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을 읽고 나서, 비축해 둔 그녀의 다른 작품 <바다의 긴 꽃잎>에 돌입했다.

 

작년 말에 램프의 요정에서 중고책 할인해 준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 나가서 사온 책이다. 지금 열심히 읽고 있다.

 

그 때 같이 산 책이 에시 에디잔의 <워싱턴 블랙>이다. 이 책도 읽기 시작하긴 했었지. 바베이도스 노예 제도를 다룬 기대작 <워싱턴 블랙>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그 어느 소설보다 잔혹해서 당분간 접어 두었다. 리얼리티라면 정말...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그전에 본 영화 <안테벨룸> 생각이 자꾸만 났다.

 

현실의 미국에서 벌어진다고 해도 완전히 불가능하지 않을 만한 그런 설정이지 싶다. 그만큼 인종차별의 유구한 역사는 지울 수가 없다는 거겠지. 사람들의 의식에서 비롯된 편견을 수정하는 일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고.

 

내가 새해 으로 산 책은 이사벨 아옌데의 <세피아빛 초상>이었다. 잔뜬 쟁여둔 적립금과 럭키백 할인으로 7,900원에 데려왔다. 조금도 책값이 아깝지 않았다. 몰입, 즐거움 그리고 의미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사냥한 드문 책이었다.

 

칠레와 볼리비아/페루가 맞붙은 태평양 전쟁(War of the Pacific)이 궁금해서 군사전략연구소인가에서 나온 논문을 다 찾아봤다. 지금까지도 분쟁 중인 아타카마 사막과 안토파가스타 지역에 대해 알 수가 있었다.

 

다시 <바다의 긴 꽃잎>으로 돌아가 보자. 1938, 프랑코 파시즘에 맞서 싸운 공화군 소속 일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빅토르 달마우는 내전의 성패를 가른 테루엘 전투에서 왼쪽 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동생 기옘은 에브로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버지 마르셀 류이스는 돌아 가시기 전에 차남의 전사를 예언하고, 프랑코 독재가 시작되면 엄청난 보복이 따를 거라며 어머니와 딸 같이 지내던 피아니스트 제자 로세르 브루게라를 데리고 망명을 떠나라고 권한다. 패배한 사람들의 집단 망명에 대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목적지는 아마도 칠레겠지.

 

내가 살던 집, 언어, 사회 문화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에 가서 정착한다는 게 쉬운 일일까. 그나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에스파냐 말을 쓰니 그나마 좀 낫지 않았을까.

 

앤서니 비버의 <스페인 내전>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내전 기간 동안 프랑코 독재집단의 공화파에 대한 만행에 대해서만 줄로 알고 있었다. 물론 프로파간다이긴 하지만 공화파의 파시스트들에 대한 만행 역시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사제와 수녀들을 공화국의 적으로 돌려 살해하고, 포로로 잡은 국민전선 포로들은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했다. 사실 조금 충격이었지만, 공화파가 내전에서 승리했다면 그들 역시 프랑코 못지 않은 보복을 자행했을 거라고 앤서니 비버는 말한다. 이사벨 아옌데는 불굴의 전사 기옘의 말을 빌어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노라고 서술한다. 이런 균형 잡힌 서사를 나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국민전선 일파가 실질에 중점을 두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내전을 유리하게 이끌어 갔다면, 공화파의 지나친 이상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서방의 지원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서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새해 첫 주말, 나는 그렇게 <바다의 긴 꽃잎>이 구사하는 장대한 서사에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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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3-01-09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균형잡히고 장대한 서사....궁금해집니다~~

레삭매냐 2023-01-09 20:54   좋아요 0 | URL
연초에 여러 책들을 번갈아
가며 읽다 보니 순위가 좀
뒤로 밀리긴 했어도... 여전히
놓지 못하고 읽고 있답니다.

스페인 내전에서 패배한 이
들이 위니펙 호에 올라 칠레
로 망명한다는 설정이 참 -

흥미진진의 연속입니다.
 
방어가 제철 트리플 14
안윤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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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회를 즐기지 않는다. 그런데 주말어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물고기 잡는데 미친 듯이 보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종은 도미였는데, 밑밥을 물었을 때 파르르 떨리는 손맛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엄청 많이 잡았는데 누가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안윤 작가의 <방어가 제철> 소설집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그 때 잡던 도미 생각이 났다. 자목련님을 통해 알게 된 책, <방어가 제철>을 읽었다.

 


130쪽 남짓한 얇다란 책에는 세 편의 단편과 한 편의 에세이가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다 읽고 나서 왜 자꾸만 군침이 도는 걸까. 우리 인간은 먹지 않고 살 수가 없다. 다른 조건은 몰라도 끼니 때우기라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첫 이야기 <달밤>의 화자는 생일을 맞은 아는 지인을 위해 생일상을 차리고, 또 망자가 된 작가 언니를 위해서는 제상을 차린다.

