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2년 정도 대학로 부근에서 하숙을 한 적이 있다. 하숙생 멤버들의 학교는 다양했고, 그곳 가까이에 서울대학병원이 있어 서울대 본과 의대생도 몇 명 있었다. 그때 의대생과 의대생이 아닌 학생들의 공부하는 모습은 차이가 많았다. 내가 속한 비의대생 그룹은 사실 평소에 많이 놀고 시험기간에만 열심히 공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의대생들은 시종일관, 하루 종일 열심히 공부했다. 오죽하면 의대생 한 명과 같은 방을 사용하는 학생이 언제나 공부하고 있는 룸메이트와 있는 것이 답답하다 못해 하루에 10분만이라도 대화를 하자고 부탁할 정도였다. 가까이에서 의대생의 공부를 지켜본 경험이 있는 내가 확실하게 인정하는 것은, 그들이 공부만큼은 열심히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씩 병원에서 친절하지 못한 의사선생님을 만났을 때, ‘그래도 당신은 공부는 열심히 했지’, 라는 생각은 해준다.

 

나쓰메 소세키 작가의 소설, 그 후를 읽다가 그만 주인공 다이스케때문에 독서 슬럼프에 빠져 버렸다. 이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그만 독서의 맥이 끊어진 느낌이다. 내가 책을 읽는 목적과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고민까지 겹쳐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런 상태를 벗어나보고자 선택한 책이 의대생 공부법이다. 공부를 하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꼭 학생들에게만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정체되어 있는 상태나 지금의 환경을 개선시키기 위해서도 공부의 방법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대생들의 공부 경험과 노하우가 소개되어 있는 이 책은 공부에 대한 다른 책과 별 차이가 없다. 계획, 집중, 몰입, 효율, 암기, 자투리 시간 이용, 스터디 플래너의 중요성, 멘탈 관리등이 나와 있지만 이 단어들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공부란 정도가 있는 것이고 그 길을 가면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좋은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남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생각하지 말라. 다들 시작 지점과 목표까지 가는 길 위에서 어디쯤에 있는지가 다르고 방해물이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목표로 하는 성적까지 가는 최단거리는 저마다 다르다. 공부를 시작하거나 공부는 하고 있지만 갈피를 잡기 힘들다면, 무엇이 내 성적을 방해하는 장애물인지, 어떤 녀석을 때려잡아야 공부의 경험치를 제대로 얻을지를 먼저 생각하라. -p54]



 공부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인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적절한 시간을 들이는 것은 필수적이다. 나를 돌아보며 평가를 하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만 한다. 슬럼프에 빠져 있는 나와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학생들이 공부가 잘 되지 않을 때 이런 종류의 책들은 순간 자신을 각성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다. 시간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바쁘게 느껴지는 일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낭비되는 시간이 분명 있다. 다만 그 시간을 채집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다.....우리의 몸은 습관대로 움직인다. 일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려면 관성을 극복하기 위해 평소보다 더 적극적인 추진력과 의지력이 필요하다.

-‘나의 하루는 430분에 시작된다', 김유진,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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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0-09 19: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떤 책 읽다가 옆으로 빠져 다른 데로 몇군데 들렀다가 돌아가는 경우 있어요. 이 인용문은 진리네요.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시간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암요 그럼요 ^^

페넬로페 2021-10-09 20:05   좋아요 4 | URL
독서를 하다보면 누구나 다 겪는 경험인 것 같아요^^슬럼프가 오는 이유는 아마 시간 관리에 실패해서 그럴수도 있을것 같더라고요~~

수이 2021-10-09 20: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시험을 노상 봐서 공부를 내내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친구가 이야기하더라구요.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

페넬로페 2021-10-09 20:06   좋아요 4 | URL
정말 지겹게 공부하더라고요 ㅎㅎ
이 책은 따님에게도 도움될 것 같아요.^^

2021-10-09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9 2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1-10-09 20: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몇달째 갖고만 있던 책인데 반갑네요ㅎㅎ 당연한 듯 하면서도 이런 책 읽으며 새삼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어 좋은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1-10-09 21:18   좋아요 4 | URL
미미님께서는 이 책을 갖고 계시군요.
말씀대로 이런 종류의 책의 내용은 비슷한데 막상 실천하려면 또 잘 안되더라고요. 시간의 배분이 중요한 것 같아요^^

