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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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언제나 그렇지만,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는건 즐거움이다. 지금 막 다 읽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세 번째 장편소설 <귀향> 역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재에 느와르 형식의 추리소설의 포맷이어서 그런지 그 재미가 갑절이 되었다.

올해 처음으로 만나게 된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들은 새로운 천년 들어와서 출간 붐을 탔다가 현재는 정체됐다. 그 결과, 예의 출간시기보다 뒤늦게 작가의 진가를 알고서 부랴부랴 절판된 책들을 구해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읽었던 <감상적 킬러의 고백> 그리고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모두 절판된 책들이었다. <귀향>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번에는 도서관을 이용해서 만날 수가 있었다.

세풀베다의 책을 읽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그의 글들은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다룬 소설과 흑색 소설의 두 장르로 크게 나뉘어진다고 하는데, <감상적 킬러의 고백>에 실린 두 개의 단편들이 각각의 장르에 걸친 작품이라고 한다면,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는 후자 쪽에 그리고 <귀향> 역시 흑색 소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책의 서두와 말미에 작가의 언급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귀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3제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941년, 히틀러의 나치즘과 인종차별주의에 환멸을 느낀 두 명의 경찰 한스 힐러만과 울리히 헬름은 조국을 떠나 밀항할 궁리를 한다. 때마침 그들이 경비를 서던 나치 친위대의 창고에서 63개의 금화를 훔쳐, 종적을 감춘다. 하지만 울리히 헬름은 막판에 나치 게슈타포에게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하반신 불수가 되고, 러시아군의 포로가 된다. 그리고 동독 체제 아래서 다시 비밀경찰 슈타지에게 협박과 취조를 당하지만, 자신의 동료 한스에 대해 함구하는 의리남의 모습을 지킨다.

세월은 흘러, 반세기가 지나 독일을 둘로 갈라놓았던 장벽이 걷히고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가 승리가 가시화되면서 히틀러 시절에 사라진 보물에 대한 추격이 다시 시작된다. 자, 이제 세풀베다는 주인공으로 전직 게릴라 출신의 로맨티스트 후안 벨몬테(헤밍웨이의 작품에 나오는 저명한 투우사의 이름이라고 한다)를 등장시킨다.

칠레 출신으로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망명객의 신분으로 프롤레타리아들의 계급적 갈등이 터져 나오는 곳에 어김없이 출현했던 벨몬테는 독일 함부르크 유흥가 스크립클럽의 기도로 전락해 있다. 이렇게 유능한 전사를 그냥 둘 리가 없는 세상은 한제아틱 로이즈라는 보험회사의 오스카 크라머라는 정체불명의 캐릭터를 통해 속세로 소환시킨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사라진 이븐 바투타의 금화를 찾아오라는 설정은 말이 되지 않는다. 역시 군사독재의 희생자인 연인 베로니카를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벨몬테는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그럼 이제 악당이 등장할 차례인가? 사라진 보물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로 구 동독 정보국 소속의 일단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독일 통일 이후, “중령”으로 불리는 이는 부동산 사업가로 변신해서 역시 후락한 삶을 살고 있는 프랑크 갈린스키에게 접귾해서 벨몬테와 유사한 임무를 맡긴다. 자, 이제 남아메리카의 불의 땅(티에라 델 푸에고)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잠적한 한스 힐러만, 이제는 프란츠 슈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미지의 인물을 찾는 숨막히는 질주가 시작된다.

<귀향>은 두 가지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 나치 시절 금화를 가지고 도주한 두 명의 반나치주의자들의 인생역정과, 칠레와 동독 출신 두 사나이들의 파란만장한 삶과 몰락이 중첩되고 있었다. 이 둘의 접점은 지구의 끝 “티에라 델 푸에고”, 다시 말해서 불의 땅이다. 특히 군사독재를 직접 체험한 망명객이자, 저명한 양키 작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후안 벨몬테”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페르소나로 부활하고 있다. 과거를 잊고 살지만, 자신과 과거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나오는 베로니카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로맨티스트의 단면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불의 땅, 티에라 델 푸에고는 어머니 대자연처럼 그 품에 안겨 사는 이들의 과거에 대해 관대하다. 그 어느 누구도, 지구의 끝자락에까지 와서 사는 이들에게 과거를 묻지 않는다. 모두가 이렇게 숨기고 싶어 하는 과거는 서로 상이한 캐릭터들의 접점을 유도해낸다.

