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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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래전에 MFA에서 봤던 피카소 초기작품 전시회가 생각났다. 사실 피카소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니, 그의 초기작 역시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대가가 되면 아마추어 시절의 작품들까지 덩달아 뜨고, 무수한 찬사가 쏟아지는 게 세상의 법칙이 아니던가. 2009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 19개의 중단편이 들어 있는 <저지대>를 나는 타이틀 <저지대>를 빼고 짤막짤막한 단편들부터 다 읽고, 후기와 노벨상 수상 연설문을 차례로 섭렵했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의 오랜 지배로 동유럽의 국경선이 애매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특히 헤르타 뮐러의 고향인 니츠키도르프가 있는 루마니아 서부의 바나트 지방은 세르비아-헝가리 그리고 루마니아 세 나라에 걸쳐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지역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복잡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 루마니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두 명의 독재자가 있다. 한 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 정권을 세워 히틀러의 동맹으로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온 안토네스쿠가 있고, 다른 한 명은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다. 두 명 모두 처참한 종말을 맞이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1982년에 처음 나온 헤르타 뮐러의 <저지대>는 역시나 차우셰스쿠 독재 치하에서 검열을 거치면서 몇 개의 단편이 빠졌었다고 하는데, 그 암울한 시대를 이겨낸 헤르타 뮐러의 문학은 새로운 천 년에 빛을 발하고 있고 반면 그녀를 핍박했던 독재자 내외는 무려 160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고 한다.

독일계 루마니아 출신의 헤르타 뮐러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지명의 루마니아라는 공간으로 독자들을 조심스레 인도한다. 책을 읽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의 조국에서 외국어를 말하면서 타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고 말이다. 분명히 여권에는 루마니아인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지만, 독일어로 가족과 이웃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전통 독일의 풍습에 맞게 살면서도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질감 말이다. 나중에 차우셰스쿠의 독재 치하에서 벗어나 독일에 정착하기 전부터 헤르타 뮐러는 독일어로 글을 쓰지 않았던가. 이방인으로서의 면모를 <저지대>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녀의 데뷔작에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저지대>에서는 루마니아 바나트 지방의 목가적인 풍광을 엿본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엄숙함 가운데서 느껴지는 가족들 간의 긴장감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수의사에게 뇌물을 먹여 가며 송아지를 도살하고, 집안일에 강박증을 가진 어머니는 빗자루질로 세월을 보낸다. 사람들 간의 관계 못지않게, 작가가 그리는 바나트 농촌 풍경에 묘사는 참 마음에 들었다. 헤르타 뮐러는 참새 둥지 하나, 고향 땅에 자리한 살구나무 한 그루에도 문학의 풍성한 세례를 부여한다. 그 땅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없이 어떻게 그런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저지대>에 이어 등장하는 <썩은 배>에서는 언니와 내가 목격하는 아버지의 부정에 대한 증언을 기록한다. 부정의 대상이 다름 아닌 이모라는 사실에 그만 경악하게 된다. <저지대>에서도 얼핏 내비쳤던 가족 내부의 긴장이 팽팽하게 묘사된다. 아버지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차에 싣고간 채소를 팔아 번 돈을 어머니에게 가져다주는 가장의 역할에 충실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금지된 터부에 도전하며 가정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로 지목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단편은 바로 <마을 연대기>였다. 천국보다도 더 낯설게 들리는 바나트 지방에 사는 독일계 루마니아 사람의 참모습을 볼 기회였다고나 할까. 독일계 조상을 둔 바그너 혹은 슈나이더 같은 그네들의 성이며, 교회-학교 그리고 시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바나트 독일 사람들을 접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차우셰스쿠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루마니아 산업 재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협동 혹은 국영농장에 대한 조심스러운 스케치도 인상적이었다.

개구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명백하게 전체주의 비밀경찰국가 루마니아를 빗댄 <의견>과 장학위원회라는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잉게 이야기를 그린 <잉게>에서는 헤르타 뮐러가 구사하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지금 읽는 <숨그네>에서도 그렇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증언문학의 순기능이 원활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첫 만남으로 한 작가의 작품세계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저지대>로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와 대가의 작품 세계에 발을 내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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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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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6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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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9 15: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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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7 1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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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디노의 램프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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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년에 수없이 많은 책이 출간되지만, 최근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루이스 세풀베다의 신간만큼 반가운 책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주에 고대해 마지않던 루이스 세풀베다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도대체 언제나 세풀베다의 책과 만날 수 있을까? 그야말로 몸이 달았다. 그리고 주말에 부러 대형서점까지 달려나가서 오매불망하던 세풀베다의 신간과 만났다. 같은 지구별에 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쓰는 글을 이렇게 기다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 같은 책쟁이의 즐거움이 아닐까.

