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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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팩션 장르를 굉장히 좋아한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사건이나 인물들이 펼치는 가상의 미싱 링크를 훔쳐보는 재미를 즐긴다. 최근에 읽었던 김탁환 선생의 <노서아 가비>기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랑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작가인 김연수 작가가 1930년대 만주 간도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민생단사건’을 모티프로 삼아서 쓴 <밤은 노래한다>를 읽으면서 아주 오래전에 접했던 어느 공산당 출신 독립운동가 김산, 아니 장지락의 비극적인 삶이 떠올랐다.

경술국치를 겪고, 망국의 한(恨)을 품은 채로 살아야 했던 조선 사람들이 일제가 통치하는 조국을 떠나 중국과 조선의 사이라는 지명 간도(間島)에 정착해서 생활의 터전을 삼았다. 한편, 조선을 병탄한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은 드디어 9·18 만주사변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을 통해 폭발하게 된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드넓은 만주벌판에서 일본을 상대로 활발한 무장투쟁을 벌이던 망국 조선의 열혈지사들은 일본이 중국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을 개시하면서 조선의 자주독립이냐 아니면 중국혁명을 우선 완수하고 난 뒤에, 조선혁명을 도모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뒤로하고, 김연수 작가는 김해연이라는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로 당시 잘 나가는 일본 기업이었던 만철의 측량기사를 주인공으로 삼아 독자를 잃어버린 고토 만주로 공간이동을 시킨다. 경남 통영 태생으로 민족이나 국가 의식 없이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자란 김해연은 기술학교를 졸업하고, 만철의 용정 사무소에서 근무하게 된다. 1932년 9월의 어느 날, 그에게 전해진 편지 한 통이 김해연의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한다.

다른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처럼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사랑’이라는 조금은 진부한 주제가주인공의 운명을 가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만주에서 용맹을 떨치던 일본의 최정예 부대 관동군의 나카지마 중위와 용정에서 음악 교사로 근무하던 이정희 간의 삼각관계는 소설의 주인공 김해연의 삶을 온통 혼란 속으로 빠뜨려 버린다. 소설의 초반에 나카지마가 인생을 바꿔 놓은 사랑이란 걸 한 번 해보라는 충고가 묵시록처럼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에서 출발한 내러티브는 주인공을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공산주의 항일투쟁의 장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공산주의와 국가주의 파시즘이 절대 양립할 수 없었다는 역사를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서로 상극에 서 있는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피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한 때,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이들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일제에 협력하는 변절자, 일제의 교묘한 선전에 넘어가 일국일당주의라는 코민테른의 원칙 대신 간도에 조선족이 자치하는 공동체를 수립하려는 민생단 운동가, 유격구에서 일가친척들을 토벌대에게 잃고 유격대원으로 변신해 가는 사람들, 그리고 낭만적 군국주의를 신봉하는 관동군 장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글 속에서 펄떡이는 다양한 인물군들이 등장한다.

작가에게 만주 북간도는 선과 악이 혼재된 공간적 배경이다. 만주사변 후에 세워진 일제의 위성국가 만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만큼이나 그 공간을 채우는 인물의 그것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민족과 국가 의식 따위라고는 전혀 가지지 못했던 주인공이, 배신과 실연으로 두려움-분노 그리고 무기력에 떨면서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정신세계의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 앞서 선구자들이 이미 지나간 길을 되짚어가는 의식화의 과정일는지도 모르겠다.

김연수 작가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소설의 갈등을 이루는 인물들의 악연에서 그 실마리를 제시한다. 톨스토이의 인도주의는 일제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 앞에 그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경도된 간도의 젊은이들은 더는 인도주의적 협상이나 대화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무장투쟁에 나서게 된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운동에 의존하지 않은, 조선인들만의 독립국 혹은 해방구로서의 한인(韓人) 소비에트를 만들겠다는 박길룡/박타이와 우선 중국혁명을 성공하고 나서 차후를 도모하자는 박도만의 대립은 그 내면에 깔린 이정희/안나 리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망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는 시대의 혼란상을 극명하게 도출하고 있다. 객관을 호소하면서도, 자신들의 주관적인 주장에서는 한발자국도 양보하지 못하는 그네들의 양가적 시선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도대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냐는 말인가? 그 어느 것도 정답이 될 수 없다고 작가는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노래한다.

