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 바깥 복도에서 여자아이가 앙증맞게 조잘대며 타다다다 엘리베이터로 가볍게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8시 40분쯤, 내가 사는 11층 복도에서 거의 매일 들리는 소리다. 아이는 즐겁게 어린이집에 간다. 잠깐이지만 아침마다 들리는 그 소리가 너무 활기차고 귀여워 현관문을 열고 나가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배웅해 주고 싶다. 그 아이의 밝고 환한 기운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 아이는 언제쯤, 사는 것이 힘들고 세상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생각지도 않은 엄청난 일에 고통과 좌절을 겪게 되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고, 지겹도록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먼 훗날 인식하게 될 것이다. 아이와 전혀 상관없는 관계지만 내가 그 시기를 늦추고 막아주고 싶을 만큼 아이는 순수하고 예쁘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다가 아이의 소리를 듣고 뜬금없이 든 생각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모두 음울하고 슬퍼 미안하게도 (모든)아이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본 것 같다.
소설에서 삶의 다양성을 읽어내야 하는 것은 독자의 의무이다. 거기에서 오는 여러 감정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힘들다. 최근에 출간된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인생 2부쯤에 맞이하는 허무하고도 쓸쓸한 이야기라면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인생 1부에서 겪게 되는 외롭고도 허전한 삶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인생 1부가 힘들면 인생 2부 역시 좋을 수가 없지 않을까.…
작가가 글을 쓰면서 제목을 정하기가 정말 힘들 것이다. 제목과 내용이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에 대한 이유가 명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제목부터 심각하다. 처음엔 소설인지도 몰랐다. 물리학에 대한 개론서로 자꾸 착각하게 되어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내가 과학 중 물리에 가장 약하다는 사실을 작가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소설을 읽는 내내 고민하게 만들었다.
빛은 직진하면서도 반사와 굴절면상에서 꺾인다. 우리가 물질을 인식할 수 있는 건 빛이 있기 때문이다. 물질은 그대로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반사에 의해 들어온다. 나에게 어떤 물질이 중요하든 그것은 우리가 직접 보는 것이 아니다. 반사된 빛으로만 물질을 볼 수 있기에 빛이 더 중요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헤더, 로버트, 콜린의 관계를 대비시켜 보았다.
십년 전 물리학과 기말고사에서, 시험지에는 짧은 방정식 하나만 타이핑되어 있다. 다른 표시나 지시 사항은 보이지 않는다. ‘모든 학생의 이해의 수준을 넘어선 물리학이 관여되어 있다는 정도로만(p.89)’ 알 수 있는, 어려운 문제에 황당해진 학생들은 항의의 표시로 자리를 뜨지만 헤더만 끝까지 앉아 문제를 풀고 있었다. 거기에서 교수인 로버트와 학생인 헤더와의 관계가 시작된다.
로버트(아내와 별거 중)와 헤더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로버트의 아파트에서 만난다. 만나서 차나 와인을 마시며 편하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한다. 헤더는 로버트에게 따뜻함을 느낀다.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거나 재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신뢰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지만 지금 가진 것을 잃지 않기 위해 ‘우정’이라는 자리에 억지로 머물려고 한다. 이 책에 서술된, 로버트의 아파트에서 나누는 헤더와 로버트의 대화와 그들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낡고 좁고 퀴퀴한 곳이었지만 ‘글렌 굴드’의 테이프를 들으며 젊은 헤더의 고민과 이제 늙음만이 남은 물리학자인 로버트의 깊이 있고 위트 있는 말들이 의미심장했다.
헤더는 파티에서 로버트와 완전 대비되는 콜린과 만난다. 의대생이며 수영 선수인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고, 여름이면 태양을 벗삼는 사람 같은 주근깨 피부를 가진(p.97)’ 소년 같은 매력이 있는 젊은 남자이다. 콜린은 헤더를 사랑하게 되고 미래를 함께 하고 싶어 한다. 헤더는 콜린을 계속 만나면서 로버트도 만난다. 어느 순간 콜린은 로버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헤더를 놓지 않는다.