새파랑 2021-10-09 21: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이스케˝가 잘못했네요~!!
공부와 독서도 왠지 공통점이 있는것 같아요 🤔 노트에도 적혀있듯이 규칙적인 휴식이 정답일수도~!!
페넬로페님과 슬럼프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것 같아요 😊

페넬로페 2021-10-09 21:20   좋아요 4 | URL
아, 그 ‘다이스케‘ 때문에 ㅎㅎ
맞아요. 독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꾸준히 지켜나가야 잘 될 것 같아요.
이제 슬럼프에서 탈출해야겠어요^^

mini74 2021-10-09 2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슬럼프가 오면 단순노동을 합니다 ㅎㅎ 마늘도 까고 구슬 꿰서 마스크 스트랩도 만들고 김치도 담고 대추청도 만들고. ㅎㅎ 우리집 식구들은 제가 슬럼프 오는 거 좋아합니다 *^^* 페넬로페님 이 글 쓰시고 바로 탈출하신거 같은데요 *^^*

페넬로페 2021-10-09 22:05   좋아요 4 | URL
단순노동의 질도 미니님은 저보다 휠씬 더 우아하시고 품격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몸을 움직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머리가 산뜻해지죠~~

서니데이 2021-10-09 23: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다이어리 정리된 사진 괜찮네요. 나중에 이 책 한 번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공부는 아니지만, 시간 정리에도 도움 많이 될 것 같거든요.
스터디 플래너 종류도 검색해보고요.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밤 되세요.^^

페넬로페 2021-10-10 00:06   좋아요 4 | URL
저 스터디 플래너를 보니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나를 알수 있을것 같았어요^^
시간이 알게 모르게 새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플래너를 한 번 써보고 싶더라고요^^
서니데이님, 이 밤도 행복하고 편안하시길 바래요^^
잘 자요♡♡♡

바람돌이 2021-10-10 03: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군요. 이런 공부법 책까지.... ㅎㅎ
저는 지금 한강 작가님의 새책 작별하지 않는다때문에 좀 슬럼프요. 심리적 후폭풍이 거세요. ㅠ.ㅠ

페넬로페 2021-10-10 08:43   좋아요 2 | URL
공부법책은 딸아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많이 읽었는데 이렇게 저한테 필요할때도 있을줄 몰랐어요~~
한강 작가님 신작 궁금한데요.
바람돌이님, 후기 부탁해요
슬럼프의 원인을 알고 싶어요^^

페크pek0501 2021-10-10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 시간을 버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 일찍 자려고 노력 중이에요. ^*^

페넬로페 2021-10-10 16:47   좋아요 1 | URL
네, 아침을 일찍 시작하면 하루를 상쾌하고도 더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것 같아요^^
저도 조금씩 일찍 일어나도록 노력해 보려해요**

서니데이 2021-10-10 2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이 사진을 보고, 앞으로 다이어리를 조금 더 잘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시 보니까, 생각납니다.
페넬로페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10-10 21:53   좋아요 2 | URL
하하, 그러셨군요^^
저도 이 글 쓰고 그 다음날인 오늘 날씨 탓인지 축 늘어져 있어요. 남은 시간이라도 잘 보내야겠어요^^
서니데이님도 좋은 저녁 되세요**

행복한책읽기 2021-10-12 0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야. 독서의 맥이 끊겼다고 의대생 공부법 펼치는 독서가는 첨 봐요. 페넬로페님 문제해결력 진짜 참신하세요. 한 수 배웠어요. 완전 다른 접근법. ㅋ 근데 그후가 무슨 내용이길래 독서슬럼프까지 부를까요??

페넬로페 2021-10-12 08:45   좋아요 0 | URL
공부법 책이 읽고나면 곧장 잊어버려 남는게 잘 없지만 그래도 한번씩은 저를 각성시켜주고 좀 더 열심히 살 방법을 알려주어 좋더라고요~~
‘그 후‘는 좋은책인데 생각할거리가 많아 발목이 잡힌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하늘이 펼쳐놓은 그물망 속에서 산다. 달리 말하면 시대적 제약이다. 역사상 위업을 이룬 인물들은 이 그물망의 한 부분을 뚫고 나간 사람들이다. 이들의 영웅적 활약에만 흥미 본위로 집중하다 보면 영웅사관에 빠지거나 궁중사극의 재판이 될 것이고, 그물망 분석에만 치중하다 보면 역사에서 인간의 주체성은희미해질 것이다. 이 책은 이 양자 간의 긴장관계를 항상 염두에 둘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 먼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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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 읽어보았는데, 괜찮네요. 강의실에서 수업으로 들었다면 외울 것 많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교양수업은 다양하게 듣는게 좋은 것 같아요. 학교의 강의를 책으로 접할 수 있는 시리즈도 좋은 것 같습니다.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페넬로페 2021-10-09 00:22   좋아요 1 | URL
네, 쉽게 이해 잘되게 이 책이 쓰여져 있어 하루에 조금씩 읽고 있어요. 교양수업처럼 책도 다양하게 읽고 싶은데 잘 안되는것 같아요^^
서니데이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되세요^^

