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싸우는가? -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쟁과 평화 연대기
김영미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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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귀찮게 뭐 하러 아파트는 사서 투자를 하고, 주식을 하고, 귀찮게 무슨 재테크를 해요.

내가 지금 노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노후 자금까지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인간의 내일은 신만이 알 수 있고, 이 일은 나에게 평생의 숙명입니다.”

 

우연히 유튜브로 시청한 tvn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미 PD는 저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그녀의 이름과 <국제분쟁 전문 PD>라는 이력이 새로웠다. 20여 년간의 세월동안 세계분쟁지역을 다니며 취재한 김영미라는 사람을 그 날 영상으로 잠깐 만났지만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그녀를, 한 번 가기도 어려운 험난한 지역으로 가게 했을까도 궁금했고, 내일 당장 죽을지 몰라 노후대책까지도 필요 없게 만들 위험한 지역으로 자꾸 가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알고 싶었다.

 

김영미 PD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는 20년 전 취재차 갔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나라 학생들이 듀랜드 라인에 대해 얘기하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데 정작 거기에 있었던 한국 학생들은 그 토론에 참여할 만큼의 지식도 관심도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또한 1년 중 평균 9개월가량을 외국에서 보낼 때, 혼자 있을 아들을 위해, 그의 친구들과 또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틈틈이 정리했다고 한다.

 

[지식은 교과서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만 배우는 것도 아닐 터이다. 다양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의 경험도 많이 들어서 우리 아이들이 인류애와 인권을 고민하고 세계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 해법도 찾았으면 한다. 팔레스타인 친구와 아랍의 역사를 토론하고, 영국 친구와 벨푸어 선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서]

 

그런 저자의 바램대로 이 책은 쉽게 쓰여 있어 이해가 잘된다. 읽는 동안 막히거나 어려운 문장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해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자의 취재로 직접 본 것을 전하며 그녀의 경험과 인터뷰에 대한 것도 담겨있다. 분쟁이 일어나는 각종 이유와 거기에 얽힌 여러 이권의 개입도 나와 있다. 각 지역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단순히 분쟁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문화, 감정도 들어 있다. 이 책을 제일 먼저 딸아이에게 읽도록 권하고 싶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대물림되는 전쟁>, <독립을 위한 전쟁>, <더 가지고 싶은 자의 전쟁>, <가난이 부른 전쟁>이라는 네 종류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섹션에 해당하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시작은 지도와 함께 그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책의 하단에는 시대별 역사의 흐름이 연도별로 띠 모양으로 되어있고, 중간 중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 비교하기가 좋다. 소개되는 나라와 지역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동티모르, 체첸, 카슈미르, 쿠르드족, 이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콜롬비아, 미얀마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 백린탄이나 집속탄, AK-47이라는 듣는 것조차 무시무시한 무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진도 있다. 309페이지 정도의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여기에 많은 것이 들어 있어 놀랍고, 무척 유익했다. 이 많은 분량을 이 정도로 압축하고 이해가 쉽게 쓸 수 있었던 건 아마 김영미 PD의 발로 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그럴 것이다.

 

각 나라마다 분쟁의 이유는 다양하다. 거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해서 이 책에서 서술된 것들을 이 지면에 다 옮길 수가 없다. 다만 저자가 서술한 분쟁의 이유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거기엔 끝없는 폭력이 있다. 종교에 대한 갈등도 많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있는 그 어디라도 돈과 무기를 대어주어 갈등을 부추긴다. 언제나 싸우는 당사자들보다 피해가 고스란히 민간인들에게 돌아간다. 특히 여자와 아이들은 그들의 끝없는 희생양이다.

 

이러한 분쟁지역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물론 여러 나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 미국, 러시아는 빼놓을 수가 없다.

 

[영국은 인도와 교역하는데 250, 점령하고 통치하는 데 25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철수하는 데는 겨우 70일이 걸렸을 뿐이야. -p131]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자신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철수한다. 그 과정에서 듀랜드 라인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사상 초유의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패권 전쟁으로도 무수한 피해자들을 양산시켰다. 미국은 특히 남미 지역에서도 뜨거운 폭력과 살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중동지역과 체첸의 석유 통제권을 얻고자, 러시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미국은 러시아의 체첸 침공을 서로 묵인하여 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식민 통치를 받았던 지역의 친 식민주의자들 역시 문제가 많다. 그들은 나라의 독립을 오히려 반대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을 원하는 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다. 또한 막상 독립이 되어서도 정치적 후진성로 사회적 인프라의 기반이 약해 주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어 그들은 아편을 키우고 해적이 된다.

 

이라크 주민의 70퍼센트가 이슬람 시아파를 믿는데, ‘사담 후세인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수니파를 믿는다는 이유로 시아파 교도를 강력하게 핍박하고,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카슈미르는 하나의 독립 왕국이었다. 그런데 국왕의 황당한 결정이 카슈미르 분쟁의 시작이었다. 파키스탄이든 인도든 한 나라를 선택해야 했는데, 카슈미르 인구의 70퍼센트가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국왕이 힌두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인도를 선택해 분쟁을 스스로 자초했다. 도대체 종교란 것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저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나 국왕이 국민들의 생각이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으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민주화운동에 몸 바쳤던 아웅산 수 치 여사는 로힝야 문제를 방관했다.