한편, 주인공 김해연은 이런 역사적 계급투쟁의 갈등 속에서도, 유격구에서 혁명의 도리를 배운 여옥과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수도 없이 오가는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이에게 바다를 보여주마고 약속한다. 이것은 마치 격랑이 이는 역동적인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인간의 숙명적인 개인화의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주인공의 감정의 흐름은 일본군 토벌대에게 포위된 어랑촌 소비에트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해서 용정에 잠입한 김해연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권총 한 자루로 무장한 채 총영사관으로 돌입하려는 장면이 묘하게 겹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민족주의와 쟁파주의 그리고 일본군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혁명의 아수라장에서 죽어가는 민생단원들의 모습에서, 1938년 중국 연안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어간 희대의 혁명가 김산, 장지락이 떠올랐다. 혁명의 대의가 얼마만큼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무고한 이의 목숨까지도 담보해야 할 혁명이라면 단연히 거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은 혁명가 장지락의 신원은 1983년에 회복되었다고 하지만, 만시지탄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글은 아무리 읽어도 빡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최근에 읽은 김훈 작가의 글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아마도 나의 부족함이거나 아니면 작가의 스타일이랑 나의 독서습관이 안 맞는 것일지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좀 더 형상화하는데 공을 들였더라면 하는 김연수 작가의 공력에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점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역사의 한 모퉁이에 가려져 있던 잊힌 역사를 물 위로 부상시켰다는 점만으로도 <밤은 노래한다>는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을 한다. 많은 역사가도 미처 하지 못한 잊힌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끌게 만든, 김연수 작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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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작가정신 소설향 18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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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사실 얼마 전에 새로 나온 <세계의 끝 여자친구>라는 단편선을 사서 읽다가 절반가량 읽고서 접어 버렸다. 풍문에 듣자하니 김연수 작가의 책들에 대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뉜다고 하는데, 아마 <세계의 끝 여자친구>와 나의 궁합이 맞질 않았었나 보다. 대신 어제 읽은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적은 분량 때문인지 쉽게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김연수 작가식 사랑학 개론이라고나 할까. 격동의 세월이 지난 끝자락에서 대학생활을 한 세 명의 영문과 동기들의 엇갈리는 사랑, 그리고 다시 13년이 지나고 나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랑에 대한 고찰이 그 주를 이루고 있다.

사랑이 완성이 결혼은 아니라지만,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완성품에 가까운 게 바로 그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닌가 싶다. 작가는 프랑스의 저명한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빌려 결혼은 사랑하는 두 남녀의 결합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집단의 ‘상호증여’에 그 핵심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말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 사무실에서 결혼한 동료분이 접한 작금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어찌나 그렇게 가슴에 와 닿는 말인지 모르겠다.

