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이야기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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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부단하고 잘난 척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마음을 다잡고 노력했으나 꼭 마지막에 결정적 실수를 범하고 마는 바질이지만, 그럼에도 큰 그림을 향해 나아가는 바질이기에 안도하게 된다. 내 젊은 날의 어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좋았지만 나의 콜필드(호밀밭의 파수꾼)를 넘어서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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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01-06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새해 복 많이 받고 계시나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
올 한 해도 굳건하게 잘 살아봅시다.
페넬로페 님의 평온한 독서 시간을 응원드리며…

페넬로페 2025-01-06 14:29   좋아요 2 | URL
순삭이란 말이 실감될 정도로 또 한 해가 지나가고 2025년이 되었어요.
올해는 저에게 조금 더 많이 특별한 해라 몸과 마음을 다잡아 더 의미있게 살아 보려고 해요.

저는 많이 좋아졌어요.
책나무님의 마음도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씩 좋아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컴백 기념 페이퍼,
기다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25-01-08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빛소굴 책이군요.

전 미시마 유키오의 책을 읽고
있답니다.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페넬로페 2025-01-08 15:52   좋아요 1 | URL
제가 읽지 않은 책이 넘쳐 나는데 출판사도 그런 것 같습니다.
빛소굴 출판사 책을 처음 접하는데 관심 가는 책이 몇 권 있어 차차 읽어 볼 예정입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책도요^^

서니데이 2025-01-08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어제보다 날씨가 더 많이 추워지고 있어요.
한파주의보인 것을 보니 며칠간 추울 것 같아요.
추운 날씨 건강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5-01-08 20:52   좋아요 1 | URL
잠깐 나갔다 왔는데 바람이 매서워 얼굴이 시리네요.
내일은 더 춥다고 합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래요^^
 














아침 7시에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 전에 엄마가 떠나셨다는 사실을 미리 알아버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그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특별한 일이란 엄마와 관련된 일 뿐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고, 마지막으로 엄마를 보러 가려고 했었지만, 결국 나는 엄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자식이 되었다.

 

머리와 마음이 텅 빈 상태에서 캐리어를 꺼내 주섬주섬 뭔가를 챙기기 시작했다. 지금이 겨울이고 날씨가 많이 추워질지도 모르니 그냥 이것저것 구겨 넣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오감을 통한 고통과 불편을 조금도 느끼기 싫은, 죽은 이보다 산 사람인 나 자신을 오롯이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아침에 택배가 왔다. 큰 스티로폼 박스에는 지인이 보내준 제주산 돼지 삼겹살과 목살이 엄청 많이 들어 있었다. 두껍게 잘려진 고기가 먹음직스럽고 신선해 보였다. 이 좋은 생고기를 냉동고에 넣어 얼리기 너무 아까워 친구 비아에게 전화해 집으로 와 달라고 했다. 고기의 반은 비아에게 나누어주고, 반은 끝까지 냉동고에 넣지 않고 냉장 칸에 넣어 두고 집을 나왔다.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여전한 일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겹고도 반복적인 그것은 조금의 정상참작도 허용하지 않은 채 나에게 부담을 주었다. 그 날 아침에 넣어 둔 고기는 여전히 싱싱했다. 보내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는 핑계로 나는 고기를 구워 남편과 딸아이를 먹였다. 그 다음날엔 언니네 식구를 집으로 오라고 해 또 고기를 구워 먹였다. 집은 고기 냄새로 가득 찼다. 내 불경의 증거가 된 고기냄새가 신들의 저주를 불러 온 것인지 나는 바로 무기력증에 빠져 버렸다. 몸도, 마음도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롤랑 바르트가 19771026일부터 1978621일까지 어머니를 잃은 후 2년간 써내려간, 상실의 슬픔을 표현한 애도일기는 모호할 정도로 순간의 느낌만이 있다. 상황을 잘 모르기에 그의 감정과 느낌에 바로 공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읽어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난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르트의 느낌에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들어 있었다.