 

[나는 수 치 여사를 보며 아무리 민주화 투사라도 정의를 제대로 보고 배우지 않으면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수 치 여사는 아웅 산의 딸로서 살았고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인권 의식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 둣해.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야. ....정의는 머리로 알더라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단다.- p297 ]

 

한 번씩 책을 읽으며 이렇게 수많은 인식들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김영미 PD"공감대만 있으면 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느끼는 바가 클 수 있다.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대한 정보가 좀 더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더 많은 책을 읽고, 소식을 접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들이 쌓여야 우리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감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로만 세상의 소식을 알게 되던 때가 있었다. 그땐 거의 전 국민이 9시 뉴스를 시청하며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영상 매체가 다양해진 요즘, 오히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었다. 세상의 소식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욕망만을 좇아가며 내가 아닌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세계의 무수한 재난이나 내전 지역도 이 자본 때문에 생겨나기 때문에, 그 화살이 언제 우리를 겨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뉴스는 계속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속보를 쏟아낸다. 2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을 미국은 끝내고, 미군 철수 발표 4개월 만에 탈레반은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그동안 친 정부쪽의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탈출을 시작했다. 또다시 많은 난민이 생길 것이고,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는 엄청난 후폭풍과 함께 피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거기서 가장 희생되는 사람은 여성이다. 히잡, 부르카, 차도르, 아바야등 그 이름으로는 구별도 잘 안 되는 이 옷들이 얼마나 많이 여성을 억압하고 그들을 가둘지 암울하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분쟁지역의 농민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아편을 키운다. 그들에게 양귀비나 코카나무는 그저 식물이다. 그것을 키우는 것이 왜 나쁜지 알지 못한다. 납치와 마약의 나라라고 불리는 콜롬비아에는 농부들이 이러한 코카나무대신 카카오나무를 심어 수입을 얻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가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나 남미산 카카오 초콜릿을 구입해 먹을 이유이다. 코카나무를 재배해 100원을 벌면, 카카오나무를 통해 200원을 벌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불편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한다면 그래도 세상은 조금 나아질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복합적이고 난해한 문제점들에 대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해 뭔가 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

 

김영미 PD가 남수단에 취재하러 갔을 때 GPS가 터지지 않아 어떤 남수단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그분이 당신이 가는 곳이 다 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들이 하지 않고 가지 않는 길을 용기 내어 20년 동안 다닌 그 김영미의 길들로 우리는 생생하고 정확한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 이제 또다시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부디 안전하게만 다녀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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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7 18:3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오 책 속 지도나 글귀들이 참 좋은데요 ~~공정무역 초콜릿 커피가 그래도 요즘은 눈에 자주 보이는 것 같아요 ~ 당신이 가는 곳이 다 길이다. 남수단 아주머니 쿨하신 듯하면서 인생이 담긴 말같아요 *^^*

페넬로페 2021-08-17 21:40   좋아요 4 | URL
남수단 아주머니의 저 말에 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글과 시진들이 다 유익했어요^^

새파랑 2021-08-17 19:0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등~!!당신이 가는 곳이 다 길이라는 건 완전 멋지네요. 최근 아프간도 그렇고 참 정치가 뭔지 종교가 뭔지 회의가 드네요. 페넬로페님과 같은 관심이 그래도 세계를 좋게 바꿀수 있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페넬로페 2021-08-17 21:43   좋아요 3 | URL
저 지역의 모든 정세가 참 암울한것 같아요. 새파랑님 말씀처럼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관심 가져 세상에 평화가 가득해지면 좋겠어요^^

scott 2021-08-17 19:0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3등 .🖐

청아 2021-08-17 19:5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은 <카불의 사진사>가 떠오릅니다. 페넬로페님의 이 책만큼은 구체적이진 않았던걸로 기억하는데 다만 작가님이 거기서 집단추행을 당할뻔한 이야기가 나와 충격적이었어요. 강대국들은 돈이 되니 끼어들어 이런곳의 정치와 이해관계,종교를 마구 들쑤셔 피범벅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 약자들이 가장 큰 상처와 피해를 입는 거겠죠 에궁..🤔

페넬로페 2021-08-17 21:47   좋아요 4 | URL
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것 같아요. 그곳에 민간인이 가기 무척 위험할듯 한데 용기있는 분들이 대단한것 같아요. ‘카불의 사진사‘,도 읽어봐야겠어요^^약자들이 더이상 고통받지 않음 좋겠는데 그건 희망사항일뿐일것 같아 슬프네요^^

초딩 2021-08-17 19: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프간 사태에 읽기 적절한 책 같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17 21:48   좋아요 4 | URL
네,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아프간과 탈레반에 대해 잘 알게 되었어요**

파이버 2021-08-17 19: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첨부하신 책사진을 보니 지도나 연표, 사진들로 읽기 좋아보이네요~
희생되는 여성과 아이들은 안타깝고,
분쟁지역을 알리는 이 책의 저자 같은 분들은 대단하고, 뉴스는 걱정스럽고 그렇습니다…

페넬로페 2021-08-17 21:51   좋아요 5 | URL
이 책은 누가 읽어도 이해가 잘되게
구성되어 있어요. 특히 학생들이 읽으면 세계분쟁지역과 그 역사를 잘 알 수 있을것 같아요**

독서괭 2021-08-17 19: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혼밥생활자의책장 팟캐에서 소개해서 저도 담아놨는데, 이렇게 사진이랑 그림으로 상세하게 나오는 줄은 몰랐어요. 읽어보고 싶네요!