동갑내기 친구들인 증권사 직원 광수, 그의 아내가 된 선영(오래전 광고 문구에서 화제가 됐던 바로 그 ‘선영’이다) 그리고 소설가로서 룸펜 인텔리겐치아의 모습으로 사는 진우가 김연수 작가가 펼치는 사랑학 개론의 당당한 주인공들이다. 현명한 독자 제씨라면 바로, 통속적인 삼각관계가 연상될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 사랑이 있는데, <사랑이라니, 선영아>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부서진 감정의 껍질나부랭이들에게 둘러싸여 허우적대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라고 할 수 있는 광수는 이제는 아내가 된 선영과 만인의 연인 진우와의 과거에 ‘오셀로’ 같이 시기와 질투심이라는 저급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고전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자기파멸로 치닫거나 그러진 않지만 아름다운 여인을 홀로 독차지하려는 고독에 쩔은 보노보(다른 말로 피그미침팬지라고 한단다!)의 몸부림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광수가 집착하는 팔레노프시스, 우리 말로는 호접란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서 영어단어 deflower가 불현듯 떠올랐다. 결혼식장에서 미래의 아내 선영이 들고 있던 부케의 호접란 한 송이가 꺾여지는 것을 보고 불 같은 질투의 화신으로 변했던 그의 모습에서 순결강박증에 걸린 마초의 이미지가 선뜻 지나갔다. 어쩌면, 소설은 문학계의 자칭 서태지라는 진우가 아닌 광수가 써야 했던 게 아닐까?

사랑에 대해 김연수 작가가 글로 쏟아 놓은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아서 알파와 오메가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하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바로 사랑은 모든 감정의 ‘블랙홀’이라는 주장이었다. 작가는 인간이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집어삼키는 게 바로 사랑이라고 했던가. 역시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되어야 한다는 교훈도 빼놓을 수가 없겠다. 도저히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타오르던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듯이, 사랑이라는 환영 속에 자신을 홀라당 빼앗겼던 이들도 사랑이 끝나고 나면 조용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그의 썰이 그야말로 묵시록처럼 뇌리를 스친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준비하거나 혹은 현재 진행 중인 이들에게 상대방의 정체성까지 요구하는 과도한 사랑은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김연수 작가는 주문한다. 아마 작가는 그런 사랑일수록, 사람들이 거의 미칠 정도로 염원하면서도 이성적으로 거리를 두려 한다는 비밀을 남보다 먼저 깨달았나 보다. 마르크스 동무의 위대한 사회적 유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자기애, 고학력, 그리고 자의식 과잉에 이르기까지 사랑하지 않고 결혼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핑계가 그야말로 차고 넘치는 시대에 멋진 사랑학 개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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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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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 도미히코라는 이름은 작년에 나온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재밌어 보이는 제목의 책으로 알게 됐다. 아직 읽지는 못하고 지인에게 선물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작가가 당근 여자인 줄 알았다. 오늘 리뷰를 쓰기 위해 인터넷으로 작가를 검색해 보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책에서 내내 낭창낭창한 의성어와 의태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를 하기에 여성작가로 착각했다.

작가의 연보를 살펴보니 그동안 도리미 작가가 발표한 책들이 거의 다 국내에 출간됐다. 특이할 만한 점은 일본 유수의 명문대인 교토대를 졸업한 그가 쓰는 소설의 배경은 모두가 교토 그것도 사쿄구라는 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해에 처음으로 교토를 찾았었는데 기온, 난젠지, 킨카쿠지 그리고 철학의 길 등 한번은 직접 가봤던 곳의 명칭이 아주 익숙해서 더 좋았던 기억이다.

주인공 나는 대학교 3학년생으로, 지난 2년을 무위도식하면서 보냈는데 그 연원을 거슬러가면 자신의 숙적이자 단짝인 오즈가 자리 잡고 있다. 주인공의 전언에 의하면,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삼아 세 공기 밥을 뚝딱 해치울 정도로 악당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오즈가 해로운 행동을 하느냐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어디까지나 무익함에 초점을 맞춘 그야말로 일련의 얼간이 짓거리들로 하루해를 보낸다.