세풀베다의 신간 <알라디노의 램프>에는 모두 12개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어느 이야기에나 누군가에게 바치는 헌사 같은 머리말로 시작한다. 작가가 너무나 사랑하는 공간인 지구의 끝 파타고니아를 필두로 해서,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산티아고, 함부르크, 카니발의 열기로 뜨거운 브라질에 이르는 세풀베다의 이야기가 마냥 부러웠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고, 뜨겁고 아련한 사랑을 품고 사는 이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굴 부러워해야 한단 말인가.

이제는 전설이 되어 버린 선댄스 키드와 부치 캐시디가 훔친 금화를 우연히 얻게 된 늙은 군인의 이야기로 세풀베다는 온갖 이야기가 뿜어져 나오는 알라딘의 램프를 문지른다. 뜻밖의 행운의 불꽃을 얻은 늙은 군인은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자신의 가족에게 줄 조금의 설탕과 차 그리고 사탕을 위해 그는 악당과 경관의 발길질을 감수했다. 그리고 세풀베다는 삶은 원래 그런 거라고 조용하게 되뇐다.

알렉산드리아의 호텔에서는 유령과 만나기도 하고,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곳에 자리한 정글의 호텔에서는 희대의 닭싸움꾼 마우리시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한 때 칠레와 페루에 막대한 부를 안겨 주기도 했던 새똥, 구아노를 캐는데 목숨을 걸기도 했던 중국인 이야기, 세상을 주유하던 거울쟁이, 실연에 지쳐 눈물 어항을 만들던 덴마크 남자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귀를 쫑긋 세우게 하는 마력이 발휘된다.

<딩동! 딩동! 사랑이 찾아왔어요>에서는 14살 어린 시절에 만난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다.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마를리라는 이름 하나, 시간이 흐르고 흘러 68혁명 시기에 동지로 다시 만나게 된다. 오호라, 운명의 끈이란 이렇게도 오묘한 것일까. 그 어린 시절에 들었던 <딩동! 딩동! 사랑이 찾아왔어요> 노래 가사는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놔주지 않는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법한 옛 추억에 대한 단상을 세풀베다는 잔잔하게 스케치한다.

<알라디노의 램프>에서 압권은 역시 <복수의 천사>와 <대성당의 재건축>이다. <복수의 천사>에서는 우연하게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독일 함부르크에 사는 칠레 출신 망명객의 이야기다. 단지 죽은 여자의 수첩에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경찰에게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그리고 걸려온 협박전화 때문에 경찰로부터 감시와 보호를 동시에 받는다. 나는 엉뚱하게도 자신을 보호하는 경찰로부터 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타박을 받기도  한다. 킬러와의 대면 그리고 클라이맥스가 스릴 넘치게 진행된다.

<대성당의 재건축>은 세풀베다의 최대 성공작 <연애소설 읽는 노인>의 후속편이다. 엘 이딜리오의 명물인 “예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과 치과 의사가 등장한다. 에콰도르와 페루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뚱보 읍장은 애국심에 호소해 보지만 밀림을 의지해서 사는 노인과 수아르족에겐 공허한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읍장이 아무리 떠들어 봐도 그들의 관심을 지금 공터에서 한창 구워지는 원숭이 고기로부터 돌릴 수 없다.

정글을 떠도는 서커스 단원들이 ‘일단 마셨다 하면 필름이 끊기는 술’ 프론테라를 섞은 음료를 곰에게 먹여 카누에 태운 이야기가 왜 그렇게 웃기던지. 전쟁 중에 폭탄으로 파괴된 대성당을 재건하는 치과 의사, 노인 그리고 콜롬비아 남자 갈란의 눈빛에서 그들만의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감을 읽을 수가 있었다.

북글을 쓰다가 난 왜 이렇게 세풀베다가 좋아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마도 작가의 인간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신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풍진세상을 아직도 이렇게 사랑하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에 매료되었나 보다. 읽을수록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멋진 글을 만들어내는 루이스 세풀베다의 문학여행이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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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공장 골목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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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에 대해서 예전부터 그야말로 귀에 못이 다 박히게 들어왔다. 얼마 전에 사무실 동료가 두 권짜리 <분노의 포도>를 읽을 적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통조림공장 골목>이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는데 그 책의 저자가 바로 미국 출신의 저명한 작가 존 스타인벡의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고 지난 주말 찾은 헤이리에서 책을 샀고, 바로 다 읽었다.