페넬로페 2021-08-17 21:52   좋아요 4 | URL
팟캐스트에서도 소개되어 있군요. 마침 지금의 아프간 정세와 맞물려 잘 읽었습니다^^

레삭매냐 2021-08-17 20:0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지난 주말에 읽은
<만화로 보는 중동, 만들어진 역사>
에 따르면 오늘날 중동을 갈등의 장
으로 만든 건 바로 영국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이었다고 기술되어 있더군
요.

지키지도 못할 그리고 지킬 생각도
없는 약속들을 남발하면서 결국
분쟁의 씨앗을 뿌려둔 덕분에 오늘
날까지도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가
되었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금에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사태
의 추이는 참 암담합니다.

페넬로페 2021-08-17 21:54   좋아요 4 | URL
이 책에도 그러한 사실이 구체적으로 잘 나타나 있었어요. 레삭매냐님의 말씀처럼 그 씨앗으로 너무 많은 피를 흘리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ㅠㅠ

scott 2021-08-17 21:0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카불이 원래 중동의 파리 라고 불렸었을 만큼 아랍 문화권에서도 가장 화려한 문명과 발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습니다. 아랍문화권 최초로 여성의사를 배출한 곳

레삭 매냐님 말씀처럼 이 모든 비극이 대영제국이 저지른 것으로 러시아와 각종 이권 다툼을 하다가 (바다를 막아 버릴려고) 인도 /파키스탄 각 부족 집단군까지 결성 시켜서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로 종교적 갈등 분쟁으로 부축여서 아프간을 시한 폭탄 덩어리 로 만들고 이곳은 곳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집단의 은신처가 되어 버렸죠.

오래전 세계 다큐에서 수상한 작품 우리나라 여성 사진작가가 직접 잡입해서 촬영한 아프간 여성들의 삶, 마취제자 어떤 의료 도구나 시설 없이 아이를 출산 하고 10-9명은 산모 아이 모두 ㅠ.ㅠ

20여년동안 분쟁의 길을 걸으신 분 진정 세상의 끝,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신것 같네요

페넬로페 2021-08-17 21:58   좋아요 4 | URL
정말 지독하리만치 비극적이고 이기적인 것들이 모두 결합되어 있는것 같아요. 꽉 막힌 사고도 문제가 있고 계속적인 서로간의 보복도 평화를 찾는데 방해가 될 뿐입니다. 특히 그곳 여성의 삶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어요!
그런곳들을 취재하러 다니시는 이 분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coolcat329 2021-08-17 21:1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십년 전인가 읽었어요. 이 책을 쓴 계기가 됐던 저 에피소드 저도 기억이 납니다. 이 책 읽고 많이 느껴서 <사람이, 아프다>도 사서 봤었죠. 목숨이 위협받는 험난한 곳 다니는 김영미 pd 참 멋지고 용감한 사람입니다.

페넬로페 2021-08-17 22:01   좋아요 5 | URL
벌써 10년전에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제 생각에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분쟁지역의 상황은 별 차이가 없는 듯 해요. 저자가 이 책 2편도 준비중이라는데 그것도 기대하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1-08-18 03: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조만간 읽어보겠습니다.

페넬로페 2021-08-18 10:11   좋아요 2 | URL
네,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scott 2021-09-10 15: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이달의 당선 추카~
금요일 멋지게~*

페넬로페 2021-09-10 19:36   좋아요 2 | URL
금요일에 받은 선물로 즐겁게 금욜 보낼께요, 감사합니다, scott님^^

청아 2021-09-10 15: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당선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1-09-10 19:36   좋아요 2 | URL
감사, 감사드려요♡♡

mini74 2021-09-10 15: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 *^^*

독서괭 2021-09-10 16:1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9-10 20:10   좋아요 1 | URL
정말 감사드립니다^^

새파랑 2021-09-10 16: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 드립니다 ^^ 언제나 멋져요~!!

페넬로페 2021-09-10 20:10   좋아요 2 | URL
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새파랑님♡♡

그레이스 2021-09-10 17: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

페넬로페 2021-09-10 20:11   좋아요 3 | URL
감솨합니다^^

서니데이 2021-09-10 18: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9-10 20:11   좋아요 3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bookholic 2021-09-10 2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고 싶은 책 <세계는 왜 싸우는가?>으로 이달의 당선작이 된 것을 더욱 축하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09-10 21:39   좋아요 3 | URL
네, 감사드려요, 북홀릭님^^
이 책 꼭 읽어보시기 바래요**

행복한책읽기 2021-09-11 00: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페넬로페님. 이 리뷰 보니 더욱 읽어야겠단 생각이^^;;

페넬로페 2021-09-11 00:5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책읽기님!
이 책, 정말 좋았어요, 이해도 잘되고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중학교 학생도 잘 소화할 수 있을 거예요**

초딩 2021-09-11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2관왕!!! 멋져요~

페넬로페 2021-09-11 16:49   좋아요 0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모나리자 2021-09-11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페넬로페님~^^

