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클래식)에서 2월부터 한 달에 한 권씩 발자크의 소설을 읽고 있다. 한 작가의 전작읽기가 약간 지루하지만, 발자크의 소설이 워낙 방대하고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1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어둠 속의 사건’, ‘골짜기의 백합’, ’사기꾼‘, ‘미지의 걸작’, 잃어버린 환상‘, ’루이 랑베르‘, ’나귀 가죽‘, ’사라진샤베르 대령‘ ’결혼 계약을 읽었다.

 

알려진 대로 발자크의 실제 삶은 자신이 쓴 소설의 내용보다 더 소설적이고 파란만장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유모의 손에 맡겨지고 오랜 기간 기숙학교에서 생활한 발자크는 부모의 정을 전혀 받지 못했다. 법과 대학에 다니면서 소송 대리인과 공증인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힌 발자크는 자신의 길이 글을 쓰는 것임을 깨닫고 칩거하며 희곡과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첫 작품인 희곡 크롬웰이 실패하자 부모는 다시 법조계 쪽으로 발자크가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가 그것을 거부하자 부모는 발자크에 대한 지원을 끊는다. 그는 부모에게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돈이 충분해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해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발자크는 필명으로 그 당시 유행하던 여러 소재의 대중소설을 엄청나게 써 댔다. 소설 공장처럼 찍어낸 그의 소설은 인기가 있었고, 발자크는 돈을 벌기 시작했다.

 

발자크는 그 후 출판업, 인쇄업, 활자 주조업 등 사업에 손을 댔고, 손대는 족족 실패했다. 30세가 되었을 때, 그에게는 6만 프랑의 빚이 있었고, 발자크는 신이 그에게 주신 능력인 글을 써야만 빚을 갚을 수 있었다. 만약 빚이 없었다면 발자크는 이렇게 많은 작품을 남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자신의 본명으로 출간한 첫 소설인 올빼미 당원결혼 생리학이 성공했고 죽을 때까지 빚과 함께 20년 동안 엄청난 양의 글을 썼다.

 

1799년에 태어나 1850년에 사망한 발자크 인생 전반에는 격변한 프랑스의 역사가 있다. 발자크는 자신의 소설에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그대로 담아 <인간극>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90여 편의 소설이 들어 있고 등장인물이 25백 명 정도이다. 그 중 500명은 <인물재등장기법>에 의해 여러 다른 소설에 계속 나온다. 이 인물을 발견하는 것도 발자크 소설을 읽는 재미중 하나다.

 

[발자크가 활동하던 시기는 낭만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작가들은 아름다움, 숭고함, 열정을 노래했고, 이상적 사랑을 꿈꾸었다. 독자들은 빅토르 위고의 세계에서 사회악을 고발하고 맞서 싸우는 숭고한 영웅 장발장에 열광했다. 그러나 발자크의 세계에는 숭고함도 세상을 구원할 영웅도 없었다. 인간극은 모순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그가 그린 세상은 명료하지 않다. 정답도 없고, 해결책도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종종 혼란스럽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발자크 문학의 정수다. 인간의 희망과 실제가 다르고 이상과 현실이 다르듯, 그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간단치 않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발자크의 위대함은 인간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에 있다. 그것이 바로 발자크의 현대성이기도 하다. 대놓고 돈을 숭배할 용기도 대놓고 경멸할 용기도 없는 현대인, 거짓과 위선과 기만을 감추고 사는 이들은 발자크가 묘사한 모순적인 인간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목격할 것이다.

-‘오노레 드 발자크서문에서]

 

 

발자크의 소설을 읽으며 계속 양가감정에 빠져있다. 그가 그려낸 세계와 입체적 인물, 문장의 표현이 대단해 소설 읽는 재미가 있지만 읽고 나서 여운이 별로 남지 않는 단점이 있다. 너무 사실적인 내용과 거의 모든 것이 설명 되어진 글이 소설적 상상력을 제한시킨다. 그것이 소설로서의 더 깊은 의미를 얻는데 방해가 된다. 송기정 저자의 말대로 발자크는 현실의 자각과 폭로를 그대로 해주고 있고 독자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로서의 역할이 조금 미미하다는 것에 아쉬움이 계속 남아 있다.

 

발자크는 그 시대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적나라하게 시대를 재연해주는 작가의 풍성한 글이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다보면 200년도 지난 지금과 19세기 프랑스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물론 겉모양은 많이 변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법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고, 아니 앞서 나가 다가올 시대를 예견하며 그것을 수많은 작품에 남겼다는 사실이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또한 그러한 면에서 발자크의 소설에서 지금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인식할 수 있다.

