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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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책읽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책에 나오는 지명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남 레 작가의 <보트>는 나에게 여러 가지 도전을 제공해 주었다. 물론 뉴욕이나 히로시마, 카르타헤나 그리고 테헤란 같이 누구나 다 알만한 지명 말고, 정말 낯선 곳 말이다. 책 속에서 천국보다 낯선 느낌을 구가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남 레 작가의 세계를 돌며 펼쳐지는 7개의 이야기들 중에서 그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베트남 출신으로 호주에서 교육받고 자란 작가는 미국 아이오와의 모처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호주에서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와 4년 만의 만나게 되는 곳이 어디일까. 벌링턴 스트리트와 서미트 스트리트만으로 단서로 그가 사는 도시의 이름을 찾는 재미란, 낯선 작가의 이야기의 작은 길을 따라 가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아이오와 주와 이웃 위스콘신 주를 가르는 미시시피 강 연안의 더뷰크(Dubuque)라는 도시라는 것을 알아냈다.

창작의 고통에 빠져 있던 작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작가적 임무가 새삼 다가온다. 1975년 사이공 함락, 무력통일, 재교육 수용소 그리고 1979년의 탈출은 맨 마지막 이야기 <보트>의 선순환적 구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5개의 세계의 곳곳의, 때로는 아마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사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가장 관심이 갔던 이야기가 바로 <카르타헤나>였다. 하지만 그 배경은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가 아니라, 14살짜리 킬러 주인공이 주무대로 활동하는 메데인이었다. 이 단편의 플롯은 브라질 영화 <시티 오브 갓>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과연 14살짜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태어나 산 햇수만큼의 사람을 죽이고, 생활비를 벌고 어머니를 위해 집을 샀다는 주인공의 무용담이 허공을 휘젓는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마음을 끄는 이야기는 <히로시마>였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일본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후, 1억 총옥쇄를 운운하면서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과 세계 최초로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있었다. 원자폭탄 한 방으로 악랄한 침략자·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로 거듭난 그네들의 변신에 씁쓰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보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전쟁과 탈출이라는 고통의 순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 어려서 이별한 딸과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 죽어가는 어머니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 등의 비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런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상황 가운데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술이 매력적이었다.

아쉬운 점은 서로 연관되지 않은 이야기들 때문인지,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동력의 실종된 지점에서 책읽기가 버거워져 버렸다. 사실 <테헤란의 전화>는 여전히 이해불가 코드다. 그래도 <보트>는 막 포기하려던 순간에, 작가의 글처럼 “종일 기다리다가 막 떠나려 할 때 무엇을 내놓는다.”(208쪽) 남 레 작가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보트>에 등장하는 죽음의 여행은 사이공 함락 이후, 역사적 고찰 대신에 오로지 탈출과 생존만이 선이었다는 아버지 세대의 변명처럼 다가온다. 보트피플인 마이, 퀴엔 그리고 트렁 간의 죽음 가운데 삶의 희망을 건져 보려는 노력이 그저 무망할 뿐이다. 정말 그런 처참함을 경험한, 세대의 추억담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과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하지 않는 과거는 더욱 치명적이겠지만.

책 속에서 남 레 작가가 말했듯이,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그만의 다음 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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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라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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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누군가 나에게 전작주의를 하는 작가가 있냐고 물으면 없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나에게 전작주의에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두 명의 작가를 만났으니 한 명은 커트 보네거트이고, 다른 한 명은 루이스 세풀베다다. 뒤늦게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세계와 만나게 된 나는 그 늦음을 만회하기 위해 부지런히 세풀베다의 책들을 구해서 읽고 있는 중이다. 아쉬운 점 중의 하나는, 출간된 지 채 몇 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책들이 절판의 운명에 처해 있다는 점이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파타고니아 특급 열차>, <귀향>(모두 절판되었다)에 이어 네 번째로 내가 만난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은 바로 <핫 라인>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친환경적인 자연과 동화된 삶을 그린 자연주의적 색채를 가진 작품 군과 추리소설의 양식을 품은 흑색소설 혹은 누아르 소설로 나뉜다고 한다. 폰 섹스를 뜻하는 <핫 라인>은 후자의 분류에 속한다고 할 수가 있겠다.

