주말마다 바지런히 다닌 주말여행을 통해 영국 교외에 멋진 관광지와 만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휴일 마켓에 어워드 리본으로 무장하고 나가,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삶의 스케치 역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니까 순전한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비록 임시적이긴 하지만 체류자로서의 여유라고나 할까? 아마 짧은 여행을 하는 이들은 절대 짚어낼 수 없는 런던의 숨은 볼거리들과 할거리들 그리고 먹거리들의 향연이 조근조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다양성은 마치 양날의 칼처럼 책으로의 몰입을 막는 훼방꾼 같기도 하다. 왜 15주나 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패턴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아직 가보지 못하거나 경험부족으로 인한 관심도의 저하 탓일까? 작가의 마켓 입성기가 좀 더 궁금했었는데 살짝 맛보기만 보여 준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런던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영화 <노팅 힐>과 <러브 액츄얼리>이 이 책과 참 궁합이 맞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면 아마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책에 나오는 것만으로 부족한 독자들이라면, 작가가 아주 친절하고 꼼꼼하게 적어 놓은 인터넷 사이트들을 직접 방문해 보는 것도 간접적으로나마 런던을 체험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세계화에는 반대하지만, 이렇게 지구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세계화라면 대찬성이다. 참 그거 아나? 영국에는 캔커피가 없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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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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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년 11월 1일의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런 간단한 질문으로 <운명의 책>은 시작된다. 가톨릭 국가 포르투갈의 축일이었던 만성절 오전 9시 30분 경에 시작된 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해일과 화재가 덮친 세계제국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고 만다. 이 사건은 그냥 인류사에 흔히 등장하는 하나의 대재앙으로 기록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니콜라스 시라디는 중세에서 근대로, 신의 세계에서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이성의 세계로의 극적 전환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리스본 대지진을 바라보고 있다.

한 때 이웃 에스파냐와 더불어 전 세계를 주름잡던 해상왕국 포르투갈 왕국은 세계 각처의 식민지로부터 무한대로 유입되는 금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노예들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이, 식민지로부터의 수탈경제에만 의존하느라 라이벌 국가들인 영국과 네덜란드처럼 안정적인 자국 산업 건설에는 미처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예수회와 보수적인 귀족들의 교권주의로 인해 계몽철학 사조가 전 유럽을 휩쓰는 동안에도 여전히 포르투갈은 중세적 시대정신을 고집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교도들인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학살하면서 국가경제를 이끌어나갈 상인과 지식인 계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유대인들이 경쟁국가인 영국과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포르투갈은 개혁추진을 위한 인적 자원들을 내쫓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네덜란드에 정착하게 된 유명한 포르투갈 출신 유대인 중의 한 명이 바로 스피노자라고 했던가.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해서 18세기 중반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의 여파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물론 인적 물적 피해는 둘째 치고, 근대 유럽 역사에서 이런 자연재해는 전무후무했다. 정치적인 고려도 한몫을 했지만 인본주의적인 차원에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포르투갈의 재난 대책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편 이런 국가적 위기를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위한 결정적 기회로 본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포르투갈의 총리로 위기극복에 앞장 선 카르발류였다.

리스본 대지진이 타락한 포르투갈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이라는 예수회 출신 사제들의 공세에 분연히 맞서, 자연재해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카르발류는 대대적인 리스본 재건공사에 나서게 된다. 물론 그 바탕에는 신권주의에 사로잡혀 종교재판소의 무소불위한 권력이 작동하고 있던 중세적 포르투갈을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키겠다는 총리 카르발류의 의지와 국왕 주제 1세의 적극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브라질로 대변되는 식민지들로부터의 유입되는 물적 토대가 기반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고금을 망라하고, 돈 없이 되는 일이 있었던가.

물론 카르발류의 이런 개혁에 반동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수회 소속의 사제들과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구귀족들의 반대는 리스본 재건과 국가개조에 걸림돌이었다. 그 결과, 카르발류는 국왕 주제 1세로부터 부여 받은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해서 반대파들을 제압해 나가면서, 식민지에서 산출된 부를 바탕으로 근대국가 포르투갈 건설에 나서게 된다.

작가 니콜라스 시라디는 참 다양한 각도에서 리스본 대지진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인간의 구원과 사랑을 강조하는 기존의 가톨릭 신학 시스템이 1만 명에서 6만 명에 달하는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대재앙에 이성적인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아울러 당시 많은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인간의 존재가치와 낙관주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이런 대재앙을 근대국가 건설의 호기로 삼아, 근대적인 상하수도 설비와 도로망을 갖춘 새로운 리스본을 만드는 과정을 작가는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근대로의 이행에 있어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교육 분야의 개혁과 인재양성도 빠뜨리지 않고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연초에 읽었던 주제 사라마구의 <수도원의 비망록>이 바로 떠올랐다. 포르투갈의 전제군주 주앙 5세가 야심차게 건립한 마프타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발타자르와 블리문다의 러브 스토리의 배경이 바로 예의 18세기 포르투갈이지 않았던가. 이 책은 <운명의 날>에서 언급이 되지 않는다. 대신 당시 프랑스 출신의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리스본 대지진의 모티브를 따서 자신의 소설 <캉디드>에 에피소드로 사용했다고 한다. 아마 이 두 책을 읽으면, <운명의 날>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기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에 대한 작가의 뛰어난 혜안과 다양한 분야에서의 해석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는데, 아직도 쓰나미와 허리케인 카트리나 같은 자연재해들에 대한 미숙한 대처와 사후처리가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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