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열전'을 읽고 있다. 처음엔 사기의 형식에 익숙하지 않아 읽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읽어 갈수록 익숙해져서 책장이 잘 넘어가기는 한다. 하지만 내 손안에 쥐어진 모래알이 빠져나가듯, 다음 장으로 가면 그 전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다. 많은 에피소드와 인물이 등장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인것도 같지만 절대적인 배경지식의 부족이 원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시대의 역사를 다시 공부하고 지도도 찾이보았다. 유튜브와 네이버 열린 연단의 '사기열전' 강의도 들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 도 그런 이유로 같이 읽기 시작하였다.

 

문득 중학교 시절, 한국사와 세계사 선생님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국사 선생님은 수업을 하실 때, 그 넓은 칠판에 한 번 빽빽히 판서를 하시고, 그것을 지우고 두 번째 판서를 하시면서 열정적으로 가르치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항상 그 전 시간 수업 내용을 물어보시기 때문이다. 질문하는 순서도 정해지지 않았다. 그 날의 날짜와 같은 번호가 될 수도 있었고 그 날짜의 그 다음 번호가 될 수도 있었다. 복불복으로 한 사람이 지목되면 그 다음에 앉은 사람, 또는 대각선으로, 그 옆으로 순서대로 죽 질문하셨다.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학생은 세워두었다가 마지막에 등짝이나 목덜미를 한 대씩 때리셨고-그것도 당신의 손바닥으로- 그렇게 맞고서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가 있었다.

요즘엔 상상할 수도 없는 선생님의 폭력이었지만 그땐 그게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들었지만 오히려 좀 재미있었다. 가르치는게 엉망인 것이 아니라 훌륭히 수업을 하시는 분이 그런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시기에 우리는 국사를 공부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들 선생님을 존경했었다.

 

국사 선생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세계사 선생님은 무척 유머가 있으셨다. 항상 우리를 웃겨주시면서 직접적인 세계사의 내용과 더불어 그 배경에 대한 얘기를 구수하게 들려주셔서 언제나 세계사 시간은 재미있었다. 그 두 분 선생님 덕분에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역사를 좋아했고 열심히 공부했었다. 다시 중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니 그때가 생각나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은 중학교 시절의 세계사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 같다. 책 내용 곳곳에 '사기'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사기를 바탕으로 여러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구성한 듯 싶다. 소설이지만 역사에 대한 것이기에 다큐멘터리나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재연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떤 것이 작가의 상상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고, 작가의 사관도 궁금하지만 일단은 그냥 읽었다.

 

'항우와 유방' 1은 진시황 '정' 이 중원 6개국을 정복하고 중국을 통일한 시기부터 시작되고 있다. 진시황의 중국 통일로 전국시대는 끝을 맺고 각 나라는 진의 행정조직으로 재편된다.

 

그 전까지 중국 대륙은 수많은 왕국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통일이란 오히려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그가 중국 통일이라는 터무니없는 일을 저지르자 사람들은 너무도 비현실적인 사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p15

 

각 나라의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유민이 되어버렸고 권력은 오로지 황제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시황제는 중앙집권과 법치주의를 내세워 폭정을 일삼았다. 형벌을 내리고 세금을 거두며 각종 토목공사의 명목으로 백성들에게 노역을 강제했다. 그로 인해 유민들의 불만이 많아졌고 이것은 언제라도 반란의 싹이 될 수 있었다.

 

'진시황의 결정적 패착은 모든 백성을 자신의 사유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노역의 현장으로 내 몰았다는데 있었다.-p68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은 황당하게도 온량거를 타고 순행하던 수레안에서 죽고, 환관 조고가 황제의 막내아들 호해를 내세워 권력을 잡는다.

 

양자강 이남의 강남은 중국의 변방지대이고 황하지역의 중원과 언어와 풍속도 달랐다. 진정한 한족이라 인정도 못받을 정도로 그들은 그들 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항우는 BC223년에 멸망한 초나라 사람이었다. 초의 유명한 장군 향연의 후손으로 항우의 숙부인 항량에 의해 교육받았다. 항우는 강남 사람을 일컫는 형만이었지만 중원 문화를 배운 집안의 자손으로 키가 8척이나 되어 일단 외모에서 압도적인 인상을 주었다. 육체적으로 초인에 가까운 조건을 가졌고 민첩하고 직관력이 뛰어났으며 힘도 무척 셌다. 항우는 희대의 명장이었다.

