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 - 누구나 꿈 꾸는 세상
후루타 야스시 지음, 요리후지 분페이 그림, 이종훈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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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책을 아주 좋아한다. 멋진 일러스트와 더불어 조금은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는 책이라면 더더욱 환영할만하다. 바티칸과 모나코에 이어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라는 남태평양 적도 아래의 섬나라 나우루로 일본 출신의 작가 후루타 야스시는 독자들을 이끈다.

제목 그대로, 앨버트로스(군함조)의 똥이 산호초에 쌓여 인광석이 되고 그렇게 섬이 된 나우루는 역시 전 세계를 상대로 식민제국을 건설한 유럽 열강들에 의해 세계 속으로 편입되었다. 독일, 영국, 일본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침략과 지배를 경험한 정말 누구 하나 알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섬나라가 앨버트로스의 똥, 다시 말해 그 인광석으로 덕분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이다.

1968년 독립한 나우루는 막대한 인광석을 개발해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부자나라가 됐다. 세금도 없고, 교육과 의료 등 사회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인광석을 팔아 번 돈으로 충당했다. 채집과 어로 활동으로 자급자족하던 국민은 더는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석유개발로 졸부가 된 중동의 나라들과는 달리 빈부의 격차가 심하지 않고 인광석 개발의 혜택이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갔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었다.

모든 자원이 그렇듯이, 인광석 자원의 고갈을 우려한 나우루 정부는 인광석으로 번 돈을 외국 부동산에 투자하면서 미래를 대비한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인광석이 고갈된 조짐을 보이자, 나우루 정부에서는 묻지마 국적 취득과 전 세계의 검은돈들을 유치하면서 경기부흥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바로 여기까지가 1장 <희희낙락거리며 행운을 쫓다>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다.

두 번째 장인 <드디어, 짝을 찾다>에서는 미국의 9-11테러 사건 이후 불법자금에 대한 철퇴가 내려지면서 나우루의 검은 자금 세탁 사업이 파탄 나고, 나우루 경제를 유지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체납으로 말미암아 이들이 나우루를 떠나게 되면서 위기를 맞게 된다. 이에 나우루는 이웃 오스트레일리아의 골치였던 난민 수용 대행 서비스로 가까스로 국가 존립을 이어 가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늘어가는 국가 부채를 갚을 수 없었던 나우루는 결국 외국에 있던 자산들을 매각하기에 이른다.

