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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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마지막 날을 노리즈키 린타로의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를 읽으면서 마무리했다. 비채에서 2007년 4월 이래 계속해서 출간되고 있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의 20번째 작품으로 교토대 출신의 추리소설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의 작품으로는 국내에 두 번째로 소개됐다. 십 년 전쯤에 출간된 <두 동강이 난 남과 여> 못지않게 섬뜩한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국 출신의 소설작가로 프레데릭 대니와 맨프레드 리가 창조한 엘러리 퀸에 대한 오마쥬로 주인공의 이름이자 작가의 필명 그대로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을 한다. 추리소설 작가이자 아마추어 탐정인 노리즈키 린타로는 우연히 들르게 된 고등학교 후배의 사진전에서 가와시마 에치카라는 미모의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저명한 전위조각가 가와시마 이사쿠의 외동딸이란 걸 알게 되고, 그녀의 삼촌인 가와시마 아쓰시와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심각한 병을 앓고 있던 에치카의 아버지 이사쿠가 급사했다는 소식과 함께 이야기의 수레바퀴는 급회전하게 된다. 라이프캐스팅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딸을 모델로 해서 만든 조각상의 머리 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사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회고전을 주도하게 된 미술평론가 우사미 쇼진은 경찰에게 알리지 말고 조용하게 이 사건을 처리하자고 유족들을 설득한다. 그렇게 해서 린타로는 사건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린타로가 현장의 단서를 실마리로 해서, 핵심에 들어갈수록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에치카를 한 때 스토킹했다는 사진가 도모토 슌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는 가운데,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다. 예의 사건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는 자책에 시달리면서도 린타로는 수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가와시마 집안 내력에서부터 시작해서,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하는 우사미 쇼진의 숨겨진 의도, 그리고 이어지는 에치카 탄생 비밀에 이르기까지 진행형의 사건은 복잡하게 전개된다. 게다가 주인공 린타로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도모토 슌과 그의 내연녀 야마노우치 사야카에게 여러 차례 당하면서도 실낱같은 단서와 직감에 의지해서 담대한 수사를 펼쳐 나간다.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는 한 저명한 전위조각가가 남긴 유작 작품에 얽히고설킨 과거사를 파헤치는 구성이다. 각 장의 머리에 등장하는 루돌프 비트코어의 <조각의 제작 과정과 원리> 그리고 미술평론가인 우사미 쇼진의 입을 통해 독자는 조각이라는 전문적인 세계로 초대된다. 사실 조각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 같은 독자를 위해, 고대 그리스 이래 조각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실존 인물로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향해서 인체를 본뜬 석고상을 조각한 조지 시걸(George
Segal)의 아이디어를 빌려서, 아시걸(亞Segal)로 불리며 자신의 조각 세계를 구축했다는 가와시마 이사쿠의 조각 세계에 대한 설명 또한 일품이었다. 책 뒤편에 나와 있듯이, 작가의 리서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된 가와시마 이사쿠는 자신의 유작을 통해, 모두가 잊고 싶은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 이사쿠의 바람과는 달리 자신의 메시지가 다른 끔찍한 범죄를 유발한 가운데, 린타로는 조각나고 은폐된 단서들을 바탕으로 숨겨진 비밀과 음모를 파헤친다. 주인공 린타로는 공권력을 집행하는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작가는 친절하게도 그의 아버지를 경찰로 설정하는 치밀함도 빼놓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린타로가 공권력에 밖에 있기 때문에 자유인으로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

노리즈키 린타로 작가는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엘러리 퀸의 스타일대로,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에 많은 공을 들인다. 특히 린타로가 도모토 슌에게 허를 찔리고, 내연녀 사야카의 거짓말에 휘둘리며, 우사미 쇼진의 드라이아이스라는 전문적 지식을 동원한 공갈에 속는 장면에서는 주인공 역시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셜록 홈즈 같이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추리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온다. 적당히 용의자들에게 뻥을 치기도 하고, 정보원에게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인간적인 매력이 노리즈키 린타로의 소설에 재미를 더해 준다.

2005년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구성과 복선 그리고 주인공의 탁월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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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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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의 닉 혼비와의 세 번째 만남은 최근에 소개된 <슬램>이었다. 첫 번째는 소설 <하이 피델리티>를 영화화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였고, 책으로는 작년에 만났던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가 처음이었다. <슬램>을 통해 비로소 그의 소설과 처음 만나게 됐다. <슬램>은 닉 혼비의 다섯 번째 소설로 지난 2007년에 출간됐다.
 
