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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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파트 원


세계문학 고전 <나귀 가죽>으로 처음 발자크를 만났다. 그리고 발자크의 찐팬으로 거듭나는데에는 많은 시간과 발자크의 작품에 대한 밀도 높은 이해가 필요했다. 발자크를 읽으면서 나는 19세기 프랑스/파리 사회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발자크에 버금갈 만한 또다른 천재 슈테판 츠바이크의 미완성 유작 <발자크 평전>은 위대한 소설공장장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길라잡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계의 나폴레옹 같은 존재였던 발자크는 왕정과 혁명, 제정 그리고 다시 왕정복고라는 격변의 시기를 그 누구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를 위대하게 만든 건, 발자크의 천재성이 아니라 어쩌면 그가 살았던 시대일 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발자크와 같이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아니었으리라. 오노레 드 발자크는 “19세기 풍속화가였고,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시대와 영합한 문학 천재에 대한 일대기다.

 

유년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지 못했던 오노레 발자크는 평생을 어머니의 그늘에서 살아야 했다. 그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다가 자살을 하는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역시 혈육인 어머니였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어머니에게 냉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마냥 어머니를 욕할 순 없지 않았을까. 이 시절 그가 학교에서 당한 체벌과 어머니의 잔소리타령은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 <루이 랑베르>에 잘 나타나 있다. 사실 지금 이 평전과 <루이 랑베르>를 병행해서 읽고 있는데, 다시 한 번 츠바이크가 얼마나 대단한 전기 작가인지 여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법학 공부를 하던 발자크는 자신이 미래에 서기나 공증인 같은 평범한 삶을 살기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그리고 대학을 마치고 나서, 농부의 아들 출신으로 나폴레옹 제정 시절에 한몫 잡은 아버지와 거래에 나선다. 이십세의 나이에 2년 동안, 작가의 길을 걷는 동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약관의 나이에 세상살이를 알면 얼마나 안단 말인가. 가족 앞에서 처음으로 쓴 희곡 <크롬웰>을 발표했지만 그의 첫 창작 시도는 재앙으로 귀결됐다. 그렇다고 선천적 낙관주의와 성공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지닌 남자가 포기할 리가 만무했다.

 

어떤 장애도 없이 계속해서 글을 생산하기 위해 발자크는 돈 많은 과부과의 결혼을 갈구했다. 평소 계산에는 서툴렀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빠삭한 남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그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실천에 이루기 위해 발자크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않는다는 어떤 작가처럼, 자신의 체험을 소재로 삼았던 건 아닐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결국 그의 첫사랑은 드 베르니 부인이라는 자신의 어머니 뻘의 여성이었다. 위대한 시인이 되길 원하는 이 남자는 성공의 사다리를 타기 위해 뻔뻔함으로 무장한 그야말로 속물 그 자체였다. 발자크는 평생 동안, 자신을 보살필 수 있는 재력과 넉넉한 여유를 지닌 귀부인들과의 결혼을 꿈꾸었다. 미래의 배우자가 지닌 재력이 자신의 멈추지 않는 창작의 바탕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던 게 아니었을까.

 

청춘 시절의 발자크는 돈이 필요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종류의 글쓰기 의뢰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초반에는 자신의 이름을 걸지 않고, 표절과 짜깁기 등 그야말로 글쓰기에 있어 가능한 모든 글들을 그야말로 초인적 정력으로 완수해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을 담지 않은 글들의 퀄리티가 보장될 수가 있었을까. 아마 나중에 대가가 된 다음에 자신의 글을 보게 되면 너무 쪽팔리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발표한 글은 지울 수가 없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는 걸 미래의 위대한 작가가 모르진 않았겠지.

 

제법 글쓰기로 돈을 만지기 시작한 발자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출판사와 인쇄업에 손을 댔다가 크게 한 탕 해먹는 대신, 상상을 초월하는 빚을 지게 된다. 아니 젊은 친구, 너무 세상을 만만하게 본 건 아니구? 발자크는 손절이라는 걸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나 싶다. 망한 사업을 뒤집기 위해 또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시원하게 들어먹기를 반복한다.

 

낙관주의와 무지막지한 성공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친 결점투성이 작가에게 투기는 도락 중의 하나였다. 돈을 벌기 위해 그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불멸의 글쓰기를 글을 써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시포스의 숙명 같은 ㅇ숙명에 처했다. 인쇄소 사업의 실패로 그는 자그마치 10만 프랑에 달하는 거금의 빚을 지게 됐다. 빚쟁이를 피해야 했던 발자크는 파리 외곽의 조용한 은신처를 마련했다.