남녀 간의 사랑의 완성은 육체적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이다. 육체적인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여자는 자신이 남자에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것이 남자의 사랑에 대한 어떤 방식으로의 보답이라고 여긴다. 헤더 역시 콜린을 사랑한다고 깨닫고 옷을 벗고 콜린 옆에 눕고 그들은 사랑을 나눈다. 헤더는 거기에서 사랑에 대한 확신과 정념을 느끼기보다 정확히 ‘콜린만한(p.104) 삶과, 그에 따른 미래만을 인식하게 된다. 헤더는 로버트와 사랑을 나누겠다는 마음을 먹고 그가 없는 아파트로 가서 옷을 벗고 그의 침대 속에서 두 시간동안 누워 그를 기다린다. 헤더가 온 것을 모르는 로버트는 그 날 아파트로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그때 헤더와 로버트가 사랑을 나누었다면 그들의 미래는 바뀌어졌을 수도 있지만, 헤더는 역시나 ’로버트만한‘ 삶밖에 알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연애에 별로 소질이 없던 내가 가장 의문스러웠던 점은 남자들은 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내 친구가 그랬다. 인성이나 의리가 좋지 않고, 싸가지도 없었는데 그녀 앞에 와서 사랑고백을 하고 우는 남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국 강남에 있는 큰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를 아버지를 둔 의사와 결혼했다. 헤더 역시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거기에서부터 그녀의 우울증은 시작되고 인생이 불행하지만 그것은 그녀 자신의 선택이었기에 명백히 어쩔 수 없다.
가끔씩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을 생각한다. 그들이 그냥 사랑만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면 어땠을까? 배우로, 감독으로 더 많은 명성을 얻었겠지만 김민희 역시 우울증을 앓았을 수도 있다. 헤더와 김민희 배우는 각자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그 어떤 선택에도, 또한 그들이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행복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이 양다리의 정석이다. 계속 마음에 뭔가를 남겨두고 미련으로 남는 한, 나머지 인생이 즐거울 리가 없다.
모든 인간의 관계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으로 성립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인간이나 사물을 나의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인생의 무수한 잘못된 선택을 가져오게 한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완전한 선택이라는 것이 있을 리도 없다. 이 책에 들어 있는 다른 단편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같이 놀다 갑자기 내 앞에서 사라져 죽음으로 돌아 온 친구, 아버지의 부재, 사춘기 형의 반항, 아미시 공동체에서 온 여자 아이, 누나의 고민.…이런 운명적인 것들에 내가 개입하고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지만, 우리는 순간적으로 잘못한 그 선택에 대해 평생 후회를 하고 회한에 빠져 산다. 그래서 우울하고 비관적이 되며 의욕을 상실한다.
이 책에 실린 앤드루 포터의 소설들은 다 좋았다. ‘사라진 것들’보다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이 더 깊이가 있었던 것 같다. 단편 소설로도 긴 장편을 읽는 느낌과 생각할 거리가 많이 주는 것이 앤드루 포터 소설의 힘인 것 같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인생’이라는 그 씁쓸하고 우울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댈 수 있었던 것, 한번쯤 그런 감정에 푹 빠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작가가 간접적으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의 독서력을 유일하게 높게 평가해주는 남편이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와, 이런 책을 다 읽어?” 하며 놀라워한다.
“이 책 어렵겠지?
…………
근데 사실은 소설이야, 헤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끝내준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채워줄 수 있다거나 당신을 구원해줄 수 있다고-이 두 가지가 사실상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추정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나는 콜린과의 관계에서 그런 식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는 다만 그가 나의 일부, 나의 중요한 일부를 채워주고 있고, 로버트 역시 똑같이 나의 중요한 또 다른 일부를 채워주었다고 믿을 뿐이다. 로버트가 채워준 나의 일부는, 내 생각에, 지금도 콜린은 그 존재를 모르는 부분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만큼 파괴도 시킬 수 있는 나의 일부다. -p.125]
'2024 서울 국제 도서전'에 참가한 <앤드루 포터 작가>
작가 사진-연합 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