미국 출신으로는 6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이자 <분노의 포도>로 1939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샐리나스 출신의 스타인벡은 독일과 아일랜드 후손으로 생전에 모두 27권의 책을 썼다. <통조림공장 골목> 역시 그의 고향인 캘리포니아 몬터레이 캐너리 로(Cannery Row:소설의 원제목이기도 하다)를 그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로 탈바꿈했지만, 스타인벡이 그리는 캐너리 로는 한창 경기 좋던 시절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들어서 있던 우중충한 동네였던 것 같다.

일상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에누리없이) 공급하는 리청의 식료품점에서 스타인벡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요즘에는 리쿼 라이선스가 없으면 팔 수 없는 술도 그 시절에는 식료품점에서도 취급했는지, 동네 주당들은 리청의 가게에서 위스키도 외상으로 가져다 먹는다. 동네 날건달들인 맥 패거리가 리청을 협박하다시피 해서 살게 된 팰리스 플롭하우스 앤든 그릴 그리고 도나 플러드가 운영하는 점잖은 여인네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만, 필요악인 유곽과 베어 플래그가 소설의 주요 공간이다.

아, 거기에 웨스턴 생물학 연구소에서 거주하며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닥을 빼놓을 수가 없다. 이렇게 차례대로 공간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마친 스타인벡은 상류층의 화려한 삶이나 그들의 삶을 동경하는 소시민들의 삶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그려 나간다.

책을 읽다가 문득 맥 패거리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그들은 정상적인 일자리를 얻지 않고, 항상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혹은 리청의 가게에서 외상을 얻어먹거나 혹은 닥으로부터 돈을 뜯을 궁리만 하는 걸까 하고 말이다. 나중에 닥이 자신의 친구에게도 설명하다시피, 그들을 위한 변명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냥 그들은 보헤미안 같은 삶을 원하는 게 아니었을까.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채, 하루의 삶을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맥 패거리가 사람 좋은 닥을 위해 파티를 준비해 주겠다고 개구리 사냥을 나서서 우연히 만난 대장과 함께 밀주를 마시고 흥청거리는 장면이 계속해서 눈에 어른거린다. 리청에게 빌린 고물 트럭을 간신히 고쳐서, 개구리 사냥을 나선 맥 패거리가 길에서 수탉을 치고 그 닭으로 개구리사냥을 하기 전에 닭고기 스튜를 해먹고 떠들썩한 그들만의 파티를 벌이는 장면이 참 유쾌했다. 비록 그들이 사회로부터 불한당이라는 말을 들을진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붙인 주홍글씨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다 자신만의 삶의 모습이 있을 텐데,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재단하는 게 과연 정당할까?

이런 몬터레이 특유의 공동체적인 삶의 진가는 인플루엔자가 도시를 덮쳐, 병든 사람들을 간호할 일손이 부족해졌을 때 도나 플러드와 그녀의 동료가 기꺼이 이웃들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사람들은 그녀들에게 손가락질하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그런 위기상황에서 그들을 돕는 건 부유한 공장장이나 회계사들이 아닌 바로 자신의 이웃들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의 미국에도 그런 정신이 남아 있는진 모르겠지만, 스타인벡이 그린 반세기 전의 미국에는 그랬었나 보다.

맥 패거리의 개구리 사냥과 실패한 닥을 위한 파티로 싸한 분위기가 돌기도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다시 닥을 위한 성대한 생일 파티를 준비한다. 몬터레이 특유의 ‘유익한 영향력’이라고나 할까? 맥 패거리는 닥을 위해 암고양이로 수고양이들을 생포하고, 도나의 아가씨들은 조각 이불을 준비한다. 화가이자 스케이터 앙리는 그림을 선물로 준비하고, 개구리 사냥을 나섰다가 가막소에 들어간 게이도 보안관과 거래를 해서 파티에 참석한다.

닥을 위한 파티는 예상대로 아수라장이 되지만, 그들은 모두 즐겁다. 핑계는 닥을 위한 파티였지만, 모두가 함께 어우러지는 한마당이었다. 부도 권력도 그리고 명예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지만, 행복하고 싶다는 인간 공통의 욕망에는 차이가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그저 재미가 있으면 그만이지 않은가. 탁월한 이야기꾼인 스타인벡은 바로 그 재미의 고갱이를 쭉 뽑아 올린다. 역시 대가다운 필력이었다.