 

그러니까 끼니, 음식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기리는 것이다. 뭐랄까 음식이라는 기준점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는 말일까. 그 중심에는 육개장이 살포시 자리한다. 아마 외국의 독자들은 이런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음식들에 대한 정감을 그리고 말맛을 알 수 있을까. 미슐랭 셰프들이 만드는 거창한 요리가 아닌 이런 소박한 요리의 조리 과정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좋아하는 이들과 함께 했던 음식 혹은 끼니의 추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절친과 불쑥 떠났던 어느 늦여름, 지리산 피아골에서 먹은 닭백숙의 추억이 피어난다. 얼음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쏘주 댓병을 까고 나서 친구는 피로에 곯아떨어졌다. 너무 시원해서 취한 줄도 몰랐지. 그전에 시킨 닭백숙을 그나마 덜 취한 나 혼자 뜯어 먹던 기억.

 

같이 했던 끼니를 통해 망자의 기억을 소환하는 화자의 이야기가 짠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소멸하게 되겠지. 언젠가 한 줌의 재가 될텐데 왜 이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폭풍처럼 몰려든다.

 

표제작인 <방어가 제철>은 사실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붙은 해설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죽은 화자의 오빠의 친구였던 정오 선배(?)는 겨울이 되면 화자에게 방어회를 사주었다. 술은 안동소주를 먹었던가. 그 둘은 청소년 시절을 같이 보낸 전우 같은 존재였던가. 아니 오빠와 정오 사이에 들러붙은 곁다리? 영화에 미쳐 살던 그 시절의 영화잡지 <키노>와 왕칼 아니 왕가위의 전설적인 <중경삼림>의 제목을 읽는 순간, 할리우드 키드를 꿈꾸던 시절의 소소한 기억들이 즉각적으로 소환된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 무엇이 되고 싶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되는 대로 살자는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소설의 주인공들인 정오와 화자 모두 과거에 잘못된 무언가를 고치거나 그러려고 하지 않는다. 그날 오늘의 하루를 덤덤하게 사는 것이다. 각장의 일터에서. 화자는 14년 전에 잃은 아들 때문에 생긴 술병으로 결국 간이 상해서 돌아가셨다. 예중에 진학해서 미대생을 꿈꾸었던 화자는 오늘도 어머니가 이모님들과 하시던 반찬가게의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노동에 자신을 구겨 넣는다. 어떤 지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대신, 그냥 아무 일도 없이 조용하게 하루를 보내고 싶은 우리 보통사람들의 심리에 안윤 작가는 총알을 명중시킨다. 부디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부디 어제와 오늘이 같기만을 바랄 뿐이다. 젊어서는 어제와 다를 게 없는 오늘을 한탄했었는데 그 반대를 바라게 된 걸 보니 확실히 늙긴 늙은 모양이다.

 

원래 기름진 생선 대신 단백한 녀석들을 애정했는데, <방어가 제철>을 읽고 나니 얼마 전 너튜브에서 본 바닷가 갯바위에서 통통한 잿방어를 잇달아 걷어 올리던 강태공들 생각이 났다. 그렇지 낚시는 모름지기 갯바위가 최고지. 오늘 점심에는 스시가 먹고 싶어졌다.

 

<만화경>에도 어김없이 죽음과 끼니가 등장한다. 남편과 이혼하고 새롭게 둥지를 나경의 이야기. 친구는 애 둘을 키우느라 정신이 없다. 가끔 전화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친구 사이는 멀어져 간다. 자주 보지 못하면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하면 관계는 소멸의 수순으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전화 연락인 카톡이라는 끈을 유지해야 하는 게 우리네 관계의 숙명인가.

 

집주인 숙분, 세입자 나경 그리고 숙분의 고향친구 단심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살갑다. 여자들은 연대해서 음식을 나눈다. 치자 가루를 넣어 노릇노릇한 때깔의 부침개라고 했던가. 남자들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먹거리 제조법이다. 확실히 신이 여자를 나중에 창조해서 남자보다 현명하게 만들었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삶은 눈에 띄지 않지만 죽음은 그렇지 않다. 건강한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나경의 전에 살던 세입자 미리내의 이야기에 문득 숙연해진다. 그리고 환풍구에 붙여진 야광별 스티커도.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예의 야광별 스티커가 우리의 앞길을 인도해 줄까라는 부질 없는 환상을 품어본다.

 

다른 소설도 좋았지만, 집필 후기 같이 맨 끝에 실린 에세이는 더 좋았다. 무뎌진 고통이라.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는 이상한 인간이 되는 건 아닐까. 소중해질 기회가 박탈된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보고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한 방의 정중앙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책무더기는 논외로 하자. 홍콩에서 왔다는 철제 쿠키 상자를 필두로 해서 오만 것들을 버리지 못한 채, 끌어안고 살아간다. 마음 같아서는 50리터 짜리 종량제 봉투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모두 다 때려 넣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종량제 봉투에 투척하기 전까지의 마음이고, 그 순간에 또 변심할 거다.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내며 그런 잡동사니들을 끌어안고 가야할 논리를 순식간에 만들어내겠지. , 왠지 꽁꽁 숨겨둔 속마음을 들켜 버린 느낌이랄까. ‘공간 낭비라는 말에 찔끔했다.

 

짧지만 강렬한 글들이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다 읽고 나니 개운했다.

, 책에서 만난 네그리타 5구를 주문했다. 구근이 4천원, 배송료가 4천원이었다. 봄에 멋들어진 꽃이 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는 봄을 기다린다.

