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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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 따로 있다'는 이 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봤을 때 이 말은 곧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세상에는 선물하기에 좋지 않은 책이 반드시 있다'로. 앞의 말은 수긍하기가 쉽다. 뭔가 적절해보이고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대단히 매력적이진 않다. 그냥 여기서 끝난다. 반박할 수가 없다. 매력적이지 않아서 반박할 기운이 없어지는 게 먼저인지, 처음부터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매력이 떨어진 게 먼저인지, 그건 모르겠다. 근데 뒤에 말은 그렇지 않다. 수긍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냥 퍽, 하고 걸린다. '좋지 않은' 이라는 부정적 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못마땅하고 못생겼다. 게다가 허술하기까지 하다. 딱 봐도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반박이고 뭐고 무시하고 싶어진다. 


선물하기에 좋지 않은 책은 당연히 너무나 많다. 선물도 사람 봐가며 선물해야 하는 세상이니 선물이라고 아무거나 하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책도 예외는 아니라서(예외를 떠나 더 민감하지 않나), 선물하는 사람과 선물받는 사람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시어머니한테(아니 시아버지로 할까?) 누드사진집을 선물하는 며느리가 있다면?(상식적인 샘플로는 너무 나갔지만, 극단의 예로 사용하기엔 아주 적합하다고 본다) 과연 있을까? 당연히 없겠지.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설정까지 해가며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할까. 나는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 선물을 잘 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 변변찮고 게으른데다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그런 거라고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건 또 너무 구차하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책선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의 없다. 누구한테 선물했냐고 한다면, 자신있게 답할 수는(수 있는 부분은) 있다. 오프라인 지인에게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여기서 오프라 함은, 평소 자주 만나거나 알고 지내는 사이를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정말로 윤택하고도 유복한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 책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삶.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다면 그는 복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지인이라 함은 당연히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친구나 선후배다. 더 나아가 (그야말로 금상에 첨화까지 주렁주렁 달아서, 친척이든 인척이든 안가리고 혈연으로 묶인 사이라면,) 일가친척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금상첨화다. 나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다. 아직까지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불행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윤택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하란 법은 없다.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상으로 이 책의 리뷰를 마친다. 책 내용이나 작가에 대해서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정말인가? 정말이네!) 이러고도 이걸 리뷰라고 내놓을 수 있을까.(하긴 언제는 안그랬나. 리뷰가 뭐라고 이리 전전긍긍이냐)  그러니까 이 책의 리뷰를 이런 식으로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글이 흘러갔다. 그걸 지켜보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쾌감이 더 컸다. 이 글로 인해 그 누구도 불쾌감을 느끼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밑줄이 아닌 삭제의 줄긋기를 몇군데 좍좍 했는데, 당연히 이유가 있다. 이 책의 말투를 따라하려니 그렇게 되었다. 어휘구사와 같은 감성 따라하기가 아닌 그냥 말투. 일종의 태도랄까. 이딴 걸로, 이 책을 읽은 분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의 일환으로 이와 같은 리뷰를 쓰게 되었다. 근거는 없는데 존재는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다. 




p.s.

'존재'니 '사유'니 하는 이런 류의 단어를 안쓰려고 발악을 한 것도 같은데, 결국 쓰고 말았다. 글쓰기에 있어서 어떤 말은 버려야 하고 또 어떤 말은 써야 하는데, 그 선택의 기로에서 글쓰는 사람의 태도가 나온다. 나는 이런 류의 단어에 기대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건 무조건 내 취향이다. 같은 말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문체가 아무리 유려하고 섬세해도, 세상을 보는 시선이 아무리 깊고 넓어도, 감각이 아무리 예리하고 재치 있어도, 태도 앞에선 모두 소용없다. 그런데 이 '태도'라는 것만큼, 그걸 규명하고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만큼, 중구난방 뒤죽박죽 제각각 인게 또 있을까. 그래서 세상은 참 지랄맞은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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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3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7-01-13 19:24   좋아요 2 | URL
책이 횡행하는(?) 이곳 알라딘에서 무슨 배짱으로 아, 나 이거 행패를 부리는건가 뭔가.. 쓰면서도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물론 제가 여기서, 온라인 지인들끼리 주고받는 책선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무슨 딴지를 걸듯이 말하지는 않았지요.(그런 용기라도 있다면, 그럴 낯짝이라도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요:) 다만, 저의 이 분리장애스러운 리뷰에서 말하고자 했던 요지가 있다면, 이런 거였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로 가득한 세상 두 군데를 꼽으라면, 직장(돈벌이 집단)과 혈육(여기도 엄밀히 보면 돈벌이 집단)인데요,-여기서 혈육의 범위는 친인척입니다- 이들 사이에서 책을 선물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히 잘 살아오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라고 보니까요. 제 주변에 아직까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구요. 제 말은 그러니까,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께 혹시라도 오해가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님의 반가운 댓글에는 좀 ‘걸맞지‘ 않지만, 공개댓글로 답을 드립니다. 이해해 주시는 거죠?^^