난민 수용 문제로 국제 사회의 비난은 물론이고, 국내 정치마저 불안정한 가운데 루드비히 스코티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나우루 건설에 나서고 있다는 이야기로 한 때 지상의 낙원이었던 나우루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의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앨버트로스의 똥으로 만든 나라>는 우리가 되새겨 보아야할 교훈들로 차고 넘친다. 개발과 환경보호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이데올로기뿐만 아니라, 국가의 발전 방향 및 재정안정이라는 문제들은 2009년 대한민국에도 적용 가능한 이슈들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고 했던가. 마치 하나의 희비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짧은 이야기, 긴 여운을 남기는 나우루 공화국의 명암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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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1
김정란 지음 / 나무수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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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5일 잠실구장에서 롯데와 LG의 시즌 최종전이 벌어졌다. 이날은 한국 프로야구 사에서 잊지 못할 추악한 광경이 벌어진 경기로 길이 기록될 것이다. 시즌 마지막까지 치열한 수위타자 경쟁을 벌인 두 명의 타자 박용택(LG)과 홍성흔(롯데)에게 야구팬들은 끝까지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 전까지 근소한 차이로 리드를 하고 있던 박용택은 타율 관리를 위해 아예 경기에 나서지 않았고, LG에서는 홍성흔을 4연속 고의사구로 거르면서 결국 박용택을 2009년 타격왕으로 만들어 주었다. 지난 1984년 김영덕 감독의 이만수 타격 3관왕 만들어 주기만큼이나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야구 선수들은 기록에 연연하는 걸까? 그건 바로 야구는 기록의 경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야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왜 그렇게 야구팬들이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는지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야수선택, 6-4-3 병살타 등 생소한 야구 용어들과 규칙들이 난무하고 다른 스포츠 종목보다 호흡이 긴 경기인 야구에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걸까? 바로 이런 물음에 작가 김정란 씨의 <야구 아는 여자>가 해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물론 책의 제목에 “여자”가 들어 있다고 해서, 이 책이 여성분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야구에 대해 생소하거나, 잘 모르시는 분들이라면 입문서로서 이 책이야말로 제격이다. 그리고 또 야구팬들에게도, 체계적으로 틀이 잘 잡힌 그러면서도 작가가 야구 기자로서 한국 프로야구의 생생한 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을 접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권할 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야구의 기본적인 규칙인 득점하는 법과 야구장에서 전광판 보는 법 그리고 각 포지션에 매겨진 번호 같은 탄탄한 기초들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도 설명해 준다. 제목도 재밌다, 야구 생초보 탈출 프로젝트라니! 특히, 일러스트를 맡은 메가쇼킹 작가의 재치 넘치는 삽화들은 어떻게 보면 일면 딱딱해 보일 수도 있는 글들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준다. 아마 개인적으로 메가쇼킹 작가의 글과 그림체를 좋아해서 책에 대한 호감이 급상승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 되어 버린 올드 스타들에 대한 간략한 글들이 이어진다. 선동열, 이만수 그리고 최동원 등등 추억의 스타들이며, 마에스트로와 더불어 평생 한 번 해볼 만한 직업군으로 분류된 명감독 열전 또한 빼놓을 수가 없다. 야신(野神)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SK의 김성근 감독,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이끈 김경문 감독, 국민감독이라는 닉네임이 딱 들어맞는 김인식 감독에 이르기까지 지난 30년 한국 프로야구 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에 대한 브리핑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야구 아는 여자>는 골수팬들이나 야구광들을 위한 책은 아니다. 야구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중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나에게도 이 책은 사실 좀 싱거웠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기 전에, 조금은 야구에 대한 깊숙한 농도를 기대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에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습격사건>과 더불어 야구에 대해서는 거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국내 출판계에 이런 야구를 주제로 다룬 책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념할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신묘한 야구의 세계를 다룬 책들이 꾸준하게 발표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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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여인의 속삭임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6
알론소 꾸에또 지음, 정창 옮김 / 들녘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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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 출판사의 일루저니스트 그 여섯 번째 이야기인 <고래여인의 속삭임>을 읽었다. 책을 다 읽고 나자마자 바로 작가인 알론소 꾸에또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분명히 페미니즘 계열의 소설인데, 이 글을 쓴 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왜냐구? 어쩌면 이렇게 여성들의 심리 묘사를 잘 집어내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남성 작가였다. 그는 현재 라틴아메리카의 페루 리마에서 열심히 작가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페루 가톨릭 대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의 플롯은 간단하다. 사십 대 초반의 유능한 국제부 신문기자인 베로니카 로스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이야기의 맨 마지막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녀에게 벌어진 한 편의 공포드라마 같은 이야기들을 글 속의 글, 다시 말해서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낸다.

이웃 콜롬비아 보고타 출장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래 같이 거대한 옛 친구(그녀는 친구라는 표현을 거부한다) 레베카를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 몰래 만나 같이 읽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를 같이 듣던 친구였지만 어느 사건으로 말미암아 지난 25년간 전혀 교류가 없다가 우연을 빙자한 필연으로 만나게 된다.

주인공 베로니카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파티에 갈 때마다 타인에게 돋보일 화장과 드레스를 고르는데 시간 투자를 아끼지 않는 그야말로 사회에서 성공한 인텔리 여성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특히 알론소 꾸에또 작가의 베로니카 화장술에 대한 묘사는 이 작가가 정말 남자인가 할 생각이 들 정도로 세심한 터치를 보여준다.

한편, 페르난도 보테로의 화풍을 연상시키는 레베카는 뚱뚱한 몸매와 튀지 못하는 외모 때문에 늘 고독이 그녀의 벗이자, 먹을 것으로 위로로 삼는다. 이모가 물려준 유산으로 백만장자, 아니 천만장자가 된 레베카는 어느 순간 오래전 친구 베로니카의 삶 속으로 뛰어들면서 이 두 친구 간의 관계는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관계에 초점을 맞춘 이 소설이 순간, 미스터리 스릴러로 돌변한다.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레베카가 베로니카가 일하는 신문사로 수도 없이 전화를 걸고, 베로니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심지어는 그녀의 정부 패트릭이 사는 아파트 위층 맨션을 사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베로니카는 경악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과거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걸까?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됐던 25년 전의 사건으로 알론소 꾸에또는 독자들을 유인한다.