 


[뱀다리2] 점심은 예고한 대로 스시를 먹었다.

원래는 9,900원 세또를 먹으려고 했으나...

이천원 더 얹어서 포식을 했다.


이제 만원으로는 맛난 점심 먹기가 어려워졌다.



새우와 대게 덴뿌라는 일품이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츄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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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3-01-06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밑밥을 물었을 때 파르르 떨리는 손맛의 추억˝이라고 쓰신 것을 보니
주말어부라 불리실 만 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중독성이 깊게 느껴집니다!
네그리다가 어떤 꽃인지 몰라서 검색해봤어요.
그랬더니 ‘네일 그리다‘와 ‘네그리‘만 검색이 되네요. ^^;;
암튼 작년 한해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23-01-06 14:55   좋아요 0 | URL
그 땐 그랬지이~~~
카오 참말로 그립습니다,
그 시절이.

같이 다니던 동생들 밑밥
도 죄다 끼워 주고 채비도
맹글어 주고 그랬는데 말
이죠.

한 번은 클램으로 갈매기
도 잡...

네그리타는 보라돌이 튤립
품종이랍니다.

* 밥 먹으러 가느라 서둘러서
치다가 그만 오타가 나고 말
았네요. ‘네그리타‘라고 합니다.

독서괭 2023-01-06 14:40   좋아요 1 | URL
저도 궁금해서 검색에 돌입 ㅋㅋ ‘네그리타‘라고 치니 나옵니다^^ 색깔이 예쁘네요.

바람돌이 2023-01-06 14: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랑 반대
저는 낚시는 좋아하지 않고, 회는 엄청 좋아합니다. 지금 딱 방어철인데 아직 못먹었어...ㅠㅠ
레삭매냐님이 말하는 이 소설은 뭔가 아련한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네요. ^^

레삭매냐 2023-01-06 15:46   좋아요 1 | URL
지금이 방어철이로군요.

파도가 촤아~ 치는 바다
에서 시간을 낚는 낚시야
말로 감히 최고의 레저라
고 생각한답니다.

아련함 크하.

독서괭 2023-01-06 14: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마음을 찔끔하게 만든 에세이 ㅎㅎ
마지막 튀김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역시 먹는 건 중요하지요.
˝그냥 아무 일도 없이 하루를 보내고 싶은 마음˝, 아 저도 점점더 그런 것 같아요. 평온하게 지나간 하루가 소중합니다. 저녁도 맛있게 드세요^^

레삭매냐 2023-01-06 15:51   좋아요 1 | URL
술밥향꽃으로 이루어진 소설들도
좋았지만, 엔딩의 에세이가 만점
이었습니다.

튀김, 카오 ~

되는 대로 살자주의자인 제게
오늘도 그저 무사히 -

오늘 저녁에는 매주 금요일마
다 세일한다는 바른치킨의 치
킨을 먹습니다.

자목련 2023-01-09 0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모의 트리플 시리즈는 말씀처럼 마지막의 에세이가 더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읽고 바로 리뷰를 쓰시는 매냐 님, 대단하세요^^

레삭매냐 2023-01-09 13:13   좋아요 0 | URL
자목련님 덕분에 좋은 책을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이 방어철이라고 어제
장에 갔더니, 어물전 주인장
이 목이 터져라 외쳐서 살포
시 웃었답니다.

인스타에 올린 피드에는 안윤
작가가 들러서 살짝 좋아요
누르고 가셨더라구요 ㅋㅋㅋ

자목련 2023-01-12 13:07   좋아요 1 | URL
아마도 안윤 작가 님이 더 좋으셨겠지 싶어요.
인스타의 세계, 저도 시작해볼까 싶은 요즘입니다. ㅎ
 
글렌 굴드 - 그래픽 평전 푸른지식 그래픽 평전 8
상드린 르벨 글.그림, 맹슬기 옮김 / 푸른지식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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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에 진심이다. 다른 건 항상 늦장을 부리지만 궁금한 책은 신속하게 빌리거나 사들인다. 인스타 피드에서 캐나다 출신 글렌 굴드의 그래픽 노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검색해 보니 신간이 아니라 지난 2016년에 나왔다고 한다. 마침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어 안윤 작가의 <방어가 제철>과 함께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저자 상드린 르벨은 아마 괴짜이자 기인 피아니스트의 일대기를 담기 위해 수많은 자료들을 봤으리라. 하지만 그가 남긴 여백은 너무 많다. 아무래도 이 정도만으로는 부족하지 싶다. 더 알고 싶다면 글로 된 책을 읽어야지 않을까.

 


그의 대표 레코딩은 1955년 그러니까 그가 23살 때 녹음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데뷔 시절부터 그는 기행으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들은 그가 연주하면서 내는 허밍 소리와 박자에 맞춤 발소리 그리고 의자의 끽끽 거리는 소리들을 제거하고 싶어했다. 물론 괴짜 피아니스트가 그들의 그런 요청을 들어줄 리가 있나 그래. 결국 허밍은 방독면을 쓰는 것으로 타협을 보게 된다. 사실이라면 굴드는 진짜 또라이 연주자였으리라. MSG가 너무 많이 들어갔나. 그것도 아니라면 훗날에 만들어진 신화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강박증으로도 유명했다. 사람들과의 악수도 거부했다. 사람마다 악수하는 방식은 다른데 보통은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기 위해 아구에 힘을 줘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 방식은 이 강박증과 여린 감수성의 소유자에게는 최악이었다. 아주 섬세한 악수를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위대한 피아니스트와 악수하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다.