이번에도 이야기의 시작은 파타고니아 아이센 부근해서 가축도둑과 밀매업자들을 사냥하는 마푸체 인디오 출신 형사 조지 워싱턴 카우카만으로부터 시작된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즐겨 읽었다는 아버지가 지은 이름 조지 워싱턴은 한 때 사회주의 국가 칠레를 전복시키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부까지 동원해서 군부의 쿠데타를 유도한 어느 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름에서 유래한다. 자기 동네 쇠똥의 냄새만으로도 사건을 해결해낸다는 카우카만 형사는 어느 날, 가축도둑질을 하던 유력자의 아들의 엉덩이를 장총으로 날려 버리게 되면서 폭력형사로 낙인이 찍혀 수도 산티아고의 성범죄 연구소로 좌천(?)이 된다.

깡촌 파타고니아에서 서울 산티아고로 전보된 것이 영전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을 다스리면서 다시 소설에 집중한다. 사실 평생을 파타고니아에서 자고 나란 인디오 형사가 수도에서 할 일은 그다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자기 부서 사람들조차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인종적 차별과 더불어 “폭력”이라는 딱지가 붙은 형사를 환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아이러니는 피노체트 독재 아래서, 수십 년간 참을 수 없는 끔찍한 폭력들을 경험한 이들이 여전히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군사독재의 찌꺼기들에 대해 관대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여전히 칠레의 민주화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는 것일까?

퇴근길에 택시 기사 아니타 레데스마와 우연하게 만나게 된 카우카만 형사는 곧 자신을 옭아매는 이전의 가축도둑 사건과 연계된 <핫 라인> 사건을 맡게 되면서 위기 속으로 뛰어든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 최소한의 매너가 필요했다는 회상을 통해 다른 차원의 똥이 차고 넘치는 수도 산티아고에서는 그런 절차들을 모두 생략해 버리고 오로지 자신의 성적 욕구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욕망들만이 들끓는다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필적할만한 서민적 주인공의 도전을 주로 그리고 있는 세풀베다의 캐릭터 창조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핫 라인>에서도 작가는 깡촌 출신의 촌뜨기 형사와 한가닥 한다는 마누엘 칸테라스 장군(아주 의미심장한 안티 캐릭터 설정이다)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간다. 이는 개인과 권력의 실체로서의 도전과 응전을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그 한편에는 사회적 부조리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경직된 사회 체제에 대한 분노가 그야말로 악머구리 끓듯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서론에서 작가가 말했다시피, <핫 라인>은 대중 연재소설의 양식을 취하고 있다. 세풀베다의 작품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키워드는 바로 “대중”이다. 다른 책들도 물론 대중적인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핫 라인>은 지금까지 읽을 책 중에서도 다른건 몰라도 그 점에서만큼은 최고다. 오히려 책의 말미로 갈수록 이렇게 짧아도 되는거야?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 전개와 결말의 속도감이 빠르다. 물론 그에 대해 전혀 불만은 없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곳곳에서 흘리고 있는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칠레식 사회주의 실험과 그 실패의 단서들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그 중에서도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비극적인 최후를 마친 빅토르 하라의 이름이 접하는 순간은 그야말로 전율 그 자체였다. 1973년 9월 쿠데타 당시 아옌데 대통령의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마지막 연설은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때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던 이들의 숱한 변절을 목도하면서, 이 시대 지식인과 작가들에 대한 실망은 거의 좌절의 수준에까지 도달했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잊지도 말고 용서하지도 말자>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여전히 글을 통해 실천에 옮기고 있는 루이스 세풀베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작가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충실한 한 인물과 만난 즐거움이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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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남두리 2009-10-01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풀베다의 책, 구입해 놓고 아직 읽기를 미루고 있는데 꼭 봐야겠네요^^
 
그리스도 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김모세.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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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철학(아마도 종교적 구원)을 포함한 기독교 이천 년사를 책 한 권에 넣는 작업은 수월치 않았으리라. 특히 프랑스 작가들의 책은 생소할 따름인데,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종교사학자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엄청난 미션에 도전장을 던졌다.