베로니카와 레베카라는 상반된 캐릭터들의 대비를 통해, 꾸에또 작가는 현대인들의 외모 지상주의에 일침을 가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절대 자유로워질 수 없는 캐릭터인 베로니카의 강박적 다이어트는 레베카의 폭식과 상극을 이룬다. 하지만, 그 둘의 내면에는 모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베로니카의 흔들리는 가족과의 관계 역시 문제로 다가온다.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니코와의 관계를 끝내고, 서둘러 결혼하게 된 지오반니와의 결혼생활은 열정, 애정 그리고 의무감의 관계로 소멸하여 간다. 오로지 아들 세바스티안만이 가정에서 그녀의 위로가 될 뿐이다.

25년 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던 레베카는 자신의 비밀친구 베로니카로부터 적극적 옹호를 원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결정적인 순간에 레베카와 선을 긋고, 그녀를 모욕한다. 그 순간, 레베카는 그야말로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믿고 의지했던 이로부터의 배신은 그 숱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결국, 레베카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폭발시키면서, 이 둘의 위태위태한 우정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제목만 듣고서는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같은 에로틱한 느낌이 들었다. 고래여인의 속삭임이라니…….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캐시 베이츠 주연의 영화 <미저리>가 떠올랐다. 한편,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들과는 달리 암울했던 과거의 정치적 이야기들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알론소 꾸에또 작품의 변별력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꾸에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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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피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지음, 유혜경 옮김 / 들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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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두 개의 영화에서 보고 느낀 기시감이 엄습해 왔다. 하나는 1982년 존 카펜터 감독의 <괴물>(The Thing) 그리고 다른 하나는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데블스 오운>이었다. 전자는 카탈루냐 출신의 문화 인류학자이자 작가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의 <차가운 피부>의 전반적인 줄거리가, 그리고 후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의 인생의 궤적을 조명해 준다는 점에서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어떻게 해서 화자이자 주인공인 내가 남대서양의 외딴 섬에 흘러들어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지난 세기 초반까지도 해도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 고아 출신의 주인공은 후견인을 만나, 인생 전반에 대해 배우게 된다. 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반란의 기질을 지닌 아일랜드인의 후예답게 공화국군에 가담하면서,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결국, 영국으로부터 그렇게 원하던 독립을 쟁취했건만 새로 들어선 신정부 역시 기존의 영국과 다를 것이 없는 전제정치를 펼친다. 이에 환멸을 느낀 주인공 나는 자발적 망명길에 나서게 된다.

그렇게 해서 이 이름 모를 섬에 기상관으로 발을 내딛게 된 나는, 행적을 찾을 수 없는 전임자의 부재 가운데 곧 삶을 위한 치열한 투쟁에 나서게 된다. 밤만 되면 출몰해서 습격을 가하는 정체불명의 ‘괴물’들로부터 오로지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이런 인간과 괴물 간의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에서, 다른 것들은 돌아볼 여지가 없다. 이런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는 주인공과 이웃 등대에 거주하는 오스트리아 사람 바티스 카포라는 역시 신원을 알 수 없는 동지와 공통의 목적인 생존으로 의기투합한다.

끝없이 밀려드는 괴물들의 공격 앞에, 주인공과 바티스 카포는 바리케이드와 소총 심지어는 다이너마이트까지 동원해서 무자비한 폭력으로 맞선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주인공은 괴물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설정은 마치 영국 식민주의자들이 남아프리카를 침략할 당시, 그에 대항해서 맞선 줄루족 전사들과의 전쟁을 연상시켰다. 철저하게 서구인들의 처지에서 본 야만족들이 소설 <차가운 피부>에서는 무식하게 아무런 전략도 없이 오로지 인해전술로 밀어닥치는 “괴물”로 치환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생각은 소수의 의견일 뿐이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과는 일체의 소통을 거부하는 바티스 카포야말로 주류 식민주의자들의 표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바티스 카포가 마스코트로 데리고 있는 아네리스는 성적 착취의 대상이자 쾌락의 도구일 뿐이다. 왠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노라는 침략과 폭력 그리고 수탈로 일관했던 식민제국시대의 변명처럼 들릴 뿐이다.

주인공은 그 와중에서도 자신이 섬에 파견된 임무를 다하기 위해 나름대로, 일지도 기록하지만 거듭하는 괴물들의 공격 앞에 모두 무의미한 노력이었다. 어느 순간, 괴물들의 세계에 침입한 인간들이야말로 이질적인 존재로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바티스 카포의 비협조 탓도 있지만, 여전히 총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바티스 카포도 그리고 주인공도 마침내 1년마다 한 번씩 들르는 구원의 손길이 도착했을 때, 왜 그 지옥 같은 섬을 떠나지 않았을까? 거의 광기에 사로잡히다시피 해서, 살기 위해 수도 없이 총질을 하고 다이너마이트로 거의 자신들의 아지트인 등대를 날려 버릴 뻔 했으면서도 끝내 섬에서 벗어나는 걸 거부한 이유가 무얼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작가의 첫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놀라운 흡입력이 점층적으로 작동하면서, <차가운 피부>에 몰입하게 하여 주었다. 괴물들에 대항하기 위해 마련된 레밍턴 소총과 2천 발의 탄알 그리고 어마어마한 양의 다이너마이트라는 소설적 장치들이 조금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 수많은 괴물을 달랑 두 명이 함께 도끼나 칼로 상대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을테니까 말이다.