페넬로페 2021-09-11 16:50   좋아요 1 | URL
모나리자님, 감사합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인간은 이기주의에서 이끌어낸 공평이라는 개념을 고양이보다 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지혜의 측면에서는 고양이보다못한 것 같다. 그렇게 산더미처럼 쌓기만 하지 말고 얼른 핥아먹었으면 
되었을 텐데, 여느 때처럼 내가 하는 말은 통하지 않으니 
안타깝지만 밥통 위에서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었다.
- P46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열심히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운다. 우선 일기처럼쓸데없는 건 결코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두운 방에서나마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걷고 멈추고 앉고 눕는 일상생활, 똥을 누고 오줌을 누는 자잘한 일 등이 모두 진정한 일기이니, 특별히 그렇게 성가신 짓을 하면서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일기 쓸 시간이있다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자겠다.
- P49

나는 얌전히 앉아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었는데,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놀리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고,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 말고는 별 재주가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인이 방자하고 속 좁은 인간이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는 말수가 적어 어쩐지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많은 것 같았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얼마간 두려운 느낌도 들었으나, 지금 이야기를 듣고 나자 갑자기 경멸하고 싶어졌다. 그는 왜 두 사람의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단 말인가. 그들에게 질세라 얼토당토않은
잡담을 지껄여댄들 무슨 소득이 있을까. 에픽테토스의 책에 그렇게 하라고 쓰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 P108

그렇다면 왜 숨어들었다‘는 애매한 말을 사용 했느냐고? 글쎄, 그건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원래 내 생각에 따르면 하늘은 만물을 덮기위해, 대지는 만물을 싣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아무리 집요한 논의를좋아하는 인간이라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하늘과 대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 인류가 얼마만큼의 노력을 했는가. 조금의 도움도 주지 않았지 않은가.
자신이 만들지 않은 물건을 자신의 소유로 정하는 법은 없으리라.
자기 소유로 정하는 것이야 별 지장이 없겠지만, 다른 사람의 출입을금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세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공기는 나누어 팔 수 없고 하늘에 새끼를 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토지의 사유 역시 불합리하지 않은가. - P186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 세상 이치를 알게 된다는 건 기쁜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나날이 위험이 많아져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열해지는 것도, 표리 두 겹으로 된 호신용 옷을 걸치는 것도 모두 세상 이치를 아는 결과이며, 세상 이치를안다는 것은 결국 나이를 먹는 죗값이다. 노인 중에 변변한 자가 없다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나 같은 자도 어쩌면 머지않아 다타라 군의 냄비 안에서 양파와 함께 성불하는 것이 득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구석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 조금 전에 안주인과 싸움을 하고 일단 서재로 물러났던 주인이 다타라 군의 목소리를 알아듣고는 어슬렁어슬렁 거실로 나왔다.
- P251

비록 자기 자식이지만 그래도 주인이 절실히 생각하는 것이있다.아이들은 성장한다. 그냥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절간의 죽순이 대나무로 변화하는 기세로 자란다. 언제 이렇게 자랐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주인은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주인이라도 이 세 딸들이 여자라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여자인 이상 언젠가는 시집을 보내야 한다는 것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알고만 있을 뿐 시집보낼 수완이 없다는 것또한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면서도 조금은 벅차하는 것이다. 벅차할 거라면낳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정의하는 데 다른 것은 필요 없다. 그저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내 스스로괴로워하는 존재라고 하면 충분하다.
역시 아이들은 대단하다. 아버지가 이만큼 처치 곤란해하고 있다는것은 꿈에도 모른 채 신나게 밥을 먹고 있다.  - P484

아까부터 이런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서도 주인은 한 마디도 하지않고 오로지 자신의 밥을 먹고 자신의 국을 먹더니, 이때는 이미 이쑤시개로 한창 이를 쑤시는 중이었다. 주인은 딸의 교육에 절대적 방임주의를 취할 생각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세 아이가 에비차 시키부(海老茶式部)나 네즈미 시키부(式部)"가 되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정부(情夫)를 두어 집을 나간다 한들 여전히 자신의 밥을 먹고 자신의 국을 먹으며 태연히 보고 있을 사람이다. 무능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 유능하다는 사람들을 보면,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피는 일, 눈 감으면 코를 베어갈 만큼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일,
허세를 부리며 남을 위협하는 일, 마음속을 떠보고 함정에 빠뜨리는일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중학교에 다니는 소년들까지 보고 배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력을 떨칠 수 없다고 잘못 알고 있고,
마땅히 낯을 붉혀야 할 일을 당당하게 하면서 자신을 미래의 신사라 여기고 있다.
이런 사람을 유능한 일꾼으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불한당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나도 일본의 고양이라서 나름대로 애국심은 있다. 그렇게 유능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 대 쥐어박고 싶다. - P487

내가 재미있다고 하면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묻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신을아는 것은 평생의 큰 과업이다. 자신을 알 수만 있다면 인간도 인간으로서 고양이보다 더 존경을 받아도 좋다. 그때는 나도 이런 짓궂은 글을 쓰는 일도 딱한 노릇이니 당장 그만둘 생각이다. 하지만 자신이 자신의 코 높이를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좀처럼 알기 힘든 모양이다. 그러니 평소 경멸하는 고양이에게조차 이런질문을 던지는 것이리라. 인간은 건방진 듯해도 역시 어딘가 나사가빠져 있다. 만물의 영장입네 하면서 어디를 가든 만물의 영장임을 내세우지만 이까짓 사실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태연자약인 데는 한바탕 웃음이라도 터뜨리고 싶어진다.
그들은 만물의 영장을 등에 업고, 내 코가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줘.
하면서 소란을 피운다. 그렇다고 만물의 영장을 그만두느냐 하면 천만의 말씀, 죽어도 내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정도로 공공연히 모순된 태도를 보이며 태연히 있을 수 있다면 애교가 있다고 할 것이다.
애교를 택한 대신 바보로 만족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518

