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냐 3DD
존 굴라거 감독, 데이비드 핫셀호프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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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Piranha 3DD, 2012

  감독 - 존 걸레거

  출연 - 다니엘 파나베이커, 데이빗 핫셀호프, 빙 라메즈, 크리스토퍼 로이드



  영화는 빅토리아 호수의 비극에 대한 뉴스 보도로 시작한다. 예전에 나온 피라냐 시리즈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그 근처에 새로 개장한 워터 파크가 등장한다. 누드 수영장을 비롯해 스트리퍼들이 폴 댄스를 추는 특별한 공간이 있는 곳이다. 사장이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니.


  영화는 초반에 피라냐 습격을 받아 죽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듯싶더니, 분위기가 확 바뀐다. 워터 파크 등장 이후부터, 헐벗은 남녀의 몸매를 주로 보여준다. 하긴 여름이니까 그러겠지.


  하지만 혼전 관계를 맺기 전에 기도로 용서를 구하는 건 좀 오버였다. 안 하면 되잖아? 그리고 용서하겠다는 응답도 못 받았잖니, 얘들아?


  워터 파크에서 신나게 노는 사람들과 피라냐의 습격 사건 현장을 보여주면서, 조만간 일이 크게 날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리고 호수에 피라냐가 있다고 외쳐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흔한 설정은 이어진다. 원래 다들 그렇지. 전편에서도 예전 피라냐 시리즈에서도 그랬으니까.


  거기에 피라냐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등장하면서 영화는 더 이상해진다. 그가 연구하며 기르는 피라냐는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괴물 같은 느낌을 준다. 진화를 거듭해서 염산에서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몸을 갖고 배수 시스템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이건 뭐 영화 ‘괴물’도 아니고.


  하여간 과학자의 예측대로, 피라냐들은 배수관을 타고 워터 파크로 침입한다. 어떤 놈들은 수영장 벽을 뚫고 들어오기도 한다. 이 정도면 더 이상 물고기가 아니다. 그 다음은 뭐, 물고기들에게 물어 뜯겨 죽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벽을 부수는 애들하고 어떻게 상대를 하겠는가?


  하지만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이지만, 의미 없는 비장함과 쓸데없는 개그 장면들이 긴장감을 흩트린다. 설마 비극적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웃음을 주려는 게 감독의 의도였을까? 피라냐에게서 도망치는 여자들의 큰 가슴은 왜 클로즈업시키는 걸까? 게다가 그 가슴이 사람 얼굴보다 더 큰, 거의 농구공이나 배구공 같은 크기였다. 사람이 목이 날아가 죽었는데 휴대 전화를 들이대며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또 뭐고.


  제일 황당했던 부분은 여자의 몸속에 몰래 들어갔던 피라냐가 섹스를 하던 남자의 성기를 물어뜯는 장면이었다. 아니, 여자애는 자기 뱃속에 뭐가 들어있다는 이상한 느낌도 없었단 말이야? 문득 일본 영화 ‘킬러 푸시 Sexual Parasite: Killer Pussy, 2004’가 떠올랐다. 설마 감독이 그 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나?


  영화는 결국 인간의 욕심이 어떤 불상사를 일으키나 보여준다. 워터 파크 사장이 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돈보다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면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감독하기로 되어 있던 사람들도 역시 돈 때문에 검사를 대충했다. 결국 그들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긴 하지만, 피해를 입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낯익은 얼굴이 등장한다. 미국 드라마 ‘전격 Z 작전’에서 주연을 맡았던 데이빗 할셀호프가 많이 바뀐 모습으로 나와 뱃살을 자랑한다. 안전요원으로 나오는데, 어딘지 모르게 허세 충만한 배역이다. 또한 역시 미국 드라마 ‘샤크’에서 사고뭉치 딸로 나왔던 다니엘 파나베이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소녀, 은근히 공포영화에 많이 나온다.


  그런데 피라냐 회 떠먹으면 맛있을까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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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Wrong Turn 5: Bloodlines, 2012

  감독 - 디클란 오브라이언

  출연 - 더그 브래들리, 카밀라 아프웨드슨, 사이몬 진티, 로산느 맥키



  아아, 의리로 보는 시리즈. 드디어 끝이다. 그렇다고 마지막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언제 누가 다음 편을 만들어 내놓을지 모르는 일이다. 제발 안 그랬으면 하고 바라지만. 혹시라도 시리지를 또 만들려면 좀 잘 만들기를 희망하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축제가 열리는 마을. 할로윈에 버금가는 산사람을 상징하는 가면과 복장을 하고 모두들 들떠있다. 그런데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하던 주인공이 산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 때문에 사고가 난다. 그들을 화가 나서 그를 구타하다가 경찰서에 끌려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탈주범으로 숲에서 산사람들과 살면서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대장 격이라는 것이다. 그를 구하기 위해, 기형인들은 마을을 습격하는데…….


