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독서 - 세상을 바꾼 위험하고 위대한 생각들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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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같은 책쟁이로써 솔직히 고백하면, 타인의 독서기(讀書記)를 읽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바로 저자가 소개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어떻게든 원전을 읽게 될 테니 말이다. 지난 10월에 출간돼서, 서점가에서 그야말로 일대 돌풍을 일으킨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는 나에게 그야말로 태산 같은 높이로 다가왔다.

내 멋대로 독서주의자인 나는 모두 14편의 책에 대한 유시민 선생의 지도를 무시하고, 가장 먼저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부터 시작했다. 서로 유기적인 연관이 없는 책들이니 그래도 무방할 것 같다는 자의적인 판단에서 일단 하인리히 뵐의 명작 소개를 읽었다. 문제는 처음으로 읽은 책의 지도에서부터 시작됐다. 도저히 원전에 대한 해갈을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영화와 책을 차례로 보고서야 다시 <청춘의 독서>를 읽기 시작했다.

황색 언론으로 대변되는 독일의 보수신문의 폐해를 언론의 자유라는 핑계로, 사회적 약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에게 얼마나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과 주변 관계를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었는지 독일의 위대한 지성은 실재의 불가피한 유사성을 들어 나에게 들려 주었다. 도저히 언론이라고 부를 수 없는 세 개나 되는 <차이퉁>이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2009년의 현실이 35년 전의 그것과 똑같은지 그야말로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두서없이 끄트머리의 글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다시 본 궤도에 진입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로 돌아갔다. 유시민 선생은 이외에도 푸시킨과 솔제니친 같은 19세기 러시아 현실과 개혁과 혁명을 꿈꾸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미국이나 서유럽의 소설들에서보다 더 깊은 울림을 느꼈다고 썼다. 산업혁명 이래, 인류 역사의 축을 크게 뒤바꾸어 놓은 부르주아 세력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의 발호는 어쩌면 서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혹은 독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차르를 위시한 지배계층은 서구의 산업화와 이에 따른 눈부신 사회의 물적 토대의 발전을 동경하면서도, 여전히 농노제와 전제주의 왕권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그 결과,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서구 문물과 혁명적 사고를 접하면서 개화된 일단의 청년 장교들과 지식인들의 계급적 갈등을 <청춘의 독서> 곳곳에 인용된 글들에서 접할 수가 있었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푸시킨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대위의 딸>을 <카타리나 블룸>에 이어 두 번째로 주문했다.

비록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왕도정치를 전국을 주유하면서 설파했던 원조 보수주의자 맹자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일진일퇴의 초한대전에서 빛나는 무공을 세웠던 한신의 어이없는 죽음을 기록한 태사공 선생의 <사기>, 이제는 그 역사 발전의 근거를 잃어버린 채 자본주의 비판서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합작품이 <공산당선언> 그리고 수십 년 간의 치밀한 관찰과 연구 끝에 찰스 다윈이 발표한 <종의 기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동서양과 고금을 아우르는 현란한 고전의 향기에 빠져 삼매(三昧)에 빠진 황홀한 독서의 시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유시민 선생의 글에 공감하게 되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이미 기존의 고전에 대한 해설과 주석들은 원전의 컨텍스트를 넘어설 정도로 넘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주관적인 판단일진 모르겠지만, 그것은 선생의 삶을 관통하는 그 무엇과 일맥상통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책의 띠지에도 나와 있듯이, 선생은 ‘세상이 두려울 때마다 [고전]에게 길을 물었다’고 한다. 선생이 후기에서 문학적 접근보다는 사회과학도로서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접근에 치중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산 수많은 독자가 선생에게 공감하는 건 바로, 선생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 앎과 현실계에서 자신의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역사학의 고전이 된 에드워드 핼릿 카 선생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통해, 지난 세기를 주름잡았던 랑케 실증사학의 미몽에서 깨어나, 아마 다른 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물질과 재화에 천착하는 유한계급의 본성에 대한 빼어난 통찰의 과정을 대리체험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하는 유시민 선생의 통쾌한 해설과 지난 시절 우리 인식의 범주 밖에서 머물던 광휘로운 사상의 세계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다.

