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53

 박권일의 <'공부의 신'도 못 따라 갈 현실>을 읽고, 몇몇 단상을 정리해 본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와 함께 말썽꾸러기들을 천하대로 보내는 것을 돕게 된 배두나는, 오래 전 드라마 <학교>에서 제도권에 저항하던 아이콘이었다. 감히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김수로는 1화에서 과감하게 말한다. 천하대에 가서, 너희들이 그렇게 비뚤게 바라보는 사회의 룰을 바꾸라고. 그 룰을 바꾸는 건, 결국 사회가 인정하는 최정상에 올라가야 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갑자기 그 장면을 곱씹어보다가, 매년 수능 때만 되면, 1인 시위를 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피켓엔 학벌로 인한 차별을 반대하며, 수능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을 비판하는 그들의 소망이 달려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사람들은 이런 소망, 이런 희망이 담긴 시도를 환영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고 외친다. 작년에도 어김없이 수능을 비판하던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덧글에는 그들을 비난하는 어투로 넘쳐났고, 그나마 정성스럽게 반응을 보여준 사람들중엔 너희들이 바꾸고 싶은 게 있으면, 서울대 들어가서,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개무시 당한다는 공통된 반응이 제법 있었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가 학생들에게 외친 그 몇 마디는 드라마에만 적용되는 대사는 아니다. 그렇다. 이 대사는 현실을 깊숙 찌르면서, 이제 사람들에게 제도를 바꾼다는 것, 제도에 일탈하여, 그 제도의 틀 자체를 바꾼다는 건 별 소득이 없다는 걸 공인한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 그 대사는 공명의 기운을 뻗친다. 

<공부의 신>의 압권은 드라마가 끝나고 나오는 '내신 잘받는 방법'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귀여운 공포'를 체감했다. 설마 이 장면을 보면서, 배우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을 수첩에 깨알처럼 적는 부모와 학생은 없겠지? 그런 상상을 했다. 이 상상의 곁에서 점점 커져가는 건 이제 '교육 혁명'이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나, 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 사회는 이제 혁명을 문화 속에서만 체험한 채, 그것에 안주하는 것으로 삶을 잘 살고 있다고 할 지 모르지, 그 오래된 우려가 자연스러운 문화적 코드로, 진부하게, 그것도 매우 친숙하게 유머라는 코드와 섞어 나왔을 때, 나는 이 드라마를너무 우울해서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보여준 자살의 절규는, 우리 사회에 어떤 공명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그 절규는 그 누군가에게는 한심한 자의 어리석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의 친구들은 죽음으로까지 우리 시대의 교육이 보여주는 모순을 상징화하는 것에 그 어떤 애도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애도의 가능성을 대신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이 생존의 의지 가운데서, 우리는 '편안하게 스며드는 사회적 불안'이란 가스에 몽롱해지고 있음을 꾹 참은 채, '일단 살아간다'. 천하대에 가기 전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힘이 다 빠졌다. 영리해져라, 정신차려라, 일단 잘해보고 봐라. 이 3계명을 부여잡은 채. 부들부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소리 자체를 '헛소리'로 잠식해버린, 이 사회의 현실이다. '공부의 신'이 다시 알려준 어떤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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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4일 WWE RAW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역사상 충분히 기록될 가치가 있는 이벤트를 만들었다. 무려 12년 만에 브렛 '더 힛맨' 하트가 친정 WWE로 돌아온 것이다. 하트 가문이 나은 최고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그는 WWE와의 앙금을 정리하고 팬들 앞에 섰다. 근 15년 간 WWE 골수 팬을 자처하는 내게 이 날은 가장 설레이는 날이 될 것같다.  

다들 알다시피 브렛 하트는 1997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성사된 숀 마이클스와의 WWF 챔피언쉽에서 '몬트리올 스크류잡'이라고 일컫는 프로레슬링계 역사에서 길이 남을 논란 경기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당시 WWE와의 계약 상태, 그리고 회장인 빈스 맥마흔과의 관계 속에서 많은 미스테리를 남긴 이 경기를 통해 브렛 하트가 회장 빈스 맥마흔에게 경기가 끝난 후 뱉은 침은 각본이 아닌, '리얼'임이 밝혀졌고, 브렛 하트는 이후 WWE를 떠나 WCW에 새 둥지를 틀게 된다. 상대자였던 숀 마이클스도 물론 이 논란에서 벗어나진 못한 터. 브렛 하트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은 캐나다에서 숀 마이클스가 경기를 할 때면 반겨 주지 않았으며, 시간이 지난 최근 RAW에서도 역시 숀 마이클스는 캐나다에서는 미국에서의 큰 환호를 기대할 수 없다.  