레삭매냐 2021-10-09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또 메이지 유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이 책
도 읽어보려고 생각하고 있
습니다. 일단 동영상부터 한
번 본 다음에...

책 소개를 보니 유신삼걸로
알려진 캐릭터들이 주인공인
가 보네요.

페넬로페 2021-10-09 19:4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쉽게 잘 읽혀요.
메이지 유신에 영향을 준 4명이 소개되어 있어요^^
 

이 가난하고도 서로를 지극히 사랑하는 소스케와 오요네!
가을에 읽기엔 너무 쓸쓸하고 마음이 울적해진다.
그들에게 어떤 문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다.
























구두만이 아니군그래. 집 안까지 젖고 있네‘ 하며 소스케는 쓴웃음을 지었다. 오요네는 그날 밤 남편을 위해 이동식 고타쓰에 불을 넣고 모직 양말과 줄무늬 모직 바지를 말렸다.
이튿날도 마찬가지로 비가 내렸다. 부부도 다시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다음 날도 개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소스케는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언제까지 내리는 거야? 구두가 축축해서 도저히 신을 수가 있어야지 원"
"작은방도 난감해요, 저렇게 새서는."
부부는 의논하여 비가 그치는 대로 집주인에게 지붕을 고쳐달라고말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구두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소스케는 축축해서 잘 들어가지도 않는 구두를 억지로 신고 나갔다.
- P88

그러나 그 비극이 또 언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가족을 덮쳐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이따금 그의 머릿속에 
안개처럼 드리워졌다.
세밑에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바란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일부러 짧은 해를 밀어내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스케는 더욱더 그 막연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만은 음침하고 어두운 섣달 안에 혼자 남아 있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차가운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그는 문득 이자는 대체 어떤 자일까 하며 
바라보았다.  - P151

소스케는 그 임신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에 일종의 확증이 될 만한 형태를 부여해준 것이라고 혼자 해석하며 적잖이 기뻐했다. 그리고 자신이 생명을 불어넣은 살덩어리가 눈앞에서 춤출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태아는부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다섯 달째에 돌연 유산되고 말았다. 그 무렵부부의 생활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소스케는 유산한 오요네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것도 필경 살림이 궁핍해서생긴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애정의 결과가 가난 때문에 무너져내려 아주 오랫동안 손에 쥘 수 없게 된 것을 안타까워했다. 오요네는하염없이 울었다. - P159

소스케의 능력으로는 실내에 난로를 설치하는 것만도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부는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에서 정성을 다해 갓난아기의 생명을 지켰다. 하지만 모든 것은 허사로 돌아갔다. 일주일 후 두 사람의 피를 나눠 받은 사랑의 덩어리는 끝내 차가워지고말았다. 오요네는 죽은 갓난아기를 껴안고,
"어떡해요 하며 흐느껴 울었다. 소스케는 두 번째 충격을 남자답게받아들였다. 차가운 몸뚱이가 재가 되고 그 재가 다시 검은 흙이 될때까지 푸념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언제부터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있던 그림자 같은 것도 점차 멀어졌고 머지않아 거의 사라져버렸다.
- P160

해산도 의외로 수월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가 자궁에서 넓은 곳으로 나오기만 했올 뿐 세상의 공기를 단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산파가 가느다란 유리관 같은 것을 
작은 입 안에 넣고 강한 숨을 연신 불어넣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태어난 것은 살덩이뿐이었다. 부부는 이 살덩이에새겨져 있는 눈과 코와 입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목구멍에서 나오는 울음소리는 끝내 들을 수 없었다.