 

항우보다 15세가 많은 유방은 패현 중앙리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유방의 '방'은 형 또는 언니를 부를 때 사용하는 말로 그는 이름조차 변변치 못했다. 거의 문맹 수준이었던 유방은 아는 것은 별로 없었고 허풍쟁이였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작가는 이것을 '귀여움' 또는 '애교'라고 표현했다.

 

그 감탄하는 모습에는 애교가 넘쳤고, 그 애교는 그냥 그대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덕을 느끼게 하였다. 그래서 유방이 나아가는 곳마다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서로 신하가 되겠다고 자청하는 것이었다.-p256

 

그 시대는 '종횡가' 라 불리는 책사 또는 유세가들의 활약이 많았고 필수적 이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그리고 공적으로는 천하의 쟁패를 위해 의견을 제시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어떤 유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결정되었다. 유방은 그들을 보는 선구안이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능력있는 관리를 찾아내는 눈과 그들을 크게 대우해줄 수 있는 배포를 가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진나라의 횡포가 심해져 초나라의 농민 출신인 진승은 우연히 진나라에 대한 봉기를 일으키고 그것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시작된다.

 

'진승은 거대한 진 제국을 향하여 돌팔매질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돌팔매질이 걷잡을 수 없는 눈사태를 일으키고 있었다.'-p163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서로 뭉쳤다가 배반을 거듭한 끝에 결국 초나라의 후예인 항우의 주력군은 거록성으로, 유방의 별동대는 관중으로 향한다. 거록성에는 연승을 거듭한 진나라 '장한' 의 20만 부대가 버티고 있었다. 항우의 7만 부대는 그들과 대적할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경포의 선공과 항우의 용맹함으로 초는 거록에서 승리하고 장한은 항우에게 투항한다.

 

한자 '坑' 은 '구덩이' 또는 '구덩이에 묻다' 라는 뜻이다. '분서갱유' 에서의 갱은 유교를 금지하고 법가주의 사상을 지향한 진시황이 유학자 460명을 산 채로 구덩이에 묻어버린 것을 뜻한다. 항우도 갱을 좋아했다. 숙부 항량과 같이 활동하던 시기에 그는 몇 천 명에 달하는 항복군을 포박하여 성 밖 구덩이에 산 채로 묻어버린다. 거록성 전투에서의 승리후에도 진나라 병사와 초나라 병사간의 반목이 시작되자 진나라 병사 20만을 갱해버린다.

 

보통 대학살은 병기를 사용하는 법인데, 그럴 때는 살륙이 중노동이 된다. 항우는 피학살자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그들 스스로의 의지로 죽음으로 나아가게 하는 아주 교활한 방법을 구사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대학살극이었다.-p355

이 일로 항우는 민심을 잃는다. 원한에 사무친 그들의 가족은 유방에게 기울어진다.

 

몇 만의 사람들이 움직이려면 먹어야 하고 잠잘 곳이 있어야 한다. 그것의 대부분은 백성들을 약탈하고 그들의 등골을 빼먹으며 조달한다. 식량을 빼앗긴 백성들은 유민이 되고, 유민이 갈구하는 것은 오로지 식량이었다. 대소 영웅호걸들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줌으로써 그 자리를 보장받았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 역시 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우리들에겐 먹거리와 잠잘 곳이 필요하다.

 

역사의 결말을 이미 알지만, 유방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2권에서 기대해본다.

 

 

***아!

컴퓨터 절전모드 상태에서 로그아웃된 것도 모르고 다시 돌아와 신나게 써서 등록했지만 내 글을 찾을 수 없어 중간부터 다시 썼다. 포기할까 하다가 아까워 그냥 썼다. 허탈감과 피로가 몰려온다.

