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레이 얼 지음, 공보경 옮김 / 애플북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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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 라는 제목과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아이의 모습만으로   살 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만 먹을 걸 찾아다니는 자신에 대한 한탄이 아닐까 했지만, 읽어갈수록  진짜 일기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빠지게 된다.  163센티미터에 92키로, 무엇보다도 열일곱이기에   외모가 전부로 보이는 세상에 사는 레이의 절규는 너무 솔직해서 한때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삼순이의 십대판이 아닐까 싶다.

 

자신도 평범하지 않으면서  딸만은  평범하길 바라며 잔소리하는 엄마와 매일 투닥거리며  누구냐가 아니라  남자라면 무조건 사귀고 싶다는  레이, 그리고 그녀를 좋아한다면서 결정적일때 뒤통수치는 친구들 일상이 1월부터 12월의 일기속에 등장하고 있기에 대략 그들의 성격, 그리고 그들 관계의 달라짐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영국에서 광풍을 몰고 왔다는 "마이 팻 다이어리"시리즈는 1980년대 말 고등학교를 보낸 저자 "레이 얼"의 자전적 이야기라 하는데, 십대가 겪기 쉬운 혼란과 변덕,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뿐이지  누구가 갖고있는 컴플렉스와 낮은 자존감으로 생기기 쉬운 문제들, 그리고 뭐냐 싶게  빠르게  옮겨가면서도 너무 진지한 사랑과  태연하게 보여야만 하는 짝사랑의 아픔이 내 십대에 있던 일들을 떠올리게 할만큼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레이의 일기는 누구에게나 있을 친구와 가족사이, 사랑과 우정,그리고 남자와 여자에 관한 고민들을 꺼내기에  이 시리즈가 인기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렇게 하루 하루 레이의 고민을 함께 하다보면  "넌.. 살을 조금만 빼면 돼. 얼굴은 예뻐.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있어.... ... 그리고 나는...." 이란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뒷 장을 희망으로  들춰보며  레이와 같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뭔가를  기대하는 내 모습을 보게도 된다.

 

일기 내용 모두가 사실이라며 뚱뚱하고 정신이 나간 데다 열일곱 살이나 되어서도 여전히 모태 솔로인 여자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레이 얼의 이야기, 당장이 급한  이 세상 모든 이들 특히나 여자들에게 위로가 되지않을까 해본다.  

 

뚱뚱하든, 못생겼든, 성격이 4차원이든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행복할 권리가 있고, 누구나 조금 더 웃을 자격이 있다."

                                                                             --- by 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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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산만해졌을까 - 복잡한 세상, 넘쳐나는 기기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 법
알렉스 수정 김 방 지음, 이경남 옮김 / 시공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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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누군가에게 웃으며 " 내 번호가 뭐더라." 할때가 있다. 물어본 사람이나 대답한 나나 그 순간 웃게되지만, 진짜 생각 안나는 나는 당황하게 된다. 그럴때면  '디지털 치매' 에 걸린 사람이 많아졌다는데 이런 나는 당연 상위권이지 싶어지게 된다.  예전 총명하던 기억력은 있었나 싶게,  아는 사람 몇 몇 전화 번호 끝자리만 겨우 기억하게 되고 일정 메모가 알림음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몇 시간전에 내가 적어놓은  해야할 일도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런 건망증+ 치매끼때문인지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하다 꼭 중간에 잊었던  일을 끼워놓는 산만함까지 가지게 된다.