한편 정치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군사독재 시절 고문과 실종이 빈번하게 자행되던 칠레의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인 시선들이 곳곳에서 읽히고 있었다. 여전히 과거사 청산이 되지 않은 이국의 땅이, 더 추악한 과거를 지닌 이들의 도피처로 이용되고 있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된다. 세풀베다가 만들어내는 소설의 들줄과 씨줄은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그 플롯의 다양성만큼은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인디아나 존스>만큼이나 재밌고 흥미진진하다.

<귀향>의 원제는 <투우사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번역되어 출간된 제목보다 확실히 원제에 더 호감이 간다. 도대체 누구의 “귀향”이란 말인가? 소설 가운데 어느 단편적인 사건에 포커스를 맞춘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역시 있는 그대로가 더 좋다. 역시 대중성을 바탕으로 해서, 속독의 재미를 빚어내는 글의 연금술사답게 장르를 넘나드는 루이스 세풀베다구나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꾸만 그의 책들이 절판의 운명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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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하루 Travel & Photo
채지형.유호종 지음 / 웅진웰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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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나, 둘, 셋……. 열다섯 까지 세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 채지형 작가와 포토그래퍼 유호종 씨가 펴낸 <어느 멋진 하루>에는 정말 세계 각국의 너무나 멋진 여행지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평소에도 여행을 좋아해서 대중적인 곳이라면 누구 못지않게 자부하지만, 이 최강의 여행 파트너들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대한민국 사람들 중에서, 남태평양의 외로운 섬 이스터에까지 가서 모아이를 보고, 중남미의 과테말라 안티구아에 가서 오리지널 과테말레 커피를 즐긴 이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말이다. 





<어느 멋진 하루>에서는 무척이나 다양하게 각국의 명승지와 여행지들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물론 이스터 섬이나 안티구아, 카파도키아 혹은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같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은 물론이고 뉴욕, 런던, 파리, 도쿄 같이 누구나 한번쯤은 가봤을 만한 대도시의 재발견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대 방랑자들의 역마살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글과 사진들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개인적으로 유호종 포토그래퍼의 사진들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일찍이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은 쓰지 않는다고 했는데, 채지형, 유호종 두 파트너들은 자신들이 가보지 않은 곳은 쓰지 않는다라는 신조로 이 멋진 곳들에 대한 체험들을 술술 풀어나간다. 다양성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반대로 깊이의 부족이 계속해서 아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더욱이 직접 가보지 않은 이들은 말할 수 없을, 포토 포인트 코너의 팁은 그만큼 그네들의 체험이 뚝뚝 묻어나는 보물 같은 정보들이었다. 유럽이고 남미고 혹은 중동을 계획하고 있다면 아마 이 책만큼 똑 부러지게 안성맞춤인 책도 없을 것 같다. 짤막짤막한 글 가운데서도 그들은 여느 관광객처럼 사진만 후딱 찍고 떠나 버리는 수박 겉핥기식 투어보다는 현지인들과 융화되고 그들의 삶을 느껴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물론 어떤 것들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여행과 사진 촬영이 직업이어서, 어느 곳에서 한 달간이나 머무를 수 있는 호사가 주어진다면 그 누가 마다하리오. 





책에서 만난 내가 이미 여행한 곳들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또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에(물론 훨씬 더 많지만) 대해서는 언젠가 꼭 한 번 가보리라 하는 다짐을 했다. 그 중에서 몇 곳을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독일 로맨틱 가도 상에 있다는 작은 마을 뤼데스하임. 2년 전에 독일을 처음으로 찾았을 때, 뮌헨과 베를린 같은 대도시만 그야말로 사진 찍고 이동 투어 식으로 경험했었다. 하지만 여행의 진수는 라인강의 진주라고 불린다는 뤼데스하임 같은 작은 마을에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특히 라인 강변에 있다는 로렐라이 동상을 보고서는 실망했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만큼 홍보의 효과가 크다는 반증이 아닐까? 실망을 하더라도 일단 보고 나서 실망하고 싶다. 