 

그의 작품들이 세간의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천박한 발자크의 품성은 폭주하기 시작한다. 지독한 왕당파였던 그는 귀족 칭호를 받기 위해서라면 양심을 파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독한 속물근성의 소유자가 바로 발자크였다. 이십대에 구축된 저질문학을 남발하면서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똥구덩이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면 정신을 좀 차리고 겸손하고 자신의 분수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도 발자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삶이었던 모양이다. 빚쟁이 주제에 남에게 꿀리는 삶은 살고 싶지 않았는지 버는 족족 사치스러운 물건을 사들이고,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면서(요즘으로 치면 고급 승용차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하인들을 부렸다. 이 정도면 구제불능의 인사가 아닐까 싶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에서 나락으로 떨어졌을 텐데, 우리의 위대한 작가 발자크는 확실히 남다른 멘탈의 소유자였다. 연애에서도, 창작에서도 발자크는 계속되는 실패에도 도무지 포기할 줄 몰랐다. 까마귀 깃털 펜과 소탈한 잉크 병 그리고 두툼한 종이 뭉치를 무장한 발자크는 오밤중에 깨어나 동이 틀 때까지 글쓰기를 전념했다. 일단 발자크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체험한 숱한 연애의 실패(그는 추한 얼굴의 뚱보였다고 한다), 가족들의 냉대 그리고 채무자들에게 시달리는 간난신고는 발자크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쇠는 두들겨 맞을수록 단단해진다고 했던가. 보통의 유리 멘탈이었다면 벌써 가루가 되었겠지만 발자크는 이런 고통의 시간 동안, 자신의 대표작들을 다수 창조해냈다. 놀랍지 않은가.

 

혁명과 전쟁, 왕정복고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펼쳐지는 인간 드라마는 발자크의 위대한 업적인 <인간희극>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아니 인간 그 자체가 발자크에게는 마르지 않는 무궁무진한 그런 소재였다. 청년 시절, 숱한 저질문학 글쓰기로 강철처럼 단련된 발자크는 이제 드디어 진정한 시대정신을 담은 걸작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날림으로 공장처럼 글을 찍어내던 이가, 극적 탈바꿈을 통해 그 누구보다 완벽한 작품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여주었다.

 

발자크는 자전적 소설 <루이 랑베르>로 드디어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괴테가 <파우스트>는 쓰는데 60년이 걸렸다면, 발자크는 이 걸작을 단 6주 만에 쓰는 괴력을 과시했다. 물론 <루이 랑베르> 역시 출판업자들의 등쌀에 못이겨 후반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이다. 드디어 작가로서 완숙기에 접어든 발자크는 <샤베르 대령><외제니 그랑데>에서 절정의 기량을 펼친다.

 

바로 이 때, 발자크에게 모르는 여인이 등장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팬레터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사는 공작부인이 등장한 것이다. 훗날 에벨리나 폰 한스카 부인으로 알려진 이 인물은 속물덩어리 인간 발자크의 욕망, 그러니까 백만장자 귀족 부인이라는 타이틀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그런 존재였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고작 서너번의 서신으로 망상가이자 금사빠인 발자크는 한스카 부인에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낭만주의 사조와 역사소설이 판을 치던 19세기, 독자들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생산해내는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길 바랐던 모양이다. 이런 마당에 발자크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스캔들의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어떤 면에서 발자크는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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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절반을 읽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일단 절반의 리뷰를 작성해봤다.

순전히 나의 망각에 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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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11-11 0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었는데 아직 엄두를 못내던 책이었는데 이렇게 요약해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잘 읽었어요~ 나머지 절반의 리뷰도 기대할게요 ~~^^

레삭매냐 2022-11-11 11:47   좋아요 1 | URL
발자크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루이 랑
베르>를 읽고 있는데 아주 술술~
이랍니다.

열심으로 읽고 나서 절반도 써보
겠습니다.

stella.K 2022-11-11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메삭님 서재에서 제가 읽은 책을 발견하는군요. ㅎ 하도 오래전에 읽어 기억은 안 나지만 그가 커피중독자라는건 유명하죠.

레삭매냐 2022-11-11 11:4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발자쿠 선생은 지독한
커피마니아였다고 하네요.

그의 수명을 빼앗아 간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수면부족과 커피
라고 츠바이크는 쓰고 있습니다.