 

호수에 낚시를 하러 가서도, 낚아 올린 물고기들의 죽음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중에 성공해서는 버림받은 동물들을 위해 큰 농장을 설립할 거라고 했나 어쨌나. 반백년을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고 지구별을 떠난 기인 피아니스트답게 기행에 대한 전언들도 차고 넘친다.

 

보통 연주자들은 관객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아니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굴드였다. 그는 관객이라는 집단을 혐오했다. 그런 그가 미국에서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르고 미 전역을 도는 연주 여행을 해야 했을 때, 얼마나 피곤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결국 서른 몇 살 전성기 때, 대중 앞에서 연주를 포기하고 침잠에 돌입한다.

 

대신 레코딩이야말로 이 괴짜 아티스트에게는 구원 같은 존재였다. 사실 그가 장기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나 대위법 같은 클래식 음악과 용어를 전혀 모르니 그가 구사하는 음악 세계의 지평을 넓히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어느 편집 소품 앨범에 담긴 굴드가 연주한 바흐의 인벤션 연주는 아주 오랫동안 즐겨 들었노라고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1975년 그에게 거의 강압적인 피아노 교육을 담당했던 어머니의 죽음, 강박증에 시달리던 젊은 날의 굴드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뒤죽박죽으로 등장한다. 보통 연대기 순에 따른 전개를 기대했던 나같은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어쩌란 말이지? 그림체도 그렇지만,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어느 소설에서인가 북극에 가서 연주를 하는 굴드에 대한 상상을 그리지 않았던가. 하도 많은 글들을 섭렵하다 보니, 소설인지 무엇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하다. 그냥 내가 원하는 바대로, 그야말로 되는 대로 독서의 부작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자기 마음대로 산 괴짜 피아니스트처럼 나 역시 그런 책쟁이이니 말이다. 전자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티스트라면, 후자는 촌구석의 골방에서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읽고 쓰기의 업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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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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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산 첫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사두기만 하지 않고 바로 때려 읽었다. 왜 재밌으니까. 그리고 에피쿠로스의 후예답게 즐거움, 몰입 그리고 의미까지 모조리 잡은 최고의 책이었다. 작년 여름에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을 사서 좀 읽다 말았는데, 그리고 연말에 산 <바다의 긴 꽃잎>도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이래서 책은 미리 사두어야 한다는 거다. 흐름이 끊기지 않게 말이지.

 

소설의 시작은 1880년 어느 가을의 화요일이다. 화자가 태어났다. 엄마의 이름은 미국 샌프란시코에 살던 절세미인 린 소머스. 생부는 마티아스 델 바예, 소설에서 아마존 여전사급의 신화적 인물로 등장하는 파울리나의 맏아들이다. 공화국 여신상 모델로까지 추앙받던 린은 딸 아우로라(중국 이름으로는 리밍)를 낳고 곧 죽었다. 화자의 탄생부터 무언가 파란만장 썰이 펼쳐질 것 같은 예감이 들지 않은가.

 

칠레 출신의 파울리나는 펠리시나오와 눈이 맞아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아마존 여전사의 치부 능력은 남자들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었다.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이 터진다. 미국에 철도에 깔릴 시절에는 철도 산업으로 한몫 단단히 챙겼다. 적어도 소설의 주인공들이 먹고사니즘을 걱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런 든든한 재정이 필요한 법이다. 주인공 아우로라처럼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돈이 많이 드는 사진을 찍으려면 장비나 암실 그리고 엄청난 비용이 드는데 당시 가난뱅이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그런 상황이리라. 그러니 훗날을 대비한 작가의 빌드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피렌체 장인이 만들었다는 넵투누스 침대의 두 개의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화려한 배달 의식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 정도의 압도적 장관 정도가 등장해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는 자락이 깔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 특유의 집안/가문에 대한 집착은 <세피아빛 초상>에서도 어김 없이 등장한다. 아마 그쪽 동네 소설의 특징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최소 3대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지. 어떤 면에서 우리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종교와 보수주의는 기성 세대를 규정하는 특징으로 등장한다. 당연히 새로운 세대, 그리고 주인공들은 그런 과거의 인습을 인정하지 않고 뽀개는 투사로 등장하는 클리셰이도 빠지지 않는다.

 

아마존 여전사 파울리나는 그런 점에서 선을 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진다. 다음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매력적인 남자 세베로 델 바예다. 파울리나가 자신의 아들들보다 더 유능한 인물로 어쩌면 자신의 사업을 보좌할 미래의 변호사로 꼽은 이가 바로 조카 세베로였다. 세베로는 어찌어찌하여 내기로 절세미녀 린을 품은 사촌형의 딸 아우로아의 법적 아버지가 되길 마다하지 않는다. 고향 칠레에는 그를 사랑하는 미래의 아내 니베아가 있는데 말이다. 훗날 그 둘은 무려 15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생산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전직 장교 출신 세베로는 사랑하는 린을 잃고 실의에 빠진다. 기껏 사랑하는 연인 니베아까지 버리고 장가를 들었는데 졸지에 자신의 애도 아닌 아우로라까지 거둬야 하는 홀아비 신세가 된 것이다. 이 지점까지가 델 바예 가문의 성쇠와 세베로 연애 스토리가 주를 이루었다면 다음 무대는 전쟁과 내전이다.