주인은 저녁을 마치고 서재로 들어갔다. 안주인은 오슬오슬한 속옷의 깃을 여미고 빛바랜 옷을 집고 있다. 아이들은 베개를 나란히 하고잠들어 있다. 하녀는 목욕하러 갔다.
무사태평해 보이는 이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도통한 듯 보이는 도쿠센 선생 역시 발은 지면 외에는 밟지 않는다.
마음 편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메이테이 선생의 세상은 그림 속의세상이 아니다. 간게쓰 군은 유리알 가는 일을 그만두고 드디어 고향에서 아내를 데려왔다. 이것이 순리다. 하지만 순리가 오래 계속되면필시 지겨워질 것이다. 도후 군도 앞으로 10년쯤 지나면 무턱대고 신체시를 바치는 일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산페이 군도 물에 사는 사람인지 산에 사는 사람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평생 샴페인을 대접하며 의기양양해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스즈키 도주로씨는 어디까지고 굴러갈 것이다. 구르다 보면 흙탕물도 묻는다. 흙탕물이 묻어도 구르지 않는 자보다는 말발이 선다.
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살게 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다. - P612

차츰 편해졌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다행스러운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물속에 있는 것인지 방 안에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그냥 편하다. 아니, 편하다는 느낌 자체도 느낄 수 없다. 세월을 잘라내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함으로 들어선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
- P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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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1-08-15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의 눈으로 본 인간은 참으로 우스운 자들이로소이다… 저는 고등학생 때 이 책 딱 반만큼 읽고 포기했었는데, 페넬로페님께서 그으신 밑줄들을 보니 고양이님의 말씀이 재밌네요ㅎㅎ

페넬로페 2021-08-15 17:22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분량이 많아서 놀랐어요.
거의 600페이지라 좀 그랬는데 잘 읽히는거 같아요
고양이가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는 느낌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1-08-15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는 단순한 것같은데,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 외에도 할 일들이 계속 있으니까요.
하지만 고양이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중요한 일들은 아닐지도 모르겠어요.
페넬로페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페넬로페 2021-08-15 20:44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것 같아요^^
고양이 보다는 더 해야할 일이 많은것 같은데 그것이 우리가 사는데 다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다시 날씨가 더워졨어요
남은 주말 저녁도 잘 보내시길 바래요^^

페크pek0501 2021-08-16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로 들어서 내용을 알고 있는 책이에요. 고양이의 눈에 비춰진 주인의 모습이 재밌던 기억이 나네요.

페넬로페 2021-08-16 20:11   좋아요 1 | URL
네, 생각보다 재미있어 진도가 잘 나가더라고요^^

초딩 2021-08-17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처음 문장 좋네요~
아 책장에서 고양이로소이다가 노려보고 있어요 ㅜㅜ ㅎㅎ

페넬로페 2021-08-17 00:50   좋아요 0 | URL
고양이가 신랄하게 인간을 평가하고 있어 인간인 제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국외자이지만, '삶'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사랑》


예술, 또는 창작을 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남들과 다른 기질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독일의 한 소도시에 사는 유력인사들의 자제들이 모여, 사교 예법과 춤을 배우는 곳에서도 <토니오 크뢰거>는 그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 곳에 와 있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고, 자기 방 창가에 앉아 슈토름의 이멘 호를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분수와 오래된 호두나무, 자신의 바이올린과 저 멀리 있는 발트해이다. 그리고 시를 짓는다. 그것이 남들에게는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것이지만 그러한 사실이 그가 시를 짓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토니오가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항상 남들을 의식하고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남들도 좋아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를 쓴다는 것이 얼토당토않은 짓이고 사실 온당치 못한 짓임을 그 자신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이를 생뚱맞은 짓거리로 여기는 모든 사람들의 견해를 어느 정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사실이 그가 시를 짓는 일을 그만두도록 하지는 못했다. -p13]

 

<토니오 크뢰거>는 언제나 경쾌하고 당당한 친구인 한스 한젠을 좋아하고, 열여섯 살이 되었을 땐 명랑한 금발의 잉에보르크 홀름을 짝사랑하게 된다. 그들은 토니오와 다르게 누구나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과 큰 소리로 말할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한다. 모든 세상사와 충돌하는 토니오와 다르게 그들은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당연히 실러의 돈 카를로스를 읽지 않고, ‘왕이 우는 이유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다. 그런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토니오는 질투심이 섞인 동경을 한다.

 

너처럼 되면 좋으련만이라고 생각하지만 <토니오 크뢰거>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그들과 쓰는 언어가 달랐고 그들이 행복을 얻는 것들은 그에게 낯설고 서먹서먹한 것이 된다.

