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액스(AX)를 원작으로 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박찬욱 감독이 왜 이 소설의 영화화를 필생의 프로젝트로 열망했고 17년 만에 기어코 스크린에 올려야만 했는지 궁금했다.

 

1997년에 출간된 이 소설은 소재와 내용의 전개가 굉장히 특이하면서 쇼킹한 면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상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는 것을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치밀하게 설계해,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사회적 현상과 구조적 모순 때문에 자신도 어쩔 수가 없이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가 없다는 책에 여러 번 나오는 문장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액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와 상관없이 일단 그 자체로 봐야한다. 이 책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도덕적이고 인간적인 면은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이것들을 과감히 배제한 채, 오직 한가지만을 명백히 말하고 있다. 전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적이고 악랄한 경제적 흐름에 한 순간 희생되는 개인과 그 가족들 각자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여기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작가가 의도한 것만을 볼 필요가 있다.

 

23년간 중간관리자로 한 제지회사에서 계속 근무해온 버크 데보레는 정리해고를 당한다.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그는 2년 동안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재취업을 못하고 있다. 한창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필요하고 집 대출금도 남아있는 상태다. 아내는 두 군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최대한 긴축재정을 했지만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다. ‘돈이 바닥났다.(p.33)’ 그는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다시 직장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구직자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버크 데보레는 우체국 사서함의 주소를 빌려 주로 제지업을 다루는 잡지에 구인 광고를 낸다. 전해 축전지 제지 기계로 가동되는 가상의 제지공장의 새 생산 라인을 맡아 관리해줄 특수 용지 전문가를 찾는다는, 한마디로 가짜 내용으로 조작된 것이었다. 그 주소로 200명이 넘는 사람이 이력서를 보내왔고, 그는 자신과 비슷한 경력의 경쟁자를 추려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거침없이 실행한다. 그들과 자신이 원하는 삶은 비슷했고, 냉혹한 자본주의는 모두에게 필요할 것을 다주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기하거나 아님 둘 다 싸워 끝장을 봐야만 한다.

 

그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가 독일군에게 빼앗아 온, 50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던 총 루거가 있었다. 버크는 자신이 지원할 직종에 취업할 가능성이 있는 경쟁자를 찾아가 루거를 쏴 죽여 버린다. 그는 이력서를 제출한 경쟁자 4명을 죽인다. 일이 꼬여 릭스를 죽일 때 그의 아내도 죽인다. 마지막으로 버크가 취업을 원하는 회사의, 그 직책에 딱 버티고 있는 장애물인 업튼 팰런을 죽이고 그는 그 자리에 재취업하는데 성공한다. 6명을 죽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다.

 

운 좋게 버크 데보레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일을 착착 진행해 성공한다. 그 사이 아내의 외도도 정리되고, 상담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도 개선된다. 말썽피웠던 사춘기 아들의 사고도 말끔하게 해결해줬다. 돈이 만사형통이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실직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야기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실직당한 이유가 자본주의 원리와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자신과 그의 가족이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버크의 회사는 적자가 아닌 상당히 좋은 영업실적을 올리고 있었음에도 직원의 4분의 1을 한꺼번에 해고시켰다. 해고는 거의 모든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일률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언제나 실직자가 구직자보다 많은 것이 문제다. 사람을 기계로 대처하고 필요 없어진 그 제품 라인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막대한 수익을 남긴다. 끊임없이 개발되는 신기술은 새로운 인력을 필요로 하고 쓸모없어진 직원은 해고당한다. ‘변화에 뒤처지면 끝장이지만(P.26)’ 그것을 좇아가기는 쉽지 않다. 버크는 종이라는 복잡한 주제의 전문가였지만, ‘종이라는 더 복잡한 주제가 난데없이 들어오며 수 십 년간 일해 온 회사에서 순식간에 도끼질당해야 했다. 투자 수익에만 관심이 있는 주주와 회사의 흑자를 위해 임원들은 수천 명의 직원을 해고하고 자신의 자리를 보장받는다. 해고자 개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다.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한 가공육 공장을 취재한 것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모든 생산라인 중 각 한 곳에만 배치된다. 먼저 소가 줄지어 들어오면 한 노동자는 소의 머리에 전기 충격기를 들이댄다. 기절한 소는 거꾸로 매달려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노동자는 소의 배를 가른다. 내장을 쏟아낸 소는 또 움직여 가죽이 벗겨진다. 다른 노동자가 작두를 쥐고 소의 앞발을 자른다.....이렇게 노동자는 생산 라인의 한 곳에서 하루 종일 한 가지 일만 반복적으로 한다. 점심시간에는 자신이 살생한 그곳에서 도시락으로 싸온 샌드위치를 먹는다. 아마 지금은 그마저도 거의 대부분 기계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한 가지 일만을 반복적으로 한 노동자가 해고되었을 때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작가 웨스트레이크는 이 책에서 거대하게 조직된 자본주의의 논리와 그에 따른 냉혹한 현실을 고발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해고된 사람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이 잔혹한 사회가 한 사람을 총으로 무장시킨 채 밖으로 내몰고 있으며, 그는 총질을 하면 할수록 더 편하게 잘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렇게 변한다.

