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
알바로 무티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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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자로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에 대한 천착은 에두아르노 갈레아노에서부터 시작되어, 루이스 세풀베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로베르트 볼라뇨 그리고 드디어 알바로 무티스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영어 문화권의 글들보다 조금은 생소한 스페인문화권의 문학이 대할수록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절친이기도 한 알바로 무티스 역시 콜롬비아 출신 작가이다. 어려서부터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외교관 출신의 아버지 덕분에 주재국이었던 벨기에에서 자라면서 유럽 문화에 심취되었다. 그의 글에서 드러나는 유럽 편향적인 취향과 특히 나폴레옹에 대한 숭배를 그의 역작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을 통해 엿볼 수가 있다. 다국적 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사와 미국 영화사의 라틴 아메리카 총판에서 일한 다양한 경험이 그가 창조해낸 자신의 페르소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 잘 녹아 있다.

시와 산문을 주로 쓰던 알바로 무티스는 은퇴하고 나서야 비로소 소설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60대에 총 7편의 마크롤 가비에로 시리즈의 신호탄인 <제독의 눈[雪]>을 발표해서 문단의 이목을 받기 시작한다. 이번에 나온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는 그중에서 모두 세 편의 가비에로의 모험기가 실려 있다. 자, 이제 본격적인 글 읽는 방랑자 가비에로의 세상 주유기를 따라나서 보자!

가비에로의 첫 번째 탐험인 <제독의 눈>의 프롤로그에서 어떻게 해서 내(알바로 무티스)가 뱃사람 마크롤 가비에로의 일기를 입수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클리셰가 등장한다. 슈란도 강을 거슬러 올라가 목재소를 찾는 가비에로의 탐험이 글의 중심이다. 우리의 주인공 마크롤 가비에로는 쉴 새 없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지난 세기 지식인의 표상이라고나 할까? 가비에로는 영락없는 작가의 아바타로 움직인다.

<제독의 눈>은 명백하게 19세기 말, 콩고 탐험을 배경으로 한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을 연상시키는 가운데 “행복을 찾으려는 열정적인 소망”을 가진 이들의 탐험을 기술한다. 무티스는 차례로 가비에로가 승선한 배 위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가비에로의 일기 형식을 빌어 친절하게 나열해준다. 에스토니아 출신의 이바르와 교활하고 인내심 많으면서도 파렴치한 선장 일행은 끝없는 초록빛 밀림의 터널 속으로 뛰어든다.

몽환적 에로티시즘에 사로잡히고, 참호열에 걸려 죽을 뻔한 체험 그리고 디젤 엔진을 장착한 바지선을 타고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물줄기를 타고 가는 여정 가운데 가비에로는 끝없이 자신의 모험기를 기록한다. 오대양 육대주를 거침없이 누빈 그의 기록에는 왠지 모를 야생적 초연함이랄까, 그런 게 묻어 있다.

도무지 시간과 공간을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사실주의와 판타지의 결합이라는 라틴 아메리카 작품 특유의 주술적 리얼리즘의 향연이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알바로 무티스는 기존의 주술적 리얼리즘에, 자아의 섬망(譫妄)이 뒤섞인 에로티시즘이라는 미몽의 세계를 덧붙인다. 그는 보드카와 여자만이 구원이라고 적었던가? 시리즈마다 등장하는 구원의 여인상 1호는 플로르 에스테베스라는 여성이다. 어찌 보면 미련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첫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이 이어지는 연작에서 세세하게 드러난다.

결국, 가비에로의 슈란도 탐험은 총체적인 실패와 파멸로 끝나고 만다. 그 뒤에는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보지만, 그것조차 내러티브에 무슨 영향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대로,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무관심”과 해방된 강물의 에너지는 가비에로의 실패를 통째로 삼켜 버린다.

두 번째 소설인 <비와 함께 오는 일로나>는 <제독의 눈>에 비해 조금은 독자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슈란도라는 미지의 공간 대신, 파나마시티라는 최소한 우리가 알 수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해서 마크롤 가비에로는 기상천외한 사업을 벌인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 판탈레온 대위가 있었다면, <일로나>에는 우리의 주인공 가비에로와 그의 애인이자 동업자 일로나 그리고 약삭빠른 롱기누스 삼각편대가 손님을 기다린다.

