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의 힘 - 과거를 바꾸고 미래는 만드는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홍성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부제 - 과거를 바꾸고 미래는 만드는

  저자 - 에노모토 히로아키



  표지가 특이하다. 식빵들이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인생이 달라지는 기억 활용법’이라고 적혀있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와 동시에 대충 어떤 내용일 거라는 상상력이 무한 발동되기 시작했다. 책의 내용은 내가 상상한 것과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했다.


  책의 뒷면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태도와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면 당신의 기억을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이 기억을 불행하게 혹은 행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내용은 기억 조작 같은 거창하고 부작용이 있는 심리 실험에 대한 얘기는 아니었다. 음, 아마도 내가 SF 소설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쪽으로 예상한 모양이다.


  책은 ‘생각과 입장이 다르면 기억도 다르다.’라는 전제로 내용을 펼치고 있다. 노래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처럼, 나쁜 일이 닥쳐도 그냥 한 번 휘파람을 불면서 언제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말하고 있다. ‘안 좋은 기억이 많아서 우울증에 걸리는 게 아니라, 기분이 우울하기 때문에 괴롭고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는 것-p.11'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왜 똑같은 상황에 대한 기억이 사람마다 다른지, 그 때 우리는 어떻게 느끼는지 예시를 들어 보여준다. ‘때리는 놈은 잊어도 맞은 놈은 기억한다.’는 옛말처럼, 시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고 얘기한다. 또한 어떤 외부적인 환경에 있었느냐에 따라 기억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부분을 기억하느냐에 따라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동기부여라든지 성공 체험을 떠올리면, 과거의 실패했던 기억이나 무기력함이 어느 정도는 극복될 수 있다고 한다. 언제나 나는 잘 될 것이라 믿으면서, 자기 암시를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미래는 과거에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아무리 지금 상황이 우울해도 좋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를 위한 몇몇 팁과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연상 기억법에 대해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책을 다 읽은 느낌은 일종의 처세술 내지는 사회 적응 훈련 연습용 책 같다는 것이다. 과장님이나 부장님이 ‘이따위밖에 일을 못 해!’ 하고 서류를 확 던져도 금세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방법과 동기를 알려주는 책 같았다. 물론 너무 쉽게 잊고 헤헤거리면 속없다는 평을 들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를 잊으면 미래도 없다는 말에 공감을 하기에 이런 책을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우울한 기억에 온 몸을 내맡겨서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만, 매번 그럴 수는 없다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아픈 기억이 노력과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유의 책을 꺼려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을 빼고는, 한 번 쯤은 읽어봐도 괜찮은 책 같다.


  좋은 추억을 생각하면 행복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그리고 슬픈 기억만 하면서 우울하게 사는 것보다는 ‘예전에 좋았는데, 앞으로도 좋아야지’라고 생각하는 게 더 기분 좋아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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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인형 - 아웃케이스 없음
톰 홀랜드 감독, 크리스 서랜든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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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Child's Play, 1988

  감독 - 톰 홀란드

  출연 - 캐서린 힉스, 크리스 서랜든, 알렉스 빈센트, 브래드 듀리프




  그 악명은 예전부터 귀에 익은, 아주 못생긴데다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인형 처키. 사진은 종종 보았다. 그를 따라하는 연예인도 있었고.


  이제 여섯 살이 되는 꼬마 앤디가 엄마에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귀여웠다. 토스트는 다 태우고, 시리얼은 너무 많이 넣고. 게다가 주스는 너무 많이 부어서 소년이 걸을 때마다 복도에 줄줄 흘렀다. 그런데 이 귀여운 소년, 취향도 특이하다. 왜 그 못생긴 ‘굿 가이 인형’을 갖고 싶어 하는 걸까? 옷도 인형이랑 똑같이 입고 다니고 말이다. 이왕이면 좀 귀엽게 생긴 걸 좋아하지. 아, 인형도 외모 지상주의가 되는 건가?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엄마가 우연히 길에서 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매한 인형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찰에 쫓기다가 죽은 범죄자의 영혼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인형은 처음 공장에서 출시되었던 나름 귀여운 표정에서 점점 날카로운 눈매에 인상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변해간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 아무래도 속에 들은 영혼이 정상이 아니니까 그런가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조그마한 인형이 칼 들고 다니는 게 뭐가 무서울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작지 않았다. 여섯 살 난 꼬마와 비슷한 덩치를 가진, 예상보다 큰 인형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어른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흑마술 주문을 외우는 인형이라 무서운 걸까? 아니면 예상치도 못했던 일을 맞닥뜨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냥 발로 뻥 차서 던져버리면 끝날 텐데 말이다. 인형이 힘이 셌나? 그런 걸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니 좀 우스웠다.