글을 찾는 다른 방법이 있었던 건가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0-11-30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없는 것 같아요.ㅠㅠ 저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알라딘 임시저장 기능을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건 그렇고, 그래도 다시 쓰신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페넬로페 2020-11-30 13: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글이 날아갔을때의 암담함이 다시 떠오르네요 ㅠㅠ
그곳에서도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겅하시기 바랍니다^^
 
농담 밀란 쿤데라 전집 1
밀란 쿤테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보통 한 개인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그 농담이 받아들여지든, 아니면 예상치도 않게 그것이 악의로 해석되어 그 사람에게 내팽겨쳐지든 그것만으로 끝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라고 마르케타 개인에게 보낸 루드비크의 농담은 그렇게 끝내지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열정적으로 믿고 신뢰하고 그것을 위하여 몸바친 어떤 사상과 주의를 바탕으로 조직된 단체에 의해 문제가 되고, 그것으로 인해 배반당하고 축출된다.

 

체코의 1948년 2월혁명 후, 젊은이들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고 그 모습은 경직되고 심각했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여러 학습 모임들이 조직되어 빈번한 모임을 가지고 모든 조직원들에 대하여 공개적 비판과 자아비판이 행해졌다. 가벼운 행동과 미소마저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 나는 정말 누구였을끼?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여러 모임에서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확신에 찬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는 제멋대로에다 짖궃었으며, 마르케타하고는 온갖 노력을 다하여 냉소적이고 궤변적이었다. 그리고 혼자일 때면,(마르케타를 생각할 때면) 나는 겸허했고 중학생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이 마지막 얼굴이 진짜였을까? 아니다. 모든 것이 진짜였다.-p55~56

 

여러 얼굴을 가진, 누구나가 다 그럴 수 있는 평범한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의 사랑을 얻기 위해 농담을 적은 편지를 보낸다. 문제는, 마르케타가 어떤 것의 저 너머를 보는 것이 불가능했고 오직 사물 자체만을 볼 수 있는 여자였다는데 있다. 결국 그 농담으로 루드비크는 당에서 축출되고 학업의 지속을 금지당하고, 최악에 속하는 검정표지를 받아 광부로서 군복무를 하게 된다.

 

루드비크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이 던진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실이었다면 그것이 굉장히 위험한 말이라는 것을.

그래서 루드비크는 그것을 농담이라고 했고 자신의 사상과 신념이 그 조직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단단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줄 안 것이다. 거기서부터 루드비크의 불행은 시작된다. 그 불행은 루드비크의 모든 것을 빼았았다. 예상도 하지 못한,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해 뒷통수를 맞은 인간은 나락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상당히 삶이 억울할 것이며 그 분노로 인해 쉽게 용서할 수 없다. 그렇게 이해하며 루드비크의 루치에에 대한 사랑을 생각해본다.

 

'잊혔던 일상이라는 초원, 소박하고 가난한, 그러나 충분히 사랑할 만한 한 여인, 루치에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

유배당한 루드비크의 삶에 구원처럼 나타난 루치에를 루드비크는 사랑한다고 믿었고 자신의 욕망과 행위가 '사랑'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랑이라서 당연한 그 행위가 루치에에게는 왜 당연하지 않은지 루드비크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질문해보지도 않았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떠나서는 삶은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루드비크는 결국은 권력을 갈망했으며 자신의 여자는 성녀처럼 순결하며 구원을 가져다주어야한다는 그렇고 그런 이기적인 남자에 불과했다.

 

루치에는 코스트카에게 루드비크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루드비크를 만났고 묘지에 있는 꽃을 훔쳐다 그에게 준다. 남녀간의 흔한 사랑은 아니라도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라는 한 인간을 불쌍히 여겼고, 어긋났지만 사랑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돌고돌아 먼 훗날 루드비크는 깨닫는다.