yureka01 2017-01-13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어떤 의미인지 이해 됩니다..^^.

컨디션 2017-01-13 22:54   좋아요 2 | URL
이해를 구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는데, 이해해 주시니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

커피소년 2017-01-18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문 세상..ㅎㅎㅎ 그래서 친인척들과 책을 주고받는 일..참으로 쉽지 않지요..^^


컨디션 2017-01-19 00:04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사람이 드물기도 하지만, 어떤 가족 친인척 관계들은 또 책을 통한 교류가 활발하기도 할 것 같다는, 모종의 유토피아(?) 같은 세상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러고 보니 엎어치나 매치나 쉽지 않은 일인 건 맞네요.^^
 
[블루레이] 캐롤
토드 헤인즈 감독, 케이트 블란쳇 외 출연 / 기타 제작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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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이 좋길래 뭔가 싶었는데, 보기도 전에 퀴어영화라는 얘길 들었다. 나의 첫 반응은 그래?(어머)였고, 곧바로 그렇구나(아이고)로 바뀌었다. 청소년을 자녀로 둔 엄마가 청소년들과 청불을 본다는 정말이지..무언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각오해야 할 그 무엇이란, 당연히 베드신이다. 물불 안가리겠다는 어마어마한 마인드 컨트롤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더 효과적인 게 있다. 어머어머 어쩌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다. 동성애를 나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두 명의 청소년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확인한 게 있다면, 이 영화가 왜 청불인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라는 아이들(큰딸)의 반응이었다. 사실 요 얼마전에 <브로크백 마운틴>을 같이 보긴 했었다.(그러고 보니 전적이 있었군:) 당연히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러니까 그 영화가 이 영화에 대한 완충작용의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지난 번 브로크백 마운틴이 훨씬 슬프고 임팩트 있어서 더 좋았다는 결론 외엔 딱히 그들의 감상평을 들을 수 없었다.(얘들 중간에 졸더라구요:) 


퀴어영화라는 얘길 듣기 전, 그러니까 그냥 영화 포스터만 봤을 때의 나의 기대감은 사실 다른 데 있었다. 두 여자(모녀지간이 아닌 이상)를 나란히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는 이미 그 자체로서 드문데, 어떻게 스토리 라인을 잡았을까 하는 호기심. 나의 이 순전한 호기심에 찬물을 끼언듯, 뭣이라고라, 퀴어영화라고라. 이거 뭐 뻔한 거? 한풀 꺽고 들어가란 거네. 일단은 그랬었다. 그리고 위에서 구구절절(?) 말했듯이 그렇게 두 미성년의 딸들과 영화를 보긴 했다. 다들 잠잠했다. 난 웬일로 졸진 않았지만 이거 뭐 대단할 것도 없는 시시한 영화네. 그렇게 막을 내리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며칠이 흘렀고, 방을 청소하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문득문득 캐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캐롤과 테레즈. 클로즈업 샷으로 내내 방출된 그들의 얼굴(엄밀히 말하면 영화배우의 얼굴)을 너무 뚫어지게 본 탓인가 몰라도 계속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그들의 관계를, 그들의 로맨스와 사랑을, 어쩐지 다시 바라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번개처럼 왔다.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었는지는 몰라도, 관객님들아 이 영화는 좀 다른 시각으로 봐주라. 단순한 퀴어로 볼 것만은 아니라니깐드루. 이런 속삭임(뭔 얼어죽을)이 내게로 왔달까. 