유시민 선생이 방향키를 잡은 작은 조각배에 얹혀서 드넓은 고전의 바다를 헤쳐 나왔다. 선생과 더불어 편견과 자의식 과잉에 빠진 맬서스의 이론에 조소를 날리기도 했고, 황색 언론의 무자비한 테러에 무너지는 카타리나 블룸과 함께 분노하기도 했으며, 시베리아 수용소에 갇힌 채 하루를 사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비참한 굶주림에 동참하기도 했으며, 토사구팽의 원조 한신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 보기도 했다. 다시 한 번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고전의 세계는 넓고도 끝이 없다는 것과 늘어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에 깊은 한숨이 절로 터져 나온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문명 역주행에 시대에, 방황하는 청춘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책을 선사해준 유시민 선생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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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미닛 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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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꾸준하게 미스터리 스릴러물을 발간해 내는 비채 출판사의 뚝심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여느 모중석 스릴러 클럽의 책들처럼 전혀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로버트 크레이스 작가의 창작력이 경이롭기만 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직 읽어 보진 않았지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로버트 크레이그 작가의 탐정 엘비스 콜 시리즈인 <몽키스 레인코트>에 대한 관심이 폭증했다.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로버트 크레이스는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이미 유명 텔레비전 시리즈의 시나리오 작가로 그 명성을 날렸었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톤 루지에서 태어나 20대 초반에 할리우드로 이주해서, 시나리오 작가 생활을 시작한 로버트 크레이스는 1980년대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삶을 끝내고 소설가로 변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에서 소설가로 전환은 그의 기대처럼 쉽지가 않았다. 1985년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대 전환기를 마련한 로버트 크레이스는 탐정 엘비스 콜이라는 멋진 캐릭터를 만들어내면서 드디어 성공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오늘 소개할 <투 미닛 룰>은 그의 페르소나처럼 등장하는 엘비스 콜이 나오는 소설은 아니지만, 충분히 독자들의 관심을 자극할만한 맥스 홀먼이라는 아주 입체적인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맥스 홀먼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어두운 범죄의 세계에 뛰어들게 되면서 평생을 범죄와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삶을 살았다. 은행을 털다가 현장에서 잡힌 맥스는 10년간의 교정생활을 통해 거듭나게 되고, 자신의 삶에서 잃어버린 조각들을 되찾으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하지만, 그에게 덧씌워진 전과자라는 레테르만큼이나 가혹한 시련이 보호감찰로 출소하게 되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아들이자 LAPD 소속의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리치(리처드) 홀먼이 그의 아버지 맥스가 바로 출소하기 전날 어느 갱의 무자비한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전해 듣게 된다. 맥스가 기대했던 새 출발은 초장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아, 그전에 앞서 로버트 크레이스는 LA의 연쇄 은행강도 사건의 주범인 마르첸코와 파슨스의 사건을 가볍게 소개한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좋아하는 팬들은 바로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절대 아무런 의미 없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범인은 아주 잠깐이라도 소설에 등장한 인물 중에 한 명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공식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과 암시의 지뢰들을 작가는 곳곳에 매설해 둔다. 추리소설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독자와 작가와의 게임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작가는 힌트는 주되 너무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독자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임무를 띠고 게임에 나서게 된다.

전과자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아주 사소한 위법행위조차도 치명적인 맥스는 아들을 포함한 네 명의 경찰관들이 총격을 받은 사건을 자신의 시선에서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사건을 쫓는 과정에서 상식적이지 않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건을 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을 체포한 전 FBI 요원 캐서린 폴라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마치 쥐와 고양이 같은 관계로 볼 수 있는 범죄자 맥스와 한 때 유능한 사법 요원이었던 폴라드의 기묘한 협력관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전과자인 맥스 홀먼에게 보통 사람들이 의혹이 어린 시선이 아닌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 대한 동정심에 폴라드를 자극해서였을까. 신뢰와 불신을 넘나드는 곡예를 하면서 그들은 사건에 관련된 미지의 인물을 찾아내기 위한 숨 가쁜 레이스를 펼친다.

여느 추리물처럼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맥스 홀먼과 폴라드는 이 사건이 평범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게다가 부패한 경찰들의 개입이라는 아들의 명예에 치명적인 오점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면서, 아들의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채 사건 해결에 몰두하던 맥스 홀먼은 자신의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끼는 동시에 깊은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로버트 크레이스는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LA의 어둠 속으로 독자들을 조용하게 초대한다. 그동안 수많은 할리우드 산 영화를 통해 익숙한 지명과 마치 한 편의 긴장감 넘치는 탐정 영화를 보는 듯한 치밀한 구성과 텔레비전 시리즈 시나리오 작가로 내공을 쌓은 작가다운 속도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제목에 나오는 “투 미닛 룰”은 전직 은행강도 출신인 맥스 홀먼이 2분 내에 은행을 털어야 한다는 강박적 시간을 의미한다.

