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미국 시간으론 3월 29일 밤. 미국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슬픈 일 중 하나로 기록될 사건이 발생했다. 쇼스타퍼, 미스터 레슬매니아로 불렸던 'HBK' 숀 마이클스가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 WWE 월요일 이벤트인 RAW에서 은퇴식을 가진 숀 마이클스는,  몇 달 후 돌아올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상과 달리 정말 이 '업계'를 떠날 것임을 밝혔다. 어제 열린 WWE 최대 이벤트인 레슬매니아 26번째 행사에서, 숀 마이클스는 자신의 경력을 걸고 언더테이커와 경기를 가졌다.  

참고로,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는 레슬매니아 역사상 손에 꼽는 명경기였다. 이 경기는 챔피언쉽이 걸리지 않은 노멀 매치로서, 메인 이벤트가 된 레슬매니아 역사상 몇 안되는 희귀한 경기로 기록되었다. 2009년 레슬매니아 25에서 그 해 최고의 경기상을 받은 매치로 기록된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의 경기는, 한 해 후 더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하며, 후배들에게 이런 것이 바로 프로레슬링이다!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은퇴식을 하기 위해 링에 들어선 숀 마이클스. 그가 쳐다보는 사람은? 



그와 함께 WWE를 오랫동안 이끌고 있었던 언더테이커. 언더테이커는 이 날 고개를 가볍게 숙인 채 

숀마이클스의 은퇴를 기념했다. 언더테이커 또한 나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곧 이 업계를 

떠날 예정이다. 아마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어쩌면 WWE에 가장 큰 충성도를 보였던 두 선수였기에, 

이들의 모습은 락커룸에서 후배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었고, WWE의 브랜드를 격상시키는 데 큰 공로를 

세웠다. 숀 마이클스는 은퇴식 세레머니에서, 자신의 진심을 담아, 언더테이커만큼 대단한 선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그에 대한 존중을 표현했다. 



숀 마이클스가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경기를 보게 될 것 같다"라고 하자 

관중석은 아쉬운 탄식과 야유가 흘렀으며, 여성 관객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숀 마이클스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헌터' 트리플 H에게 진한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그는 자신의 친구에게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16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을 지지해주고 잘 대해 준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고 했다.  

또, 그의 비디오 영상, 그를 찍어준 카메라맨들과 주변 스태프들, 중계 아나운서 마이클 콜, 해설자 

제리 더 킹 롤러, 그리고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 되는 선임 아나운서 짐 로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숀 마이클스는 세레머니 내내 눈물을 흘렸으며, 관중들은 "감사해요 숀", "한 경기만 더" "제발 가지마"등 

을 연호했다. 숀 마이클스의 세레머니 멘트 중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브렛 하트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브렛 하트의 레슬링 인생을 망쳤다고 여겨진 사람 중 하나였던 숀 마이클스에게 브렛 하트의 팬들은 많은 

적의를 품고 살아왔었고, 숀 또한 그것을 알았다. 숀 마이클스는 이후 레슬매니아 14이전에 입은 허리 부상 

과 무리한 이벤트 강행으로 선수 생활 중단의 위기를 맞았고, 이 때 악동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기를 

가졌다. 특히 신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진 아내의 내조 덕분에  그는 신실한 침례교 신자가 되었고, 자신의 신앙을 

경기 중 표현하며, 달라진 사람이 되었음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마이클스는 세레머니에서 살면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라고 한 브렛 하트에게 자신을 용서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브렛 하트와의 그 유명한 1997년 서바이버 시리즈 

더블 크로스 사건으로 악연이라는 관계로 살아왔던 그 둘은 결국 2010년에 그 긴 앙금을 풀었다. 

그는 또 WWE 회장 빈스 맥마흔에게 자신이 오랫동안 레슬링을 하게 해 줘 고맙다고 전했다.  



숀 마이클스는 쉬고 싶다고 밝혔으며, 특히 자신을 보살펴 준 가족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이 힘들 때 지지해 준 가족들의 이름을 열거한 후, "얘들아, 아빠가 곧 집에 돌아간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그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신사숙녀 여러분..숀 마이클스는 오늘 이 곳을 

떠납니다..."라고 말한 뒤, 마이크를 내렸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 그의 절친인 트리플 H가 뒤에서 와락 안았다.  