<슬램>의 표지에는 이 책의 주인공 16살짜리 샘 존스가 존경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스케이트보더 토니 호크의 그림자와 샘이 동경하는 보드 무대인 하프 파이프가 조명과 함께 등장한다. 런던에 사는 십대 청소년에게는 무엇이 관심거리일까? 인터넷과 구글의 도움으로 그 어느 때보다 진척된 세계화의 도움으로 거의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듣기 위한 아이팟은 기본이고, 스타벅스 프라푸치노, 맥도널드의 햄버거 등등……. 좀 더 수위를 높이면 멋진 여자 친구 정도?
 
그런데 샘은 그런 걸 한 방에 다 뛰어넘고 생뚱맞게도 아기 아빠가 된다. 자신의 엄마도 샘을 16살에 낳았던가.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 마크는 존스 패밀리가 콩가루 집안이라는 선언을 한다. 물론 그런 마크도 콩가루 집안에 일조했다. 참, 샘의 엄마 애니도 임신했다!!! 참, 복잡하기 그지없는 설정이다.
 
작가 닉 혼비는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로 작정을 하고 샘의 우상 토니 호크의 힘을 빌려 샘과 그의 여자 친구 앨리시아의 1년 뒤로 미래로 그들을 위치 이동시킨다. 솔직히 부모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16살배기들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다는 설정은 황당하기만 하다. 게다가 샘은 앨리시아로부터 임신 소식을 듣게 될 것을 짐작하고 헤이스팅스로 도망가 버린다. 관계에서 빚어지는 즐거움은 취하되, 무언가 심각한 책임을 지게 될 상황은 회피하고 싶은 청소년의 심리를 닉 혼비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그저 래빗과 찌질이 같은 보드 친구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고 싶은 샘에게 아기 아빠라는 짐은 정말 상상할 수조차 없다. 게다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현재에서 미래로 간 샘은 자신의 아들 루프가 태어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을 체험하게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샘이 앨리시아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할 거라는 결심을 세우지 못하는 데 있다. 적어도 샘의 아버지는 그의 나이에 엄마와 결혼하지 않았던가. 비록 그 결혼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말이다.
 
작가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빠가 된다는 공황상태에 빠진 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어서 빨리 어른이 되어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싶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싶은 틴에이저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독자에게 보여준다. 십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가 스케이트 보더의 세계에 대해 세심하게 리서치를 했다는 점이 각주에 등장하는 보드 전문용어들을 통해 드러난다. 물론 번역의 힘을 빌리긴 했겠지만, 영국 십대들의 대화와 토니 호크에 대한 샘의 혼잣말 같은 하위문화에 대해 가감 없는 표현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미래에 무엇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청소년기의 불안이, 부주의한 섹스와 계획되지 않은 임신 그리고 아기의 출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닉 혼비는 <슬램>의 구성에 적절하게 조화시켰다. 게다가 토니 호크라는 샘에게는 멘토 같은 존재를 통해 청소년 샘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의 두려움과 책임감의 부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도움을 준다. 미래에 대한 플래시백으로 처리한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역시 닉 혼비 스타일답게 책 읽는 재미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닉 혼비의 최신작 <줄리엣, 네이키드>의 출간을 기다리며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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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1 열린책들 세계문학 136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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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대해 흔히 잘못 아는 사실 하나. 셰에라자드는 천 일 동안 술탄 샤리아에게 이야기를 해준 것으로 있으나 정확하게 말해서 1,001일 동안이란다. 나도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오리지널로 나온 <천일야화>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동안 영국 출신의 작가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가 오리지널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전에 앞서 프랑스 출신의 앙투안 갈랑이라는 이가 신비롭고 놀라운 환상의 이야기로 가득한 <천일야화>를 집필했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사실, 아마 갈랑이 혼자서 이 많은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으리라.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아랍어에 능통했던 갈랑이 중근동 지방을 여행하면서 남긴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천일 밤의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창조의 바탕에는 기존의 무엇인가가 자리하지 않던가.