 

상실의 슬픔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다. 시리도록 날카롭거나 명료하기보다 뭉뚱그려진 감정으로, 축 쳐진 육체의 무거움으로 더 많이 다가온다. 현존에서 부재로 순식간에 바뀐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애틋함과 허무함이 느껴질 때마다 눈물이 난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뱅제는 스물두 살 때 어머니가 되었고, 스물 세 살 때 해군장교인 남편이 전쟁에서 전사함으로써 미망인이 되었다. 그 후 바르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바르트는 엄마를 보내고 얼마 되지 않은 1980년에 사망했다.

 

나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내 어머니의 육체를 알고 있습니다.‘라는 바르트의 글처럼 우리 형제들도 서서히 소진되어가는 엄마의 육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가벼운 알츠하이머로 시작해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몸이 굳어져 간 엄마는 마지막까지 자연적으로 당신의 생명을 꺼뜨렸다. 병원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온전히 케어 받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엄마와 남은 우리 형제들이 유일하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엄마의 영정사진은 정말 고왔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 본래 있던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보정한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오래 전, 언니와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길에서 영정사진 찍으라고 어떤 사진사가 호객행위를 했다고 한다. 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엄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 언니가 출근하고 나서 엄마는 혼자 길거리의 사진사를 찾아가 사진을 찍었고, 그렇게 영정사진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엄마는 당신의 죽음을 일찍부터 준비했다. 엄마 친정 동네의 솜씨 좋은 분에게 아버지와 당신의 수의도 미리 맞춰두었다. 수의는 오랫동안 엄마를 기다려왔고, 몸의 모든 근육이 빠져나가 미라처럼(이런 표현을 딸아이는 끔찍해한다. 어쩜 할머니에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느냐며.)뼈만 남은 엄마를 부드럽고도 포근하게 감싸 안고 떠났다. 불꽃으로 곧 사라질 찰나의 순간뿐 이었지만.

 

 

고대 뤼디아 왕국의 왕인 크로이소스는 아시아의 헬라스인과 주변의 나라를 복속시켜 자신의 왕국을 강하게 만들었다. 당시에 헬라스의 모든 학자가 번영의 절정에 있던 뤼디아의 수도 사르데이스를 방문했는데 아테나이의 솔론도 그곳을 방문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으며 솔론에게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물었다. 솔론은 크로이소스의 기대와는 달리 끝까지 크로이소스라고 대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크로이소스는 화를 내었다.

 

[“아테나이에서 온 손님이여, 나를 그런 평범한 자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다니 그대는 내 행복은 완전히 무시하는 거요?” 솔론이 대답했다.

크로이소스 전하, 전하께서는 제게 인간사에 관해 물으시지만, 저는 신께서 매우 시기심이 많고 변덕스러우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나이다. 인간은 오래 살다 보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보고, 겪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겪어야 하나이다.크로이소스 전하,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보아하니, 전하께서는 큰 부자에다 수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시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사옵니다. 큰 부자라도 운이 좋아 제가 가진 부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즐기지 못한다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많은 거부(巨富)가 불운했는가 하면,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운이 좋은 사람도 많사옵니다.누군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말고,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제가 말한 복을 가장 많이 타고나고 그것을 끝까지 누리다가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야말로 제가 보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 같나이다.

p. 43~44,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옮김, ]

 

죽음을 통해서만 행복을 알 수 있다는 솔론의 지혜의 말이 공감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하게 느껴진다. 결국 인간의 삶은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엄마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당신의 삶은 죽음으로 행복을 인정받았는가? 그러기를 바라며, 엄마에게 받은 지극한 사랑으로 내 삶은 여기까지 운이 좋은 채로 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엄마가 항상 나에게 말씀해 주셨던 긍정의 말들이 떠오른다.

 

 

[이 당혹스러운 부재의 추상성. 그런데도 그 추상성은 뜨겁게 달아오르고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비로소 추상이 무엇인지를 이해한다: 추상은 부재이면서 고통이다. 그러니까 부재의 고통. 그런데 어쩌면 이건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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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3 2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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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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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0: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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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4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글을 안 쓰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했는데... 무슨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습니다 어머님 명복을 빕니다 지금은 편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아픈 마음은 낫지 않겠네요 살수록 아픔은 늘어가는... 페넬로페 님 건강 잘 챙기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런 말이라니...)