<통조림공장 골목>의 후속편인 <달콤한 목요일>에도 곧 도전할 계획이다. 이 소설은 1982년 데이빗 워드 감독의 연출로 닉 놀테와 데브라 윙거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쉽게 구해볼 수가 없다. 아,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몬터레이 캐너리 로를 찾아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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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정도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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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스벤 헤딘의 전기를 읽고서, 사막의 황량함을 사랑하게 됐다. 어린 시절 사막 행을 꿈꾸던 나는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막을 체험할 기회를 얻게 됐다. 처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호주에서 사막을 꿈꾸었다. 하지만, 내가 본 사막은 헤딘이 들려준 무한 모래사막이 아닌 붉디붉은 흙 사막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정도상 작가의 신작 <낙타>를 통해 다시 사막과 만났다. 표지를 장식한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사막 위에 있는 낙타 사진에 문득 십수 년 전의 추억이 피어올랐다. 작가가 인도하는 사막은 바로 몽골에 있는 고비 사막이다. 그가 사랑하는 아들 규와 함께 삼천 년전 흉노족 전사가 그린 태양사슴의 암각화를 보기 위해 부자는 험난한 모래사막의 테비시를 찾아나선다.

사막여행의 동반자 규는 공부와 대학입시라는 잔혹한 경쟁을 통해 밥과 꿈을 동시에 이루라는 부모의 닦달에 시달리는 수많은 21세기 대한민국 청소년의 초상이다. 하지만, 규는 공부 대신 그림을 그리며 자유의지를 꿈꾼다. 그가 그리고 싶은 그림 역시 대학입시의 방편으로 여겨져 설화석고상을 그리라는 강압적 상황에 내몰린다. 삶의 모든 가치가 물질적 성공으로 환원된 우리의 끔찍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가 황량한 사막과 초원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품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누구라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멘트 정글이 아닌, 자연과 사람이 서로 조화와 합일을 이루는 몽골 초원의 법칙을 따르고 싶지 않을까. 규와 양의 대화를 통해, 양이 사람이 기른다는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을 체험했다.

초원의 법칙에 바로 적응한 아들 규와는 달리 도시의 허접하고, 의미 없는 소음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무한의 자유가 주어져도 주체할 수 없는 우리네 모습을 엿본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서 일탈을 꿈꾸면서도, 막상 그 일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마는. 그 정도로 우리는 시멘트 정글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몽골 초원에서 길을 잃은 부자는 불량, 소심 낙타와 잠깐 동행하기도 하지만, 낙타들은 그들의 곁을 무시로 떠난다. 우연히 만난 조르흐, 체첵 부녀와 암각화를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한다. 규는 또래 몽골 소녀 체첵과 어울리며 자아를 되돌아본다. 솔롱고스인의 눈에는 그들이 삶이 남루해 보일진 모르겠지만,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는 그들이 나의 눈에는 더 행복해 보인다.

절대 고독과 황량함에 매료되어 사막을 찾은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위로와 안식이 아니다. 모래폭풍이 휘날리는 사막은 인간의 삶을 희롱하며, 어설픈 낭만 대신 자아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아는 건 무엇이었나라고 묻는 아버지의 깊은 회한이 묻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사랑은 아름답고 열렬할수록, 치명적이라고 했던가. 작가는 규와 몽골 소녀 체첵과의 대화를 통해, 그 사랑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랑이었는지 묻는다. 자기만족적인 사랑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을 위한 사랑이었느냐고 말이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앵무새처럼 떠들어 대면서도, 정작 자신이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망설이는 세태가 떠올랐다. 삶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망각이라는 손쉬운 선택을 한 우리의 업보일까. 아니면, 꿈과 희망 때문에 그렇게 지쳤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사랑의 주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가 말하는 추억은 과거 어느 특정한 순간을 아름답게 편집한 새로운 기억이라고 한다. 낙타 걸음으로 과거의 애상을 시나브로 보듬는 주술의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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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서브 로사 3 - 카틸리나의 수수께끼 로마 서브 로사 3
스티븐 세일러 지음, 박웅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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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까지 단편집을 포함한 12권이 발표된 스티븐 세일러의 로마 공화정 말기를 다룬 추리 팩션 <로마 서브 로사>가 드디어 본 궤도에 올라선 기분이 들었다. 지난 1권과 2권에 이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더듬이’ 고르디아누스는 17년이라는 세월이라는 흐르면서 예전의 예기는 떨어졌을지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좀 더 인간적인 면모로 그리고 훨씬 더 익숙해진 모습으로 다가왔다.