아마도 작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나’는 검은 머리 아가씨와 감칠맛 나는 캠퍼스 연애 라이프도 꿈꾸고 하지만 태생적으로 게을러 먹은 위인이라, 귀차니즘으로 모든 것을 방치해 버린다. 대신 항상 ‘타기’할 대상인 오즈와 어울려 수상쩍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갖가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벌인다. 이런 일들에 대한 도리미 작가의 섬세하면서도 구체적인 묘사가 바로 이 책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의 핵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정작 더 독자 제씨의 관심을 끄는 것은 모두 네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다다미 넉장반 세계를 중심으로 반복되는 메이트릭스(matrix) 같은 구성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똑같은 특징을 가진 캐릭터들의 등장과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 다만, 조금씩 다른 상황 전개가 읽었던 책을 두 번 세 번 읽는 것 같은 환영에 빠지게 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순 없으리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의고체(擬古體)의 문장들이 구어체에 익숙한 독자 제씨에게는 적잖이 당황활 수도 있겠지만, 세 번째 이야기와 네 번째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부터는 뇌리에 의식화되어 어떤 색다른 전개가 펼쳐질지에 대해 기대감이 부풀기 시작한다.

책의 표지와 매장마다 오른쪽 페이지 끝에 매달려 있는 찰떡곰의 일러스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데, 교토에서 벌어지는 예의 상황극을 좀 더 시각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일러스트들을 풍성하게 넣어 주었으면 책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어떻게 보면 방향성을 잡지 못한 채, 무의미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을 청춘들을 계도하는 글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어느새 낭만이라는 어휘가 사라져 버린 채, 더 좋은 학점이수와 취업이라는 절체절명의 난제 가운데 허우적거리는 우리네 대학 청춘들이 떠올라 조금은 서글퍼지는 수상쩍은 청춘 사내들의 일탈기였다. 이제 곧 출간이 임박했다는 도리미 작가의 새로운 소설 <유정천 가족>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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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현의 얼굴 - 그의 카메라가 담는 사람, 표정 그리고 마음들
조세현 지음 / 앨리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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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조세현 작가는 사진을 영상 기호라고 표현을 한다. 기호가 나왔으니, 책의 기호에 대해 한 번 분석해 보도록 하자. 우선 <조세현의 얼굴>이라는 제목 글씨 뒤로 노란색 표지가 푸근하게 독자들을 맞이한다. 노란색의 상징성은 바로 따뜻함과 포용이다, 뛰어난 인물사진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 이 표지 색으로 이미 독자들에게 조용히 그 신호를 보낸다.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최정상의 패션 포토그래퍼로 활동했다는 작가는 빛이 만들어내는 예술인 사진으로 더욱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 자신의 믿음을, 멀리 중국의 시안[西安]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사는 이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다. 빛과 그림자라는 사진 예술의 기본 명제처럼, 그의 첫 오브제는 바로 그림자 연극이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마치 포토그래퍼와 즐거운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듯하다는 느낌이 든다. 작가의 말대로, 회색빛 콘크리트로 물든 대도시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며 성마른 인상을 짓는 이들의 그것보다 시골마을이나 시장통의 갑남을녀들의 훨씬 더 풍부하고 다양한 표정들이 텍스트의 풍성함을 더해 준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사진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어서 그런진 몰라도, 조세현 작가가 찍은 인물 사진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작가는 도대체 어떤 비결을 가지고 있기에, 낯선 이가 카메라를 가지고 근접촬영을 하는데도 어떤 거부감 없이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들을 잡아낼 수가 있었을까. 하긴, 좀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이 책에 그렇지 않은 사진들은 실릴 수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마치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에도 전력을 다한다는 말처럼, 카메라라는 빛을 담는 무기를 장착한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눈이 다 짓무르도록 카메라 뷰파인더를 노려 보았으리라.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자신이 정말로 원하던 사진을 찍었을 그 순간의 희열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었다. 천 개의 찐빵을 담을 수 있다는 통을 앞에 둔 부자의 모습에서, 그림자극을 보느라 정신이 팔린 아이들의 해맑은 눈빛 속에서, 코를 줄줄 흘린 채 아빠의 무등을 탄 꼬마에게서, 냉차를 팔다 말고 한없이 선량한 눈빛을 가진 청년의 모습에서 조세현 작가는 자신이 정말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고갱이를 남김없이 표현해내고 있었다. 