희선

2025-01-04 08: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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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1-04 0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니를 떠나보내셨군요. 마음 속에 그분을 간직하고 있는한 돌아가신 분은 다른 형태로 아직 존재하고 계시다고, 저는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로 했답니다. 제 방식의 애도인가봐요.
천천히 마음 잘 추스리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긍정의 가르침을 주셨던 어머님,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예요.

2025-01-04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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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09: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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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1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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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1-04 1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큰일이 있으셨군요 ㅜㅜ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2025-01-04 1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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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04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요. 이미 충분히 예상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죽음 앞에선 다 무너지더군요. 하지만 또 시간이 다시 세워주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가잖아요. 모쪼록 남은 가족분들과 함께 서로 위로하며 슬픈 마음 잘 다독이시기 바랍니다. 힘 내시고요.
삼가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5-01-04 1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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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1-04 14:50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잘 하셨습니다. 근데 생각해보니 새해 인사를 못했네요. ㅎ 고맙습니다. 페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5-01-04 15: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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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19: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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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2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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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5 08: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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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넨세보 불가 내추럴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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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넨세보는 산미와 묵직한 바디감이 잘 어울려 조화롭다. 진하게 남는 커피 향과 맛이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하다. 나뭇가지에 아직 남아 있는 단풍 위로 엄청난 눈이 내려 신박한 겨울을 맞이했다. 뜨겁게 마셔도 좋은 이 커피와 함께 겨울에게 인사한다. 약간 머뭇거리며, 겨울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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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12-03 13: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은 커피의 계절이죠. 오늘 커피 두 잔을 마셔(정확히도 한 잔 반) 오늘은 그만 마셔야 하는 현실이 아쉽네요. 커피가 보약이면 좋겠습니다.

페넬로페 2024-12-03 15:36   좋아요 2 | URL
식사하고 나서나 디저트를 먹을 때 커피를 꼭 마시는 편인데~~
너무 늦게 마시면 밤에 잠이 안 와 저도 하루 두 잔 정도만 마시려고 해요.

2024-12-23 1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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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18: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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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3 1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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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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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4 1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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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5-01-01 0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페넬로페 2025-01-01 08:31   좋아요 1 | URL
2025년이 시작되었어요.
서곡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서곡 2025-01-01 0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도 늘 건강하시길요 오늘 새해첫날 잘 보내십시오 !!!

2025-01-01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1 2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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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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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한 번씩 딸아이와 함께 가고, 자주 혼자 간다. 사는 곳이 흩어져있는, 1년에 서너 번씩 만나는 대학 동기들과는 중간 지점인 종로에서 만나 그들과도 가끔 궁에 들러 산책을 한다. 덕수궁 앞에서는 와플을 사 먹고, 경복궁에 갈 땐 인사동에 들리고, 창경궁이나 덕수궁에 갈 땐 대학로에서 점심을 먹는다.

 

나에게 궁은 외롭고도 씁쓰레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조선의 역사가 어디 한 번이라도 찬란할 때가 있었는가 말이다. 궁에 가면 그저 쇠락하거나 비굴했던, 제대로 된 개혁도 하지 못한 힘없고 우유부단한 왕조만 생각난다. 특히 덕수궁이 그렇다. 고종과 민비가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고희를 즐겨 마셨으면 뭐하겠는가?

 

그래서 궁에 가면 되도록 역사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냥 자연을 본다. 궁은 천천히 걸으며 산책하기 좋다. 인공적으로 수더분하고 아기자기하게 잘 가꾸어져 있어 그곳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낭만적인 감상에 젖기 좋다. 창경궁은 가장 풍부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봄이나 여름은 푸름으로, 가을은 온갖 색깔로 물드는 낙엽으로 운치가 있고 종묘와 같이 있어 그것도 매력적이다.