 

그리고 트리플H가 준비한 세레머니는...? 



DX를 상징하는 야광봉. WWE의 한 획을 그었던 듀오이자 팀이었던 D-GENERATION X는 숀 마이클의 

은퇴로 결국 사라지게 되었다. WWE ATTITUDE 시절부터 WWE를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은 

정말 가슴 뭉클한 대박 장면일 것이다. 

 

내가 숀 마이클스를 처음 본 게, 1991년. 거의 19년을 이 레전드와 함께 했다. 이제 악동이었던 숀 마이클스는 더 이상 

링에 없다. 이제 그는 여행을 가고, 가족들과 함께 편히 지내고 싶어하는 가장으로서..한 평범한 남자로 살게 될 것 같다. 

굿바이 숀. 쌩큐 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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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31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감동의 추천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사진만 보는데도 이렇게 왈칵 해버리는데, 이 장면을 TV로 보면 더 하겠군요. 이 캡쳐는 국내방송분인가요? 국내에서 방송됐나요? 국내에서는 미국보다 2주쯤 늦게 방송되는걸로 알고있는데, 놓치지 말고 봐야겠어요. (요즘엔 정기적으로 안해주고 페이퍼뷰만 보여주는것 같던데, 레슬매니아니까 해주겠죠?)
숀 마이클스는 레슬링 선수들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에요. 저는 그가 스윗친뮤직을 날릴때마다 짜릿했죠. 저는 그의 경기하는 모습이, 그의 생김새가, 그의 매너가 다 좋았어요. 며칠전 남동생에게 은퇴할거라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아 정말 은퇴라니.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얼그레이효과님.

다락방 2010-03-3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젠가 미국에 가면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한번 꼭 봐야지 하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다 틀렸군요. ㅠㅠ

얼그레이효과 2010-03-31 18: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이 장면은 wwe raw 3월 29일 월요일(미국 시간) 생방송 장면이구요. 그래서 아마 xtm에서 2주 후 정도에 방송해줄 것 같네요. 저는 다운받아서 봤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답니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이 다 나와서 이렇게 막 챙겨주는 세레머니가 아니라, 저렇게 진솔한 내용의 멘트를 해준 자리, 그리고 되도록 음악이나 그런 것 다 줄이고, 조용히 담담하게 걸어나갈 수 있게 해준 세레머니라 더 감동적이었네요.. 브렛 하트도 숀 마이클스도..결국 wwe 자체 팜에서 키운 두 선수들이 이제 wwe 선수 자리를 완전히 다 내놓게 되었네요..진정한 세대 교체가 이뤄진 듯...이제 언더테이커 한 명만 떠나면..wwe는 전성기 시대 선수들이 거의 정리될 듯 하네요. (트리플 h야, 회장 사위라서. 아직은 모르겠구요)

얼그레이효과 2010-03-3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게도 숀마이클스가 몇 달만 쉬고 곧 나올거란 예상이 많았는데, 짧은 영어 실력으로 멘트를 들어보니, 이제 선수 생활을 아예 마음에서 접은 것 같더군요. 본인이 너무 지쳤고, 이제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한 멘트였습니다. 후배들도 많이 키워줬구요. 아쉽지만. 숀마이클스 마지막 경기는 레슬매니아 26이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패배로 장식한 것 자신의 입지에서 힘들었을텐데...대단한 선수인 것 같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0-04-1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만 집에 가신것이 아니라, 얼그레이님도 집으로 가셨군요.-미안합니다. 썰렁한 농을...;;- 시험기간이라 무척 바쁘신가 봐요. 그래도 가끔 들러주시옵소서. 시험기간 잘 넘기시고요. 총총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16 04:26   좋아요 0 | URL
ㅎㅎ 죄송합니다. 제가 졸업논문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어서 블로그 글을 도통 못썼어요 ㅋ 활발한 활동은 가을이 되어야 이뤄질 것 같습니다. 대신 조금,조금 제가 하는 일들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인사 고맙습니다.
 