더 쓰고 싶지만 그랬다간 뭔가를,(그 뭔가가 뭔지는 내가 너무도 잘 알지만 밝힐 수 없다. 왜냐면 누구나 짐작가능한 것이기에 밝히는 순간 유치짬뽕나가리가 된다) 탕진한다는 기분이 더럽게 엄습하므로 영화 얘긴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그래도 내가 얻은 이 영화의 메시지랄까, 그건 밝히고 끝내야겠지? 모든 사랑에는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이것이 내 결론이 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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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1-12 1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님과 함께 영화보는 자녀가 더 어머. 아이고. 아닐까요.^^;
캐롤 좋았나봅니다.
컨디션님 좋은하루되세요.

컨디션 2017-01-12 22:15   좋아요 1 | URL
아이들 인생이야 어찌되었건 저는 아이들이랑 영화나 보면서 놀고싶은 그런 엄마랍니다.ㅠ 이번에도 아이가 먼저 제안했고(공부는 하기싫은데 그러자니 엄마한테 시간을 내어야 할 좋은 타이밍이고 해서) 전 순진하고 단순하게 받아들였구요

캐롤 겨우 별 세갠데 좋았다고만 할수있을까요 ^^

2017-01-12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컨디션 2017-01-12 22:15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면 아니 되는디..^^

samadhi(眞我) 2017-01-14 06: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이트 블란쳇 이 영화에서 정말 매력이 뚝뚝 떨어지더라구요. 안 그래도 카리스마 가득한 사람인데...

컨디션 2017-01-14 17:11   좋아요 1 | URL
아, 케이트 블란쳇, 정말이지 백퍼 동의합니다. 푸른 초원에, 또는 황량한 광야에 갖다 놓더라도 암사자처럼 당당할 수 있는 배우 같아요.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써라
딘 R.쿤츠 지음 / 문학사상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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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이 작가가 1945년 생이라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그리고 이 책(No 이미지로 뜨네)의 국내 초판이 자그마치 1986년이라는 것도 당연히 처음 알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에서야(자 2017년이다) 이 책을 읽었다. 내 독서습관에 맞지 않는 이례적인 속도로 말이다. 이 책을 읽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제목에 있다. '베스트셀러 소설 이렇게 쓰란'다. 그래요? 그렇단 말이죠?.. 이렇게 싸구려스러운(?) 제목이라니. 19금도 아닌데 이렇게 낯뜨거운 효과를 주다니. 정말 자신감 쩌는군요. 어디 한번 낯짝이나 봅시다. 난 순전히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단언컨데 눈곱만큼의 후회도 없었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뒤늦게 몰아치는 북풍한설처럼, 난 아주 희한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종국엔 시야를 가린다. 아, 물론 이게 한낱 과잉쇼에 불과하다는 걸 알만한 이들은 알테고. 그러니까 적어도 나의 이 감정이 후회와는 아주 별개의 차원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다. 이른바 장르소설. 그게 대체 뭔데? 하던 시절이 (놀랍게도? 놀랍게도!) 나에겐 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러니까 딱 오늘에야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난 이제 대단한 전환점에 서 있다. 장르소설의 위력을 실감하지도 못했고 그 실체를 느껴본 적도 없고 이 분야의 책도 읽은 게 10권이 채 안된다.(나도 설마설마 했다:) 이런 현실에, 이런 마당에, 당연히 신세한탄처럼 들리도록 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신세한탄만은 아니다. 왜냐면 난 지금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낙관이 폐부를 찌르면서 파고든다. 아, 장르소설이라는 게 이런 거로구나. 세상의 작가들이여. 명성이 있건 없건, 무조건 돈을 좀(아니 왕창?) 만지려면 무조건 장르소설부터 만져요. 그게 장땡이래요. 그렇다면, 나의 낙관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이들에게 이런 격려 멘트를 날리다니 너무 대단해서? 그렇다. 그러하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국내외 장르소설 작가 중에 베스트셀러로 성공한 작가가 누가 있나 알아보기 전에, 성공한 장르소설이라는 게 그야말로 대단한 살인극을 거점으로 하는 악마적 요소를 갖추지 않고서는(딘 쿤츠만 하더라도 작품의 90% 이상은 살인마를 다루고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나처럼(나처럼? 나처럼!) 맑은 영혼의 소유자는 일단 이 진흙탕 같은 피비린내를 즐길 수 있는 멘탈부터 갖춰야겠구나. 어설프고 순진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고 속임수도 노림수도 없이, 아 어쩌면 이토록 게으르게 일관된 삶을 살았을까. 인생 경탄스러워. 그저 저 빛바랜 노트의 한귀퉁이에 볼펜똥으로 문드러지고 썩어가는 아주 오래된 글씨처럼. 그래, 그러자꾸나. 어느날 문득 모두 불살라 버리자꾸나.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 그런 멘탈이 필요해. 그런 멘탈을 원해. 으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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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7-01-12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알고 있는 작가인데 자꾸 읽기를 미루고 있었어요.^^ 장르쪽으로 유명한 작가이죠. 컨디션님 글을 읽으니 올해는 그의 책 한권이라도 읽어봐야겠네요. 이분도 워낙 다작이라 어떤책으로 시작할지 고민좀해봐야겠습니다. ^^