핑계를 대자면 기억하지 않아도 하라고 알려주는 알림 메모 기능을 너무 믿어서라고 하고 싶지만, 저자 알렉스 수정 김 방은 점점 한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해지는 인간들의 행동은  어디까지가 나와 기계의 할 일인지 구분하는  무의식의 정신적 신체도식(신체적 얽힘, 도구나 기계의 오랜 사용으로 내 몸같이 느끼게 되는 과정)이 의미를 잃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물론  도구나 기기를 사용해 발전해 온 인간에게  기기와의 떨어질수 없는 '얽힘'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일을 거미줄에 얽힌 파리처럼일지 혹은 밧줄의 가닥처럼 얽혀 하나 하나 더 강력한 위력을 나타낼수 있을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내 안의 정신 못차리는 산만한 두마리 원숭이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호흡, 단순화, 명상, 프로그램으로부터의 탈피.. 휴식과 관조적 컴퓨팅이라는 8장으로 나누어져 기술에 끌려가는 인간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 참여하는 수단으로 기술을 이용하는 현명한 인간이 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기계의 속도를 잡기 위한, 느린 인간들의 적응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모든 건  집중과 몰입하지 못하는 마음에 달려있음을 말하는 이야기는  컴퓨터를 이용해 설법을 전파하고 공부하는 여러 승려들의 예를 들어 누군가는 발전해가는 기계의 빠른 속도와 확장성을  제대로 즐기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디지털 안식일'이라는 말도 나오지만, 기계와 떨어져  가족과 친구들과의 시간을 '참여 활동'으로 채우고  '실시간으로부터의 탈출을 즐기자.'라는  등의 지켜진다면  단순할 수도  있는 해법이  기계에 점점 의존하고 있음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자신이 보내고 있는 하루 하루, 매시간중  내 스스로 보낼 수 있는 시간갖기부터  돌아보게 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컴퓨터는 내 일상의 일부였다. 이제 컴퓨터는 일상의 '매순간'의 일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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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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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인생을 다시 산다면"

 오늘 지각할 줄 알았더라면 어제 일찍 잤을텐데 라는 시시한 일부터 그럴줄 알았더라면 그 사람과 만나거나 만나지 않았을텐데, 그걸 미리 준비했을텐데..라는  이런 생각 많은  현재라서인지,   후회하는 기억들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당연히  후회하는 일이 적어지도록 다른 선택을 할 것이고 달라진 현재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행운을 거머쥔 남자가 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지나이다가 같이 가자는 여행에 나서지 않은 오소킨은  그 곳에서  그녀가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에 상심하게 되고, 마법사를 찾아가  이런 결과가 올 줄 알았더라면 달라졌을 자신 행동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지금의 기억만 가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후회하고 있는 지금의 모든 일들이 생기지 않을것이라 자신하는  오소킨에게  "친구여, 그대는 이미 알고 있었네." 라며, 마법사는  이미 오소킨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고 한 행동이였기에  달라지는 것은 없을거라는 말을 해주게 된다.


과연 그렇까?

사랑하는 여인의 결혼으로 막막해진 마음은 그가   학교다닐때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부터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는 결심을 하게 하는데 말이다. 내가 만일 학창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어린 그 날을  울만한 일도 웃을만한 일도 당연히 즐길거라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열렬히 말하는 그 마음아닐까 싶어, 오소킨에게 주어진 이 기회가   최소한  하나 이상 당연히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주지않을까  해보게 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가끔 상황이 재미있었다." (p.119)

 열네 살 학생이 되어 이것이 꿈일지 혹은 마법의 힘일지를 궁금해하던 오소킨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 재미있어 하면서도 이미 알고 있는 현재라는 생각에 예전보다 더 지겨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다시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영화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는  이 이야기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이미 알면서도 그대로 따라가는 오소킨에게서  후회하면서도  고치지 않고 다시 반복하는 내 모습이 보여 뜨끔하게 한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이라고 아쉬운 듯 말하지만, 늦게자면 다음 날 늦게 일어날 확률이 높아진다거나 준비 안하면 당연히 허둥댄다는 결과를 알면서도 갖은 핑계를 대던 모습들 말이다.


백년 전 페테르 우스펜스키가 쓴 인생여행은 "지금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라는 게  백년전이나 백년이 흐른 후에나 같은 인간의 마음이였고,   이미 백년전부터 후회 덜하게 하는 방법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오소킨의 현명한 마법사 친구가 말했듯,  바뀐 당신의 행동이  현재의 상황을 바꾸고 그것이  달라진 미래가 되어  현재가, 바뀐 과거가 되어 주니 말이다.