저도 끝까지 읽고 나서 리뷰쓰기
에 들어가면 다 이자 뿌릴 것 같
아서 일단 반절 리뷰만 작성해
보았습니다.

coolcat329 2022-11-11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자크 정말 멘탈 갑이죠.
그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

레삭매냐 2022-11-11 20:26   좋아요 0 | URL
읽을 수록 뭐 이런 닝겡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멘탈갑
이더라구요.

아니 어쩌면 그런 결점 때문
에 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문제적 작가가 아닐까 싶습
니다.

서니데이 2022-11-11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998년에 출간된 책이네요. 요즘에는 몇 년 되지 않아도 절판되거나 품절되는 책이 많은데, 오래 지속되는 책을 보니 좋네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푸른숲 출판사에서는 인문서 많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날씨가 따뜻해서 좋은데, 공기가 나쁜 편이예요.
레삭매냐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11-12 08: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20년도 전에 출간된
책이 아직도 살아 있는 걸
보면 츠바이크 <발자크 평전>
의 위력을 알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날이 좋았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프레이야 2022-11-11 2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루 50잔의 커피를 마셔가며 돈을 벌기 위해 죽으라고 원고를 썼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이랑 루이 랑베르 끌리네요. 위장이 괜찮았을까요. 통장에 돈 꽂히면 무슨 연기라도 열심히 하게 돼있다던 어느 여배우 말이 생각납니다. 절반의 리뷰이지만 구미가 당깁니다. ^^

레삭매냐 2022-11-12 09:00   좋아요 1 | URL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가량 글을 썼다고 하더라구요.

평균 하루에 16페이지 정도를
쓰곤 했다고 하는데, 가히 소설
공장이라는 별명이 정말 어울
릴 정도의 초인적인 생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른 나이에 별이 되었지요.
 
페넬로페 - 전쟁터에서 돌아온 여자
주디스 바니스탕델 지음, 김주경 옮김 / 바람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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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은 주로 도서관에서 보곤 한다. 지난 주말에 빌려온 유디트 바니스텐달의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을 읽고, 다른 책도 보고 싶어졌다. 우리동네 도서관에서 멀리 있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거까지 가기가 버겁다. 이럴 때 이용하는 게 바로 상호대차다. 어제 바로 연락이 왔다, 책이 도착했으니 가져가라고.

 

닭갈비로 저녁을 먹고 바로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발자크의 빌려서 못 읽고 결국 산 책 하나랑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은 반납하고 희망도서 두 권과 <페넬로페> 그리고 발자크의 <루이 랑베르>를 빌렸다. 분명 집 어딘가에 있을 텐데... 도무지 못 찾겠어서.

 

아직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읽지 않아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보니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의 마누라 이름이었던가. 태양의 신의 소를 잡아먹어, 오디세우스의 동료들은 모두 죽고 혼자만 살아서 이타카로 귀환했다지. 그래픽노블의 주인공 브뤼셀에 가족들이 서식하는 페넬로페 역시 시리아 내전의 아비규환 속에서 집으로 귀환한다. 자신이 수술을 집도하다가 죽은 소녀의 유령을 매달고.

 

섬뜩하다고? 뭐 그럴 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는 어디에나 있다. 최근에 벌어진 참사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페넬로페는 시리아에서 4년 만에 돌아왔다. 그동안 십대 소녀 딸 엘렌은 생리를 시작했고, 페넬로페보다 5분 먼저 태어난 언니 마야(미아?)는 자신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남편의 외도를 외면한다. 그리고 시를 짓는 남편 오토와의 관계도 서먹서먹하기만 하다.

 

가족들의 걱정과 염려에도 불구하는 페넬로페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황소고집 같은 뚝심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고향에서 이역만리 먼 땅에서 실천하다. 내전으로 산산조각이 난 땅에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리는 일에 전념한다. 인류를 위해 이바지하는 위대한 외과의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렇다고 면제 받는 건 아니라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3개월의 휴가 끝물에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본인은 원하지도 않는 명절을 가족들과 보내는 시늉을 하고, 모두 해산하자 드디어 언니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딸 엘렌은 그전에 머라이어 캐리의 유명한 캐롤송에 자신이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 엄마에게 송신한다. 남편 오토는... 잘 모르겠다. 지난 십년 동안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삶에 대해 그는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뭐 우리네 삶은 그렇게 흘러가는 거겠지. 누군가는 인류를 위해 그런 이바지를 하고, 또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저녁 시간을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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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0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1-11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11-11 0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저 인가요? ㅎㅎ
오뒷세우스가 아닌 페넬로페가 집을 떠나는 내용이군요~~
자신의 대의를 위해 가족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누구나 자신만의 선택으로 살아가는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11-11 09:21   좋아요 2 | URL
앗 그렇네요 !!!