 

사실 많이 놀랬다. 어제 세경과 지훈의 장면. 어떤 사람들은 김병욱 감독의 '우울증'전력을 꺼내며, 변태 혹은 정신병자가 아니냐는 비난을 퍼부었다. 어쩌면 이러한 분노는 하이킥에 자신의 삶을 많이 겹쳐 주었던 이들이 던진 당연한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좀 크게 보자면 사람들의 분노는 '기능'에 대한 제자리를 '하이킥'이 벗어나는 데 출발한다. '기능의 제자리'란 무엇일까. 사람들의 변은 그렇다. '하이킥'은 시트콤이 아닌가. 시트콤의 기능은 무엇인가. 웃겨야 제 맛이 아닌가. 그런데 이 무슨 '병맛'결론인가. 사람들은 '달달한' 장면을 기대했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 고된 5일을 보내고 텔레비전 앞에서 '보사마'의 플로우를 기억하고, 해리와 신애의 기분 좋은 싸움을 한 번 더 보고, '지세',-'정준'인지, '지정'-'세준'인지 그 러브라인의 끝을 가늠해보며, 어찌되었든 따사로운 기운을 느껴보고 싶었을 것인다. 그러나, 하이킥은 어겼다. 사람들의 이야기대로라면 하이킥은 '시트콤'의 본분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김병욱 감독의 의도를 마음대로 해석해 보는 것이나, 대중의 분노를 이해하려는 듯한 모습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내게 별 의미가 없다. 다만, 사람들의 분노 속에 섰인 그 '기능'의 측면은 곱씹어보고 싶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에서 '본분'을 찾는다. 문화는 어떤 풍요로운 상상 혹은 깊숙한 절망에 대해 그 어떤 장르를 넘어가며, 자신의 왕성함을 소통할 수 없다. 사람들은 문화에서 '투자'를 찾는다. 그 '투자'만큼 '적절한 기능'을 해달라. 너무 많이 나가지도 말고, 너무 적게 나가지도 말라. 내가 시간과 돈을 투자했으니, 그 시간을 '보상'해라, 그 '돈값'을 해라.  (이건 원래 그랬지만, 오늘날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이런 '보상'의 논리에서 보자면, '하이킥'은 엄청난 돈을 빌리고, '야간도주'를 한 셈이다. 그러나, 문화의 성장은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는 그 '야간도주'에  있었다. 비록 어두운 밤 시간을 택해, 많은 이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밤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기억하고 있지만. 문화는 사람들의 기대와 어긋나는 어떤 '압도적인 선'을 만들면서 우리에게 기능을 뛰어 넘는, 풍요로운 문화의 형식을 만들어 낸다. 문화 그 스스로가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간 문법은 그리하여 웃겨야 할 작품에 웃겨야 한다, 울려야 할 작품에 울려야 한다는 당위론을 넘어, 그것을 분열시키는 힘에서 자신의 문법을 더욱 확장해간 것이다. 

텔레비전의 형편은 영화에 비해 여전히 그 '야간도주'를 모색할 처지가 여의치 않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관객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좋은 영화의 척도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텔레비전 게시판을 통해 늘 한 편의 드라마를 '감시'하고 '간섭'하면서, 작품에 손을 댄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감시와 간섭을 한편으론 텍스트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의 뜨거운 모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런 애정 가운데 너무나 '본분'과 '기능'을 외치며, 소위 '역할론'이라는 것으로 문화의 텍스트를 소비하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텍스트는 텍스트 스스로에게 배반을 하고, 반칙을 함으로써 성장해왔던 것이 우리네 문화사가 아니었던가.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의 이런 '순수-기능주의'가 순수함의 모랄로 이어질까 두렵다. 웃김의 공간에 반드시 웃어야 함이 강요된다면, 나는 그것을 '순수'라는 이름의 문화적 폭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언젠가 <아바타>를 보고 오면서, 그 '기술'의 광경으로 인해 같이 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우리가 영화관에 들어가, 안경을 쓰면, 원하는 다양한 결말이 있고, 그 결말 중 하나를 골라, 각자가 원하는 그 결말대로 극의 서사를 즐기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이런 '첨단적 결말'보다, 나는 또 다른 '폭력적 결말'이 좋다. 사람들이 시트콤이라는 장르에 대한 '웃겨라!'라는 당위를 앞세워 분노할 때, '하이킥'이 보여준 이 '폭력적 결말'은 한편으로 구리지만, 한편으로는 '기능'에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움을 펼치고 싶은 한 샐러리맨의 상상 같아, 또 다른 위안을 얻는다.  