 

 

송기정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슈테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둘 다 발자크에 관한 책이지만 성격은 다르다. 송기정의 책이 발자크 작품과 그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면, 츠바이크는 발자크라는 인물 자체에 더 집중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발자크 작품의 주요 무대인 파리에서 시작해 발자크의 역사관, 정치관, 과학, , , 철학 연구를 통해 발자크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고 파헤친다. 오스카 와일드가 우리가 알다시피, 19세기는 대부분 발자크의 발명품이다라고 말했듯이 19세기 프랑스에 대해 모르고는 발자크를 읽을 수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발자크 읽기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이자 설명서이다.

 

인물 평전에 대해서라면, 츠바이크는 그 자체로 전설이다. 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생애를 따라가며 발자크라는 인물을 흥미롭고 위대하게 만들면서 결국 자신의 글을 부각시킨다. 어느 순간 발자크라는 실제 인물을 소설 속 인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츠바이크가 그려낸 발자크에 사실이 아닌 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그만큼 흥미진진하면서도 극적으로 발자크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을 드러낸다.

 

발자크 소설을 읽기 위해 이 두 책을 같이 읽기를 권한다.




내가 참여하는 <클래식 독서동아리>가 도서관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았다. 이때까지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올해 발자크를 읽고 있어 별 고민 없이 발자크 연구자이자 번역자인 송기정 선생을 모시고 발자크에 대한 강의를 듣기로 했다. 선생은 발자크의 여러 소설에 담긴 19세기 프랑스의 전반적인 배경에 대해, 특히 은행과 신용거래, 대혁명 이후의 돈의 흐름, 어음 사기와 채무의 사례, 돈과 결혼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었다. 최근 번역작인 결혼 계약를 통해 그 당시 여성의 지참금 제도와 여성에게 불리한 여러 관습과 법에 대해서도 강의했다.

 

발자크 문학의 정수인 인간극은 모순 덩어리인 진짜 인간들의 진열장이다. 또한 현실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자각과 폭로가 발자크의 위대함이다. ‘인간극의 인물들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국한되지 않고 바로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것이 발자크의 현대성이다

 

이렇게 정리하며 선생은 강의를 끝맺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송기정 선생의 번역작 두 권에 사인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2017년 여름, 다른 도서관에서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번역자인 안인희 선생의 강의를 6주간 들은 적이 있다.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내용으로 훌륭한 강의를 해주어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저기에 페넬로페가 앉아 있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송기정 선생과 독일어를 전공한 안인희 선생의 강의는 전문가답게 막힘이 없었고 열정적이어서 듣는 사람을 한 단계 더 지혜로운 인간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번역이란 단순히 다른 나라의 언어를 국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 많은 배경 지식과 소양이 있어야만 잘 된 번역의 책을 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두 선생의 번역에 신뢰가 간다.

 

앞으로 계속 좋은 번역 해 주시기를 바란다.

특히 발자크와 츠바이크 책에 대한 번역을 많이 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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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25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츠바이크가 썼군요. 오래 전에 동생 책장에 꽂혀있던 책인데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상상만 했을뿐 읽지는 못했는데… 오래전부터 문학 강좌를 들어오셨군요. 번역자의 강의를 직접 들으셨다니, 알찬 강의였겠어요. 번역자는 아니시지만 전 로쟈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지요.

페넬로페 2024-11-25 09:31   좋아요 1 | URL
제 책장에도 광기와 우연의 역사 구판이 있는데, 아직 읽어보지 않고 있어요.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지네요.
번역자 두 분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이 저한테 좋은 기회였어요.
로쟈님의 강의도 좋았겠습니다^^

청아 2024-11-25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페님 혹시 검정색 셔츠?ㅎㅎㅎ 발자크를 비롯해 의외로 생전에 어려움을 많이 겪은 작가들을 접할때면 내가 뭐라고 글 쓰기를 힘들다 했나? 반성하게 되더군요.^^;
저는 페페님 독서모임 당연히 지원금 쭉 받고 계시는 줄 알았어요. 아무튼 기쁜 일이고 축하드려요😘

페넬로페 2024-11-25 10:20   좋아요 1 | URL
놉, 반대로 흰색이예요 ㅎㅎ
그동안 지원금 받을 기회가 많았지만 회원들 모두 조용히 책만 읽기를 원해서 그저 책만 읽어 왔어요.
이번에는 리더이신 그레이스님과 다른 신입회원분께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셔서 저를 포함한 나머지 멤버들은 편안히 강의 잘 들었어요.

네, 정말요.
발자크가 글을 쓰기 위해 5만잔 정도의 커피를 마셨다고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수도복 같은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인내심과 노력은 정말 따라갈 수가 없어요.
청아님, 감사합니다^^

stella.K 2024-11-25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흰색옷을 입으신 분이 몇분 계셔서 어느 분이신지..? ㅎ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그레이스님이 리더로 섬기시고. 오래 전부터 그레이스님하고 페페님하고 어딘가 잘 어울리시는 거 같은데 이런 인연이 있으셨군요. ㅋ

페넬로페 2024-11-25 11:09   좋아요 1 | URL
앞쪽 입니다 ㅎㅎ
지금보니 사람의 뒷모습도 변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번에 찍은 사진의 뒷모습과 2017년의 뒷모습이 다르네요.
훨씬 건강하고 젊게 보여요.