오뒷세우스 대신 그래픽노블의
주체가 페넬로페라는 점에서
가치 전복적이지 싶습니다.

가족과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
각하는 인류애/대의를 중시하
는 주인공의 비애가 인상적이
었습니다.

mini74 2022-11-14 17: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가 계속 옷감을 짜듯, 산산이 조각난 나라를 다시 잘 이어붙이는 듯 한 생각도 들어요 ㅎㅎ

레삭매냐 2022-11-14 17:37   좋아요 0 | URL
오오 외과 의사 페넬로페가
내전으로 조각난 나라를 이어
붙이는 주체로도 해석될 수
있겠네요. 대단하십니다.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
유디트 바니스텐달 지음, 김주경 옮김 / 바람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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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주중행사가 된 도서관 방문을 해서 발자크의 책들을 빌렸다. 기대하지 않았던 발자크의 <사촌 베트>를 만날 수가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프랑스 책들이 꽂혀 있는 서가에서 보니 그래픽노블이 한 권 보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책가방에 넣어서 대출했다. 제목은 집에 와서야 비로소 읽었다. 유디트 바니스텐달이라는 작가의 <당신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동안>라는 책이었다.

 

그래픽노블의 주인공들은 단출하다. 미리암과 타마르라는 두 딸을 둔 노년의 다비드가 후두안에 걸렸다. 타마르는 이제 고작 9살이다. 전처 줄리아가 서쪽(돌아가셨나?)으로 간 다음에 만난 폴라와 만나 낳은 딸이다. 그리고 사진작가로 다 큰 딸 미리암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순례길에 만난 남자와 낳은 아이가 루이즈다. 소설의 배경이 독일 베를린이라고 했던가.

 

다비드와 미리암이라는 이름을 보니 아마 이 가족들은 유대계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다비드의 암투병 과정이 리얼하게 그려진다. 아직 어린 타마르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실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21g짜리 영혼을 담기 위해 작은 병을 준비하고, 이웃친구 막스와 함께 아버지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를 미이라로 만들 계획을 짜기도 한다. 당돌하지 않은가. 아이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다비드는 마지막으로 타마르를 데리고 항상 가곤 하던 호수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타마르를 풍선에 편지를 매달아 막스에게 보내는 아버지를 지켜보기도 한다. ,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신선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와중에도 다비드의 병환은 깊어가고, 아니 매순간 그가 죽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호수에서 타마르는 인어아가씨를 만나기도 한다. 죽음의 공포가 언제라도 방문할 수 있는 순간에 불쑥 등장한 판타지에 어안이 벙벙했다.

 


사진작가 미리암이 사는 공간들은 후두암, 종양이 전이되어 죽어가는 아버지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아니 가끔은 멀쩡하게 살아 있는 아버지가 이미 죽어 해골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디트 바니스텐달 작가는 상실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이 그래픽노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미리암이 다비드의 전신에 퍼진 종양 사진으로 구성된 아버지의 시신과 같이 누워 있는 장면이었다. 자신의 창조자가 맞이할 죽음, 그리고 또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불멸의 사실을 담담하게 알려주는 작가의 의도가 참...

 

11월의 월요일밤에 휘리릭 넘겨 본 이 그래픽노블의 가격이 무려 32,000원이었다. 물론 원작자의 채색을 구현하고, 큰 판형의 책을 제작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 것이다. 아마 어지간한 그래픽노블 마니아가 아니라면 선뜻 지갑을 열기 쉽지 않은 그런 비용이 아닐까. 나는 그나마 도서관에서 빌려다 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같은 작가의 책으로 작년에 나온 <페넬로페>가 있는데, 이 책도 빌려서 봐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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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1-08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32000원 후덜덜한 가격이긴 하네요. 아무래도 컬러에 종이질을 더 좋은 걸 써야 할테니 그런 것이겠지만.
이미지가 굉장히 강렬하네요. 아버지의 시신과 같이 누워있는 장면이라니~ 21g짜리 영혼을 담기 위해 병을 준비하는 아이의 모습이 상상 속에 그려집니다.