  영화는 좀 답답한 면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도 소년이 하는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하긴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고 말을 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게다가 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이제 겨우 여섯 살이 되는 꼬꼬마라면 말이다. 잠에서 덜 깼냐고 묻거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나부터도 어린 조카가 그런 말을 하면, 어른을 놀리지 말라고 했을 테니까. ‘이 녀석이 고모를 호구로 아네? 잘 놀아주고 받아주니까 친구 같니?’ 이러면서 말이다. 하아, 나도 영화에 나오는 답답한 어른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 영화, 그렇게 생각하니 어른들에게 죄책감을 주고 있다.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고, 세상엔 이성과 논리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마음의 눈을 열고, 다양한 많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얘기한다. 모 아니면 도가 아니라, 걸도 있고 윷도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세상은 넓고 복잡하며 요상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한다.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형 하나 어쩌지 못해서 비명을 지르고 도망 다니는 어른들의 모습은 어이없기만 하다. 거기에 총을 쏘고 불을 질러도 살아나는 처키의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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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의 악마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4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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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vil Under the Sun, 1941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출판사는 이런 걸 노린 모양이다. 13권 ‘커튼’에서 포와로 소설 이제 안 나온다고 해놓고, 14권 ‘백주의 악마’에서 ‘짜잔 써프라이즈~ 나 아직 활동하고 있어요.’하고 그가 다시 나오다니! 너무도 반가워서 두 손으로 책을 공손히 잡고 읽어 내려갔다. 예의를 갖춰서 읽어야 한다, 이 책은. ‘커튼’을 읽었을 때의 아쉬움이나 우울, 슬픔 따위는 팔랑팔랑 저 하늘 너머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이다. 음, 그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내 기억력이 나쁜 걸지도.


  읽다보면, ‘엘리자베스 공주’라는 표현이 나온다. 상당히 낯설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아닌가? 책이 나온 연도를 보고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1941년. 그녀가 여왕에 즉위한 것은 1952년이니, 아직도 멀었다. 문득 1950년대에 나온 책을 빨리 읽고 싶어졌다. 51년도에는 공주였다가 52년도엔 여왕으로 나올 거 같았다.


  그나저나 여기서도 포와로는 늙었다고 무시당한다. 어쩌면 노망이 들었을 거라고 관련자들이 말할 정도이다. “그 사람은 무척 늙었더군요. 아마 노망이 들었는지도 모르죠.” - p.173 도대체 그의 나이가 몇인지 너무 궁금하다. 이 책에서의 시간대로 보면 그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데, 노망 얘기가 나올 정도라니……. 뭐, 책 속의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가니까.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의 주인공들도 방영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비슷한 예로 일본 만화 ‘명탐정 코난’도 있고. 혹시 그 시대에는 50살만 넘어가면 노인네 취급을 받았던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퍼진다. 내 포와로 할아버지 아니다!


  유명한 휴양지, 한 여인이 나타난다. 너무도 매력적이어서 남자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아레나 마셜. 남편은 그런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사춘기 소녀는 새엄마에게 반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한 남자. 그의 부인은 그런 상황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다른 사람들은 두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비난도 하며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레나 마셜이 살해당한다. 마침 휴가를 보내던 포와로는 한숨을 내쉬며 사건에 뛰어든다. 태양 아래 모든 곳에 범죄가 있다는 말처럼, 그가 마음 편하게 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초반에 나온, 해변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시체실 같다는 표현이 참으로 오싹했다. 하긴 그 당시는 수영복이 지금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모양도 비슷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들 일광욕을 하느라 엎드려있으니 누가 누군지 식별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시체실이라니…….


  하지만 어쩌면 그게 인간에 대해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피부 한 꺼풀 벗기면 인간은 다 똑같다는 말도 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그 외모, 엄밀히 말하면 피부 가죽에 현혹된다. 그것을 통렬히 비판한 대목이 있다.


  “그녀는 아레나 마셜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진 여자입니다.”

  “그것이 뭡니까?”

  “두뇌입니다.” -p.93


  저 대화를 들으면서 생각난 우스갯소리가 있다. 외모와 내면을 두고 본다면, 외모는 예선이고 내면이 본선이라고, 그러니까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면 본선은 밟아보지도 못한다는…….


  범죄자는 냉혈한처럼 자기 자신 이외의 사람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 여차하면 누명을 씌울 사람을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까지 준비해놓는다. 그리고 범죄는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어난다. 증거인멸도 확실하고, 알리바이도 완벽하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무심코 지나칠 단 하나의 실수라도 포와로는 놓치는 법이 없다. 누가 던졌는지도 모르는 작은 병 하나가 그렇게 큰 힌트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하긴, 그건 포와로니까 가능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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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 일반 킵케이스 - 아웃케이스 없음
정길영 감독, 류덕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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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정길영

  출연 - 오만석, 이선균, 류덕환, 박명신


  영화 '이웃 사람'을 보고 떠올라서 본 작품. 포스터를 보지 않았다면 더 재미있게 보았을 영화. 특히 포스터! 그냥 한 마을에 두 명의 살인자가 있었다는 것만 홍보해도 좋았을 텐데, 포스터에서 모든 것을 다 밝혀버려서 호기심이 반감된 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두 명의 살인범이 누구냐 내지는 정체가 밝혀진 한 놈이 다른 한 놈을 찾는 것이 중반부까지의 묘미인데, 포스터에서 저렇게 떡하니 드러내니 이건 뭐 할 말이 없다. 하긴 후반부에는 그들의 얽히고설킨 과거와 그것을 해결하려는 몸부림이 주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두 명의 친구, 두 명의 살인범, 한 명의 친구 그리고 악연이 맺은 현재. 영화를 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과거가 있기에 현재가 있는 것이고, 과거의 기억이 좋건 싫건 현재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아마 내가 실험실에서 방금 만들어낸 생명체가 아닌 이상,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이디푸스가 자기 눈을 찌른 것이겠지…….

