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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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상한 심리를 한 가지 가지고 있다. 책을 그렇게 읽어 대면서도 이상하게도,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은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작년에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나왔을 때부터, 이미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녔지만, 이 책은 항상 나의 관심 밖이었다. 물론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봄엔가 리뷰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사무실 동료에게 책을 빌려 두고서 지난 6개월 동안 읽지도 않았었다. 뭐 그동안 읽을 책들은 항상 차고 넘쳤으니까.
 
그러다가 지난 주말을 이용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채 1년도 안된 사이에 백만 부나 팔렸다는 책의 힘을 정말 대단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읽는 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이 있었다. 내가 읽은 책의 쇄는 5번째였는데, 어제 들른 교보문고에서 집어든 책은 무려 94쇄였다. 그야말로 초강력 슈퍼울트라 베스트셀러의 위력을 직접 느낄 수가 있었다. 그냥 엉뚱하게 든 생각인데, 무조건 많이 팔렸다고 해서 좋은 책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동안 워낙에 언론이나 수많은 리뷰들 그리고 입소문을 통해, <엄마를 부탁해>의 줄거리를 들어서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대강의 얼개가 그려졌다. 이 세상에 엄마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그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부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기나 물처럼 그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면서 고마워할 줄은 모르는 배반 심리가 엄마에게도 존재하는 건 아닐까. 책은 그런 엄마가 자식들과 함께 아버지 생일을 지내기 위해 서울역에 상경했다가 실종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엄마가 실종됐다고! 이 놀라운 소식에 모든 가족이 엄마를 찾아 나서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가운데, 가족 개개인이 미처 모르고 있던 엄마에 대한 추억의 그림자 가운데서 미처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하나씩 발굴해낸다. 작가인 큰딸, 엄마가 자식들 가운데서 가장 사랑한 큰아들(내 이름과 똑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애증의 관계로 얽힌 지아비인 아버지의 이야기들이 차례로 이어진다. 그리고 실제 경험담인지 아니면 정말 순수한 창작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가운데 소설은 어느 순간, 실종된 어머니의 음성을 통해 판타지의 경계마저 아우른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장미 묵주>편은 사족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재발견하게 되는 과정을 우리 현실세계에서 동떨어진 로마 바티칸의 피에타상에 접목시키는 작가의 노력이 왜 이렇게 생소하게 다가오던지.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입맛이 써졌다.
 
십 전 IMF 위기 이후, 우리들의 삶이 가장 힘들었다는 지난 1년은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의 중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엄마를 부탁해>는 참 시류를 잘 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본성이 항상 그렇듯이, 자신들이 잘 나갈 적에는 자신들의 울타리에 대해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법이 아닌가. 위기가 닥치고, 다시 일어서야 할 힘이 필요할 때 어김없이 찾게 되는 게 바로 가족 아니었던가 말이다.
 
신경숙 작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자신의 아바타라고 할 수 있는 화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고백을 통해, 가족에 대한 그리고 엄마에 대해 변명을 하고 싶은 독자들을 철저하게 무력화시킨다. 도대체 엄마의 그 지고지순한 사랑 앞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고, 변명이 통하겠는가.
 
<엄마를 부탁해>의 정가는 만원이다. 그 만원이 백만 개가 모이면 백억이다. 신경숙 작가가 인세를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끝을 모르는 출판계의 불황 가운데 이 책의 출간을 맡은 창비로서는 정말 효자 같은 작품이 아닐 수가 없다. 신경숙 작가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지영 작가는 좀 배가 아프지 않을까 싶다. 규모(백만 부 판매)와 기록(최단기단 백만 부 판매 달성), 두 마리의 토끼 모두 이번 승부에서는 밀렸으니 말이다.
 
<엄마를 부탁해>는 작품 중에서 작가의 서술처럼 끝까지 타자의 시선을 고수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 스스로 자라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지만, 부모님의 특히 엄마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산다. 그러니 엄마를 보듬고 사랑하라, 잊은 채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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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연합 이원수 2009-12-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은 우리들에게는 청량음료같은 갈증을 해소 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출판업에서는 불황을 얼마나 견딜수 있을까 라는 우려의 말도 있을만큼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때 엄마를 부탁해~ 라는 책이 나왔으니 말이다.
아마 영화계에서도 기획을 하지 않나 싶다. 목말라 하고 있으때 좋은책이라 아니할수 없다.
감사를 드린다.
 