 

[나는 킬러가 아니다. 살인자가 아니다.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무정하고, 냉혹하고, 영혼이 없는 킬러. 그건 내가 아니다. 지금 내가 벌이고 다니는 짓은 사건의 논리에 의해 강요된 것일 뿐이다. 주주들의 논리, 임원들의 논리, 시장의 논리, 노동력의 원리, 밀레니엄의 논리, 그리고 나 자신의 논리. 대안을 알려주면 살인을 멈출 수도 있다. 지금 내가 벌이는 짓은 끔찍하고, 까다롭고, 섬뜩하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p.162]


박찬욱 감독의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의 영화답게 미장센과 대사 특유의 유머와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났다. 소설의 진지한 블랙코미디를 가볍게 비틀었지만 거기에 소설보다 더 끔찍한 비극이 들어있어 좋았다. 다만 사회적이고 거시적인 것을 배제한 채 영화를 가족 판타지로 축소시킨 것이 아쉬웠다.

 

실업자가 되면 본인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도 힘들다. 똑같은 처지지만 만수(이병헌)와 범모(이성민)의 대처는 다르다. 만수는 총을 쏴서라도 가족을 지키려 하지만 범모는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누가 더 맞다, 누가 더 잘한다는 있을 수 없다. 만수의 행동이 그 어떤 이유라도 정당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사람의 차이나는 행동으로 만수의 아내인 미리(손예진)는 그의 동조자가 되고 범모의 아내 아라(염혜란)는 적이 된다. 아라는 범모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편에게 실직당한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야라고 말한다.

 

어느 누가 실직에 대처하지 않겠는가? 대처해도 잘 안 되니 문제가 된다. 실망하고, 자포자기하고.끝내는 어쩔수가없이극단적 행동을 하게 된다. 소설에서 버크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벌인 짓들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자살을 하지 못한다.(p.114)고 했다. 만수와 소설과 다르게 그의 살인을 알게 된 미리역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불안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느낀 이 영화의 압권은 마지막 장면이다. 재취업한 만수는 거대한 기계실의 관리를 맡고 있다. 그는 그저 그 기계들이 잘 돌아가는지 체크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기계가 다 알아서 종이를 생산해준다. 만수는 귀에 귀마개(기계가 돌아가며 내는 소리가 엄청나다)를 하고 손에 패드를 들고 기계 사이를 걷는다. 그의 얼굴엔 안도의 미소가 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영원하지는 않을 거라고 암시한다. 총질로 가까스로 거기에 갔지만, 멀지 않아 그의 길은 또다시 험난해질 것 같다. 지독한 박찬욱 표 블랙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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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0-23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엑스를 오래 전 읽었는데, 그리 재밌지 않았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원작이 엑스였군요~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관심이 없었는데...엑스가 원작이었다니..ㅎㅎ

페넬로페 2025-10-23 21:41   좋아요 1 | URL
네, 그리 재밌지는 않은데 스토리 전개가 특이했어요.
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을 좋아하는데,
<어쩔수가없다>도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새파랑 2025-10-24 0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페넬로페님은 책쟁이가 맞습니다~!
박찬욱 감독님도 책쟁이인거 같아요. 이런 책을 어떻게 아셨는지 ㅋ

페넬로페 2025-10-24 10:29   좋아요 1 | URL
박찬욱감독님이 독서를 엄청 많이 한다고 들었어요.
책에서 소재를 많이 찾을 것 같아요.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독서괭 2025-10-26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영화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런 내용이었군요?! 놀랍습니다. 원작 읽고 보면 더 많은 게 보일 것 같은 영화로군요.

