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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쟁과 평화 연대기
김영미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아니 귀찮게 뭐 하러 아파트는 사서 투자를 하고, 주식을 하고, 귀찮게 무슨 재테크를 해요.
내가 지금 노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노후 자금까지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인간의 내일은 신만이 알 수 있고, 이 일은 나에게 평생의 숙명입니다.”
우연히 유튜브로 시청한 tvn의 ‘유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영미 PD는 저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그녀의 이름과 <국제분쟁 전문 PD>라는 이력이 새로웠다. 20여 년간의 세월동안 세계분쟁지역을 다니며 취재한 ‘김영미‘라는 사람을 그 날 영상으로 잠깐 만났지만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무엇이 그녀를, 한 번 가기도 어려운 험난한 지역으로 가게 했을까도 궁금했고, 내일 당장 죽을지 몰라 노후대책까지도 필요 없게 만들 위험한 지역으로 자꾸 가게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지도 알고 싶었다.
김영미 PD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되어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는 20년 전 취재차 갔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된다. 그곳에서 만난 다른 나라 학생들이 ‘듀랜드 라인’에 대해 얘기하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서 벌어지는 분쟁의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는데 정작 거기에 있었던 한국 학생들은 그 토론에 참여할 만큼의 지식도 관심도 없었던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또한 1년 중 평균 9개월가량을 외국에서 보낼 때, 혼자 있을 아들을 위해, 그의 친구들과 또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틈틈이 정리했다고 한다.
[지식은 교과서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학교나 학원에서만 배우는 것도 아닐 터이다. 다양한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의 경험도 많이 들어서 우리 아이들이 인류애와 인권을 고민하고 세계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 해법도 찾았으면 한다. 팔레스타인 친구와 아랍의 역사를 토론하고, 영국 친구와 벨푸어 선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롤로그에서]
그런 저자의 바램대로 이 책은 쉽게 쓰여 있어 이해가 잘된다. 읽는 동안 막히거나 어려운 문장이 없었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전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해 잘 정리가 되어 있어 이번 기회에 확실히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저자의 취재로 직접 본 것을 전하며 그녀의 경험과 인터뷰에 대한 것도 담겨있다. 분쟁이 일어나는 각종 이유와 거기에 얽힌 여러 이권의 개입도 나와 있다. 각 지역에 대한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 단순히 분쟁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문화, 감정도 들어 있다. 이 책을 제일 먼저 딸아이에게 읽도록 권하고 싶었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대물림되는 전쟁>, <독립을 위한 전쟁>, <더 가지고 싶은 자의 전쟁>, <가난이 부른 전쟁>이라는 네 종류의 섹션으로 나누어지며 각각의 섹션에 해당하는 나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각 나라마다 시작은 지도와 함께 그 나라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있다. 책의 하단에는 시대별 역사의 흐름이 연도별로 띠 모양으로 되어있고, 중간 중간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 비교하기가 좋다. 소개되는 나라와 지역은 레바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동티모르, 체첸, 카슈미르, 쿠르드족, 이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에라리온, 소말리아, 콜롬비아, 미얀마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의 시아파와 수니파, 백린탄이나 집속탄, AK-47이라는 듣는 것조차 무시무시한 무기에 대한 설명과 함께 사진도 있다. 309페이지 정도의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지만 여기에 많은 것이 들어 있어 놀랍고, 무척 유익했다. 이 많은 분량을 이 정도로 압축하고 이해가 쉽게 쓸 수 있었던 건 아마 김영미 PD의 발로 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그럴 것이다.
각 나라마다 분쟁의 이유는 다양하다. 거기에 너무 많은 것들이 존재해서 이 책에서 서술된 것들을 이 지면에 다 옮길 수가 없다. 다만 저자가 서술한 분쟁의 이유들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거기엔 끝없는 폭력이 있다. 종교에 대한 갈등도 많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종교가 있는 그 어디라도 돈과 무기를 대어주어 갈등을 부추긴다. 언제나 싸우는 당사자들보다 피해가 고스란히 민간인들에게 돌아간다. 특히 여자와 아이들은 그들의 끝없는 희생양이다.
이러한 분쟁지역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나라가 있다. 물론 여러 나라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 미국, 러시아는 빼놓을 수가 없다.