 

187945, 칠레는 당시까지만 해도 패자 노릇을 하던 페루와 볼리비아를 상대로 태평양전쟁(War of the Pacific)을 시작했다. 이 부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기사와 논문까지 찾아보기도 했다. 역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읽기야말로 즐거움의 원천이 아니던가. 전쟁의 발단은 아타카마 사막과 당시까지만 해도 볼리비아 영토였던 안토파가스타 지역에서 나는 구아노와 초석 채굴에 대한 것이었다. 산업화 시대에 천연 비료인 구아노와 화약의 원료가 되는 초석은 한 마디로 돈이 되는 사업이었다. 볼리비아는 칠레 사업가들에게 자국 원료 생산을 허가하고 면세 조치를 약속했지만, 나중에 뒤집어 버렸다. 그 결과, 갈등이 폭발하면서 전쟁까지 치르게 된 것이다.

 

15세기 스페인 정복자들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인 이들만이 당시 세상의 끝인 칠레 정복에 나섰다고 한다. 서방의 지원을 받는 칠레 병사들은 소설에 따르면 야만적이었다. 소설에 자세하게 나와 있는데, 전쟁 초기에 칠레 VS 페루-볼리비아 동맹군의 전력은 비등했지만 전세가 칠레 쪽에 유리하게 전개되면서 결국 칠레군이 페루의 수도 리마를 함락시키고, 볼리비아에서 안토파가스타 주를 빼앗는 대승리로 전쟁은 종결되었다. 볼리비아는 졸지에 태평양으로 나가는 영토를 상실하고 내륙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이 전쟁의 여파는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여전히 칠레-볼리비아 국경에서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린을 잃고 오로지 죽기 위해 이 야만적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세베로 델 바예는 수도 리마 공략을 앞두고 적(여성!)의 도끼날에 맞아 왼쪽발을 절단하게 된다. 그리고 든든한 빽으로 후방으로 이송되어 니베아의 초월적인 간호로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보니 <바다의 긴 꽃잎>에 등장하는 주인공 빅토르 달마우도 전투에서 왼발 부상으로 다리를 절게 되지 않았나. 무언가 닮은 점들이 많이 연결되는 아옌데 작가의 설정이 아닌가 싶다.

 

아 그리고 보니 몇 대째 중의(中醫) 출신으로 린의 아빠로 등장하는 타오 치엔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화자 아우로라의 아빠 노릇을 실제적으로 한 사람이자 훗날 그녀의 악몽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지 않았던가. 중국인 배척 조례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중국인들이 개와 비슷한 대접을 받던 시절에,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인술을 베풀던 인물로 평생의 연인 엘리사 소머스와 결혼(?)해서 맏아들 럭키와 린을 낳았다. 동시에 성노예로 팔려온 싱송 걸들을 구해내는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이기도 했다.

 


다시 아우로라 이야기로 돌아가 그렇게 칠레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건들을 아옌데 작가는 곳곳에 의도적으로 배치해 두었다. 이사벨 아옌데가 아니었다면 내가 어떻게 칠레의 열 번째 대통령이 호세 마누엘 발마세다였고 내전을 치르다가 자살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혁명과 내전의 아수라장 속에서 조국으로 돌아온 파울리나 델 바예는 매 순간마다 돈벌이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불안한 사람들의 설탕 소비가 폭발할 거라는 예상 아래 투자한 설탕 투기 사업이 역시나 대박이 터진다. 남편 펠리시나오가 죽은 다음, 새 남편으로 들어선 영국 출신 집사 프레데릭 윌리엄스와 프랑스 포도주에 대항할 만한 칠레 포도주 생산을 위해 말년을 투자한다. 역사와 사회적 현상들을 다루는 작가의 놀라운 솜씨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최근 빵에서 풀려난 정치인이 언젠가 FTA로 값싼 칠레산 포도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이마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칠레에서 바다 건너온 적포도주의 연원이 그렇게 된다는 말이지.

 

그렇게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칠레의 산티아고를 오가는 신명나는 빌드업이 끝나고서야 비로소 화자인 아우로라 델 바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만큼 아름답지 않았던 아우로라에게 생부 마티아스는 아름다움은 저주라는 말을 했던가. 5살 때, 외할머니 엘리사 소머스는 손녀딸을 파울리나에게 보내고 죽은 남편의 시신을 홍콩에 묻기 위해 칠레를 떠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나타난 생수 마티아스와 만나게 되는 아우로라.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13살 때부터는 코닥 카메라를 선물로 받아 사진 명장 돈 후안 리베로에게 사진수업을 받기 시작한다. 물론 처음부터 쉽게 진행된 건 아니고, 델 바예 가문의 정통 혈통다운 똥고집으로 스승에게 사사받기 시작한다. 파울리나는 처음에 돈으로 명장을 매수하려 하지만, 돈으로 모든 게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예술가는 몸으로 보여준다.

