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소냐 - 할인행사
리차드 플레이셔 감독,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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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Red Sonja, 1985

  감독 : 리처드 플레이셔

  출연 : 아놀드 슈왈제네거, 브리짓 닐슨 등



  영화 '코난 시리즈' 중의 마지막 편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1,2편의 주연이었던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인공은 아닌 것 같다. 제목과 영화 시작부터 레드 소냐라는 여전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도와주는 역할 정도로만 나오고 있다.


  사악한 여왕에게 모든 것을 잃은 여인 소냐. 그런 그녀를 어여삐 여겨 신이 힘을 내린다. 한편 너무도 강한 힘을 갖고 있는 마법의 공을 파괴하기로 결정한 신의 사제들. 그들이 의식을 행하고 있는데, 여왕이 나타나 사제들을 다 죽이고 공을 강탈해간다. 소냐는 여사제였던 동생의 죽음에 분개하며 여왕을 무찌르고 공을 파괴하기로 결심한다.


  코난 시리즈는 이걸로 마지막이라는데,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영화가 소설을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사제들을 죽이는 장면이 잔인했다. 한 곳에 몰아넣고 생매장을 시키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 외에는 그냥 말 타고 가다가 칼싸움, 나라를 빼앗긴 어린 왕자 탄과 신하의 만담, 말 타고 가다가 괴물과 싸움, 그리고 말 타고 가다가 최후의 결전. 이런 반복적인 패턴이었다. 탄과 그의 신하가 없었으면, 영화가 지루할 뻔 했다. 다행히 그들이 개그력을 폭발시켰기에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거대한 공룡의 뼈로 만든 다리도 인상적이었다. 어떤 종의 공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둥실 떠서 날아오를 것 같았다. 아쉽게도 그러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또한 여자의 전투복은 헐벗을수록 공격력이 높아진다는 속설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소냐의 의상은 몸매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가슴을 더 크게 부각시키는 탱크 탑에 치마는 갈기갈기 찢어져있고…….


  그에 비해 코난은 1,2편에 비해 옷을 많이 껴입었다. 왕이라 이건가? 소냐 몰래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위험할 때마다 나타나 도와주는 모습에서 스토커의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스토커에게 매력을 느낄 리 없으니, 이 영화에서 그의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가 열중해서 싸울 때는 소냐가 자신을 이긴 남자만 사귄다고 하니까, 어떻게 해보려고 칼싸움 할 때 뿐. 여자 자빠트리려고 애쓰시던 아놀드 전 주지사님.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사악한 여왕의 시녀들은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그녀의 방은 삼면이 천장까지 제단 식으로 되어있고 그 위에 초가 수백, 수천 개가 놓여 있었다. 그 많은 초에 불을 붙이고, 하루 종일 꺼지지 않게 관리하던 이름 모를 시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저 시대에 초가 있었나는 의문이 들지만, 그런 거 일일이 따지다간 영화를 영화로 볼 수가 없으니 패스. 그렇게 보자면, 중간에 동굴에서 만난 기계 괴물의 존재 가능성과 어린 탄과 소냐의 의상이 과연 동시대에 출현 가능한 것인가도 파악해야 하니 말이다. 사실 ‘machine’이라고 외치는 코난의 대사에 당황했었다. 그 시대에 저런 단어가 가능할까? 그러니까 다 패스. 그냥 영화로만 즐겨보기로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영화는 어쩌면 어린 왕자 탄의 성장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철없이 왕자라는 지위만 내세우며 거들먹거리던 그가 여행을 다니면서 자기희생과 배려, 그리고 절제를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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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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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urder in Mesopotamia, 1936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크리스티 소설을 읽다 보면,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포와로가 여행을 간다거나 다른 일로 출장 갔다 오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나일 강의 죽음 Death on the Nile, 1937’이나 ‘죽음과의 약속 Appointment with Death, 1938 ’ 등이 그런 종류이다. 이 책도 그런 시리즈에 해당한다. 고고학자 남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작품 해설에 적혀있다.


  이번에도 역시 헤이스팅즈가 나오지 않는다. 보고 싶다, 헤이스팅즈……. 언제쯤 출연하는 거냐!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으면, 홈즈와 왓슨은 둘이 사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붙어 다니는데!