이야기의 시작은 얄궂게도 오쟁이 진 두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샤즈난과 샤리아 형제는 페르시아(꼭 짚고 넘어갈 것이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니다!) 사산조의 왕자이자 술탄으로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훌륭한 군주로 칭송을 받았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던 이들에게도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들의 왕비들이 어이없게도 은밀하게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술탄 샤리아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에 불타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젊은 처녀를 왕비로 맞아들여 하룻밤을 보내고 어김없이 그 다음 날에는 죽여 버리는 것이다. 아 놀라워라, 한 사내의 맹목적인 복수심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이를 보다 못한 대재상의 큰딸 셰에라자드는 술탄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에 나서게 된다. 나서서 술탄의 왕비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만한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단단한 준비가 되어 있을 터, 자신의 동생 디나르자드까지 동원해서 매일 밤 동이 트기 전 무렵에 술탄에게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고 한편으로는 술탄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어이없는 복수심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앙투안 갈랑은 프랑스 독자들을 위해 원래 <천일야화>가 가지고 있던 외설적이면서도 잔인했던 부분들을 순화시켰다고 한다. 상인과 정령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천일야화>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환상과 마법이 어우러진 문학적 상상력의 향연이다. 고전 소설의 영향 탓으로, 다분히 교훈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면서도 그 재미를 잃지 않는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 샤리아의 심정으로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가 차마 자신의 부인이자 대재상의 딸인 그녀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연재 이야기에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 때문에 잠에 졸린 눈을 비비며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의 매력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17세기에 쓰인 책이라 그런지 어쩌면 그렇게 죄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왕이나 공주 같은 지위를 가진 선남선녀들인지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캐릭터의 픽업에 있어서는 최소한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등장하는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터부(taboo)들은 어김없이 깨진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경고는 하나같이 무시되고, 꼭 대가를 치르게 되는 터부 브레이크(taboo break)가 등장한다. 하긴 그런 금기들은 모두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세계 어느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금기들이 온전하게 지켜졌던가! <천일야화>도 그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일야화>의 전개에 있어 재밌는 설정 중의 하나는 셰에라자드의 동생 디나르자드가 해가 뜰 무렵에 꼭 자신의 언니를 깨워 술탄이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술탄이 왜 만사를 제쳐 두고서라도 그 재밌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지 굳이 밤에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갔다. 그런 독자의 의구심에 대비해서 갈랑은 술탄 샤리아가 항상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다는 교묘한 장치도 설치해 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셰에라자드의 기가 막힌 이야기 완급 조절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술탄을 호기심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면서도 유유자적하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낮 시간을 충분히 활용했던 건 아닐까?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드디어 신드바드의 대모험이 등장하게 될 2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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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의 자서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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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유년시절 기록을 읽는 것은 작품을 읽는 만큼이나 재밌었다. 나에게 아멜리 노통브의 유년을 망라하는 <배고픔의 자서전>은 그렇게 다가왔다. 2010년 2월, 노통브의 책에 옴팡지게 빠져 버린 나는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그녀의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물론, 신간이나 잘 나가는 책들은 예상대로 관외 대출 중이었고 서가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골라 집은 책이 바로 <배고픔의 자서전>이었다.

갑자기 생뚱맞게 웬 바누아투, 예전에는 뉴헤브리디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남태평양의 천국에서 그녀는 배고픔이라고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책을 읽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부족으로 아사자가 수없이 발생하는 지구별에 바누아투라는 지명만큼이나 낯선 공간은 풍요 그 자체다. 어떠한 부족함 없이 사는 바누아투 사람들에 비해, 작가는 채워질 수 없는 사랑의 부족으로 끊임없는 공복을 느낀다.

벨기에 출신 외교관 아버지를 둔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베이징, 뉴욕, 방글라데시,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에서 살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모 니쇼 상 밑에서 자란 그녀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일본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에 다녔다. 어려서부터 자유를 꿈꾸던 노통브는 설탕에 대한 아스라한 추억을 꿈꾸는 외국인 소녀였다. 작가라는 미래의 직업을 의식해서였을까? 획일화된 교육과 체제에 체질적인 반항심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예절과 부드러움으로 기억되는 5년간의 일본에서의 생활이 비해,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겪고 있던 베이징은 그녀에게 천국보다 낯설었으리라. 달달한 먹거리 사냥을 위해 베이징의 외국인 게토 산리툰의 곳곳을 서슴지 않고 털고, 그때 획득한 전리품이었던 스페퀼로라는 벨기에 단 과자 하나에 쾌락과 관능을 동시에 느끼는 조숙한 소녀이기도 했다. 부모님이 주최하는 파티에서 술 맛을 들인 그녀는 조금씩 유아 알코올 중독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편, 노통브의 베이징 생활은 그녀에게 평생의 지긋지긋한 반려자가 된 천식이라는 병을 제공하기도 했다.

일본과 중국에 이은 미국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자본주의 향연을 노통브 가족에게 선사해 주었다. 언니 쥘리에트와 아멜리 노통브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즐거운 8살, 9살 그리고 10살의 3년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동남아시아의 빈국 방글라데시로 가게 되면서 체험 극과 극의 현장에 도달하게 된다. 미국의 물질적 풍요와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의 빈곤은 정말 대조적으로 다가온다. 도대체 할 게 없었던 방글라데시에서 그녀는 훗날 자신의 글쓰기의 자양분이 될 엄청난 양의 독서를 개시한다.