레삭매냐 2022-11-08 10:53   좋아요 1 | URL
다른 리뷰들 보니,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책값이 무지 뛴
모양이네요 ㅠㅠ

국내 웹툰과는 다른 스타일
의 그래픽노블이라 흥미롭
게 만났습니다.

북프리쿠키 2022-11-08 1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픽 노블은 무조건 빌려봅니다!! 후덜 ㅠ

레삭매냐 2022-11-08 10:58   좋아요 1 | URL
가격 때문에라도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가격이 아주 -

바람돌이 2022-11-08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2개인데 레삭매냐님 리뷰를 보면 별 4개는 충분할듯한 느낌? 그래서 저는 볼까 말까 알쏭달쏭??? ^^

레삭매냐 2022-11-09 11:00   좋아요 1 | URL
그런가요 ㅋㅋ

리뷰는 잘 써놓고서 별점은 짜게?

도서관에서 한 번 빌려서 읽어보
셔도 좋으실 것 같습니다. 금방 읽
으니까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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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두 번째 책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었다.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파울은 찾을 수가 없었고, 대신 1차 세계대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피아니스트이자 그의 형 파울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가 있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간은 1967, 가슴을 절개하고 폐의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화자 베른하르트(아마도 저자로 추정된다)는 빈 서쪽에 위치한 바움가르트너회에 종합병원의 헤르만 병동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논리철학논고>로 그 유명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이자 자신의 친구인 파울이 정신병동인 루트비히 병동에 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기제조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인 유대계 비트겐슈타인 가문 출신의 파울은 정신병으로 병원을 드나 들어야 했다. 정신분석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들도 파울이 앓는 정확한 병명을 진단하지는 못했노라고 저자는 의사들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삼촌이 자신의 사유를 출판해서 세계적인 철학자가 되었다면, 조카는 광기를 실천에 옮기면서 미치광이가 되었다고 했던가. 베른하르트는 자신의 친구 파울이 천재 삼촌보다 더 천재적이었다고 기술한다.

 

그 많은 재산을 자선사업으로 탕진한 파울은 오페라광이자 경주용 자동차광이었다. 날이 갈수록 건강이 안좋아지고, 가난한 상황에서도 트리스탄 공연에 가서 6시간 동안이나 오페라 관람을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오페라에 대한 사랑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카라얀의 천재성을 인정했지만, 친구 파울은 나치 당원이었던 베를린 필의 독재자를 좋지 않게 생각했다. 나 역시 라벨의 <볼레로>로 클래식 음악에 입문시켜 준 그런 지휘자였지만 파울의 생각에 동조한다. 파울은 누구보다 칼 슈리히트를 높이 평가했는데, 클래식 음악 좀 들었노라고 자부하지만 또 새로운 지휘자여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 오토 클렘페러나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까지는 따라 갈 수 있었지만 슈리히트는 정말 넘사벽이었다.

 

자전적 소설 <비트게슈타인의 조카>의 후반부에서 베른하르트가 고백하고 있듯이, 이 소설은 파울이 죽기 전까지 장장 12년에 걸친 저자의 회고록이다. 소설에는 자신이 혐오하는 조국 오스트리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한가득이다. 장정일 작가가 비판한 대로, 문학상을 받는다는 의미에 대한 냉소는 정말 최고였다. 신문 한 부를 사기 위해 오스트리아 국토를 절반이나 종횡으로 누비는 장면도 인상적이었고, 프로이트와 비트겐슈타인 같인 선구자들이 조국에서 예외 없이 푸대접 받는 현실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호텔 자허를 중심으로 한 오스트리아 상류 사회에 대한 에피소드도 한 가득이다. 병자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 복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군대 시절에 수도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지내다가 자대에 복귀해서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해괴한 짓을 벌였던 고참들이 바로 연상됐다.

 

저자에게 루트비히 병동에서 남작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파울은 삼촌을 능가할 만한 그런 재능과 열정을 겸비한 인재였다. 비록 만성적 신경과민에 시달리긴 했지만 철학적 사색은 물론이고, 능숙한 관찰자로서 음악 특히 오페라에 대해서라면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오페라 가수 애인을 좇아 전 세계를 누빈 에피소드는 천재적 재능과 광기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선보인 기인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는 정말 흥미진진했다.