 

[슈토름의 그지없이 아름다운 시 한 편이 불현듯 떠올랐다.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구나.> 사랑하고 있는데 춤을 춰야 한다는 이 굴욕적인 모순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p32]

 

[유희적이고 놀랄 만하지만 우울한 창조력이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이 동경하는 명랑한 사람들은 그 창조력이 닿지 않는 저 반대편에서 마주 보고 서 있음을 안다는 것이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팠다. 하지만 비록 그가 홀로 국외자의 신세가 되어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닫힌 블라인드 앞에 서서 비탄에 잠긴 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척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는 행복했다. 그의 심장이 살아 숨 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36]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NOON'시리즈 10권 중에서 제일 첫 번째로 읽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20대 때 읽었던 마의 산이 어렴풋이 연상된다. 지금 마의 산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워낙 그 책이 어려워 어렴풋이 읽고 이해했다는 느낌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그런데 그 어렴풋이남아있는 느낌의 여운이 워낙 강렬해 완전히 이해를 하지 못했어도 그 작품과 토마스 만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느낌이 그리워 이 시리즈 중에서 망설임 없이 작가 토마스 만을 제일 먼저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토니오 크뢰거>마의 산만큼 어렴풋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작가 토마스 만이 나타내는 특유의 공감되고 울림 있는 내용도 많지만, 역시나 토마스 만답게 거창하고 거침없는 몇 페이지에 걸친 장황한 표현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렴풋한 것이 또 이 작가의 매력이다. 어렴풋하지만 이해되고 뭔가 알 수 있는 그 내용들이 내가 토마스 만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토니오 크뢰거>라는 이 중편 소설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있어 내가 리뷰를 써야 할 필요도 못 느낄 정도다. 사전정보 없이 읽은 이 소설에서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 토마스 만자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창작자로서 가야하는 자신의 길에서 무수히 고뇌하고 뒤돌아보는 한 인간의 모습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국외자처럼 살아야하지만 심장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삶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도 싶은 두 세계에 걸친 예술가의 고뇌와 회한도 있다. 두 세계는 공존이 쉽지 않아 같이 갈 수 없지만 그곳을 동경하고 질투하기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그 두 세계 중 <토니오 크뢰거>만이 고뇌하고 그들을 들여다보지만, ‘한스잉에보르크로 대표되는 다른 세계는 <토니오 크뢰거>와 함께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영원히 타자로서만 치부되는 그런 것들은 예술가의 삶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있어 슬프다.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힘,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낀 그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그에게 고귀함과 명예를 약속해 주는 힘, 아무런 의식도 말도 없는 삶에 미소를 머금고 군림하는 정신과 언어의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젊은 날의 열정을 품고 그는 그 힘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선물함으로써 그에게 보답했고, 그 대가로 앗아 가곤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갔다. -41]

 

이마에 찍힌 그의 표지에 의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토니오 크뢰거>는 작가가 된다. 그에게는 인식이 주는 고통과 교만함과 더불어 외로움이 찾아온다. 언어와 형식이 주는 쾌감에도 매료되지만,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닌가를 고민한다. 화가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찾아가 한 말들에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있다.(이 부분이 무척 어려운데 그것을 잘 알아듣는 이바노브나가 대단하다) 그리고 삶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토니오 크뢰거_<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이지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그는 단호한 태도로 일어서더니 모자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고맙습니다,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이젠 안심하고 집에 갈 수 있겠습니다. 난 처리되었으니까요.-P68]

 

토니오는 예술을 대변하고 크뢰거는 시민을 대변하는 이름을 가진 길을 잃고 헤매는 시민, ‘토니오 크뢰거는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떠나온 고향에 들렀다가 북쪽으로 계속 가서 발트해의 어느 호텔에 기거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그가 짝사랑했던 한스잉에보르크를 다시 만난다. 종족과 유형이 비슷한 그들은 서로 친하게 보였고 역시 변함이 없다. 밝은 유형의 그들은 순수하고 맑으며 명랑한 이미지와 아울러 오만하고 소박하며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한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토니오는 그들을 잊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여전히 토니오는 그들을 동경하고 질투한다. 그 어떤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토니오 크뢰거가 안쓰럽기도 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토니오의 그런 모습이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인간인지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욕망과 소속감이 필요할 수도 있다. 예술가의 삶을 살아내는 많은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이 저런 고민에 빠질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스 한젠, 넌 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 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 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돼...너처럼 되고 싶구나! -p115]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 사람과는 서로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언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서로 공감할 수 없다. 그래도 한 번쯤은, 아니 영원히 내가 가지 못하는 그 길을 흠모하고 들여다보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 삶의 여러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예술가의 길을 걸으며 참가하지도 않은 축제에 도취될 수 있다. 환심을 사려고 할 수 있으며 질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토니오 크뢰거>에게 그것은 향수이자 회한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예술의 길로 잘못 들어선 시민, 훌륭한 가정교육에 대한 향수를 지닌 보헤미안,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예술가라 표현한다.

 

오래 전 찍은 빛바랜 사진 중에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중학교 때였는데 친구들과 어디를 가기위해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찍은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여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난 혼자 긴 의자 끄트머리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 모습들이 다 들어간 사진인데 누가 그런 구도로 찍은 건지는 모르겠다. 그때 내가 들고 읽은 책의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 책이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문고판 책이었다는 것은 기억난다. 열린책들 35주년 기념 ‘NOON'세트는 문고판 판형으로 가볍고 얇게 되어있는데 오래간만에 읽은 문고판 형식이라 옛날 생각이 났다. 나 역시 그때부터 내 이마에 표지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지금도 책을 읽고 있고, 그때 그 친구들이 지금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마에 표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토니오 크뢰거>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들 역시 토니오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살 것이다.