위험한 독서
김경욱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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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작가의 5번째 소설집인 <위험한 독서>에 대한 북글을 쓰기에 앞서,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 하고 물어봤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란? 나에게 독서란 삶의 순간순간들이다. 퇴근 길 전철에서도, 건널목에서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는 그 순간마저도, 막 잠이 오기 전 눈꺼풀이 수마(睡魔)와 사투를 벌이는 순간들에도 나는 항상 책과 함께 하고 있었다. <위험한 독서>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서영채 씨는, 김경욱 작가를 소설기계라고 했는데 그에 비한다면 아마 난 독서기계쯤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참 색다른 경험을 할 수가 있었다. 그건 바로 김경욱 작가와의 만나게 된 것이었다. 사실 <위험한 독서>에 나오는 8개의 단편 중에서 달랑 두 개만을 읽은 상태에서 급만남을 가지게 돼서,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반면 마치 하얀 도화지에 나만의 독서의 가능성을 그리듯 사전에 <위험한 독서>에 대한 많은 정보를 입수해서 매우 독특한 독서를 경험할 수가 있었다.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렇게 작가와의 만남 촬영을 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위험한 독서> 첫 번째 단편으로 나오는 동명의 제목으로 설정 극도 해봤다. 그땐, 이게 뭐지 했었는데 나중에 시간을 내서 나머지 부분들을 읽으면서 아하 그게 그런 거였구나가 절로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역시 개인적 경험만큼 책을 읽는 삶 가운데서 중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서설이 너무 길었다. 본격적인 북글을 펼쳐 보도록 하자.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집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일반 장편소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해서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나의 시선을 단박에 잡은 것은 바로 <맥도널드 사수 대작전>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 장기적으로 던져진 화두인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문제라는 이슈에서 시작되어, 미국식 신자유주의 다국적 기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맥도널드에서 알바를 뛰는 여자주인공의 이야기다. 맥드널드화 돼서 일하는 가운데 어느 날, 암호 같은 ‘불온’문서가 등장하면서 그녀가 일하는 맥도널드 매장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된다.
 
김경욱 작가의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말맞추기 게임의 향연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다음, 그 격문의 주인공은 바로 제3세계해방전선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속테러에 대비한 초긴장 상태에서의 살인적 업무는 개개인 고유의 아우라 대신에 맥드널드화라는 이름으로 대체된 세계화의 잔상으로 투영되고 있었다. 대량소비 대량생산의 시대에, 우리 먹거리 역시 붕어빵 틀에서 찍혀져 나오는 붕어빵들처럼 규격화된 제품의 형태로 제한된 시간 내에 우리의 입에서 씹히고,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삶의 모든 면면이 재단되고 있다는 현실에 입맛이 씁쓰름해졌다.
 
독서치료사라는 이색 직업을 가진 화자와 그에게 치료를 받고자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모노톤으로 펼쳐지는 <위험한 독서>에서는 무언가 가슴과 머리를 공명시키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가 분류하는 인간 군은 다음과 같다.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참 세상을 간단하게 보는구나 싶었다. 아, 그의 직업이 뭐라고 했던가, 독서치료사? 독서치료사는 ‘책으로 마음의 병을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사람’(12쪽)이란다. 참 좋은 직업인 것 같다. 우선 환자(?)와 소통하기 위해 그는 독서카드를 작성한다. 그 독서카드라는 몇 개의 문자들의 나열을 통해 얻은 정보로, 그는 환자의 경계심을 무장해제시키고, 환자를 읽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화자인 독서치료사에게,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텍스트인 셈이다. 그는 그들을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를 읽기 시작한다. 서른두 살의 상담여성은 칠 년 동안 남자친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다이어트로 자신감을 재확인한 다음, 디지털 카메라로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담아내면서 ‘밥벌레’에서 멋진 나비로 변해서 정해진 절차대로 독서치료사의 곁을 훌쩍 떠나 버린다. 반면, 독서치료사는 자신이 읽고 있던 텍스트에 감정이입을 시키게 되고, 그녀의 떠난 자리에서 어리둥절해한다. 관계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빈자리를 공허함이 대신한다.
 