 

창경궁은 한때 창경원이었다. 일본이 식민지의 역사를 말살하고 왜곡시키기 위해 궁을 식물원과 동물원으로 만들었다는 가장 많이 알려진 대로 나는 알고 있다. 역사의식이 있든 없든, 창경원은 인기가 많은 곳이었다. 봄에 벚꽃이 필 때 수많은 상춘객이 몰려들었다. 케이블카까지 있었다.

 

내가 창경원에 처음으로 간 건 초등학생 때였다. 서울 누하동(지금의 서촌)에 살던 이종사촌언니와 단둘이 버스를 타고 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납득이 잘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때는 초등학생이라서 지방 소도시에 살던 내가 분명 서울에 혼자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나 언니와 함께 갔을 텐데 창경원에는 대학생이었던 사촌언니가 왜 나만 데리고 갔는지 잘 모르겠다. 창경원 안에서 뭘 구경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언니와 버스를 타고 창경원 앞에서 내렸다는 사실만 또렷하다.

 

강화의 석모도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 가 본적이 있다. 차를 배에 싣고 갔다. 보문사에도 가고 바닷가도 갔다. 이 소설에서 석모도 사람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를 읽을 수 있었다. 강화도 쪽만의 사투리인지, 인천 사람들도 이런 말을 사용하는지 잘 모르겠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으며 자꾸 나와 연관된 생각만 했다. 좋은 소설은 소설의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내가 있고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공감하고 공유할게 있으면 더 좋다. 소설과 어우러져 어느 곳에서 만나는 순간에 희열을 느낀다. 그것이 단지 한 순간, 한 지점 일지라도 나에게 그 소설은 좋은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러지 못했다. 끝가지 기대에 못 미쳤다. 마지막에 뭔가 해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지만 실망한 상태에서 책을 덮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의 소설이라서 나의 노스탤지어를 끌어오고 인물에 대한 연민도 가져보고 그들도 이해했지만 끝내 버무려지지 않았다. 내가 끌어온 것에 내 것만 남았다.

 

뷔페에 가면 오늘은 정말 많이 먹으리라 결심한다. 작정하고 음식에 달려든다. 이 코스 저 코스로 다니며 한 가지씩이라도 다 맛보자며 접시에 조금씩 담는다. 배가 불러와도 일어나 새로운 접시를 가지고 다른 음식을 담아 온다. 배가 터져도 맛있는 디저트를 포기할 수 없다. 커피를 계속 들이키며 여러 종류의 디저트를 먹고, 마지막에 꼭 아이스크림도 먹는다. 그렇게 많이 먹고도 뷔페를 나올 때, 내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맛있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내가 낸 돈 만큼, 뷔페의 장점인 가성비를 달성했다는 느낌만 남아 있다. 내 몸 속은 부조화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딱 이 소설이 그랬다. 많은 맛있는 것이 이 소설에 들어 있었다. 창경궁의 대온실 수리,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 담당자라는 좋은 소재가 있었다. 정독 도서관과 원서동, 낙원 하숙이라는 과거(나에겐 진한 노스탤지어다)와 거기에 얽힌 영두, 안문자 할머니, 리사, 산아 등 여러 인물이 있었다. 창경원 대온실을 설계한 일본인의 회고, 문화재를 관리하는 공무원의 행태, 일제 강점기, 육이오 전쟁, 대온실 지하의 미스터리 등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 이것들이 하나로 버무려지지 않고 끝까지 각자 겉돌아 아쉬웠다. 장편 소설이지만 여러 단편 소설을 읽는 듯했다.

 

오랜만에 수리라는 말을 들었다. ‘대온실 수리라는 눈에 보이는 변화 이면에 깔리고 쌓인 여러 모습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각자의 수리보고서에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역사와 환경, 사람, 슬픔, 인내, 아픔, 상실, 수난이 들어 있다. 수리되어 더 웅장하고 멋지게 변한 창경궁 대온실 처럼 나와 우리들의 삶의 수리도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많이 믿지는 않지만. 그것이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다.