그렇게 소설 <투 미닛 룰>에서 시간은 중요한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맥스 홀먼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고장 난 타이멕스 시계를 차고 다니고, 교도소에서 보낸 10년이라는 세월을 자신의 아들 리치와 죽은 리치의 엄마 도나 배닉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혀 있다. 좀 더 일찍 마음을 고쳐먹고 죽은 아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은행강도에 차량 절도 전문가인 맥스의 양심을 사정없이 짓이겨 누른다. 그런 위태한 맥스의 심리 상태를 폴라드 요원이 정상에서 빗겨 나가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 로버트 크레이스는 캐릭터 간의 균형에도 절묘한 운용의 미를 보여 준다.

엘비스 콜 시리즈에서 이탈한 스탠드 얼론 <투 미닛 룰>로 로버트 크레이스와의 첫 만남을 가졌는데, 그 결과는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어쩌면 이 계기를 통해, 그의 엘비스 콜 시리즈로 회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모중석 스릴러에서 로버트 크레이스의 또 다른 스탠드 얼론 <데몰리션 엔젤>이 출격 대기 중이라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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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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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기호 작가의 장편소설이 나왔다. 제목은 <사과는 잘해요>, 궁금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이 ‘사과’라니. 보통 그 제목에 작가가 그 작품에서 하고 싶은 주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을 때, 이기호 작가는 이번 자신의 첫 번째 장편소설에서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이나 하고 싶었나 보다.

<사과는 잘해요>를 읽기 전에 이기호 작가의 <독고다이>와 <최순덕 성령충만기>를 읽었다. 전자는 작가의 짧은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었고, 후자는 한 번 들으면 다시는 잊지 않을법한 그런 타이틀을 가진 단편모음집이었다. 두 권의 책을 통해, 작가 특유의 구수한 입담과 이기호 작가 작품의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촌철살인”의 유머를 체험할 수가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달고 나온 네 번째 책에 해당하는 <사과는 잘해요>는 시봉과 주인공 진만이 시설을 탈출하게 과정을 무덤덤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원장과 그의 두 명의 조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갖은 폭력과 착취 그리고 억압을 자행하는 예의 시설을 진만은 제 발로 스스로 찾아왔다고 하고, 시봉은 어느 날 승합차에 실려 왔다고 한다. 작가는 이번에도 역시나 사회에서 약간은 소외된 이 두 청년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모두 세 꼭지로 이루어진 <사과는 잘해요>의 각 장의 제목에서 어김없이 죄(罪)를 찾아볼 수가 있다. 진만은 이 죄에 대해 아주 친절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명의 복지사들의 폭력이 가해지게 되는데 그 중심에는 바로 이들의 죄를 밝히고 사과하라는 전제가 주어진다. 그저 쏟아지는 주먹과 몽둥이세례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지 않은 죄 혹은 앞으로 저지르게 될 죄에 대해 고백하게 된다. 죄를 짓고 징벌이나 사과를 하게 되는 상식의 틀을 벌어나, 징벌이 우선하게 되는 가치 전도의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어쨌든 그렇게 시설을 떠나 사회에 복귀하게 된 주인공들은 시봉의 여동생 시연을 찾아간다. 시연은 자기보다 자그마치 16살이나 연상의 뿔테 안경 남자와 함께 산다. 뿔테 안경 남자는 경마에 미쳐 아롱이에게 시연이 어렵사리 벌어온 돈을 모두 먹이로 던져 주는가 보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는 시봉과 진만은 자신들이 서식처를 배회하며, 일거리를 찾기 시작한다. 여기 등장하는 아주 멋진 조연 캐릭터가 있으니 바로, 그분은 동네 슈퍼 아주머니! 주변의 거지 같은 상황에 진저리를 치면서 항상 동네를 떠날 궁리만을 하고 있다. 슈퍼 아주머니가 한 마디 던질 때마다, 작렬하는 유머의 포스에 그만 반해 버리고 말았다.

자, 허우대 멀쩡한 시봉과 진만이 언제까지나 시연에게 기생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들은 자신들이 시설에서 배운 포장 다음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사과를 가지고 돈벌이를 할 궁리를 하기 시작한다. 우선 형제 이상으로 다정하게 지내던 정육점 아저씨와 과일가게 아저씨를 수일간 관찰하고 드디어 행동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들이 원했던 결과와는 달리 사과를 통한 관계회복이 아닌 관계파탄을 가져 오고 만다. 그다음에 정식으로 의뢰받은 김밥집 아주머니와 그 아들을 버리고 10년 전에 도망간 아버지 사건도 결국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문득 이 책은 다 자란 청년들의 성장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장 16년에 걸친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나서도 취업을 하기 위해, 다시 취업학원에 다닌다는 작금의 세태를 조롱하듯이 이기호 작가는 그야말로 ‘갈팡질팡’하는 청년들을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봉과 진만이 머물던 시설은 정상적인 청년들이 받는 교육과정을 상징한다. 무척이나 권위적이지만 동시에 언제든지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원장과 복지사는 알약과 위생 그리고 폭력이라는 삼위일체로 무장한 채, 체제순응적인 원생들을 길러낸다. 이런 비슷한 장면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나?