 

공교육을 거부하는 아우로라는 사회주의자 출신 개인교사 마틸데 피네다 양와 황금시대 서점의 돈 페드로 테이 그리고 자신의 법적 아버지 세베로의 영향을 받아 주체적 아가씨로 성장한다. 당시로서는 최신 기술이었던 카메라에 예전에 회화가 담당하던 귀족이나 귀부인들의 사진을 찍는 대신, 칠레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인디오들 같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은 그런 점에서 현실을 포착하는 이미지인 동시에 역사의 기록이라는 사실도 주지할 수기 있었다. 물론 셔터를 누르는 이의 감정도 피사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말도 작가는 빼놓지 않는다.

 

오래 전, 열화당에서 나온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찍은 세기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도 이런 사진들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장비나 여건 그리고 스킬은 아마 그 시절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그 때의 열정은 사라져 버렸다. 필름 카메라 시절, 비싼 필름값 때문에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호흡을 멈춰 가며 신중하게 누르던 셔터 찰칵은 디지털 카메라 시절에 아무런 부담 없이 거의 수백장의 연속촬영을 하더라도 아무 부담 없이 더불어 생각 없는 셔터 찰칵으로 치환되지 않았던가.

 

이사벨 아옌데는 양친과 유일한 혈육 파울리나를 잇달아 잃은 기구한 아우로라의 서사를 풀어내기에 앞서 다양한 종류의 떡밥들을 투척한다. 그리고 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칼레우푸 농장 출신의 호남자 디에고 도밍게스와의 결혼 그리고 이어지는 막장 드라마, 칭기즈 칸 이반 라도빅과의 우정을 빙자한 연애 그리고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16년 만에 나타난 외할머니 엘리사 소머스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숨가쁜 전개가 이어진다. 그야말로 가능한 모든 서사의 원형을 담은 소설이 바로 <소피아빛 초상>이지 싶을 정도다.

 

말이 필요 없다. 오래 전에 출간되었다가 다시 나온 <소피아빛 초상> 단 한 권으로 바로 나는 이사벨 아옌데 작가의 팬이 되어 버렸다. 이 소설은 내가 원하던 몰입, 즐거움 그리고 의미를 모두 충족시켜주었다. 계묘년 연초부터 이런 좋은 소설을 만나게 되다니, 되는 대로 살자가 모토인 나에게 마음에 쏙 드는 그런 신년 선물이지 싶다. 어제부터 <세피아빛 초상>도 못 다 읽은 상태에서 읽기 시작한 <바다의 긴 꽃잎>을 읽고 나면 이사벨 아옌데 삼부작 <영혼의 집>에 도전해봐야겠다. 언제나 그렇지만 좋은 책과의 만남은 행복의 또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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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1-05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재미죠잉. 이야기꾼!

레삭매냐 2023-01-05 14:36   좋아요 1 | URL
삼부작의 마지막이라고 하던데,
전작들도 읽어야지 싶습니다.

이야기꾼, 쌉인정.

새파랑 2023-01-05 13: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 셀럽 분들이 모두 이 책을 추천하는군요 ㅋ 저도 이 책 샀는데 주말에 읽어봐야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1-05 14:37   좋아요 2 | URL
그전에 절판책이라 참 가지고
싶었는데, 중고책방에 나와 있
어서 냉큼 사서 읽었답니다.

몰입, 즐거움 그리고 의미까지
모두 사냥하시길 기원합니다.

바람돌이 2023-01-05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 보관함에 들어있는 이사벨 아옌데를 또 깨우시는군요.
이토록 완벽한 칭찬이라니

레삭매냐 2023-01-05 21:45   좋아요 1 | URL
82 피플 ~ 다 같이 질러 BoA요 !!!

후회하시지 않으리라고 단언합니다.

chika 2023-01-06 0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제 취향이 아니라 무심히 넘기는데 작가 이름보고 찾아 읽었는데 정말 장바구니에 넣게 만드십니다! ^^

레삭매냐 2023-01-06 10:19   좋아요 1 | URL
저도 민땡사 세문의 표지가
여엉 적응이 되지 않으나 -

책은 진국이었습니다. 쨩.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3-01-06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재밌으니까!
이렇게 멋진 리뷰가 있을까요. 읽고 싶은 소설인데, 언젠가 저도 읽게 될까요?

레삭매냐 2023-01-06 10:20   좋아요 0 | URL
몰입도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상찬 감사합니다.

세피아빛 대열에 곧 동참하
시길 기대해 봅니다.

<방어가 제철> 읽고 있는데...
참 느낌이 좋네요.

독서괭 2023-01-06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책은 미리 사두여야 한다˝
ㅋㅋㅋㅋ 정말 저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책을 안 사려고 하다보니 더욱, 읽고 싶은 책이 마침 집에 있으면 과거의 저를 칭찬하게 되네요? ㅎㅎ
이사벨 아옌데 3부작은 언젠가 꼭 읽어보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1-06 11:49   좋아요 0 | URL
고기 먹을 적에 공급이 끊어지면
안되는 것처럼, 책 또한 마찬가
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작가의 책을 만나 뻑이 갔을
적에 바로 또 내쳐 달려야 한다
고 생각합니다.