- P161

태아는 나오기 직전까지 건강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권락( 帶)이라는 흔히 말하는 탯줄이 목에 감기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그런 이상이 발생한 경우에는 물론 산파의 기술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경험이 풍부한 산파라면 아기를 꺼낼때 목에 감긴 밧줄을 제대로 풀고 꺼냈을 것이다. 소스케가 부른 산파도 나이를 꽤 먹은 만큼 그 정도의 일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아의목을 감고 있던 탯줄은 이따금 있는 경우처럼 한 겹이 아니었다. 그좁은 곳을 지날 때 가느다란 목을 두 겹으로 감고 있는 탯줄을 미처풀어내지 못해 아기는 숨통이 막혀 질식하고 만 것이다.
잘못은 산파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절반 이상의 책임은 오요네에게 있었다. 제대권락이라는 이상 징후는 오요네가 우물가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은 5개월 전에 이미 스스로 만들어낸 것으로 판명되었다. 오요네는 산후 조리 중에 그 일의 자초지종을 듣고 그저 가볍게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피로에 쑥 들어간눈을 적시며 긴 속눈썹을 자꾸만 움직였다. 소스케는 위로하면서 손수건으로 빰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 P162

하지만 두 사람의 생활 이면에는 그 기억으로 인한 쓸쓸함이 물들어 있어 쉽사리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때로는 서로의 
웃음소리를 통해서도서로의 가슴에 그 이면이 어렴풋이 비치는 일이 있었다.  - P163

오요네는 소스케가 하는 모든 행동을 누운 채 보거나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불 위에 똑바로 누운 채 그 두 개의 작은 위패를,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실을 길게 빼서 서로 묶었다. 그러고 나서 그 실을 더멀리 늘여 위패도 없이 떠내려간, 처음부터 형태가 없이 아련한 그림자 같은 죽은 아이 위에 던졌다. 오요네는 히로시마와 후쿠오카와 도코에 남은 하나씩의 기억에서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 엄숙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엄숙한 지배 아래에 서 있던 몇 달
며칠의 자신이 신기하게도 똑같은 불행을 되풀이하도록 만들어진 어미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귓가에서 때아닌 저주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이불 속에서 삼칠일 동안의 안정을 탐할 수밖에 없도록 생리적으로 강요당하는 사이 그 저주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그녀의 고막을울렸다. 오요네가 삼칠일 동안 편안히 누워 지낸 시간은 정말 비할 데없는 인내의 3주일이었다.
- P164

하지만 그 외에는 일반 사회에 기대하는 바가 극히 적은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사회라는 존재를 일상의 필수품을 공급하는 곳이상의 의미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서로의 존재뿐이고, 그들은 또 그 서로의 존재만으로 족했다. 그들은산속에 있는 마음으로 도회에 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생활은 단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복잡한 사회의 번잡함을 피할 수 있었고 동시에 그 사회의 활동에서 나오는 다양한 경험에 직접 접촉할 기회를 스스로 막아버려 도회에 살면서도 도회에 사는 문명인의 특권을 버린 듯한 결과에 이르렀다. 그들도 자신들의 일상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이따금 자각했다.  - P168

소스케는 아주 짧았던 그때의 대화를 일일이 떠올릴 때마다 그 하나하나가 거의 무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담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두 사람의 미래를새빨갛게 뒤덮었는지를 신기하게 여겼다. 지금은 그 붉은색도 세월이흘러 옛날의 선명함을 잃어버렸다. 서로를 불태운 불꽃은 자연스럽게변색되어 까매졌다. 두 사람의 생활은 이렇게 어둠 속에 가라앉았다.
소스케는 과거를 돌아보며 일의 경과를 거꾸로 되돌아보고는 그 담백한 대화가 자신들의 역사를 얼마나 짙게 채색했는지 가슴속으로 철저하게 음미하면서 평범한 사건을 중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명의 힘을 두려워했다.
소스케는 둘이서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그들의 그림자가 구부러져 절반쯤 토담에 비친 것을 기억하고 있다.
- P184

소스케는 당시를 떠올릴 때마다 자연의 흐름이 거기서 뚝 멈추고자신도 오요네도 순식간에 화석이 되어버렸다면 차라리 괴롭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일은 겨울 밑에서 봄이 머리를 쳐들 무렵에 시작되어 벚꽃이 다 지고 어린잎으로 색을 바꿀 무렵 끝났다. 모든 것이 생사를 건 싸움이었다. 청죽(靑竹)을 불에 찍어 기름을 짜낼 정도의 고통이었다. 
아무 준비도 안 된 두 사람에게 돌연 모진 바람이 불어 둘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두 사람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어디나 온통 모래뿐이었다. 그들은 모래투성이가 된 자신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언제 바람을 맞고 쓰러졌는지도 몰랐다.
- P189