그레이스님과는 같은 책을 오래 읽어오고 개인적으로도 자주 시간을 가져 맘이 통해요^^

coolcat329 2024-11-26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페넬로페님 부럽습니다.
저도 이런 독서모임 하고 싶네요. 정말 멋진 독서 동아리에요. 페넬로페님의 진지한 독서자세 볼때마다 배우고 갑니다.
저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은 제가 발자크를 좋아하게 만든 1등 공신입니다. 저도 츠바이크 책 개정판으로 새로 나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어요.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 이런 책들요.

페넬로페 2024-11-26 13:01   좋아요 1 | URL
쿨캣님!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츠바이크 평전이 정말 발자크를 읽고 싶게 만든 책이 확실합니다
메리 스튜어트, 어제의 세계도 찜 해 놓겠습니다^^

그레이스 2024-12-26 09:06   좋아요 1 | URL
쿨캣님 늦었지만 저도 환영입니다.^^

그레이스 2024-12-26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제가 왜 이제 보죠?;;;;;
전 페넬로페님 찾았습니다. ㅋ

페넬로페 2024-12-31 15:22   좋아요 0 | URL
그때는 뒷모습도 좀 젊어 보인다니까요 ㅎㅎ
 














1. 지옥을 재독하다

 

2년 전(2022), 그 유명한 단테의 신곡을 처음 읽었을 때, 신곡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가는 단테처럼 겸손했고 공부하는 자세였다. 오랫동안 도서관 독서동아리에 참여하여 주로 클래식을 읽다보니 고전에 대한 경외심이 나에게 기본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다. 노트에 1곡부터 34곡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며, 1원부터 제9원까지 죄를 지은 사람들이 각기 어떤 벌을 받는지 자세히 필사하며 읽었다.

 

2년 후(2024), 단테의 신곡을 재독하며 그때 필사한 노트를 꺼내보았다. ‘참 열심히도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용을 많이 잊었지만, 읽다보니 다시 기억났고, 주석의 해설 역시 이해가 잘 되었다. 지옥을 재독하며 계속 든 생각은 단테가 설계한 지옥 구조물의 형태와 내용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떤 죄가 어떤 단계에서 무슨 벌을 받는가가 중심 주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지금 단테의 신곡을 읽는 이유이다. 신곡에서 내가 무엇을 가져올 것인지, 신곡이 나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는 단테 신곡 강의에서 단테의 신곡을 읽는 일은 우선 클래식에서 배우는 것, 단테에게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휴머니즘즉 인간에게 고유한 것을 체득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단테(클래식)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단테가 묘사한 지옥은 표면적으로는 종교와 신에 의한 심판이지만, 내가 느낀 지옥은 그냥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었다. 지옥을 순례하는 단테역시 인간적인 모습을 여러 차례 보이고 있다.

 

각성, 새로운 출발, 또는 어떤 완성을 향해가는 길에서 인간은 인간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를 짊어지고 나아가야만 무엇이든 깨닫고 변화하게 된다. 그것이 지옥이다.

 

나는 죄를 짓고, 반성하고, 또 죄를 짓고, 반성한다. 단테가 상세히 묘사한 지옥을 생각하고 거기에 갈 생각을 하면 무섭지만 그래도 죄를 짓는다. 여전히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2. 고전의 유용성


작년, 딸아이와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혼자서 일정을 짠 딸아이는 고전을 열심히 읽는, 신곡을 읽은 엄마를 위한 이벤트를 하나 준비해 주었다. 마침 우리가 파리 여행을 할 때, 영국 로열 발레단이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에서 단테의 신곡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딸아이는 발레 공연을 미리 예매했고, 우리는 영국 로열 발레단의 발레를 관람할 수 있었다. 엄마를 위한 딸아이의 마음은 좋았지만 최대한 여행비를 아끼기 위해 딸아이는 비교적 값이 싼 무대에 가까운 박스석을 예매했다.

 

박스석에는 우리 둘 말고 외국인 모자가 같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정도 되는 남학생은 발레 시작 전과 지옥, 연옥을 지나는 두 번의 인터미션동안 내내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어떤 책을 읽느냐고 물어보니 단테의 신곡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 남학생의 엄마는 그 책을 수없이 읽는다고 덧붙여 말해주었다. 반면 나의 딸아이는 발레를 보기 전 신곡이 어떤 내용이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단테,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라는 세 인물과 간단하게 신곡의 내용에 대해 말해주었다.