페넬로페 2025-10-26 16:37   좋아요 1 | URL
저도 영화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책을 알게 되었어요.
책과 영화 내용은 비슷한데
각각 나름의 개성이 있더라고요^^
 
동양화가 처음인 당신에게 - 제대로 알고 즐기는 옛 그림 감상법
이장훈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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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그대로 ‘동양화가 어렵거나 낯선 이들을 위해 기초 지식부터 감상법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동양화 감상 입문서’로 좋은 책이다. 결코 가볍지 않아 동양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은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동양화에 대한 여러 다양한 것들이 들어있는 개념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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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5
로베르트 무질 지음, 박종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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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함께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세 소설은 ‘20세기 소설의 삼위일체라고도 일컬어진다. 무질은 토마스 만,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20세기 초 독일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99년 르 몽드가 선정한 세기의 도서 100권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 소설의 어떤 점이 그렇게 대단한 건지 궁금했다. 그리고 율리시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기 때문에 그 다음엔 당연히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를 읽어야했다.

 

프루스트와 조이스에 비해 나에게 생소했던 작가인 무질의 이 소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마음을 다잡아 시작했지만 읽기 어려움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책장을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일단 작가가 쓴 문장의 장황함이 큰 역할을 했다. 무질의 장황함은 프루스트,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장황함과는 많이 달랐다.

 

무질의 문장에는 동시에 상대적인 것이 같이 들어있어 일관성이 없어 보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에 알 수 없어 모호하고 맥락을 이해하고 연결시키기 어렵다. 간결한 문장을 선호하는 작가 헤밍웨이였다면 50페이지에 족했을 내용을 무질은 500페이지가 넘는 문장으로 늘어뜨린다. 하나의 사건과 주목해야 할 간단한 에피소드도 무질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그것을 설명한다. 비유를 들고, 여러 단어로 부연 설명하며 거기에 성찰과 사유를 들이밀며 독자를 고통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번역자는 원문이 워낙 어렵고 독특해 그대로 살리기보다 어떻게든 독자가 읽을 수는 있게끔 번역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 읽기는 무척 난해하다. 다음 문장을 읽으면 그 전의 글은 휘발되어 버릴 정도다.

 

로베르트 무질은 군사중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고 그 뒤 문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작가가 되었다. 이러한 무질의 이력은 특성 없는 남자의 주인공 울리히와 소설의 내용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 작가가 지나온 길과 비슷하게 이 소설에는 과학적인 요소와 철학적인 것이 섞여 있으며 그것을 문학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작가의 치열한 20년간의 고민이 담겨있다. 무질은 사유 소설(사건은 별로 없고 성찰과 사유가 주를 이루는 소설-3, p.602)의 형식으로 인간과 세계를 실험과 추상화 작업으로 서술한다.

 

 

이 소설은 19138,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어느 아름다운 여름날로 시작된다. 1차 세계대전 전 해이다. 여기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카카니엔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 황국인 ’kaiserlich und kὂnigich’의 약자인 k.u.k를 의미한다. 공적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냥 오스트리아로 말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수도이자 황궁이 자리 잡은 빈이 공간적 배경이다. 오랫동안 명성을 누렸던 왕가인 합스부르크가가 거의 몰락 직전에 있는 상태다.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달, 진보는 어느 누구도 꺾을 수 없을 정도로 대세로 자리 잡았다.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패배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밀리고, 점점 독일의 영향이 제국에 스며들고 있었다. 다민족 국가의 한계로 여러 민족의 반발에 직면했고, 결국 이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다.

 

 

스위스 아르가우 주의 합스부르크 성에서 출발한 합스부르크 가문은 전략적인 결혼과 영리한 외교술을 통해 세력을 넓혀갔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획득하여 점차 주변 영토를 통합해 나중에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건설했다. 14세기에 프리드리히 3세와 레오폴트 3세 집권 시기 빈이 중요한 문화 중심지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알브레히트 2세 시대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와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위도 계승하게 되어 중부유럽 지배자로 부상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다. 그의 통치시기에 빈은 화려한 문화예술이 꽃피운 시기였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국정에 매진하는 성실한 군주였으며, 이러한 그의 근면성은 제국 관료제의 모범이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시대의 오스트리아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그의 통치기는 제국의 마지막 황금기였지만, 동시에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시기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개인적 삶은 불행했다. 부인 엘리자베트가 무정부주의자의 암살로 목숨을 잃었고, 외아들 루돌프는 마이어링 사건(유부남인 루돌프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해 일으킨 동반자살 사건)으로 젊은 나이에 죽었다. 후계자로 지목된 조카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사라예보에서 암살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이 이탈리아 통일전쟁과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하면서 제국 내 여러 민족의 반발이 일어났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오랜 협상 끝에 아우스글라이히 협약을 체결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체제를 탄생시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1개의 주요민족이 공존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두 개의 독립된 정치체제로 재편성되어 각자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헝가리의 자율성은 제국 내 다른 소수민족들의 불만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계 주민들이 강한 반발을 했다. 이중제국 체재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산업화로 체코의 민족의식도 급속히 성장하였다.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는 독일계와 체코계 주민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표면적으로는 강대국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민족들 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표출되는 상태였다. 이들 다양한 민족은 각자의 정체성과 자치권을 요구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제국의 균열은 심해져 갔다. 독일,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유럽은 전쟁의 기운이 감돌았다.