컨디션 2017-01-12 12:59   좋아요 0 | URL
딘 쿤츠 작품들 뭐가 있나 검색해보다가 보니, 스티븐 킹보다 두 살 많은 동시대 작가였네요. 스티븐 킹의 그늘을벗어나긴 힘들겠지만(일단 여기 국내에서의 인기도로 봤을 때) 딘 쿤츠랑 스티븐 킹이랑 스타일면에서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고요.. 보슬비님 읽으시려는 책, 첫번째로 뭐가 당첨될까나, 제 예상은요, 남편? 살인예언자? 심장강탈자? 벨로 시티? 이방인? 아 제가 점쟁이는 아니라서 전혀 감이 안오네요.ㅎㅎㅎ


 
소설을 살다 - 삶에서 소설을 소설에서 삶을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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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이라 밑줄은 못그었고 약간의 필사를 하긴 했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많았지만 필사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자니 바보가 따로 없는 것 같았다. 필사가 어렵다 어렵다 하는데, 내가 생각하는(겪은) 필사는 어려운 게 아니라 괴로운 쪽이다.(뭐 그게 그건가) 암튼 내가 생각하는 필사의 괴로움은, 글씨가 잘 써지지 않는다거나 시간이 정말로 정말로 많이 걸린다거나, 해서는 아니다. 물론 그런 사소한(?) 이유가 괴로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긴 하지만, 결국에는 나 자신인 것이다.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 나를 둘러싼 공기가 어느 순간 불길한 전조를 띠며 커튼 뒤에서 날카로운 뭔가를 숨긴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착각(과연 착각일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때는 반드시 누군가의 책을 필사하고 있을 때다. 그래서 난 좀처럼 책을 필사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하다가 관둔다. 그렇게 쌓인 노트가...수백권이이라고 뻥을 치고 싶지만 살아온 내 인생이 그 정도로 성실하기라도 했더라면, 누구 말대로 뭐라도 되어있었으려나.(과연 뭐가 되길 바라는 것일까. 바란다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또 필사(?)를 해본다. 50쪽을 베낀 메모장을 펼친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내 소설의 현실적 힘을 신뢰하지 않는다.

칼보다 강하다는 잠언 속의 펜은 신문기자의 기사인지 모르겠으나 내 소설은 아니다.

'개'라는 말이 물지 않듯이 '칼'이라는 글자 역시 베지 않는다.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체계로부터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무는 개와 베는 칼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러나 '개'라는 말과 '칼'이라는 글자를 가진 사람들도 또한 다른 곳에서 행복하다.