 

[서울에서 내린 나는 주차해둔 차를 찾아 원서동으로 갔다. 낙원하숙도 대온실도 들어갈 수 없는 시각이지만 오늘은 그 공간 곁에 있고 싶었다. 창경궁으로 걷는 내 옆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고 발을 내밀면 잠시 아무것도 없는 공중인 것도 같았지만 허방을 짚는 듯한 실패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치 팔짱을 끼듯 할머니의 스케이트를 옆구리에 끼고 고궁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p.375]



-작년 6월에 갔을 때의 창경궁 대온실



이 소설을 다 읽고 창경궁에 다녀오자고 했다. 깡통만두 식당도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11월에 폭설이 내렸다. 아직 나무에 빨간 단풍이 매달려 있는데 그 위를 하얀 눈이 급습해버렸다. 아무래도 내년 봄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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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27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창경궁에 자주 소풍가고, 중학교때 사생대회도 여기서 자주해서, 커서는 잘 안가게 되요. 너무 황량했던 기억이 있어서...!
지금은 잘 정비했겠지만,
전 창덕궁이 더 좋아요. 후원이 더 좋구요.^^
대온실이 여기를 말하는 건가봐요.

페넬로페 2024-11-27 23:47   좋아요 2 | URL
그쪽으로 소풍 많이 갔을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요.
소설에서 말하는 창경궁 대온실이예요.
직접 보면 그렇게 규모가 크지는 않아요.
이 소설 읽고 런던의 큐가든에 가 보고 싶어졌어요^^

망고 2024-11-27 2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아쉬운 점이 많았어요 페넬로페님 뷔페에 비유하신 점 너무 잘 이해가 됩니다ㅠㅠ
눈 덮인 사진 참 예뻐요😍눈은 가만 보고 있기에는 예쁜데 말이죠

페넬로페 2024-11-27 23:51   좋아요 2 | URL
많이 아쉬웠어요.
장편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연결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별점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그렇다고 3별은 또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3.5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

눈은 보기에는 예쁜데 밖에 나간 식구를 생각하면 그리 반가운 건 아니예요.
다들 눈길에 무탈했으면 좋겠어요^^

전야제 2024-11-28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뷔페에 관한 부분 정말 재밌게 잘 읽었어요. 내 몸 속이 부조화로 가득 차 있다니. 통찰이 너무 재밌습니다 완전 공감해요ㅎㅎ 저도 다음에 서울 여행갈 때 창덕궁이랑 창경궁 꼭 가봐야겠어요! 예전에 경복궁은 가봤는데 나머지는 못 가봤네요ㅠㅠ 겨울 지나서 봄 되면 어머니와 함께 궁궐 여행부터 가고 싶습니다ㅎㅎ 저도 눈이 그리 반갑지는 않네요. 폭설이라는데, 페넬로페님도 눈길 조심하세요!

페넬로페 2024-11-28 10:09   좋아요 2 | URL
좋은 소설에 너무 말도 안 되는 비유를 한 건 아닌지 작가님께 조금 미안했어요.
부조화를 말하려고 했거든요.
저한테 이 소설의 느낌이 좀 그랬어요.
전야제님, 봄이나 가을에 어머니와 궁에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창덕궁, 창경궁도 좋은데
저는 종묘도 좋아하는 장소예요.
춘천에도 눈이 왔어요?
날씨가 춥지 않아 바로 눈이 녹아 완전 길거리가 질척 거려 걷기가 힘드네요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4-11-28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니 제 바로 앞에 꽂혀 차례를 기다리는 책인데 한때 좋아하는 작가라 (아마도 아직도 이걸 읽고선 또 바뀔지도) 걱정되어서 아직도 못 펼치고 있습니다. 마침 며칠 전 뷔페가서 한 접시밖에 못 먹고 온 소갈머리 좁아진 인간이라 ㅠㅠ ㅋㅋㅋ

페넬로페 2024-11-28 10:13   좋아요 3 | URL
저도 김금희 작가 좋아해 더 기대가 컸는지도 모르겠어요.
열반인님 느낌은 다를수도 있고 다른 친구분들은 이 책을 선호했으니 한 번 읽어 보시길요.
˝어, 괜찮은데, 왜 그리 생각했지?˝라는 생각을 하며 읽을수도 있거든요.
뷔페가는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가면 그래도 여러 접시 먹고 오려고 해요 ㅎㅎ