폴란드와 마케도니아 출신의 부모를 가진 일로나는 중년의 여장부/여걸로 파렴치한 동지들과 함께 항공사 여승무원으로 가장한 ‘직업여성’들을 고용해서 고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사업을 구상한다. 가비에로는 그동안 금괴밀수, 무기수송 등 많은 위험천만한 일들을 해왔지만, ‘바빌로니아 여인들의 재주’를 이용한 이 사업만큼 스릴 넘치고 짭짤한 일은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가비에로를 기다리고 있는 결말은 역시나 비극적이기만 하다.

이 책에 실린 마지막 이야기인 <아름다운 죽음>에서 마크롤 가비에로는 라플라타 강과 탐보 산마루를 오가는 목숨을 건 모험에 나선다. 얀 판 브란덴이라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로부터 철로 건설계획을 제안받고 노새를 이용한 화물을 나르게 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위험이 가비에로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 시리즈에서도 어김없이 가비에로가 꿈꾸는 이상형으로 암파로 마리아라는 여성이 등장한다.

알바로 무티스의 마크롤 가비에로 시리즈에는 언제나 물이라는 이미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 생명의 근원이자, 공간 이동을 위한 매개체로서 물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가비에로의 방랑벽을 상징한다. 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전 세계를 상대로 맞짱을 뜬 방랑자 가비에로의 삶은 안정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가는 곳마다 꿈꾸는(아니 실제로 꿈일 수도 있다!) 여성과 염문을 뿌리는 그는 안식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방랑을 꿈꾸는 천상 뱃사람이다.

여성성에 대한 작가의 집착과 여성을 통한 구원이라는 전통적인 주제 역시 모험가 가비에로의 삶에 큰 발자취를 남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작가의 모성에 대한 동경이 몽환적 이상형에 대한 끝없는 희구로 재현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 주술적 리얼리즘 역시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서 빠질 수가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무티스가 쓰는 글의 공간적 배경은 모두 들어본 듯하면서도 생소하기만 하다. 실제로 세계를 주유한 무티스의 다양한 체험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그리고 유럽을 아우른다. 그가 이야기하는 지명의 향연은 가히 뒤쫓아 가기가 버거울 정도다. 자신의 체험을 마치 보고 묘사하는 듯한 사실주의와 나폴레옹 제국시대 장교나 볼리비아 혁명의 영웅 볼리바르 혹은 수크레 제독 같이 실존했던 인물들의 등장으로 범벅된 주술적 리얼리즘은 실존과 판타지를 위태롭게 오가며 독자를 미혹한다.

천하의 방랑자 마크롤 가비에로의 삶을 읽으면서, 작가 알바로 무티스의 삶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고국인 콜롬비아에 산 세월보다 타지에 산 시간이 더 많은 작가의 삶이 고스란히 <마크롤 가비에로의 모험>에 배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한참 늦게 도착한 무티스의 글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아니 주술적 리얼리즘이라는 표현 자체가 적어도 나에게는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또 다른 라틴 아메리카 작가를 알아 가는 과정에 즐거움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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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 2 열린책들 세계문학 137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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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를 만나고, 그야말로 밤을 새워 가며 책을 읽던 생각이 불쑥 떠오른다. 내친김에 2권도 바로 구매를 해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의 독서 스케줄 탓으로 절반가량 읽다가 접어 두었었다. 그러다가 어제 여유가 생겨서 나머지 부분을 마저 읽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열린책들 시리즈로 나온 <천일야화>는 각 권에 쪽수가 나오는 게 아니라 통권으로 해서 쪽수가 나오는가 보다. 인터넷으로 조회를 해보니 전 6권 해서 모두 2,000쪽이 넘는 분량이었다. 대단하다 정말, 천일 밤의 이야기가 일단 양에서부터 압도하는구나!

드디어 ‘천일야화’에 빠질 수 없는 신드바드의 모험 이야기가 등장한다. 바그다드에서 잘 나가는 부자로 알려진 신드바드는 모두 일곱 번의 모험을 통해 태양이 비치는 세계의 모든 나라를 여행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평범한 짐꾼에게 돈과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여 가며 들려준다. 누가 나에게도 그런다면 냉큼 응하지 않을까?

신드바드의 기이한 모험 이야기야 익히 들어서 아는 거고, 이번에 <천일야화>를 통해 접하게 된 신드바드의 모험에 대해서 나는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중세 상업자본주의에서 근대적 산업자본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던 17세기에 쓰인 이 글은 신드바드가 자신의 목숨을 건 모험을 하면서 점점 더 재산을 불리게 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이미 평생을 먹고 살만큼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신드바드는 왜 평안한 삶 대신에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그런 모험에 나서게 되는 걸까?