암튼 브렛 하트가 WWE 명예의 전당에 오른 후, 컴백 이야기가 루머로 솔솔 오르고 있었던 터, 결국 이 루머는 현실로 이루어졌다. 게스트 호스트로서, 레슬매니아 기간까지 계약이 된 브렛 하트는 내가 보기에는 빈스 맥마흔과 VS 구도를 형성할 것 같다. (빈스는 이 날 RAW에서 결국 또 악역을 자처하며 브렛의 거기를 차고 아유를 받으며 퇴장했다) 

브렛 하트, 돌아와줘서 고마워. 이제 더 락만 오면 되나! 



브렛 하트의 친정 복귀를 반기는 열렬히 반기는 여성 팬, 옆에 아주머니가 입은 옷이 숀 마이클스의 DX라 더 재미있는 광경 





브렛 하트가 링에서 보여주었던 전형적인 퍼포먼스. "나보고 어쩌라고~" 



브렛 하트가 고대하던 순간을 만들었다. 12년 만에 적수이자 동료였던 숀 마이클스를 링 안으로 부른 것이다. 



결과는 조금은 어색한 화해 



숀 마이클스는 이 날 스위친 뮤직을 먹이려는 포즈로 훼이크를 쓴 뒤, 브렛과 화해의 포옹을 했다. 

이로써 역사는 다시 써졌다. 이 둘이 화해할 날이 오다니. 그보다 이 둘을 한 링 안에서 다시 볼 날이 오다니. 

세상 일은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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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25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숀마이클스를 정말 무척 좋아하는데, 브렛힛맨하트와 예전에 록커스였을때 경기하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알라딘에서 WWE 에 대한 글을 보는것도 반갑고 ㅠㅠ

며칠전에 로얄럼블을 보는데 숀마이클스가 나와서 중간에 탈락하는 거 보고 참 속상했었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3-0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숀마이클스가 언더테이커랑 커리어매치를 하던데,,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연승기록을 밀어줄지, 아니면 숀마이클스의 커리어를 계속 연장시켜줄지 궁금하군요..결론은 이 두 옹들이 아직 수고를 해야 하는...wwe의 구조가 안타깝네요.wwe 글은 종종 올리겠습니다.^^
 

1월 6일. 그 분을 떠올리며  



 

얼마전에 후배가 책을 한권 보여줘요. 그림 책이더군요.
글도 써있고 그런 책인데, 그림 하나가 아주 눈길을 끌어요.
와인잔 안에 살던 붕어가 그 와인잔이 좁다고 느꼈던지
와인잔을 깨고 허공에 이렇게 떠 있는 빨간 붕어 그림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주어진 틀 안에 살지요.
스스로 만든 것이든 뭐 타의로 이루어진 것이든
생각과 여러가지 행동, 인간관계...

근데 그 붕어 그림을 보고 나는 붕어처럼 내 틀을 벗어날
용기가 있던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저는 없더군요.
좁으면 어때? 좁은 대로 살지.
뭐 그정도 더라구요. 사람들은 누구나 선택하고 포기하고
그러고 지냅니다. 포기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지요.
그 아쉬움이 길게 오래 남을 수도 있고 금세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선택한 부분에 대해선 나름대로 책임을 져가면서 지내지요.

저는 짜장면 집에 가면은 짬뽕이랑 짜장이랑 같이 시켜서 둘다먹고
나오는데요 왜냐하면 짬뽕 시킨날은 반쯤 먹다보면
'아~ 오늘 짜장이었구나' 뭐 그렇게 아쉬워하고 또 짜장면 시킨날은
짜장면도 반쯤 먹다보면 '아~ 오늘 짬뽕이었구나'그래 자꾸 아쉬워해요~

그래보신 경험들 있으세요? 짬뽕먹다가 짜장 생각하신 거.
자꾸 아쉬워해요. 아주 묘한 짜장과 짬뽕의 갈등입니다.
아쉬워 하는게 싫어서 둘다 시켜서 둘도 맛을 보고 나오는데요.

현실에서는 둘다 선택할 수가 없지요. 뭔가 하나를 선택하면은 분명히
하나는 놓아야 하거든요. 붕어는 나가는걸 원했고 저는 그저 머물러
있는 것을 선택을 했구요.

누구나 태어나면서 어떤 용기를 가지고, 그런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시는
분들도 있고 또 그저 저처럼 이렇게 지내는 사람들도 있지요.
어떤것이 좋다 나쁘다 따지기 전에 그저 나름대로 선택한 부분에서
잘 살길 바라면서 그냥 봐야죠.