 

크기가 작게 구성되었는데도 126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이 소설의 리뷰를 쓰면서 난 많은 인용을 했고 내가 쓴 글들 역시 토마스 만의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많다. 이 소설 통째로 옮기고 싶을 정도로 이 소설을 읽으며 많은 공감을 했고, 삶과 예술가, 나에 대해 뒤돌아볼 수 있었다. 예술가는 나에게 외로워서 우는 왕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

 

[난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어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좀 힘이 듭니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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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2 15: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1등~!! 페넬로페님도 읽기 시작이시군요. 주 1권씩 같이 읽어요 ^^ 전 오늘 두번째로 <도둑맞은 편지> 읽고 있어요. 전 이책 세번째로 읽어야 겠어요 😆

페넬로페 2021-08-12 16:03   좋아요 7 | URL
저는 일단 noon시리즈 샀는데 미드나잇은 살지 아직 고민중이예요 ㅎㅎ
아무튼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coolcat329 2021-08-12 16:1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만 한 권도 안 읽어봤는데 알듯 모를듯 어렴풋한 느낌이 좋으시다니 저도 그런 모호한 작품이 읽고나서 더 생각이 나고 좋더라구요. 토니오 크뢰거 요 이쁜 책으로 읽고싶지만...민음사로 갖고 있으니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근데 저는 예술가가 주인공인 소설은 참 부담스럽더라구요 ㅋ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워낙 고지식해서요😟

페넬로페 2021-08-12 16:47   좋아요 7 | URL
네, 그 어렴풋하고 모호한 느낌의 매력에 빠져 자꾸 문학작품을 읽는것 같아요~~이 작품은 예술가가 주인공이지만 절대 부담스럽지 않아요. 저는 토니오 크뢰거에 공감하고 이해했어요. 가슴 절절한 뭉클함도 있구요^^

Falstaff 2021-08-12 16:2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토마스 만을 무척 좋아해서 번역해서 나온 그이 소설 작품은, 단편 몇 개 빼고는 다 읽었습니다.
전 만의 경우에 단편 읽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전에 읽은 단편집을 다시 읽어볼까, 아님 다른 책으로 읽을까 생각 중입니다.
힘들었던 단편 가운데 당연히 <토니오 크뢰거>도 들어 있습니다. 새삼 관심이 팍팍 생기네요.

페넬로페 2021-08-12 16:51   좋아요 8 | URL
역시 폴스타프님,
그 어렵다는 토마스 만의 작품을 많이 읽으셨네요.
제가 다른 단편은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은 그나마 이해가 좀 쉬웠어요^^저도 다른 단편 읽어 보겠습니다**

mini74 2021-08-12 16:58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앗 눈 시리즈!!! 아직도 고민중인데 ㅎㅎ페넬로페님 글 읽으니 막 사고 싶어집니다 ㅎㅎ. 통째로옮기고 싶으시다니 !! 전 안똔 체호프. 안똔. ㅠㅠ 영 적응이 안돼요 ㅎㅎ 읽고 있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12 17:09   좋아요 6 | URL
미니님은 눈 시리즈를 살까말까를 고민하고 계시는군요. ㅋㅋ
안똔??? 쳬홉도 워낙에 좋아서리~~
왜이리 읽고 싶은 책이 많은지 저의 아바타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새파랑 2021-08-12 17:11   좋아요 6 | URL
무주건 사시고 알라디너 티비에 소개하실거라 확신 합니다 😆

scott 2021-08-12 17:2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은 눈 세트 [토마스만]의 토니오 크뢰거로 시작 하셨네요

전 , 토마스만 단편 좋아 하는데 중편 토니오 크뢰거는 여러번 재독
토마스만의 자전적인 모습이 많이 투영 되어 있습니다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 자신의 집안의 흥망 성쇠가 상세하게 나온 대작!
이 작품 읽고 나면 [토니오 크뢰거] 쑥쑥 책장 넘어 감요!

단편 중에 [어릿 광대] 좋아 합니다

페넬로페 2021-08-12 19:29   좋아요 5 | URL
네, 저도 읽으며 토마스 만의 자전적인 내용이 많은것 같더라고요.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꼭 읽어봐야겠어요~~

청아 2021-08-12 17:5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도 NOON시리즈~♡♡
얇은 책인데 이 페이퍼를 보니 토마스만 명성대로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나봐요! 발췌문들이 인상적이예요. 보헤미안은 늘 어감이 좋네요ㅎㅎ😙

페넬로페 2021-08-12 19:31   좋아요 5 | URL
발췌문을 더 쓰고 싶었는데 많이 줄였어요~~토니오 크뢰거에 나온 다른 책도 읽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는 약간씩 보헤미안의 기질이 있는듯 해요^^

레삭매냐 2021-08-15 0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더부럽~

이거 아무래도 땡겨야 하나요...