과거, 현재, 미래가 다시 과거, 현재, 미래가 되어 당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 이 수레바퀴안에서  마법사 친구가 없더라도 부릴수 있는, 미래를  바꾸게 하는 마술은 당신의 지금 행동이 만든다는 가벼우면서 무거운 이야기가 지금과 미래, 나와 후회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저런 행동이 어떤 결과들을 가져올지 본인은 언제나 안다는 뜻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간은 이렇게 행동하면서도 저렇게 행동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를 얻고 싶어 하지."-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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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프 시프터
토니 힐러먼 지음, 설순봉 옮김 / 강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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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우연한 일로  결국 잡히는 범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하늘이 내린 벌을 받았군,'이라면서 신의 도움에 감사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짧은 인간의 눈으로는   많이 가진자와 너무도 덜 가진 자로 나뉘어진 것이 도통 변하지가 않아서, 심지어는 남의 걸 빼앗는 사람마저도 잘 사는 것으로 보일때는 신이 보고 있다는 게 맞긴 한건가 하며 불평하게도 된다. 신에게는 죄 많고 적음의 차이이지 인간이라면  다들 길잃은 어린 양으로 보일터라, 그냥 놔두는 것이겠지 하는 마음의 위로를 하면서 말이다.  나같이  일희일비하는 이들에게  설렁설렁한듯 꼼꼼한  조 리프혼 경위의 사건 해결은 인생사 길게 봐야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퇴역 경위 조 리프혼의 눈에 우연히 불 타 사라졌다고 알려진 저주받은 '슬픔의 러그' 사진이 눈에 띄게 된다. 그 사진을 전해준 옛 경찰 동료 '멜 보크'가 이 사건을 조사해보겠다는 메모만 남긴채 사라지게 되고 친구의 행방과  러그의 진실이 궁금해진 조는 직접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확실하지 않은 사진 한장은 조를 그 전에 있었던 의문스러웠던 사건까지 다시 파고 들어가게 하면서 이들 사건뒤에는 숨겨진 더  많은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사건도  많고 그에 따른 비극도 크지만 '셰이프 시프터'의 저자 토니 힐러먼은 극적인 전개를 주지 않는다. 독이 있는 케익일수 있다면서 내내 차에 실고 다니는 조나  진범을 찾아내 죽여버리겠다 흥분한 델로니가  결국 그가 먼저 쏘지 않는다면..이란 단서를 달게 된다거나  아무도 찾지 못한 범인이라면서  누군지 금방 알게한다던지  등으로  사건의 단서나 범인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따로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나바호족 설화나 토미 뱅의 '흐몽' 설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인디언들이나 소수 민족이 겪게 된 불평등을 분노보다는 잃지 말아야 할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나타내는 이야기는,  사람사는 일에는  순리라는 게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싶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입에 의해  악의 무리   '스킨워커' 중 '셰이프 시프터' 라 불리우는,  사람에서 늑대로 또 부엉이로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무서운 존재가 동화처럼  나바호 사람들에게 전해진다고 한다.  사건을  일으킨 범인 역시  마치 셰이프 시프터처럼 각각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고픈 대로 그의 모습을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무서운 사람이였기에 많은 사건이 벌어지지만  진실이 궁금했던 조에게만은  범인의 마법이 통하지 않게 된다.  '절대적 포식자'이자  셰이프 시프터이기도 한 이와  불만없이 수십년을 살았음에도 결국 그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슬퍼하던 토미마저도 말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고향에 가게 해주겠다는 약속만 믿고 살아가던  토미 뱅이 주인이 자기에게 전해준 '포식자'와  '먹이 족속'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이 있다. 우연히 절도를 목격한 그가  절도범에게 훔친 물건을 내놔야지 않겠냐는 설득하는 말을 한 것에 비해, 포식자는   누군가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앞에서 절도범 죄를 드러나게 하고 언제든 그 사람의 약점으로 써먹을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했다는데, 도저히 자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 일어난 일이라면 어땠을까 싶어진다. 내가  함께 한 공간에서 뭐가 없어진다면  나 역시  범인으로  몰릴수도 있기에 역시 증인이라도 만들어두고 싶지않았을까. 이렇게 요즘 세태가 그래서...라는 말로  넘어가는 일 말고,  지나칠수 있는 작은 일에 나는 누군가가 민망해 할만큼 그 일을 드러나게 밀어붙인 일은 없었는지, 혹은 그 사실을 덮어두고 내내 즐거워하는   포식자가 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 역시  순한 먹이 족속이기보다는 기꺼이 포식자가 되는 방향을 선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토니 힐러먼은 악과 선, 포식자와 먹이 족속, 이렇게 뚜렷이 나눠져있는 세상도 없고  행복과 불행이  누구라고 정해져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사라졌다 포기한 '러그'를  눈에 띄게 한 건 포식자가 더 이상 나쁜 짓 하는 걸 볼 수 없었던  신의 뜻이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이미  결정된 것으로 보이는  포식자와 침착한  먹이 족속의 만남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되고, 또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듯 포식자가 꼭 행복했다 말할수도, 먹이 족속이 불행했다 말할수도 없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이다. 