한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안의 편린들을 쫓는 작가의 시선도 느껴졌다. 이천 년 전 진시황과 함께 지하로 내려갔던 병마용갱의 다양한 표정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공상의 나래를 펼친다. 한화(漢和)된지 오래지만, 이슬람교를 믿으며 여전히 중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그 골격과 생김새부터 다른 후이족[回族]들을 담은 사진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서 세상과 침묵의 언어로 이야기한다고 했던가. 멋지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피상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정말 “심안”(心眼)으로 우리네 삶의 본질들을 볼 수가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정말 뛰어난 사진작가에게 한 수 배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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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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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작가 할런 코벤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어제 오후에 책을 펴들었는데, 책의 서두 부분을 읽는 순간 <결백>을 다 읽지 않고서는 뭘 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 외출했다가 저녁 먹을 때만 빼고는 도저히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정말 제대로 된 “페이지터너”였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 다 읽게 됐다.

혹자는 할런 코벤의 작품이 너무 편차가 심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어떤 책이고 처음 접하는 책이 좋으면, 그 작가는 좋은 편으로 들어서게 되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편에 서게 되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던 폴 오스터 역시 전자의 대열에 들어설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주인공 맷 헌터의 기구한 삶을 잘 요약해서 들려준다. 대학 시절,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 과실치사를 저지르게 된다. 고의였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인명이 살상된 사건이니만큼 맷 헌터는 그로 말미암아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4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대학으로 돌아가 법학 학위를 받고, 자신의 친형인 버니가 일하는 법률사무소에 변호사 보조원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한다. 하지만, 전과자가 된 맷 헌터를 보는 지역사회의, 그리고 지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에게 구원은 바로 아름다운 부인 올리비아다. 헌터의 대학시절 라스베이거스에서 우연히 만났던 인연의 끈이 닿아, 뉴저지에 보금자리를 튼 헌터 가족에게 어느 날 이 올리비아의 핸드폰 번호로 기이한 동영상이 전송되면서, 이야기는 매우 급하게 전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근처 수녀원의 어느 수녀가 죽었는데 그녀의 죽음에서 도저히 수녀로서의 삶과는 동떨어진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슬슬 미궁으로 빠져든다.

또 한 명의 멋진 캐릭터로 맷 헌터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이제는 뉴저지 검찰청의 민완 형사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로렌 뮤즈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뜻하지 않았던 자살로 심리적 내상을 입은 로렌은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불륜에 빠진 것으로 의심되는 아내 올리비아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맷 헌터가 사건 의뢰를 맡긴 도저히 사설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싱글 쉐이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런 다양하면서도 멋진 캐릭터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독자들은 황홀한데, 그의 치밀한 내러티브 구성이 결정타를 날린다. 가톨릭교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미국 동부의 뉴저지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할런 코벤은 화려한 전개를 펼친다. 책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서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할런 코벤의 소설적 깔때기에 걸려지면서 작가가 도처에 심어 놓은 암시와 복선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결백>은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내면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령, 예를 들어 실수지만 사람을 죽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맷 헌터의 고뇌와 그를 바라보는 피해자 부모와 사회의 시선, 그는 과연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과거를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 올리비아의 헌신적인 사랑, 자신을 버린 미혼모 엄마를 찾아나서는 십대소녀의 사모곡, 빗나간 우정으로 말미암은 궁극의 복수에 이르기까지 온통 인간의 삶을 혼란 그 자체로 만들 법한 이야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바로 그런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역시 뭐니뭐니해도 미스터리 스릴러는 반전이다. <결백>은 그 반전에 있어서도 전혀 인색하지 않고 푸짐하게 독자들을 위해 진설한다. 모든 스릴러가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아주 작은 단서들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통에 이름 확인을 위해 다시 앞장을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비채에서 꾸준하게 나오는 모중석 스릴러 시리즈 21번째 책이었던 <결백>에 흠뻑 빠졌던 11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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