고대 로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누굴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여사는 바로 이 인물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대작을 썼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바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리즈 3탄인 <카틸리나의 수수께끼>에 등장한다.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진행되던 역사의 흐름에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그리고 키케로를 빼고서는 어떤 이야기도 되지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궁금해하던 차에, 자신이 살던 집을 이제 양자가 된 에코에게 물려 주고 지기 루키우스 클라우디우스의 유산으로 증여받은 시골 농장으로 낙향한 고르디아누스는 전원의 목가적 삶을 꿈꾼다. 하지만, 사방으로 클라우디우스 가문의 영지에 포위된 그의 농장 생활은 고단하기만 하다. 선대로부터 농장을 책임져온 농장장은 사사건건 주인과 부딪히고, 가장 중요한 건초 농사는 신통치가 않다. 하지만, 정작 위협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로부터 다가온다.

클라우디우스 가문과의 상속 재판에서 고르디아누스의 손을 들어준 집정관 키케로는 자신의 대리인 카일리우스를 통해 거절할 수 없는 청탁을 해온다. 당시 민중파의 지지를 받고 있던 명문 귀족 카틸리나에게 거처를 제공해 주라는 것이다. 자칭 로마 정치의 혐오론자라는 고르디아누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자신이 영위하는 전원의 삶에 파문을 던질 예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지만, 어디 세상 일이 그렇던가. 울며 겨자 먹기로, 카일리우스-키케로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고 이어지는 네모와 포르펙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스티븐 세일러의 이번 이야기에서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카틸리나다. 종래의 기득권층 옵티마테스의 편에서 선 키케로에 대적해서, 카틸리나는 로마 공화정의 본질로 돌아가 무산대중에게 토지를 배분하자는 개혁을 주장한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주장이 기득권층에게 씨가 먹힐 리가 없다. 당시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스티븐 세일러는 이런 카틸리나에게 역사의 기록과는 달리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고르디아누스는 2편에 등장한 노예 소년 메토를 면천하여 두 번째 아들로 들이는데, 이 메토와의 갈등 역시 <카틸리나의 수수께끼>를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소다. 16세가 되어 이제 막 토가를 입는 성인식을 치렀지만, 중년의 고르디아누스에게 메토는 여전히 어린 아이일 뿐이다. 카틸리나를 지지하는 로마 청년들이 그랬듯이, 메토 역시 카틸리나의 대의를 따르기로 한다. 이미 치명적인 정치적 패배를 당한 카틸리나를 따르는 메토의 모습에서, 진실을 추구했던 고르디아누스 청춘의 그림자가 얼핏 비치는 것 같았다. 살아가면서 회의론자가 된 그의 눈에 과연 철부지 메토의 행동이 얼마나 무모하게 비쳤을지 불을 보듯 뻔하다.

스티븐 세일러는 자신의 팩션에서 로마 역사상 최고의 변호사라는 키케로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로마 공화정 최고위직인 집정관의 자리에 오른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그리고 있다. 기존의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닌 정치 신인이라는 콤플렉스를 가진 키케로는 과연 존재하지도 않았던 카틸리나의 국가 전복 음모를 조작했을까? 그렇게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역사의 빈틈을 작가는 예리하게 파고든다. 이 부분이야말로 팩션 장르가 갖는 참맛이 아닐까?

<카틸리나의 수수께끼>에서는 1권과 2권 같이 고르디아누스가 자객의 습격을 받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위협은 보이지 않지만, 대신 네모와 포르펙스 등의 시신을 통한 간접 경고가 옥죄어 오는 압박과 도대체 누가 이런 음모를 꾸몄는가에 대한 작가의 교묘한 플롯 배치는 정말 탁월했다. 물론, 대단원에서 기다리는 반전 역시 일품이었다. 아무도 믿지 마라!

스티븐 세일러가 그리는 역사의 패배자 카틸리나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접근과 새로운 해석이 인상적이다. 역사적 인물로 이제 막 등장한 대신관 카이사르가 무난하게 <로마 서브 로사>에 연착륙한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제까지 고르디아누스의 일인극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에코와 메토까지 가세한 고르디아누스 가족의 이야기로 확대된 이 시리즈가 어디로 나아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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