몸은 칸막이로 구획된 사무실 책상 안에 묶여 있지만, 마음은 탈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칸막이에 채워진 순수와 기능, 네 본분을 하면 그거로 된 것이다라는 압력을 벗어난, 소심한 분노의 다른 형태인지 모른다. 나는 이런 도주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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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2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웃겨야한다는 약속된 해피엔딩에 대한 기대도 그렇지만,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엔딩이지 않을까 했거든요.

사실, 현실에서 그 둘 사이의 러브라인이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죽음이라는 메타포는 반드시 물리적, 신체적 죽음을 떠나 둘 사이의 관계가 파국일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일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통해 의기소침해 있던 자신의 일상에도 혹여나 숨어있는 재미 같은 것들을 찾아내려했으나, 결국 현실은 현실이다라는 결론에 더 열 받아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었어요.

그런의미에서 저는 폭력적 결말이라는 말씀에 정말 동의해요. 적당히 가려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거죠. 현실을 보상해줄 가장무도회에서 그 가면을 동의 없이 벗어던지고 추한 몰골이라는 진실을 드러내면 소리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처럼..



얼그레이효과 2010-03-29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글인데 '탁월한' 답을 얻어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멘트 고맙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순간순간 긴장감이라는 놈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제' 학교에서 밤을 새고, '다음날' '참참'을 만났는데, 혹시 밤샐 때 신발을 신은 채 꼬박 시간을 보낸 터라,  남은 발 냄새 때문에 신경이 쓰일라고 하면, 그 날은 유난히 신발을 벗는 식당에 가게 되는 상황. 그럴 때 긴장감 말이다. 사실 그것보다 더한 긴장감. 나는 예전부터 '굽기'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 아버지는 어릴적에 내 밥그릇에 딱 하고 얹어주셨다구!로 시작하는 그 ㄷㄷㄷ한 도입부!)

아마도 '외동아들 = 마마보이'의 등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나는  그 편견의 틀에 대체로 갇히지 않은 편에 속하는 것 같다. 또 정말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그래도 최근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어떤 순간이 있었으니, 그건 식당에서 친구들 여럿을 만나거나, 교수님을 비롯한 윗사람을 만날 때 내가 집게와 가위를 들고 고기를 구워야 하는 때다. 하루는 내가 고기를 어설프게 굽는 모습을 보던 어느 교수님은 "아이그, 태어나서 이런 걸 구워본 적이 없으니..."하면서, 내가 조각낸 고기 부분을 째려 보시며 본인이 직접 집게를 집으셨다. 그런 순간이 여러 번 닥치다보니, 최대한 약속 자리에 늦게 들어가거나, 어렴풋이 눈치로 '나잇밥'순으로 내가 나이가 좀 윗축에 속한 곳에 끼어, 남의 고기 굽기 실력을 평가하는 '꾀'를 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 고기를 먹으러 갈 때면, 그런 꾀는 통하지 않았다. 뭔가 점수를 따고 싶은 생각도 있었던 것이 사실. 나는 '삼겹살 굽기'의 진리인 "삼겹살을 잘 굽는 사람은 한 번에 딱 뒤집어야 해'라는 말을 얼른 체득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미안하게도) '참참'은 늘 나의 연습 대상이 되어 주었고, 그녀는 군말 없이 나의 성장을 바라봐주는 사람으로 남아 있다. 요즘은 다행히 "고기 잘 굽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결국 잘 굽기 위해서는 어떤 술수나 법칙이란 없다. 그냥 열심히 굽고, 여러번 구워 그것을 나름대로 자신감으로 삼으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고기를 구워 먹는 시간이 오면, 손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다. (왼손잡이인)나의 집게 든 모습을 보고, "야, 너 왼손 쓰냐"하며, "그럼 그렇지"하는 판에 박힌 물음과 대답도 들어오고, 고기 굽느라 신경 못써 검은 옷 입혀버릴까 걱정되는 마늘놈 생각도 나고, 그러다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삼겹살집에 가면 당신은 늘 굽느라 정신없는 모습에 같이 나오는 된장찌개로 배를 채우는 아버지의 그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니는 더군다나 채식주의자라 연습도 제대로 못하셨을텐데. 아버지는 자신을 연습 대상으로? 