  이야기는 간호사인 에이미의 서술로 진행된다. 그녀는 유물 발굴단의 단장인 레이드너 박사의 부인인 루이즈를 돌봐주기 위해 고용된다. 그녀는 전남편이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다. 다들 망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로 밤에 누군가 창문을 두드린다거나 협박 편지가 계속해서 그녀에게 배달되고 있었다. 거기에 발굴단의 묘한 분위기에 에이미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루이즈가 방에서 살해된다. 발굴단원 중에 범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에 사람들은 경악하고, 마침 시리아로 향하던 포와로가 사건의뢰를 받고 도착한다. 포와로와 에이미는 탐정과 조수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근처를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단원들이 숨겨두었던 비밀이 하나둘씩 밝혀지는데…….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조종하는 데 능통한 여자 루이즈. 자신이 중심이 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녀. 덕분에 아름아운 외모와 고상한 태도로 많은 남자들의 시선을 붙잡아뒀고, 그만큼의 여자들에게서는 원망과 질투어린 시선을 받아야했다. 의식적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에 놀라웠다. 루이즈는 그런 성격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고 자신이 믿던 사람에게 살해당했다.


  정말 저런 성격의 사람이 있을까? 있다. 내가 봤다. 옆에서 보는데,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바보 같고 불쌍하기도 했다. 뭐,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매달리는 거니까 알아서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내버려두고 있다.


  그리고 집착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 소설의 범인은 그 집착이 너무 강해서, 내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차라리 죽여 버리겠다는 심정이었으니까. 내가 못가지면 남에게도 줄 수 없다는 못된 심보이다. 물론 저런 성격을 가진 사람도 있다.


  갑자기 인간의 본성이란 변하지 않는다는 미스 마플의 말이 떠오른다. 이 책이 나온 1930년대와 2010년대인 지금까지, 인간의 심리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고 변하는데, 인간은 그대로인 모양이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겠지.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포와로는 시리아로 돌아갔다가 약 1주일 뒤에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타고 귀향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또 다른 살인 사건에 휩쓸려 들게 되었다고 한다. -p.301


  그런데 이 책은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 Murder on the Orient Express, 1934’보다 늦게 나왔다. 그 책을 아무리 찾아봐도 시리아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오기 전에 다른 사건에 휘말렸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쉬웠다. 예전에 나온 소설과 연관성을 주려고 했겠지만, 그럴 때는 오리엔트 책에 몇 줄이라도 추가해서 개정판으로 내면 더 좋지 않았을까? 아! 그 시절에는 개정판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걸까? 아쉬웠다. 하지만 이제 작가가 세상에 없으니,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 책의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중간에 괄호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왔었는데, (그것에 대한 증거는 없지만) 그녀는 아주 완벽한 거짓말쟁이였던 것 같습니다.” -p.170


  어떤 사람의 대사인데, 왜 괄호가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이 말하다가 괄호라고 입으로 말하고 안의 말을 하는 건가? 어떻게 읽으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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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스티븐 R. 먼로 감독, 채드 린드버그 외 출연 / 미디어허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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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2010

  감독 - 스티븐 R. 몬로

  출연 - 사라 버틀러, 채드 린드버그, 제프 브랜슨, 다니엘 프란체스



  얼마 전에 쓴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1978’의 리메이크 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영 시간이 길어지고, 남자들이 여자를 강간하고 괴롭히는 수위와 여자가 복수하는 강도가 더 잔인해지고 강해졌다.


  내용은 전편과 비슷하다. 달라진 점은 여인의 머리색이 흑발로 바뀌었고, 강간범의 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전편에서는 동네 백수나 양아치 같은 놈들뿐이었는데, 이번에는 마을의 보안관까지 가담했다. 세상에나! 주민들뿐 아니라 외지에서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보호해야할 보안관이!


  심지어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있다. 아니, 자기도 딸이 있는 주제에 남의 집 귀한 딸에게 그런 짓을? 나중에 여주인공이 자기 딸에게 접근을 하자, 정신을 잃을 정도로 흥분한다. 미친 놈. 자기 딸이 귀하면 남의 딸도 귀한 법이다. 그런데 그딴 짓이나 벌이다니. 게다가 이번에는 뭔가 눈치 챈 마을 사람까지 죽여 버린다. 보안관이니 뒤처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보다. 아, 미친 놈, 미친 놈!


