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인들의 지켜지지 않는(처음부터 지킬 생각도 없는) 선심성 공약을 좋아하지 않는다. 행동보다 말만 앞 선 사람도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평생 호강시켜주겠다는 남편의 말도 믿지 않은지 오래다. 그런 나에게 2021년은, 내가 양치기 소년이 되는 해였다.
읽겠습니다.
꼭 읽어야겠어요.
찜합니다.
궁금해서 읽고 싶어요.
이 책이 감동적일 것 같아 읽어야겠네요.....
알라딘 서재 친구분들이 올려주시는 책에 대한 글들에 매번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책을 구입하고, 도서관에 희망도서를 신청하고, 직접 가서 빌려오기도 했지만 거의 99%정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좋은 책들을 읽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서재 친구분들처럼 많은 책을 읽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읽고 싶은 욕망과 읽고자 하는 의욕이 더 앞섰다.
2, 올해는 도스토옙스키 작가가 탄생한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그는 182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위대한 작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그의 작품 하나쯤은 읽어야 작가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독서 동아리 12월 필독서로 ‘백야’가 선정되어 올해가 가기 전에 도작가의 작품을 읽을 기회가 생겼지만, 사실 ‘백야’는 1년 전부터 내가 꼭 읽어야 할 숙제 같은 책이었다.
3,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가족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주량이 많이 약해진 탓에 맥주 두 캔 정도를 마시고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진 그 때 북플을 클릭했고, 마침 scott님의 ‘백야’에 대한 페이퍼(하얀 밤에~~)가 올라와 있었다. 난 늘 하던 버릇대로, 술기운에 더 씩씩하고 호기롭게 “내년에 꼭 ‘백야’ 읽겠습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읽겠다고 다짐한 책이 수없이 많지만 왠지 ‘백야’만큼은 올해가 가기 전에 무조건 읽어야만 할 책이 되었다. 결국 이 책을 읽었고, 그저 이것으로 1년 동안 저지른 양치기 소년(페넬로페)의 행동이 모두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4, 표제작이 <백야>인 ‘열린책들‘의 단편집에는 도작가의 초기작, 7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열린책들 35주년 기념판인 ’NOON‘ 시리즈 중 한 권인 ’백야‘가 저절로 읽은 책이 된다. 뭔가를 공짜로 얻은 기분이다. 10권 중 아직까지 4권만 읽었는데 한 권이 저절로 클리어되어 기분이 좋다. 하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다.
5, 《백야》
친한 사람도 없이 늘 혼자인 이 소설의 ‘나’는 뻬쩨르부르그에서 외롭게 지내는 몽상가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그 도시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관찰하고 생각에 빠지며 자신만의 몽환적인 세계를 만들어 그 속에 칩거한다. 백야로 날이 저물지 않던 밤에, 그는 우연히 ‘나스쩬까’라는 여인을 만난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달라는 나스쩬까에게 자신은 <몽상가>라고 소개한다.
[나는 타입입니다...타입이란, 글쎄요, 독창적인 인간이죠. -p245
이 모퉁이에서 영위되는 삶은 우리 주변에서 끓어 넘치고 있는 삶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이 심각하기 짝이 없는 우리 시대가 아니라 저기 어딘가 먼 미지의 왕국에서나 있을 법한 삶입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순수한 환상과 불타는 이상에 둔감하고 산문적인 어떤 것, 유감스럽게도 나스쩬까, 그리고 믿을 수 없이 범속하다곤 할 수 없지만 좌우간 평범한 어떤 것이 혼합된 그런 삶입니다. -p247]
그는 나스쩬까와 만난 두 번째 밤에 장장 책 20페이지 정도 분량으로 몽상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삶을 얘기해준다. 그가 ‘타입으로의 몽상가’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것은 선택만으로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몽상가라는 것이 자신의 기질로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도 도시를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 핀으로 옷이 연결되어 할머니 옆에서만 머물러야만 하는 나스쩬까... 고통과 상처로 반복되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적으로 땅에 발을 붙이고 살 수 있는 현실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환경에 의해 저절로, 또는 스스로 이방인이 된 사람들에게 몽상이나 망상은 “감정의 자극도, 신기루도, 공상의 기만도 아니고 정말로 현실에 존재하는 진정하고 본질적인 것이라 믿고 싶은(p257)”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선택된 몽상에는 후회와 초조함도 존재한다.
[세월은 얼마나 빨리 흘러가는가! 그리고 또다시 묻습니다. 그래, 너는 이 세월 동안 무엇을 했는가? 너의 황금 같은 세월을 어디다 묻어 버렸는가? 살아 있었던 거냐 아니냐? 그런 다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조심하라고, 세상은 점점 냉혹해지고 있어 몇 년 더 지나면 또, 우울한 고독이 뒤따를 거야.....