다음으로는 터키의 카파도키아가 생각난다. 터키하면 동음이의어처럼 따라 붙은 이스탄불도 역시 소개가 되지만, 터키 내륙의 카파도키아에서의 벌룬 투어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다 쿵쾅거릴 지경이다. 언젠가 한 번 기루를 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만 둔 기억이 난다. 항상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이지만 기회가 될 때 무조건 타고 보고 먹는거다. 일단 경험을 하고 나야, 나중에 평가를 할게 아닌가 말이다. ~껄 하는건 이제 그만!!! 물론 그렇게 기구를 타고 찍은 사진은 정말 어디에서도 구할 수가 없을 것 아닌가 말이다.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역시 가기 어려운 장소의 하나로 꼽히는 쿠바의 아바나 역시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까 싶다. 사회주의 국가로 우리에게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제2의 고향이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재즈 가락이 바로 떠오르는 카리브해의 아바나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상향으로 다가온다.

작년부터 가고 싶어서 몸살이 나버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그리고 세비야에 대한 소개를 볼수록 살면서 다른 곳은 몰라도 스페인에는 한 번 꼭 가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이젠 하도 많이 들어서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혀 버린 태양과 정열의 나라이자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 스페인에 혼재해 있는 이슬람 스타일의 매력적인 건축물들이 사진 밖으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당당하게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늘자 신문기사를 읽었는데 우리나라가 OECD 가입 국가 중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긴 편에 속한다고 한다. 반면, 여가활용 시간 역시 꼴지 부류라고 하던가. 당연히 노동시간이 긴 만큼 여가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건 당연지사 아닌가 말이다. 여타 선진국에 비해 휴가기간이 짧다는 핸디캡과 더불어 여전히 놀이문화에 대해 인색한 사회적 풍습 덕분에 여전히 해외여행이 쉽지 만은 않은게 작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내가 굳이 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서나마 간접경험을 하고 대리만족을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물론 자신이 직접 가서, 체험하는 것보다는 못하겠지만. 족쇄에 묶여 선뜻 문지방을 박차고 나서지 못한다면, 또 하룻밤 사이의 세계일주를 원한다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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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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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가 타히티에 갔다고? 우선 이 책 <무지개>의 작가 요시모토 바나나의 정체성은 참으로 모호하기만 하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이름은 많이 들었는데, 책으로 만나긴 이번이 처음이다. 요시모토란 이름은 분명 일본 사람일 텐데, 바나나란 필명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지상낙원이라고 하는 남태평양의 타히티라니. 참으로 기이한 장소로 작가는 독자들을 초대한다.

<무지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27살 난 미나카미 에이코는 도쿄의 타히티안 레스토랑의 플로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해변 관광지에서 자란 그녀는 아버지가 어려서 바람이 나 도망가 버리자, 어머니와 역시 홀로된 외할머니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며 생활한다. 아,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타히티에서 과거의 플래시백을 이용해서 전개된다.

어찌어찌해서 고향을 떠나 도쿄에 와서 십대 후반부터 <무지개>에서 일하게 된 에이코는 타히티의 그것을 고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레스토랑에 자신을 투영시킨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레스토랑에 격무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결국 과로로 쓰러지게 되면서, <무지개>의 오너와 점장으로부터 오너의 임시 가정부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동시에 에이코는 타히티 본섬, 모로아 섬 그리고 보라보라 섬들을 유람하며 무엇엔가 휩쓸려 버린 감정을 추스른다. 남국의 강렬한 햇살에 생각마저 멈춰버린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그녀의 이야기가 점점 궁금해진다.

이야기가 서술되는 곳은 분명 이역만리 타히티인데, 주인공의 심리는 모두 자신이 떠난 도쿄에 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유 여행이라는 명목이지만, 역시 자신의 생활 터전인 대도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걸까? 듣기만 해도 부러워지는 라구나리움에서 바닷거북과 레몬색 상어들과 함께 헤엄을 치면서도,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남태평양 바다를 삼켜 버릴 듯한 에이코의 고민과 번뇌들이 조근조근하게 펼쳐진다.