역시 작가는 철학자답게, 종교적 측면보다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사회의 근간을 이뤄온 기독교가 최근 들어, 그 원류를 자랑하는 서구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 가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왜 그렇다면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먼저 진행이 된 서구사회에서 기독교가 날이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걸까. 그 유래를 작가는 2,000년 전에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강림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남긴 철학적 유산에서 찾고 있다.

먼저 프레데릭 르누아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의 전설로 <그리스도 철학자>를 시작한다. 재림한 예수를 기존의 종교인들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역설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이미 입증된 바가 있다.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온 메시아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패러디다. 그리고 작가는 현재 기독교에서 정경으로 인정되고 있는 복음서들에 담긴 예수 그리스도가 전하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메시지들의 역사적이면서도 철학적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

평등, 개인의 자유, 여성해방, 사회정의, 권력의 분리, 비폭력과 용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덕목인 이웃사랑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생애를 통해 직접 실천했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에 대한 개념조차 형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예수가 제시한 윤리들은 기존의 가치들을 전복하는 가히 충격적인 이데올로기들이었다. 아울러 당시 기득권층에게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 들여졌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수구세력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가치들에 대해서는 무조건 탄압하고 보자라는 행동양식을 따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종교적으로는 야훼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이루는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유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산헤드린 공회 회원들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격렬한 반발의 결과였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기독교는 기존의 유대교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들에서 그 변별력을 가지게 된다. 세례, 성찬예식 그리 제자도가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요소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 방점을 찍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의 말을 듣고 따른다는 실천의 층위와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선언이다. 이렇게 복음서에서 거듭되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덕목들은, 로마제국 시대에 들어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과 박애를 기독교 가치의 전면에 내세웠지만, 중세시대 세속권을 장악하고 있던 교회는 복음서에 나오는 “있는 그대로”의 말씀보다 제도와 질서 유지라는 명목 하에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주요 가치에 반하는 행동들을 일삼게 된다. 특히 중세교회의 결정적 오류로 평가되는 종교재판과 마녀사냥 그리고 십자군원정에 있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박해 이론을 도입해서 이교도와 기독교적 가치를 불신하는 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적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러한 사항들은 중세교회의 큰 오점으로 남아 있다.

한편 스콜라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이성과 신앙의 화해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아울러 수도원 운동을 통한 가톨릭교회의 자정적인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직자들의 타락과 권력욕 그리고 교조주의는 명백히 복음서에 나오는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와 고대인들의 지혜에 반하는 것으로 결국에 가서는 종교개혁의 철퇴를 맞게 된다.

아울러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로마 교황청의 반종교개혁적인 태도와 근대화에 기여한 비판적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불신으로 인해, 지금까지도 서구인들 사이에서는 가톨릭교회가 근대화를 저해했다는 의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한다. 사유를 통해 이성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데카르트를 효시로 하는 근대철학의 상당 부분이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중요시한 그리스도 본래 가르침의 재발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상당 부분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주장이다.

기독교의 근대화 과정 서술 중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의 하나는 칼뱅의 예정설로, 인간의 구원은 신의 의지에 따라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인간의 행위가 구원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아울러 기독교의 탈신비화를 주도했던 니체와 더불어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금욕주의에 입각한 노동으로 자본주의의 합리화를 통해 기독교의 탈마법화에 기여했다는 점도 특이할만한 발언들이었다.