이 영화에서도 그랬다.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실수 내지는 행동이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더니만,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래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문제는 과거 아역들이 누가 누군지, 어떤 사건이 누구와 관련이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아역들을 비슷하게 생긴 애들을 뽑아서,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절대로 내가 그런 쪽은 둔감해서 못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원래 그렇게 타고났는지 아니면 커가면서 상황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저 동네는 그렇게 특별한 곳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사는 곳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 동네이다. 너와 내가 살고, 우리 모두가 사는 그 곳. 겉으로는 평화롭고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는 인사도 하고 아이들이 같이 어울려 노는 바로 그 곳. 그래서 더 오싹하다.


  골목에서 잡기 놀이를 하는 저 아이들 중의 하나가 나중에, 자정이 넘은 시간에 라면 끓이는 냄새로 언제나 날 괴롭히는 아래층 학생이, 가끔 엄마에게 대들면서 고함치는 뒷집 아가씨가 살인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충격을 극복하고 세상에 도전장을 던지는 소년들의 성장기, 아니 그들의 비밀스런 살인 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이 그렇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다. 영화도 그래서 진행이 되는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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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3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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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Curtain, 1975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이 책을 읽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다. 작가인 애거서 크리스티가 1976년 사망했으니, 이 책은 그녀가 죽기 일 년 전에 나온 것이다. 또한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포와로가 나오는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다. 아, 갑자기 배경으로 틀어놓은 음악이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울컥해졌다. 어떻게 내가 포와로를 떠나보낼 수가 있을 지……. 그래서 읽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거듭했다. 어떻게 총 80권짜리 시리즈 13번째에 그의 마지막 출연작을 넣을 수 있는지, 출판사를 원망도 해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다음 책을 읽을 때는, 이산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울 거잖아? 오, 출판사에서 이것을 노린 것일까? 포와로가 나온 마지막 소설이긴 하지만, 아직 이 시리즈는 남아 있습니다! 이런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부인도 죽고 자식들도 장성해서 다들 떠나간 뒤, 홀로 살아가는 헤이스팅즈에게 포와로의 편지가 도착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스타일즈 저택’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이미 호텔로 변한 그곳에서 헤이스팅즈는 추억에 잠기기도 전에,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그곳에 연쇄 살인을 주도하는 사람이 있으며, 포와로는 그를 잡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딸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에 헤이스팅즈는 긴장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노력도 헛되게,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데…….


  언제나 동시대를 반영하는 크리스티 여사답게 안락사라든지 의학 연구같이 민감한 주제도 가볍게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직업을 통해서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어느 쪽 편을 들지는 않는다. 양쪽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책장을 넘기면서, 이제는 늙어버린 포와로와 헤이스팅즈의 자조적인 표현에 눈물짓기도 하고 웃음도 나왔다. 벌써 이들이 할아버지가 되었다니…….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자 크리스티의 첫 번째 작품의 배경이었던 스타일즈 저택. 물론 실제 연도 상으로는 두 작품의 시간은 거의 55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스타일즈 저택의 죽음’이 1920년도에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그 정도의 긴 시간은 아니었다. 명확히는 나오지 않았지만 30년은 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동안 많이 바뀌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그는 휠체어에 몸을 간신히 의지하고 있었다. 한때 뚱뚱했던 몸집은 홀쭉해져서, 이제는 마르고 조그만 남자가 되어 버렸다. -p.18’ 이건 헤이스팅즈가 묘사한 포와로의 모습이다. 아, 진짜 초반부터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내 포와로가!


  헤이즈팅즈는 자세히 나오진 않았지만, 언제나 옆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던 부인이 죽은 후 더욱 더 우유부단해진 것 같다. 더 소심해지고 고집이 세지고. 순진한건 여전하고 말이다.


  포와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답게 범인은 그야말로 치밀하고 심리전에 능한 사람이 나온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다만 옆에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극을 주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살인마로 만들어 버리는 능력자이다.


  이런 사람이 무섭다. 욱하고 열 받아서 난리를 치는 사람이면 피한다거나 맞받아치면서 육탄전을 벌이거나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은 평범한 외모를 하고 옆에서 쏙살거리면서 남을 살인자로 만들어버리는 사람은 어떻게 상대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포와로가 나선 것이다.


  마지막까지 읽고 나서 눈물이 나왔다. 어떻게 이런 결말을……. 크리스티 여사, 나쁜 사람! 나쁜 사람! 어떻게 이런 결말을! 다른 작가들처럼 그냥 내버려뒀으면, 어느 곳에선가 포와로가 콧수염을 비비면서 잘난 척하고 있을 거라는 위안이라도 얻잖아! 이 나쁜 사람! 이미 여기저기서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 하아, 나의 포와로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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