한 판 유쾌한 코미디를 기대하게 만든 초중반의 전개와는 달리 작가가 초반부터 곳곳에 매설한 복선과 암시의 지뢰들은 언제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할 그런 비극을 잉태하고 있다. 정상궤도에서 일탈한 시봉과 진만의 해피엔딩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파국으로 치닫는 그들의 저돌적인 행태를 보면서 가슴이 아련해져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사과는 잘해요>는 1년 전 대표적인 포탈 서비스인 다음에서 연재한 글을 모아 재가공해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신문연재가 대세였다면, 요즘에는 인터넷 포탈이나 온라인 서점 연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역시 인터넷 연재를 했던 작품답게 예전에 자신의 단편집에서 이기호 작가가 보여준 짧은 호흡의 전개가 그대로 구사되고 있었다. 솔직히 <사과는 잘해요>의 물리적 분량에 조금 걱정을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너무 짧아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점이 바로 <사과는 잘해요>의 장점이자 단점이 된 게 아닐까. 다음번에는 조금 더 긴 호흡의 장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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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마르크 함싱크 지음, 이수영 옮김 / 문이당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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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띠지에 당당하게 거론된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라는 선언과 영조 말 삼정승의 자살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 책이 다루는 시기가 언제라는 것 정도는 짐작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이 될 뻔한 외국인 마르크 함싱크라는 벨기에 사람이 저술한 책이라는 점이다. 네덜란드 말로 쓰인 이 책이 얼마나 조선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가는 책을 읽어 보면 단박에 알 수가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조선은 군왕이 지배하는 왕조국가였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래 왕권을 주장하는 군왕과 신권을 주장하는 신료들의 대결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사색당파라는 노론, 소론, 북인, 남인으로 나누어져 격렬한 정치투쟁을 벌이던 사대부들은 영조 대에 들어오면서 노론이 왕을 보위하면서 주도권을 잡기에 이른다. 우리에게는 당쟁을 혁파한 탕평책으로 유명한 영조 역시 자신이 왕권을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헌을 한 보수파 노론을 좌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숙종의 아들로, 형인 경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영조는 경종 독살설과 서자로 왕위에 오른 콤플렉스에 시달려야 했다. 바로 이 시기에, 조선 왕조 역사상 최악의 참극의 주인공이었던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250년 전 미스터리의 세계로 마르크 함싱어는 독자들을 안내한다.

소설은 <충신>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문원(영조 시대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의 양자)이 시대가 바뀐 정조 치세에 20년 전의 끔찍한 사건을 떠올리는 플래시백으로 시작된다. 갖은 기행으로 영조의 눈 밖에 난 사도세자를 보위하는 세 명의 정승 이천보, 이후 그리고 민백상이 어느 내의원의 고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영상 이천보의 아들인 이문원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자신의 친구들인 조일천과 서영우와 더불어 문제의 내의원을 찾아 나선다. 세 명의 정승, 세 명의 친구들 어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서구 문명의 기원을 이루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장에 프랑스 출신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가 떠올랐다.

그들이 찾던 내의원 장의삼이 의문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이문원과 친구들은 제각각 가진 재주 의술과 무술을 바탕으로 사건의 중심 속으로 뛰어든다. 한낱 내의원의 죽음이, 차기 왕권을 목표로 한 죽음도 불사하는 정권투쟁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사도세자를 무사히 지켜 영조의 대를 이어 차기 군왕으로 삼으려는 세 명의 충신들과 그들의 의도를 저지하려는 영조의 왕비 정순왕후와 화완옹주 그리고 노론세력 간의 암투가 시작된다.

역시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한 서구식 팩션의 얼개가 살짝 얼비쳤다. 미스터리물에서 살인사건만큼 독자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소재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왕실의 후사가 관련된 음모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소설에서 이문원 일행이 죽은 내의원의 사인을 규명하고, 동래상단이 발행한 어음을 추적하는 과정은 오늘날 CSI 부검이나 계좌추적을 떠올렸다. 과연 그 당시에도 그런 과정이 있었는지를 떠나, 현대판 퓨전 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아마 최근에 사극을 너무 많이 본 탓으로 해두자.