아버지와 정겹게 같이 고기 먹은지가 참 오래다. 

가끔씩 장 보러가는 길, 슈퍼 옆에 붙은 갈비집 투명창에서 서로 고기를 먹여주는 연인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남자분의 모습과 고기와 남자를 번갈아가며 흐뭇하게 쳐다보는 여자분의 모습을 볼 때면, 그 고기는 타도 맛있을 것 같다.

좋을 때다..하며 나도 모르게 영감 소리를 하고 나서, 예비군 홈페이지를 들어갔는데, 나 이제 예비군 훈련 받는 것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확인. 

어머나. '씨망'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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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6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3-04 17:49   좋아요 0 | URL
결국 그 집은 씨망 ㅡ.ㅜ
 

잘 가는 커뮤니티에서, 일본의 재정 적자를 우려하는 글을 봤다. 내용인즉슨, 일본은 현재  나라 부채가 1초당 1561만원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재정 내역에서, 복지 부분은 점점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 우리나라다. 경제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구조가 타 국가의 경제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해왔음은 상식일 듯하다.  

'학습효과'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예전에 한 번 당해봤으니, 다음은 괜찮은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칠 때, 이 논지를 끌어온다. 그리고 이것은 상황의 심각함을 무마시킨다. "에이, 그래도 이번은 괜찮을 거에요. 저번에 한 번 겪어본 적이 있으니." 그런데, '먹고사니즘'에서 오는 각박함이 피곤함과 무관심의 침묵으로 나타나는 것인지, 혹은 정말 '학습효과'가 쌓아놓은 둑의 견실함을 믿는 것인지. 내가 다 찾아가며 사람들의 심리를 물을 수는 없지만, 이 대책 없는 고요함이 조금 무섭다.  

어제 pd수첩에 방영된 '유령 도시'의 가능성이 다분히 보이는 송도를 비롯해, 4대강 사업, 세종시, 그리고 '오명박' 오세훈의 서울 리모델링, 그리고 경기도 모 지역에서 기획하고 있다는 고층 청사 및 이미 완공된 호화 청사 건립까지. 뭔가 예비된 불길함들이 하나, 하나 쌓이는 것 같다. 

국제적인 차원에서, 우리에게 경고를 주는 다른 나라의 모습들도 자주 뉴스를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오는 반응들은, "우리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식의 지식적 섭취의 과시만이 남은, 이상한 양비론 같다.  

이명박의 '통치 기술'은 너무나 뻔해서, 분석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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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신촌의 모 대학이 결국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했다. 기사가 뜨고 나서 이제 분노의 화살이 학교측보다, 학교측의 협의대상으로 알려진 총학생회로 쏠리는 듯하다. 아무리 '총학'에 학생들이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현수막이라도 한 번 쳐다보는 학생들은, 등록금 문제 만큼은 '뒷담화' 주제로 올려놓을 것이다. 나는 2008년 봄부터 약 6개월 간 대학 총학생회 관련 연구를 하면서, 대학생 시절 가볍게 느꼈던 문제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총학생회를 둘러싼 지저분한 음모도 몸소 듣게 되었고, 그 음모의 희생자들이 총학생회에 참여하면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를 여러 번 인터뷰했다.  (그리고 부족한 논문을 채워준 그들의 소리 덕분에 우연히 상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할 때, 그들중 일부는 내가 앞으로 설명할 '유지의 정치'로 인한 비리의 당사자가 되어, 학교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 논문의 결론을 넘어서, 더 차분하게 고민해 본 나의 견해는, 총학생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억지로 살아남기'가 아니라, '차라리 아예 망하기'라는 전술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본다. 물론 한국의 모든 대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대학교 총학생회는 조직의 공백 상태를 가까스로 넘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야, 이번에 선거 아무도 안나간대."라고 시작되는 걱정의 기운은 결국 레임덕 시기에 있는 총학생회장이 자신이 눈여겨 본 후보군들을 설득하는 계기로 이어지는데, 바로 이 부분에서 문제의 둑은 터진다.   