오너 집의 가정부 생활을 하면서 돌보게 된 고양이 녀석과 개 녀석에게 한껏 정이 든 에이코는 필요 이상으로 (사람을 포함한) 생물들이 사는 공간에서 불현 듯 삭막함에 사로잡히게 된다. 오너와 그의 아내의 가정불화는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심지어 곧 출산할 아이마저 오너의 아이가 아니라는 심증마저 굳혀지는 가운데, 개 녀석이 애완견 센터로 쫓겨나게 된다. 연민의 정으로 쫓겨난 개를 다시 구입한 에이코를 따라온 오너 다나카 씨와 작은 공명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타히티의 어느 호텔에서 우연히 저녁식사에 동석하게 된 가네야마 씨에게서 <무지개>의 오너와 점장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해 듣게 되는 에이코. 하지만 그네들의 이야기보다도 두 번의 결혼을 경험하게 된 가네야마 씨의 이야기가 더 그녀의 가슴을 파고든다. 세상에 많은 사랑이 존재하지만, 그 어느 사랑을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모든 존재들이 존재의 의미를 가지듯 사랑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자신이 느낀 사랑의 감정을 주체할 줄 모르는 에이코의 갈팡질팡한 심리 묘사가 타히티 섬의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어느 순간 다가온다. 시골에서 도시로 간 처녀는 보통 사람들의 소박한 근간을 잊고,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리라는 어머니의 염려가 적중했다는 사실을 과연 깨달았을까?

마스미 하라씨가 그린 일러스트는 마치 백 년 전 타히티를 찾아 원주민들의 강렬한 이미지를 서구 세계에 알렸던 폴 고갱의 그림을 닮았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일러스트들은 마치 타히티 현지인들과 흡사하면서도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이라는 주장처럼 보인다.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들이 왠지 친근하게만 느껴진다.

<무지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여행 시리즈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 말미에 작가 후기가 없었더라면 영영 몰랐을 게다. 남태평양의 작렬하는 햇살 속에서 어느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바나나의 다음번 기착지가 어디가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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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디자인 산책>을 리뷰해주세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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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베를린에서 파리로 가는 야간열차 안에서 핀란드 출신의 청년과 쿠셋을 같이 사용하게 됐다. 사실 난생 처음 보는 핀란드 사람이라 알고 싶은 것도 많아서 긴 밤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파리로 향했다. 대학에서 하키를 한다는 그 친구는 등판에 수오미(Suomi)라는 단어가 적혀 있는 티를 입고 있었는데 물어 보니 자기네 나라 말로 핀란드를 지칭한다나. 그리고 호불호가 엇갈리는 핀란드의 전 대통령 만넬헤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집에 그 유명한 핀란드 메이커인 피스까스(Fiskars)의 녹슬지 않는다는 주황색 손잡이의 가위를 하나 가지고 있다.