한 때 대한민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연상시키는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에서는, 자궁을 대여해서 대리모로 불임 부부들에게 아기를 대신 낳아주겠다는 어느 사나이와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조건상, 그들은 가난하다. 그리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한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궁 대여에 나서는 아내. 사나이의 사회경제적 무능력은 아내를 제어할 수가 없다. 습한 지하에 사는 그들의 곁에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달팽이,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달팽이의 존재가 사나이의 눈에는 거슬리기만 하다.
 
결국, 아이를 원하는 불임부부들과 계약서를 쓰고, 아내는 작업에 들어간다. 아무 일 없이 그들의 프로젝트가 수행되어 가던 어느 날, 사나이는 아내로부터 임신하긴 했지만, 쌍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와중에 사나이는 우연히 달팽이를 집어삼키고, 그들의 삶이 아내의 대리모 계획으로 엉망진창이 된 것을 애꿎은 달팽이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아내는 날이 갈수록 인간 인큐베이터에서 어머니로 진화되어 간다. 화장실에서 서로 뒤엉겨 있는 두 마리의 달팽이들을 발견한 사나이는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 하나 하는 생각에 잠긴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김경욱 작가는 대학교 때 우연하게 글을 쓰게 되면서 전업 작가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역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분이어서 그런지 글을 쓸 적에 가장 즐겁고 평안하다고도 했다. 억지로 글을 쓰면, 독자들이 바로 안다고 했는데 아마도 이는 많은 독서경험을 통해 체험한 것이리라. 그렇기 때문에라도 소설가는 자신의 촉수를 예민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던가.
 
<위험한 독서>에서는 책을 읽는 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가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했다고 한다.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마치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작가의 예리함이 폐부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새로운 장편소설 구상 중이라는 김경욱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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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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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모임에선가 시간이 되면 7번국도를 따라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그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김연수 작가에 대란 토론에 참가하기로 하면서 도서관에 가서 몇 권의 김연수 작가의 책을 빌렸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와 관심을 두고서 <밤은 노래한다>를 읽었다. 그러던 중에, 지금은 절판돼서 구할 수 없다는 <7번국도>란 책에 대해 알게 됐다. 절판 본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렸다. 바로 도서관 검색창을 뒤져 보니, 다행스럽게도 <7번국도>의 존재가 확인됐다. 말이 필요 없었다, 바로 달려가서 대출을 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사랑이라니, 선영아> 저자 서문인가에서 1997년에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독자특별판 소설로 이 <7번국도>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읽은 듯한 기억이 났다.

다 읽고 나서 휘발해 버린 기억들을 뒤적이며, 인터넷으로 실재하는 7번국도를 검색해 보니 부산에서 출발해서 함경북도까지 가는 장장 500km가 넘는 도로라고 한다. 나중에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뒤적거리다 보니, 책의 초반부에서 아주 친절하게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역시 무언가에 대해 잘 모를 적에는 매뉴얼을 볼지어다.

두 명의 남자 주인공인 재현과 ‘내’가 말린 바다생물과 맥주를 마시면서 7번국도를 누비는 자전거여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왠지 모르게, 그냥 바닷가를 끼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주인공 둘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매개이자 어쩌면 갈등의 원인일 수도 있는 세희라는 20대 초반의 여성 그리고 재현의 트라우마로 작동하는 옛 연인 서연이 불쑥불쑥 등장을 한다.

