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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막는 제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우리는 대체로 ‘사람이라면 ~~~~ 해야 한다’고 규정된 것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척박한 곳에서 척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그 기본적인 것조차 지킬 여력이 없다. 불행이 거듭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사람들의 행동을 일반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출구가 없는 삶의 여러 단면을 말해주고 있다. 처음 읽은 ‘뒤라스’의 문장은 불행을 열거한 내용에 비해 담담하고 건조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매력적이기도 해서 책을 읽는 순간부터 몰입해서, 소설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나라의 모든 것을 긁어모아 수탈해가는 제국주의자들은, 그곳에서 유토피아적인 삶을 살고자 희망하는 자국의 사람들에게까지 강제로 빼앗은 남의 나라 땅을 불하하며 뒷돈을 요구한다. 그래야 좋은 땅을 내어준다.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던 쉬잔과 조제프의 순진했던 어머니는 그동안 고생하며 모든 돈을 다 투자하여 인도차이나 캄보디아 해안 지역의 땅을 불하받는다. 그러나 불하받은 땅은 경작이 불가능했다. 매해 7월에 바닷물이 밀려와 수확을 앞둔 작물들이 그 물에 잠겨 버린다.(p23) 어머니는 그곳의 농민들과 함께 태평양 남중국해의 바다에 맹그로브 통나무로 방조 제방을 쌓아 밀려오는 바닷물을 막고자 한다. 어머니는 땅을 저당 잡히고 대출받은 돈으로 담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광적인 희망으로 마침내 오랜 마비 상태에서 깨어난 평야의 농부 수백 명이 온 힘을 쏟아 부어 제방을 쌓았는데, 그 제방이 태평양 파도의 단순하고 가차 없는 공격으로 단 하룻밤 사이에, 마치 카드로 쌓은 성처럼 그대로 무너져 버린 광경을 어느 누가 비탄과 분노 없이 떠올릴 수 있겠는가? 또 어느 누가 도대체 그런 어처구니없는 희망이 왜 생겨났는지 밝히기보다는 그냥 모든 것을, 그 평야를 지배해 온 비참한 가난부터 어머니의 발작까지 모든 것을 운명적인 그날 밤의 사건 하나로 설명하고 싶은, 천재지변이라는 간략한, 하지만 매력적인 설명으로 만족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 낼 수 있겠는가? -p28]
크지 않지만 ‘태평양’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있는 바다에 그저 통나무로 방조 제방을 쌓는다는 것은 누가 생각해도 무모하다. 그 무모함은 이성에 의해 제어되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의 출구와 대안이 없는 사람들은 무모함이라는 것에 가진 것 전부와 심지어 목숨을 걸 수도 있다.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어머니는 병이 들어 발작을 하고 자식들에게 고함을 지르고 악을 쓰기만 한다. 한 번씩 그 분을 삭이지 못해 딸 쉬잔을 계속 때리기도 한다. 희망을 잃은 조제프와 쉬잔 역시 무기력하게 하루를 보낼 뿐이다. 그들은 그저 누군가가 비포장도로에서 나타나 도시로 데려다 주기만을 기다린다. 얼굴이 예쁜 쉬잔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남자들에게 몇 번 키스를 받기도 한다. 그런 그들에게 조 씨라는 식민지에서 일확천금에 성공한 전형적인 투기꾼의 외아들(p64)이 나타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예전에 보았던 영화, ‘연인’이 연상되었다. 내용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에 나오는 모습들과 이 소설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도 소녀가 중국인을 데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제방을 쌓았던 바다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연인’과 마찬가지로 <태평양을 막는 제방>도 ‘뒤라스’의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책의 표지는 십대의 뒤라스의 실제 모습이다. 작가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족들이 겪었던 것을 쉬잔의 가족들을 통해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비겁하고 철면피이며 뻔뻔하기까지 하다. 남이 사주는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 떠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으로 숙성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모습으로 그들을 평가하고 비판해서는 안 된다. 어머니는 결국 조제프를 떠나보낸다. 쉬잔은 그를 따라간다. 그들의 떠남이 불행의 연속이 아닌 새로운 희망으로 비치는 이유는 그들이 결코 나쁜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친근하지는 않지만 측은함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진정성이 있다.
작가는 자신들의 모습뿐만 아니라 더 열악하고 고통만을 안고 사는 그곳 식민지 농부의 삶을 자세히 여러 부분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것들의 여과 없는 표현에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사실 아이들은 죽어야 했다. 평야는 좁았고, 여전한 어머니의 바람과 달리 바다는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물러나지 않을 터였다....그런데 바닷물이 어디까지 올라오든 아이들은 악착같이 태어났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어야 했다. 만일 몇 년 동안 죽지 않으면 들판은 아이들로 가득 찰 테고, 다 먹일 수 없는 그 아이들을 개에게 주어 버리거나 숲 어귀에 데려다 놓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호랑이들마저 아이들을 먹는 게 신물이 나서 더는 잡아먹지 않으리라. -p120~121]
마음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채 웃을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웃음에 더 크게 웃게 되고, 헛헛하게 변한 웃음이 결국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을 불러낸다.
마치 영화 ‘애정만세’의 마지막 장면처럼.
이 소설이 딱 그 느낌이다.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봐요. 다가오는 해에 만일 내가 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면, 다시 한번 실패할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없으면 당신들을 죽이라고 시키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남겠습니까? -p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