폭로의 햇빛이 정통으로 그들의 미간을 비추었을 때 그들은 이미 도의적으로 경련의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그들은 창백한 이마를순순히 앞으로 내밀고 거기에 불꽃과도 같은 낙인을 받았다. 그리고무형의 쇠사슬에 묶인 채 손을 잡고 어디까지나 함께 보조를 같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부모를 버렸다. 친척을 버렸다. 친구를 버렸다. 크게 보면 일반 사회를 버렸다. 혹은 그들로부터 버림을받았다. 물론 학교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다만 표면적으로는 자퇴한 것으로 하여 형식상 인간다운 흔적을 남겼다. 이것이 소스케와 오요네의 과거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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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2 01: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문]
저도 재독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 꼬옥 ✌번 읽으세요 ^ㅅ^

페넬로페 2021-10-03 00:42   좋아요 3 | URL
저는 ‘문‘이 개인적으로 참 좋은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이 기대되네요^^
네, 꼭 두번 읽을께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유일한 소스케에요. 소스케 덕후들 앞이라 아우 민망민망 ^^;;;

페넬로페 2021-10-05 00:45   좋아요 3 | URL
저는 이 책이 다섯권째인데 그 중에 ‘문‘이 젤 좋아요. 책읽기님이 유일하게 읽온 작품이 제가 좋아하는거라 더 좋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1:08   좋아요 3 | URL
아. 저는 일어를 모르는데요. 이 작품 읽으면서 원서로 읽고프다는 생각이 들 만큼 문체가 좋았어요. 그럼에도 다른 작품을 더 읽지는 않았다는 ㅋㅋ

scott 2021-10-05 21:17   좋아요 1 | URL
원서로 읽어 보겠습니다
^♡^

행복한책읽기 2021-10-05 23:44   좋아요 1 | URL
scott님 부럽부럽.^^

새파랑 2021-10-05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문> 좋은 책일거 같아요. 저도 곧 읽어보겠습니다. 울적해진다니 완전 제 스타일일듯 하네요 ^^

페넬로페 2021-10-05 21:08   좋아요 2 | URL
울적하고 세상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고, 문장도 아름다워요^^
새파랑님께도 이 책이 좋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저는 더더욱 소세키에게 깊이 빠져 들어갔습니다. 특히 소세키란 사람이 가진 다면성에 매료되어갔습니다. 
섬세하면서도 동시에 대담하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위태롭습니다.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으며 때로는 모순을 느끼게 할 정도로 깊이 있는 작가란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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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20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책 완죤 좋죠!
소세키옹 작품의 개론서로 충분!!
저도 좋아 하는 작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페넬로페님,

추석 연휴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전 부치시느라 고생 하실것 같습니다)
보름달님에게 소원을~~**
ʕ ̳• · • ̳ʔ
/ づ🌖 =͟͟͞͞🌕

페넬로페 2021-09-20 16:49   좋아요 1 | URL
네,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저도 쓰고 싶어요. 지금 읽고 있는 산시로, 그후, 문에 대한 감상이 있어 흥미로워요^^
전 잘 부치고 송편도 밋있게 만들고 왔습니다**
svott님!
추석연휴 잘 보내고 계시죠!
이번 보름달은 엄청 밝을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1-09-20 2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내일은 추석입니다.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9-21 11:4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잘 보내시길 바래요**

서니데이 2021-09-21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은 추석입니다.
즐거운 명절 보내고 계신가요.
보름달처럼 좋은 소원 이루시고,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9-24 09:1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이제야 감사하다는 답을 합니다.
추석 잘 보냈어요.
추석 아침에 시댁 갔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산에 갔는데 이것이 ㅋㅋ 문제가 되었어요.
넘 오래간만의 산행이라 그런지 몸이 힘들어 이틀동안 고생했어요. 체력이 많이 부족해졌나봐요. 운동 열심히 해야겠어요^^

새파랑 2021-09-24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찐팬 페넬로페님 ^^ 프로필 사진이 바꼈는데 멋져요 😄

페넬로페 2021-09-24 09:16   좋아요 1 | URL
요즘 소세키 작품 읽고 있는데 유부만두님의 서재에서 이 책 발견했어요^^
가을기념으로 프로필 바꿔봤어요**