아, 그리고 보니 그 둘의 인연의 시작에는 비틀즈의 가공의 음반 <Route 7>이란 음반이 개입하기도 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삶들을 사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적절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김연수 작가는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그리고 보니 이 책이 쓰인 시기가 지난 천 년이었던가? 세기말도 아닌 지나간 밀레니엄의 막판에 막 등단한 젊은 작가의 옛 글을 비교해 가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의 만연체 스타일의 글이 잘 맞지 않아서 그의 작품들을 전작주의로 해서 다 읽어볼 계획은 없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 혹은 읽다가 집어치운 책들을 비교해 볼 적에 역시 초기의 작품군과 최근의 그것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7번국도>에서는 세기말 증후군처럼 자신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을 주체할 수 없는 그런 니힐리즘의 그림자가 보였다고나 할까. 관계에서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성적 탐닉과 유희에 대한 묘사는 근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책의 말미에 보니 희망을 노래하는 글이라고 했던가. 솔직히 말해서 난 왜 주인공들이 무슨 이유로 ‘7번국도’에 갔는지 모르겠다. 어느 역무원이 기록한 7번국도에서 죽은 이들을 기록한 리스트가 주는 존재의 소멸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재현과 “나”가 과연 자전거여행을 하면서 얻은 희망이 무언지 대해서도, 국기에 단풍잎이 그려진 나라로 훌쩍 날아가 버린 서연도 또 아버지의 나라를 찾아 일본으로 떠난 세희에게서도 도무지 유기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조차도 모두 세기말적 증후군이라고 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개인적은 느낌은 방부된 시간마저도 저 멀리 보이는 소실점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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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 뜨겁고 깊은 스페인 예술 기행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
최도성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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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두고 책을 펼치면서, 책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생에 한번은> 시리즈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친견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인터넷으로 예의 시리즈를 찾아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21세기북스에서 세 번째로 출간된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를 읽으면서 안 그래도 언젠가 스페인에 한 번은 가봐야겠다라고 생각한 결심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역시 초짜 배낭여행객이 아닌 베테랑 나그네인 최도성 작가가 뿜어내는 스페인의 아우라는 멋졌다! 우선 태양의 나라 스페인을 네 개의 권역으로 구분해서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정점으로 한 카스티야 지방을 출발로 해서, 알람브라 궁전으로 대표되는 아랍 문화의 잔상이 깊게 배어 있는 안달루시아, 스페인이면서도 동시에 스페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사는 카탈루냐 그리고 북부의 바스크 지방을 아우르는 그야말로 스페인 전토를 상대로 맞짱을 뜬 멋진 기행문을 독자들에게 선사해 준다.

작가는 큰 도시에서는 주로 미술관을 둘러보고 작은 도시에서는 그네들의 삶을 훑어보라는 충고를 해주고 있는데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말대로 작가는 마드리드에서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프라도 미술관에서 만난 고야의 그림 이야기를 들려준다. 19세기 초반 전 유럽을 석권했던 나폴레옹과 프랑스군의 점령에 대항했던 스페인의 위대한 게릴라 부대 항전의 역사를 미술로 표현한 고야의 예술혼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울러 전쟁사진가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의 일화도 역시 스페인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직도 진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카파가 스페인 내전 당시 찍은 <어느 인민전선군 병사의 죽음>은 그 극적인 찰나의 장면만큼이나 카파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으로 포토저널리즘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최도성 작가가 이후에 방문한 톨레도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모스카르도 대령의 일화에 대해서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엄연히 모스카르도는 합법적인 선거로 선출된 인민전선 정부에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 일당에 동조한 파시스트 반란군 지휘자였다. 글쓴이의 이런 이데올로기적 양비론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이미 다른 책에서 읽어서 알게 된 세고비아 특산의 애저구이, 코치니요 요리를 뒤로하고 스페인 중에서도 아랍 문화의 영향으로 가장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이동한다. 축제의 도시라는 세비야에서 멋진 플라멩코 드레스를 입은 여인네들의 화려한 의상이 바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떠돌이의 삶을 사는 집시들의 이야기 그리고 신대륙을 발견(이미 존재하고 있던 대륙을 발견했다는 표현을 적절한지 모르겠지만)한 콜럼버스가 세비야와 스페인 왕국에 가져다준 물적 토대와 이를 기반으로 한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에 대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한 수 배울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카스티야와는 전혀 다른 문화적 그리고 역사적 배경을 가진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이야기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대결 구도로만도 충분히 설명할 수가 있을 것 같다. 역시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가우디와 구엘 공원 그리고 지중해 바다로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히려 몬세라트와 이비사 그리고 분자요리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레스토랑 <엘 불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더 신선하게 와 닿았다.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광기 어린 예술가라고 작가가 규정한 살바도르 달리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피게레스와 토마토 축제로 유명한 발렌시아의 부뇰 기행도 빼놓을 수가 없다.