코스트카가

'즉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 쪽으로 향하고, 나에게 와 닿는 쪽에서만 그녀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와 직접 관련이 없는 모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그녀 자체의 모습, 그녀 혼자만의 모습에 대해서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을 해냈지만 자신은 그렇게 히지 못했다고 깨닫고, 마지막에 속죄를 함으로써 분명 루치에는 루드비크의 구원자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은 다양할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첫 장편소설 '농담'은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코스트카가 화자가 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루드비크와 연관이 있다. 작가 개인의 삶이 이 작품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 그런지 문장 군데군데에 괄호로 부연설명이 많이 되어 있다. 초보자가 행할 수 있는 무수한 설명인지 아니면 무척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누구나 살면서 삶을 살아가는 당위와 이유를 가진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포장하는 가면이 되기도 한다. 코스트카에게는 종교가, 헬레나에게는 자신의 신념이. 야로슬라프에게는 전통이 그런 것이다. 그 선택들은 지극히 각자의 것이지만 다만 그것들이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한 변명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잃어 나락으로 빠진 루드비크는 억울함과 패배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복수를 꿈꾼다. 그러나 결국은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친구 야로슬라프를 찾아간다. 농담이 놈담이 될 수 없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불행이며 치욕적이다.  

 

언젠가부터 난 누군가로부터 오해받고 상처받기 싫어 농담을 안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이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고 비겁한  것 같아 싫었다. 그러나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훅 들어가 그 사람의 약함과 치부를 보고 당황하며 돌아서기 보다 그냥 그 언저리에서 머물며 기다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괜찮은 것일수도 있지 않을까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그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멋진 농담을 준비해놓고 말이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은 들떠 올라서 내려버릴 수 없는 나의 정신에 차분함을 주었다. 이 소설로 가을의 느낌을 만끽했고 현재의 가을과 함께 했다. 고맙다.

쓰러진 야로슬라프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루드비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을 환하게 밝힌 구급차이다. 그 빨간 불빛속으로 들어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 돌아 본 나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10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농담리뷰 당선 축!카 ㅋㅋ

쿤데라 ‘불멸‘ 읽고 있었는데 흠,

프랑스로 망명하기전에 작품들 체코어로 쓰인 농담-참을수 없는 존재들-불멸들이 최고작들인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0-12-10 23: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쿤데라의 작품들을 다 읽고 싶은데 왜이리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없는지 모르겠어요~~
scott님의 ‘불멸‘ 후기 기대할께요^^

페크pek0501 2020-12-23 14: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선 축하드립니다. ^^

서니데이 2020-12-23 17: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립니다.^^
 
가정간편식 -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요리책을 들여다본다. tv만 틀면 맛있게 먹어되는 먹방이 난무하고, 요리앱이나 유튜브에서는 레시피가 가득하다. 그러나 막상 끼니마다 뭘 해먹으려면 오늘은 도대체 뭘 만들어 먹을까를 고민한다.

 

요리에 관심도 재주도 없는 나는 그 무슨 베짱인지는 모르지만 밖에 나가서 사먹는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식당을 갈지 선택하는 것도 귀찮고 막상 가도 그 맛이 그 맛이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서 요리를 한다. 한 번 요리를 하면 몇시간 싱크대 앞에서  노동을 하고 그것을 며칠씩 울궈먹는다. 우려먹다, 울궈먹다라는 말이 요리에서 시작된 것이라, 이럴때 참 절묘하다. 딸아이는 이런 나의 습관에 질색하지만 시간에 쫓기며 사는 나에게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다.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가정 간편식'은 요리 재료에 대한 기본 상식, 재료별 요리 레시피, 한그릇 요리, 간식등이 소개되어 있다.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변화되었고 세상살이가 간편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건강과 먹거리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 책은 집에서 부담없이 간편하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재료준비가 간단하고, 먼저 양념을 배합해 놓고 그것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요리를 만든다. 책의 한 페이지에 요리 하나씩이 소개되어 있어 굉장히 쉽게 보인다.

 

간편하고 쉽게 보여도 음식이란 것을 만들려면 그 과정이 만만치 않다. 재료 준비도 힘들고 양념도 고루 갖춰 있어야 한다.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것의 성과는 적다. 먹어버리면 없어지고 다음 끼니가 또 들이닥치니 참 허무하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 우리들은 또 요리책을 들여다보고 끙끙대며 앞치마를 두른다.

 

'가정 간편식'은 요리를 많이 해본 사람이 보기에는 좀 부족하고, 요리 초보자에게 적당할 수 있겠다. 요리에 대해 하루하루 발전하고 이것 저것 해먹고 싶은 분에게 추천하고 싶다. 많이 멋부리지 않고. 소박하고 적당한 요리가 있어 부담이 없다.

