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본 건 국문학을 전공한 언니의 책장에 꽂혀 있던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라는 책의 제목을 통해서였다.(물론 민음사판의 이 책은 아니다) 도대체 ‘버지니아 울프’가 어떤 사람이기에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한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 책장의 주인인 언니는 사진 찍기에 빠져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고, 대신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그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이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그냥 제목이 워낙 강렬해 책이 눈에 띄었고,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사실 ‘버지니아 울프’와는 별 상관이 없다. 디즈니 만화영화인 ‘세 마리 아기 돼지’에 나오는 동요의 가사 중, wolf를 Woolf라는 동음이의어를 사용해 치환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렇게 가사를 바꾼 노래는 희곡의 몇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대학가 어느 술집의 화장실 거울에 쓰인 낙서를 보고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러한 낙서를 한 대학생은 그 당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었을 것이다. 읽고 페이퍼를 제출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누가 그녀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 역시 두렵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의 제목에 ‘버지니아 울프’를 빼고, 이 세상에서 악명 높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탈린’이나 ‘히틀러’를 넣어도 두려워하지 않을 조지와 마사 부부가 있다. 대학 총장의 딸인 마사와 역사학과 교수인 조지는 장인이 주최한 교수파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서로를 헐뜯으며 싸우기 시작한다. 거기에 마사가 초대한 닉과 허니부부는 처음엔 그 싸움의 구경꾼이었지만 점점 그 싸움과, 조지가 하고자하는 게임에 빠져들게 된다.
[조지; 마사의 아버지는 자신의...교수진이....이곳 벽에 껌처럼 붙어 있기를 원하지....담쟁이덩굴처럼 말이야.....여기 와서 늙어 가기를....근무하다가 차례로 순직하기를 바라지.]-p40
[마사; 이사회 만찬에나 기금 모집에나....쓸모가 없더란 말이지. 인간적인...매력이 있길 하나.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아빠에게는 실망스러운 일이었겠지. 그렇게 해서 난 여기서 이 얼간이와 껌처럼 붙어 있게 된 거야.]-p74
사랑해서 결혼하더라도 살다보면 서로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데릴사위의 역할을 해주기를 원했던 마사는 조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벌레에다 배짱도 없고 권력을 원하지도 않는 조지는 대학 총장의 사위의 역할에 걸맞지 않다. 반면 조지는 마사와 장인을 속물로 취급하며 천박하다고 생각한다. 조지는 어릴 때, 실수로 그의 부모를 죽이게 되는데, 아무도 그의 아픔을 감싸주지 않는다. 속으로는 곪아가지만 겉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부부사이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술로 견뎌 거의 알코올 중독자가 되다시피 한다. 하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폭발하고, 과격하게 선을 넘어 극단으로 치닫는다. 악마와 마녀의 연회인 <발푸르기스>의 밤이 그들에게 시작된다.
[조지; (기괴한 흥분으로) 아주 간단하지...사람들은 자기 모습을 감당할 수 없을 때, 현재를 감당할 수 없을 때, 둘 중 하나를 하게 되거든....나처럼 과거를 들여다 보거나....아니면 미래를 바꾸기 위해....작업하지. 뭔가를 바꾸려면...퍽! 퍽! 퍽! 해야 되는 거야!]-p145
생물학과 교수인 닉은 조지와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는 권력을 잡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처음엔 점잖게 행동하지만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조지가 벌이는 재미난 게임에 참가하면서 점점 위선과 욕망을 드러낸다. 조지와 닉은 이 사회에서 팽팽하게 대립되는 두 측면의 대변자이기도 하다. 조지는 닉에게 당신들은 문명과 사회와 도덕, 질서, 정부와 예술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그 속에다 넣고 모든 것을 획일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다. 조지는 그러한 것에 매몰되지 않고 끝가지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고 베를린을 사수하겠다고 한다. 조지가 말하는 베를린의 사수는 권력에 도달하기 위해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 파렴치한 것들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역자 해설에서 ‘베를린의 사수’는 세상의 쓸모나 효용 가치와는 거리가 멀지만 느리고 편안한 세상을 상징한다고 한다.)