그것은 바로 채워지지 않은 부(富)에 대한 열망 때문이지 않았나 추론해 보게 된다. 세속의 욕망은 도저히 채워지지 않는 블랙홀 같은 것이다. 특히 당대에 동서양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엄청난 부를 쌓은 아랍 상인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신드바드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더 놀라운 사실 하나는, 신드바드는 자신이 살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어려서 본 만화에서는 신드바드가 어느 나라에서 잘 살다가 부인이 갑자기 죽고, 그 나라 풍습에 따라 순장의 위기에 처했을 때 타인을 죽여 가며 자신의 목숨을 부지했다는 말은 들을 수가 없었다. 이 두 가지 부분만으로도 기존에 위대한 모험가로 인식되었던 신드바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2권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꼽추 이야기에 나오는 기독교도 상인, 술탄의 납품상, 유대인 의사 그리고 재봉사의 이야기에는 명백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화자(話者)들이 모두 여난(女難)에 의해 신체훼손을 당했다는 점이다. 팜므 파탈의 전형적인 불세출의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인해 불행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여인이 아름답지 않았더라면 보통의 평범한 아가씨였다면 그런 치명적인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몹쓸 외모지상주의의 발호는 어쩔 수가 없는가 보다. 몇백 년 전의 이야기도 이럴진대 작금의 작태에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게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최고 권력자 술탄은 항상 이런 이야기들을 공적 문서에 기록하라는 친절한 분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부나방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미색에 홀려 재산을 날리고, 심지어 자신의 몸까지 상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만큼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에 내놓아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이었을까?

문득 술탄 샤리아에게 목숨을 구하기 위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셰에라자드의 심리상태가 궁금해졌다. 하루라도 이야기를 빼먹거나, 술탄이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게 만든다면 죽은 목숨이라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만약에 술탄이라면, 정사는 며칠 정도 물리고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내쳐 다 듣고 싶지 않았을까? 숱탄도 엄청난 책임감에 그리고 자제력이 놀라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저러나 당분간 읽을 책들이 차고 넘쳐서, <천일야화> 시리즈는 당분간 놓게 될 것 같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 <천일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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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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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노벨 문학상 발표 시즌이 되면 항상 단골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미국 출신 작가가 있다. 그의 이름은 필립 로스, 이상하게도 미국에서는 책을 내는 족족 베스트셀러 타이틀을 다는 그의 책을 우리나라 서점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에 비교적 최근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에브리맨>을 필두로 해서, 작가가 사랑하는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이 등장을 하는 미국 3부작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휴먼 스테인>이 출간됐다.

<휴먼 스테인>은 지난 밀레니엄 끝자락에 미국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클린턴 스캔들이 세간에 회자하던 1998년 여름을 그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콜먼 실크는 미국 매사추세츠 서부 버크셔 카운티에 있는 아테나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고전문학을 강의한 존경받는 학자다. 별 볼 일 없는 시골의 대학 학장을 지내면서 질풍노도 같은 개혁으로 동료 교수를 자극하고, 학생에게는 동기유발을 부여하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유태인 출신으로는 북미에서 처음으로 교수로 임용되고, 학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그야말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제 학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편안하게 노후를 맞이해야 할 콜먼 교수는 어느 강의 시간에 단 한 마디, 유령들(spooks)이란 말실수로 인해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학문적 경력과 동료 교수와 학생들에게 졸지에 인종차별주의자로 몰리게 된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던 중, 결국 평생을 같이한 동료이자 사랑하는 아내 아이리스를 잃고, 분노와 복수의 칼을 갈면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은둔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던 <휴먼 스테인>의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을 찾아오면서 콜먼의 숨겨진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휴먼 스테인>을 통해 아주 다양한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전개한다. 비아그라를 복용해 가면서 성을 즐기는 노년의 삶, 다인종사회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핫이슈 중의 하나인 인종문제 그리고 여전히 미국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아 있는 베트남전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월척 같은 소재들이 그득하다. 서로 엇갈리면서도 동시에 뫼비우스의 띠처럼 교묘한 접점을 빚어내는 필립 로스의 테크닉에 그만 감탄을 내지른다.