수년간 핀란드에 거주했다는 안애경 작가의 <핀란드 디자인 산책>은 비록 타이틀에 ‘디자인’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전적으로 디자인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수오미네들의 삶과 그 삶 속에 군데군데 아로 새겨진 디자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정이라고나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에서도 변방 국가에 속하는 국가다. 예로부터 이웃 국가 러시아(구 소련)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왔고, 2차 세계대전 중에 발발한 겨울전쟁으로 러시아에게 자국의 많은 영토를 할양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북구의 나라답게 왠지 핀란드하면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바로 엄동설한이다. 작가는 숲과 호수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핀란드 디자인의 세계와 생소한 풍물들을 다년간의 체류 경험을 통해 멋진 사진과 함께 조화롭게 풀어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핀란드 디자인의 핵심은 바로 실용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엄청난 숲이라는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핀란드 교육 과정에 목공 실습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되면서, 국민들은 누구나 다 어려서부터 목공 기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히게 된다. 목공 기술뿐만 아니라, 자원의 재활용 측면에서도 수오미들은 실용적인 접근을 보여 준다. 작가가 “에코 디자인”으로 명명한 자연에서 그 모티프들을 딴 자연친화적인 디자인들이 그야말로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특히 수도 헬싱키 외곽에 위치한 “글로베 호프” 작업실 탐방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다음으로 작가는 핀란드의 공공 디자인과 자연을 우선적으로 보호하면서 사람들의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유도하는 도시계획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자연보호와 보존보다는 언제나 개발 논리가 우선하는 우리나라의 무계획적인 도시설계가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그렇게 다양하면서도 뛰어난 디자인들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그들의 아이디어가 마냥 부러웠다. 그건 아마도 권위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보다, 능동적이면서도 창조적인 교육 시스템과 평등한 사고에 기반을 둔 사회적 노력이 그 바탕이 되지 않았나 추정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암석 교회>(Rock Church)에 관한 에피소드였다. 멀리서 보면 교회라는 종교적 색채조차 드러나지 않게, 그야말로 생활 그 자체로 다가오는 암석 교회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인 예배와 결혼식 혹은 장례식 외에는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개방된 공간이라는 설명이,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가치인 사회봉사의 미덕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빛의 소리를 듣는다는 소제목 역시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역시 핀란드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산타클로스와 온 국민들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사우나 이야기 역시 백미였다. 어려서 읽은 작고하신 김찬삼 교수의 세계여행기 핀란드 편에서, 한 겨울에 사우나를 하고 눈밭에서 뒹구는 여인의 사진이 떠올랐다. 안애경 작가의 글을 보면서 정말 사우나가 수오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다시 한 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면서 사는 수오미네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자작나무로 각종 목공 제품들을 만들어 내고, 또 사우나의 연료로도 사용하는 그야말로 친환경적인 삶의 모습과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디자인을 우선적으로 하는 그네들의 삶 속에 흠뻑 빠져 들었던 유쾌한 독서체험이었다.


*** 책을 읽으면서 지적하고 싶었던 내용들
 

1. 작가는 25쪽에서 ‘핀란드의 영웅 만넬헤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만넬헤임은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편에서 연합군에 대항해서 싸운 전범이다. 과연 그에게 영웅이라는 호칭이 어울릴지 궁금했다.
2. 예무르 -> 예르무 (오탈자, 133쪽)
3. 236쪽에 “카누 타는 방법”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는데 사진에 나오는 건 카누가 아니라 카약이다.
4. 251쪽 : 핀란드가 독립하기 전, 그 유명한 러시아와의 겨울전쟁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한건 1917년이고, 겨울전쟁은 1939년에 일어났다. 핀란드 역사 부분에 있어. 작가가 혼동한 것 같다.
5. 영어단어 joy 에 평화라는 뜻이 있던가? (2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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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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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가 해수면보다 낮다는 나라 네덜란드의 델프트라는 도시를 구글맵을 통해 찾아봤다. 왜냐구? 지금부터 이야기할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 소녀>와 동명의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이 바로 “델프트”(Delft)이기 때문이다. 미국 출신의 여류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특이하게도 책의 첫 부분에 바로 이 델프트 시가도를 소개하고 있다.

1962년에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태어난 작가는, 1984년에 영국으로 이주해서 한동안 북에디터 생활을 하다가 전업 작가로 변신하게 된다. 그녀의 첫 소설은 <버진 블루>(1997)이었지만, 그녀에게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 준 작품은 바로 두 번째 작품인 <진주 귀고리 소녀>(1999)였다. 아마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한 번은 봤음직한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동명의 제목으로 미국 출신의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로도 소개된 바가 있다.

이 책 역시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네덜란드 델프트 출신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그가 그린 작품들이, 작가가 빚어내는 허구와 함께 교묘하면서도 적절하게 배치되면서 팩션 장르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주인공인 16살 난 그리트는 타일공의 딸로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실명하고, 직장마저 잃게 되면서 부유한 구교도인 화가이자 길드 대표로 있는 베르메르 집의 하녀로 들어가 일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공 그리트는 영특하면서도 하녀인 자신의 신분에 넘어서지 않는 처신을 구교도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하나씩 배우게 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복한 가정에서 불편 없이 지내던 그리트는 가장의 몰락으로 인해,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베르메르네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 때문에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빨래에,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것은 물론이고, 주인장의 화실 청소까지 도맡아서 하게 된다.