하지만 작가에 의하면 지금도 여전히 서구인들의 사고 속에는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적 가치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무신론자들을 제외하면, 꾸준하게 예배에 참석하는 정통 종교인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을 진 모르지만 신의 존재에 부인하지 않고, 사회문화 속에 내재되어 있는 축제, 예술의 양식들의 존재 그리고 비가시적인 요소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이 책의 독자들을 프랑스 독자들, 나아가서는 유럽의 독자들에게 국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그 외의 독자들은 자동적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어쩌면 작가는 자신의 책이, 프랑스 밖을 벗어나 멀리 한국에서까지 읽혀질지 몰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 철학자> 대단원의 막은 예수 그리스도가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이 짧은 예화에,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적인 요소들이 모두 담겨져 있다. 그 중에서 복음서에 나오는 결정적 가르침 두 가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랑이고 두 번째는 인식의 자유에 기초한 영적 삶의 내재화다. 작가는 이런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목적보다 수단이 우선하는 작금의 가치 전도 현상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동시에 작가는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오늘날을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이들 간의 통섭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과 신앙의 화해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가름침 -> 가르침 (38쪽)
2. 가나한 -> 가난한 (93쪽)
3. 회회 -> 회화 (290쪽)
4. 대재사장 -> 대제사장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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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1, 2>를 리뷰해주세요.
만화 김대중 1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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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대한민국은 연달아 두 명의 전임 대통령들과의 이별을 경험해야 했다. 전쟁, 혁명, 군사쿠데타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독재를 경험해야 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반세기만의 정권 교체와 IMF 위기극복, 냉전체제와 권위주의 타파를 이룩했던 지도자들의 상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지난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그를 다룬 많은 책들이 출간 붐을 이뤘다. 그리고 지난달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 많은 책들이 출간됐다. 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책이 바로 백무현 작가의 <만화 김대중>이었다. 전작 <만화 박정희>와 <만화 전두환>의 경우를 볼 적에 역시 두 권짜리 세트인가 싶었지만 자그마치 5권짜리 대형 시리즈물이었다.

백무현 작가는 1권의 저자 서문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를 쫓는 많은 연구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조선 선조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라남도 신안군의 작은 섬 하의도의 역사로부터 시작되는 <만화 김대중>은 작가의 말대로,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그의 공적뿐만 아니라 실수까지도 담담하게 담아내겠다는 선언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왕정국가 조선의 선조가 자신의 딸인 정명공주에게 4대 동안 조세권을 하사하면서 하의도의 비극은 시작된다. 정명공주의 시집인 풍산 홍씨 집안은 선조의 유언이 지난 다음에도 계속해서 하의도 전체에 대한 조세권을 행사하고, 나중에 일제침탈기에는 일본인에게 헐값에 하의도 전체에 대한 권리를(물론 근거가 없는!) 넘기기도 한다. 결국 해방이 되고 나서, 1950년에 하의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리를 정식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 이 김대중 선생의 고향인 하의도에 대한 역사 부분이 1권의 1/3을 차지하고 있었다.

연대기적 서술에 따라 구한말의 유학자 초암 김연 선생의 서당에서 글공부를 시작한 김대중 선생은 목포상고로 진학하고 졸업 후, 첫 번째 배우자인 차용애 씨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 차례로 그려진다. 해방 이후,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국준비위원회에 몸을 담게 되면서 김대중 선생은 정치가로서 자신의 인생역정을 시작하게 된다.