콜먼 실크는 아내의 사후, 우연히 만나게 된 문맹의 청소부이자 인근 낙농장에서 일하는 포니아 팔리와 바람이 난다. 일흔한 살의 콜먼은 때마침 시판된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 서른네 살의 포니아에게 빠져든다. 자력갱생이 아닌 화학물질에 의해, 연장된 쾌락에 자신을 내던져 버린 콜먼의 왕성한 정력은 1990년대 호황으로 스카이로켓처럼 치솟던 미국 경제의 자신감을 대변한다. 물론, 인생의 황혼기에 절정을 맞이한 콜먼의 쾌락은 어느 순간에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장치들을 동반하고 있다.

콜먼이 채용한 동료 교수 델핀 루의 협박편지는 댈 것도 아니다, 베트남에서 돌아와 난폭한 폭력으로 무장한 포니아의 전 남편 레스터는 잔잔한 수면 아래서 먹잇감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순간을 노리는 백상어 같은 존재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지옥 같은 전쟁터인 베트남에 다녀온 레스터에게 자기 아버지뻘인 유태인 교수가 자신의 전처와 뒹구는 상상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악몽이다. 오로지 살인을 위해 베트남에 파견되었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상실”이었다. 전쟁터에서는 동료를 처참하게 잃고, 본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아내를 차례로 잃는다. 레스터에게는 베트남의 정글이나, 자신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은 조국이나 다를 게 없다. 인간적으로 레스터의 분열과 집착이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다.

레스터의 가시적인 폭력이 현재진행형이라면, 콜먼이 평생을 숨겨온 자신의 위조된 정체성은 과거형의 시한폭탄이다. <휴먼 스테인>의 영화 버전을 보면 더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콜먼의 인종적 정체성(identity)은 바로 흑인이었다. 거의 백인에 가까울 정도의 흰 피부를 가졌지만, 그가 가족과 식탁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책에서 읽은 콜먼 실크의 정체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의 형 월트가 흑인으로서 점진적인 삶의 변화를 위해 싸웠다면, 콜먼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면서 백인으로 사는 길을 택했다. 물론, 그의 이런 놀라운 변신에는 셰익스피어와 정통 영어에 경도된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이 뒷받침되었다. 언어의 구사에서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콜먼이 인생의 황혼기에 설화(舌禍)를 입는다는 필립 로스의 설정은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한편, 서른네 살의 문맹 청소부와 바람이 난 콜먼의 성적 일탈과 <휴먼 스테인>에서 뺀질이 “윌리”로 통하는 클린턴의 그것은 기묘한 공명을 이룬다. 사실 클린턴의 바람은 그가 탄핵까지 갈만한 사유가 되지 않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가 저지른 더 큰 문제는 위증이라는 점이다. 당시 미국 국민은 대통령의 실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그 실수를 덮으려는 클린턴의 거짓말은 단호한 입장을 보였었다. 콜먼은 자신에게 씌워진 억울한 인종차별의 누명에 대해, 어쩌면 사과 한마디면 끝났을 수도 있을 사건에 그만 침몰해 버리고 만다. 그 내면에는 견고하게 구축된 자신의 위조된 정체성을 지키려는 그의 눈물겨운 노력의 흔적이 엿보였다. 물론 쾌락의 추구라는 수컷이 지닌 인간 본성을 작가는 놓치지 않는다.

주인공 콜먼보다도 더 흥미로운 존재는 바로 <휴먼 스테인>의 전지적 내레이터 네이선 주커먼이다. 아쉽게도 아직 읽어 보진 못했지만 필립 로스의 전작 <미국의 목가>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도 등장하는 이 저명한 소설가 캐릭터는 콜먼의 삶을 은근하게 추적한다. <휴먼 스테인>에서는 콜먼이 네이선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소설은 네이선의 내레이션과 콜먼의 독백으로 어우러진 교차 편집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필립 로스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확보하기 위해, 네이선을 기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지적 시점에서의 감정적 개입도 서슴지 않는다. 동시에 콜먼을 통해 곳곳에 ‘암호화된 고백’을 심어 놓는 치밀함도 보여 준다. 과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다웠다.