달자 2024-11-28 17: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추천마법사가 오랫동안 추천해 주었지만 사서 읽지는 않았던...책인데그 이유는 뭔가 책 표지에서부터 이전의...김금희작가스러운 딱 그 이상 이하도 아닌 비슷한 책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였어요 (논리 X) 제목이 살짝 SF라든지 판타지가 살짝 가미된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보고서를 찾으러 과거로 떠난다든가... 암튼 그런 이유에서 읽지는 않았는데 페넬로페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창경궁에 대온실이 있는 지도 몰랐던 저...

페넬로페 2024-11-28 17:50   좋아요 2 | URL
책 뒤의 작가의 말에 저자가 20대때 창경궁과 창덕궁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참고 문헌도 엄청나게 많아요.
너무 많아 과유불급이 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이번에 알았는데 문화재를 수리하려면 그 과정에 대한 보고서를 써야하는가 봐요.
이 소설은 그것을 쓰는 과정인데
여기에 많은 것이 가미되어 있어요.
보고서에 쓸 자료를 찾는 과정에 과거로도 가고 자신의 추억으로도 가더라고요^^

막시무스 2024-11-28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흐려져가는 단풍잎의 붉은색을 흰눈이 매워주니 분위기가 묘하네요!ㅎ 그래도 만두국은 겨울에 참맛이니 창경궁은 봄에 가시고 깡통만두는 겨울에 방문하시는게 어떠실까요?ㅎ

페넬로페 2024-11-28 22:11   좋아요 1 | URL
네, 안 그래도 뜨끈한게 넘 먹고 싶어요. 기회되면 가서 먹고 오겠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네요.
막시무스님,
감기 조심하시길 바래요^^

독서괭 2024-12-05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구.. 작가가 욕심이 앞섰나봐요. 좀더 잘 가다듬어서 냈으면 좋았을 것을.
창경궁 사진이 멋지네요. 저는 가봤는지 안 가봤는지 기억도 안 나요 ㅜㅜ
저는 창경궁, 하면 <토지>에서 창경원 산책 장면이 떠오릅니다. 인실이랑 오가타, 선혜랑 권오성이 만났던 것 같아요(이름이 기억이 안 나서 찾아봤네요 ㅎㅎ).

페넬로페 2024-12-05 18:36   좋아요 1 | URL
작가가 조금 더 탈고의 시간을 가졌다면 더 좋지 않았나 생각 했어요.
창경궁은 고궁보다 유원지의 이미지가 많았는데,
15년쯤 전, 가을에 갔을 때 너무 좋아 요즘은 자주 가요.

토지도 읽어야 하는데ㅠㅠ
그러면서 매번 똑같은 구호를 오늘도 외쳐 보아요.
언젠가는 읽을거야!
 

















독서동아리(클래식)에서 2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한 작가의 전작읽기가 약간 지루하지만, 발자크의 소설이 워낙 방대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어둠 속의 사건’, ‘골짜기의 백합’, ’사기꾼‘, ‘미지의 걸작’, 잃어버린 환상‘, ’루이 랑베르‘, ’나귀 가죽‘, ’사라진샤베르 대령‘ ’결혼 계약을 읽었다.

 