헌데 뭔가 새로운거, 새로운 느낌, 새로운 경험, 새로운 상황은 지금 익숙한
그 틀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이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늘 가집니다.
붕어가 부러워요. 계속 부러워하다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붕어가 부러워요.

- 김광석, [노래이야기, 인생이야기] 중에서 콘서트 토크 시간 - 

 김광석- 나른한 오후

아~~참 하늘이 곱다 싶어 나선 길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도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길이 반갑게 느껴질무렵
혼자라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난
어디 알만한 사람 없을까 하고
만난지 십분도 안되 벌써 싫증을 느끼고
아~~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아~~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아~~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아~~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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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자들은 정신 차렸다. 남초 사이트에서 남자들이 예전에 정신 못차렸던 것 중 하나가 '나쁜 남자'에 대한 정의였다. 그들은 '순수하게' '나쁜'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가 권유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잘 알아가고 있는 요즘 사람들은 이제 이 '나쁜'의 필수사항을 안다. '나쁜'은 우리가 뻔하게 알고 있는 '감정'의 차원이 아니다. 이 '나쁜'을 채우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추면 좋은 능력과 그 능력에 달라붙은 물질들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오늘 처음 시작한 <파스타>를 보면서 점점 '나쁜 남자'가 어때야 하는지를 내 주위의 남자들이 아는 게 흥미롭다. 남자들은 이제 화를 버럭낸다는 것에서 자신이 충분히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멍청한 생각을 버리고 있다. 그들은 '화를 낼 수 있는 남자'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습득하며 살아간다. 강마에(김명민)나 최현우(이선균)나 그들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위상학에 알맞는 캐릭터를 구성한다. 그리고 그 구성된 캐릭터가 내뿜는 과시의 언어는, 그들이 그만큼 걸어온 노력, 혹은 성공을 갈망한 삶의 진면목이 무엇인지를 '이기적으로' 재현한다. 남자들은 이제 여자들에게 굳이 '나쁜남자'가 진정 어떤 남자여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듣지 않아도 된다. '버럭의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권리의 행사가 그 누구에게나 자신을 왕자님으로 만들어 줄 거라는 상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는 것을.   

버럭의 차가움과 그 버럭을 망각하게 만드는 순간의 따사로움으로 채워진 이 트렌디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어쩌면 이 사회가 우리에게 선사해 준 빈약한 확률의 로또인지 모른다. 이 로또, 텔레비전으로만 쳐다 보거나, 혹은 실제로 한 번 크게 당해본 후 , 미련 가득한 소주잔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며 술자리의 '희망안주'로 올려놓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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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봉지가 되고 싶습니다. 나무젓가락을 부러뜨리지 않고 넣어, 구멍이 뚫릴지라도 원망하지 않으려 합니다.  차라리 그 원망을 초월하여, 그저 그런 관용이 아닌, 초월적 관용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혹은 초월적 헌신의 삶을 살고 싶기도 합니다. 어두운 밤거리의 고독과 방황을 가득 담은 구토물이 저에게 담길지라도, 차라리 그 구토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제 안에 든 무엇이 더러워, 매만지길 두려워하더라도, 저는 검은 봉지가 되지 않으려 합니다. 차라리 제 속이 비치는 하얀 봉지가 되어, 상처를 어리숙하고 조급한 동정의 시선으로 덮지 않고, 상처를 상처 그대로 인정하는 시선을 가지려 합니다. 

봉지를 통해 저는 '담김'과 '바라봄'을 사유하고 싶습니다. 담김은 과잉된 욕망의 '채움'을 벗어난, 새로운 차원으로서의 '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을 '채우는 것'이 아닌, '타인'을 비움으로써 타인을 담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타인에게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관계 그 자체'를 자유롭게 놓아두며 살고 싶습니다. 

새해에는 비움의 자세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시각의 육질에서 조금 더 여유로이 저를 다스리면서, 모든 현상을 비움으로써 본질을 바라보려는 자세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봉지가 되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그 순간을 아름답게 고백할 수 있는 확언의 시간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저 봉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처럼, '상상력'을 기꺼이 현실로 전유하려는 욕망에 벗어나, 상상력을 상상력의 영역에 고이 놓아두는 세계로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상을 상상에 놓아두기.   

그것은 곧 시각성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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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새해엔 멋진 '봉지'로 거듭나시길!!^^ 새해 복 많이많이 만들어요.

얼그레이효과 2009-12-28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롱씨도 행복한 대학원 생활 하시길 바랍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28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엔 공부가 더 수월해지시기를 빕니다 ^^

얼그레이효과 2009-12-28 2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휘모리님 올해 알게 되어 반갑습니다. 알게 모르게 블로그 들어가서 글들 보고 좋은 생각들 공유하고 있답니다. 내년엔 따스한 기억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