필립 로스와의 첫 만남은 확실히 기대 이상의 수확이었다. 인종문제라는 미국의 해묵었지만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슈를 톡톡 건드려 가면서,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잽을 날리는 작가의 내공에 감탄했다. 거기에 미스터리 요소 같은 재미를 위한 양념까지 쳐대는 데서는 정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간혹 까마귀 타령 같은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옥에 티 정도라고 해두자. 과연 다음번에 만나게 될 필립 로스의 책은 뭐가 될지 그야말로 로또를 기대하는 심정으로 차기작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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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빅터스 - 우리가 꿈꾸는 기적
존 칼린 지음, 나선숙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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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노벨평화상에 빛나는 남아공의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에 대해 뉴스 미디어를 통해 수없이 들어왔으면서도, 정작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늦었지만 존 칼린의 르포르타주 <인빅터스>를 통해 남아공 백인들이 ‘합법적으로’ 다수의 흑인을 억압하고, 갖은 폭력과 만행을 자행하는 근간이 되었던 악명 높은 아프리칸스의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데 앞장선 넬슨 만델라에 대해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조국 남아공과 그들이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럭비 경기(비록 백인들의 스포츠지만!)에 대해 알게 됐다.

나의 오해 한 가지가 더 있다. 그동안 남아공은 영국계 백인이 지배해 왔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백인 우월주의를 악착같이 주장했던 이들은 바로 네덜란드계 백인의 후손인 아프리카너(혹은 보어인)라는 사실이었다. 여러모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는 책이었다.

<인빅터스>는 넬슨 만델라의 인종차별정책 차별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과 훗날 그가 남아공의 대통령이 되어서 평화와 화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후원을 했던 아프리카너들이 그야말로 신줏단지 모시듯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럭비 경기에 초점을 맞춘다. 뉴질랜드와의 럭비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1995년의 시점에서 존 칼린은 플래시백 구성으로 남아공 흑인투쟁의 역사를 잔잔하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존 칼린은 먼저 럭비가 남아공의 지배계급이었던 아프리카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자에게 알려준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항구적인 생활터전을 마련했던 이민자들에게 조금은 거친 럭비야말로 그네들의 삶을 대변하는 스포츠 중의 스포츠였다.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종차별정책으로 그들과 대척점에 섰던 흑인들에게 럭비와 대표팀인 스프링복스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27년간의 기나긴 투옥생활을 통해 아프리카너를 이해하게 된 정치적 인간 만델라는 럭비라는 스포츠가 흑백대결로 갈라진 남아공 통합의 핵심적 요소가 되리라는 것을 간파했다.

<인빅터스>는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려서,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찾기 위한 남아공 흑인투쟁의 역사 속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1980년대 후반,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끝없는 비난과 자국 내 흑인들의 투쟁에 직면하게 된 P.W. 보타가 이끄는 남아공 정부는 마지막 수단으로 그동안 테러조직으로 간주해왔던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의장이자 상징으로 모든 남아공 흑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넬슨 만델라와 비밀협상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남아공의 백인들이 가진 생래의 불안감, 다시 말해 만약 1인 1투표제라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이 되는 국민투표를 했을 경우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흑인정권이 탄생하게 되리라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그들은 끝까지 자신의 기득권을 잃을 수도, 그동안 탄압받아온 흑인들에게 분노와 증오에 찬 복수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만델라는 정확하게 간파해냈다. 더 중요한 것은 500 만에 달하는 남아공 백인들을 껴안지 않고서는 국가존립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만델라의 탁월한 정치적 식견에 감복했다.

무장투쟁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백인정권으로부터 종신형을 선고받은 만델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기나긴 옥중생활을 통해, 자각한 아프리카너들과 함께 국가경영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만델라는 석방 후 지루하면서도, 일상처럼 벌어지는 폭력과 내전발발의 일촉즉발의 위기에서도 평정심을 지키면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라는 그야말로 기적을 일궈낸다. <인빅터스>의 후반부에서는 그가 어떻게 해서 럭비 경기를 재료로 삼아 국가통합과 인종화합이라는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냈는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공교롭게도 이달에 개봉한 동명 제목의 영화 <인빅터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메가폰을 잡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두 명의 배우인 모건 프리먼과 맷 데이먼이 각각 넬슨 만델라와 남아공 럭비 대표팀인 스프링복스의 주장인 프랑수아 피나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쳐 주었다. 원작 르포와 차이점이라면 책에서는 상당 부분이 만델라의 투쟁과 삶이 중심이었다면, 영화에서는 초반부의 뉴스영화 형식으로 그의 삶이 소개되고 대부분이 럭비 월드컵 경기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2010년 3월 좋은 책과 멋진 영화를 한꺼번에 만나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인빅터스(Invictus)는 라틴어로 ‘정복되지 않는’이라는 뜻으로, 영국출신의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가 1875년에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제목 한 번 기가 막히게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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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 씨
커트 보네거트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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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출간된 <마더 나이트>를 읽으면서 故 커트 보네거트 선생의 미출간 작들이 나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근 1년이나 지나서야 비로소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와 만날 수가 있었다. 또 다른 보네거트 선생의 책을 만나려면 새로운 1년을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길 바랄 뿐이다.