 

공연장 천장이 샤갈의 멋진 그림으로 되어있는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는 분위기가 정말 클래식했고, 평일 낮이었는데도 관람객이 꽉 차 있었다. 신곡을 읽었기에 발레 내용을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적어도 단테,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다만 값이 싼 무대에 가까운 박스석에 앉아 무대 전체의 흐름을 잘 볼 수 없어 아쉬웠고,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얼굴과 발레는 바로 직관할 수 있어 좋았다.

 

신곡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딸아이와는 계속 신곡에 대해 얘기할 수 있었지만, 신곡 책에 빠져있는 남학생의 엄마는 그저 무심하게 앉아있어야만 했다. 이럴 때 신곡을 읽은 나는 유용한 사람이었다. 고전 읽기는 한 번씩 사람을 유용하게, 쓸모 있게 만든다.



 












3. 베르길리우스


로마의 대표 시인인 베르길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지시로 새로운 로마 건국 신화를 창작한다. 그리스 연합군에 의해 패배한 트로이아 사람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에서 조국을 재건하고자 한다. 아이네아스가 트로이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로마를 세우는 과정을 그린 서사시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아이네아스의 여정에 관한 시)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시의 첫머리에 호메로스와는 달리 무사여신에게 스스로 내가 노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한다.

 

[단테는 신의 노래를 그대로 번역한 호메로스가 아니라 베르길리우스의 입장, 즉 스스로 미토스(신화)를 창조하면서도 뮤즈의 여신에 의지해 노래한 위대한 시인을 모범으로 삼는다.

단테의 신곡은 유혹에 무릎을 끓을 것 같은 패배자의 신분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러므로 신곡의 출발점은 호메로스보다 베르길리우스에 가깝다.

-p.69. p.84, ‘단테 신곡 강의’]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신분이다. 그에게는 고향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 단테와 아이네아스의 공통점은 온갖 시련을 극복하여 다시 새로운 것을 완성해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단테가 길잡이로 베르길리우스를 내세운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

 

단테는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의 이름 앞에 온갖 미사여구를 붙인다. 지혜의 바다, 자애로운 아버지, 선한, 현자, 믿음직한 동반자, 모든 흐린 시선을 고쳐 주는 태양, 친절한 스승님, 어진 스승님.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데리고 지옥을 순례하며 힘들어하는 단테를 위로하고 그의 어려움을 해결해준다. 갈 길이 바쁜데도 죄인에 대한 호기심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단테를 혼내기도, 재촉하기도 한다.

 

 

 

같은 독서동아리 회원인 비아는 단테의 신곡을 읽고 나서 나에게 주는 생일 카드나 다른 축하카드에 꼭 나의 베르길리우스에게라는 문구를 써 준다. 말도 안 되고, 황송하며 감사하다. 어떤 동행에서든 길잡이는 결코 일방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나이와 헤쳐 온 삶을 떠나 길잡이는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 결국 친구가 되는 것이다. 단테에게 베르길리우스는 선하고 책임을 다하는 영혼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계속 남기를 바란다.


-어두운 숲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 단테를 길잡이 베르길리우스는 저승 세계로 안내한다.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무사히 지옥을 빠져나와 연옥산을 평온하게 바라본다.

 

 

4.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지옥 제5곡의 둘째 원은 음란함과 애욕의 죄인들이 벌 받고 있는 곳이다. 그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벌을 받는다. 프란체스카는 라벤나의 귀족으로 리미니의 귀족 잔초토와 결혼한다. 잔초토는 불구의 몸이어서 결혼식장에 동생 파올로를 대신 내보낸다. 프란체스카는 파올로를 사랑하게 되고 잔초토에게 발각되어 두 사람은 죽임을 당한다. 단테는 비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프란체스카와 파올로를 만나 그들의 사연을 듣는다. 단테는 그 영혼이 너무 가여워 정신을 잃고 죽은 시체가 넘어지듯이 쓰러진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지옥에서 계속 붙어 다닌다. 그들의 사랑이 너무 지극하고 억울해서 지옥에서나마 같이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본문에서 받은 느낌은 그렇다. 하지만 아무리 애틋한 사랑이라도 고난을 겪으며 같이 다닌다면 계속 행복할지 잘 모르겠다. 인간이나 영혼이나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사실 별로 많지 않다. 운명적인 것에 훨씬 더 좌우된다. 이래저래 인간이나 영혼은 가련하다. 단테의 마음과 쓰러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5. 지옥의 이미지-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단테는 지옥을 불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선홍색 불길, 영원한 불, 불그스름하게 물들인다, 불비, 온통 불타고 있다, 불꽃, 불의 도시, 불의 강.

 

지옥을 읽으며 지난여름에 봤던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계속 연상되었다. 마틴 에이미스 실화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지옥과 비슷하게 불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아우슈비츠의 소장인 루돌프 회스 중령의 사택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담장이 붙어있다. 이 영화는 수용소 안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회스의 사택과 그들의 가족의 편안함만 보여준다. 영화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안에서 들리는 소리로, 굴뚝에서 계속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로만 그 안의 상황을 보여준다.