해방 시기에 주식회사 전남기선이라는 해운회사를 인수하여 사업가로 변신한 김대중 선생은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군에게 포로가 되어 첫 번째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어 전쟁 중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머물던 중, 1952년 이승만이 재선과 독재연장을 위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킨, 부산정치파동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정계에 투신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한국 현대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주인공 중의 한 명인 김대중 선생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어떻게 해서 정치계에 입문하게 되었는가가 1권의 주요 내용이다. 어려서부터 남들과는 다른 탁월한 지도력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정의를 보여 주었고, 일제 치하에서는 구국을 위해 몸바친 전봉준과 이순신 장군을 기리며 성장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휴머니즘에 입각한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 역시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훗날 김대중 선생이 남긴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금언의 유래가 어떻게 해서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해 그의 유년시절부터의 성장과정을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제 청년 김대중의 시기를 지나 본격적으로 정치계에 입신하게 되는 장년 김대중의 모습이 그려질 2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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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1, 2>를 리뷰해주세요.
만화 김대중 2 - 행동하는 양심
백무현 글 그림 / 시대의창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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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드디어 목포에서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30대 초반의 김대중 선생은 첫 선거에서 참담한 패배를 경험한다. 그리고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장면 부통령의 추천으로 민주당에 입당하게 되고, 천주교도로 세례도 받게 된다. 1958년 총선에서 다시 지역구를 인제로 옮겨 도전하지만 또 낙선한다. 잇단 낙선과 가정 형편의 악화로 고난을 겪던 중, 첫 번째 부인인 차용애 씨를 잃고 만다.

이승만 독재를 몰아낸 4·19혁명으로 장면 총리를 책임자로 하는 제2공화국이 출범하게 되면서 민주당 대변인으로 결국 인제 보궐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출하게 되지만 불과 이틀 뒤에 벌어진 5·16 군사 쿠데타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게 되고 만다. 비슷한 체험을 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불운한 선거의 주인공 김대중 선생이 있었다.

군정 시기에 동지이자 인생의 반려자로 이희호 여사와 재혼한 김대중 선생은 박정희가 이끄는 공화당에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자신들이 만든 법조차 지키지 않는 박정희를 비판하면서 그 대척점에 서게 된다. 18년 독재를 알리는 제3공화국 대통령으로 박정희가 선출되면서 이 두 역사의 라이벌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60년대 중반, 일본과의 국교 재개를 앞두고 벌어진 굴욕적인 한일회담 과정에서 유연한 태도를 취했던 김대중 선생에게 “사쿠라”라는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한편, 1964년 김준연 의원에 대한 구속동의안에 대한 장장 5시간 19분에 걸친 필리버스터(의사 진행 방해발언)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1967년 6·8 총선에서는 김대중 선생을 낙선시키기 위한 박정희 정권의 모략과 암투가 치열한 가운데 결국 선거에 승리하기는 했지만, 전체 선거에서는 집권 공화당이 개헌선을 넘기는 압승을 하면서 박정희는 3선 개헌에 대한 야욕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결국 박정희의 뜻대로 국회에서 날치기로 대통령 3선 개헌안이 통과된다. 김대중 선생은 야당이었던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온 김영삼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대결에 나서게 된다.

선거를 앞둔 장충단 공원에서의 대중연설에서 김대중 선생은 선거에서 박정희가 이기게 되면, 앞으로는 선거도 없는 총통 시대가 올 거라는 예언을 한다. 그리고 그의 예언대로, 유신체제라는 해괴한 명분 아래 말도 안 되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슬로건으로 박정희 종신독재의 문이 열리게 된다. 시퍼런 유신의 서슬 아래, 1973년 8월 김대중 선생 납치사건이 발생하고 그에 대한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 나간다. 타오르는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연이은 긴급조치 발동으로 억누르던 박정희는 결국 자신의 수하 김재규의 총탄에 맞으면서 기나긴 독재의 조종을 울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2권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은 바로 김대중 선생과 박정희의 정치적 대결이었다. 불법적인 군사 쿠데타로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집권하는데 성공한 박정희는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민주적 질서와 절차를 무시하고 독재정권의 영속적 존속을 위해 1971년 대선에서 온갖 부정과 불법적 공작을 저질렀다. 특히 그의 심복인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미의회 청문회에서의 증언으로 사실임이 밝혀졌고, 김대중 선생의 납치사건에도 중앙정보부가 개입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에 반해, 김대중 선생은 절대 불의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해온 민주주의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고난으로 점철된 삶의 역정은 아직도 마지막 한 단계의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박정희 사후, 그렇게 “서울의 봄”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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