  이번 편은 보면서 참 엉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축제를 즐기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의아했다. 낮에는 몇 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가득 메웠는데, 밤이 되니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썰렁했다. 설마 밤에는 다른 동네로 가는 건가? 아니면 여러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즐기는 축제인 건가?


  사람들의 비명과 총소리, 폭발하는 소리, 불타는 소리가 화면을 튀어나왔지만, 그걸 확인하려고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었다. 다들 귀가 먹은 건가? 좀 떨어진 건물에 있던 주인공 일행은 비명을 듣고 나오는데, 그 옆 건물은 조용하다. 이건 뭘까? 어떻게 나름 이유를 만들어보려고 해도, 도저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축제 경비를 나간 경찰이 여자와 즐기느라 무전 연락을 못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럴 수도 있다고 하지만, 그 다음은? 왜 다시 경찰서로 안 돌아오는 거지? 연락도 없고? 전화가 불통이면 의심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한밤중에 여자애를 혼자 밖으로 내보내는 친구들도 이해할 수 없고. 결국 그녀는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초반부터 훌러덩 옷을 벗어젖히는 몸매 착한 여자애와 남자애 덕분에 볼거리는 있었다. 하지만 가끔은 흐름을 끊는 기분도 들었다. 왜 굳이 이 시간에 저런 장면을?


  거기다 사람을 죽이는 장면이 너무 길었다. 물론 죽이려고 준비를 하는 과정을 보여주면,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 상상을 하며 긴장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죽이는 방법이 상당히 잔인했기에 보면서 잔인함에 치를 떨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좀 너무 길었다. 준비 과정도 길고, 죽는 과정도 길고…….


  기형인들이 천재라는 생각이 든 영화였다. 어떻게 주인공 일행이 묵은 모텔 방호수를 정확히 알아냈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모든 기계를 척척 다루는 장면에서는 대단하다는 감탄도 나오고. 외모가 흉측하고 인간이 나누는 언어를 구사하지 못해서 그렇지, 자기들끼리는 의사소통도 하고 사람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기도 한다. 고도로 숙련된 살인 기계 같은 원숭이를 보는 기분도 들었다.


  이 영화의 부제가 ‘혈통 Bloodlines’이다. 그들이 어떻게 후손을 얻는지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었다.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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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 -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
윤성식 지음 / 예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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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청춘의 오해와 착각을 깨는 질문과 답

  저자 - 윤성식



  사막을 건너야 서른이 온다니. 대개 사막이라고 하면 물도 없고 풀도 없고 오직 모래만 있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우며 메마르고 삭막한 곳이다. 그러면 서른을 앞두고 있는 이십 대는 사막 같은 시대라는 말일까 아니면 그들의 앞에는 풀 한포기 없는 사막 같은 황량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말일까?


  하지만 그런 사막에도 한 가지 희망은 있다. 오아시스다. 그것이 있기에 사막은 건널만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한낮의 태양이 뜨거워도, 모래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이가 시릴 정도로 밤이 추워도, 어딘가에 숨어있는 오아시스를 생각하면 꾹 참고 사막을 건널 수 있다.


  그러니까 사막을 건넌다는 말은, 어딘가에 있는 오아시스를 발견했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지 않고는 사막을 건널 리가 없으니까. 그러면 오아시스란 무엇일까? 그 답은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사람마다 다를 테니까 말이다. 이 책 역시 오아시스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이 오아시스이고, 그것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 내지는 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른이 나이를 말하는 건 아니었다. 어른과 발음이 비슷한데, 혹시 그걸 지칭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는 청춘도 꼭 이십대를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서른이 넘어도 어른이 되지못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렇게 범위를 확장시키다보면, 아마 사막을 건너야 하는 사람은 무척이나 많을 것 같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낀 것이나 그들에게 해주었던 조언, 그리고 살아오면서 겪은 것들을 각각의 챕터 주제에 따라 나열하고 있다.


  1장은 나는 과연 나를 제대로 보고 있는가

  2장은 왜 좌절하고 실패하는가

  3장은 다시는 쓰러지지 않기 위하여

  4장은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5장은 담담하게 물 흐르듯 최선을 다하는 삶


  각각의 장마다 몇 가지 소주제를 제목으로 넣었고, 시작은 학생과 나누었던 대화 형식으로 도입을 하고 이후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고 있다. 순서대로 읽어도 좋고, 마음이 가는 곳을 골라서 읽어도 괜찮을 것이다.