독일계 미국인으로 1922년에 미국 인디애나 주 인니애나폴리스에서 태어난 커트 보네거트는 시인, 소설가, 반전운동가 등으로 알려졌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로는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블랙 유머 그리고 ‘트랄파마도어’로 대변되는 조금은 황당한 SF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1965년에 그의 다섯 번째 소설로 발표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남북전쟁으로 거부를 축적한 로즈워터라는 가상의(혹은 실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가문의 엘리엇 로즈워터를 그 주인공으로 한다. 조상이 남긴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음에도, 엘리엇은 고향 인디애나 주의 로즈워터 군에서 의용소방대를 후원하며,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들을 돕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엘리엇이 아버지 로즈워터 상원의원에게는 도통 이해할 수 있는 꼴통 아들인 셈이다.

로즈워터 의원은 8,700만 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만든 로즈워터 재단을 통해 조상의 재산을 성공적으로 아들에게 상속했다.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는 아는 동생을 통해 어떻게 해서 미국의 부자들이 자신의 대 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부를 상속할 수 있게 만들었는가에 대해 듣고 난 후에, 그들의 부에 대한 탐욕에 그만 혀를 내둘렀었다. 물론 가능한 한 세금을 적게 내면서 말이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에서 보네거트는 타인이 어느 한 개인을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인간성이 아니라 그가 가진 재산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지적하면서 자본주의 천국 미국의 천박함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다 좋다, 우리의 엘리엇이 그냥 그렇게 인디애나의 시골에서 비록 “사마리안실조증”에 걸리긴 했어도 그런대로 평화롭게 살 수만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막대한 재산을 노린 로즈워터 재산의 법률 대리인 중의 하나인 노먼 무샤리란  파렴치한 변호사가 로즈워터 가문의 먼 친척인 로드아일랜드 로즈워터 가의 프레드를 선동질해서 재산 상속을 위한 법정 소송을 벌인다. 로즈워터 의원은 이 가증스러운 시도에 맞서,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인 자신의 아들 엘리엇의 정신이 말짱하고 로즈워터 가문의 상속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점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 중대한 임무를 개시한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보네거트 선생의 후기 작품에 등장하게 되는 SF적인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초기 작품이다. 물론 훗날 지속적으로 보네거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삼류 소설 작가인 킬고어 트라우트도 빠지지 않고 등장을 하기는 하지만, 가끔 황당하고 난감한 외계 행성 이야기보다 좀 더 리얼리즘에 가까운 풍자와 촌철살인의 블랙 유머의 아우라는 일품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 엘리엇이 인디애나 시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정신이상’으로 간주되는 사실에 보네거트는 주목을 한다. 전쟁이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이들이, 자자손손 그 부를 상속하기 위해 은행과 법률가들과 결탁을 해서 부의 영속화를 획책하면서도 빈부의 격차나 직업은 신이 정해준 것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요설로 보통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이 모든 것을 주무르는 세상에서는, 타인을 돕겠다는 유토피아적 사고가 일탈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백만장자 출신의 주정뱅이 자선사업가가 타인을 돕는다는 지고의 목적과 소방대에 대한 집착의 원인을 작가는 전쟁 중에 바이에른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마치 보네거트가 직접 체험한 드레스덴 대폭격의 체험으로 평생을 반전주의자로서의 삶을 산 것과 유사하다. 엘리엇은 모두 다 사랑하고 싶은데, 그가 속해 있는 계급은 물론 그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소설의 결말에서 그의 마지막 발언에 모두가 경악했던 걸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로즈워터의 유토피아적 사고와 로즈워터 가문을 둘러싼 이야기의 전개가 후반부로 갈수록 로드아일랜드 로즈워터와 노먼 무샤리의 도전 구도로 가면서, 글맛의 뒷심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찌하다 보니 커트 보네거트의 전작에 도전하게 되었는데,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의 다른 책들도 이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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