 

한번씩 시청하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큰 그릇에다 맛있는 재료를 넣고 쓱쓱 버무려 찰지고 맛깔나는 음식을 뚝딱 해내시는 대한민국의 여인들이 경이롭고 부럽다. 이 생에서 나에게 그런 재주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그나마 요리책이라도 보며 힘겹게 살포시 만들어내는 나의 요리가 그래도 대견하다. 간편하고 쉽게 한그릇 뚝딱...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08-18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음식을 못해서 요리 잘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저는 저 혼자의 입만 건사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가 만든 밥은 뭔가 맛이 없더라구요....

페넬로페 2020-08-18 2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이버님!
정말 그렇다니까요~~
저도 제가 한게 맛이 없어요 ㅎㅎ
그래도 더운 여름에 입맛 떨어지면 안되니
혼자라도 잘 해드세요^^

서니데이 2020-08-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텔레비전에서 한국인의 밥상이 나오고 있어요.
음식 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든 일 같아요.
먹을 때는 잘 모르지만,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페넬로페님,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0-08-20 23:5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에 건강 조심하시고
우리 코로나 위기를 잘 견디자구요!


페크pek0501 2020-08-21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집밥이 최고죠. ^^

페넬로페 2020-08-22 00:16   좋아요 1 | URL
네 정말 그런거 같아요~~
가족들과 같이 먹어서 그런거 같아요^^
 

 

 

 

 

 

 

 

 

 

 

 

 

 

 

소설가, '김금희' 가 쓴 산문들은 조용하다. 직접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세상과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게 한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들에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교차하는 것 같다. 작가의 가족과 어린 시절의 얘기들, 책과 영화,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살짝 아프게 드러내 놓았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아픈 것들을 손에 꼭 쥐고 그것들을 글로 써주는 사람이 소설가가 아닌가 한다. 드러내지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어떤 진실 같은것을 소설가들은 서술해준다. 치열하고 힘들게 새겨진 글자들은 나에게 편견없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 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우리의 얼굴이란 다 젖었다가도 마르고 어두워졌다가도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p152

 

저렇게 절절한 소설가의 바램을 들으며,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먼저 경외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은 그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곁을 떠나간 글들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글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다.

 

알라딘의 북플에서 1년 전 쓴 나의 글들이 올라온다. 공개적인 매체에 글을 쓴 지 벌써 1년이 됐나보다. 그동안 책을 읽고, 특히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으며 '나쁨'에 대해 지겹도록 알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책이 나에게 많은 행동의 변화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책을 읽느라 가족과 사람들에게 소홀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을 읽으며 가난에 대해 몸서리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상대적이겠지만 나의 가난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 는 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쁘지 않게 살아가야하는 것인데 한번씩 책이 나를 좀먹게 하고 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도 더 착하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는 것에 좀 더 책임을 가지고, 글을 쓴 분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글을 허투루 읽지 않기 위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힘들게 힘들게 조금씩 채우고 있고 더디지만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나의 지인중에-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다- 뜨개질을 잘 하는 분이 있다. 그녀는 힘들게 뜨개질을 해서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준다.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숄더백과 사용하고 있는 카드 지갑과 파우치는 그녀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귀한 것을 받기만 해서 송구스런 나에게 그녀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에는 '흥성스러운'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떠들며 계속 흥겹고 번성한 분위기라는 뜻인데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한 단어를 익히며 갑자기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흥성스럽게 책들을 읽고 글들을 써내며 활기차게 떠드는 곳이 알라딘 서재가 아닐까 한다. 손재주가 없어 뜨개질을 할 수 없는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더 많이 읽어라고 흥성스럽게 자극하는 곳이 이곳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가. 이러니 매순간 배워나갈 수 밖에 없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에 다행스러워 하면서. 그런 마음들을 기꺼이 배우겠다 다짐해보면서.-p79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우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0-08-07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어요. 이 책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1인입니다.

2020-08-0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곡 2024-03-29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2020 이젠 꽤 오래 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얼마안남은 이달 잘보내시길요!!