공맹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충효 이데올로기의 발현은 솔직히 말해서 감동적이다.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유교적 교육 시스템의 잔향이 아직도 몸에 남아 있는 탓인지 여전히 유효하게 다가오는 느낌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21세기 새로운 “충신”의 모습은 마르크 함싱어가 쓴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리더에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보좌관의 용기야말로 새로운 시대 리더십에 필요한 충(忠)이 아닐까. 군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면서도 동시에 자기 가문의 안위를 걱정하는 삼정승의 모습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었다고나 할까.

뭐니뭐니해도 정말 놀라운 건, 이 역사소설 <충신>을 외국인 마르크 함싱어가 썼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한국 사람이 중세 피렌체를 배경으로 해서 마키아벨리를 주인공으로 한 팩션을 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정말 다양한 언어의 구사력과 시대 연구가 병행하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글쓰기를 작가가 완수해낸 것에 대해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동시에 국내에서도 마르크 함싱어의 팩션에 필적할 만한 역사소설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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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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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 크리스 클리브의 이력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통해 그에 대해 알아봤다. 런던에서 태어나 카메룬과 버킹엄셔에서 자란 그는 2005년 데뷔작 <인센디어리>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리틀비>는 그의 두 번째 작품이자, 원래 제목은 <The Other Hand>였으나 올해 1월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우리나라에 소개된 제목처럼 <리틀비>로 출간이 됐다.

소설 <리틀비>는 영국 런던 서리 지역의 킹스턴 어폰 템스와 나이지리아 남부의 이베노 해변 사이의 5,000마일을 넘나드는 공간적 체험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템스 강 위의 킹스턴도 그렇지만, 나이지리아의 이베노 해변은 정말 천국보다 낯선 느낌이다.

제목에 나오는 리틀비는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두 명의 여주인공 한 명으로, 오일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고향 나이지리아를 떠나 영국으로 떠나왔지만, 밀항 도중 난민으로 경찰에게 잡혀서 지난 2년간 난민수용소에서 여왕의 언어를 배우며 지내온 경력의 소유자다. 한편, 또 다른 여주인공인 새라 서머스/오루크는 삼십 대 초반의 잡지사 편집자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다. 다만, 왼쪽 가운뎃손가락의 부재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크리스 클리브는 리틀비와 새라, 이 두 주인공의 시선에서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저자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전혀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목소리로 서사구조를 이끌어 간다는 점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새라와 새라의 남편인 유명 칼럼니스트는 2년 전 나이지리아 이베노 해변에서 경험한 끔찍한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크리스 클리브는 그 사건을 매개로 해서,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양손에 들고 저글링 묘기를 보여준다. 궁금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리틀비의 전화를 받은 앤드루가 끔찍하게 자신의 삶을 끝장냈단 말인가! 하긴 꼬리를 물고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점입가경이다.

사지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해서, 영국으로 도망친 리틀비는 언제나 ‘그들’에게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언제 어디서고 자살할 방법을 찾는다. 서구사회에 풍요를 안겨준 검은 황금 석유는 리틀비와 그녀의 가족에게는 재앙과 동일어로 작용한다. 소설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영국은 리틀비로부터 미래를 앗아가고, 그 대가로 리틀비들에게 과거를 돌려주었노라고. 여전히 그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지난 세기의 탈식민주의 논의와 새로운 삶을 찾아 신세계를 찾은 이들에게 상륙조차 허용하지 않는 옛 종주국 영국의 모습은 모순 그 자체다.

한편,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자부해 왔지만, 막상 예의 위기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앤드루와 새라 부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황이었다. 식민주의와 석유자원을 둘러싼 광의의 투쟁은, 부부간의 심각한 소통 단절을 겪고 있던 오루크 가족의 파멸로 대치된다.

소설의 2/3 정도 분량까지는 놀라운 집중력을 가지고 책을 읽을 수가 있었다. 마치 한 편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는 듯한 구성과, 리틀비와 새라가 교차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 도대체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라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설은 구멍 난 타이어마냥 그 동력을 상실해 버리고 만다. 그건 아마도 리틀비의 희망과 분노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노라는 독자로서의 무기력감 때문이었을까.

<리틀비>는 전작 <인센디어리>에 이어 영화로 제작될 계획이라고 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타인의 생명에 책임을 지게 된 새라 역을 니콜 키드만이 맡을 예정이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식으로 연출이 될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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