 

나치는 인종청소를 위해 수용소로 계속해서 유대인을 보내고 가스실에서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 루돌프 회스의 머리는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하루에 최대치의 사람을 죽이고 그들을 불태울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사람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더 그런 생각에 몰두한다. 어떻게든 많이 죽이고, 많이 태워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야 히틀러가 원한 인종 청소를 원활히 진행할 수 있으니까히틀러에 대한 충성심으로 자신을 불태운다.

 

잔인하거나 직접적인 장면이 전혀 없었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지옥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는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고, 누군가는 왕과 같은 삶을 살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런 것을 인식하면서도 태연할 수 있는 태도였다.

 

내가 단테의 지옥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것은 인간의 죄 중 기만이었다. 이 단어의 뜻이 남을 속여 넘기는 것이라는 짧은 것이라 단순해 보이지만, 이 속에 내포된 의미는 수없이 많다. 타인에게 마음으로, 물리적으로 인간은 너무 많은 기만의 죄를 범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저질러지는 그런 기만이 섬뜩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에는 평범한 폴란드 마을이 있었다. 유대인들은 수용소 밖으로 나가 노동을 했다. 영화에서는 밤에 한 폴란드 소녀가 나치의 눈을 피해 유대인들이 노동을 하는 장소에 사과를 살짝 놓아두고 온다.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연옥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산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듯, 지옥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이 소녀처럼 작지만 용기 있는 온정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쉽게 보이지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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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1-21 17: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테신곡에 관해 쓰신 내용도 정말 좋구요, 더욱이 저는 오페라 가르니에의 샤갈 천장화가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것 같아요!ㅎ 눈 호강했습니다!

페넬로페 2024-11-21 19:00   좋아요 1 | URL
네,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오더라고요.
단테 신곡 지옥 읽었고
이제 연옥 시작했습니다 ㅎㅎ

전야제 2024-11-21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베르길리우스에게‘라고 불리우는 페넬로페님도, 그렇게 불러주시는 비아님도 정말 멋집니다. 단테의 신곡도 읽지 않은 고전인데, 이 서평을 읽고 저는 엄청난 숙제가 또 생겼습니다. 하지만 신곡을 읽을 생각에 설레기도 합니다ㅎㅎ 따님께서 어머님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저에게도 생생히 느껴집니다. 여행 일정도 다 계획하시고, 신곡을 읽은 어머님을 위한 발레 공연까지 예매하시다니. 저도 따님께 배워야겠어요ㅎㅎ 마지막 지옥의 이미지를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함께 제시해주신 글에서 참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요. 특히 ‘기만‘이라는 것이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조종하는 가스라이팅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경계해야만 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겨봅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2024-11-21 23:23   좋아요 1 | URL
자격도 되지 않는데 비아님이 그렇게 말해줘서 항상 고맙죠. 글로도 썼듯이 길잡이는 양방향인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신곡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책의 주석을 참조하고 조금씩 따라가면 될 것 같아요.

여행에서 딸아이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취향대로 다니지 못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엄청 고맙고, 계속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완전 강추입니다.
메시지가 너무 좋았어요
날씨가 많이 추워졌어요.
전야제님,
감기 조심하세요^^

꼬마요정 2024-11-21 2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따님 정말 멋집니다. 엄마를 위해 발레 공연을 예매하고... 샤갈의 그림이 천장화로군요. 뭔가 있어보입니다. 그림에 문외한이지만 좋아보여요!! 근데 왠지 신곡을 공연할 땐 천지창조 이런 거 그림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ㅎㅎㅎ

아, 저도 읽을 때 프란체스카와 파올로 이야기 너무 슬펐어요. 이런 것도 죄인가 했네요. 속인 게 누군데... 그나저나 ‘나의 베르길리우스‘라니... 이토록 장엄한 찬사가 있을까요. 정말 멋져요!! 불러주시는 분도 멋지고 말입니다. 아아 이 페이퍼는 온통 멋짐이 가득하군요!!!!

페넬로페 2024-11-21 23:27   좋아요 1 | URL
그림에 조예가 깊지 않았지만 천정화에 눈이 먼저 가고, 느낌으로 샤갈의 그림인 것 같더라고요. 멋졌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가 불쌍했어요. ㅠㅠ

저는 자격이 되지 않은데 그렇게 불러 주는 분이 착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가 ‘나의 베아트리체여‘ 라고 불러 주겠습니다^^

다락방 2024-11-22 0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 님.
같이 읽기 하니까 지금 읽는 부분에 대해 다른 분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제가 이미 읽은 부분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읽었고 제가 아직 읽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기대하며 읽게 됩니다.
게다가 나의 베르길리우스 라니요. 이건 단테의 신곡을 읽은 자들만이 알 수 있는거잖아요. 정말 짜릿합니다!!

