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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지음 / 서해문집 / 2016년 12월
평점 :
'세상에는 선물하기에 좋은 책이 따로 있다'는 이 말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봤을 때 이 말은 곧 이렇게 바뀔 수 있다. '세상에는 선물하기에 좋지 않은 책이 반드시 있다'로. 앞의 말은 수긍하기가 쉽다. 뭔가 적절해보이고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렇다고 대단히 매력적이진 않다. 그냥 여기서 끝난다. 반박할 수가 없다. 매력적이지 않아서 반박할 기운이 없어지는 게 먼저인지, 처음부터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매력이 떨어진 게 먼저인지, 그건 모르겠다. 근데 뒤에 말은 그렇지 않다. 수긍이냐, 아니냐를 떠나 그냥 퍽, 하고 걸린다. '좋지 않은' 이라는 부정적 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딘지 모르게 못마땅하고 못생겼다. 게다가 허술하기까지 하다. 딱 봐도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반박이고 뭐고 무시하고 싶어진다.
선물하기에 좋지 않은 책은 당연히 너무나 많다. 선물도 사람 봐가며 선물해야 하는 세상이니 선물이라고 아무거나 하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책도 예외는 아니라서(예외를 떠나 더 민감하지 않나), 선물하는 사람과 선물받는 사람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다. 시어머니한테(아니 시아버지로 할까?) 누드사진집을 선물하는 며느리가 있다면?(상식적인 샘플로는 너무 나갔지만, 극단의 예로 사용하기엔 아주 적합하다고 본다) 과연 있을까? 당연히 없겠지.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설정까지 해가며 '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려고 할까. 나는 오프라인에서나 온라인에서나 선물을 잘 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이 변변찮고 게으른데다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그런 거라고 자기변명을 늘어놓는 건 또 너무 구차하다. 그러니까 누구에게 책선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거의 없다. 누구한테 선물했냐고 한다면, 자신있게 답할 수는(수 있는 부분은) 있다. 오프라인 지인에게는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여기서 오프라 함은, 평소 자주 만나거나 알고 지내는 사이를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로 정말로 윤택하고도 유복한 삶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 책으로 교류할 수 있는 삶.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다면 그는 복 받은 사람이다. 여기서 지인이라 함은 당연히 학교나 직장에서 만난 친구나 선후배다. 더 나아가 (그야말로 금상에 첨화까지 주렁주렁 달아서, 친척이든 인척이든 안가리고 혈연으로 묶인 사이라면,) 일가친척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금상첨화다. 나는 그런 삶과 거리가 멀다. 아직까지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삶이 불행하냐 하면 그건 아니다. 윤택하지 않다고 해서 불행하란 법은 없다. 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상으로 이 책의 리뷰를 마친다. 책 내용이나 작가에 대해서나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정말인가? 정말이네!) 이러고도 이걸 리뷰라고 내놓을 수 있을까.(하긴 언제는 안그랬나. 리뷰가 뭐라고 이리 전전긍긍이냐) 그러니까 이 책의 리뷰를 이런 식으로 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향으로 글이 흘러갔다. 그걸 지켜보면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쾌감이 더 컸다. 이 글로 인해 그 누구도 불쾌감을 느끼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밑줄이 아닌 삭제의 줄긋기를 몇군데 좍좍 했는데, 당연히 이유가 있다. 이 책의 말투를 따라하려니 그렇게 되었다. 어휘구사와 같은 감성 따라하기가 아닌 그냥 말투. 일종의 태도랄까. 이딴 걸로, 이 책을 읽은 분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하는 마음은 요만큼도 없다. 이 책을 읽은 후유증(?)의 일환으로 이와 같은 리뷰를 쓰게 되었다. 근거는 없는데 존재는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뿐이다.
p.s.
'존재'니 '사유'니 하는 이런 류의 단어를 안쓰려고 발악을 한 것도 같은데, 결국 쓰고 말았다. 글쓰기에 있어서 어떤 말은 버려야 하고 또 어떤 말은 써야 하는데, 그 선택의 기로에서 글쓰는 사람의 태도가 나온다. 나는 이런 류의 단어에 기대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이건 무조건 내 취향이다. 같은 말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듯이, 글도 마찬가지다. 문체가 아무리 유려하고 섬세해도, 세상을 보는 시선이 아무리 깊고 넓어도, 감각이 아무리 예리하고 재치 있어도, 태도 앞에선 모두 소용없다. 그런데 이 '태도'라는 것만큼, 그걸 규명하고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만큼, 중구난방 뒤죽박죽 제각각 인게 또 있을까. 그래서 세상은 참 지랄맞은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