결혼생활 내내 원했지만, 전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마사와 조지 부부는 가상의 아들을 만든다. 어떤 불안과 허전함을 있지도 않은 아들을 통해 풀고 있었다. 술과 함께 아들이라는 존재 역시 그들의 흔들리는 가정을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였다. 마사와 조지의 <발푸르기스의 밤>에 그들은 숨겨왔던 가상의 아이를 꺼낸다. 그들은 그 아들의 나쁜 점을 서로의 탓으로 돌린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상의 세계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탓한다. 우리는 사실 있지도 않은 것들을 위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허비한다. 허상의 세계에서 그것을 사수하기 위해 서로를 죽이고 비판하고, 전쟁도 불사한다. 하지만 그 세계에서 진정한 승자는 없다. 극단으로 치닫는 조지와 마사 역시 누가 먼저 잘못했고, 누가 더 나쁜지 알 수 없다. 그들에게 남은 건 허탈과 수치이다. 자신의 순수함을 강조하고 타인의 권력욕을 비난한 조지 역시 좋은 사람은 아니다. 마사의 말대로 그는 수용, 순응, 조절을 통해 자신의 환경을 싫어하면서도 그들을 떠나지 못했고, 게임이라는 잘못된 것을 내세워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조지가 계속적으로 내뱉는 ‘진혼 미사 기도문’으로 그들의 관계는 죽음을 맞이했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역자의 해설에는 이들이 밤새 격렬하게 속살을 물어뜯는 싸움을 하는 것은 진정한 소통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미국적 낙관주의가 지배하는 드라마라고 한다. 하지만 난 역자의 해석에 별로 수긍이 가지 않는다. 올비의 희곡을 상징으로 해석해 작가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연극이란 본래 현실의 반영인 것도 사실이다. 술을 통한 솔직함은 본래 그 술이 깨기 시작할 때 더 가슴에 사무치기 마련이다. 새벽이 오고 날이 밝아지면 사람들은 이성을 찾기 마련이고 곰곰 어젯밤의 일들에 대해 속기하기 시작한다. 닉과 키스하고 그와 2층으로 올라가는 마사의 행동을 조지는 잊지 못할 것이다. 또한 마사 역시 자기를 그렇게 내 몬 조지를 용서할 수 없을지 모른다. 별로 변하지 않을 마사와 조지 부부에게 그 어떤 희망을 보기는 힘들다. 한 번씩 솔직함보다는 가상의 세계가, 너무 속살을 드러내기보다 침묵하고 참는 것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마사; (흐느끼듯) 잊어버렸어! 가끔...가끔 밤이 되어 아주 늦은 시각이 되면...다들...다들...얘기를 하고 있으면...난 잊어버리고...아이 얘기를 하고 싶어져...하지만....난 참지....참아...하지만 너무 자주...그러고 싶었어...오, 조지, 당신이 그렇게 부추겼어...그럴 필요는 없었는데...이럴 필요는 정말 없었어...내가 아이 얘기를 했다고...그래, 좋아...하지만 이렇게까지 몰고 갈 필요는 없었어. 당신은...아이를 죽일 것까지는 없었어.] -P190
마사는 닉에게 평생에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준 사람은 조지 단 한 사람뿐이라고 한다. 서로 사랑하면서, 그 관계의 유지를 위해 수많은 곁가지가 붙어야하고, 그것들이 서로의 무기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건 아마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고전을 잘 이해하기위해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읽어온 나에게 현대의 희곡이 무척 신선했다. 물론 이 희곡도 어려워 두 번이나 읽었지만 그래도 고대 비극보다는 쉬웠고, 나름대로 나의 상상력이 미칠 수 있었다. 좋은 책은 많이 읽을수록 더 좋은데,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등장인물의 말투나 행동들이 너무 적나라해서 나의 별점이 4개였지만, 재독했을 때 그 의미와 인물들에 빠져들어 결국 별점을 5개 주었다. 그러니 책이란 읽을수록 위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희곡이라는 장르는 읽는 내내 무대를 생각하게 한다. 각각의 장면마다 감독과 배우들이 이 내용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 길고 많은 대사를 배우들이 어떻게 다 외우는지도 신기하다. 희곡이란 연기를 위하여 쓰인 문학작품이지만, 훌륭한 작품들은 꼭 무대에 올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아주 좋은 글이다. 에드워드 올비의 이 작품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에게 많은 의미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