 

이러한 시점에서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페르디난트는 제국의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파 인물이었는데, 이는 제국 내 보수파와 헝가리 귀족의 반발에 부딪혔고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보스니아 청년단체 젊은 보스니아의 회원이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사라예보를 방문한 황태자 부부를 저격했고, 이 사건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제국은 세르비아에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세르비아 지원, 독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지원, 프랑스의 러시아 지원이라는 동맹 체제가 연쇄적으로 작동하면서, 순식간에 유럽 전체의 전쟁이 되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제국의 경제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제국의 내부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전쟁 후반기에 각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움직였고, 제국이 전쟁에 패배하면서 완전한 해체되었고, 여러 개의 독립국가들이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루미너리북스, 20251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1913년 전후의 상황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꼭 먼저 알아야 할 내용이다. 이 소설 1권의 핵심적 내용은 1918년 독일이 빌헬름 2세 황제의 치세 30주년을 기념해 큰 행사를 여는 것에 대해, 공교롭게도 같은 해에 있는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즉위 70주년을 맞아 오스트리아에서도 성대하고도 뜻깊게 기념하자는 것이다. ‘삼십 주년에 불과한 독일 즉위식과 비교해서 축복과 비통함의 역사가 함께한 황제의 칠십 주년의 장대한 무개를 부각해야(p.131)’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즉위 칠십 주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위대한 오스트리아의 영광을 되찾고자하는 애국운동준비위원회가 결성되고 거기에 주인공 울리히가 참여하는 것이 이 소설의 큰 축을 이룬다. 애국대운동’, 다른 말로 독일과 관련되어 평행운동이라고도 불리는 이 거대한 사업에 울리히와 함께 여러 인물이 얽힌다.

 

특성 없는 남자에서 특성은 무엇일까? 왜 울리히는 스스로 자신을 특성 없는 남자라고 선언하는가? 얼마 전 외국에서 돌아온, 지금은 수학자인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는 32세이다. 그는 출세 지향적이고 조화로운 공존과 일반적 원칙에 따르는 인간(p.21)’69세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사람이다. 특성 없는 남자는 반골적이며, 남들과 생각이 다르고 남들의 이상을 경멸한다. 몽상가이기도 하고, 허무적이며 허영기도 조금 가지고 있다.

 

울리히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외부에서 주어진 특화된 특성을 거부한다. 보통의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감각이라면 울리히는 가능성감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감각 현실과 똑같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을 생각해내고,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더 중히 여기는 능력이다(p.22) 무척 섬세한 그물망 즉 안개, 몽환, 가정법의 그물망 속에서 살아가고 현실을 기피하는 대신 과제이자 창작영역으로 다루는 의도적 유토피아주의 같은 것이다.

 

[특성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의 실재로 인한 모종의 기쁨을 전제로 하기에,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조차 현실감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를 특성 없는 남자라고 여기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p.25]

 

울리히의 어릴 적 친구인 발터는 특성 없는 남자인 울리히를 아무것도 아닌, 별 것도 아닌, 현대가 만들어 낸 인간 유형이며, 그만의 고유한 내용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린다. 울리히는 모든 것에 뛰어나지만, 그것들 개개의 특성을 지니는 것을 거부한다. 하지만 울리히가 오늘날 모든 현상에 담긴 해체된 본질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발터는 울리히를 질투한다.

 

이 소설을 이끄는 또 하나의 인물은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인한 서른 네 살의 목수 모스부르거이다. 울리히는 겉으로 드러나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모스부르거의 재판을 비판하며 모스부르거의 본질을 들여다보기를 원한다. 이 사건에 존재하는 양면의 모습들을 보고자 한다.