열일곱 살에 비로소 조국 벨기에에 돌아와 대학 교육을 받은 그녀는 21살에 되던 해에 ‘내 나라’ 일본에 돌아가 사랑을 경험하고 본격적인 글쓰기에 돌입하게 된다. 그녀 자신의 유년기를 마감하면서, 추출작업이었던 글쓰기가 어느 순간 짜릿한 쾌락의 원천이 되어 버렸노라고 고백하면서 이 자서전을 마무리한다.

작가의 유년기를 통해, 나중에 그녀 작품의 모티브가 된 소재들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적의 화장법>에서 텍스토르 텍셀이 자신의 첫 살인으로 고백했던 어느 동료 학생의 죽음은 놀랍게도 그녀의 실제 체험이었다! 사랑도 자신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노라는 선언은 조금은 뒤틀린 방식으로 그녀의 데뷔작이었던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에 등장을 한다. 아직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다 읽어 보지 못해서 그 나머지 부분들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분명히 노통브의 유년시절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전작주의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좋은 점은 우선 그녀의 책 중에서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들이 많다는 점과 아직도 한창 나이인지라 계속해서 그녀의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름 행복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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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
고트프리드 뷔르거 지음, 염정용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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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비켜라! 스페인의 대찬 기사 돈키호테가 있다면 독일에는 허풍과 ‘구라’라면 전 세계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뮌히하우젠 남작이 있다. 더군다나 이 양반은 항상 자기 입으로 내뱉는 이야기가 조금도 거짓이 아니라며, 순도 100%의 진실이라고까지 한다. 당당한 그의 뻥에 그만 기가 질려 버릴 지경이다. 그런데 되새겨 보면, 그가 한창 신나게 뻥을 치던 시기가 21세기가 아니라 300년 전인 18세기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허풍이 먹힐 만도 하지 않았을까?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의 저자 고트프리트 아우그스트 뷔르거는 이야기꾼보다는 발라드 시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실존 인물인 칼 프리드리히 폰 뮌히하우젠 남작(1720~1797)을 모델로 해서 유쾌한 허풍으로 가득 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은 그의 조국인 독일에서보다 영국에서 먼저 유명세를 탔고, 자신이 주력했던 시보다도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진짜 뮌히하우젠 남작이 러시아군에 복무했던 시절의 이야기와 터키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체험담은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에 생생하게 실려 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소설에서 뮌히하우젠이 말하는 게 모두가 다 허풍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적 체험에 기초해서,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양념으로 적당하게 요리한 글맛이 아주 일품이었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동토의 땅 러시아는 여전히 유럽 세계로 편입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는 시각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폭설이 내린 날 말을 매어 두고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말이 교회 첨탑에 매달려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귀족들의 스포츠인 사냥을 즐기다가 오리 떼를 베이컨 한 조각으로 모두 잡았고, 자신을 공격하는 늑대의 아가리에 주먹을 내질러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정말 귀족들의 파티에서 아마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그의 뻥이 타인에게 악의적인 해를 끼치거나 그러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터키와의 전쟁에서는 날아다니는 포탄을 바꿔 타며 적 진영을 정찰하고, 터키 술탄의 포로가 되어서는 새끼줄을 꼬아 달에도 갔다는 황당한 설정은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후반부에 이어지는 바다 모험은 한층 더 스케일이 커진 뮌히하우젠의 허풍의 진수를 보여준다. 거짓말 보태지 않고 그 길이가 800미터나 되는 고래 이야기에, 두 번째 달나라 여행 그리고 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너끈하게 집어삼킨 바다 괴물 이야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뮌히하우젠의 허풍으로 가득한 여행 중에서 역시 최고의 이야기는 다섯 명의 용사들과 함께 터키의 술탄에게 그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공주의 토카이산 포도주를 대접한 이야기다. 우선 남작은 우연한 기회에 재주 많은 다섯 명의 용사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허풍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이 용사들이 가진 특출한 재주를 이용해서 누가 봐도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완수한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아무리 허풍이 센 뮌히하우젠이라고 하더라도, 지극히 어려운 내기에 이기기 위해서는 사이드킥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전해준다.

암흑의 시대였던 중세를 벗어나, 비로소 이성에 근거한 계몽시대로 접어들던 시기에 살던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보고 뷔르거는 이런 황당무계한 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건 아닐까?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달나라에 대한 상상이나 혹은 그 달에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창조적(혹은 타인의 것을 차용했을) 아이디어는 참으로 기발하기만 하다. 물론, 새끼줄을 꼬아 달에 도달한다는 그의 서술은 황당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힘으로 달에 가게 되었다는 본질을 비추어 볼 때 고트프리트 뷔르거의 상상력이 전혀 허무맹랑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풍선이 남작 뮌히하우젠>은 1989년에 <바론의 대모험>이라는 제목으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로도 발표됐었다. 과연 뷔르거의 소설적 상상력이 20세기 영화에서는 어떤 비주얼로 구현됐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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