 

'서부 미스터리' 와  나바호족 문화의 대가로 알려진 토니 힐러먼은 우리에게   셰이프 시프터에게 당하지 않으려면 자신안에  분노를 쌓아놓지 말아야 한다는 걸, 그리고  자신 스스로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결국 일어날 일은 언젠가는이라는 게 아쉽지만  옳게 일어난다는 걸 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사건을 쫓아가다보면  범인이 아니라  나바호족들의 인생을 배워가게 된다.  중요한 건 빠르기가 아닌 깊음이요. 쫓아가는 기쁨이 아닌 내 안의 만족이라는 걸 말이다.


"제가 결국에 가서는 할 일을 했습죠."

...

"정말 오래도 걸렸구려.젊은이."-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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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0일생 소설NEW 1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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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알고 보니 손자분과 관련이 있는 여성이어서....."

  "혜린이가요? 혜린이가 죽었어요?"


접으려는 불륜관계에 있던 혜린을 우연히 고향에서 보게되고 현재는 그녀에게 짜증섞인 막말을 퍼붓게 된다. 다음날 아침, 늘 그랬듯 술만 먹으면 끊어지는 기억에 혜린과의 저녁이 생각나지 않아  괴로운  그는  자신의 손에 상처가 생겼다는 사실에 섬뜩해하지만 점점 사라지는 상처는 그녀와의 과거도  그리 될거라 믿게 한다. 하지만  찾아온 경찰관을 보자마자  혜린의 죽음을 직감한 그는, 자신의 기억이지만 잡지못한 혜린과의  사라진 기억에 괴로워하게 된다.  


술만 먹으면 기억을 잃는 남자와 남의 고향에서 죽음을 맞이한 여자, 라는 뻔해보이는 사건은 J시에서 막강한 힘을 떨치고 있는 현재 집안의 과거와 얽히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말해주게 된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의미에서 현재라는 이름을 받았음에도 늘 모든 일에 설렁설렁하던 현재는 할아버지의  위세를 뒤에 얹고  국회의원이 되고자하는 아버지의 선거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나서게 된다. 그러면서  혜린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의도된 것이였다는 것이나  자신의 집안과 J시에 떠돌던 과거의 소문속에 진짜도 있었다는 걸 알게되면서 자신이 모른척했던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늘 자신 주변에 있었다는 걸 알게된다.


25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같은 장소에서  두 여자가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60년 한국사를 애써 묻었기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한다.   남매에게  현재에 충실하라는 '현재'와 항상 앞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주어진 '미래'라는 이름을 준 것이 전쟁이라는  시련을 거쳐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재산과 이름을 만들어낸 할아버지였다는 게 사건의 제일 큰 단서가 아닐까 싶다. 살기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우선 자신의 눈부터 가리기위해  '현재에 집중하자.',  '보다 나은 미래를 생각해보자.' 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였을까 싶을 정도로, 현재를 잘 살아내고 국회의원 집안으로의 먼 미래를 내다보던  현재 집안의 아슬아슬하게 잡혀있던 할아버지로부터의  균형은  잘못된 과거에서 출발했기에   미래라는 저 먼곳까지 덮기에는 힘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다. 


2월 30일이라는 존재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에 태어나  사라지게 된 여인 혜린, 진실하지 못했기에 사랑인줄 몰랐던 현재, 모든 것은 다 지나가게 된다면서도 자신도 어쩌지못하는 과거에 늘 매여있었던 할아버지 정윤조 등  인물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비밀은 잠깐 덮어져 있었을 뿐이고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올 불씨였다는 게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그러듯, 할아버지가 늘상 말하던 모든 것은 지나가는 거라는 이야기가 진실인것 같지만 남들 눈에 눈물 흐르게 한 누군가의 정의롭지 못한 시간은   삼대를 지나가는 동안도 옅어지지 않는  '악의'라는 불길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는 거 아닐까 싶다.  대길이란 존재가 그토록 바라던 윤조의 모습이 현재에게  모두 담겨져 있었음에도 자신의 뿌리이기도 한 현재가 행복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사건속의 사건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했던 진실을 드러내게 된다.   



나에게 가장 큰 잘못이 있다면,지난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이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나를 대신해 변명해줄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다. 내 잘못이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나는 내가 왔던 곳에 나를 이 세상으로 오게 만든 것에 대해 알았어야 했다. 저 먼 우주의 별들처럼 몰랐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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