저도 과거에 두 번이나 옳은 선
택을 한 저에게 칭찬하고 싶습니
다.

부디 도전은 고고씽~하시길.

서니데이 2023-02-07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순신의 바다 - 그 바다는 무엇을 삼켰나
황현필 지음 / 역바연 / 2021년 12월
평점 :
품절



 

어려서부터 내셔널리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탓도, 월드컵도 잘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거의 모든 이들이 봤다는 <명량>도 보지 않았다. 그러다 세밑에 도서관에 갔다가 황현필 작가의 <이순신의 바다>가 보였다. 냉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계묘년 첫해의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술술 읽혔고, 그림과 지도들이 많아서 읽는데 전혀 부담이 없었다. 마음에 들었다는 말이다.

 

영웅을 뛰어 넘어 성웅이라 불리는 역사적 인물이 우리나라에 또 있을까. 세종과 이순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군주에게 핍팍과 억압을 당하고 결국 7년 전란을 마무리짓는 마지막 전투에서 산화한 신화적 인물이 바로 이순신이 아니던가. 자그마치 5,000여명이 되는 이들이 이순신 연구를 하고 있다니 그가 얼마나 문제적 인간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처음부터 타협적인 태도를 지닌 정치적 인간이었다면 원균의 모함이나 조정이나 선조의 탄핵을 받아 백의종군하거나 그런 일은 처음부터 없었으리라.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태생부터 그렇게 생겨 먹은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색당파로 분열된 조정에서 한낱 지방관에 불과한 무인을 주무르는 건 일도 아니었으리라. 그나마 그를 발탁한 서애 류성룡을 필두로 한 인물들이 이순신을 비호해서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이 가시화되고 있었지만, 개국 이래 200년간의 태평성대로 조선은 외적의 대대적인 침략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15924월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일본군 정예부대가 부산진에 상륙했을 때 육전에서 조선군은 일본군에게 판판히 박살이 나고 있었다. 결국 임금 선조는 파천하고 의주로 튀어 버렸다. 한국전쟁 때 최고책임자처럼 말이다.

 

조국이 파국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일군의 수군을 이끌고 왜군의 수륙병진작전에 쐐기를 박았다. 가장 먼저 왜군이 상륙한 경상도 바다를 지켜야 했던 원균은 아무런 작전도 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이런 인간을 선조는 계속해서 중용하다가 결국 칠천량에서 사단을 내고 만다. 그를 비호한 조정 인사였던 윤두수는 원균과 사돈지간이었고, 또 윤두수는 선조와 사돈지간이었다고 한다. 망조 들린 나라 조선 몰락의 이유에는 이렇게 정실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재정의 1/3을 책임지는 호남을 왜군에게 넘겨준다면, 전쟁 수행을 위해 보급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조선 원정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일본 수군의 서해 진출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다. 이순신은 자신 휘하에 배속된 수군은 물론이고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병사들과 주력함선인 판옥선을 모으는데 집중했다. 일대일 대결에서는 일본 소년 무사 하나를 당해낼 수가 없었기에 원거리 아웃복싱을 주력으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수군의 장기인 등선육박전을 피하고, 대신 원거리 함포사격으로 왜군 격파를 시도했다.

 

한편, 조정으로부터 아무런 지원과 보급을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판옥선의 건조는 물론이고, 군량미와 화약 등 전쟁 필수물자들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도입했다는 둔전제 실시에도 적극적이었다. 전쟁이 소강기를 맞이했을 때는, 이순신이 직접 농기구를 들고 밭을 갈기도 했다고 한다. 뛰어난 지방관으로서의 모습도 보인다.

 

전략가로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적에게 아군의 의도를 숨긴 채 기동하는 기도비닉은 기본이었다. 사전에 실전에 가까운 빡센 모의훈련으로 얼마 안되는 조선 수군을 정예병사로 키워내는데 성공했다. 지속된 정찰로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데도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전장으로 적을 유인해서, 아군의 피해는 최소한으로 하면서 적을 섬멸하는데 목표를 두었다. 옥포해전을 필두로 해서, 마지막 노량해전을 제외하고 스무 차례에 달하는 전투에서 아군의 피해가 말도 안되는 가성비를 자랑했다.

 

물론 가장 많은 적은 쳐부순 한산도대첩도 중요했지만, 이순신 자신은 당포해전을 중요시했다는 점도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견내량과 한산도를 장악한 이순신은 일본 수군의 서진을 철저하게 막았다. 오죽했으면, 타이코 히데요시가 일본 수군에게 이순신과 맞붙지 말라는 명을 내렸을까.

 

고려 천자라 불리던 만력제의 결단으로 선조가 그렇게 고대하던 명군이 마침내 참전하면서 내내 밀리던 육전에서도 상황이 역전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 전쟁에 참전한 명군이 조선군처럼 열심히 싸우기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명군과 왜군과의 정전협상이 개시되면서 1597년까지 4년간의 냉전이 시작됐다. 명에서 파견된 협상가 심유경의 주작질로 협상이 질질 끄는 동안, 일본은 자그마치 9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서 진주성을 함락시키고 대학살을 자행한다. 그동안 이순신은 조정을 명을 받고 일본군을 요격하고자 부산진까지 출진했지만, 협상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명나라의 제지를 받고 군사를 돌리게 된다.