  요즘 힐링 서적이 인기다. 그런 유의 도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느낌이 조금 특이했다. 물론 내가 보기에 이 책도 그런 류의 하나로 여겨지지만,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저자는 대놓고 '간절히 꿈꾸면 우주가 화답한다.'라는 말을 주술적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p.166)


  또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감동적인 말이지만 칭찬에 의해 고래가 춤을 춰서는 안   된다. 고래는 칭찬 때문이 아니라 춤을 출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춤을 춰야 하는 이유가 있으니까 춤을 추는 것이다.'(p.173) 라고 주장한다.


  오! 하고 감동받았다. 그것도 그렇다. 고래가 이유도 없이 박수 받았다고 춤을 춘다면, 그건 줏대 없는 놈이란 말이다. 하지만 저 고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내가 읽지 않아서, 더 이상의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


  저자가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계획성'과 '실천력'이다. 막연한 꿈만 따르다가 허송세월하지 말고,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확실히 파악하여 계획을 세우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으면 나태하게 게으름부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고 조언한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어, 네 자신을 믿어’가 아니라, ‘어떻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것인지 계획을 세워봐, 네 자신을 무조건 믿지 말고 믿을 근거를 대봐’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건 이십 대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그 윗세대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고, 그 아랫세대들에게도 그러하다. 십 대 때 그런 걸 배우지 못했으니 이십 대 때에도 못하는 것이고, 이후 나이를 들어도 여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제라도 그것을 깨달아 발전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나이에 상관없이 말이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말이 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다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 사람마다 살아온 길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느끼는 바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다. 그러니까 이런 다른 생각도 존재하고, 자신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향하는 길에 다른 방법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점 하나. 톰 소여의 모험에서 그에게 울타리를 칠하라고 시킨 것은 아주머니라고 알고 있었는데, 저자는 아버지라고 한다.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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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
이용주 감독, 남상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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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 이용주

  출연 - 남상미, 류승룡, 김보연, 심은경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사라졌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희진. 경찰은 사춘기 소녀의 단순 가출이라며 시큰둥하고, 엄마는 응답을 받을 것이라 말하며 기도만 한다. 혼자 서울에서 공부하던 그녀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아파트에 사는 한 여자가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녀의 죽음에 동생이 관련되어있다는 게 밝혀지면서, 희진과 형사는 숨겨진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소진에게는 기이한 능력이 있었고, 그런 그녀를 중심으로 하는 광신도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모임에 아파트 주민과 경비가 얽혀있었고, 그들은 차례차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희진에게는 이상한 환영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불신지옥이라는 단어는 시내를 걷다보면 종종 볼 수 있다. 확성기로 뭐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들고 있거나 메고 있는 커다란 피켓에 적혀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그런 분들의 지나친 포교 활동은 남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시끄럽기도 하고, 남에게서 이유 없이 악담을 듣는 것 같아서 기분도 나쁘고. 뭐, 이 글이 어느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니까 대충 넘어간다.


  몇몇 장면들은 오싹했다. 희진이 거실에 서서 섬뜩한 얼굴로 형사를 돌아보는 장면, 희진이 형사의 아픈 딸 목소리로 말하는 부분 그리고 소진이 나오는 모든 장면이 그러했다.


  신들린 소진을 연기한 심은경 양의 연기는 짱이었다. 어제 감상문을 올린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맑은 눈동자로 섬뜩한 연기를 보이더니, 여기서는 무표정한 얼굴과 무심한 눈빛으로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다. 아, 진짜 무서웠다. 특별한 CG를 안 썼는데도 딱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쟤, 정상이 아니다’라고. 특히 눈 돌아가는 장면은 하아…….


  그러고 보니 여기에도 장영남 씨가 나온다.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서는 어쩔 수 없이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퀭한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높은 톤의 가냘픈 목소리로 사람을 놀라게 한다. 이 분 진짜 사람을 오싹하게 만든다.


  거기에 엄마로 나오는 김보연 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광기가 느껴졌다. 너무도 지나치게 종교를 믿었기에, 모든 것을 그 기준으로 생각하는 엄마. 자신이 믿는 것 이외의 일들은 사탄의 짓이라 생각하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방에 들어올 수 없다고 딱 잘라 말할 때는 진짜 종교와 믿음이란 뭔지 생각하게 했다.


