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나 평론가들의 산문을 읽다 보면
그들은 세상을 한없이 ‘들여다 보는 사람‘ 같다.
동시대를 살며 똑같은 사건과 슬픔과 억울함을 보지만
그들은 내가 보는 것과 달리 본다.
달리 보지 않는다면
그런 엄청난 문장들이 나올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이 보고 새겨보고 다져보면
이렇게나 시린듯 명료하고 절제되고 먹먹한
글을 쓸 수 있냔 말이다.
김애란 작가의 문장 역시 그렇다.
작가의 소박하면서도 번뜩이는 문장에 공감하고
그 탁월한 표현에 정말 적절하다고 맞장구를 쳐준다.
소설가는 소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의 말을 들으며 한번씩 아니 항상
난 그들 자체가 궁금하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이 진하게 궁금해진다.
김애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은
그 궁금증을 조금 풀어준다.
처음에 작가의 어머니가 운영한 ‘맛나당‘ 이라는 칼국수집부터 소개된다.
이 ‘맛나당‘은 작가의 단편소설인 ‘칼자국‘에서도
소개되었는데 그 작품에
˝어머니는 국수를 눈 감고도 썰 수 있었다. 오른손이
칼질을 하는 동안 왼 손 손가락 두 개는 칼 박자에 맞춰
아장아장 뒷걸음쳤다.˝ㅡ‘침이 고인다‘ p155
식구들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시작한 칼국수집, 맛나당에서의 반복된 노동으로 인한
어머니의 칼솜씨의 경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가족들,학창시절에 들은 듀스의 노래,
고향의 풍경들을 발판삼아 성장해왔고
그것이 김애란이란 소설가의 토양이 되었다.
김연수,편혜영,윤성희등 동료작가들에 대한 글들과
언제 들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세월호와 쌍용 자동차해고자들의 얘기속에 이 사회와 사람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보이기도 한다.
나와 너와 우리를 부르는 이름들은 잊기 좋지만
그 잊음의 무심함에, 편안함에 슬쩍 기대고 싶진 않다.
정신차리고 세상을 들여다보며 이 모든 이름들을
기억하고 불러야겠다.
[세상 많은 고통은 사실 무수한 질문에서 비롯된다는 걸ㅡp124]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ㅡp141]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중요한 질문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ㅡp181]
[이해란 비슷한 크기의경험과 감정을 포개는 게 아니라
치수 다른 옷을 입은 뒤 자기 몸의 크기를 다시 확인해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ㅡp252]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ㅡp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