저들이 현실 속에서 행복한 것처럼 이들은 다른 현실 속에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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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01-10 18: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마 커튼 뒤에서 고형제가 지켜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 책은 책갈피가 있나 없나 하면서요.^^;

컨디션 2017-01-11 13:16   좋아요 2 | URL
고담이가 고달수의 누나뻘이랍니다. 둘은 요즘 자주 티격태격 하는데 눈치없던 고달수가 요즘은 좀 눈치가 생겼는지 상황 봐가며 처신을 하더라구요. 아 그리고 예감(?)하신대로 고담이에 이어 고달수가 바통을.. 책갈피 끈 말이예요. 늘 노리고 있어요. 무서워요.ㅎㅎㅎ
 

남편은 엊그제 아는 형님과 점심으로 짜글이 찌개를 먹었나본데, 점심값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점심값을 내지 않았다고 봤을 때, 가까운 어디 커피숍 같은 데도 없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는지, 대신 가까운 데 어디 편의점이 있으니 거기라도 들어가 볼 요량을 부렸고 그게 마치 의기투합인양 두 사람은 그렇게 하기로 했다. 남편은 호기롭게 칸타타 1+1을(행사) 집어들었고 그 칸타타는 매우 따뜻했다. 그런데 그때, 그 아는 형님의 방광에 신호가 왔다. 그 아는 형님은 급히 화장실을 찾았고 그 편의점에서 가장 가까운 데 어디 화장실이 위치한 곳은 유일하게(당연히 유일할 수밖에 없다. 가장 가까운, 이라는 단서가 붙었으므로) 동사무소 건물밖에 없었다. 남편이 가르쳐준 동사무소 건물로 뛰어 들어간 그 아는 형님은 그 길로 뛰어 들어갔고 당연히 몇 분 후 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길로 그냥 가겠다고, 안마시고 그냥 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남편은 그에 응해주었는지 그로 인해 남편의 두 손엔 칸타타 두 개가 나란히(아니 겹쳐서?) 들려 있었고 그 길로 집으로 곧장 들어온 남편의 두 손엔 하나는 반쯤 먹다 남은 칸타타가, 하나는 온전히 그대로인 칸타타가 들려 있었다. 난 그로 인하여 뚜껑을 따지 않은 온전한 칸타타 하나와 반쯤 먹다 남은 칸타타 하나(?)를 먹게 되었다.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부질없는 짓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나 저러나 그래봤자 모두 부질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부질없음으로 인해 이 부질없는 인생을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그 단순무식함이 참으로 편리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까지만 하고,



이 책에 대해 얘길 하자면, 우선 새해 소망이 하나 생겼다. 아니 소망이라기 보다는 미션에 가깝다. 

이 책에 나오는 몇몇 대목을 정해서(이를테면 153쪽 같은?) 문장을 통째로 외워보는 거.

가능하지 않겠지만 이승우 식으로 말해 보자.

 '그러나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라면, 뭐 가능도 할 것이다.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고 막 우겨서라도 마구마구 한번 외워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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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1-07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외운다는 것은 마음에 문장을 세기는 일..
미션 치고는 아주 마음에 듭니다!~~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세겼던 그 누군가를 닮은듯이!~

컨디션 2017-01-07 10:46   좋아요 2 | URL
ㅎㅎ알타미라급으로 띄워주시는 거예요?격려 감사합니다.^^
음, 제가 이걸 결심하게 된 가장 결정적 이유는요, 이승우 이 책의 문장들이 범상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외우고 읊조리기에 상당히 적격이다 싶어서요. 마치 랩을 하듯이 외우면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

한수철 2017-01-08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는 소설집 가운데 하나네요.^^

뭐, 그냥 그렇다구요.

컨디션 2017-01-09 14:34   좋아요 1 | URL
한수철님이 좋아하시는 작가 중에 이승우는 단연, 손에 꼽고도 남을 정도라는 것을 아는 것보다 모르기가 더 어렵죠.^^
근데 이승우가 좋아하는(위대하다고 창송하는) 작가가, 주로 카프카, 보르헤스, 미셸 트루니에,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엔도 슈사쿠, 그리고 이청준...이라는 사실을 오늘 막 알게 되었어요.

뭐, 저도 그냥 그렇..지만은 아니예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