알려진 대로 발자크의 실제 삶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보다 더 소설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유모의 손에 맡겨지고 오랜 기간 기숙학교에서 생활한 발자크는 부모의 정을 전혀 받지 못했다. 법과 대학에 다니면서 소송 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힌 발자크는 자신의 길이 글을 쓰는 것임을 깨닫고 칩거하며 희곡과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첫 작품인 희곡 크롬웰이 실패하자 부모는 다시 법조계 쪽으로 발자크가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가 그것을 거부하자 부모는 발자크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그는 부모에게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돈이 충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자크는 필명으로 그 당시 유행하던 여러 소재의 대중소설을 엄청나게 써 댔다. 소설 공장처럼 찍어낸 그의 소설은 인기가 있었고, 발자크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그 후 출판업, 인쇄업, 활자 주조업 등 사업에 손을 댔고, 손대는 족족 실패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는 6만 프랑의 빚이 있었고, 발자크는 신이 그에게 주신 능력인 글을 써야만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만약 빚이 없었다면 발자크는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본명으로 출간한 첫 소설인 올빼미 당원결혼 생리학이 성공했고 죽을 때까지 빚과 함께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 인생 전반에는 격변한 프랑스의 역사가 있다.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그대로 담아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90여 편의 소설이 들어 있고 등장인물이 25백 명 정도이다. 그 중 500명은 <인물재등장기법>에 의해 여러 다른 소설에 계속 나온다. 이 인물을 발견하는 것도 발자크 소설을 읽는 재미중 하나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낭만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작가들은 아름다움, 숭고함, 열정을 노래했고, 이상적 사랑을 꿈꾸었다. 독자들은 빅토르 위고의 세계에서 사회악을 고발하고 맞서 싸우는 숭고한 영웅 장발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발자크의 세계에는 숭고함도 세상을 구원할 영웅도 없었다. 인간극은 모순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그가 그린 세상은 명료하지 않다. 정답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종종 혼란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발자크 문학의 정수다. 인간의 희망과 실제가 다르고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그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발자크의 위대함은 인간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에 있다. 그것이 바로 발자크의 현대성이기도 하다. 대놓고 돈을 숭배할 용기도 대놓고 경멸할 용기도 없는 현대인,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감추고 사는 이들은 발자크가 묘사한 모순적인 인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서문에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 양가감정에 빠져있다. 그가 그려낸 세계와 입체적 인물, 문장의 표현이 대단해 소설 읽는 재미가 있지만 읽고 나서 여운이 별로 남지 않는 단점이 있다. 너무 사실적인 내용과 거의 모든 것이 설명 되어진 글이 소설적 상상력을 제한시킨다. 그것이 소설로서의 더 깊은 의미를 얻는데 방해가 된다. 송기정 저자의 말대로 발자크는 현실의 자각과 폭로를 그대로 해주고 있고 독자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로서의 역할이 조금 미미하다는 것에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다.

 

발자크는 그 시대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적나라하게 시대를 재연해주는 작가의 풍성한 글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다보면 200년도 지난 지금과 19세기 프랑스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물론 겉모양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법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고, 아니 앞서 나가 다가올 시대를 예견하며 그것을 수많은 작품에 남겼다는 사실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또한 그러한 면에서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

 

 

송기정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둘 다 발자크에 관한 책이지만 성격은 다르다. 송기정의 책이 발자크 작품과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면, 츠바이크는 발자크라는 인물 자체에 더 집중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발자크 작품의 주요 무대인 파리에서 시작해 발자크의 역사관, 정치관, 과학, , , 철학 연구를 통해 발자크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파헤친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가 알다시피,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발명품이다라고 말했듯이 19세기 프랑스에 대해 모르고는 발자크를 읽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발자크 읽기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자 설명서이다.

 

인물 평전에 대해서라면, 츠바이크는 그 자체로 전설이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생애를 따라가며 발자크라는 인물을 흥미롭고 위대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의 글을 부각시킨다. 어느 순간 발자크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 속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츠바이크가 그려낸 발자크에 사실이 아닌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으로 발자크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드러낸다.

 

발자크 소설을 읽기 위해 이 두 책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내가 참여하는 <클래식 독서동아리>가 도서관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다. 이때까지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올해 발자크를 읽고 있어 별 고민 없이 발자크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송기정 선생을 모시고 발자크에 대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선생은 발자크의 여러 소설에 담긴 19세기 프랑스의 전반적인 배경에 대해, 특히 은행과 신용거래, 대혁명 이후의 돈의 흐름, 어음 사기와 채무의 사례, 돈과 결혼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번역작인 결혼 계약를 통해 그 당시 여성의 지참금 제도와 여성에게 불리한 여러 관습과 법에 대해서도 강의했다.