최도성 작가의 스페인 순례는 아쉽게도 북부의 바스크 지방에 대한 이야기로 피날레를 내리게 된다.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서양 연안의 비스케이만에 접해 있는 바스크 지방 역시 자신들만의 고유한 지방색을 갖추고 있으면서, 오랫동안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쉘던의 <시간의 모래밭>에 나오는 바스크 출신의 주인공 하이메 미로의 스페인 전역을 누비는 모험극이 떠오르기도 했다. 팜플로나의 소몰이 축제애 대한 스케치와 명화 게르니카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피날레에 어울릴만한 멋진 에피소드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험만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수년간의 스페인 여행의 내공을 잔잔하게 읊조리는 듯한 최도성 작가의 스페인 기행문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결국, 언젠가는 찾아갈 스페인 여행을 꿈꾸며, 이번에는 70년 전에 스페인을 다녀간 그리스 출신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을 읽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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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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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폴 오스터의 책에 푹 빠져 버렸다. 어느 누가 올해 만난 최고의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다음의 세 명을 꼽을 것이다. 작고하신 커트 보네거트 할아버지, 칠레 출신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이 양반 책은 특히 짧아서 더 마음에 든다!) 그리고 다양성 그 자체인 브루클린을 나와바리로 삼아 작품활동을 펼치는 폴 오스터가 그들이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폴 오스터의 책도 바로 다 읽지도 못하면서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다.

이 책은 파주에 내가 자주 들르는 이가고서점에서 보고서, 찜을 해둔 책이었는데 지난 주말 그동안 누가 사갔을 새랴 싶어서 바로 사서 단박에 읽어 버렸다. 이 책은 폴 오스터와 홍콩 출신의 감독 웨인 왕이 손을 잡고 만든 두 편의 영화 <스모크>와 <블루 인 더 페이스>의 제작과정과 시나리오가 담긴 책이다. 빡빡한 행간으로 유명한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이지만 그런 연유로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영화 <스모크>는 이미 십 년도 더 전에 보긴 했는데 세월과 망각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잘 기억이 나지 않던 차에, 그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시절의 추억이 그야말로 마법처럼 기억 저 너머에서 피어올랐다. 책을 읽기 전에 단지 오랜 기억 속에서 ‘참 따뜻했던 영화였지’라는 나의 영화에 대한 단상은 꼼꼼하게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를 되새김질하고 있었다.

이야기의 발단은 뉴욕타임스로부터 폴 오스터가 어느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단편소설을 하나 써달라는 청탁으로 시작된다. 주인공 오기는 브루클린의 가상의 담뱃가게에서 훔친 카메라로(!) 어느 특정한 시기에 매일같이 거리의 사진을 찍는다. 그는 지난 십여 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의식을 엄숙하게 진행해왔다. 오기가 일하는 이 담뱃가게는 브루클린에 서식하는 이웃들의 소통 공간이다.

우리네 그것과 다를 게 없는 소시민들의 삶과 애환이 담긴 훈훈한 이야기들이 하비 카이틀과 윌리엄 허트라는 연기력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는 두 명의 걸출한 배우들과 수많은 단역 배우들의 열정과 에너지와 결합이 돼서 <스모크>가 탄생했다. 물론 그 배후에는 작가 폴 오스터의 시나리오 작업이 탄탄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혼자서 책을 쓰는 소설가의 그것과 수많은 사람이 기획과 제작 단계에 개입하게 되는 영화 작업은 그 근본에서부터 차이점을 보여준다. 영화 <스모크>의 후속편 격인 <블루 인 더 페이스>의 경우에는 촬영 기간이 단 6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얼마나 급하게 촬영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 바쁜 배우들의 촬영 스케줄 때문에 때로는 따로따로 촬영을 해서 편집의 묘미를 살린 비하인드 스토리의 소개에서는 ‘아, 그랬었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튀어나왔다.

오래전에 친구가 그린 만화에서 모티프를 잡아서 어설픈 시나리오를 써 본 적이 있는데, 개개인의 세부적인 감정의 기술과 함께 상황설정 그리고 공간묘사 등 일반적인 글쓰기와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뛰어난 작가가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라는 공식마저도 폴 오스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나 보다. 대개 시나리오 작가는 자신이 맡은 시나리오를 감독에게 넘겨 주면 자신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영화 <스모크>에서 폴 오스터는 촬영현장은 물론 편집과정에도 흔쾌히 참가를 했다고 한다. 아마 그 덕분에 후속작 <블루 인 더 페이스>에서 웨인 왕 감독과 함께 크레딧에 공동감독의 타이틀을 올릴 수가 있었다.

<브루클린 풍자극>에 이은 두 번째 폴 오스터와의 만남 역시 흡족했다. 앞으로 계속될 폴 오스터 작품세계 탐험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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