페넬로페 2021-08-15 10:00   좋아요 2 | URL
참 애매합니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구성이 우리가 거의 읽은 책이 많이 들어 있어서요^^
 

토마스 만ㅡ[토니오 크뢰거]


그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되는 힘, 그것에
봉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느낀 그 힘에 
완전히 몸바쳤다. 그에게 고귀함과 명예를 약속해 주는 힘, 아무런 의식도 말도 없는 삶에 미소를 머금고 
군림하는 정신과 언어의 힘에 완전히 몸 바쳤다.
젊은 날의 열정을 품고 그는그 힘에 몸을 바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자신이 줄 수있는 모든 것을 선물함으로써 그에게 보답했고, 그 대가로 앗아가곤 하는 
모든 것을 그에게서 가차 없이 앗아갔다.
- P41

그는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했다.
그는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고, 오직 창작자로만 간주되기를 바라며, 그밖의
경우에는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돌아다녔다. 
배우가 분장을 지우고 연기도 하지 않을 때는 아무런 존재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는 말없이 세상을 등지고 눈에 보이지않게 일하면서, 재능을 남과 어울리기 위한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소인배들을 한없이 경멸했다. 이들은 가난하는 부유하든 상관없이, 해진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돌아다니거나, 개성이 넘치는 넥타이를 매고 호사를 떠는 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훌륭한 작품이란 곤궁한 삶의 압박에
시달릴 때에만 생겨나고, 생활하는 자는 창작할 수 없으며완전한 창작자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서
행복하고 근사하게 예술가처럼 살겠다고 작정하는 자들이었다.
- P44

「천직 이야길 하질 마세요,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당신에게 분명히 말해 두지만, 문학이란 결코 천직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언제부터 그것이, 이 저주가 느껴지기 시작할까요? 
일찍부터, 끔찍할 정도로 일찍부터입니다. 당연히 아직 하느님과 세상 사람들과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야할 시기에 벌써 그런 저주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자신에게 낙인이 찍혀 있다고 생각하고, 왠지는 잘 알 수없지만 평범하고 정상적인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을 다른 사람들과 멀어지게 하는
아이러니, 회의, 갈등, 인식 및 감정의 골이 점점 더 깊게 벌어져 당신은 고독해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더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무슨 이런 운명이 다 있을까요! 
이런 운명을 끔찍한 것으로 느낄 정도로 가슴이 충분히 생기에 차있고, 충분히 사랑에 넘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말입니다! 당신은 수천 명 사이에 섞여 있어도 당신의 이마에 찍힌 낙인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들이 이를 다 알아볼거라고 느끼기 때문에 자부심이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 P54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말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식의 구토라고 부르는게 있습니다, 리자베타. 어떤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것만으로도 이미 죽고 싶을 정도로 구역질이 나는, 그래서 그것과 화해하고 싶은 기분이 조금도 들지 않는 상태 말입니다. 햄릿의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문학자인이 덴마크인 말입니다. 그는 알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면서 알도록 소명을 받는다는 것이 무언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눈물에 젖은 감정의 베일을 뚫고 통찰해야 하고, 인식하고주의 깊게 살피며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맞잡고 서로의 입술을 더듬는 순간에도, 감정에 눈이 멀어 인간의 시선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미소 지으며 관찰한 것을 옆에 챙겨 두어야 합니다. 이는 울화가 치미는 일입니다. 리자베타, 이는 비열한 짓이라서 분노가 치밉니다..... 
하지만 화를 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 P60

한스 한젠, 넌너의 정원 문에서 나에게 약속했던 대로 ‘돈 카를로스‘를읽었느냐? 읽지 말거라! 네가 그걸 읽기를 더는 요구하지않아.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하여, 너처럼 올바르고 즐거우며 소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신과 세상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자라나,
아무런 악의가 없고 행복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구나.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센, 너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싶구나! .…다시 한번 시작한다고? 하지만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다시 이렇게 되고 말 것이고, 모든 것이 다시 지금까지와 똑같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을 걷는 까닭은 이들에겐 올바른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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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8-11 1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외로워서 우는 왕이 너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니? 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하거나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는 안 돼.
너처럼 되고 싶구나!
- 이 부분이 저는 무척 슬펐어요. 책으로 두 번 읽었고 딴 작품 때문에 오디오북을 구매했는데 이 작품이 들어 있어 또 들었죠. 글쟁이들에게 바치는 시 같은 작품이죠.

페넬로페 2021-08-11 14:02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죠!
저도 슬프기도 하고 그냥 뒤돌아보지 말고 뚜벅뚜벅 가면 안되나 하는 안타까운 맘도 들더라고요. 네, 페크님 말씀처럼 글쟁이와 책쟁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책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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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8-07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ㅜㅜ 아 이래서 종이책을 샀었는데
아직 오디오북만 듣고 종이책은 다 못 읽었어요.
편집이 읽기에 얼마나 많은 것을 차지하는지 또 느끼게하네요 :-)

페넬로페 2021-08-07 12:32   좋아요 1 | URL
네,각 나라의 앞장에 간략한 정보가 있어 유익하고 문장이 쉽게 이해를 잘할 수 있게 되어 중동에 대한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별점 5개 주고 싶어요**

han22598 2021-08-10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북으로는 사진이 이렇게 안 보였는데 ㅠㅠ사진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

페넬로페 2021-08-10 23:0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사진으로도 많은걸 알 수 있어 유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