 

특성 없는 남자1부는 특성 없는 남자 울리히와 그의 사상, 시간적, 공간적 소설의 배경이 되는 것을 서술했고, 2부에서는 구체적인 사건이 진행되고 여러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사건보다는 계속되는 작가 무질의 사유가 주된 내용이다. 무질의 사유는 독특하고 깊이 있으며, 모든 문장에 들어있는 비유 또한 뛰어나다. 다만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 맥락과 흐름을 이해하고 따라가기 힘들다. 나무만 보고 숲을 잘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별다른 사건도 없어 리뷰 쓰기가 무척 어렵다. 아직 1000페이지 넘게 남아있는 무질의 문장이 두렵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장을 봐야겠다.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울리히는 씁쓰레하게 생각했다. ‘혹시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용감한 인간이 아닐까? 내면의 자유를 위해 외부 법칙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적 자유의 본질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곧 모든 인간적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 상황에 묶일 필요가 없는지는 알지만, 정작 무엇에 묶이고 싶은지는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를 사로잡은 이 독특하고 작은 감정의 물결이 다시 해체되는 불행한 순간에는 그도 자기 자신에게 모든 사물에서 두 측면을 발견하는 능력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그 능력은 거의 모든 동시대인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자, 울리히 세대의 속성을 형성하거나 그 세대의 운명이기도 한 도덕적 양가감정이다.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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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0-15 03: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이팅 기대합니다. 전 이 책 읽기를 포기했기에.

페넬로페 2025-10-15 07:48   좋아요 0 | URL
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yamoo 2025-10-15 1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을 읽으셨네요...읽다가 지루해서 덮었는데...지루하고 재미없으면 덮게되던데, 율리시스도 그렇고...언젠가 한 번 더 도전해 보고 그때도 못읽겠으면 팔아버려야 겠으요~~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49   좋아요 1 | URL
일단은 ‘그냥 천천히 읽어보자‘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꼭 도전 성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잠자냥 2025-10-15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읽기 어렵군요.
넘 지루할 거 같아서;;; 저도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요. 페넬로페 님은 파이팅입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1:50   좋아요 0 | URL
어렵고 지루합니다.ㅠㅠ
잠자냥님,
저랑 같이 읽으시고
꼭 무질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25-10-15 1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존경합니다! 저는 다음 생에...ㅎㅎ

페넬로페 2025-10-15 11:51   좋아요 2 | URL
네, 굳이 안 읽으셔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ㅎㅎ
이 책 말고도 좋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

서곡 2025-10-15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끌리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ㅋㅋㅋ 모쪼록 완독 성공 기원합니다

페넬로페 2025-10-15 19:42   좋아요 1 | URL
읽기 정말 힘들어요.
그저 완독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꼭 해 내겠습니다.
응원 감사드려요.

coolcat329 2025-10-16 0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페넬로페님! 👍 부럽고 멋지세요~

페넬로페 2025-10-16 09: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꼭 완독해 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5-10-16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어려운 책인 줄 모르고 사다놓기만 했어요. 와 읽을 엄두를 못내겠군요.ㅋㅋ
이렇게 리뷰를 쓰시는 페넬로페 님. 저도 존경스럽습니다. 완독 꼭 부탁드립니다.^^

페넬로페 2025-10-16 15:23   좋아요 1 | URL
어려운데 무질 작가가 글은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책나무님!
저랑 같이 읽읍시다^^

책읽는나무 2025-10-16 23:03   좋아요 1 | URL
저는 1,2권만 사다놓았어요.^^
요즘 sf소설에 빠져 있어서 장르가 다른 무질의 소설 세계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당장은 아녀도 한 번 생각은 해보겠습니다.
어려운 책이라 미리 후덜덜이네요.ㅋㅋㅋ
 
[전자책] 인간의 역사와 문명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의 중부유럽 지배
이진호 / 루미너리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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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무질의 사유 소설인 『특성 없는 남자』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읽은 책. 짧지만 합스부르크가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서술되어 있다. 각 시대의 흐름과 주제에 맞는 핵심적 요소를 간결하게 설명했다. 역사적 사실도 ‘특성‘의 한 부분이기에 유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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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모틸론 풀리 워시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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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커피 특유의 묵직함과 함께 은은하게 감지되는 신맛이 있어 좋다. 다크초콜릿같은 진한 원두 색깔에 살짝 긴장했지만 의외로 부드럽다. 콜롬비아 커피중 베스트다. 가을에 어울리는 따뜻한 커피로도, 얼죽아들의 커피로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커피 한 잔으로도 가을엔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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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10-03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콜롬비아 커피 중 베스트 ㄷㄷㄷ 저 콜롬비아 커피 매력을 몰랐다가 비교적 최근 들어 알게 된 일인입니다 ㅋㅋㅋ 페넬로페님 연휴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10-03 11:39   좋아요 1 | URL
보통 콜롬비아 커피가 그냥 직진하는 진한 맛인데 이 커피엔 여러 맛이 담겨있어 좋았어요.
긴 추석 연휴네요
서곡님
추석 연휴 건강하게 잘 보내시고
한가위 보름달같은 행운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