페넬로페 님, 연옥과 천국편에 대해서도 이렇게 양질의 글 적어주시길 기다려봅니다. 후훗.

페넬로페 2024-11-22 13:51   좋아요 0 | URL
네, 다락방님, 빙고, 빙고!
같이 신곡을 읽었다는 그 교감이예요. 그게 중요하죠~~
정말 짜릿한 것 맞아요.
저는 이제 연옥으로 갔어요.
부지런히 읽겠습니다^^

잠자냥 2024-11-22 14:53   좋아요 1 | URL
˝저는 이제 연옥으로 갔어요.˝에서 빵 터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나도 11월 가기 전에 읽어야 하는데;;

그레이스 2024-11-23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너무 좋아요
다시 리마인드 중입니다.
언제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고전인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4-11-23 17:09   좋아요 1 | URL
재독하니 의미가 다르게 다가와요.
그리고 좀 더 쉽게 읽혀 좋아요.
그레이스님은 저의 베아트리체 이십니다♡♡♡

그레이스 2024-11-23 17:14   좋아요 1 | URL
에에엥~~?
반사! ^^
 
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0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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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가 상상하고 완성시킨 지옥이란 구조물은 문장과 그 의미가 깊이 어우러져 그것이 문학(literatura)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어쩌면 지옥은 사후세계가 아닌 지금 우리가 있는 세상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신을 향한 구원, 귀향, 나에게로의 길 등 끝은 달라도 시작은 여기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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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16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민음사판 신곡은 주석이 책 끝에 있어 읽기가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을 4개로~~
신곡만 고려했다면 당연히 5별이죠^^
 














단테는 신곡 지옥의 7곡에서 재화는 운명의 손에 들려 있건만, 우리 인간들은 그 때문에 처절히도 싸운다(p.71, 신곡, 민음사)’고 했다. 돈은 어차피 운명의 여신(포르투나)이 관리하니 인간이 아무리 아등바등 해봐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인간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오는 죽음은 그 시기도, 형태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은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죽음의 종류와 모습은 너무나 다양하다. 태초의 인간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간이 각자의 죽음에 대해 말한다면 아마 우주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뚫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번씩 죽음을 생각한다. 내 존재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이 아직은 두렵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사후세계, 그저 많은 이미지로만 축적된 어둠의 세계에 혼자 터벅터벅 걸어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다. 어쩌면 모든 것은 허상이고, 인간이 죽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죽음은 온전히 자신만이 직면해야 하는 것이기에 인간을 외롭게 한다.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는 짧은 시간에 엄청 많은 얘기를 들은 느낌이 드는 소설이다. 화자는 암 투병하는 친구와 그녀를 도와주는 자신 사이에 여러 다른 에피소드와 나(화자)의 생각을 뒤섞어 놓는다. 이 이야기들이 확실히 연결되지는(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않지만 멈춰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소설의 주된 소재는 늙음과 죽음이지만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유머러스한 표현들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 정말 맞는 말이야!’라며 크게 공감한 부분도 많다. 물론 슬프기도 하다.



작가인 잉그리드는 사인회에서 친구를 만나고, 그들의 친구인 마사가 암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간 잉그리드는 마사를 위로하고 자주 병문안을 간다. 마사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를 하지만 암은 다른 곳으로 전이된다. 마사는 병원에서 고통을 겪을 만큼 겪고 결국 자신이 암에 굴복하며 죽어가야 하는 현실을 거부한다.

 

마사는 불법 사이트에서 안락사를 위한 약을 구해놓고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실행할 때 옆방에 있어 달라고 잉그리드에게 부탁한다. 잉그리드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부탁을 부담스러워한다. 잉그리드는 마사와 병원에서, 또는 다른 장소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마사가 살아온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다. 뉴욕 타임즈 종군기자로서 전 세계의 전쟁터를 누빈 마사는 딸에게 충실할 수 없었다. 딸에게는 처음부터 아빠도 다른 곳에 있었다. 마사와 그녀의 딸은 서로 없는 존재처럼 살아간다.

 