서니데이 2021-09-26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상중 교수님의 책도 우리 나라에 출간된 책이 여러 권 있을 것 같은데,
소세키에 대한 책도 좋을 것 같네요.
페넬로페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편안한 저녁시간 되세요.^^

유부만두 2021-09-28 0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 책 좋죠? ^^
어렵지 않게 소세키와 그 작품세계를 설명해 줘서 (그것도 딱 몇 권만) 부담이 덜했어요.
그런데 전 그 감상을 잘 정리할 수가 없네요.... (말이 부족혀요)

페넬로페 2021-09-28 20:47   좋아요 2 | URL
유부만두님 덕분에 이 책 읽고 있어요. 제가 읽은 책이나 읽고있는 중인 소세키의 책에 대한 감상과 설명이 있어 좋아요.
강상중씨는 소세키 작가에 대해 많이 연구한듯 해요^^

유부만두 2021-09-29 17:49   좋아요 1 | URL
강상중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은 비전문가라고 겸손하게 이야기 하지만 그만큼 그의 소세키 작품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게 느껴져요. 전 강상중 교수의 엣세이에서 소세키를 ‘읽어볼‘ 마음이 들어서 ‘그후‘를 만났거든요.
아...너무 아름다워서 ... (아줌마가 싫어하는 불륜 이야기이지만) 가슴이 벅차게 좋았어요. 그런데 바로 이어서 다른 소세키를 읽지 못한 건 제가 ‘재미‘를 좇는 독자이기 때문이에요. 제 서재에서 보셨을 거에요. 전 이것 저것 마구 읽고 ‘노는‘ 날라리거든요. ^^;;;;

아뭏든, 이렇게 같은 작가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정말 (새삼) 반갑고 감사합니다. ^^

scott 2021-10-02 01:08   좋아요 2 | URL
강의 하듯
이야기 하듯
소세키의 작품중 가장 유명 하고 널리 읽혀지는 작품을 중심으로 소세키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읽고 싶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아마존 재팬 리뷰에도 소세키 작품 해설집으로 단연 쵝오라는 평가로 도배를 ㅎㅎㅎ

행복한책읽기 2021-10-05 0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강상중님이 쓴 이 책을 왜 모르고 지나쳤을까요. 떠올려보니 이분이 소세키 좋아한다고 계속 얘기했던 것 같아요. 페넬로페님 감사해요. 덕에 찜하고 도서관 달려가게 생겼네요^^

페넬로페 2021-10-05 00:47   좋아요 1 | URL
그냥 소세키를 좋아하는게 아니더라고요. 쉽게 읽히면서도 깊이가 있어 이 분이 얼마나 소세키의 전문가인가를 알겠어요^^
 

요즘 나의 생각과 똑같다
그냥 놋쇠를 놋쇠라고 밝히는 것.

소세키의 ‘그후‘는 작금의 코리아의 실상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다
교육을 받고 눈이 돌 정도로 혹사 당하는 국민.
자신의 욕망만을 좇는 인간들에 의해 눈이 돌 정도로 혹사 당하는 못가진 자의 절규.















그렇지만 지금의 다이스케는 그런 비난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다. 또한 실제로 자신은 그리 열정적인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3, 4년 전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판단한다면 자신은 타락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현재의 입장에서 3 4년 전의 자신을 되돌아보면 자신의 도덕심을 과장하며 잘난 체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도금한 것을 금으로 믿게하려고 온갖 궁리를 하느니 놋쇠를 놋쇠라고 밝히고 놋쇠에 합당한모델을 견디는 편이 마음 편하다는 것이 요즘 생각이다. - P100

다이스케가 스스로 놋쇠가 되기를 감내하게 된 데는 갑작스러운 파란에 휩쓸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심기일전하게 되었다는 등의 소설같은 내력 따위는 없다. 그건 오직 다이스케 특유의 사색과 관찰의 힘으로 서서히 놋쇠에 붙은 도금을 스스로 벗겨온 것에 불과하다.  - P100