 

지난번에 읽은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를 읽으면서 글렌 굴드를 재발견하게 되었다면, 이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에서는 또다른 연주자와 지휘자들을 배우게 되었다. 특히 칼 슈리히트는 한 번 들어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좀처럼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미켈란젤리는 운좋게 만날 수가 있었고, 오래 전부터 듣고 싶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의 모노로 레코딩된 전중녹음도 들을 수가 있었다. 호텔 자허의 그 유명한 자허토르테까지는 아니지만, 치즈케익으로 아쉬움을 달래보련다. 언제고 빈에 다시 한 번 가게 되면 꼭 먹어 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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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1-07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제가 베른하르트를 좋아하는데요.... 번역한 분이 배 선생이네요. 배수아한테 억하심정이 있는 게 아니라 소설가 출신 번역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참, 거 고민됩니다.

페넬로페 2022-11-07 22:04   좋아요 1 | URL
한국어로 쓰인 배수아작가의 소설도 어려워요~~

레삭매냐 2022-11-08 11:00   좋아요 1 | URL
저도 베른하르트 작가를 좋아해서
또 한 시절 구해서 열심으로 읽고
했던 기억입니다.

배 선생의 글들은 저도 잘 이해가.
중역 책들은 더 어렵더라구요.

레삭매냐 2022-11-08 11:00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 저도 배 선생의 책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안...

페넬로페 2022-11-07 2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으로 봐서 철학서인지 소설인지 잠시 헷갈렸어요. 소설의 내용은 흥미롭습니다^^

레삭매냐 2022-11-08 10:59   좋아요 1 | URL
그렇죠 :>

말씀해 주신 대로, 내용은
아주 흥미진진했답니다.

새파랑 2022-11-08 06: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트겐슈타인 가문에는 천재의 피가 흐르나 보네요. 누구는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누구는 미치광이가 되긴 했지만~ 소설같은 실화 군요

레삭매냐 2022-11-08 11:14   좋아요 1 | URL
비트겐슈타인의 이름에 빗댄
소설이랍니다.

천재와 광인의 대조가 더 강
렬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라로 2022-11-08 15: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책을 벌써 읽으셨어요!!!!@@

레삭매냐 2022-11-08 15:56   좋아요 0 | URL
같은 저자 같은 역자의 책, 리뷰 울궈먹기입니다 ㅋㅋ

Falstaff 2024-04-02 2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이 댓글을 쓴다는 것이 벌써 해를 두 번 넘겼습니다.
유튜브에 ˝Carl Schuricht˝ 검색하시면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젊은 시절에 깡다구가 있어서 나치 치하임에도 말러 전곡 연주 같은 걸 시도하다 도망쳤던 적이 있다고 하는데, 말러는 넘 장황해 유튜브로 듣기 무리더라고요. 브람스 4번이 좋았습니다만, 감정 분비가 조금 심하지 않나 싶은데 제가 뭐 알겠습니까.
 
사촌 퐁스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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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읽기 시작하면 못 읽을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에 빌렸다가 못 다 읽고 반납한 소설기계라는 별명의 오노레 드 발자크의 <사촌 퐁스>를 다 읽었다.

 

왕당파 출신으로 프랑스 역사상 가장 격동의 시절을 보낸 발자크는 마치 현장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보여 주듯이 독자들을 1844년으로 인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쇠락한 음악가 실뱅 퐁스다. 얼추 나이 육십의 노총각 퐁스 아재는 선량하고 겸손한 사람이다. 젊어서 부모에게 받은 유산들은 유럽의 각지에서 사들인 골동품 구입으로 날려 먹었다. 아니 퐁스 아재는 훗날 부르주아지 사회에서 예술품이 한몫하는 재산으로 둔갑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인가? 사실주의 작가 발자크는 그때 이미 혁명과 전쟁 통에 갑자기 졸부가 된 부르주아지들이 고상한 취미로 회화와 조각 같은 고상한 예술품 수집에 열을 낼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주인공 퐁스 아재에게는 아주 나쁜 취미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식도락이었다. 발자크는 그런 이유 때문에 소설에서 그를 식충이라고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 결과, 그는 잘 사는 주변의 지인들의 집을 찾아가 식사를 하는 악습을 버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시절에 이미 프랑스 부르주아지들은 세상에서 진귀한 음식들을 자신들의 상에 올리면서, 소위 아랫것들 그러니까 하루 벌어먹고 사는 이들과의 자본에 의핸 변별력을 키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가 사촌행세를 하며 들락거리는 법원장 댁의 마르빌 부인 등은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퐁스 아재가 그들에게 귀중한 골동품을 수집해서 제공하긴 했지만 그는 그들에게 그저 귀찮은 식객이었을 따름이다. 결별의 결정적 원인은 퐁스 아재가 마르빌 부인의 영애 세실을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보내려다가 어그러지면서 발생했다. 마르빌 부인과 세실은 퐁스 아재가 자신들에게 앙심을 품고 골탕 먹이려고 했다는 이유로 그를 사교계에서 영원히 추방시키는 그야말로 파멸적 결정을 내린다. 이런 충격과 더불어 간염으로 우리의 주인공 퐁스 아재의 건강은 급속하게 악화된다.