많은 고민 끝에 친구를 이해하게 된 잉그리드는 마사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두 시간쯤 떨어져 있는 한적한 곳의 멋진 집을 대여해 그 곳에서 마사의 죽음을 준비한다. 죽음을 실행해야 할 마사와 죽음을 발견해야 할 잉그리드는 괴롭고 힘들지만 잘 극복해낸다. 마사는 옆방에 친구를 둔 채로의 죽음이 아닌, 잉그리드가 외출한 사이 햇볕이 잘 드는 벤치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죽음을 선택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잉그리드와 마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힘든 건 알지만 외롭게 죽기 싫어하는 마사가 이기적인 것 같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목격해야 하는 고통을 친구에게 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생각했다. 마사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고 최선을 다해 마사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잉그리드의 의도도 의심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엄청난 부탁을 순수한 마음으로만 들어줄 수 있는지, 혹시 잉그리드가 작가여서 나중에 글을 쓸 소재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며칠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나를 우울하게 했다. 계속 영화의 내용과 장면이 생각났다. 그러다 문득 잉그리드는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여기게 됐다. 타인에 대한 이해심이 많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착하다가 아닌, 자신이 받아들이고 결정한 것에 책임을 다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잉그리드였다. 그것은 타고 나거나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고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이타심은 각성으로 생겨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영화를 보고나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 방해를 많이 받는다. 책의 인물들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와 겹쳐 이미지가 고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과 영화는 서로를 상호 보완해주어 이해가 더 잘되게 해주었다. 배우 틸다 스윈튼줄리안 무어의 캐스팅도 절묘했다. 영화는 <어떻게 지내요>의 내용 중 친구와 화자만을 압축해서 다루었고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암이라는 병에 걸리면, 투병생활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환희와 우울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신을 원망하기도 하며 살아있는 세포까지 죽이며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암에 패배한 채 고통스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고문을 사서 겪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구토, 설사, 피로-끔찍해, 끔찍해-그리고 결국엔-

 

늙고 쇠약해진 게 아니잖아. 나는 평생 내 건강을 잘 챙겨왔는데, 그렇게 열심히 건강을 챙기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식을 먹어온 탓에 오히려 상황이 더 힘들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의사 말이 심장이 아주 튼튼하대. 그게 내 몸이 계속 싸워 나갈 거라는 말이 아니면 뭐겠어? 숨이 끊길 때까지 내가 시달리고 또 시달리게 될 거라는 뜻이지. -p86~87]

 

이런 아이러니가 허탈하다. 건강을 잘 챙겨왔지만 암에 걸렸고, 몸은 끝까지 암과 싸울 것이라는 사실이.그것만이 아니다. 주변에서는 잘 싸울 수 있다고, 온 힘을 다하고, 애를 써서 암과 싸우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한다. 암을 선물이자 정신적 성숙의 기회, 자기 자신도 몰랐던 자질을 발달시킬 기회로 생각해라, 최고의 자아에 이르는 여정의 한 단계로 생각하라(p.132)’고 부추긴다. 물론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암에 걸렸다고 무조건 포기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완치되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그것이 어떤 방식이든,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병에 걸리거나 죽을 때, 우리는 철저히 타자화된다는 것이 팩트인 것이다. 작가 시그리드 누네즈가 다소 두서없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그런 타자화에 대한 단 하나의 대안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웃에게 어떻게 지내요(What are you going through)’라고 물어봐 주는 것, 그것만 해줘도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Quel est ton tourment?)

p.122]

 

소설의 끝은 영화와 달리 명확하지 않다. 화자는 그저 어떻게 지내요를 계속 실천중이다. 전 남친에게 비난받아도 그저 묵묵히 정말 딱 당신답게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를 유지하고 있다. 그냥 그것으로, 그 정도면 된 거다. 더할 나위 없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쳐다본다. 마사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죽은 사람들의 마지막 문장을 암송한다. 소설에서는 조이스의 다른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눈은 어두워진 중앙 평원 전역, 나무 없는 언덕들, 앨런 습지에 부드럽고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더 멀리 서쪽으로 소란스럽게 흘러가는 시커먼 섀넌 강의 물결 위에도 조용하고 부드럽게 내리고 있었다. 눈은 또 마이클 퓨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의 외로운 교회 묘지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눈은 비뚤어진 십자들과 묘석들, 작은 문의 창살들, 앙상한 가시나무들 위에 두껍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눈이 부드럽게 살포시 전 우주에, 살포시 부드럽게,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 하듯이, 모든 산 자들과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더블린 사람들’, 중 '죽은 사람들', 제임스 조이스, 열린책들]

 

죽은 사람들에는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있다. 게이브리얼은 30년 동안 연말 파티를 열고 있는 두 이모에게 다가올 죽음을 본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한, 육욕의 대상자인 아내 그레타의 마음에 오랫동안 죽은 남자가 들어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는 살아있는 사람도 망령이 되고 이 세상 모든 것과 심지어 죽은 것들에게도 관용이 적용되는 사실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눈과 평판을 의식하고 위선을 떨며 사는 것이 죽음에 이르러서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게이브리얼은 그제서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마지막 종말을 향해 하강하는내 삶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이 중요한가?