오, 나스쩬까! 혼자, 전적으로 혼자 남는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겠지요. 심지어 아쉬워할 것조차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잃어버린 모든 것도, 지금의 모든 것도,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요. 어리석고 동그란 원, 그저 한낱 꿈이었으니까요! -p263~264]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로 인해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나 역시 ‘백야’의 나처럼 길을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경우가 있다. 몽상에 자주 빠지며, 기분이 좋지 않을 때에는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의 숨겨진 입으로 어떤 말이 나올 때도 있다. 이 시국에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이 도시의 변화는 끝이 없다. 내가 사는 곳을 경계로 새로 생긴 신도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층의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다. 그곳에 많은 것이 생기니 이곳도 낡은 건물이 헐려 새 건물이 들어서고 리모델링의 현수막이 걸린다. 세상의 모든 것이 들썩인다는 느낌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뻬쩨르부르그가 그랬고, 나쓰메 소세키의 도쿄가 그랬으며 지금 나의 도시가 그렇다. 그 들썩임에 동참할 수 없는 사람들은 200년 전, 100년 전, 지금도 존재하고 아무도 그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세상은 발전하고, 아프리카에서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백신을 넘겨받아 폐기하고, 한국의 대선 정국은 진흙탕에 떨어진 쓰레기보다 못하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에게 ‘몽상’이라는 것마저 없다면 모두가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화자와 나스쩬까는 그들이 만난 네 번의 밤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한다. 그는 그녀를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로 인해 현실적이고 평범한, 남들이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나스쩬까가 그녀의 연인에게 가버리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되고 좌절한다. 소설의 끝은 우울하고 처량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스쩬까와 함께한 네 번의 밤을 행복하게 추억하고 나스쩬까를 축복해준다.
6, 츠바이크는 도작가의 <백야>가 “자유인으로서 오직 창작의 기쁨을 위해서만 집필한 최후의 작품이고, 그 이후로 그에게 있어 작품을 쓴다는 것은 돈을 벌거나 변상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아름다운 밤이고, 우리가 젊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그런 밤(p225)”처럼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젊은 도작가가 느껴진다. 7편의 중,단편은 첫 작품인 ‘가난한 사람들’이 크게 성공한 후 시베리아로 유형을 떠나기 전 구상되고 간행된 것이다. 소설 속에서 격렬한 ‘도스토옙스키’적인 것을 잠깐 만나지만, 순수하고 결말이 예상되는 부분이 더 많다. 번역자 석영중의 해설에 의하면 그 당시 작가는 ‘공상적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의 인물들은 선함과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지만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기꺼이 선량함과 가진 것을 나누어준다. “불행할 때 우리는 타인의 불행을 더욱 강렬히 느끼는 법이니까.(p282)", 불행이 불행을 감싸고 위로해 준다. 이것이 지금의 우리들에게 도스토옙스키가 던지는 물음이자 바램이다.
[당신을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위로하는 좋은 말들처럼 평탄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그의 인생 역시 어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더 뒤쳐져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좋은 말들을 찾아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7, 《도스토옙스키를 쓰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은 한 번 읽어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나오는 시대와 배경이 우리와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가 표현해내는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은 정상적이 아닐 때가 많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도스토옙스키를 쓰다’는 츠바이크가 얼마나 그의 작품과 인생에 깊이 들어갔는지를 알 수 있다. 도작가의 연대기에서부터 그의 육체적 고통(간질에 의한 발작), 도박 중독, 작중 인물, 신에 대한 고뇌 등을 여러 각도에서 표현해 냈다. 괴테, 오스카 와일드, 톨스토이, 푸쉬킨과 비교했고, 도작가와 발자크 소설의 인물들을 분석했다. 이 작고 얇은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단어와 문장들을 음미하며 천천히, 반복해서 읽어야만 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도스토옙스키와 츠바이크라는 두 거장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도스토옙스키는 내면에서 체험하지 않는다면 전혀 이해될 수 없는 그런 작가인 것이다. 가장 깊숙한 곳, 우리 존재의 영원하고 뿌리와 같은 곳에서만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와 관계하기를 희망한다. -p10]
8, 《도스토옙스키-대문호의 삶과 작품》
짧은 시간에 도작가 전반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그래픽 노블 ‘도스토옙스키’는 너무 좋은 책이다. 그의 일생과 작품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있어 한 눈에 잘 이해되도록 구성되어 있다. 특히 이 책 마지막에 있는 작가 연보는 도작가의 책을 읽을 때마다 옆에 두고 참조하면 좋을 만큼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작가 ‘비탈리 콘스탄티노프‘의 아버지가 도스토옙스키의 광적인 팬이어서 작가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도선생의 소설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것에 대한 표현과 성취는 그것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작가를 통해 알 수 있다.