 

이 부분까지가 소설의 절반 정도에 해당되는 이야기의 구성이다. , 퐁스 아재에게는 독일 출신 피아노 교사 빌헬름 슈뮈크가 있었다. 그야말로 슈뮈크는 부인도 자식도 없는 퐁스 아재에게 소울메이트 같은 존재였다. 문제는 슈뮈크 씨 역시 퐁스 아재와 비슷한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 이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퐁스 아재가 그동안 모은 골동품들과 회화들이 어마어마한 재산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수위 시보댁(소설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그려진다)은 퐁스 아재와 슈뮈크를 돌본다는 핑계로 그들로부터 돈을 착취하고, 퐁스 아재가 애지중지하는 골동품들을 강탈한 프로젝트를 돌린다. 여기에 협력하는 이들이 제각각 딴 생각을 하는 의사 풀랭과 변호사 프레지에다. 의사는 환자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법률적 대리인 역시 의뢰인의 이익 대신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니까 병석에서 죽어가고 있는 인간 퐁스는 그저 그들에게는 성공과 출세 그리고 금전적 이익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사회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직들까지 이런 파렴치한 악덕에 가담하는 상황이 가히 막장드라마답다는 생각이다.

 

지금 시점으로 본다면 아주 진부할 지도 모르겠지만, 200여 년 전 프랑스혁명의 여진이 여전한 가운데 혁명으로부터 가장 이익을 본 집단인 전문직 부르주아지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소설기계 발자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금의 상황에 대입해 봐도,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이른바 법기술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기존의 도덕적 가치들은 땅에 떨어졌으며 오직 자본만이 모든 가치를 대신하는 세상이 1845년의 4월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우리의 퐁스 아재가 결국 자신의 재산을 노리는 시보댁의 앙큼한 음모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공증인들까지 동원해서 가짜 유서로 시보댁과 악당들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하지만, 순진한 두 노친네들을 옭죄고 있는 거미줄 같이 촘촘한 그물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왜 이 악당들은 공모해서 자신들의 것이 아닌 타인의 재산을 노렸던 것일까? 그건 아마도 평범하고 정직하게 살아서는 이번 생에 그들이 부러워하는 부르주아지들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절망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양심을 팔고 악덕을 행하는 이들의 꿈은 야무졌다. 시보댁은 막대한 종신연금을 꿈꾸었다. 시보댁의 공동정범들은 수중에 퐁스 아재의 막대한 재산이 들어오면 그 자본과 연줄을 바탕으로 해서 병원장 그리고 치안파사라는 출세의 고속도로를 질주할 꿈에 젖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 시절부터 사람들이 종신연금에 목매달았다는 정황에 그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국가가 보장하는 노후대책이 있었단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시스템이 아니었나 싶다.

 


퐁스 아재와 그의 절친 슈뮈크 씨는 사람들이 너무 물렀다. 조금이라도 세상물정을 알았다면 그렇게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죽고 나면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할 골동품을 죽을 때까지 끌어안고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퐁스 아재가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슈뮈크를 생각했다면 좀 더 세밀하게 유언장을 작성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긴 사촌들로부터 버림받고 간염으로 죽어가는 마당에 타인을 배려할 겨를이 없었겠지. 이 불쌍한 인생들인 퐁스와 슈뮈크를 돕겠다고 나선 이들은 너무 적고, 사회적 영향력을 전혀 발휘할 수 없는 그런 이들 뿐이다. 그러니 악덕의 번성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지금도 자본과 결탁한 악덕이 횡행하고 있지만, 19세기 세계의 수도라는 파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사람 사는 건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슷하다는 교훈을 소설기계 작가는 세상에 전파하고 싶었나 보다. 동시에 우리를 노리는 악덕과 그의 실행자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점도.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 <사촌 퐁스>와 자매작이라는 <사촌 베트>에서는 이런 악덕에 대한 처절한 복수극이 시전된다고 하던데, 그 작품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발자크, 읽을수록 매력적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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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05 17: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저는 마지막에 사촌 베트도 있다는 문장에 빵 터지는걸까요? ㅎㅎ
이 시절의 소설들은 또 당대의 사회상을 찾아보기에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레삭매냐님 글 뒷부분은 흐린눈으로 지나갑니다. 저도 이 책 보고싶어서요. ^^

레삭매냐 2022-11-05 19:08   좋아요 1 | URL
왠지 제 느낌에는 사촌 시리즈
가운데 <사촌 베트>가 더 재미
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절로 프랑스 혁명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해보게 되더라구요.