 

만약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선택한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옆방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견디며, 최선을 다해 병과 싸워 이겨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친구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그런데 옆방에 있어주지는 못할 것 같다. 난 무섬을 많이 타는 편이다. 너무 무서울 것 같다. ‘친구야, 미안해, 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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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1-15 19: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과 좋은 영화가 잘 어울어진 정말 좋은 글을 좋은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즐거운 금욜 저녁 되십시요!ㅎ

페넬로페 2024-11-15 21:59   좋아요 2 | URL
책은 끝부분 마무리가 약간 그래서 호불호가 있는 것 같아요. 기회 되시면 영화를 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막시무스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요^^

새파랑 2024-11-1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었었는데 별 네개였습니다 ㅋ 어떻게 지내냐라는 안부를 물어보는것 만으로 위로가 되더라구요. 영화가 더 재미있나 보군요~!!

페넬로페 2024-11-16 18:57   좋아요 2 | URL
책이 약간 어수선 하잖아요 ㅎㅎ
반면에 영화는 하나의 주제로 압축시켜 놓아서 좋았어요.
각색과 연출을 잘 했더라고요.
배우들의 연기는 말할것도 없고요.
책도 나름 괜찮았어요^^
새파랑님!
어떻게 지내요?

새파랑 2024-11-16 19:57   좋아요 2 | URL
ㅋ 저는 정신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여유가 생길거 같습니다~!!!!

전야제 2024-11-16 1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안락사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어서 페넬로페님 리뷰 읽고 넘 신기했어요. 덕분에 어떻게 지내요, 더블린 사람들 두 소설 알게 되서 안락사라는 주제에 대해서 폭넓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영화부터 당장 보고 싶지만요ㅎㅎ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4-11-16 20:53   좋아요 1 | URL
영화나 책에 안락사에 대한 내용이 많고, 최근에 안락사 캡슐에 대한 것도 있어 점점 더 관심이 커질 것 같아요.
근데 여기의 두 주인공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인것 같아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소설과 영화가 죽음을 많이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죽음은 참 공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야제 2024-11-16 23:34   좋아요 1 | URL
저는 그동안 편협하게 안락사에서 죽음을 결정할 주체에 대한 문제만 생각해왔는데 죽음은 공평하지 않다는 페넬로페님의 통찰 덕분에 접근성에 대한 것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네요. 역시 페넬로페님의 글 너무 좋아요ㅠㅠ 많은 공부가 되고 있어요! 소개해주신 소설들 읽어볼 생각에 도서관가는 길이 두근거리네요ㅎㅎ 감사합니다!

청아 2024-11-16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행복에 관한 국가별 조사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그 첫번째 조건을 돈으로 꼽았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몇년째 그대로라고.

이 영화 저도 봐야겠어요. 아마 저도 영화를 먼저 보게 될 듯 합니다^^*

페넬로페 2024-11-16 20:55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만 유일하게요?
정말 씁쓸하네요. 점점 더 암울해질 것 같습니다.
영화, 꼭 보세요.

청아님!
어떻게 지내요?

그레이스 2024-11-17 00: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사논지 꽤 됐는데,,, 아직도 못봤네요,
게다가 더블린 사람들은 읽었는데,,, 그 문장들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ㅠㅠ
영화관 가는걸 좋아하질 않아서,,, 시간이 지난 담에 봐야겠어요^^

페넬로페 2024-11-17 00:57   좋아요 2 | URL
아, 진작에 구매해 놓으셨군요.
책에는 조이스의 다른 문장이 나와요, 읽으시고 어느 소설 구절인지 가르쳐 주세요 ㅎㅎ
영화에서 조이스의 문장을 암송하는데 저는 여지껏 뭘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암송도 못하고 돌아서면 까먹고요 ㅎㅎ

희선 2024-11-19 0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영화로 법 이야기 하는 게 생각납니다 그런 걸 생각하다니, 예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과 함께 있었던 사람 이야기를 봐설지도... 자살방조죄... 이건 어떤 벌을 받을지... 영화나 소설은 그런 걸 쓰기도 해야겠지요 어떤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하기도 하는데, 지금은 또 그런 게 별로네요 힘든 사람한테 힘내서 살라고는 안 할 것 같습니다 아무 말도 못할 것 같아요

사람은 잘 지낸다기보다 무언가에 고통 받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잘 지내냐고 하면 그냥 그렇지 하잖아요 그렇다고 무엇에 고통 받고 사느냐고 묻지도 못하겠네요 그냥 잘 지내냐고 하겠습니다


희선

페넬로페 2024-11-19 08:36   좋아요 0 | URL
네, 법에 관련된 문제도 있어 안락사가 쉽지 않더라고요. 이 소설과 영화에서도 그 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어요. 특히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이런 주제에 더 심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니까요.
누구나 다 고통받고 살고 있는데 그럼에도 타인에게 잘 지내냐고 물어볼 수 있는것도 인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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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영화(룸 넥스트 도어)가 서로 방해되지 않고 보완적이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영화가 에드워드 호프의 그림 같은 느낌이라면, 소설은 사람 사는 모습과 감정을 다양하게 보여주어 인간미가 있다. 읽는 내내 죽음을 생각했지만, 신랄하고도 유머러스한 문장 덕분에 무겁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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