[영국은 인도와 교역하는데 250년, 점령하고 통치하는 데 25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철수하는 데는 겨우 70일이 걸렸을 뿐이야. -p131]
영국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자신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철수한다. 그 과정에서 ‘듀랜드 라인’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사상 초유의 분쟁 지역으로 만들어 놓았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의 패권 전쟁으로도 무수한 피해자들을 양산시켰다. 미국은 특히 남미 지역에서도 뜨거운 폭력과 살상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중동지역과 체첸의 석유 통제권을 얻고자, 러시아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미국은 러시아의 체첸 침공을 서로 묵인하여 주었다. 아주 오랫동안 식민 통치를 받았던 지역의 ‘친 식민주의자’들 역시 문제가 많다. 그들은 나라의 독립을 오히려 반대하고 제국주의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독립을 원하는 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다. 또한 막상 독립이 되어서도 정치적 후진성로 사회적 인프라의 기반이 약해 주민들은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어 그들은 아편을 키우고 해적이 된다.
이라크 주민의 70퍼센트가 이슬람 시아파를 믿는데,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수니파를 믿는다는 이유로 시아파 교도를 강력하게 핍박하고, 이란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영국에서 독립할 당시 카슈미르는 하나의 독립 왕국이었다. 그런데 국왕의 황당한 결정이 카슈미르 분쟁의 시작이었다. 파키스탄이든 인도든 한 나라를 선택해야 했는데, 카슈미르 인구의 70퍼센트가 이슬람교를 믿었지만 국왕이 힌두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인도를 선택해 분쟁을 스스로 자초했다. 도대체 종교란 것이 무엇이기에 그들은 저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나 국왕이 국민들의 생각이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저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으로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전혀 납득할 수 없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민주화운동에 몸 바쳤던 ‘아웅산 수 치 여사’는 로힝야 문제를 방관했다.
[나는 수 치 여사를 보며 아무리 민주화 투사라도 정의를 제대로 보고 배우지 않으면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수 치 여사는 아웅 산의 딸로서 살았고 영국에서 공부했지만 인권 의식을 제대로 배우지는 못한 둣해.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야. ....정의는 머리로 알더라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단다.- p297 ]
한 번씩 책을 읽으며 이렇게 수많은 인식들만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를 생각하며 무력감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김영미 PD의 "공감대만 있으면 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느끼는 바가 클 수 있다.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 대한 정보가 좀 더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으며 더 많은 책을 읽고, 소식을 접해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들이 쌓여야 우리가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 사람에 대한 공감을 더 잘 할 수 있게 된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로만 세상의 소식을 알게 되던 때가 있었다. 그땐 거의 전 국민이 9시 뉴스를 시청하며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영상 매체가 다양해진 요즘, 오히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었다. 세상의 소식과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눈을 돌리지 않는다.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욕망만을 좇아가며 내가 아닌 남의 불행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세계의 무수한 재난이나 내전 지역도 이 자본 때문에 생겨나기 때문에, 그 화살이 언제 우리를 겨눌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책을 읽는 도중 뉴스는 계속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속보를 쏟아낸다. 20년에 걸친 아프간 전쟁을 미국은 끝내고, 미군 철수 발표 4개월 만에 탈레반은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입성했다. 그동안 친 정부쪽의 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탈출을 시작했다. 또다시 많은 난민이 생길 것이고, 아프가니스탄 내에서는 엄청난 후폭풍과 함께 피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다. 거기서 가장 희생되는 사람은 여성이다. 히잡, 부르카, 차도르, 아바야등 그 이름으로는 구별도 잘 안 되는 이 옷들이 얼마나 많이 여성을 억압하고 그들을 가둘지 암울하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분쟁지역의 농민들은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아편을 키운다. 그들에게 양귀비나 코카나무는 그저 식물이다. 그것을 키우는 것이 왜 나쁜지 알지 못한다. 납치와 마약의 나라라고 불리는 ‘콜롬비아’에는 농부들이 이러한 코카나무대신 카카오나무를 심어 수입을 얻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리가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나 남미산 카카오 초콜릿을 구입해 먹을 이유이다. 코카나무를 재배해 100원을 벌면, 카카오나무를 통해 200원을 벌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불편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한다면 그래도 세상은 조금 나아질 것이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많은 복합적이고 난해한 문제점들에 대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을지 모르지만, 작은 것에서부터 출발해 뭔가 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좋은 출발이 될 수 있다.
김영미 PD가 남수단에 취재하러 갔을 때 GPS가 터지지 않아 어떤 남수단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그분이 “당신이 가는 곳이 다 ”길“ 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들이 하지 않고 가지 않는 길을 용기 내어 20년 동안 다닌 그 ‘김영미의 길‘들로 우리는 생생하고 정확한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맙다. 이제 또다시 그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부디 안전하게만 다녀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