앞으로도 일을 할 생각이네. 자네는 실패한 나를 비웃고 있어. ....비못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비웃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상관없어.
알겠나? 자 비웃고 있어. 그러는 자넨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자네 세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이야. 달리 말하면 의지를 발전시킬 수 없는 인간이겠지. 의지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야, 인간이니까 말이네. 그 증거로 항상 공허함을 느끼고 있을 거야.
난 내 의지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하려고 하고 내 의지 덕분에 이 현실사회가 내가 원하는 대로 변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서는 살아갈수 없네. 거기에서 나라는 인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거야. 자넨 그저 생각만 하고 있지. 그러다 보니 관념 세계와 현실 세계를 따로따로 세우고 살아가고 
있는 거야. 그런 엄청난 부조화를 숨기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무형의 큰 실패가 아닐까? 왜냐고 말해보시게나. 나는 그 부조화를 걸으로 드러냈지만 자네는 내면에 감추고 
있을 뿐이므로 부조화를 겉으로 드러낸 만큼 내가 자네보다 덜 실패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런데도 난 지금 자네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네. 나는 자네를 비웃을수가 없지, 아니 비웃고 싶지만 세상 사람들 눈으로 보면 비웃어서는 안 되겠지." - P102

모두 빡빡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버리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나. 그들 대부분이 바보일 테니까.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정신적인 피로와 신체적인 쇠약은 불행히도 늘 함께 다니는 법이니까. 뿐만아니라 도덕적으로도 타락해가고 있어. 일본의 어디를 바라보아도 밝게 빛나는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지 않은가? 온통 암흑이지. 그속에서 나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일을 한다고 한들 소용이있겠나. 난 태생적으로 게으른 사람일세. 실은 자네와 함께 어울리던때도 게으름뱅이였어. 그때는 센 척하며 자신만만하게 굴었으니 자네눈에는 내가 전도유망하게 보였을 거야. 그야 지금이라도 일본 사회가 정신적, 도덕적, 구조적으로 건강하다면 나도 여전히 전도유망한사람 이었겠지. 
그렇기만 하다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 게으른 성격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한 자극도 얼마든지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그러나 이건 아니야.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없네, 그래서 자네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게 가장 걸맞은 것과 접촉하며 만족하고 있네. 나서서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니 말일세." - P105

"그거 재미있군. 아주 재미있어. 나처럼 구석에 처박혀서 현실과 악전고투하고 있는 사람은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지. 일본이 가난하다거나 겁쟁이라거나 하는 생각 따위는 일하는 동안 잊어버리게 되지, 세상이 타락했다고 해도 그런 사실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 속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야. 자네처럼 한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가난이나 우리들의 타락이 걱정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 사회에 쓸모없는 방관자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 결국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춰볼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야. 누구든 바쁠 때는 자신의 얼굴 따위는 잊어버리게 되지."

다이스케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의 히라오카는 남이 울어주는 걸 기뻐하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조금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알 수 없다. 아니, 애써 남의 동정을 물리치려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혼자서라도 세상을 살아 보이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현대사회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아서일까?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히라오카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의 다이스케는 남을 위해 울기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러나 점점 울 수 없게 되었다. 울지 않는 편이 현대적이어서가 아니다. 사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울지 않으니까 현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서구 문명의 압박을 받고 그 무거운 짐에 눌려 신음하면서 격렬한 생존경쟁의 무대 뒤에 서 있는 한 인간으로서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을 다이스케는 지금까지만난 적이 없다.
- P140

그는 인간이란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반대로 인간은 태어난 후에야 비로소 어떤 목적을 갖게 된다. 처음부터 객관적으로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은 그인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태어나는 순간 이미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인간의 목적이란 태어난 본인이 스스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그 목적을 마음대로 만들 수는 없다. 자기의존재 목적은 자기 존재의 과정을 통해 이미 세상에 발표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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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6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6 2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1-09-17 20: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오늘부터 추석연휴 시작입니다.
즐거운 명절과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1-09-17 21:1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너무 감사드려요.
이번엔 정말 추석 기분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명절 기분 느끼려고 노력이라도 해야겠어요♡♡

레삭매냐 2021-09-25 2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선생에 대한
꾸준한 독서, 존경스럽습니다.

현암사 소세키 전집은 참으로
탐이 나네요.

페넬로페 2021-09-25 22:49   좋아요 0 | URL
요즘 책이 잘 안 읽혀 그냥 머물러 있는 수준입니다^^
소세키의 그후는 뒤로 갈수록 조금 쳐지는 느낌이라 더 머물러 있어요^^

유부만두 2021-09-28 08:00   좋아요 1 | URL
현암사 소세키 전집은 무겁지도 않고 펼쳤을 때 안정감도 있어요.
전 민음, 문학동네도 소세키 책이 있지만 현암사 판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