 

이 와중에 사사건건 이순신의 전쟁을 방해하던 원균이 올린 장계를 철썩 같이 믿은 멍청이 임금 선조를 결국 이순신의 파직시키고 조정으로 압송을 명령한다. 도대체 이순신이 무슨 역적질을 했단 말인가? 나라를 잃고 파천한 임금이 자신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조커 같은 카드를 이렇게 대하다니 그저 할 말이 없을 뿐이었다. 인조와 더불어 조선 역사에서 두 번째라면 서러워할 암군 선조가 그렇게 믿고 의지한 원균이 이순신이 수년간 애를 써가면서 키운 조선 수군을 칠천량 전투에서 한 방에 들어먹었다. 이순신이 건재하던 시절에는 얼씬도 못하던 남해 바다가 왜군의 수중에 들어가고, 일본이 재침공한 정유재란의 시발점이 되었다.

 

아무리 멍청한 임금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가 달랑 하나 남아 있다는 걸 비로소 깨달은 선조는 백의종군한 영웅을 다시 복직시킨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영웅은 남아 있는 한 줌의 패잔 부대를 끌어 모아 기세등등한 일본 수군에 맞선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이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봐야 하나 싶다.

 

그간 황현필 작가의 임진왜란 역사 콘텐츠를 많이 보았는데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나 임진-정유재란을 마무리짓는 노량해전이 아닌가 싶다. 조국의 강토를 짓밟은 왜군이 다시는 조선 땅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으로 사기가 떨어진 채 철군하는 왜군을 섬멸하는 것이 이순신의 최우선 목표였다.

 

울산왜성의 가토 기요마사 부대와 사천왜성의 시마즈 요시히로 부대는 조선 수군의 작전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타겟이 될 수가 없었다. 대신 순천왜성에 주둔하던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는 그대로 돌려보낼 수가 없다는 게 이순신의 판단이었다. 해상으로 철군하지 않으면 고사당할 위기에 처한 일본군의 발악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그만큼 조선군의 피해도 막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한 듯,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실제 역사지만, 이렇게 완벽한 서사가 또 있을 수가 있을까 싶다. 무과에 급제해서 변방에서 실력을 기른 장수가 국난의 위기에 분연히 일어나 연전연승하며 조국을 구했다. 국가 지도자는 이런 영웅에게 어떠한 지원도 해주지 않은 채, 터무니없는 명령만 주문한다. 라이벌의 모함을 받아 들여 그를 파직시키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었다.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막내 아들과 어머니를 전란 중에 잃었다. 자신도 사천전투에서 부상을 입어 1년 간 고생했다. 역병에 걸려 운신이 어려운 와중에도 뜨거운 조국애와 애민정신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어느 누구도 생전에 영웅의 노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면 결국 자신은 해도 그만인 망궐례를 임금에게 하지 않고, 항명을 빌미로 파직과 탄핵을 당할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전쟁의 대단원을 알리는 마지막 전투에서 영웅의 죽음은 이 위대한 서사의 화룡점정이었다. 다양한 변주를 통해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밖에 없는 완벽한 서사라는 점을 도저히 부인할 수가 없다.

 

왜 우리는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정의조차 취사선택되는 수상한 시절 탓을 해야 하는 걸까. 내우외환, 고물가 그리고 경제 위기에 대한 경고가 끊이지 않는다. 모든 지표가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기에 지도자의 자질과 품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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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3-01-0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려천자 ㅎㅎㅎ 딱 맞는 말같아요. 칠전량전투 너무 열받더라고요. 마지막 문단 와닿습니다 매냐님 ~ 편한 저녁 보내세요 *^^*

레삭매냐 2023-01-02 10:01   좋아요 1 | URL
어제 결국 영화 <명량>을 봤는데
진차 국뽕 원탑이었습니다.

칠천량 전투는 정말 -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3-01-0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실제 역사지만 너무 드라마틱해서 더 감동적인것 같아요~!! 사실 그대로의 국뽕은 너무 좋은거 같아요~!!

레삭매냐 2023-01-02 10:02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실제 역사가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 있
다니...

명량-한산 그리고 마지막
노량이라고 하는데, 마지
막 작품은 눙물바다가 될
것 같습니다.

bookholic 2023-01-01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현필 유튜브도 좋더라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레삭매냐 2023-01-02 10:03   좋아요 1 | URL
네 황작가님 너튜브
즐겨 보고 있답니다.

좋은 콘텐츠에 박수
를 보내는 바입니다.
쨕쨕쨕.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도 새해 복 많이 받으
셔요.

coolcat329 2023-01-02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국뽕할 만 해요. 정말 영웅의 서사입니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레삭매냐 2023-01-02 10:06   좋아요 1 | URL
저의 디폴트는 국뽕 결사
반대지만, 이 정도면 예외
를 두어도 되지 싶습니다.

<명량>에서 적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대장선이 울돌목으로 빨
려 들어갈 때, 갑자기 등
장한 백성들의 포작선(?)
이 침몰 위기를 구해내는
장면은 진차 압권이었습니다.

책은 쉬워서 슬슬 읽힙니다.
감히 일독을 권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