 

발자크 문학의 정수인 인간극은 모순 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가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인간극의 인물들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국한되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발자크의 현대성이다

 

이렇게 정리하며 선생은 강의를 끝맺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송기정 선생의 번역작 두 권에 사인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2017년 여름, 다른 도서관에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번역자인 안인희 선생의 강의를 6주간 들은 적이 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내용으로 훌륭한 강의를 해주어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저기에 페넬로페가 앉아 있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송기정 선생과 독일어를 전공한 안인희 선생의 강의는 전문가답게 막힘이 없었고 열정적이어서 듣는 사람을 한 단계 더 지혜로운 인간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번역이란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 많은 배경 지식과 소양이 있어야만 잘 된 번역의 책을 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두 선생의 번역에 신뢰가 간다.

 

앞으로 계속 좋은 번역 해 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발자크와 츠바이크 책에 대한 번역을 많이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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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5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츠바이크가 썼군요. 오래 전에 동생 책장에 꽂혀있던 책인데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상상만 했을뿐 읽지는 못했는데… 오래전부터 문학 강좌를 들어오셨군요. 번역자의 강의를 직접 들으셨다니, 알찬 강의였겠어요. 번역자는 아니시지만 전 로쟈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지요.

페넬로페 2024-11-25 09:31   좋아요 1 | URL
제 책장에도 광기와 우연의 역사 구판이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고 있어요.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지네요.
번역자 두 분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 저한테 좋은 기회였어요.
로쟈님의 강의도 좋았겠습니다^^

청아 2024-11-2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페님 혹시 검정색 셔츠?ㅎㅎㅎ 발자크를 비롯해 의외로 생전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작가들을 접할때면 내가 뭐라고 글 쓰기를 힘들다 했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저는 페페님 독서모임 당연히 지원금 쭉 받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아무튼 기쁜 일이고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4-11-25 10:20   좋아요 1 | URL
놉, 반대로 흰색이예요 ㅎㅎ
그동안 지원금 받을 기회가 많았지만 회원들 모두 조용히 책만 읽기를 원해서 그저 책만 읽어 왔어요.
이번에는 리더이신 그레이스님과 다른 신입회원분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셔서 저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편안히 강의 잘 들었어요.

네, 정말요.
발자크가 글을 쓰기 위해 5만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도복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인내심과 노력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청아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4-11-25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흰색옷을 입으신 분이 몇분 계셔서 어느 분이신지..? ㅎ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그레이스님이 리더로 섬기시고. 오래 전부터 그레이스님하고 페페님하고 어딘가 잘 어울리시는 거 같은데 이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ㅋ

페넬로페 2024-11-25 11:09   좋아요 1 | URL
앞쪽 입니다 ㅎㅎ
지금보니 사람의 뒷모습도 변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 찍은 사진의 뒷모습과 2017년의 뒷모습이 다르네요.
훨씬 건강하고 젊게 보여요.

그레이스님과는 같은 책을 오래 읽어오고 개인적으로도 자주 시간을 가져 맘이 통해요^^

coolcat329 2024-11-26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페넬로페님 부럽습니다.
저도 이런 독서모임 하고 싶네요. 정말 멋진 독서 동아리에요. 페넬로페님의 진지한 독서자세 볼때마다 배우고 갑니다.
저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제가 발자크를 좋아하게 만든 1등 공신입니다. 저도 츠바이크 책 개정판으로 새로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 이런 책들요.

페넬로페 2024-11-26 13:01   좋아요 1 | URL
쿨캣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츠바이크 평전이 정말 발자크를 읽고 싶게 만든 책이 확실합니다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도 찜 해 놓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12-26 09:06   좋아요 1 | URL
쿨캣님 늦었지만 저도 환영입니다.^^

그레이스 2024-12-26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제가 왜 이제 보죠?;;;;;
전 페넬로페님 찾았습니다. ㅋ

페넬로페 2024-12-31 15:22   좋아요 0 | URL
그때는 뒷모습도 좀 젊어 보인다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