페넬로페 2024-03-29 18:06   좋아요 1 | URL
2020년이 정말 아득하게 느껴지네요.ㅎㅎ
세월이 너무 빠르게 흐르는 탓인 것 같아요. 서곡님께서도 남은 3월, 잘 지내시길 바래요^^
 

 

 

 

 

 

 

 

 

 

 

 

 

 

언제부터인지, 왜 그런건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닭을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직접 공수되어온 닭은 덩치가 크고 위풍당당했다. 마당 한구석도 아니고 중간 쯤에 다리가 묶여 있던 닭이 흉물스러워 쳐다보지도 못하고 피해다녔다. 엄마는 닭이 도착하면 바로 요리를 하지 않고  몇 날 며칠씩 묶어 놓곤 했다. 마당에 닭이 있다는 것 자체가 영 불편했다. 그런 닭이 싫어 닭 몸뚱이가 그대로 들어 있는 삼계탕을 먹지 못했다.

 

살아있는 닭이 죽어 음식이 되는 과정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자라면서 한번도 아버지가 닭을 잡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살아있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고 끓는 물을 부어 닭의 털을 뽑아내고 내장을 제거해 엄마는 닭 요리를 했다. 아주 어린 소녀였을 엄마가, 처녀로 자라고, 시집 와 아기를 낳았을 엄마는 언제부터 닭 모가지를 비틀 수가 있었을까?

 

딸아이가 생일 선물로 사준 책, '코스모스' 를 읽고 있다. 700여쪽에 달하는 이 두꺼운 책은 생각보다 잘 읽힌다. 문장의 힘이 대단하다. 읽는 동안 딴 곳으로 생각을 돌리지 못하게 코스모스의 문장은 쉽고 친절하다. 무구한 세월동안 서서히 이루어지는 이 광대한 우주의 변화 속에서 우리 지구는 정말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을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지긋지긋한 일상을 이어가야만 한다.

 

초복인 오늘, 난 집에서 삼계탕을 끓였다. 닭 모가지를 비틀지는 못하지만 마트에 포장되어 있는 닭을 사와서 손질은 할 수 있을 정도로 용감해졌다. 여전히 닭에 대한 감정은 그대로여서 고무장갑을 끼고 만질 수 밖에 없다. 내가 해 준 삼계탕을 맛있게 먹고 있는 식구들을 쳐다본다. 식구들을 먹이기 위해 용감해진 나는 그대신 우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코스모스에 나오는 여러가지 신비하고 과학적인 단어들은 '내일은 뭐해서 먹일까?' 라는 문장에 묻혀버린다.

 

가족들을 먹이기 위해 그렇게 용감하셨던 엄마는 40대 후반쯤에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때쯤은 누구나 마트나 시장에서 손질된 닭을 살 수 있었지만, 어쨌든 엄마는 종교의 영향으로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닭요리를 좋아하는 딸아이때문에 오히려 내가 살생되어져온 닭을 계속 살생한다.

 

이 드넓은 우주의 한 점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나도 그렇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0-07-17 09: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스모스와 닭모가지가 이렇게도 만나네요. 저도 결혼후에 그렇게나 좋아했던 닭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됐어요. 손질이 어렵더라구요. 요리되어 나올때는 몰랐던 세계가 있더라구요.
잘 읽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0-07-17 12:05   좋아요 0 | URL
코스모스와 닭모가지!
좀 황당하죠~~
그래도 어쨌든 우리와 닭은 우주의 질서속에서 살아가니까요^^
어제 백숙을 끓이며 머릿속으로
생각난 것들을 글로 옮기고 싶었어요^^

페크pek0501 2020-07-18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복에 삼계탕을 먹었어요. ㅋ 그러고 보면 인간들의 잔인성이 느껴져요.
저도 닭과 새를 무서워합니다.

페넬로페 2020-07-18 14:45   좋아요 1 | URL
복날에 왜 삼계탕을 먹어야하는지 그 유래가 궁금해지네요 ㅎㅎ
먹고 사는 문제가 참으로 중요한 인간으로서 삶이 주는 무게가 크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