  이번에도 놈들은 여자를 처참하게 유린하고 고문했으며 조롱하고 동영상으로 찍기도 하고 급기야는 죽이기로 공모한다. 다행히도 막판에 그녀는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각오로 다리에서 뛰어내린다. 그리고 살아남아 놈들에게 복수한다. 어쩐지 검은 머리의 그녀가 여전사처럼 보인다. 아, 그래서 금발이 아닌 흑발의 여주인공을 내세운 걸까?


  주인공이 당하는 장면은 역시나 빨리 감기로 돌려보아야 했다. 너무 잔인해서 그냥 볼 수가 없었다. 영화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속이 편치 않았다. 그냥 썰고 자르고 죽이는 게 낫지…….


하지만 어떤 심리에서인지 여자가 처참하게 당하면 당할수록, 복수하는 장면은 그냥 통쾌하기만 하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하고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내 입에서는 ‘나이스! 잘했어!’ 이런 말만 튀어나온다.


  그래서일까? 이번 편의 복수 장면에 비하면, 전편은 애들 장난에 불과할 정도였다. 예를 들면, 강제로 항문성교를 시도한 보안관은 그의 엉덩이에 총이 강제로 삽입된다. 그녀는 자기가 당한대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넣었다 빼기를 반복한다. 또 다른 공범은 사지가 묶여서 산 채로 성기가 거세되는 고통을 겼었다. 또 어떤 놈은 욕조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는데, 균형을 잃으면 염산으로 가득한 욕조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녀가 복수하는 장면에서 조금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가녀린 그녀가 저렇게 건장한 남자들을 끌어다가 천장에 매달고, 욕조에 버텨놓고, 책상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축 늘어진 사람의 무게는 정신을 차렸을 때보다 훨씬 무겁다고 알고 있다. 그런 남자를 여자 혼자서? 누군가 공범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녀를 도운 사람의 여부는 나오지 않는다. 그 부분이 좀 걸리긴 한다.


  전편이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는 환한 색조로 이루어진 화면이었다면, 이번 편은 암울하고 축축 늘어지는 칙칙한 색으로 되어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빛나고 있지만, 환하지 않았다. 어쩌면 보안관마저 미쳐버린 마을의 암울한 분위기와 여인의 뒤틀린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주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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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메어 자르치 감독, 리차드 페이스 외 출연 / 키노필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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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 Spit on Your Grave, 1978 (aka Day of the Woman)

  감독 - 메이어 자르히

  출연 - 카밀 키튼, 에론 타버, 리차드 페이스, 안소니 니콜스



  영화 초반에는 진짜 화가 나고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다가 중반에 가면서는 도저히 영상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빨리 감기를 눌렀다. 어째서 주인공이 그런 일을 겪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단지 혼자 사는 여자라서? 그 시골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도도하고 예쁜 도시녀라서? 마을 남자들이 추파를 던지는데 눈길도 안 줘서? 그게 자기들을 무시한 거 같아서? 여자는 남자들이 눈길을 주면 '아이고, 고맙습니다.'라고 황송해하면서 다리를 벌려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나?


  영화의 내용은 유명하다면 유명하다. 한적한 시골 마을로 차기작 구상도 할 겸 쉬러 온 작가 제니. 하지만 그녀를 보고 찝쩍대던 마을 청년 네 명에게 무참하게 윤간을 당한다. 겨우 목숨을 건진 그녀는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는데…….


  영화 초반을 지나면서 꽤 오랜 시간동안 그녀가 남자들에게 강간당하고 모욕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이놈들이 여자 혼자 산다는 걸 알고서는 호숫가에서 윤간을 하더니, 나중에는 집에까지 따라와서 또 그녀를……. 그 부분은 도저히 그냥 볼 수가 없어서, 위에서 말했듯이 빨리 감기로 돌려버렸다. '왼편의 마지막 집 Last House On The Left, 1972'에서도 주인공 소녀가 강간당하는 장면이 오래 나오긴 했지만, 이 영화가 더 길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영화를 야한 장르로 분류했다고 하는데, 참 황당한 얘기다.