작가 트레이스 슈발리에는 처음부터 주인공 그리트와 그리트의 주인 베르메르 간의 좁혀질 수 없는 공간을 설정하고, 미묘한 심리전을 구사한다. 특히 베르메르의 주고객으로 거절할 수 없는 상대로 등장하는 반 라위번은 이미 그전에 자기 집에서 일하던 하녀를 임신시킨 전과를 가지고 있는데, 그의 집요한 시선은 그리트의 뒤를 쫓는다.

게다가 베르메르 집안의 실질적인 권력자인 큰 마님 마리아 틴스(베르메르의 장모), 작은 마님 카타리나, 그녀의 말썽꾸러기 딸 코넬리아 그리고 선임 하녀 타네커에 이르기까지 온통 시기와 질투로 대변되는 여성들 간의 알력과 쟁투의 중심에 어느 날 갑자기 내던져지게 된 그리트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그리트의 삶은 어느 날 그녀가 베르메르의 작업을 비밀리에(물론 마리아 틴스의 방조 아래) 돕게 되면서, 갈등은 증폭되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도 잘못을 저지르거나 혹은 감정의 위험 수위를 넘은 건 아니지만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전개가 아주 감칠맛이 났다. ‘북구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진주 귀고리 소녀>의 모티프가 될 만한 순간을 포착한 베르메르는 거침없이, 그리트와 공모해서 필생의 역작을 위한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분명 수년간의 걸친 리서치 작업을 통해, 17세기 근대화에 선두에 서 있던 해양 국구 네덜란드의 시대상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상공업이 서유럽의 그 어느 나라에 비해 발전해 있던 네덜란드의 소도시 델프트와 교역을 통해 부를 이룬 부르주아 계층들의 예술적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화가들의 작업과 거래들을 책의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아울러 치열한 독립전쟁을 통해 마침내 종교의 자유를 쟁취한 신교국가 네덜란드에서의 구교도 가톨릭과의 미묘한 갈등 역시 은은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원래 신교도였지만 구교도로 개종한 베르메르 가정에, 하녀로 들어간 주인공 그리트는 신교도로 결코 융화되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소설의 전개에 있어서 큰 갈등 요인은 아니지만, 부차적으로 해묵은 종교갈등의 요소로 표현해내는 작가의 내공에 새삼 놀랐다.

한편 푸줏간집 아들로 등장하는 엄친아의 모델, 피터는 주인공 그리트를 짝사랑하지만 항상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을 돌리기까지 기다림의 미학을 선사해 준다. 물론 피터가 그리트 집에 제공하는 식육이라는 물질적 시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포인트다. 자존감이 강한 그리트는 피터의 그런 행동이 못내 불만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급여만으로는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없다는 현실에 굴복하고 만다.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은 베르메르 필생의 역작 <진주 귀고리 소녀> 제작 과정에 벌어지는 갖가지 해프닝 속으로 파묻히게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녀의 일이 아닌, 전문직 화가인 베르메르의 작업을 돕는 조수로서 색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그리트는 비로소 거듭나게 된다. 아울러 성장소설적인 측면에서도 그녀는 소녀에서 한 명의 어엿한 여인으로 재탄생한다. 대작 <진주 귀고리 소녀>의 모델로 등장하는 그리트는 한사코 자신의 머리카락을 베르메르에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다. 마지 그녀의 순결에 대한 마지노선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림의 화룡점정처럼 다가온 (카타리나의) 진주 귀고리를 끼기 위해 스스로 값비싼 정향을 사다가 마취시키고, 귀를 뚫는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하녀로서의 비루한 삶 대신, 당당한 한 명의 그림을 위한 모델이라는 자각에 대한 선포처럼 다가온다.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던 중에 초반부의 전개가 몰입을 방해한다거나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지루했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그건 아마 소설에 대한 자신들의 모종의 기대가 작가에게 배반당하면서 생긴 반발심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배신을 즐긴다면 이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는 다른 차원의 매력을 제공해 줄 것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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