<차가운 피부>에 이어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소개된 같은 작가의 <콩고의 판도라>가 기대된다. 이번에도 완전히 예측할 수 없고,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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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 악어
마리아순 란다 지음, 아르날 바예스테르 그림, 유혜경 옮김 / 책씨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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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기시감으로 서가에서 이 책을 골라냈다. 그 제목만으로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책이 아닌가 말이다. 침대 밑에 악어라니,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우선 글쓴이는 마리아순 란다라는 이름의 스페인 출신의 작가다. 이 책외에도 <벼룩, 루시카>라는 책을 한 권 봤는데 그 책 역시 재밌을 거 같다는 예감이 든다.

우선 주인공으로 작가는 JJ라는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샐러리맨을 등장시킨다. 도대체 JJ라는 이름은 뭐의 이니셜일가? 호세 훌리오(Jose Julio) 정도 되려나, 나의 상상력의 한계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 물러선다. 어쨌든 잠자리에서 일어난 JJ는 자기 침대 밑에 회색빛을 한 파충류 악어가 떡하니 도사리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여행용 가방 크기만 한 녀석은 JJ의 구두를 씹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구두를 먹이로 삼는 악어라니.

도대체 악어가 어디에서 나왔건 간에 독신자 JJ는 그 녀석을 원래 있던 곳에 돌려보내고자 한다. 동물원에서 탈출했을까? 하지만 그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수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도 황당한 일이다. 악어가 있었음직한 동물원 놀이동산에 전화해 보지만, 미친 놈 취급을 받는다. 그의 유일한 친구인 정육점의 주인장 세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역시 예상대로 그 구두 먹는 악어는 JJ에게만 보이는 슈퍼 투명 악어였다!

사무실의 참견쟁이 에우랄리아 아줌마와 JJ의 짝사랑녀 엘레나의 시선을 피해 가며, 자기 친구 이야기인양 악어 이야기를 꺼내본다. 결국 JJ는 에우랄리아의 아줌마의 조언대로 병원을 찾는다. 의사에게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처방전을 받은 JJ는 약사로부터 악어병이 거미병보다는 나은 증상이라는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도대체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그의 악어병은 점점 더 심각해지기만 할 따름이다. 우리의 JJ는 과연 어떻게 이 지긋지긋한 악어병으로부터 탈출할 수가 있을까.

일견 황당해 보이는 악어의 상징성에 대해 곰곰 생각해 보게 됐다. 도대체 이 소설에서 악어는 JJ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거야말로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결정적 코드가 아닐까 싶었다. 그 실마리는 의사가 처방해준 크로커다일 알약에서 찾을 수가 있었다. 독신의 광기에 사로 잡혀 홀로 사는, 현대인들의 번뇌, 고독 그리고 불안에서 비롯된 복합적 증세가 타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악어라는 실존적 괴물의 정체인 것이다.

동시에 그 큰 도시에서 친구라고 마땅하게 부를만한 사람이 달랑 한 명 있다는 설정 또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직장 동료로 나오는 매력녀 엘레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싶지만, 소심하게 말도 채 꺼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악어에게 잡아 먹힐까봐 전전긍긍하는 JJ에 대한 묘사가 현대인의 심리에 대한 직격탄처럼 날아든다.

이런 불안과 현실로부터의 괴리들은 타인과의 통섭과 교류를 통해 치유된다. 자포자기한 상태의 JJ에게 갑자기 찾아온 엘레나와의 대화를 통해 드디어 주인공은 악어병을 극복하기에 이른다. 흉악한 포식자로 알았던 악어가 알고 보니 보잘 것 없는 도마뱀이었다는 설정에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역시 모든 것은 나의 마음에 달려 있다는 유심론(唯心論)의 변주였던걸까.

개인적으로 이런 소품 스타일의 글들이 좋다. 곧바로 마리아순 란다의 다른 책 <벼룩, 루시카>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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