1830년 7월 혁명 그리고 영광
의 3일에 대해서 말이죠.

바람돌이님의 발작 독서를 응원
하는 바입니다.

라로 2022-11-05 1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츠바이크의 발자크의 평전을 엄청 좋아했어서 그의 책 <고리오 영감>을 집었는데 읽다 말았어요,, 다시 시도 해봐야 하는데,, 이젠 의욕이 없어요. 번역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요??
번역 때문에 읽기 힘든 책을 만나면 그냥 내려놓게 되네요... 주절주절;;;;

레삭매냐 2022-11-05 19:11   좋아요 1 | URL
15년 전에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역에서 발작 묘지를 찾는 미
쿡 아줌마를 만난 적이 있는데...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발작에
대해서는 1도 모를 때였지요.

그리고 휴먼 코미디아에 대해
알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고전 읽기는 쉽지 않
은 것 같습니다. 저도 <고리오
영감> 읽을 적에 내가 왜 이걸
읽고 있나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발작적으로 그의 책을
찾게 되었네요 ㅋㅋㅋ

그래서 번역이 반역이라고도
하는가 봅니다. 고저 빠이팅.

blanca 2022-11-05 19: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깜놀했잖아요. 소장 중이랍니다. 발자크는 정말이지 천재 같아요.

레삭매냐 2022-11-05 19:14   좋아요 0 | URL
그러쵸 그러쵸 !!!
넘나 잼난 것~

발작은 진정 천재입니다.

전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답니다. 중고책으
로 살라구요.

Falstaff 2022-11-05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흠. 저는 책 깨나 읽는 분은 다 아실 유명한 불문 역자가 <사촌 베트>를 별로 좋지 않게 이야기 하는 바람에 아직 읽지 않았는데요, 퐁스 다음 이야기라면 그것 참, 뒤통수 때리는 반전이 있을 것도 같고 그렇군요. 아 참. 그걸 스크린 캡처 해놓을 걸 그랬습니다. 제가 구라친 거 아니라는 증거로 말이죠. ㅋㅋㅋㅋ 퐁스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간해 믿을 사람 읎잖어유? 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2-11-06 18:22   좋아요 2 | URL
오늘 <사촌 베트>를 수배해서
바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자료를 더 찾아 보니, <사촌 베트>
가 <퐁스>보다 먼저 나왔다고 하
네요.

발작의 전작들과 달리 19세기 빠리
에 대한 상세한 설명 없이 바로 본
론으로 들어가는 상황이 아주 흥미
진진하네요.

11월에는 발작을 읽습니다.

Falstaff 2022-11-06 19:15   좋아요 2 | URL
오오오..... 사촌베트를 낸 출판사는 2013년에 문을 닫았.... 지 않나 싶습니다. 정말 의심이 가는 건, 물론 의심입니다,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거 아닙니다!!! 불어 직역이 아니라 일어 중역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하야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하느냐를 알고 싶은 독자는 읽되, 발자크의 맛을 알려면 기다려라, 하는 게 제가 들었던 충고였습니다. 그냥 읽으면 발작을 할 수도 있다는...... 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11-07 15: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꼭 윌리엄 호가스의 판화연작을 책으로 보는 느낌이네요. ㅎㅎ 막장인데 매냐님이 너무 찰지게 내용을 소개해서인지 저도 자꾸만 웃음이 납니다. 자매작엔 복수가 담겨있다니 ㅎㅎ 재미있게 읽었어요 ~

레삭매냐 2022-11-08 11:17   좋아요 1 | URL
발자크의 소설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 중의 하나가 19세기
파리에 대한 너무나 사실주의적
묘사인데, <사촌 베트>에서는 그런
부분은 몽땅 제거해 버리고 아주
빡시게 진행이 되네요.

<사촌 퐁스>보다 훨씬 더 매운
맛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