  그녀가 당하는 과정이 너무 끔찍해서일까? 나중에 그녀가 복수하는 부분은 다른 영화들보다 더 통쾌하게만 느껴졌다. 네 명을 하나씩 찾아가 유혹을 하기도 하고 달래면서, 그녀는 복수를 한다. 좀 더 잔인하게 죽여! 겨우 그걸로 네가 당한 게 갚아지냐! 그 새끼들은 더 당해도 싸! 이런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게다가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죽일 때, 어쩐지 오싹함도 느꼈다. 그 전에는 표정이 풍부한 여인이었는데, 그런 표정은 다시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만큼 그녀가 변했다는 말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는 잔인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1978년도에 여자가 남자의 거시기를 싹둑 자르거나 수영하고 있는 남자를 육지로 올라오지 못하게 보트로 방해를 하다가 치어버리고 또 다른 남자는 목을 매다는 장면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게임을 시작하지.'라는 명대사가 나오는 영화 덕분에 그 정도는 '에게-'하는 수위가 되었지만 말이다.


  성범죄 기사들이 뉴스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짓을 한 사람들을 보면,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여자에게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그냥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남자는 아빠 빼고 다 늑대라는 말도 이젠 바뀌어야 한다. 남자는 아빠 오빠 삼촌 포함해서 다 늑대이다. 제기랄!


  그런 기사를 본 사람들은 말한다.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약하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성범죄에 대한 죄의식이나 경각심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긴 그도 그렇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보호자라는 이유로 형이 경감된다. 피해자만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반면에 가해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파괴해놓은 주제에 1~2년 감옥에 갔던 걸로 죗값을 치렀다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보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이 영화처럼 복수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해자는 고개 뻣뻣이 들면서 거리를 활보하고, 피해자는 문밖에도 나오지 못하는 이 세상이 제대로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언젠가 소설 '비스트'의 감상에서도 썼지만, 국가가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면 국민은 도대체 누구를 의지해야할까? 아, 그래서 제니가 남자들을 죽일 때 통쾌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극적이다. 여주인공이 강간당하는 과정도,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장면도 다. 하지만 속이 시원하긴 하다. 그녀가 남은 평생을 어떤 심정으로 살아가야하나 생각하면 조금은 먹먹하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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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함성호 지음 / 보랏빛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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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행복은 삶의 최소주의에 있다

  저자 - 함성호



  삶의 최소주의가 뭘까 책을 기다리면서 이것저것 상상해보았다. 욕심내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삶일까? 그런 작가의 행복한 삶을 담은 책일까 아니면 이렇게 하면 나처럼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책일까? 카툰 에세이라고 했으니까, 그림과 짧은 글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걸까?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나서 내 생각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이지만,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건축가이면서 시인, 건축 평론가, 미술 비평, 만화, 만화 비평, 영화 비평, 전시 공연 기획자 등등의 직업을 다 가지고 있다.  설마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쉬고 싶다는 것일까?


  하지만 책에는 그런 얘기는 나와 있지 않았다. 저자가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말해주는데, 그걸 보면 많은 일을 한 즐거움에 대해 얘기라는 느낌이다.


  이 책은 그림이 곁들어진 수필집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저자의 어린 시절에 관련된 여러 가지 추억이야기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들과 지인들과의 대화, 외국에서의 경험 등등 여러 가지 단상들이 펼쳐져있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게 있었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아, 이거 나도 아는데'라고 같이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또는 '맞아,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라고 킬킬대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최소주의라는 것이, 혹시 현대 문물에서 벗어나서 아날로그 적으로 살아가는 걸 말하는 걸까? 전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다. 저자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그 때를 그리워하는 뉘앙스를 풍긴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현대 문명에 찌들지 않은 어린 시절과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순수함을 강조한다.


  그런 낌새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부터 있었다. '삶의 최소주의'라는 소제목으로, 집에 대해서 얘기한다. '있으면 좋은 것들'에 너무 치중을 해서 큰 집을 선호하는 현대인들과 삼칸지제(三間之制)를 지켜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만 갖추고 살았던 옛사람들을 비교한다.


  흔히 어른들은 말하신다. 아는 게 많으니 먹고 싶은 것도 많겠구나. 그리고 이런 말도 있다.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 그냥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그냥 그렇게 살겠지만, 알게 된 이상 욕심이 생긴다고. 견물생심이라고 하던가? 그걸 안 좋은 눈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건 어쩌면 내가 속물적인 인간이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과거가 좋았다며 그 때를 그리워하는 건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내 과거가 그리 좋지 않은 기억들로 이루어져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떤 현재에 있는지 파악을 하지 않고,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줄 알고 과거 그 시절이 좋았지 라고 추억에 잠겨있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제목에 낚인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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