  후반부에 희진을 몰아붙일 때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광신도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진짜 종교에 미친 사람 그 자체였다. 보면서 ‘우와’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진짜 미쳤잖아, 저 사람’이라는 말이 그냥 튀어나왔다.


  주연을 맡은 남상미 씨와 류승룡 씨도 괜찮았다.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미쳐 돌아가는 상황에서 제정신을 붙잡으려고 발버둥치는 큰 딸의 연기를 하는 남상미 씨도 적절했고, 아픈 딸을 고치기 위해 소진이 썼다는 부적을 태워 먹이고 싶어 하는 형사 역할을 하는 류승룡 씨의 눈빛이 참으로 절절했다.


  종교란 마음의 안정을 주기도 하지만, 잘못 믿거나 악용하면 엄청난 불행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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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 (1disc)
임필성 감독, 천정명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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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Hansel and Gretel, 2007

  감독 - 임필성

  출연 - 천정명, 은원재, 심은경, 진지희



  유명한 동화가 하나 있다. 굶주림이 계속 되자, 부모가 아이들을 숲에 내다버린다는 얘기다. 버림받은 아이들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하고, 마녀와 같이 살게 된다. 그런데 그 마녀는 아이들을 잡아먹으려고 계획 중이었고, 그것을 알아차린 두 남매는 살아남기 위해 반격을 꾀한다. 그리고 마녀가 숨겨둔 보물을 찾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게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어떻게 보면 슬프고, 달리 보면 오싹한 동화이다. 자기가 낳은 아이들을 내다 버리고, 마녀는 아이들을 구워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녀를 죽여야 한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삶이다. 덧붙여서 패자의 재산은 승자의 몫이다.


  이 영화는 그 동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다가 차 사고를 당한 은수. 하지만 숲에서 길을 잃는다. 그를 발견한 한 소녀가 숲 속에 있는 자기 집에 데리고 간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 부모는 아이들의 눈치를 보고, 아이들은 뭔가를 숨기는 눈치다.


  어느 날 아침, 아이들만 남겨두고 부모가 사라진다. 결국 그는 잠시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한다. 사실 숲을 빠져나갈 길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눈 어느 날, 아이들은 또 다른 어른들을 데리고 온다. 은수는 이유모를 두려움을 느낀다. 도대체 아이들은 무엇을 숨기고 있는 걸까?


  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숲과 동화나 영화에서나 볼 법하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 단순한 숲이고 집이지만, 너무 예뻐서 현실이 아닌 인공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까 동화의 한 장면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인형 같은 옷을 차려입은 표정 없는 아이들과 억지로 꾸며낸 감정이라는 티가 팍팍 나는 부모의 모습. 부모가 아이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분위기를 확실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이 허구이고 가면이라는 사실을 영화를 보는 내내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세상 어디선가는 진짜로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상처받는 아이들과 상처 주는 어른들은 어느 곳에나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는 슬펐다. 어리기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기에 그럴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할 어른이 필요했던 것인지 뭐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엔 아이들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마녀처럼, 아이들을 내다 버린 부모처럼 나쁜 어른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만 이거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사람이, 사람의 손길이, 사람 사이의 정이 그리웠을 뿐이다. 진짜 엄마아빠처럼 사랑해주고 보살펴줄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때로는 따끔하게 혼도 내고, 보듬어 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줄 그런 사람. 아이들에게 아빠엄마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공포의 탈을 뒤집어 쓴, 삼남매의 진정한 아빠엄마 찾기를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연기력이 상당한 영화였다. 귀여운 막내 꼬마는 ‘빵구똥구’로 유명한 진지희 양이고, 큰 딸을 연기하는 심은경 양은 ‘불신지옥’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죽어!’라고 외치는 진지희 양은 울고 웃는 연기도 잘 했고, 심은경 양은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와 눈망울로 은근히 무서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기에 요즘 주가를 올리는 장영남 씨와 박희순 씨가 등장하여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장영남 씨는 불안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척 보기에도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미소를 지었고, 박희순 씨 역시 탐욕스러운 눈빛과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미소를 보였다.


  태연한 아이들과 불안해하는 어른들이 대비가 되면서, 조금 오싹했다.


  아쉬운 점은 주연을 맡은 천정명 씨의 존재감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가 워낙에 좋아서, 그런 불상사가 일어났다. 명색이 주연인데……. 하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그가 주연을 맡았는지도 모르겠다. 재료 각각의 맛이 너무 강하면, 그 요리는 실패한 게 된다. 모든 재료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도와주는, 재료가 하나는 있어야 향과 맛이 살아나기 마련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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