전 학생회와 선거에 당선된 학생회 간에 인수 문제도 제대로 안 되긴 마찬가지다. 전, 현직 학생회가 갖고 있는 문제는 "야, 그래도 학교에 총학생회가 없으면 어떡해"가 큰 자리를 차지한다. 정작 총학생회에 진정 필요한 정치 방식이 무엇인지는 뒷전이 다. 정책설명회에서 제대로 지키질 못한 공약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며, 선거 과정 가운데, 전 학생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요, 학교 전체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엄밀히 말하면 인상 비평에 가까운 것이 다수다.  

결국 총학생회는 그 오랜 역사 속에서 폐쇄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참여의 문제니, 동원의 문제니라고 하는 앓는 소리는 "요즘 대학생들이 워낙 바쁘잖아요"라고 하는 변명과 함께, "야, 우리 총학생회 그냥 일 년 버텨보자"의 수준으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참여를 위조하는 비리 -대표적인 사례로 투표 조작 같은- 가 자연스레 나타난다)

나는 차라리 대학 내 학생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총학생회라는 조직의 제도 틀 자체가 아예 한 번 폭삭 망해서, 이 공백 상태가 주는 혼란을 대학생들 스스로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결국 그동안 거의 대부분의 총학생회가, "에이, 그래도 어떻게 총학생회가 학교에 없을 수가 있냐"라는 그 존재의 안전 유무에 기민하게 반응한 채 '유지'의 수준으로 나아왔기 때문에, 그 '유지의 정치'가 주는 효과값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 효과값이 거의 0인 상황에서, 이제 남은 건 총학생회라는 집단의 공백 상태를 만들어 버리고, 이 공백 상태의 위기가 주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를 모아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나는 유지의 정치로선 짱돌을 들 수 있는 조건이 거의 희박하다고 본다. 고작 나오는 정치적 행위란, 학생들이 히죽히죽 거리며,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야, 아침에 너 총장 까는 현수막 봤냐?" 그 정도뿐일 것이다. 총학생회는 이 유지의 정치에 드는 에너지, 그동안 총학생회가 지겹게 설파했던, 그들 말로 '학생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현실 전략, 연성화 전략이라고 하는 것에 목매달지말고 - 거기에 위안 삼지도 말고- 차라리, 아예 저항의 거점을 공백으로 삼아라. 이 공백은 내가 보기에 지금 당장 학생들에게 "그래도 학교는 돌아가겠지"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이 '공백의 정치'가 주는 불안의 기회는 대학 사회의 왕인 교직원들에게 또 다른 불안감을 안겨다줄 수 있는 전술이 될 것이라 본다. 

덧붙임) 글을 쓰면서 뉴스 자막을 보니 서강대와 한국외대도 등록금을 결국 올리기로 했단다. 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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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2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대학 총학생회 오늘 인터뷰도 하던걸요 --;;

얼그레이효과 2010-01-30 12:43   좋아요 0 | URL
그랬군요 ㅡ.ㅜ

LAYLA 2010-01-30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록금을 올리묜 학교는 학생들의 신임을 일케 되겠지. 지금까지 구래왔고 아프로도 계쏙
-이거 맞나요. 이거 엄청 웃겨서 진짜 팍 웃었는데.... 이번 총학이 너무 기대치를 높인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1-30 12:43   좋아요 0 | URL
그런 내용으로 인터뷰 했나보죠..에고..

LAYLA 2010-01-30 16:01   좋아요 0 | URL
하하하 인터뷰 아니고 플랑 붙여놨더라구요 중도 근처 나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